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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왕 조용필 히트곡 ‘허공’, 사실은 신군부 비판한 노래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5월20일 11시42분    조회: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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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 대표 작곡가인 정풍송 씨(76)가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가수의 음반 취입용 노래, 영화음악, 방송가요 등으로 지금까지 작곡한 노래는 2000여 곡에 이른다. 데뷔 이후 매년 50곡가량 지은 셈이다. 그가 만든 노래는 패티김 이미자 최희준 조영남 조용필 인순이 최진희 김연자 설운도 주현미 등 당대 인기가수들이 불렀다. 수많은 히트곡 중에서 가장 애착을 느끼는 노래는 ‘웨딩드레스’와 ‘허공’이다. 

 ○ 조용필, 미워 미워 미워 그리고 허공 
 
1980년 정풍송 씨는 지구레코드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전속가수 조용필이 찾아와 “크게 히트할 곡 부탁합니다”라고 했다. 새 곡을 만들려다 작사, 작곡해 뒀던 ‘미워 미워 미워’를 주기로 했다. 조용필을 불러 연습을 시켰더니 “선생님, 이겁니다”라며 만족해했다. 음반이 100만 장 넘게 팔린 것이 공인돼 미국 암펙스 골든릴상을 받았다. 일본 소니 측이 일본어 음반을 내고 일본 A급 가수 16명이 리메이크할 정도로 대박을 쳤다. 당시 한국이 국제저작권협회에 가입하지 않아 저작권료는 한 푼도 없었다.


조용필이 정 씨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미워 미워 미워’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조용필에게 다음 곡으로 ‘허공’을 주기로 했다. 이 곡을 만들 때 가졌던 울분과 한을 토해낼 가창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1982년 반주 음악을 녹음했지만 ‘미워 미워 미워’ 히트로 조용필이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느라 바빠 노래 녹음을 못 했다. 3년 뒤 노래를 녹음해 음반을 내놓자마자 국민가요가 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86년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허공’으로 대상을 받은 조용필, 정 씨, 임정수 지구레코드 회장(오른쪽부터).
 
허공은 사연이 있는 정 씨의 대표곡이다.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렸다. 민주화가 곧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12·12쿠데타로 신군부가 등장해 물거품이 됐다. 허망하고 참담한 심정을 삭일 수 없어 울면서 펜을 들었다. ‘허공’이 제목으로 떠올랐다.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민주…’ 
 
당시 노래는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검열을 받아야 했다. 둘째 줄 가사 ‘너무나도 멀어진 민주’로는 검열을 통과하지 못할 게 뻔했다. 지인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투옥됐을 때 모함을 당했다는 진정서를 냈다가 경찰 특수수사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아픈 기억도 되살아났다. 
 
고민 끝에 ‘민주’를 ‘그대’로 바꾸기로 했다. 단어 하나를 바꾸자 사랑 타령 분위기로 탈바꿈했다. 연막을 더 쳐야 할 것 같아 1절 ‘설레이던 마음도 기다리던 마음도’를 2절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와 맞바꿨다. 사전 심의를 신청한 뒤 들통날까 마음을 졸였으나 다행히 그대로 통과했다. 
 
사실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는 김영삼(YS) 김대중(DJ) 두 사람이 ‘서울의 봄’ 때 적극 협조했더라면 이런 불행은 없었을 것이라는 원망스러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정 씨는 “허공 가사를 원래대로 했다면 당시엔 더 히트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기억되고 불리는 노래로 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대중가요 가사에서 은유와 비유의 위력을 실감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김상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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