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지금으로부터 64년전 내가 중등학교 1학년 때 즉 1953년 7월말 어느 날 이었다.
그해 여름방학에 연변주 교육국에서는 처음으로 전 주 중학생 하령영(夏令營·하기훈련캠프)을 조직하였는데 18일간 하령영에서는 정치사상교육과 도덕예절교양을 진행하는 한편 문학, 음악, 무용, 체육 등 문체활동을 다양하게 조직하였다.
김학철 선생님의 문학 강의는 7월 23일에 있었는데 그날은 햇볕이 몹시 뜨거운 명랑한 날씨여서 우리를 즐겁게 했다.
오침시간이 끝나는 벨소리가 울리자 문학 서클의 40여명 학생들은 연변사범학교운동장 그늘 좋은 어느 한 모퉁이에 모여앉아 김학철 선생님을 기다렸는데 오후 2시 정각, 목발을 두 겨드랑이에 끼신 척각(隻脚)의 선생님께서 우리 앞에 나타나셨다.
훤칠한 키에 예지가 반짝이는 두 눈을 가진 선생님의 온몸에는 젊음의 활기와 지성의 슬기가 충만 되어 있었다.
비록 양쪽 겨드랑이에 목발을 짚으셨지만 선생님께서는 아주 날렵하게 몸을 써서 준비해놓은 걸상에 앉아 강의를 시작하셨다.
강의고가 없이 약 한 시간 진행된 강의 중 장내에서는 때로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장내가 물 뿌린 듯 조용하기도 하였으며 이따금씩 박수갈채도 터져 나왔다.
선생님의 강의는 그렇듯 유머적 이었고 의미심장하였으며 인상적 이었다.
지금은 세절은 기억할 수 없지만 그 내용을 세 가지 내용으로 개괄할 수 있다.
우선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문학을 하려면 우리의 민족 언어를 잘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문학공부는 우선 언어공부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학생시절부터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준 훌륭한 말과 글을 잘 배워둬야 한다고 간곡히 부탁하셨다.
그러시면서 선생님께서는 “조선 사람들(그때까지는 ‘조선족’이라는 말이 유행 되지 않았음), 특히 조선 사람들 중 간부들 속에서 우리의 언어와 문자를 어지럽히는 현상이 엄중하게 존재하는데 연길에 와서 처음에 ‘반공실’이라는 말을 접하여 ‘처음에는 미국놈들의 비행기가 가끔 날아오기에 지하에 만들어놓은 방공굴을 가리키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고 이른바 ‘반공실’이란것은 ‘판공실(辦公室)’을 가리키는 말이더구만요. 참으로 어이없어 허구픈 웃음을 지을 수밖에. 특히 ‘반공’은 발음상에서 ‘反共’과 통하기에 더구나 기분이 나빴습니다. ‘사무실’이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 어째서 한어에 맞추는 단어를 만들어내는지 모를 일입니다.”라고 하셨다.
다음으로는 “문학을 공부하려는 뜻을 세운 학생들은 개미처럼 근면해야 한다. 베짱이처럼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문학을 공부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17세기 프랑스의 저명한 우화시인 라퐁테뉴(Lafontaine 1621~1695)의 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들려주셨다.
뜨거운 여름 볕 아래서도 개미는 쉬지 않고 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일하며 식량을 모았지만 베짱이는 나무 그늘 밑에 누워 부채질을 하고 흥타령을 부르면서 개미를 비웃었다.
그러나 정작 겨울이 오니 개미는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나날을 보냈지만 여름 내내 놀기만 한 베짱이는 식량이 없어 굶어죽어야 할 처지에 빠지게 된다.
할 수 없이 베짱이는 개미를 찾아가 식량을 빌지만 개미의 쌀쌀한 거절을 당하게 되어 베짱이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문학을 공부하려면 중국의 위대한 문학가 로신(노신) 선생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특히 로신의 그 저명한 시구 ‘매서운 눈초리로 천부의 손가락질에 대하고 머리 수그려 유자의 소가 되련다. (橫眉冷對千夫指, 俯首甘爲孺子牛)’를 인용하시면서 이 두 줄 시에 내포된 심각한 뜻에 대하여 자상하게 풀이해주셨다.
그때 내 나이 열네 살 이었으니 어찌 강의내용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었으랴만 어린 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겨 주셨다.
하령영 생활이 끝나고 여름방학도 끝나 새 학기가 돌아오자 나는 김학철 선생님께서 들은 강의내용을 조선어문과 선생님께 흥미진진하게 회보하고 그것을 원고로 써서 학교 벽보란에 붙이기도 하였다.
그때로부터 64년이란 세월이 흘러갔고 김학철 선생님이 우리의 곁을 영영 떠나신지도 15년이 되어가지만 선생님에게서 들은 첫 문학 강의는 이따금씩 나로 하여금 깊은 사색을 자아내게 한다. (필자주: 철자와 띄어쓰기를 중국조선어 규범에 따랐습니다.) <매주 월·수·금 게재>
최삼룡 <문학평론가·중국길림성 연길시>
동양일보 201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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