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동요 “반달”과 작곡가 윤극영 그리고 룡정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4월1일 08시58분    조회:146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한을 담은 동요《반달》은 항일가요의 하나로 오늘날까지 널리 불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 동요의 작곡가 윤극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한국의 《음악대사전》,《중국조선족아동문학》등 문헌들을 참조하면서 우리 민족 음악교육과 아동문학의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한 저명한 작곡가 윤극영에 대한 일화를 수집해 보았다.

이야기에 앞서 그가 작사, 작곡한 노래 “반달”의 가사를 적어본다.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그루 토끼 한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추이는건

새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윤극영작곡가는 1903년 9월 6일 경성(서울)종로구 소격동에서 아버지 윤정구(尹政求)와 어머니 청송 심씨(青松沈氏)사이에 1남 3녀중 막내아들로 태여났다. 1917년 서울교동보통학교를 졸업한 2년 후인 1919년의 《3.1》반일운동이 서울에서 일어나자 반일시위에 참가하였다. 1920년 윤극영은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가 갑자기 중퇴하고 음악공부를 하기 위하여 동료들과 함께 부산에서 일본으로 가는 련락선에 몸을 실었다.

일본에 건너간 윤극영은 일본 도꾜음악학교에서 성악과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한편 1923년부터는 방정환, 정순철 등 동료들과 함께 도꾜에서 어린이 문화재단 《색동회》를 조직하고 동요를 작곡하면서 어린이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말 가사로 된 노래는 찬송가뿐이였고 나머지는 정부노래였다.

"색동회"회원들과 윤극영(뒤줄 오른쪽 두번째)

윤극영은 조선 최초의 노래단체인 《다리아회》를 조직하고 지도해갔다. 1924년 윤극영은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민족적 비운을 그린 동요 《반달》을 창작하였다. 1924년에 동요《반달》은 조선 최초의 아동가요로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민족의 애환을 달래주었으며 조선반도는 물론 중국에 있는 조선인들에게도 재빨리 보급되여 나이 구별이 없이 아동이거나 성인이거나를 물론하고 모든이들이 널리 애창하는 동요로, 류행가로 되였다. 

세계명곡 200수에까지 기록된 동요 《반달》이 창작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윤극영의 어린 시절에 극영이보다 나이가 10년 이상 되는 누님 한분이 경기도 가평군으로 시집갔다. 째진 생활난으로 하여 누님은 10년이 퍽 넘도록 한번도 집에 오지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병으로 세상떴다. 그때 누님의 나이는 30세밖에 안되였다.

윤극영은 그토록 보고싶던 누님의 죽음으로 하여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너무도 울어 퉁퉁 부은 두눈으로 멍하니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윤극영은 은하수같은 엷은 구름너머에 반달이 걸려있고 그 멀리로 새별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때 윤극영의 머리에는 《반달》 악상이 떠올랐다. 윤극영은 즉시 가사를 써내고 곡까지 지어냈다. 그는 21세 어린나이에 천재적 음악재질로 최초의 가요를 세계명곡으로 탄생시킨것이다.

연변대학의 우상렬교수는 《이(반달) 동요는 전통적인 7.5조 가사에 달에 깃든 전설을 곁들여 천진란만한 상상속에서 일종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기도 하였다.》고 평하고있다.

한국의 《아동문학사전》에는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우리 민족의 망국의 설음과 타향살이의 슬픔을 그린 이 동요는 그 시대가 안겨준 음률이였다.》고 적혀있다.

1924년에 처음으로 동요 《반달》을 조선 최초의 아동가요로 탄생시킨 후 윤극영은 《설날》,《고기잡이》,《고드름》,《따오기》등을 작곡하였다. 그는 1926년 조선 최초의 동요곡집 《반달》을 출간함과 동시에 같은 제목의 음반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1926년 1월, 윤극영은 일본의 간섭과 집탈이 심해지자 간도(지금의 연변) 룡정에 건너와 동흥중학, 광명중학, 고등녀자학교 등에서 음악교원으로 있으면서 약 10년간 음악을 가르쳤다. 1936년, 윤극영은 다시 서울로 돌아가 음악활동을 하다가 1937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음악공부를 하면서 극장가수로 취직하기도 하였다.

그때 일본에 있던 윤극영은 룡정에 있는 안해 오인경을 그리면서 《두만강의 노래》를 지었다. 노래가 나오자 절찬을 받았다. 일본에서 지명도가 가장 높은 《요미우리》신문에서 《한국예술인의 도꾜진출》이라는 제목으로 윤극영과 우리 민족 무용계 거목인 최승희(崔承喜)에 대한 특집을 싣기도 하였다.

1940년에 다시 중국에 온 윤극영은 북간도(지금의 흑룡강성) 할빈에 할빈예술단을 설립하고 만주(지금의 동북3성) 지역과 서울 등지에서 공연활동을 벌리려고 하였으나 일제놈들의 잔혹한 탄압으로 결국 해산되고말았다. 더는 예술단을 경영할수 없게 된 윤극영은 다시 룡정에 돌아와 아동가요를 창작하고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광복을 맞이했다.

《하늘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풍운이 있고 사람의 인생은 조석으로 뒤바뀐다.》고 일본이 관여하는 협화조직에 가입한것이 죄가 되여 1946년 겨울에 그는 경비대에 체포, 룡정에서 비판 투쟁을 받고 사형판결까지 받게 된다.

이 대목 이야기는 연변주당위에서 촬영사로 활약하셨던 황범송선생이 2005년 여름 한국에 갔을 때 저명한 작사자이며 작곡가인 가수 반야월(원명 박창오, “번지 없는 주막”, “울고 넘는 박달재”, “유정천리” 등 5000여수의 곡을 창작) 선생에게서 들은후 옮겨놓게 된 것이다. 황선생은 반야월선생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고 그의 집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첫 이야기로 윤극영에 대해 문의하였다.

반야월선생은 《윤선생이 간도에 오래동안 계셨으니 모두 알고있나봐요. 세상뜬지 10년이 많이 넘었습니다.》라고 하면서 광복후 룡정에서 있은 사형집행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친일파로 당장 사형에 처하게 된 윤극영은 마지막 유언을 이렇게 남겼다.“나는 생활난으로 일제를 위한 노래도 많이 지었고 상도 많이 타다보니 죽을 죄를 졌습니다. 그러니 무슨 할말이 있겠소만은 지금 와 보면 공산당을 위해서도 공로를 세웠습니다. 한가지 남기고 싶은 말이라면 내가 죽은 후에도 내가 작곡한 동요들을 계속 불러준다면 너무나 감사하겠습니다.”

한 사형집행자가 “당신은 공산당을 위해 무슨 좋은 일을 했는가?”라고 묻자  윤극영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동북인민의 해방의 봄이 왔네’ 이 노래도 내가 지은것입니다.”

당시 룡정현 현장으로 지내던 문정일선생은 사형장에서 사형수들의 명단을 하나하나 검토하던중 윤극영이 노래《반달》과 “동북인민의 해방의 봄이 왔네”의 작곡가임을 확인하고 사형결정을 당장에서 취소하였다.

《죽이지 마시오. 그의 음악재질이 아깝지 않습니까? 이러한 인재들은 사상을 개조해서 유용하게 써야 합니다.》

문정일현장의 그 한마디에 윤극영은 사형선고를 피면할 수 있게 되였다. 윤극영은 3년 도형을 받고 연길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얼마후 보석으로 풀려나왔다. 그 후 윤극영작곡가는 한국에 살면서 자기의 생명의 은인 문정일선생을 늘 외웠다고 한다.

1950년대 북경에서 김정평과 김철남 부자간이 《반달》을 중국어로 번역 편곡하여 음반(音盘)을 내기도 하였고 1979년에 《반달》은 《하얀쪽배》(小白船)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한문)통용 음악교과서에까지 수록되였다.

아동가요 선구자중의 한 사람인 불멸의 작곡가 윤극영은 1988년 11월 15일에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 윤극영선생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작곡한 노래는 우리 민족 어린이들과 어른들 할 것 없이 영원히 즐겨 부르는 명곡으로 울려퍼질것이다.

/ 김원범
길림신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72
  • [동아일보] 의혹이후 수사기관에 처음 입장 밝혀… 2015년엔 “내 기억 나도 믿을수 없어” 일본 탐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으로 고발된 소설가 신경숙 씨(사진)가 검찰이 조사한 e메일 답변에서 “표절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24일 확인...
  • 2016-03-25
  • [한겨레] ‘윤동주 친우’ 문동환 목사, ‘동주’ 각본가 만나 그를 추억하다 ‘명동촌과 윤동주’를 기억하는 마지막 증인 문동환 목사(사진 오른쪽)와 영화 를 각본·제작한 신연식(왼쪽) 감독이 23일 낮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문 목사 자택에서 를 관람한 뒤 대담을 하고 있다. 김명...
  • 2016-03-25
  • ‘영원한 청춘’을 체현하고 있는 문학지상주의자 [삶, 예술, 자연… | 소설가 박범신] “산은,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본성을 회복시켜 주는 곳” 박범신은 소설 에 대해 설명하다가 “내가 연애 소설, 사랑 얘기에 소질이 있나보다. 사랑은 갈망이고, 갈망이 있어야 문학이 가능하다. ...
  • 2016-03-23
  •   ▲ 전시 작품 앞에서 환하게 미소 짓는 이상규 시인 이상규 시인의 ‘제2회 한·중문화예술교류전’  중국 측 67점·한국 측 56점 한데 모아 15~20일 한전아트센터서 개최 [독서신문 이정윤 기자]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슴 깊게 묻혀 미소짓고 때론 눈물짓는 그대, 오직 그대...
  • 2016-03-16
  • ▲ 영화 포스터 의 송몽규 캐릭터 포스터. 오늘(3월 7일)은 송몽규의 기일이다. ⓒ 메가박스㈜플러스엠   [기획] 71년 전 오늘, '청년문사' 송몽규가 떠났다 영화 개봉 전날이었던 2월 16일은 윤동주 사망 71주년 되는 날이었다. 또 다른 주인공 송몽규의 기일은 오늘(3월 7일)이다. 오늘로서 사망 71주...
  • 2016-03-08
  •  "문학상 히트시켜 돈 벌었냐고요?… 순수 문예지 30년간 발행했지요 40회 맞은 '李箱문학상' 주관, 임홍빈 문학사상사 대표 문인 동경해 문학사상사 인수 절친 이어령 前장관이 다져놓은 비옥한 땅에 나는 나무만 심은 셈… 작품집마다 베스트셀러 신경숙 뭉개버리면 안 돼 표절 잘못한 것 맞지만...
  • 2016-02-27
  • 경찰이 소설가 공지영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공씨는 지난해 7월 ‘전직 신부가 성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해당 신부에게 고소를 당했다. 소설가 공지영씨 [중앙포토] 서울 서초경찰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부 김모씨가 밀양 송전탑 쉼터를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모...
  • 2016-02-22
  • NYT·가디언 등 호평 이어져…작품성·번역·지원의 3박자가 어우러져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최근 영미권에서 번역 출간된 소설가 한강의 작품들이 대대적인 호평을 받으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가디언 등 해외 주요 언론들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
  • 2016-02-21
  • 삶의 대부분 고향서 보낸 '은둔의 작가'…'파수꾼' 출간 7개월만에 별세 (뉴욕=연합뉴스) 김화영 특파원 = 미국의 '국민소설'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의 작가 하퍼 리가 1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9세. 미국 출판사 하퍼콜린스는 1...
  • 2016-02-20
  • 17일 개봉하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는 시인 윤동주와 그의 사촌 송몽규의 삶을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 청년들의 고뇌를 그렸다. /사진=영화 '동주' 포스터 서거 71주기…'부끄러움'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를 기억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
  • 2016-02-16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부끄러움'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 그는 71년 전 오늘(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9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조선인 유학생을 모아놓고 민족문화를 알리며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감된 뒤 1년 만이었다. 생...
  • 2016-02-16
  • 【서울=뉴시스】영화 '쎄시봉' 중 강하늘(왼쪽), 윤형주 16-02-14        윤형주, 윤동주와 강하늘 그 詩 같은 인연        【서울=뉴시스】신진아 기자 = 가수 윤형주(69)가 영화 ‘쎄시봉’과 ‘동주’로 남다른 인...
  • 2016-02-15
  • 1월 30일 오후, 심양시조선족문학회에서 주최하고 료녕성조선족 경제문화교류협회,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 료녕성조선족기업가협회, 심양시조선족기업인협회에서 후원한 《료동문학》 2015년 문학신인상 및 제4회 호룡꼬마 작가상 시상식이 심양시 서탑 모란관식당에서 있었다.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 박성관회장...
  • 2016-02-06
  • “올해의 시인상” 공모통지 취지: 우리 시단의 더한층 발전과 시창작의 열성을 불러일으키고 시작품의 질적향상을 기하며 시단의 분위기를 한결 돋우어주기 위하여 연변작가협회와 연변인민출판사, 연변장백문화추진회에서는 연변화하상황균업유한회사의 라동도사장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시문학상 “올해의...
  • 2016-01-30
  • | 인터파크도서 북DB 제공 사람을 만날 때면 늘 첫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체로 첫 느낌에서 오는 직감을 믿는 편이기 때문이다. 책의 표지를 넘기며 처음으로 마주했던 소설가 이유의 인상은 뭐랄까, 수줍어 하는 얼굴에서 조금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열 마디 건네면 한두 마디 정도의 대답을 겨우 들을...
  • 2016-01-19
  • 책으로 돌아보는 신영복 선생의 발자취 “언젠가는 여러분 삶의 길목에서 꽃으로 다시 만나기를” 1988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부터 2015년 ‘담론’까지 시대의 반듯한 초상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간다” 믿음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 2016-01-16
  • [한겨레] 단편 ‘천국의 문’으로 대상 수상 “아버지 죽음 통한 생각들 담아” 김경욱씨 올해로 40회를 맞은 이상문학상에 중견 작가 김경욱(45)의 단편 ‘천국의 문’이 선정되었다. 이상문학상 심사위원회(권영민, 김성곤, 김인숙, 김종욱, 윤후명)는 13일 “‘천국의 문&rsquo...
  • 2016-01-11
  • 키워드로 본 출판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걸린 도서정가제 시행 안내문. 동아일보DB 문학, 출판계에 온기가 돈 적이 언제였던가. 올 한 해도 그랬다. 오히려 유명 작가들의 표절과 시행 1년을 맞은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다. 그래도 웹소설과 라이트노벨 같은 새싹이 보이기도 했다. 올해 문학과 출...
  • 2015-12-16
  • 지난 10월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무대인 전라북도 군산을 찾은 번역아카데미 수강생들. 작품의 현장에서 생생한 문학 수업을 받았다. 이들은 고창 등 호남지역을 2박3일 간 둘러봤다. [군산=프리랜서 오종찬]   왼쪽부터 디륵스, 베네디띠스, 장리리.   최근 발표된 올해 대산문학상 번역부문 수상작은 심사위...
  • 2015-12-02
  • 10월 24일 오전, 대나무 우거진 아름다운 항주 서호의 모가부에서 리광인 작 《시인 윤동주 인생려정 연구》(민족출판사 출판) 출간기념식과 세미나가 펼쳐졌다. 이는 연변작가협회 남방창작위원회와 절강한글협회에서 우리 시인 윤동주 타계 70주기를 기념하면서 마련한것이다. 저자 리광인은 절강월수외국어대 한국어과 ...
  • 2015-10-29
‹처음  이전 5 6 7 8 9 10 11 12 13 1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