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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글씨가 됐다" 이어령의 마지막 손글씨 '눈물 한 방울'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6월29일 13시33분    조회: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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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눈물 한 방울' 출간 기념회에서 육필원고를 공개하는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20220628

6월 28일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눈물 한 방울' 출간 기념회에서 육필원고를 공개하는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20220628

 "40년 만에 처음으로 손 글씨를 쓴다. 컴퓨터 자판으로 써왔는데 이제 늙어서 더 이상 더블클릭도 힘들게 되면서 다시 옛날의 손 글씨로 돌아간다. 처음 글씨를 배우는 초딩 글씨가 될 수밖에 없다."
 올해 2월 세상을 떠난 이어령(1934~2022) 선생이 2년 전 노트에 적은 '아무렇게나 쓰자'라는 제목의 글이다. '초딩 글씨'를 자처한 선생은 제목 옆에 '손글씨를 쓸 때마다 늘 미안하다. 한석봉의 어머니에게'라고도 적었다. 뜻하지 않게 쓰게 된 손 글씨는 하지만 놀라운 경험도 불렀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아련한 기억이 돌아온다. 지렁이 지나간 글씨 하나마다, 추웠던 겨울의 문풍지 소리, 원고지를 구겨서 발기발기 찢어 쓰레기통에 던지던 소리. 찹쌀떡 사려! 문을 열고 나가면 골목의 어둠만 있던 자취생활 방, 글씨 모양, 가지각색의 필적이 슬픈 기억 속에서 콩나물시루처럼 자란다."

고 이어령 전 문화무 장관.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의 모습이다. 이처럼 그는 책상 위에 여러 대의 컴퓨터 모니터를 두고 디지털로 글쓰기를 해왔다. 김상선 기자

고 이어령 전 문화무 장관.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의 모습이다. 이처럼 그는 책상 위에 여러 대의 컴퓨터 모니터를 두고 디지털로 글쓰기를 해왔다. 김상선 기자

 선생이 손글씨로 직접 쓴 생애 마지막 기록이 『눈물 한 방울』(김영사)로 출간됐다. 두툼한 노트 한 권에 2019년 10월부터 별세 한 달 전인 2022년 1월까지 쓴 글 147편 가운데 110편을 골라 실었다. 특유의 번득이는 사유, 멀지 않은 죽음과 그동안의 삶에 대한 성찰과 회한 등이 때로는 에세이처럼, 때로는 시처럼 흐른다. 책에는 몇몇 손 글씨도 그대로 실었다.

단행본 '눈물 한 방울'로 출간된 이어령 선생의 육필원고. 2019년 10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쓴 글이다. [사진 김영사]

단행본 '눈물 한 방울'로 출간된 이어령 선생의 육필원고. 2019년 10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쓴 글이다. [사진 김영사]

 글에 곁들여 직접 그린 그림도 있다. 예컨대 '생각은 언제나 문명의 속도보다 늦게 온다'는 글은 '자동차가 생겨나도 그 힘을 재는 것은 말이다''전등이 생겨나도 그 밝기를 나타내는 단위는 촛불이다' 같은 문장과 함께 색칠까지 한 촛불과 말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6월 28일 중구 정동 산다미아노 북카페에서 열린 고 이어령 전 장관 〈눈물 한 방울〉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 왼쪽부터 아들 이강무 백석대 교수와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고세규 김영사 대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6월 28일 중구 정동 산다미아노 북카페에서 열린 고 이어령 전 장관 〈눈물 한 방울〉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 왼쪽부터 아들 이강무 백석대 교수와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고세규 김영사 대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8일 간담회에서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이어령 선생은 40년 전부터 컴퓨터를 써서 육필원고가 많지 않다"며 "정말 감동한 것은 육필원고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라고 출간 소감을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선생은 글쓰기조차 쉽지 않을 때는 녹음을 하기도 했지만, 성량이 줄어 그조차 힘든 순간도 왔다. 강 관장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내면을 표할 수 있다는 게 축복"이라고 말했다.ADVERTISEMENT

6월 28일 중구 정동 산다미아노 북카페에서 열린 고 이어령 전 장관 〈눈물 한 방울〉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공개된 육필원고. 고인의 손글씨에 직접 그린 그림이 곁들여져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고세규 김영사 대표는 올해 1월초 선생의 연락을 받고 찾아가 노트를 보게 된 일을 돌이키며 "'이 노트는 내가 사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원한다면 책을 만들어보라'고 하셨다"면서 "제목도 미리 '눈물 한 방울'로 정해두셨다"고 말했다.
 책에는 암 선고 이후 울지 않던 그가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엉엉 통곡했던 일을 비롯해 눈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글도 10여편 실려 있다. 그 진정한 의미에 대해선 서문에 이렇게 적혀 있다.
 "스스로 생각해온 88년, 병상에 누워 내게 마지막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한참 생각했다. '디지로그''생명자본'에 이은 그것은 '눈물 한 방울'이었다.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준다(중략)우리는 피 흘린 혁명도 경험해봤고, 땀 흘려 경제도 부흥해봤다. 딱 하나,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바로 눈물, 즉 박애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눈물. 인류는 이미 피의 논리, 땀의 논리를 가지고는 생존해갈 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
 아들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유고집이라면 죽음을 앞둔 인간의 슬픔이나 애환을 생각하실 텐데 아버님이 생각하신 눈물은 서문에 쓰신 대로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을 뜻한다"며 또 "그림을 잘 그리시지만 평소 안 그리셨는데, 어린 시절로 돌아가 동화책을 쓰신 거 같아 좋았다"고 말했다.
 책에는 지성계 거인의 고독하고 내밀한 모습과 함께 생의 마지막까지 치열한 사유를, 읽고 쓰기를 갈망했던 모습이 어른거린다. '하나님 제가 죽음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까닭은, 저에게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쓴 날도, '책들과도 이별을 해야 할 시간이 되어서/최고사령관이 부대의 사열을 하듯/서가의 구석구석을 돌았다'라고 쓴 날도 있다.
 "한 발짝이라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자. 한 호흡이라도 쉴 수 있을 때까지 숨 쉬자./한 마디 말이라도 할 수 있을 때까지 말하자./한 획이라도 글씨를 쓸 수 있을 때까지 글을 쓰자./마지막까지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을 사랑하자./돌멩이, 참새, 구름, 흙 어렸을 때 내가 가지고 놀던 것,/ 쫓아다니던 것, 물끄러미 바라다본 것/그것들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었음을 알 때까지/사랑하자."(2021.8.1)
 강인숙 관장은 "1주기인 내년쯤 서재를 공개하려 한다"며 출간된 육필원고 이외에 "책으로서보다 자료로서 가치가 있을 메모도 많다"고 밝혔다. 이승무 교수는 "에버노트 등 첨단 기기를 굉장히 많이 쓰셨기 때문에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거 같다"고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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