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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할 권리와 '성희롱 갑질'을 구분하라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2월3일 09시09분    조회: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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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의 자유연애와 ‘미투’ 페미니즘요즘 한국에서 한 여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를 계기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미투는 미국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이 수십년간 저질렀던 성폭력이 공개되면서 촉발된 소셜네트워크(SNS) 캠페인입니다. 수치심 때문에 혹은 직접적 피해를 우려해 숨겨왔던 성희롱·성추행·성폭행 경험을 공개하자는 것이지요. 
왼쪽부터 우버 사내 성희롱을 고발한 수전 파울러, 미투 운동에 참여한 앤젤리나 졸리, 제니퍼 로런스, 리스 위더스푼, 앨리사 밀라노. [사진 각 SNSAP=연합뉴스]

그런데 최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는 원로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 등 문화예술계 여성 100명이 “미투 운동이 과도하다”고 공개편지를 실었습니다. 이들은 성폭력은 범죄라고 하면서도 “유혹이나 여자의 환심을 사려는 행동은 범죄가 아니다”라면서 “남성들에게 증오를 표출하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을 배격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습니다. 이에 대해 미투 참여자들이 공개 반박하는 등 역풍이 거세지자 카트린 드뇌브가 다시 사과하기도 했지요. 

과연 미투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측이 말하는 ‘유혹할 권리’란 무엇을 뜻할까요. 왜 이들은 미투가 “남녀 간 연애에 청교도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고 걱정할까요. 이들이 수호하려는 자유로운 연애와 미투 페미니즘은 대립되는 개념일까요. 

[고 보면 모있는 신기한 계뉴스-알쓸신세]가 미투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란과 진실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프랑스 여권운동의 선구자라 일컬어지는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의 자유연애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드 보부아르는 일평생 연애주의자로 살면서도 그 자신이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는 데 앞장섰던 페미니스트였습니다. 

'제 2의 성'을 쓴 프랑스 여권운동의 선구자 시몬 드 보부아르.

미투 비판하며 "유혹할 권리 있다"

카트린 드뇌브 등 100명의 르몽드 기고문('성의 자유에 필수불가결한 유혹할 자유를 변호한다')이 한창 파문을 부르던 있던 지난 1월12일 뉴욕타임스(NYT)에 한 프랑스 저널리스트의 기고가 실렸습니다. 아그네스 푸흐리에(AGNES C. POIRIER)가 쓴 글의 제목은 ‘시몬 드 보부아르와 프랑스 페미니즘’. 드뇌브의 ‘미투 비판’에 대한 해명성 글입니다. 

NYT 기고는 프랑스와 미국 페미니즘 간에 차이가 있다면서 드 보부아르가 1947년 썼던 『미국여행기』(L'Amerique au jour le jour)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어느날 밤 나는 여자들만의 저녁식사에 초대됐다. 내 인생 처음으로 여성들만 있는 게 아니라 ‘남자 없는’ 저녁에 있다고 느껴졌다.” 

당시 보부아르는 미국 남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미국 여성이 옷 입는 방식은 “매우 여성적이고 거의 섹시”하지만 그들은 남성에 대한 적대감을 종종 토로했습니다. 특히 보부아르의 눈에 미국 여성들은 “프랑스 여성들이 남자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의 변덕을 행복하게 받아주는 걸 경멸한다”고 보였습니다. 
지난해 2월 1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영화제에 참석해서 기자회견에 응하고 있는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 [EPA=연합뉴스]


욕망에 충실한 프랑스식 연애의 전통

실제로 프랑스 여성들이 미국 여성들보다 남자들의 유혹과 변덕에 관대한지는 모를 일입니다. 미국 여성들이 그런 프랑스인들을 경멸하는지도 알 수 없고요. 문화란 게 무 자르듯 구별되는 것도 아니고 개인 차란 건 늘 존재하니까요. 

다만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프랑스는 정치인의 사생활에 미국인보다 훨씬 관대한 편입니다. 동거라든가 혼외 자녀 출산도 미국보다 훨씬 개방적이고요. 관습을 뛰어넘는 연애가 개인의 커리어에 족쇄가 되지도 않습니다. 현직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15세인 고등학생 때 24살 연상의 유부녀 교사였던 브리지트 트로노와 사랑에 빠진 러브 스토리는 유명하잖아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그의 24세 연상의 부인 브리짓 트로뉴. [EPA=연합뉴스]
NYT 기고자에 따르면 이는 프랑스식 남녀 관계의 특징과 관련된다고 합니다. 프랑스인들은 남녀 사이의 모호함과 회색지대를 인정한다는 거죠. 중세 궁정연애(Courtly love) 전통까지 올라가는 이런 문화에서 프랑스인들은 유혹을 하거나 당하는 ‘밀당’을 즐기고 오히려 욕망을 숨기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여긴다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고자는 드뇌브의 글이 진짜 비판하는 건 ‘미투 페미니즘’ 자체라기보다 이로 인한 ‘사상 경찰’(thought police)이라고 설명합니다. 생각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감시 사회가 남녀 문제까지 지배할 수 있다는 거죠. 드뇌브는 “문제 남성들을 보내버린 뒤에 다음 (공격) 타깃은 ‘헤픈 여자’가 되느냐”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추파를 던지고 유혹을 즐기는 것 또한 엄연한 개인 자유인데 너무 몰아붙이면 남는 건 엄숙한 청교도주의란 거죠. 

계약결혼 중에 또다른 사랑 즐긴 보부아르

NYT 기고가 인용한 보부아르의 책은 그가 미국을 여행하고 쓴 글입니다. 이 책이 나오고 얼마 안돼 보부아르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상대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넬슨 올그렌(1909~1981). 보부아르는 올그렌에게 47년부터 64년까지 수백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이 편지를 묶은 책이 1997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99년 국내에도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애편지』(원제 Lettres a Nelson Algren, 열림원)라는 제목으로 번역됐습니다. 
50년 가까이 계약 결혼을 유지했던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그런데 보부아르는 당시 ‘결혼’ 상태였습니다. 보부아르는 한번도 법적으로 결혼하진 않았지만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와 1929년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계약결혼 관계였습니다. 이 계약 조건엔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되 그런 사실을 서로에게 감추지 않으며 그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모든 관계에 우선한다는 점 등이 포함됐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반세기 동안 자유로운 연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각자 다른 애인을 두었고 그 관계를 숨기지 않았답니다. 

최근엔 보부아르의 또다른 연서가 발굴됐습니다. 44살에 만난 18세 연하남 클로드 란즈만(93)에게 썼던 편지들입니다. 훗날 저명한 영화감독이 된 란즈만은 당시 만 26살이었고 보부아르의 비서로 일했습니다. 보부아르는 편지에서 그를 “내 사랑하는 애기”라고 부르면서 “평생 네 아내가 될 것”이라고 썼습니다. 란즈만이 첫 사랑이자 다시없을 사랑이라는 고백도 덧붙였습니다. 

욕망에 충실한 보부아르식 페미니즘

말 그대로 프랑스 지성계를 호령했고, 사르트르의 ‘뮤즈’로 통했던 여성 사상가의 ‘간지러운’ 고백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부아르는 심지어 한 편지에 “사르트르는 다른 것엔 열성적이지만 성생활에는 정열이 없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이를 보부아르의 ‘이중성’으로 보는 것은 오해입니다. 보부아르는 평생 사랑 앞에 솔직하고 한없이 로맨틱했습니다. 그에게 자유연애란 욕망을 표현하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방편이었습니다. 

보부아르가 자유연애를 추구했다고 해서 그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건 아닙니다. 보부아르는 여성의 열등함이란 오랜 남성 지배체제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봤고 이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평생을 보냈습니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보부아르가 1949년 출간한 철학서 『제2의 성』에 나온 이 말은 이후 여성 해방운동의 금과옥조가 됐습니다. 
1971년 시몬 드 보부아르가 대표 필자로 썼던 343인의 선언(Manifesto of the 343)을 풍자한 '샤를리 엡도'의 만평. ’낙태 선언을 잉태한 343명의 헤픈 여자들“이라고 커버에 소개했다.

특히 여성의 신체에 있어 자기결정권을 강조했는데 대표적인 게 1971년 ‘343인의 선언’(Manifesto of the 343)입니다. 보부아르가 대표 필자로 쓴 이 선언문은 여성의 낙태가 불법시되던 시대에 개인의 피임·낙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낙태 허용 여부는 지금도 생명윤리 문제로 논란이 있지만 당시엔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독설로 유명한 만평지 『샤를리 엡도』가 “낙태 선언을 잉태한 343명의 헤픈 여자들”이라는 커버를 싣기도 했으니까요. 

21세기 '성희롱 갑질'을 거부하는 여자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체제에서 다른 여성들보다 한발짝 앞서 가는 것은 언제나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한발짝’의 내용은 시대마다 달라졌습니다. 19세기 여성이라면 『인형의 집』(헨리크 입센의 희곡)의 노라처럼 속박된 가정을 뛰쳐나오는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자유연애를 하면 손가락질 당하고 피임·낙태를 선택할 수 없던 시대에 선구자로 살았습니다. 21세기 여성은 거기서 한발 또 나아갑니다. 평등한 교육을 받고 직장에서 남자와 대등하게 일하는 이들은 ‘성희롱 갑질’을 거부합니다.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과 그에게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공개하고 나선 여배우들. 2017년 전 세계적인 '미투 캠페인'을 불러일으킨 장본인들이다. [AFP=연합뉴스]
이렇게 보면 보부아르의 페미니즘과 미투 캠페인은 다른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보부아르가 살아있었다면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에 연대를 표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는 ‘343인의 선언’에서 "사회가 낙태하는 여성들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면서 "나 역시 낙태를 한 바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낙태에 관한 '미투'를 실천한 것입니다. 

동시에 일평생 자유연애주의자로서 보부아르는 남녀 간의 ‘밀당’과 ‘유혹할 권리’도 옹호했을 겁니다. 미투 참가자들은 어떨까요. 만약 그가 살아 있어 18세 연하 비서와 연애한다 한들 그게 보부아르의 '갑질'이 아니라면 비판 대상이 되진 않을 겁니다. 이들이 미투를 통해 이루려는 세계가 '엄숙한 청교도주의'가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의 대등한 만남이라면 말이죠. 그런 세상에서 가장 미숙한 존재란 성희롱 갑질을 하고도 자각 못하는 이들, 그게 '유혹할 권리'라고 착각하는 이들 아닐까요. 

“진정한 사랑은 두 개의 자유가 서로 상대를 인정하는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때에는 연인이 서로를 자기와 타인으로 경험하고 어느 쪽도 자기를 불구로 만들지 않고 서로 부축하면서 세계의 가치와 목적을 발견할 것이다.” (『제2의 성』 중에서)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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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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