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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말눈치 있나요? 공감 부르는 ‘배려의 말기술’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5월19일 09시01분    조회:1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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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공감 부르는 ‘배려의 말기술’

예전에는 ‘눈치 없다’고 가볍게 지적당했을 말이 이제는 ‘무례하다’고 엄중히 경고받는다. 쉽게 던지는 말들을 다시 살펴봐야 하는 시대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한 지방 박물관 관장이 여남은 명의 기자를 초대했다. 방문객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을 관장은 한 기자의 패션 감각을 칭찬했다. 밝은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반짝이는 스팽글 장식 티셔츠를 입은 기자의 스타일은 단연 돋보였다. 문제는 관장의 눈치 없는 말솜씨였다. “역시 이 기자님이 옷을 잘 입으신다니까요. 여기 계신 여기자들 중에 최고입니다.” 패션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리에서 졸지에 패션 감각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은 셈인 나머지 여기자들은 조용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딱히 악의가 담긴 것은 아니었지만 씁쓸한 뒷맛은 오래갔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범준씨는 “말눈치를 지닌 사람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보다 낫다 혹은 못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관장에게 말눈치가 있었더라면, 굳이 ‘여기 계신’ 다른 기자를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말눈치를 “말하는 가운데에 은근히 드러나는 어떤 태도”로 정의한다. 김씨는 여기에 ‘남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센스 혹은 위트’를 더했다. 말눈치는 즉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조심하는 능력”이라는 것. 김씨는 말눈치가 현대 언어생활에 필요한 미덕이라고 강조한다. 

말눈치 없는 자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연차를 쓰겠다는 팀원에게 “누구랑 어디 가느냐”고 캐묻는 팀장, 직장생활의 고충을 호소하는 후배에게 “내가 더 힘들다”고 목소리 높이는 선배, 명절에 만난 취업준비생 조카에게 “취업 준비는 잘되냐?”고 묻는 삼촌…. 과거에는 이런 말을 ‘눈치 없다’고 표현했지만, 이제는 ‘무례’로 인식되고 있다. 무례한 말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감수성이 높아지자, 말눈치를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당신의 사이다, 내게는 독이다

■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언어 디톡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언어 환경을 바꿨다는 데에는 여러 전문가가 의견을 같이한다.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대화의 맥락을 감지하지 못하는 이른바 ‘맥락맹’ 증가의 원인으로 SNS가 지목된다. ‘소통’을 위해 탄생한 매체가 소통의 장애가 됐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의 스피치 코치로 활동 중인 이민호 제이라이프스쿨 대표는 SNS가 나와 다른 의견을 대면하는 대중의 예민도를 높였다고 본다. 

>SNS선 의견 같은 사람만 만나고 

쉬운 콘텐츠만 소비하려는 세태 

앞사람 말 어려우면 공감 못하고 

맥락도 못 알아채는 ‘맥락맹’ 증가 


“과거에는 내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동네, 학교, 직장 등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을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만나죠. 게다가 온라인에서는 주로 좋은 경험이나 미담보다는 안 좋은 경험이나 충격적인 뉴스를 공유하잖아요. 인터넷을 통해 주고받는 정보는 보다 구체적이며, 때론 과장되기도 하고 불편하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편한 정보를 만나는 SNS 환경에 대한 반대급부로 사람들은 말이 통하는 이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같은 정보 편식을 미국의 시민단체 무브온 이사장인 엘리 프레이저는 ‘필터 버블’이라 명명했다. SNS도 결국은 정치적 의견이 같은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공간이 됐다. 정치색을 드러낸 글에는 ‘옳은 말씀입니다’ 댓글 일색이다. 

다른 의견과 맞닥뜨렸을 때의 첫 반응은 “내 주변 사람들은 다 내 말이 맞다고 하던데”가 된 지 오래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만날 수 있게 되면서 결국은 상대방의 맥락을 헤아리지 않게 됐다. 이른바 ‘맥락맹’이다. 

이민호 대표는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의 등장도 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는 독자가 뉴스에 쉽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해 엄청난 고민을 하고 카드뉴스나 동영상뉴스를 만들었지만, 결국은 조금만 어렵다 싶으면 클릭이나 스와이프 한 번으로 건너뛰는 참을성 없는 독자가 양산됐습니다. 당연히 앞사람이 하는 말이 어려우면 이성의 문을 닫게 되었죠.” 

당사자도 웃을 수 있던 풍자 넘어 

개저씨·급식충·김치녀·한남충… 

비하 두드러진 파괴적 언어 넘쳐 

말 속 독 빼는 ‘언어 디톡스’ 필요
 

생활 언어도 독해졌다. 단순히 은어, 속어 남발의 문제가 아니다. 박덕유 인하대 국어문화원 원장은 “1990년대만 해도 은어와 속어에 위트와 풍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노약자석’을 ‘노련하고 약삭빠른 사람이 앉는 자리’라고 말하거나, ‘백수’를 ‘주택관리사’ ‘비디오평론가’로 돌려 말하는 식이었다. 당사자가 들어도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풍자 수위였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요즘 언어는 파괴적이에요. 특히 비하 표현이 두드러집니다. 개념 없는 남성을 비하하는 개저씨, 초·중·고생을 비하하는 급식충, 여성을 비하하는 된장녀·김치녀는 말할 것도 없고 남성을 비하하는 한남충도 등장했잖아요. 비하 발언을 듣는 상대의 감정이 좋을 리가 없죠. 2000년대 들어 반어적 표현이 사라지고, 반감을 담은 언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박덕유) 언어에서 독을 빼는 ‘언어 디톡스’가 필요한 이유다. 

이른바 ‘사이다’ 발언의 득세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주부 정선아씨는 최근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몇 차례 청약에서 떨어지고, 발품을 팔아가며 여러 곳을 다녀본 끝에 어렵사리 받은 분양이라 기쁨은 더했다. 

마침 이웃들이 모인 자리에서 당첨 소식을 알렸다. 축하 인사 가운데 가시처럼 콕 박히는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브랜드 아파트예요?” 어쩌면 그 질문자는 자랑에 도취된 정씨를 상대로 ‘사이다 발언’을 했다고 자부할 수도 있었겠다. 

사이다 발언은 용기와 무례의 경계가 애매한 경우도 왕왕 있었으나, 통쾌함의 흥에 겨운 언중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탄핵과 대선 정국에서 발언의 수위는 세면 셀수록 주목받기 좋았다. 주은우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권위주의 불통정권하에서 소통이 안되니까, 상대에게 내 주장을 관철시키려면 내지르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기업 내서도 세대 간 갈등 증폭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법 특강 

이기는 법 가르치던 자기계발서도 

상처 주지 않는 대화법 다뤄 인기


■ 배려의 말, 관계의 강조

잘 듣지 않으니 좋은 대화가 이뤄질 리 없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소통하는 느낌’을 주는 대화의 경험 자체가 희귀해졌다. 소통 교육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대처하는 곳은 역시나 세태에 기민한 기업체다. 이민호 대표는 소통에 관한 기업 특강 요청이 늘었다고 말했다. 지역 갈등, 정치 갈등에 이어 ‘꼰대’로 상징되는 세대 갈등이 증폭되는 사회의 이면이다. 산업화 성장시대에 야근을 의무로 알았던 세대가 중간관리자 이상이 되며 자기표현에 당당한 2030세대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강의 요청이 많다고 그는 귀띔했다. “이러다가 젊은 사람들 회사 다 나가겠다”는 위기의식이 최고경영자들로 하여금 소통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 것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제러미 리프킨이 <공감의 시대>에서 거론한 ‘공감 생존의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재벌 총수일가의 갑질 막말 논란은 이제 말본새가 기업 경영에서도 고려해야 할 사안이 됐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동안 처세술을 다뤄온 자기계발서는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상을 길러내는 데 주안점을 뒀다. 주은우 교수는 “그동안 자기계발서에는 대기업이 주도하고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적 조건에 스스로 맞춰가는 순응주의적 함의가 담겨 있었지만, 이제는 기업이 고객을 대하듯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원만히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고 짚었다.

한때 서점가에서는 승리의 대화법, 팀장의 대화법, 생산적 대화법 등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전략적 화법을 설파하는 책이 득세했다. 최근엔 흐름이 바뀌었다. 화술화법 및 자기계발서의 경우 유려한 말솜씨보다는 상대를 대하는 자세나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무게를 둔 책이 늘고 있다. 일본 방송인이 쓴 <같은 말도 듣기 좋게>는 ‘듣기 좋고 기분 좋은 말하기’를 내세운다. 올 초 출간돼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선을 넘는’ 사람들에게 현명하게 의사 표현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진영균 과장은 “예전에는 회의 같은 공식 석상의 말 잘하는 법 위주였다면, 지금은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상처 내지 않고 말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인기”라고 말했다. 

무례하지 않은 사람, 부드러운 소통에 대한 갈구는 다양한 문화현상으로 이어진다. 과거엔 여성의 손목을 낚아채는 남성을 ‘터프가이’라 부르며 좋아했지만, 이제 그런 행동은 ‘무례함’ 혹은 ‘성폭력’이다. 차라리 정해인, 박보검씨처럼 부드러운 이미지의 배우가 인기를 끈다. 회원제 독서클럽 트레바리와 같은 유료 취미 커뮤니티의 인기도 유사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이런 커뮤니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돈이 들지만, 회원들끼리 예절을 갖추고 존중한다는 점에서 인기를 끈다. 이민호 대표는 “소통 원칙을 가진 사람들과 존중하며 상대의 의견을 듣는 ‘예의바른 커뮤니티’에 대한 선호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언어를 따라잡는 것도 공감 소통의 노력으로 봐야 할까. 트렌드에 조바심 내는 TV프로그램 자막은 인터넷 신조어와 급식체(급식을 먹는 10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문체) 따라잡기 경연을 보는 듯하다. 월요일 오전 부장이 구사하는 유행어는 주말 예능의 축소판이 따로 없다. 이민호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양의 탈을 쓰는 건 자유라고 생각하는데, 본질적으로 양과 어울리려면 탈을 쓸 것이 아니라 발톱을 갈아야죠.” 

주은우 교수는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미투 운동처럼 을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목적지향적인 화법이 주를 이뤘던 과거와 달리 상호 배려하고 이해하는 화법이 등장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셀프 체크리스트 : 나의 말눈치 수준은

-하고 싶은 말을 내뱉어야 직성이 풀리며 항상 직설적으로 말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무조건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한다.

-상대가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또 한 적이 있다. 

-내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는 말을 듣는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대화 중에 갑자기 흐름과 맞지 않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내가 남에게 잘해준 건 기억해도 남이 나에게 잘해준 건 기억하지 못한다. 

-말을 잘못 전달해 종종 오해를 사곤 한다.

-상대가 실수하자마자 바로 논리적으로 지적한다.

*이 중 하나라도 체크했다면 당신에게는 말눈치가 필요하다.

- 출처 <저도 눈치 없는 사람과 대화는 어렵습니다만>(김범준 저, 위너스북)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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