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김덕훈 인턴기자 = "죽음이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수명이 다할 때 죽으면 좋겠다'는 식의 생각은 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통해 죽음과 관련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 죽음에 대해 고민해 볼 계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중학생 김민우(가명·15)군의 글)
"아직 죽음에 가깝지 않은 어린 나이여서인지, 내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뉴스에서 교통사고나 병으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나도 갑작스럽게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기는 합니다. 다만 사후세계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합니다." (고등학생 최지석(가명·16)군의 글)
<#. 10대 학생 2명이 보내온 글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 스스로 원하는 죽음의 형태 등에 대해 자유롭게 적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 죽음, 언급조차 기피되는 대상…"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경로당에 죽음 교육 수업하러 갔다가 30분 만에 쫓겨난 적도 있어요. 어르신들이 화를 내시면서 물건을 막 던지시더라고요. 자제분들이 복지관에 (교육에 대한 불만으로) 민원을 넣는 경우도 많아요."
전국 각지 노인복지관 등에서 웰다잉(well-dying·좋은 죽음) 강의를 하는 강원남 웰다잉플래너는 한국인들이 이처럼 죽음에 대한 언급 자체를 기피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종종 목격한다고 했다.
강 플래너는 "우리나라에서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걸 굉장히 꺼려지고 불편한 일로 여긴다"며 "주변에서 보면 자살이나 질병으로 죽은 과정에 대해 마음을 열어놓고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좀 꺼내 놓고 얘기하기'부터 시작하자는 게 교육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노인 인구 증가로 웰다잉이 점점 중요 화두가 되고, 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좋은 죽음'이라고 하면 주로 안락사나 의사조력 자살, 연명의료 결정, 호스피스 등 신체적 고통을 줄이면서 죽음에 다가가는 의료적 수단을 먼저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본질적으로는 죽음을 무조건 기피하고 보려는 문화 때문이다. 이를 바꾸려면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죽음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고민하도록 돕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박중철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우리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색하고 용기가 없을까 생각해 보면 살면서 한 번도 죽음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라며 "오로지 죽음과 싸워 이기는 것만 탐닉하고 '의학적 최선'만을 생각한다"고 했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은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교육을 인위적으로라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죽음과 관련한 문제를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양성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때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 죽음 접할 일 없는 한국 아이들…해외선 일찍부터 '죽음 교육'
국내에서 죽음 교육이라 하면 복지관 등에서 노년층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주로 알려져 있다. 죽음에 대한 이해, 자신이 살아온 삶 돌아보기, 좋은 죽음의 유형,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유언장 작성, 장례 준비 등 노년 세대 특성을 고려한 '죽음 준비 교육'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죽음 교육은 노인뿐 아니라 모든 세대를 대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동묘지가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한국과 달리 프랑스 파리에는 시내에 공동묘지가 많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록밴드 '도어스' 리더 짐 모리슨,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프레데릭 쇼팽, 소설가 기 드 모파상 등 세계적 지성과 예술가들이 시민들의 일상 공간에 묻혀 있다.
김광환 건양대 웰다잉연구소장은 "유럽에서는 공동묘지가 공원처럼 받아들여지고 초등학생들도 삶과 죽음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며 "우리 사회에서는 죽음이 여전히 공포의 대상으로만 여겨지고, 아이들은 상가(喪家)에도 데려가지 않는 등 죽음을 회피하는 문화가 있는데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죽음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한 서구 선진국에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전 세대에 걸친 죽음 교육이 일반화해 있다. 죽음의 개념과 역사, 죽음에 이르는 과정, 누군가의 죽음으로 주변인들이 느끼는 슬픔과 상실감, 자살 문제 등 죽음과 관련한 여러 주제를 어릴 때부터 접하게 된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죽음에 대해 교육하고 유럽에서는 유치원에서 가르치기도 하지만 한국은 공교육에서 죽음을 다루는 교육이 자살 예방 교육 말고는 없다"며 "학교 관리자들의 인식도 '학교에서 무슨 죽음 교육을 하느냐'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내가 더는 치료 불가능한 상태라고 했을 때 삶을 돌아보며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타인과 화해할 수 있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그러려면 무엇이 좋은 죽음인지를 두고 치열한 자기 성찰을 해야 하는데 이는 일찍부터 죽음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 노년의 '좋은 삶' 있어야 '좋은 죽음'도 가능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젠가 찾아올 일이긴 하나 생이 오래 남지 않은 노년층이 상대적으로 죽음에 관한 문제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평균수명이 늘어 갈수록 노년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노년기에 '좋은 삶'을 만들어야 '좋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노인 자살률이 매우 높다는 것은 노년기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2020년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 수)은 80대가 62.6명으로 월등히 높았고, 이어 70대(38.8명), 50대(30.5명), 60대(30.1명) 순이었다.
의학 발달 등에 힘입어 수명은 연장됐으나 늘어난 삶의 길이만큼 자존감을 유지할 사회적 몫은 주어지지 않고, 그런 상황이 우울감으로 이어져 죽음조차 불행하게 만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노년들의 처지를 보여주는 우스갯소리 중 하나가 '연금 많이 타는 부모가 자녀들로부터 가장 대접받는다'는 것이다. 부동산 등 재산만 많으면 '부모가 빨리 죽어야 저 재산이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부모가 연금을 넉넉하게 받으면 자녀들에게 기대지 않고 필요할 때 지원해줄 수도 있어 오랫동안 대접받을 수 있으니 공적·사적연금을 충분히 준비해두라는 얘기다.
박중철 교수는 "늘어나는 수명에 맞춰 삶의 후반기에 대한 설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사회적 역할 없이 살아야 하는 기간만 길어진다면 결국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며 "실제로 내원하는 노인 환자 중 이유 없는 질병을 겪는 분들은 대부분 노인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기존 사회생활에서 은퇴했더라도 남은 삶의 기간에 스스로 사회적 존재감을 찾을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광환 소장은 "일본 사례를 보면 어르신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활용해 아이들을 돌보는 프로그램이 있다"며 "개별 공동체에서부터 노인이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일자리를 통해 그들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고, 이를 통해 경제적 여건과 소속감, 대인 관계 등을 두루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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