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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의 요체는 ‘읽고 또 읽고’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4월24일 19시36분    조회: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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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쉽게 글쓰는 것을 가르쳐드립니다’ ‘6주 안에 책 한 권 쓰는 법’ 등의 달콤한 광고를 볼 때마다 소스라친다. 그렇게 쉽고 빠르게 글을 쓴다면 결코 좋은 글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 훈련만 20년 넘게 했지만 아직도 계속 더듬더듬 ‘공부 중’이다.) 이런 무작정 내키는 대로 써보기식 글쓰기 광고는 진정한 교육이 아니라 과도한 마케팅일 뿐이다. 진정으로 좋은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런 허무맹랑한 광고에 현혹되지 말기를.

사실 글쓰기 교육에서 진정으로 강화되어야 할 부분은 ‘문해력’이다. 쓰기 이전에 읽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해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글쓰기 교육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수박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해력
단순한 요약이나 주제파악 넘어
책을 끈기 있게 읽어야 얻어져
시·소설·에세이 사랑 능력 키우자

한국인의 문해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최저수준이라는 소식이 들렸을 때, 망연자실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교육이 바뀌지 않는 한, 이 상태는 바뀌기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학력고사도 수능시험도 온갖 체험학습도 문해력을 증진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문해력을 단기간에 향상시킨다는 온갖 프로그램 또한 또 하나의 허황한 마케팅이다. 문해력이란 단지 주어진 텍스트를 이해하는 능력을 넘어서서 텍스트 바깥, 즉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선데이 칼럼 4/23
쓰기 이전에 읽기가 있다면, 읽기 이전에 ‘타인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텍스트로 전달되지 않는 원초적 사랑의 느낌, 오직 살을 부대끼고 눈길을 교환하는 일상 속에서만 키워지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 있다. 비언어적 소통, 언어를 뛰어넘은 본능적 의사소통의 힘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주의력,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쉽게 생산하고 쉽게 소비해버리는 텍스트의 홍수 속에서 타인의 말과 글에 대한 존중이 사라져가기 때문이 아닐까.

문해력 훈련에 있어 최악의 적은 ‘요약’하기다. 한 문장 한 문장 주의 깊게 읽어야만 얻어지는 문해력을 그저 텍스트를 한 줄로 요약해버리는 기술로 환원할 수는 없다. 아름다운 문장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요약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고 선생님은 주제만 파악하면 된다고 가르치면 어떻게 문해력을 기르겠는가.

문해력 향상의 최고 비결은 ‘그저 책을 오래오래 사랑하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내 힘으로 고르고, 내 힘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며, 감탄하고, 사랑하고, 오래오래 마음속에 간직하기 위해 한 줄이라도 독후감을 남겨두려는 마음. 거기서 사람들이 그토록 꿈꾸는 문해력은 탄생한다. 문해력을 또 하나의 마케팅 대상으로 삼는 한, 진정한 문해력은 키워질 수 없다. 문해력은 성공의 열쇠가 아니라 ‘그냥 삶’의 열쇠다. 문해력이 뛰어난 사람은 삶 속에 숨겨진 온갖 은유와 상징의 풍경들을 이해함으로써 타인의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마저 열어젖힌다.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을 바라보고 존중하고 사랑하기 위한 가장 느리지만 가장 아름다운 길. 그 속에 문해력을 키우는 읽기와 쓰기의 비밀이 들어있다. 문해력은 명확한 수학공식처럼 재단할 수 없으며, 도저히 한 줄로는 비결을 요약할 수 없는, 텍스트에 대한 사랑의 기술이다. 그리하여 문해력을 컴퓨터 프로그램식으로 항목화하려는 모든 노력은 문해력을 또 한 번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그것은 사고팔 수 없는 것이며 오직 읽고 또 읽고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습관을 통해서만 길러진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풍요로운 문해력을 꿈꾸는 독자들이라면, 오늘부터 집에 있지만 끝까지 읽지 않은 책을 하나 골라보자. 오래된 세계문학전집이 좋다. 읽고 싶은 책이 없다면 서점에 나가 소설책이나 시집을 골라 오자. 오늘부터 한 달, 눈 딱 감고 그 책을 매일 들고 다니자. 지하철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휴대폰은 꺼내지 말고 책을 꺼내 읽자. 수첩과 연필을 꼭 들고 다니면서 어디서든 밑줄을 치고 자유롭게 메모를 하자.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 책을 다시 펼쳐 한 챕터씩 나누어 독후감을 써본다. 한 권을 다 읽고 반드시 멋진 감상문을 쓴다는 부담을 없애고 한 챕터씩 소분해서 아름다운 대목, 공감되는 대목에 대한 자유로운 느낌을 써보자. 멋진 대목을 가만히 필사해도 좋다. 한 권의 책을 애지중지하며 매일 읽는 기쁨을 깨닫는 순간, 당신도 모르게 문해력은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눈 또한 훌쩍 자라있을 것이다.

나의 문해력은 어려운 타인의 책을 끝내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잉태되었다. 글쟁이로서 내 최고의 장점은 끈기뿐이다. 책이 쉽고 재미있어서 사랑한 것이 아니다. 내게 중요한 모든 책은 소름 끼치게 어렵지만 눈부시게 아름답기에 사랑했고, 그렇게 어렵게 얻은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문해력은 너무 어렵게 얻은 것이기에 쉽게 사라질 수도 없었다. 문학을 교육하지 않는 한 문해력 향상은 없다. 시와 소설과 에세이를 사랑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문해력을 키우는 가장 빠른 길이다. 아름다운 글 속에는 풍부한 상징과 은유가 깃들어있고 그 아름다움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것은 사려 깊고 풍요로운 지성과 감성의 우주 속으로 진입하는 눈부신 티켓이다. 기적은 늘 디테일 안에 있다. 감동도 늘 디테일 안에 숨어 있다. 꾹 참고 끝까지 읽어야만 끝내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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