조글로로고
독립운동가 송몽규와 잡지「문우」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0월16일 15시15분    조회:243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9월 28일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고 송몽규 선생의 만96세 탄생일이다. 송몽규 선생은 간도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연희전문대를 졸업 한 후 교토제국대 유학 중에 치안유지법 혐의로 수감된 사촌동생인 윤동주 시인과 함께 20대에 후쿠오카 형무소서 옥사했다.

송몽규와 윤동주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같은 집에서 태어나서 같은 형무소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일제강점기 공간의 비극적인 희생이었다.
성큼 다가온 가을바람 속에서, 비록 짧았던 삶이었지만 문학청년으로서의 꿈을 키우던 연희전문대 시절에 그들이 적었던 「문우」라는 잡지 속의 기억을 되새겨본다.

참고로 윤동주 시인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작품집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일본에서도 양심적인 일본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곳곳에서 추모기념을 개최하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관련시설이 개관 되는 등 추모움직임이 활발하기에 여기서는 그의 고종사촌형이자 문학청년이었고 독립운동에 참가했었던 송몽규를 떠올리며 그가 잡지 후기를 적었던 「문우」에 대해서 소개하려 한다.

송몽규는 1917년 9월 28일 간도성 연길현 용정신촌 명동(間島省 延吉縣 龍井新村 明東,지금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윤하현 장로 집 맏딸인 윤신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치안유지법 혐의의 재판 판결문에는 본적이 조선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읍 웅상동 422번지(朝鮮咸鏡北道慶興郡雄基邑雄尚洞四百二十二番地)로 기록되어 있다.

그로부터 석 달 뒤인 12월에 윤신영의 동생이자 윤하현의 외아들인 윤영석도 아들을 낳으니 그가 윤동주였다. 그들은 집 주변의 미루나무 사이로 비치는 맑은 하늘처럼 티 없이 순수하게 자라며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 소년으로 성장했다. 다섯 살까지 같은 집에서 자란 둘은 향후 서울의 연희전문학교와 교토 유학생활, 그리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옥사 때 까지 생애의 동반자이자 운명적 존재로 살다 간다.

송몽규는 여덟 살 때 윤동주, 문익환 등과 현지의 명동소학교(교장은 외숙부였던 김약연 선생)에 입학, 월간잡지 「아이 생활」을 구독하였다. 그 뒤, 화룡현립 제1 소학교 6학년에 편입 후 1년 동안 한족학교에 다니다 1932년 4월에 은진 중학교에 입학하는데, 송몽규는 문학 활동 및 학업에 열중하게 되고, 1934년(은진중학 3학년) 12월에는 서울의 동아일보 신춘문예 콩트부문에 ‘숟가락’이 송한범이란 필명으로 당선되어 당시의 고향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한편, 은진중학에서 동경제대 사학과 동양사학 출신으로 민족의식이 강했던 명희조 선생의 영향도 받게 된다. 명희조가 다녔던 당시의 동경제대엔 제국주의 비판과 민주주의 의식이 강한 계몽적 사상운동이 전파되고 있었다.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학생운동의 중심핵이었던 ‘신인회’엔 조선인 학생 김두용 등도 활동했다. 그런 민족의식이나 신념이 강한 지식인운동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던 명희조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송몽규는 1935년에 남경의 김구 산하 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반에 입학하여 군사훈련을 받는다. 그 뒤, 제남(済南) 소재의 이웅일 산하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하다 1936년 4월경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본적지인 웅기 경찰서에 구류되어 취조를 받은 뒤, 같은 해 8월에 석방되지만 경찰로부터 ‘요시찰인’이란 낙인을 받고 일제 감시 하에 놓이게 된다.

1936년 8월에 석방된 송몽규는 다음해 4월 용정의 대성중학교에 입학 후 문학 활동 및 학업에 열중하였고, 1938년에 윤동주와 함께 연희전문학교에 함께 문과에 입학한다.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1938년의 8월에 적은 시를 9월 12일 조선일보에 《밤》이란 제목으로 당시의 어두웠던 제국주의 지배하의 조선 민족의 굴하지 않는 희망을 시사 하는 글을 발표하는 등 문학적 재능을 나타낸다.

 

   
▲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송몽규 선생이 작업한 잡지 「문우」표지
또한, 연희전문대 문과학생회 문학동아리들의 잡지 「문우」(1932년에 창간)를 이어받은 송몽규는 문예부장으로 활동했는데, 시대의 압박으로 마지막 호가 발간되는 1941년 판 「문우」에서는 ‘꿈별’이란 필명으로 「하늘과 더불어」(목차에는 「하늘과 더브러」로 표기)를, 윤동주는 「새로운 길」、 「우물속의 自像畵(자상화)」를 발표했다. 편집 겸 발행인에는 나중에 일본 유학을 하게 되는 강처중(姜処重)으로 되어있다.
잡지 광고는 주로 서점 및 양복점, 학교지정 운동구 판매점 등이고, 서문에는 명예 교장(총장)인 Horace H.Underwood 의 메시지가 게재되어 있다. 시(詩)는 한글로 표현되어 있으나 나머지 글들은 전부 일본어로 적혀져 있다. 창씨개명, 조선어 사용금지, 조선의 민간언론이 폐간을 당하던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그나마 시의 표현적 특성상 한국어가 아니면 감정적 토로가 한계가 있었기에 그대로 사용이 인정된 것 같다. 그렇기에 짧은 시 속에 내포된 의미 해석이 중요하다.

발행 후기에는 송몽규의 폐간 인사 및 발간 과정의 고충을 암시하는 글들이 게재되어 있다. 1941년 6월에 발행한 연희전문학교 문우회 문예부의 「문우」(비매품)의 폐간 후기를 담당한 송몽규의 복잡한 심경이 응축된 후기 문장을 소개하기로 한다.
원문은 당시 시대를 반영한 일본어 문장으로 되어 있다(번역은 필자).

『원고에다 광고에다 검열에다 교정에다… 도저히 2-3명으로는 어림도 없음을 느꼈다.(중략) 이 잡지를 받은 사람들은 내용의 빈약함, 편집의 형편없음에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고 경험이 없는 학생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과, 동분서주하며 모은 원고의 대부분을 게재할 수 없었던 점을 양해 받고 싶다. 국민총력운동에 통합하여 학원의 신 체재를 확립하기 위하여 문우회는 해산하게 된다. 그렇기에 교우회의 발행으로써는 이것이 최후의 잡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잡지 발행 사업은 연맹으로 계승되어 더욱 더 좋은 잡지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새로운 것에 합류하는 것을 기뻐하며 그것에 힘쓸 것을 맹세하며 이번 마지막 호를 보낸다(후략)』
『原稿やら、広告やら、検閲やら、校正やら・・・・・・とても、二三人の手に依るべきでないことをつくづく感じた。(中略)この雑誌を受け取る人々は、内容の貧弱、編集のまづさなどのために顔をしかめるだらう。然し、これは若い、経験のない学生達の手によって出来上ったものであると云ふことと、東奔西走して、かき集めた原稿の大部分が載せられなかったことを諒解してもらひたい。国民総力運動に統合して、学園の新体制を確立せんがために、文友会は解散するやうになる。そして国民総力学校連盟は徹底的に活動しなければならないやうになる。そこで、交友会の発行としては、これが最後の雑誌になるわけである。然し雑誌発行の事業は連盟に継承されて、もっといい雑誌が出るだらうと思ふ。我々は新しきものへの合流を喜び且つそれへの尽力を誓ひながらこの最後の号を送る(後略)』(원문)

이 내용을 읽다보면 문학을 사랑했던 그였기에 숱한 고생 속에 겨우 모았던 원고 대부분이 검열에 걸려서 게재 불가능이 되었던 사실과, 식민지 공간 속에서 총력전의 군국주의 체제 강화로 인해 교우회 발행의 「문우」 최종호로 그들이 해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억압속의 현실이 더더욱 서글프게 느껴졌음을 행간에서 엿볼 수 있다.

그들이 보인 마지막 저항이었다면 「문우」 앞 페이지의 강가에서 어머니가 빨래를 방망이로 두드리는 삽화(엄달호 작)가 아니었을까?



   
▲ 잡지 「문우」의 표지 뒷쪽에 삽인된 '빨래하는 어머니' 삽화

필자가 지난 2013년 6월의 미국 강연에서도 역설했듯이 이 삽화는 한민족의 어머니가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흐르는 강물) 속에서 일제 강점기의 참혹한 지배통치행위를 빨래 방망이로 두드리는 터프한 모습으로 은유한 삽화라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존재는 민족의 자존이고, 흐르는 강물에 군국주의 정책의 모순과 침략지배 속에서 파생하는 갖은 때를 씻어 내리는 정화 작업을 하고 있는 어머니 그림을 최종 호에 장식했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조선의 소박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가장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저항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문우」 표지에는 ‘총력으로 구축하여 밝은 신동아(総力で築け明るい新東亜)’라는 슬로건이 적혀져 있고, 잡지 앞쪽의 삽화 옆에는 ‘황국시민의 서사(皇国臣民の誓詞)’가 게재되어 있는데, 여기서 이미 당시의 전시체재를 강화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렇기에 검열에 통과되기 위해서는 황국시민의 서사를 넣긴 하였으나 바로 옆에 그들의 강한 저항 의식이 내재된 삽화를 자연스럽게 넣으면서 자신들의 희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아픔이 어떠했을지는 근대사 공간 속의 아픔들을 규명해 온 필자에겐 절실히 다가온다.
2005년의 10월에 필자의 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대학원의 자매결연 체결을 위해 연세대를 방문했을 때, 윤동주 시비를 보고 싶은 필자는 당시의 교육대학원 원장님 및 관련 교수들이 안내를 받았었는데, 처음으로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캠퍼스 공간에 젖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윤동주 시비 바로 뒤에 송몽규 시인이 재학 중에 묵었던 핀슨 홀이 있고, 그 건물 2층에 ‘윤동주 기념실’이 있다.

이 동인지 「문우」 1941년 호는 필자가 2011년 8월 23일, 연세대 국학자료실 서고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대학 측 협력으로 내용을 제공받았으나, 지금은 핀슨 홀의 ‘윤동주 기념실’에 소장 중이다. 그 곳에는 송몽규와 윤동주가 학창시절에 찍었던 사진 등 많은 자료들이 그들의 기억을 더듬게 만든다.



   
▲ 연세대 윤동주 시비 및 윤동주 기념실에 잠시 앉아 있는 이수경 교수

송몽규는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1942년 4월, 교토제국대학교 문학부 사학과 선과생(選科生)으로 합격하여 유학을 한다. 그러나 1943년 7월 14일, 한국 유학생 모임에서 민족의 장래에 대해 말한 것을 이유로 송몽규는 「재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그룹 사건 책동(在京都朝鮮人学生民族主義グループ事件策動)」이란 혐의로 체포되었다(재판 판결문 기사 및 논문 참조).

재판 판결문에는 1944년 4월 13일에 선고되어 같은 해 4월 17일에 확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교토지방재판소에서 징역2년의 판결을 받은 송몽규와 윤동주는 교토에서 떨어진 큐슈의 관문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어 매일 밤, 원인 모를 주사를 맞다가 1945년 2월 16일에 윤동주가 옥사했고, 같은 해 3월 7일에 향년 만27세로 송몽규도 생을 마친다. 큐슈대학교 의대생들이 정부명령으로 당시 생체실험을 했었다는 증언은 이미 관련 의사가 언론을 통해 보도한 바, 그들도 어떤 형태의 인체 실험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맑은 영혼으로 아름다운 고향땅을 그리워하다 광기어린 전쟁 공간 속에서 처절히 죽어간 송몽규나 윤동주, 그리고 수많은 비명 속에 사라져 간 사람들…
비록 그들의 육신은 억울한 죽음에도 고요히 역사에 잠들어 있지만, 군비확대의 재무장으로 인한 무리한 침략 전쟁은 패망과 삶터의 파괴만이 남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우쳐주는 시대의 이정표로 살아있다.

칸트가 역설한 ‘영구히 전쟁을 하지 않는 평화 구축의 방법’을 다시 한 번 그들의 삶 속에서 되새겨보면서 송몽규가 식민지 통치하의 경성에서 번민하던 거대한 밤의 상황과, 그 속에서도 결코 지지 않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표출한 1938년 작 ‘밤’을 읊어본다.

《 밤(夜) 》
    延專 宋夢奎

고요히 沈澱된 어둠 (静かに夜の帳が下りた暗闇)
만지울 듯 무거웁고 (触れそうで重く)

밤은 바다보다도 깊구나  (夜は海よりも深い)
홀로 밤 헤아리는 이맘은 (一人夜を過ごすこの心は)
險한 山길을 걷고―――  (険しい山道を歩き)

―――나의 꿈은 밤보다도 깊어 (我が夢は夜よりも深し)

호수군한 물소리를 뒤로     (揺れ動く水の音を後に)
머-ㄹ 리 별을 쳐다 쉬파람 분다. (遠くの星を見上げ口笛を吹く)
(1938년 8월 16일 작, 『조선일보』 1938년 9월 12일자 게재, 일역은 필자 역)

참고; 「문우」 및 송몽규, 윤동주에 관련해서는 졸저가 삽입된 「한국문학논총 제61집」(2012) 등에서 상세히 확인할 수 있다.

 

[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재외한인신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97
  • 사진 크게보기 최근 책을 읽으면서 맥주 한 잔도 할 수 있는 동네 책방이 늘어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대형서점에 밀려난 동네 책방들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책 판매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앉아 책을 읽는 북 카페뿐만 아니라 각종 강연과 소모임 활동의 장소를 제공하는 형태로도 바뀌고 있다. 그...
  • 2017-04-19
  • [ 도서 출판 좌담회 현장] 2월 21일, 중국 조선민족역사학회와 중국미술관, 베이징시민족친목회, 중공연변조선족자치주위원회 선전부, 민족출판사에서 공동 주최한 도서 출판 좌담회가 베이징 민족문화궁에서 있었습니다. [ 도서 출판 좌담회에 참석한 초대 인사] 중국 조선족 혁명가이고 인민예술가이며 사회활동가인...
  • 2017-02-22
  • [서울=동북아신문]지난 4월 14일 오전 10시,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본관 3층에서 사)SAK색동어머니회의 주최로 제39회 ‘2014 대한민국 어머니동화구연대회’가 개최됐다. 예선을 거쳐 전국 각지에서 온 48명의 쟁쟁한 동화구연가들이 본선무대에서 뛰어난 이야기 솜씨를 뽐냈다. 이번 대회에서 중국동포 송미자(...
  • 2014-04-15
  • 24일, 전 주 신문출판 및 음란물, 불법출판물 숙청사업회의가 연길에서 소집됐다. 회의에서 료해한데 따르면 2013년 우리 주는 도합 6597가지의 도서와 34종의 민족문화음향제품 7만여장을 출판하고 중국조선족사료전집, “중국조선혁명렬사약전” 등 74개종의 정품도서를 출판했다. 그리고 사회안정을 수호하고...
  • 2014-01-26
  •  해란강문학상에 김승종,  김일량, 정희경 CJ문학상에 김경애   2013년 연변일보 CJ문학상, 해란강문학상  시상식이 24일 연길시백산호텔에서 있었다. 연변일보에서 주최하고 한국CJ그룹 중국본사의 후원으로 21회째 열리게 된 2013년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과 CJ문학상은 2013년 한해동안 연변일...
  • 2014-01-24
  • 행사취지 : 1) 재한동포시인들의 시작품 창작과 시낭송 활성화에 도움을 주며, 시 창작수준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2) 한중간의 문화교류 활성화를 위해   주최 : 재한동포문인협회 시분과・연변시낭송가협회 주관 : 4.19동포장학회・재한동포교사협회 일시 : 2014년 1월26일(일) 장소 : 영등포구 대림2동 보성...
  • 2014-01-24
  • 우광훈위원(연변작가협회 창작련락부 주임) 정협길림성제11기위원회 제2차회의에 참가한 연변작가협회 창작련락부 주임인 우광훈위원은《길림성조선족작가 모어창작 원고료에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 그의 소개에 의하면 연변작가협회는 전국 55개 소수민족가운데서 유일하게 전국에 회원을 갖고있는 단체로 협회에는 조선...
  • 2014-01-22
  • 윤순례 “소설가가 특정한 존재에 관심을 가지는 건 스스로 구속하는 짓” 지금,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소설 『낙타의 뿔』 모든 인간은 꾀보 사슴이자 낙타   행방불명된 애인이 사막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믿으며 황폐한 삶을 견뎌가는 효은, 한국 남자와 결혼하는 데 성공했으나 남편의 갑작스런 죽...
  • 2014-01-21
  • 심양시조선족문학회 2013년 사업총화 및 설맞이모임, 제3회 ‘료동문학’호룡문학상, 제2회 ‘료동문학’호룡꼬마작가상 시상식이 1월 18일 오후, 심양시조선족례의궁에서 진행되였다. 이날 모임에 중국사회과학원 박사생지도교수 장춘식연구원, 료녕성민위 장덕수 부청급순시원,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 2014-01-20
  •   연변단풍수필회 부회장이며 연변작가협회 회원인 장진숙의 수필집 《설산에서 파아란 동청나무이기에》가 최근 출간됐다.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된 수필집은 약 30만자의 편폭속에 작가가 근 10년 ...
  • 2014-01-20
  • 지도일군들이 촬영식 테프를 끊고있다. 백산시당위 선전부의 주최로 마련된 영화《어린 시절의 발자국》(童年的脚印) 촬영식 및 매체대면회의가 1월 12일 오후 백산시도서관 1층 대청에서 있었다. 백산시당위 상무위원이며 시정부 부시장인 진요휘, 길림성당위 선전부 문예처 처장 주강,성라지오텔레비죤신문출판국 영화처...
  • 2014-01-15
  • 김혁감독의 영화 작품 《WHO ARE YOU》의 포스터. 지난해 11월 18일, 복건성장주시에서 열린 제1차금해협국제미니영화축제에서 조선족청년영화감독 김혁은 단편영화 《WHO ARE YOU》(你是谁)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하였고 그의 작품은 최우수녀주연상까지 배출하여 또다시 중국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단편영화는 새...
  • 2014-01-13
  • 작가가 PD와 배우를 쥐락펴락하는 시대다. 회당 수천만원의 고료를 받는 일부 스타 작가는 여기저기서 모셔가려고 안달이다. 개중엔 막장 스토리로 지탄받는 작가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청률만큼은 고공 행진을 멈출 줄 모른다. 무엇이 이들을 막장 드라마 작가이게 하는가. 그리고 스타 작가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
  • 2014-01-11
  • 6종의 조선문도서 “제2회 전국 추천 100종 우수민족도서”로 입선 북경 1월 7일발 인민넷소식(기자 김홍화): “제2회 전국 추천 100종 우수민족도서”평의결과가 일전에 북경에서 공개되였다. 올해 6월초 국가신문출판방송텔레비죤총국과 국가민족사무위원회에서는 조직한 이 행사는 2년에 한번씩 진행...
  • 2014-01-08
  • 첫번째 저서 《시론》이후 12번째 문집   평론가 조성일(1936-)선생이 지난 7월에 론문집 《윤동주문학론》(주필)을 펴낸데 이어 개혁개방이후에 저술한 평론과 문학개관, 문단유사 등을 집대성하여 《조성일문집》(연변인민출판사, 45만자)을 일전에 펴내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했다. 이는 조성일선생이 1979년에 첫번...
  • 2014-01-08
  •   최근 채운산의 중단편소설집 《두만강에 살어리랏다》가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간되였다. 채운산 중단편소설집에는 중편소설 "녀자의 숙명", "땅의 자식들", "시골의 별곡", "홀아비들의 비애", "두만강에서 살어리랏다" 등 5편과 단편소설 "그해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무능한 사나이", "현대샹즈", "밀림속...
  • 2014-01-08
  • 왼쪽으로부터 김인순, 최국철, 남영전 북경 1월 7일발 인민넷소식(기자 김홍화):“2013 《민족문학》년도상”및 “중국소수민족작가 ‘나의 중국꿈’응모”시상식이 12월 28일 중국현대문학관에서 거행되였다. “2013 《민족문학》년도상”을 수상한 23편의 작품은 한어, 몽골어,...
  • 2014-01-07
  • 4일, 화룡시관광국은 화룡시문련, 화룡시작가협회, 시가련영(诗词联盈) 회원 30명과 함께 화룡 선봉 로리커호에서 문학창작활동을 펼쳤다. 화룡시는 겨울관광자원특색을 살려 화룡해란강겨울관광코스를 출시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화룡해란강겨울관광코스 현지답사를 통해 해란강겨울관광문화 개발현황, 발전사로와 ...
  • 2014-01-07
  •   (흑룡강신문=하얼빈) 2013년 흑룡강성 조선족 작가 예술가와 작품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흑룡강성 성위 선전부에서 개최한 제8회 흑룡강문예상 평선에서 리민녀사의 실화문학 ‘눈보라 휘몰아치던 항일의 나날들(风雪征程—东北抗日联军战士李敏回忆录(上下)’이 제8회 흑룡강성 문예 신인 신...
  • 2014-01-06
  •       2003년 8월 23일 창간된 중국동포타운신문은 10주년을 맞아 재한중국동포 문학작품을 공모하였고 지난 29일 신문사 산하 평생교육원 교실에서 시상식을 개최하였다. 이번 공모에 20여 명의 재한중국동포가 작품을 보내왔고 그 중 12편이 신문에 게재되었다. 인천대학교 국문학과 재학 중인 김령씨의 ...
  • 2014-01-06
‹처음  이전 1 2 3 4 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