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경주’의 한 장면. 공윤희가 능 위의 최현을 바라보고 있다. photo 언니네 |
세월이 흘렀다. 장씨와 함께 경주에 들렀던 지인 두 명이 모두 세상을 떴다.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장씨는 ‘경주’라는 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특정 도시를 타이틀로 내세운 건 한국 영화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독립영화로 제작된 ‘경주’가 지금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 ‘경주’는 이렇게 시작된다. 베이징대에서 동북아정치를 가르치는 최현(박해일) 교수는 선배의 부음을 듣고 홀로 귀국해 대구를 찾는다. 조문을 마친 최현은 7년 전 고인과 또 다른 선배와 함께 찾았던 경주를 방문하기로 한다. 7년 전 경주 여행에서 세 사람은 어느 찻집 벽에 그려진 춘화를 놓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최현은 선배를 문상하고 춘화가 있던 그 찻집에 가고 싶었다. 그러니까 ‘경주’는 장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다.
7년 만에 와본 찻집은 주인이 바뀌었고 춘화도 보이지 않았다. 최현은 여주인 공윤희(신민아)에게 “이 자리에 춘화가 있었는데, 춘화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본다. 춘화를 찾는 낯선 손님을 찻집 여주인은 변태라고 생각한다. 찻집 주인은 친구와의 카톡에서 ‘변태가 왔다’라는 문자를 보낸다.
최현은 옛 애인을 경주로 오게 한다. 하지만 옛 애인은 그의 곁에 오래 머물지 않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간다. 최현은 다시 찻집을 찾고, 찻집 여주인과 최현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최현은 공윤희를 따라 교수, 형사, 플로리스트 등이 있는 술자리에 합석하게 된다. 늦은 밤까지 경주를 쏘다니다가 공윤희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영화는 1박2일의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다.
기자는 ‘경주’를 센트럴시티 메가박스에서 밤 10시50분에 봤다. 몸이 몹시 피곤한 상태였지만 2시간 반이 1시간처럼 빠르게 느껴졌다. 관객은 모두 네 명이었지만 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영화에 졸음을 확 달아나게 하는 어떤 인위적인 요소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젊은 남녀가 주인공이지만 그 흔한 성애(性愛) 장면도 하나 없다. 춘화가 거의 유일하다고나 해야 할까. 그렇다고 긴장과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극적인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억지스러운 연기 같은 장면은 하나도 없다. 억지 웃음을 유도하는 설정도 없다. 그런데도 묘하게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최현은 공윤희의 아파트에 초대된다. 그 자리에서 공윤희는 남편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말을 한다. 사별한 여자의 집에 초대받아 하룻밤을 지새게 된 최현. 이때부터 관객은 은은한 성적 흥분상태에 빠진다. 공윤희가 최현의 귀가 남편의 귀를 닮았다며 귀를 만져볼 때, 방문을 살짝 열어놓고 침대에 누워 최현을 기다릴 때 관객은 숨을 죽인다. 최현이 살짝 열린 방문을 바라보며 망설이고 주저할 때 관객들은 영화 속에 긴장한다.
2시간 반 영화가 커버하는 시간은 1박2일. 눈요기할 것도 없고 일부러 관객을 웃기려는 설정도 없어 자칫 지루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영화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있지만 관객에게는 연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쯤되면 ‘경주’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감독이 궁금해진다.
장률 감독은 중국 조선족 자치주인 지린성 연변이 고향이다. 조부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했다. 대학에서 중문학을 가르치며 소설을 쓰다가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백수로 지내기도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는 중국 국적이다. 불혹의 나이가 됐을 때 그는 한국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현재는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학 전공교수다.
그는 영화를 공부하거나 영화 현장에서 조감독으로 연출 경험을 쌓은 적도 없다. 말 그대로 독학으로 영화감독이 된 경우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 영화에 강렬한 충격을 받은 적도 없다. 할리우드키드(Hollywood Kid)와는 거리가 멀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의 유년기는 불행히도 문화대혁명(1966~1976) 시기와 겹쳤다. 영화를 거의 보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린성이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까닭에 어린 시절 오히려 ‘꽃 파는 처녀’ ‘피바다’와 같은 북한 영화를 자주 접했다. 그가 할리우드 영화와 일본 영화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20대 후반이었다.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무엇보다 소설가 출신은 시나리오에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시’를 연출한 이창동 감독이 그런 경우다. 소설가로 입지를 굳힌 이창동 감독 역시 영화감독이 되려고 박광수 감독 밑에서 조감독과 시나리오를 배웠다.
장률 감독은 영상언어 감각을 타고났던 것 같다. 그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장씨가 독학으로 찍은 데뷔작은 2000년에 나온 단편 ‘11세’. 이 단편은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장편영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장편 데뷔작은 2004년 작품 ‘당시’. 조선족의 비극을 그린 ‘망종’(2006년), ‘경계’(2007년)는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기도 했다. ‘두만강’(2011년)에서는 탈북자 이야기를 다뤘다. ‘망종’ ‘두만강’ 등은 조선족 출신 감독으로서 자신의 삶이 놓인 지점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일련의 영화들로 그는 사회성 짙은 영화를 찍는 감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경주’를 공간적 배경으로 영화를 찍으면 그 누구도 왕릉은 피할 수 없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나오지 않을 수 있지만 왕릉은 아니다. 영화 ‘경주’에는 왕릉이 모두 다섯 번 나온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첫 장면. 고분 앞에서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남녀가 입을 맞추는 모습이 나오고 곧바로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 우르르 왕릉으로 몰려간다. 이런 모습을 최현이 지켜본다.(이 장면은 장률 감독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린이, 10대, 30대가 고분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또 다른 장면은 최현, 공윤희, 영민 세 사람이 술자리를 마치고 늦은 밤 고분 위에 올라가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다. 경주 사람들에게는 삶의 일부분인 고분의 미학이 드러난다. 공윤희는 “나는 죽으면 이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공윤희는 이어 무덤 속을 향해 “저 들어가도 되죠?”라고 묻는다.
마지막 장면은 최현이 공윤희의 아파트에서 창밖에 펼쳐진 고분군을 보는 장면이다. 공윤희는 “경주에서는 단 하루라도 능을 보지 않고 살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경주 시민들에게 죽음은 생활의 일부분인 것이다. 관객들은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일반 상업영화에서 볼 수 없는 고분을 스크린 한가운데로 끌어들인 감독의 의도 말이다. 장률 감독은 언론과의 여러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말했다. 종합하면 이런 얘기가 된다.
“중국에서는 왕릉이 사람들과 단절돼 있어요. 중국에서 능은 사람들이 기피하고 일상과 섞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주에서는 왕릉 옆에서 술 먹고, 연애하고, 아이들이 뛰어놀아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공간이에요. 죽음과 삶의 관계가 이렇게 부드러우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덜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경주’는 멜로드라마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최현을 경주로 이끌고, 경주에서 끈질기게 그를 놓아주지 않는 것은 죽음이라는 코드다. 문상, 고분, 자살…. 그러나 이런 것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혹은 매듭 없이 이어져 있어서 관객이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중국인은 차를 마신다. 그들은 식사를 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게 생활이다. ‘경주’의 주 공간은 찻집이다. 황차와 보이차가 등장한다. 찻집 여주인이 차를 우리고 세차(洗茶)하는 모습이 나온다. 장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차(茶)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마시는 것인데, 찻집에 춘화라니요? 능과 술, 찻집과 춘화가 함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도 경주가 계속 생각났어요.”
춘화는 욕망을 돋우는 매개체다. ‘경주’에서는 춘화 외에도 욕망을 자극하는 매개체가 등장한다. 고분군(群)이다. 늦은 밤 최현, 공윤희, 영민 세 사람이 고분 위에 올라간다. 죽은 이의 공간인 고분이 조명을 받으며 만들어내는 곡선은 관능미의 절정이다.
‘경주’는 큰돈이 들어가지 않은 영화다. 눈 씻고 찾아봐도 돈 들어간 구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평범한 관객의 눈에도 돈 들어간 세트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독립영화다. 이런 독립영화에 톱클래스 배우 박해일과 신민아가 출연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기자 같은 평범한 관객에게 그는 낯선 이름이지만 영화매니아 사이에서 장률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2011년 3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장률 감독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박해일은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넘나드는 배우지만 신민아로서는 ‘경주’가 첫 독립영화 출연이다. 장 감독에 따르면 신민아는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30분 만에 출연 의사를 밝혔다. 그만큼 신민아는 장 감독의 연출력과 그의 시나리오를 신뢰했다는 뜻이리라.
지난 6월 12일 ‘경주’가 개봉되고 나서 장씨는 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가졌다. 거의 모든 매체의 기자들이 그에게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이 있다. 사회성 짙은 전작들, 예컨대 2011년에 개봉한 ‘두만강’ 같은 영화와 달리 강한 사회적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자의 판단으로는, 그들은 장 감독의 메시지를 읽지 못한 게 아닐까. 죽음의 문제보다 더 큰 주제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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