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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가 문제야' 이별여행 갔다가 '재혼' 커플로 돌아오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7월11일 09시31분    조회:1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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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27)
사랑. [사진 pixabay]

사랑. [사진 pixabay]

  
사랑한다는 것은 오래 지켜봐 주는 거...! 지금 하늘이 무너지면 그 사람이 달려와 줄 거라 생각하게 하는 거..! 그래서 하늘이 무너진 채로 나를 내리 짓누르는 시간을 희망으로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거...! (작자 미상) 
  
권태기가 절정에 이르던 50대 초반 언젠가 남편과 나는 크게 싸우고 난 뒤 확실하게 헤어지자며 이별 기념으로 제주도 올레길을 다녀온 적이 있다. 힘들게 살았으니 그동안 함께 살아온 시간도 정리해보고 서로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또 영화에서처럼 헤어질 땐 멋있게 헤어지자는 남편의 제안도 괜찮았다. 부부로서의 마지막 여행이란 생각에 홀가분하게 따라나섰다. 
  
사흘 동안 딴 방 써가며 낮에는 올레길 걸어
그때 남편과 방도 따로 얻어 아침에 현관에서 만나 1코스에서 7코스를 3일 동안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대화도 없이 걷는데 풍경은 하나도 안 보이고 머릿속에서는 함께 살아온 30년 동안의 인생스토리가 실타래 풀리듯 영화처럼 지나갔다. 
  
얼마나 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오르막 내리막의 이 길 같이 구구절절했던가. 두 번 다시 겪지 않아도 될 기억이, 헤어짐에 홀가분해야 마땅하거늘 힘들었던 그 시절이 왜 그리 허전하게 내 머리에서 지우기가 아깝던지 그것이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런데 다른 때 같으면 내가 동쪽으로 가자면 서쪽으로 가고, 산으로 가자면 물로 뛰어드는 사람이 3일 내내 식당을 들어가서도 같은 메뉴를 시켜 먹고 내 뒤만 졸졸 따라 오는 것이었다. 
  
3일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대화도 없이 남편과 제주 올레길을 걷는데 풍경은 하나도 안 보이고 머릿속에는 함께 살아온 30년의 인생스토리가 영화처럼 지나갔다. [중앙포토]

3일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대화도 없이 남편과 제주 올레길을 걷는데 풍경은 하나도 안 보이고 머릿속에는 함께 살아온 30년의 인생스토리가 영화처럼 지나갔다. [중앙포토]

  
마지막 날 숙소에 도착해 “짜증 나게 왜 내 뒤만 졸졸 따라와? 제 맘대로 즉흥적으로 사고나 치던 사람답게 평상시대로 행동하라”고 큰소리쳤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 “이번 여행에선 내가 당신 보호자 역이야.” 
  
혈압이 낮아 잘 쓰러지는 여자, 1㎞도 걷기 싫어하는 여자, 악착같이 살아온 여자. 한 번도 편안한 행복을 안겨 주지 못한 내 여자가 악에 받쳐 3일을 내리 걸었으니 쓰러지면 자기가 책임져야 해서 뒤따라 걷는 거라고. 
  
화가 풀릴 때까지 걷는 것이 너의 목적이라면 본인은 내 뒤통수만 책임지고 걷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라고, 화를 잘 풀고 잘 헤어져야 각자 남은 인생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고. 네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고. 횡설수설 어쩌고저쩌고 주절주절 떠들었다. 
  
3일간의 긴 자유의 길에서, 아니 고행의 길에서 문득 ‘아, 이렇게 뒤에서 우산같이 보호해주는 역할만 있어도 든든한 거구나. 이제까지 나는 나만 생각하는 욕심 덩어리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백기를 들고 투항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재혼한 커플이 되어버렸다. 이별 여행에서 건져온 건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었다.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면 세상이 달라져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재혼한 커플이 된 우리 부부. [일러스트=김회룡]

  
며칠 동안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장맛비가 와서 밭이 잠기고 비닐이 날아가고 길이 소실되어 포크레인이 다녀가고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도 차 몰고 비 구경 가자는 남편. 난리가 난 현실을 정리해야 하는 현실적 여자와 현실은 잠시 두고 비가 내려 운치가 있는 강 풍경을 보러 가자는 정서적인 남자와 맨날 이런 문제로 쉬지 않고 투덕거렸다. 
  
“걸어서 가요. 걸어서 가라고~!” 소리 지르거나 말거나 차를 몰고 쌩~ 나가서는 두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으니 또 걱정인데. 저 멀리 발소리에 나가보니 손 가득 주렁주렁 매달린 산딸기 나뭇가지 한 묶음을 내 앞에 쑥 내밀었다. “차는?” “응~ 도랑에 처박혔지.” 사고 난 김에 차는 버려두고 언덕에 핀 산딸기 보니 마누라 생각이 나서 땄단다. 
  
새색시 입술만큼 농염한 가시 있는 산딸기 한 움큼 입에 털어놓고 휴~ 한숨을 쉬며 마음을 다스렸다. ‘암만…. 차야 고치면 되지...’ 마음을 내려놓으며 사람이 그대로 돌아온 것에 위안을 갖고 나가기 전 소리 지른 미안함에 멋쩍은 미소를 보냈다. 산딸기가 문제야. 
  
우주를 만드는 것은 원소가 아니라 스토리라고 어느 학자가 말한 것이 생각난다. 우리 모두의 살아온 이야기가 좋은 쪽에서 관조하면 아름다울 수도 있고 그것이 유머로 연륜으로 웃음으로 이어져 혼자 살아도 둘이 살아도 여럿이 살아도 행복할 수 있는데 젊은 날을 참 바보같이 살았던 것 같다. 이제는 늘 웃는 바보로 살아가려 노력한다. 
  
노랫말처럼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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