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가디언 등 호평 이어져…작품성·번역·지원의 3박자가 어우러져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최근 영미권에서 번역 출간된 소설가 한강의 작품들이 대대적인 호평을 받으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가디언 등 해외 주요 언론들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에 대해 '미국 문학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역사와 인간의 본질을 다룬 소설' 등의 호평을 쏟아내며 지면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소개했다. 미국의 출판저널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채식주의자'를 올해 가장 기대되는 소설로 꼽기도 했다.
이에 한강이 신경숙, 황선미에 이어 해외 독자층을 형성하는 차기 주자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 한강의 작품이 이토록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단에서는 뛰어난 작품성과 적절한 번역. 지속적인 지원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 완성도 높은 작품이 이끌어낸 전 세계적인 공감
현재 해외에서 주목받는 한강의 작품은 미국 호가드 출판사에서 펴낸 '채식주의자'(영문명
The Vegetarian)과 영국 포토벨로 출판사가 출간한 '소년이 온다'(영문명
Human Acts)다.
먼저 2004년에 한국에서 출간된 '채식주의자'(창비)는 채식주의자가 된 주인공이 나무로 변하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한강은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멀리하고, 그러면서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폭력적 본성에 대해 집요하게 탐구한다.
한강이 2014년 펴낸 '소년이 온다'(창비)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진압된 후 시위대에 있었던 친구의 시신을 찾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작품은 인간의 폭력과 존엄이 공존한 광주 민주화 운동을 통해 또다시 폭력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문단에서는 폭력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으로 풀어낸 한강의 뛰어난 문학성을 해외에서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작가 자신은 해외의 호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한강은 지난 1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제 소설은 대부분 폭력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존엄을 간직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다룬다"며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역사는 모든 나라의 공통점인 만큼 그런 보편적 이야기에 공감하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달 출간기념회를 하려고 영국에 다녀왔는데 독자분들이 제 책을 보편적 이야기로 생각하시더라"고 덧붙였다.
◇ 영국인 번역가의 '차원 다른' 해설
해외에서 출간된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는 한국인이 아닌 영국인 데보라 스미스(29) 씨가 번역을 맡았다.
영국의 비영리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 출판사를 이끌고 있는 스미스 씨는 영국에 한국어를 전문적으로 하는 번역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 한국어를 배웠다. 그는 '채식주의자'의 앞부분 20페이지를 번역해 영국 유명 출판사 포토벨로에 보냈고, 결국 책은 출간까지 이어졌다.
그는 번역 과정에서 한강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피드백을 받았다. 스미스 씨는 '소년이 온다'에 나온 방언이나 사건의 맥락, 광주항쟁에 관한 국민적 정서 등을 궁금해하며 한강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번역본을 직접 한강에게 보내 의견을 구했고, 한강도 번역의 뉘앙스를 함께 논의했다. 이런 상호작용이 뛰어난 번역을 만들어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강은 "스미스 씨는 작품에 헌신하는 아주 문학적인 사람이다"라며 "좋은 번역자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고 강조했다.
스미스 씨는 작년 한국문학번역원 주최한 워크숍에서 자신의 번역 철학을 밝혔다.
그는 "한국어와 같이 소수 언어권에서 온 책들은 소위 '다른 문화로의 창'과 같은 진부한 문구로 포장돼서 출간된다"며 "저는 그런 점을 지양하고 문학서로만 홍보하고 싶다.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을 한국을 들먹이며 마케팅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스미스 씨는 '소년이 온다'를 내면서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치 사회적 배경을 설명해주는 번역자의 서문도 실었다. 역자 각주로 처리하는 다른 번역서와 차별화하는 점이다. 그는 이러한 방법이 "작품의 전후 맥락 이해를 돕는 훌륭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과
KL매니저먼트의 선구안
해외의 호평에는 뛰어난 작품성과 번역 외에도 또 다른 노력이 숨어 있다. 바로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속적인 지원과 해외 수출 에이전시
KL매니지먼트의 선구안도 큰 역할을 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작년 열린 런던도서전에서 한국 작가 관련 세미나와 에든버러 문학행사를 열어 해외 출판인들에게 한국 작가들을 알렸다. 신경숙과 한강 작가는 행사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이 행사에서 영국 편집자들에게 처음 소개됐고, 결국 출간에 성공했다.
또 한국문학번역원은 스미스 씨가 운영하는 틸티드 악시스 출판사를 지원해 오는 2018년까지 황정은, 김연수, 그리고 한강의 작품을 영국에서 번역 출간할 계획이다.
한강은 "한국문학번역원이 공동주관한 재작년 런던도서전 준비행사로 영국 편집자들이 참석한 공개토론회가 있었다"며 "그곳에서 스미스 씨와 포토벨로의 편집자가 처음 만나 '채식주의자' 번역원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한국 작품을 선별해 시장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KL매니지먼트의 노력도 컸다.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정유정의 '7년의 밤'을 해외에 소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구용 대표는 "한국에서는 문학은 상업적이지 않다고 보는데 그런 기준에서 보면 안 된다"며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은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둔다. 그런 작품을 선별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작품이 해외에서 문학상도 받고,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올라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업적인 성공이 전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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