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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팔자보다 못한 조선족 본격 읽기…김노 소설의 '중국여자 한국남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4월9일 09시15분    조회: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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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金奴·60) 작가의 '중국여자 한국남자'(신세림)에 수록된 작품들 '중국여자 한국남자', '중국아내', '밀항자', '지하생활', '개팔자 상팔자', '불법체류자', '길림댁은 등나무처럼 살고 싶다', '꼭두각시', '주인과 하녀', '가자! 경마장으로'를 읽었다.

읽는 내내 마음은 우울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이, 자신과 대척(對蹠)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원천적으로 불평등하며, 삶의 조건이나 생활환경 등이 극도로 열악한 가운데에서 불안・따돌림・멸시・차별대우・폭언・폭력 등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弱者)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 혹은 서울생활에 적응하며 인간답게 살려고 고군분투(孤軍奮鬪) 하듯 노력하지만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중국 조선족으로서 한국의 서울로 온 여성들이 많지만 남성도 더러 있다. 그들의 입국은 불법적인 밀항으로부터 합법적인 비자를 받아 들어오긴 했지만 대개는 그 과정에서 진 빚을 갚고 돈을 벌어서 돌아가기 위한 노동생활로 체류기간의 일방적인 연장이 불가피하고, 그로 인해서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어 불안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작품 속의 여성들은 대개 식당이나 남의 집 가정부나 봉제공장 등에서 단순노동을 한다. 그 가운데에는 한국 남자와 재혼하여 사는 소수의 사람도 있지만 '중국아내'의 아내, '중국여자 한국남자'의 송희, '꼭두각시'의 나, 부부가 함께 들어와 사는 사람도 있다. '지하생활'의 희숙과 그 남편, '개팔자 상팔자'의 그녀와 그녀 남편. 반면, '불법체류자'의 현수처럼 남성들은 일용직 근로자로서 건설현장을 전전하다가 산업재해를 입는 불행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정상적인 인간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아니, 이용당하고 빼앗김을 당하기도 하는 처지이다. 그 이유인 즉 대개가 불법체류자 신분이고, 낯선 서울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노출되는 언어 소통의 부자연스러운 문제, 생활 문화적 관습의 차이, 중국과 조선족에 대해 갖는 내국인의 부정적인 편견, 노동의 질(質)의 격차 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김노 작가의 작품들의 형식을 보면, 논픽션과 픽션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이미 있었거나 지금 있는 현실사회 속의 조선족 삶의 이야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없거나 있을 법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측면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 점은 작가의 개인적인 직간접의 경험이 작품의 소재와 제재가 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개의 작품들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흥미 내지는 재미를 크게 유발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밑바닥 생활에 숨겨진 이야기를 겉으로 드러내어 고발(告發)하는 그것으로써 인간 부조리와 사회 불합리를 간접 비판하고, 그 곳에서 짓눌려 신음하는 약자들의 삶을 그려내어 조용하게 폭로(暴露)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들과 대척관계에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하며, 특히, 인간 삶의 조건이나 양태, 다시 말해, 인간존재 양식에 대하여 새삼 심각하게 생각게 한다. 이런 면에서 작품 '꼭두각시'는 단연 으뜸이다. 

이러한 관계로, 김노 작가의 작품들은 사건의 발달, 전개, 절정, 결말 등의 어떤 긴장구조 속에서 이야기가 직조(織造)되기보다는 한 가지의 유사한 이야기가 끝없이 전개되는 가운데 진행형으로 끝이 나는 형식 곧 단선구조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 끝이 공소하거나 시니컬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 공소함과 냉소적인 느낌은 오히려 완강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결과로서 리얼리즘 문학이 갖는 한 단면을 엿보게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저 목소리를 크게 내지름으로써 독자의 눈과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보다는 현실의 특정 부위 상황을 확대하여 보여줌으로써 문제를 환기시켜 동시대인들의 진지한 반성과 고민을 이끌어내는 쪽에 서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이야기만을 되풀이할 것인가? 마땅히 실현되어야 한다고 믿는 작가의 이상세계는 작품 속에서 가공되어지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하고, 또한 그것으로써 작가의 메시지가 세상 밖으로 전해져야 한다.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 말이다. 어차피,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恥部)를 들여다보는 일을 몹시 싫어할 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반성하기를 싫어하는, 배부른 기득권자들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을 잘 쓰려면, 엄살을 부리듯 과장하라. 그리고 단순한 사실에 상상력이란 무기를 가지고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그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라. 그리고 부각시켜라. 그리고 숨길 것은 철저히 숨길 줄도 알아라. 그리고 인간세상을 손금 보듯이 내려다보라. 특히, 인간의 치부(恥部)와 모순(矛盾)과 사실에 입각한 진실(眞實)을 공략하라. 이것이 내가 소설을 읽으며 터득한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무식한 자들은 입심 좋은 작가들을 대단하다고 호들갑을 떨며 말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어설픈 시인만 못하다. 시인은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없는 이야기를 있었거나 있는 것처럼 만들어 내는 소설가들의 능력을 결코 폄하(貶下)하고 싶지는 않다. 

한 마디로 말해, 김노 작가는 소설을 더디게 썼으나 시인의 마음으로 썼다고 본다. 이제 환갑을 맞이하는 그녀의 잔칫상을 받아들고 나는 우울했고 또 울었다. 아니,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잠재우는 그녀만의 인내와 눈물을 보았다, 그녀의 문장 이면에 숨겨졌거나 생략된 의미들을 통해서…. 

○ 김노 작가 약력 

작가 김노(金奴)는, 1956년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나 우리의 고등학교 교육 정도를 마치고(1974년), 4년 후에 결혼했으나(1978) 8년 만에 남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비운을 맞는다(1986년). 그로부터 3년 후인 1989년에 부모님의 고향이 있는 고국, 한국으로 들어와 살면서 1992년 한국 남자와 재혼하여 21년을 함께 살았으나 더 이상 노예가 되지 못하고 이혼하여 비로소 자유인이 되었다(2013). 

김노 작가의 글쓰기는 불비한 조건 속에서 1990년도부터 수필 수기 중단편 등을 창작하기 시작하여, 수필 '낯선 고향길'로 제1회 동부문학상을 수상하고(1995), '나의 서울생활'로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부문 우수작을 냈으며(1995), '어머니의 작은 소망 하나'로 ‘행복의 샘’ 창간 6주년 기념 나의 어머니 수기 공모 당선작을 냈다(1998). 그 후 단편 '한심한 세상'으로 중국 장춘에 있는 조선족문예지 ‘장백산’에서 ‘모드모아문학상’을 받았으며(2000), 동시에 '길림댁은 등나무처럼 살고 싶다'로 동아일보 신동아 논픽션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5년 12월 현재까지 중단편, 수필, 수기 등을 모두 합쳐 40여 편을 창작했으나 이 가운데 9편만을 골라 꿈에 그리던 서울에서 첫 창작집을 펴내게 되었다.

이시환 시인·문학평론가  
글로벌이코노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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