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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시대 詩를 사랑한 청년이 있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1월24일 10시09분    조회: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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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감독 이준익 출연 강하늘, 박정민, 김인우, 최희서, 신윤주 장르 드라마 상영 시간 110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일 2월 18일


새봄의 한기가 무겁게 내려앉은 지난해 4월. 서울 연세대 교정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연희전문학교로 돌아가 있었다. 일본 헌병대가 곳곳에 배치된 암흑의 시대 한복판에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던 청년이 있었다. 아직 세상에 시 한 편 내놓지 않았으나, 훗날 온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되는 시인 윤동주(강하늘)다.

동주는 검정 교복을 입은 동기들과 벽보를 바라보는 중이다. “창씨개명을 8월까지 완료하라. 이거 학교 다니기 힘들겠다.” 친구 처중(민진웅)이 포고문을 읽고 푸념하자 동주의 낯빛은 더 어두워진다(사진2). 동주는 교직원이 나눠준 창씨개명계를 받아들자마자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다. 일순 당황한 처중은 “안 보이는 데서 찢어!”라며 동주를 몸으로 가렸다.

“컷!” 50m쯤 떨어진 곳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던 이준익 감독이 쏜살같이 배우들에게 달려왔다. “종이를 찢고 나서 이쪽을 바라봐야 할 것 같아.” 이 감독과 배우들의 얼굴이 자못 진지했다. 동선 하나, 시선 하나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어쩌면 이 광경은 한 청년이 비극의 문을 열어버린 순간일지 모른다. ‘동주’의 촬영 현장은 이렇게 한 컷 한 컷을 세공하는 분위기였다.

젊은 시절엔 윤동주의 시에 매료됐고, 이제는 그의 삶 자체에 빠져버린 이준익 감독은 오랫동안 윤동주를 생각하다 2013년 말, 프로젝트를 구체화시켰다. ‘러시안 소설’(2013) ‘조류인간’(2015)의 연출자이자 ‘문학 청년’인 신연식 감독에게 각본을 맡겼다. 이 감독이 주목한 건 윤동주와 그의 벗 송몽규(박정민)의 관계였다.

사촌 간인 두 사람은 중국 용정에서 함께 나고 자라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동시에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송몽규가 독립 운동에 매진한 반면, 윤동주는 시를 통해 시대의 비극을 아파했다. 이 감독은 “윤동주의 시 세계에 가장 큰 화두는 부끄러움이었고, 송몽규는 윤동주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 중요한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사도’(2015)의 유아인에 이어 이번에도 젊은 배우들과 함께하게 된 이 감독은 “두 사람 안에서 영원히 식지 않는 청춘의 순간을 포착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스물일곱 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진 두 청년의 강렬한 삶이 매 컷마다 저릿저릿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촬영장에서 강하늘과 박정민은 막 깨어난 젊은 시인의 푸릇푸릇한 생동감을 보여줬다.

신연식 감독은 시나리오 앞 장에 “이 이야기는 7할의 진실과, 1할의 상상과, 1할의 구성적 변경과, 1할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백으로 이루어졌다”라고 썼다. 그만큼 철저하게 고증했고, 30~40년대의 공기를 살리기 위해 전국을 돌아 소록도까지 촬영을 가기도 했다. 또 윤동주의 아름다운 시구(詩句)를 영화 전편에 걸쳐 들려줄 예정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사랑한 청년의 얼굴은, 그의 서거일인 2월 16일 이틀 뒤 만날 수 있다.
 
기사 이미지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 돌아 논가 외딴 우물로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기사 이미지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년 9월

세대는 달라도 청춘의 열정은 같으니까
강하늘&박정민

-실존 인물을 연기했는데, 각자 어떻게 자신의 역할을 해석했나.

강하늘(이하 강) “‘윤동주는 이런 사람이다’ 하고 확고한 결론을 내리고 시작하진 않았다. 단지 시를 사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에서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1분 1분을 시로 만들 수 있는 사람. 그는 거창한 것을 시로 쓰지 않았다. 지금 앉아 있는 의자에 대해, 흘러가는 바람에 대해 썼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고 그것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박정민(이하 박) “대사에 나오는데, 송몽규는 불나방 같은 사람이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싸우고야 마는 사람. 동물적이고 행동주의적인 면모가 있는데 그게 윤동주한테 영향을 끼쳤고, 그로 인해 모두가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정말 멋있지만 가엾다. 시 쓰는 데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그가 쓴 ‘하늘과 더부러’라는 시를 따로 적어서 품고 다녔다.”

“‘하늘과 더부러’라서 저하고 하고 있다. 하하.”

-영화에서 윤동주와 송몽규의 관계가 무척 중요한 것 같다.

“윤동주는 송몽규에게 시기와 열등감, 미안함을 느끼지만, 윤동주의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제일 소중한 사람이다.”

“송몽규는 윤동주가 우선인 사람이다. 윤동주가 시인으로 출세하고, 교육도 잘 받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자기 일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브로맨스’까진 아니어도, 연인만큼 서로를 생각하는 것 같다(웃음).”

-두 배우 모두 전작에서 동세대 청춘을 연기해 왔다. ‘동주’의 청춘은 70~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물’(2015, 이병헌 감독)이나 ‘쎄시봉’(2015, 김현석 감독)에서 다른 세대의 청춘을 연기했지만, 기본적으로 청춘은 어느 세대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스마트폰이 없을 뿐 청춘의 열정만은 똑같다.”

“그 시절을 고증하는 책의 문체가 고리타분해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사실 30년 뒤에 2010년대를 돌이켜 보면 고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 않나. 지금 우리가 망나니이더라도(웃음). 감독님도 ‘동주’라는 이름에 눌리지 말고 명랑하고 유쾌하게 가길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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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윤동주의 시 같기를
이준익 감독

-지금, 왜 윤동주인가. “‘아나키스트’(2000, 유영식 감독) 를 제작할 때부터 일제강점기를 영화화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아나키스트’가 식민지시대를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였다면 ‘동주’는 그 시대 사람들의 내면 갈등과 딜레마, 페이소스를 그리는 데 무게를 실었다. 윤동주는 그런 접근이 가능한 인물이었다. 예컨대 그는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에도 갔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친일파인가? 그렇지 않다. 당시 인구의 80%가 창씨개명을 했다. 36년이란 질곡의 시간을 거쳐 온 사람들을 단순히 친일·반일로 나눌 순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역사 논쟁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윤동주의 삶을 영화화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그는 행동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영화적 소재로 봤을 땐 드라마가 약했다. 그러다가 송우혜 작가가 쓴 『윤동주 평전』(서정시학)을 읽게 됐다. 거기서 고종 사촌인 송몽규를 발견했다. 같은 집에서 윤동주보다 한 달 전에 태어났고, (독립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가 죽고 난 뒤, 한 달 후에 죽었다. 두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피아(彼我) 구분이 없는 관계였다. 송몽규와 함께한 여정에서 윤동주의 주옥같은 시가 탄생한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시나리오의 뼈대가 됐다.”

-윤동주가 송몽규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건가. “그렇다. 시나리오에 윤동주가 송몽규에게 질투와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송몽규는 윤동주보다 먼저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오늘 촬영한 장면인데, 연희전문학교 졸업식 때 송몽규가 대표로 상도 받았다. 윤동주는 의도치 않게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 열패감을 이겨내려 더욱 더 강렬한 시 세계에 빠져들었을 거라 본다.”

-영화에 윤동주의 시가 자주 나오는지. “그의 삶에 보석 같은 순간, 지옥 같은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마다 강하늘의 내레이션으로 배치했다. 열 편 이상 된다.”

-흑백으로 촬영한 이유는. “시대물이라 세트에서 찍거나 고건축물을 찾아다녀야 했는데, 제작비가 5억원인 저예산 영화다 보니 어설프게 보일 공산이 컸다. 그래서 흑백으로 가린 거다(웃음). 또 하나는 우리가 윤동주를 떠올려 보면 학사모를 쓴 흑백 사진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윤동주에 대한 컬러 이미지가 없다. 과거의 인물이지만 흑백 화면을 통해 현재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투자를 더 받아 규모 있게 찍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의 시 세계엔 단정함과 소박함이 있다. 스물일곱 살에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죽어간 아름다운 시인의 명예를 위해 영화의 내용과 형식이 일치했으면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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