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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109]현대와 전통의 결합에서 길 찾다(김학송편6)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2월25일 08시30분    조회: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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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109](김학송편6)

아래에 저의 창작경위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도문시 곡수라는 곳에서 태여났습니다. 아버지는 소학교 교원이였고 어머니는 농민이였습니다. 어린 시절 쭉 시골에서 살아왔고 1968년도에 중학을 졸업하고 고향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7년간 농사일에 종사하면서 당시의 사회환경, 주변환경의 영향으로 문학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사실 처녀작을 발표하기 전까지도 문학경력은 물론이고 문학을 하기 위한 준비조차 제로상태였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1975년도에 빈하중농의 추천을 받아서 장춘야금학교에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질학과에 흥미가 없었어요. 그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가? 청춘기에 많이 곤혹스러웠습니다.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훈춘광산에 배치 받아 약 일년간 근무하다가 도문시 상업계통에도 몸을 담갔지만 차례지는 일마다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여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럭저럭 세월만 축내고 있었지만 심적고충과 갈등이 대단했지요.

제가 도문 석유공사에 있을 때 일입니다. 하루는 친구와 같이 업무를 보러 도문시 신농공사에 갔습니다. 시골에 가서 조사를 하고 돌아와서 함께 간 친구와 단둘이 술을 몇잔 나누게 되였어요. 그 때는 술을 마실 줄을 몰랐는데 배갈을 둬잔 마시고나니 알딸딸해났어요. 붕- 뜬 것 같은 기분 속에서 평소에 늘 생각하던 삶에 대한 곤혹, 내가 이렇게 살아도 좋은가 하는 의문이 극대화되더라구요. 그러면서 그 순간에 나도 살아 있다고 소리치고 싶더라구요. 그리하여 노트에다 <시골에서>라고 제목을 쓰고 시골에 갔다 온 경험을, 그 때의 생각을 그대로 쫙 썼습니다.

 

청년시절의 김학송.

이튿날 친구한테 보여 주니까 문화대혁명 전에 고중을 졸업한 그 친구가 “당신이 이걸 참 잘 썼소. 어디에다 투고를 하오.”라고 말하는 것이였어요.

“투고?” 투고라는 개념도 모르는 나는 어디에다 어떻게 투고를 하느냐고 물었어요. 길 건너 진정부 당직실에 가면 《연변문예》라는 잡지가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그래서 가보니 정말《연변문예》가 있었어요. 당직실 경비를 서는 분이 성격이 자상하여 저를 도와 봉투에 주소를 적어 주고 8전짜리 우표까지 붙여주었어요. 그리하여 어설픈 를 들고 석현우체국의 길옆에 있는 파란 우체통앞에 마주섰어요. 정작 우체통안에 넣으려고 하니 손이 떨렸어요. 넣을가 말가 하고 한창 고민하다가 “어차피 편집들은 나를 모른다.”고 생각하고 툭 떨궈 넣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누가 도왔는지 모르겠지만 《연변문예》(《연변문학》의 전신)에 제가 쓴 글이 실려 저는 몹시 흥분했고 너무 기뻐서 문학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멋대로 시를 막 썼습니다. 운 좋게 저의 시들이 륙속 《연변문예》에 실렸습니다.

1984년도에 추천받아 연변대학 작가반에 가게 되고 4년 본과공부를 마치고 졸업 후 도문시창작실에 몇해 있으면서 시를 부지런히 썼고 가사도 많이 썼습니다.

저의 문학생애에서 전환점이 왔습니다. 어느날 연변작가협회에 배치받은 동창생 한분이 도문에 놀러왔어요. 그분은 저더러 연길에 오면 한국책을 갖다 보라는 것이였어요. 나는 그 때까지 한국책 한권조차 만져 본 적 없었어요. 그래서 하루는 연길에 갔던 걸음에 그 동창분 숙소에서 구석에 차고 넘치는 한국책 가운데서 딱 한권만 뽑아 갖고 돌아왔어요. 집에 가 딱 펼쳐보는 찰나에 책이 너무 좋더라구요. 열심히 두세번 읽어보고 뒤면에 있는 주소로 독후감을 써서 서울에 보냈어요. 그것이 인연이 되여 한국 작가와의 편지래왕이 시작되였지요. 그분이 바로 한국에서 너무나 유명한 리해인시인이였어요.

리해인시인과 함께.

그분은 이름없는 저한테 회답도 보내주고 시집도 보내주고 했어요. 반년 동안 편지거래를 하면서 그분한테서 받기만 하는 것이 미안하여 저의 창작노트에 썼던 시를 모아 육필시집을 만들어 보냈어요. 《김학송시집》이라 해놓고 미래의 언제가는 출판할 것이라는 뜻에서 그랬는지는 모르나 미래출판사라고 쓰고 제목은 《님을 찾는 비소리》라고 했어요. 지금 봐도 제목 하나는 괜찮은 것 같아요.

리해인시인은 내가 보낸 창작노트를 숙소에 가지고 가 있다가 부산대학에 특강을 온 한국의 근대시단을 대표하는 구상시인에게 보였다고 했어요. 구상시인은 큰 어르신인데 그 어설픈 시를 바쁜 와중에 다 보고 “허허 내용이 참 좋은데…”라고 하더라는 것이였어요. 그리고 서울에 갖고 가서 미래출판사에서 출판하도록 소개를 해줬어요.

그분은 한국시인협회를 대표하는 분이라 이듬해 한국세계시인대회에 저를 초청했어요. 그러면서 극적인 변화가 막 오더라구요. 그 때 리상각선생님이랑 김철시인이랑 모시고 서울로 간 다음 한국의 많은 우수한 시인들을 만났어요.

구상시인을 모시고.

저는 1년 8개월 그 곳에 머물며 전문 시창작만 하였어요. 적당히 현대수법도 배웠지요. 하지만 저는 애초부터 현대수법 쪽으로 넘어가지 않고 전통시에다 현대수법을 접목하는 데로 나아갔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 시의 전통에다 현대수법을, 우리에게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여 나다운 시를 만들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지요. 운 좋게 1년 8개월 사이에 10여권의 시집을 련속 출판하고 귀국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드팀없이 사실주의수법에 바탕을 두고 적당한 상징, 은유, 이미지화를 접목하여 우리 연변식의 전통시, 례컨대 김철, 리상각, 김성휘, 조룡남, 설인선생님들이 개척한 연변식의 시풍을 보완해가지고 저의 체질에 맞게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게 가꾸겠는가를 많이 연구합니다.

저의 시학관은 “우선 진실해야 한다. 다음 표현이 재미있고 여운이 있어야 한다. 시행은 될수록 짧으면 좋다. 시는 한마디로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같은 관념을 가지고 꾸준히 시를 썼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가꾸는 일이라는 것, 시인은 마음의 순수를 지켜야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저는 실천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거의 30권의 시집을 출판했고 전국소수민족준마상과 단군문학상이라는 영예도 저한테 차례졌습니다.

서울 아시아 시인대회에 참가한 김학송(오른쪽 첫사람).

최근에는 연변사랑의 주제로 된 시를 많이 씁니다. 2017년에는 《내사랑 연변》이라는 시화집을 냈습니다. 저의 시 180수에다 (연변)촬영가협회 주석이 사진을 배합하여 번역까지 하여 자치주의 이름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주제가 몽땅 민족사랑, 연변사랑입니다. 거기에는 우리 민족의 력사, 문화, 향토, 관광지, 민속이 다 들어갔어요. 그리하여 어느 평론가는 “민족얼의 교향곡”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저는 이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저도 우리 민족을 위하여, 우리 서정시를 위하여 일 같은 일을 좀 했구나 하고 위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여 저는 지금도 이런 시를 쓰고 있습니다.

오라지 않아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70돐이 됩니다. 이번에는 사랑스런 연변이라는 한가지 주제로 자치주의 70년의 력사, 우리 문화의 우월성, 우리 민족의 정체성, 우리 민족 풍속을 포함하여 150여 수의 시를 썼는데 이미 번역에 교부하였습니다.

저는 마침 연변조선족자치주와 동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상 연변의 력사이자 내가 살아온 력사였고 연변의 아픔이자 나의 아픔이였고 연변의 수난사이자 나의 수난사였고 연변의 미래이자 나의 미래이기에 연변과 나는 한몸이 되고 우리 조선족과 나는 한몸이라는 시각에서 시창작에 임하고 있습니다.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리하여 어느 독자는 “선생님의 시는 조선족들 가운데 랑송이 제일 많이 됩니다. 이는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토록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에 대한 시를 가슴으로, 피로 쓰기 때문에 조선족독자들이 제일 좋아하고 랑송가들이 제일 애송합니다. 때문에 제1차, 2차, 3차 조선족랑송대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랑송했고 우수상, 대상이 모두 김학송의 시에서 나왔지 않습니까.” 이런 내용이 담긴 팬레터를 보내왔어요.

그러나 저의 시는 아직 시작이고 모자라는 것이 많습니다. 다만 소실되여 가고 있는 우리 문화, 우리 서정의 뜰을 우리가 가꾸지 않고 누가 가꾸겠는가 하는 생각이 저를 떠밀어 줄 뿐입니다. 우리 서정시에는 우리만의 얼이 담겨있습니다. 그냥 시가 아닙니다. 우리 서정시는 사실 문학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그냥 문학이라고 보면 안돼요.

그건 나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나를 지키고 우리 글을 지키고 내 령혼을 지키는 작업이예요. 이런 아름다운 본보기를 후손만대에 넘겨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정서적인 기록자입니다. 그 시대 발자취를 시인들은 기록합니다. 제가 가장 경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무병신음하고 난해하게 쓰고 독자들이 리해할 수 없게 쓴 시들입니다. 이 시대에 왜 시가 필요합니까?! 공감대가 극대화되여야 합니다. 누군가 많이 호응해 주고 많은 사람을 위해 시가 리용되여야 합니다. 시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되여야 하고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독자를 위해 복무해야 됩니다. 이런 공능도 같이 지녀야 합니다. 물론 예술성도 있어야 되겠지요.

산악회 멤버들과 함께.

저의 시가운데서 독자들이 비교적 좋아하는 짧은 시 한수로는 1993년도에 쓴 〈사람이 그립다〉는 시인데 이 시는 대학입시에도 출제되였다고 하더군요.

사람의 숲에서 사람이 그립다

도시가 무너지게 밀려드는 사람… 사람…

사람의 숲에서 사람이 그립다

아주 짧은 시입니다. 시장경제의 도래와 함께 인간성이 점점 상실되여 가고 도시가 팽창하는 가운데 문화가 약화되고 우리 언어가 소실되고 우리 가장 귀중한 부분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소박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정은 사라져가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도시라는 사람의 숲에서 외로움을 느낍니다. 존재의 고독을 느끼고 고립감을 느낍니다. 하기에 〈사람이 그립다〉는 이 시는 한 시대의 생활상에 대한 역설적인 풍속도입니다. 그래서 짧은 몇줄의 시행에다 개혁개방 후 특히 시장경제가 대두한 후에 도시화되면서 나타난 인정의 빈곤, 문화의 빈곤에서 느끼는 단절감, 소외감, 현대인의 곤혹과 정신적 빈곤을 다룬 것입니다.

그밖에도 저는 〈나는 조선민족이다〉는 시를 썼습니다. 이 시는 제가 1983년도에 썼습니다. 그 해에 《도라지》잡지에 실렸고 문창남시인이 내줬는데 도라지문학상까지 탔어요. 발표된 후 영향력이 컸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도 소개되였고 1990년도 세계제1회한민족대회에서 랑송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알려지면서 독일, 일본, 카나다, 미국, 한국, 조선 등 여러 나라에 소개되였지요. 저는 그런 줄도 몰랐어요. 그 시가 그렇게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진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러다가 한 때는 잠잠하던 이 시가 몇해전부터 다시 부활하였습니다. 어떻게 부활했는가 하면 길림시에 있는 권영철이라는 조선족랑송가가 이 시를 어떻게 찾아가지고 랑송계정에 올렸습니다. 불과 1년이 안 되여 1만 7000차 방문수가 오르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이였어요. 댓글이 비발치고 하면서 란리가 난 것이였어요. 조선족모임에서 이 시가 랑송되였을 때 서로 부둥켜 안고 울기까지 했대요. 그러니 이 시가 30여년 만에 어느 랑송가가 랑송하면서 부활한 것이였어요.

사랑하는 안해와 딸과 함께 새봄을 맞으며.

권영철씨가 랑송한 다음 연변랑송가협회에서 너도나도 랑송하였어요. 송미자 회장이 랑송한 뒤로 또 방문자수가 1만 2000차 오르면서 방문자가 3만차를 훨씬 넘겼고 계속 인기가 올라가고 있어요. 올해는 랑송가 박인석이 조선족시랑송대회에서 이 시를 랑송하여 대상을 거머쥐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도 때가 되면 부활한다는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였어요. 시도 생명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제가 그 시를 다시 살펴 보니 직설적인 수법으로 썼고 사실 예술수준이 높은 것은 아닙니다. 이미지화도 잘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시의 우점은 진실성입니다. 솔직담백하게 조선민족의 자부심을 아주 솔직하게 썼어요. 진실이 묻어나는 겁니다. 중국의 유명한 시평가 리경택은 어느 평론에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문학의 중심가치는 진실이다.”고 하였습니다. 이건 큰 종소리처럼 우리한테 계발을 줍니다.

〈나는 조선민족이다〉에서 내 마음을 진실하게 표출하였습니다. 그러니까 4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 그 어디를 가나오나

나는 정녕 자랑하고 싶노라

내가 배운 가장 무거운 말로

나는 조선민족이다

… …

조선민족 마음과 마음을 혈맥처럼 이어주는

그 친절한 부름 속에서

넘어지면 달려가 부축하고 싶고

앓으면 약이 되고 싶고

슬프면 꽃다발로 안기고픈

그 마음 그 정성

샘물처럼 말갛고

박꽃처럼 깨끗하고

진달래처럼 붉어라

이런 식으로 풀어나갑니다. 그리고 아래에 가서는 중화의 대가정 속에 살아가는 조선민족만의 긍지, 조선민족만의 특수성, 우리 민족이 버리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 그 모든 것을 담았기에 한국의 연세대 도서관 큰 잡지표지에도 실렸더군요.

마지막 부분을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가령 내가 이 세상 막끝 이름없는 계곡에서

한오리 연기로 사라진다 하더라도

나는 정녕 잊지를 않으리라

내가 이 세상에서 조선민족으로 살았다는 것을

지금도 광주나 북경에서 큰 대회가 있을 때면 조선족들이 이 시를 랑송한대요. 그런 소문을 제가 많이 듣고 있어요. 시 한수의 선동력, 호소력이 저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어요.

그밖에도 2010년에 쓴 〈혼의 노래〉라는 시가 있습니다. 해란강문학상을 수상한 시인데 그 시가 발표되면서 계정에 올랐고 연변랑송가협회 제1차, 제2차 랑송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랑송가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로 되였어요. 이 시는 고급중학교 열독참고서에도 등재되였습니다.

〈혼의 노래〉의 주제는 우리 조선족의 발자취를 쓴 것입니다. 연변의 과거, 현재, 미래를 쓴 장시로서 호흡이 꽤나 긴 시입니다. 새 천년에 들어서면서 조선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의 하나로 되였고 지금도 랑송가들이 애송하고 적지 않은 시평가들이 조선족 서정시에서의 대표적 시라고 저를 치켜세웁니다.

이럴 때 제가 시를 쓰는 가치를 느끼고 의미를 느낍니다. 앞으로도 독자들의 수요에 부응하여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 또 저의 마음이 닿는 시들을 계속 꾸준히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길림신문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영상 사진/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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