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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 낸 김경욱
진지함·찌질함 공존하는 소설
우연 부딪힌 인간 모습 그려
"한 인간의 生을 들여다보는 건
우주 들여다보는 일과 같아"
현미경으로 보면 근엄한데 망원경으로 보면 폭소를 자아내는 이형의 세계다. 작가 표현을 빌려 저 폭소를 환언하면 `찌질함`쯤 되시겠다. 허벅지 더듬는 애인 부친에게 반격조차 못했는데 이별을 통보받고, 장난으로 외국인 행세를 하다 공유해선 안 될 비밀을 들으며, 오직 타의로 조선족 아이를 집에 바래다 주고선 정체 불명 액체를 삼키는 상황은 찌질해서 웃기다. 근데 결코 우습진 않다.
소설집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문학동네 펴냄)을 출간한 김경욱 소설가(48)를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뮤지엄에서 만났다. 비 내리는 오후, 가벼운 셔츠 차림인 그가 내일모레면 `쉰`이 된다는 사실은 김경욱 애독자라면 수용하기 힘든 무력한 현실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여전히 `웃기는` 문체로, 아직도 `찌질한` 내용으로, 그러나 `한 방 터뜨리는` 우연과 필연의 글로 다가온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두 키워드는 `일상`과 `날것`이다. 모호한 삶에 우연 한 방울부터 스민다. "일상은 늘 모호하잖아요. 예고도 전조도 없이 사건은 급습하죠. 결코 매뉴얼화할 수 없는 게 우리 삶인데 그걸 자연스레 규율하고 통제하려 할수록 정작 당혹스러워지는 건 우리니까요. 선회하는 운명에 미숙한 사람이 `날것의 우연`과 만나면 이물감을 느껴 무력해져요. 그 무력함을 쓰려 했습니다."
`의뭉스러운` 일례를 들어볼까. 단편 `양들의 역사`가 그렇다. 자신을 일본인으로 착각한 택시 기사에게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참사, 영종대교 추돌, 한국전쟁에서 생존했다는 비밀을 듣는다. 경악하는 그에게 기사는 읊조린다. `누군가는 살려면 다른 누군가는 죽어야 했던 거야. 생존자들이란 어찌 보면 살안자들인 셈이지.` 생의 비밀은 저렇게 `날것`으로 온다.
"일상을 통제하려다 점차 온전한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잖아요. 다시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무거운 비밀을 쏟아내는데, 그건 대나무숲에 자기 자신을 털어놓는 거죠. 일상을 살면서도 몰랐던 삶의 진실을, 그 모호함에 부딪힌 자신의 진면목을 불편하게 응시하는 사람들의 얘기랄까요. 일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건 참 환상 같아요. 통제하려고 욕망하지만 실은 인간의 예측은 불가능하죠."
잘 보면, 김경욱표 소설엔 어리숙한 남자가 있다. 2005년작 단편 `낭만적 서사와 그 적들`이 대표적이다. 애인과 만나 이별에 이르는 이야기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 기저에 깔린 이 단편에서 20대 남성은 자기 감정을 정확히 바라본다. "아마도 당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투영돼 있겠죠. 20대의 `찌질함`에서 자유롭진 못한 것 같아요. 왜냐고요? 제가 그때 진짜 찌질했거든요(웃음)."
그렇다고 모든 소설의 질량이 가볍다고 봐선 곤란하다. 책의 말미에 수록된 이상문학상 수상작 `천국의 문`은 `죽음의 유예`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요양병원의 아버지와 그를 혐오하는 딸을 통해서다. "존엄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죠. 모두가 잘 죽기 위해 공동체가 지불해야 할 감정적 혹은 경제적 비용을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 대신에 모두 잘 죽기 위한…."
3년 전 인터뷰에서도 그는 말했다. "우리 `안`의 문제는 짐작보다 더 많은 `바깥`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 소설은 당대 공동체를 향한 질문이란 의미로 읽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일까. "사람은 결국 사회적 존재로 살아야 하잖아요. 나 자신의 문제와 타자의 문제는 구분이 안 되죠. 우린 우리 생각보다 더 사소한 문제까지 연결돼 있으니 결국 모든 이가 스스로 이 사회의 어떤 반영(反映)이죠."
학부 3학년 때 "별 계획 없이" 소설가로 등단한 그는 26년간 소설만 썼다. `소설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이제 답을 찾았을까. "소설은 바늘로 우주를 들여다보는 작업 같아요. 바늘 속에 우주가 들어와 있어요. 한 사람을 본다는 건 우주를 들여다보는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소설을 쓴다는 건 저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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