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신진아 기자 =
‘비행기에 몸을 맡기면/두시간이면 가닿을 고향땅을/예순해를 넘겨서야/간신히 밟았구나//(중략) 꿈결에도 찾던 나의 고향집//밀감밭에 둘러싸인 내 고향집엔/대문도 없었어라 쇠도 없었어라/그 언제건 돌아오라고/량팔 벌려 기다려준 정다운 집//(중략) 난생처음 먹어본 고향집의 감귤 맛에/코허리가 찡하여 목이 메였네 (허옥녀의 '고향-제주도를 찾아서' 일부)
‘어릴 때/말 안 듣는다고/어머니는/-너는 내 아이가 아니다 하면서/회초리로 냅다 갈겼다/(중략) 생각할수록 원통하고 분해서/방구석 기둥에 남모르게 락서를 했다/《어머니 없어져!》(중략)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0여년/지금도 내 마음속에서/그때의 락서를 몇 번이나 지우고있다/다시 한번 어머니를 보고싶어서’ (리방세의 ‘락서’ 일부)
재일조선인은 존재 그 자체가 우리 근대사의 상흔이다. 그들은 대부분 일제 식민지라는 민족사의 상처 속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과 그 후손들이다. 관동대학살이 보여 주듯이 그들은 식민지 시기 내내 생존의 위협 속에서 제국의 주권 없는 신민으로 살았으며, 해방 후에는 외국인으로서 차별까지 덧쓴 채 굴욕과 억압의 삶을 지속해왔다.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한 남북대립은 그들을 모국 어디에도 쉽게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다.
‘2000년대 재일조선인 시선집’은 2000년대 이후 창작된 재일조선인들의 문학작품을 엮은 책이다. 2005년 진행된 '재일동포 한국어 문학 연구 프로젝트'의 후속 작업으로 재일조선인 문학 작품집에 대한 관심을 좀 더 확대하기 위해 기획됐다.
현실적으로 재일조선인 문단에서 특히 한글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수록된 시를 쓴 작가들 대부분이 적지 않은 연배다.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작품은 작품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엮은이 김형규는 우리의 기준이나 감성으로 그들의 작품을 평가하거나 해석하기보다 ‘우리와 다른 우리’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존재와 삶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들여다 볼 것을 권한다. 팔순의 시인이 생을 마감하면서도 “이역살이의 한 순간 순간이 고충과 분격의 연속”이란 말을 남기게 되는 그들의 생각과 감성을 있는 그대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다소 다른 표현이나 실수가 있을지라도 원문 표기 그대로 옮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형규는 ‘민족의 기억과 재외동포소설’ ‘중국조선족문학의 탈식민주의 연구’(공저), ‘재일동포한국어문학의 민족문학적 성격 연구’(공저)등을 썼다. 그는 머리말에서 “고인이 되신 김학렬 선생의 열정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고인의 뜻을 좇아 우리 민족문학이 좀 더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작품집을 내놓는다”라고 밝혔다. 532쪽, 3만원, 경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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