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독립운동가 송몽규와 잡지「문우」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0월16일 15시15분    조회:248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9월 28일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고 송몽규 선생의 만96세 탄생일이다. 송몽규 선생은 간도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연희전문대를 졸업 한 후 교토제국대 유학 중에 치안유지법 혐의로 수감된 사촌동생인 윤동주 시인과 함께 20대에 후쿠오카 형무소서 옥사했다.

송몽규와 윤동주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같은 집에서 태어나서 같은 형무소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일제강점기 공간의 비극적인 희생이었다.
성큼 다가온 가을바람 속에서, 비록 짧았던 삶이었지만 문학청년으로서의 꿈을 키우던 연희전문대 시절에 그들이 적었던 「문우」라는 잡지 속의 기억을 되새겨본다.

참고로 윤동주 시인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작품집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일본에서도 양심적인 일본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곳곳에서 추모기념을 개최하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관련시설이 개관 되는 등 추모움직임이 활발하기에 여기서는 그의 고종사촌형이자 문학청년이었고 독립운동에 참가했었던 송몽규를 떠올리며 그가 잡지 후기를 적었던 「문우」에 대해서 소개하려 한다.

송몽규는 1917년 9월 28일 간도성 연길현 용정신촌 명동(間島省 延吉縣 龍井新村 明東,지금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윤하현 장로 집 맏딸인 윤신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치안유지법 혐의의 재판 판결문에는 본적이 조선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읍 웅상동 422번지(朝鮮咸鏡北道慶興郡雄基邑雄尚洞四百二十二番地)로 기록되어 있다.

그로부터 석 달 뒤인 12월에 윤신영의 동생이자 윤하현의 외아들인 윤영석도 아들을 낳으니 그가 윤동주였다. 그들은 집 주변의 미루나무 사이로 비치는 맑은 하늘처럼 티 없이 순수하게 자라며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 소년으로 성장했다. 다섯 살까지 같은 집에서 자란 둘은 향후 서울의 연희전문학교와 교토 유학생활, 그리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옥사 때 까지 생애의 동반자이자 운명적 존재로 살다 간다.

송몽규는 여덟 살 때 윤동주, 문익환 등과 현지의 명동소학교(교장은 외숙부였던 김약연 선생)에 입학, 월간잡지 「아이 생활」을 구독하였다. 그 뒤, 화룡현립 제1 소학교 6학년에 편입 후 1년 동안 한족학교에 다니다 1932년 4월에 은진 중학교에 입학하는데, 송몽규는 문학 활동 및 학업에 열중하게 되고, 1934년(은진중학 3학년) 12월에는 서울의 동아일보 신춘문예 콩트부문에 ‘숟가락’이 송한범이란 필명으로 당선되어 당시의 고향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한편, 은진중학에서 동경제대 사학과 동양사학 출신으로 민족의식이 강했던 명희조 선생의 영향도 받게 된다. 명희조가 다녔던 당시의 동경제대엔 제국주의 비판과 민주주의 의식이 강한 계몽적 사상운동이 전파되고 있었다.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학생운동의 중심핵이었던 ‘신인회’엔 조선인 학생 김두용 등도 활동했다. 그런 민족의식이나 신념이 강한 지식인운동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던 명희조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송몽규는 1935년에 남경의 김구 산하 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반에 입학하여 군사훈련을 받는다. 그 뒤, 제남(済南) 소재의 이웅일 산하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하다 1936년 4월경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본적지인 웅기 경찰서에 구류되어 취조를 받은 뒤, 같은 해 8월에 석방되지만 경찰로부터 ‘요시찰인’이란 낙인을 받고 일제 감시 하에 놓이게 된다.

1936년 8월에 석방된 송몽규는 다음해 4월 용정의 대성중학교에 입학 후 문학 활동 및 학업에 열중하였고, 1938년에 윤동주와 함께 연희전문학교에 함께 문과에 입학한다.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1938년의 8월에 적은 시를 9월 12일 조선일보에 《밤》이란 제목으로 당시의 어두웠던 제국주의 지배하의 조선 민족의 굴하지 않는 희망을 시사 하는 글을 발표하는 등 문학적 재능을 나타낸다.

 

   
▲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송몽규 선생이 작업한 잡지 「문우」표지
또한, 연희전문대 문과학생회 문학동아리들의 잡지 「문우」(1932년에 창간)를 이어받은 송몽규는 문예부장으로 활동했는데, 시대의 압박으로 마지막 호가 발간되는 1941년 판 「문우」에서는 ‘꿈별’이란 필명으로 「하늘과 더불어」(목차에는 「하늘과 더브러」로 표기)를, 윤동주는 「새로운 길」、 「우물속의 自像畵(자상화)」를 발표했다. 편집 겸 발행인에는 나중에 일본 유학을 하게 되는 강처중(姜処重)으로 되어있다.
잡지 광고는 주로 서점 및 양복점, 학교지정 운동구 판매점 등이고, 서문에는 명예 교장(총장)인 Horace H.Underwood 의 메시지가 게재되어 있다. 시(詩)는 한글로 표현되어 있으나 나머지 글들은 전부 일본어로 적혀져 있다. 창씨개명, 조선어 사용금지, 조선의 민간언론이 폐간을 당하던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그나마 시의 표현적 특성상 한국어가 아니면 감정적 토로가 한계가 있었기에 그대로 사용이 인정된 것 같다. 그렇기에 짧은 시 속에 내포된 의미 해석이 중요하다.

발행 후기에는 송몽규의 폐간 인사 및 발간 과정의 고충을 암시하는 글들이 게재되어 있다. 1941년 6월에 발행한 연희전문학교 문우회 문예부의 「문우」(비매품)의 폐간 후기를 담당한 송몽규의 복잡한 심경이 응축된 후기 문장을 소개하기로 한다.
원문은 당시 시대를 반영한 일본어 문장으로 되어 있다(번역은 필자).

『원고에다 광고에다 검열에다 교정에다… 도저히 2-3명으로는 어림도 없음을 느꼈다.(중략) 이 잡지를 받은 사람들은 내용의 빈약함, 편집의 형편없음에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고 경험이 없는 학생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과, 동분서주하며 모은 원고의 대부분을 게재할 수 없었던 점을 양해 받고 싶다. 국민총력운동에 통합하여 학원의 신 체재를 확립하기 위하여 문우회는 해산하게 된다. 그렇기에 교우회의 발행으로써는 이것이 최후의 잡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잡지 발행 사업은 연맹으로 계승되어 더욱 더 좋은 잡지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새로운 것에 합류하는 것을 기뻐하며 그것에 힘쓸 것을 맹세하며 이번 마지막 호를 보낸다(후략)』
『原稿やら、広告やら、検閲やら、校正やら・・・・・・とても、二三人の手に依るべきでないことをつくづく感じた。(中略)この雑誌を受け取る人々は、内容の貧弱、編集のまづさなどのために顔をしかめるだらう。然し、これは若い、経験のない学生達の手によって出来上ったものであると云ふことと、東奔西走して、かき集めた原稿の大部分が載せられなかったことを諒解してもらひたい。国民総力運動に統合して、学園の新体制を確立せんがために、文友会は解散するやうになる。そして国民総力学校連盟は徹底的に活動しなければならないやうになる。そこで、交友会の発行としては、これが最後の雑誌になるわけである。然し雑誌発行の事業は連盟に継承されて、もっといい雑誌が出るだらうと思ふ。我々は新しきものへの合流を喜び且つそれへの尽力を誓ひながらこの最後の号を送る(後略)』(원문)

이 내용을 읽다보면 문학을 사랑했던 그였기에 숱한 고생 속에 겨우 모았던 원고 대부분이 검열에 걸려서 게재 불가능이 되었던 사실과, 식민지 공간 속에서 총력전의 군국주의 체제 강화로 인해 교우회 발행의 「문우」 최종호로 그들이 해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억압속의 현실이 더더욱 서글프게 느껴졌음을 행간에서 엿볼 수 있다.

그들이 보인 마지막 저항이었다면 「문우」 앞 페이지의 강가에서 어머니가 빨래를 방망이로 두드리는 삽화(엄달호 작)가 아니었을까?



   
▲ 잡지 「문우」의 표지 뒷쪽에 삽인된 '빨래하는 어머니' 삽화

필자가 지난 2013년 6월의 미국 강연에서도 역설했듯이 이 삽화는 한민족의 어머니가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흐르는 강물) 속에서 일제 강점기의 참혹한 지배통치행위를 빨래 방망이로 두드리는 터프한 모습으로 은유한 삽화라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존재는 민족의 자존이고, 흐르는 강물에 군국주의 정책의 모순과 침략지배 속에서 파생하는 갖은 때를 씻어 내리는 정화 작업을 하고 있는 어머니 그림을 최종 호에 장식했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조선의 소박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가장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저항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문우」 표지에는 ‘총력으로 구축하여 밝은 신동아(総力で築け明るい新東亜)’라는 슬로건이 적혀져 있고, 잡지 앞쪽의 삽화 옆에는 ‘황국시민의 서사(皇国臣民の誓詞)’가 게재되어 있는데, 여기서 이미 당시의 전시체재를 강화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렇기에 검열에 통과되기 위해서는 황국시민의 서사를 넣긴 하였으나 바로 옆에 그들의 강한 저항 의식이 내재된 삽화를 자연스럽게 넣으면서 자신들의 희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아픔이 어떠했을지는 근대사 공간 속의 아픔들을 규명해 온 필자에겐 절실히 다가온다.
2005년의 10월에 필자의 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대학원의 자매결연 체결을 위해 연세대를 방문했을 때, 윤동주 시비를 보고 싶은 필자는 당시의 교육대학원 원장님 및 관련 교수들이 안내를 받았었는데, 처음으로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캠퍼스 공간에 젖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윤동주 시비 바로 뒤에 송몽규 시인이 재학 중에 묵었던 핀슨 홀이 있고, 그 건물 2층에 ‘윤동주 기념실’이 있다.

이 동인지 「문우」 1941년 호는 필자가 2011년 8월 23일, 연세대 국학자료실 서고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대학 측 협력으로 내용을 제공받았으나, 지금은 핀슨 홀의 ‘윤동주 기념실’에 소장 중이다. 그 곳에는 송몽규와 윤동주가 학창시절에 찍었던 사진 등 많은 자료들이 그들의 기억을 더듬게 만든다.



   
▲ 연세대 윤동주 시비 및 윤동주 기념실에 잠시 앉아 있는 이수경 교수

송몽규는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1942년 4월, 교토제국대학교 문학부 사학과 선과생(選科生)으로 합격하여 유학을 한다. 그러나 1943년 7월 14일, 한국 유학생 모임에서 민족의 장래에 대해 말한 것을 이유로 송몽규는 「재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그룹 사건 책동(在京都朝鮮人学生民族主義グループ事件策動)」이란 혐의로 체포되었다(재판 판결문 기사 및 논문 참조).

재판 판결문에는 1944년 4월 13일에 선고되어 같은 해 4월 17일에 확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교토지방재판소에서 징역2년의 판결을 받은 송몽규와 윤동주는 교토에서 떨어진 큐슈의 관문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어 매일 밤, 원인 모를 주사를 맞다가 1945년 2월 16일에 윤동주가 옥사했고, 같은 해 3월 7일에 향년 만27세로 송몽규도 생을 마친다. 큐슈대학교 의대생들이 정부명령으로 당시 생체실험을 했었다는 증언은 이미 관련 의사가 언론을 통해 보도한 바, 그들도 어떤 형태의 인체 실험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맑은 영혼으로 아름다운 고향땅을 그리워하다 광기어린 전쟁 공간 속에서 처절히 죽어간 송몽규나 윤동주, 그리고 수많은 비명 속에 사라져 간 사람들…
비록 그들의 육신은 억울한 죽음에도 고요히 역사에 잠들어 있지만, 군비확대의 재무장으로 인한 무리한 침략 전쟁은 패망과 삶터의 파괴만이 남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우쳐주는 시대의 이정표로 살아있다.

칸트가 역설한 ‘영구히 전쟁을 하지 않는 평화 구축의 방법’을 다시 한 번 그들의 삶 속에서 되새겨보면서 송몽규가 식민지 통치하의 경성에서 번민하던 거대한 밤의 상황과, 그 속에서도 결코 지지 않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표출한 1938년 작 ‘밤’을 읊어본다.

《 밤(夜) 》
    延專 宋夢奎

고요히 沈澱된 어둠 (静かに夜の帳が下りた暗闇)
만지울 듯 무거웁고 (触れそうで重く)

밤은 바다보다도 깊구나  (夜は海よりも深い)
홀로 밤 헤아리는 이맘은 (一人夜を過ごすこの心は)
險한 山길을 걷고―――  (険しい山道を歩き)

―――나의 꿈은 밤보다도 깊어 (我が夢は夜よりも深し)

호수군한 물소리를 뒤로     (揺れ動く水の音を後に)
머-ㄹ 리 별을 쳐다 쉬파람 분다. (遠くの星を見上げ口笛を吹く)
(1938년 8월 16일 작, 『조선일보』 1938년 9월 12일자 게재, 일역은 필자 역)

참고; 「문우」 및 송몽규, 윤동주에 관련해서는 졸저가 삽입된 「한국문학논총 제61집」(2012) 등에서 상세히 확인할 수 있다.

 

[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재외한인신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97
  •   9월 28일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고 송몽규 선생의 만96세 탄생일이다. 송몽규 선생은 간도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연희전문대를 졸업 한 후 교토제국대 유학 중에 치안유지법 혐의로 수감된 사촌동생인 윤동주 시인과 함께 20대에 후쿠오카 형무소서 옥사했다. 송몽규와 윤동주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 2013-10-16
  • 10월 15일 오전, 연변단풍수필회 창립 15주년 기념회가 연변작가협회 2층 회의실에서 있었다. 기념회에는 김운일회장을 비롯한 단풍수필회 회원들과 연변주민정국, 연변작가협회, 연변출판국, 연변인민출판사, 시인협회, 시조사, 어머니수필회의 대표 30여명이 참석하였다. 기념회에서 김운일회장이 지난 15년의 발전과정과...
  • 2013-10-15
  • 박용일 씨(오른쪽)와 그의 부인       (흑룡강신문=하얼빈) 연변민간문예가협회 부주석으로 사업하고있는 박용일 소설가가 지난 9월 28일 서울에서 열린 제8회 윤동주문화제에서 해외동포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윤동주문화제는 한국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
  • 2013-10-11
  •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 작품세계 [동아일보]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캐나다 여성 소설가 앨리스 먼로(82)는 섬세한 관찰력과 빼어난 구성으로 짧은 이야기 속에 복잡하고 미묘한 삶의 한순간을 아름답게 그려내 ‘우리 시대의 체호프’라 불리는 북미 최고의 단편 작가다. 먼로...
  • 2013-10-11
  • 캐나다 작가 첫 노벨문학상…"현대 단편소설 대가" 선정 이유 10대부터 글쓰기…섬세한 '스토리텔링'으로 정평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권수현 기자 = 올해 노벨문학상은 캐나다 여성 소설가인 앨리스 먼로(82)에게 돌아갔다. 캐나다 국적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는 먼로가 처음이다. 스웨덴 한림...
  • 2013-10-10
  •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민음사 제공). © News1  英 도박사이트 배당률, 8일 현재 하루키 1위…고은 7위 스웨덴 한림원 10일 발표 (서울=뉴스1) 유기림 기자 =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력한 2013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점쳐지고 있다.  8일 영국의 온라인 베팅업체 래드브록스(Ladbrokes)에...
  • 2013-10-09
  •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가 설립 17주년을 맞으면서 《장백산》컵 기념특집 《문화산맥》(9)를 출판하였다.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조성일회장의 주필로 된 《문화산맥》(9)에는 조성일, 김병민, 채영춘의 기념글로 된 기념특집과 민족연구, 문학세계, 교육현장, 력사추적, 예술전당 등 6개 부문 31편의 문장이 수록되...
  • 2013-10-08
  • ▲ 조정래 작가가 서울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한이 많고, 슬프고, 괴로운 일을 많이 겪은 민족이기 때문에, 작가는 이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써야 할 필연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심만수 기자 panfocus@munhwa.com   ‘한국문학의 거장’ 조정래(70)...
  • 2013-10-05
  • 故 최인호 생전 인터뷰-"선비정신으로 국격을 세우자" 대중 역사소설가로서의 면모 글 | 이상흔 인터넷뉴스부 기자 지난 9월 25일 타계한 소설가 故 최인호씨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지만, 생전에 그는 "모든 종교의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고 말했다.     그가 2005년 유교 장편소설인 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필...
  • 2013-10-02
  • -중국조선족출판문화대상시상식서 리성권 등 20명 우수출판인물로 선정   2013년 9월 29일 오전 9시, “제4회 중국조선족출판문화대상 시상식”이 연변주정무중심 회의실에서 있었다.   동북3성(북경)조선문도서출판협조지도소조, 중국조선족출판문화대상평의지도소조, 연변조선족자치주 신문출판국에...
  • 2013-09-29
  • 연변대학 중문학부를 졸업하고 연변일보사 기자, 연변조선족자치주당위 선전부 문화신문처 처장,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부국장으로 사업하다가 퇴직한 김영택선생의 가사선집 《신토불이 우리 가락》과 산문집 《미래를 안은 사람들》 출간좌담회가 9월 26일 오전 연변텔레비죤방송국 회의실에서 있었다. 연변인민출판사에서...
  • 2013-09-26
  • 작가 조정래(70·사진)는 하드코어다. 새로 낸 책 『정글만리』는 원고지로 3615장이다. 바닥에 세우면 어른 가슴 높이 두께다.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등 그동안 쓴 소설을 원고지로 쌓으면 몇 층짜리 건물 높이에 맞먹는다. 그는 컴퓨터 대신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쓰고, 휴대전화조차 없다. 설 연휴 빼...
  • 2013-09-22
  • 연변시인협회 시총서 《시향만리》 제10호 《내가 심은 꽃나무》가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됐다. 시집은 제1부 서지월시인 시특집, 제2부 꽃들의 향연, 제3부 신작시, 제4부 남녘하늘에서 풍겨온 사랑, 제5부 명시감상 등으로 나누어 200여수의 시를 수록했다. 2007년에 창간된 연변시인협회 기관지 《시향만리》는 시...
  • 2013-09-16
  • 연변작가협회 아동문학창작위원회와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에서 련합으로 주최한 제27회 아동문학작품 창작  및 연구모임이 지난 9월 13일에 도문시 월청진 기신촌 문화회관에서 있었다. 주내에 거주하는 아동문학창작일군 30여명이 이번 모임에 참가했다. 연변작가협회 최국철부주석이 모임에 참가하여 아동문학...
  • 2013-09-14
  •     강려동시집《또르르 뱅뱅》출간기념모임이 지난 9월 13일에 도문에서 열렸다.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연변작가협회 아동문학창작위원회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모임에 주내 아동문학작가 30여명이 참석했다. 강려는 뇌성마비로  하여 인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한적도 있었지만 용케도 역경을 뚫고나와...
  • 2013-09-14
  • 연변대학사범분원 정철(가운데)학생이 중국조선족대학생이육사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 경상북도와 안동시청이 주최하고 안동이육사문학관과 연변작가협회가 주관하는 제3회 중국조선족대학생 이육사문학제가 안동간고등어회사와 안동병원, 연변대학의 후원으로 9월 12일 오후 연변대학 예술학원 극장에서 개최되였다...
  • 2013-09-13
  • 창작소회를 밝히는 리태근작가. 화룡시 서성진 와룡촌의 농민 아들 작가 리태근의 3번째 작품집 《어머님의 휘파람소리》가 고려원미디어에 의해 출판되여 9월 7일 연길한성호텔에서 출간식을 가졌다. 연변작가협회 평론분과와 동북아문화원비교문학연구소에서 주최한 이번 출간기념식에는 연변작가협회 평론분과 회원들과...
  • 2013-09-09
‹처음  이전 1 2 3 4 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