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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엑스 마키나>에서 세계 최고의 검색엔진 블루북의 프로그래머 칼렙(돔놀 글리슨 분)은 사내 이벤트에 당첨되어 회장 네이든(오스카 아이작 분)의 사택에 초대된다. 네이든은 블루북의 창업자이자 천재 개발자로, 그의 사택은 장엄한 협곡과 첩첩산중을 자랑하는 대자연 속에 비밀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칼렙은 일주일간 네이든의 사택에 머물면서 튜링 테스트에 참여하게 된다. 네이든이 만든 A.I.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 분)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에게 자의식이 있는지 판단해보는 것이다.
인간 칼렙과 A.I. 에이바의 대화는, 서로 인간이고 A.I.고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 간의 대화처럼 흐른다. 극 중 네이든의 말마따나 요즘 들어 자주 정전이 되는데, 급기야 에이바가 정전 시간을 이용해 칼렙에게 '네이든을 믿지 말 것'을 청한다.
칼렙은 에이바가 계속 생각나는 자신을 어쩔 수 없어 하는 가운데 에이바도 자신을 호감 있어 하는 것을 느낀다. 말로도, 표정으로도, 행동으로도. 에이바는 자의식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일까? 약속한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 상황, 칼렙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네이든은 그곳에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
유명 각본가의 데뷔작
▲ 장르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낸 유명 각본가 알렉스 가랜드의 데뷔작. 영화 <엑스 마키나>의 한 장면.
ⓒ UPI코리아
영화 <엑스 마키나>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소재를 가지고 한정된 인원으로 줄거리를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모든 인류가 관심을 갖고 뛰어들어도 쉽게 풀지 못할 철학적이고 과학적이고 심리적인 사항을 지적이고 도도하고 깔끔하게 들여다보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는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데, 그는 일찍이 영화계에서 SF와 공포 스릴러 장르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대니 보일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비치> 원작자이자, 역시 대니 보일 감독의 걸작 좀비 영화 <28일 후> 각본가로 유명하다.
이후에도 <선샤인> <저지 드레드> 그리고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시구로 가즈오의 대표작 <나를 보내지마>를 원작으로 한 <네버 렛 미 고>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그러니, 영화계에 입문한 지 15년 만에 연출 데뷔작을 선보인 것이다.
영화는 정통 SF임에도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는데 아카데미에서 시각효과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함께 후보에 함께 오른 작품들이 무려 <스타워즈> <매드맥스> <마션> 등이었다. 영화 줄거리 이면에 깔린 기가 막힌 철학적 개념을 들여다보기 전, 외형상 기가 막힌 시각 요소만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찾기 힘든, 인간과 A.I.의 차이
▲ 영화는, "인간과 A.I.의 차이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영화 <엑스 마키나>의 한 장면.
ⓒ UPI코리아
영화의 기가 막힌 시각 요소를 뒤로 하고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질문에 다다른다. '인간과 A.I.의 차이가 무엇인가?' 칼렙과 에이바의 미묘한 대화와 행동에서 어떤 위화감을 찾기가 힘들다. 인간 대 인간의 대화가 이보다 덜하면 덜했지 더하진 않더란 말이다.
에이바에게 묘한 느낌, 사랑인 듯한 감정을 느끼는 칼렙은 네이든에게 따지며 에이바로 하여금 자신을 유혹하고 사랑하게 만들었냐고 묻는다. 이에 네이든은 네가 아닌 남자를 사랑하게 만들었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너도 여자를 사랑하게 만들어진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데, 칼렙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시작되는 네이든의 장광설은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충격을 배가시킨다. 그는 칼렙에게 인간 또한 스스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말한다.
"네가 흑인 여성에 끌린다고 치자. 태어나면서 모든 인종의 여성을 분류하고 분석해서 흑인 여성을 선택한 거야? 그냥 끌린 거지. 대부분의 행동은 저절로 나오는 거야. 그림 그리고, 숨 쉬고, 말하고, 섹스하는 거 모두.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A.I. 에이바에게 자의식이 있어 사랑을 할 수 있고 그래서 칼렙을 선택했다는 주장에서, A.I. 에이바든 인간 칼렙이든 프로그램되어 태어났다고 하는 주장으로. 영화는 호들갑 없이 클래식한 흐름으로 공포 스릴러 이상의 충격을 선사한다. 적어도 네이든이 말하는 바는 나름의 논리적이고 과학적이어서 반박하기 힘든 주장이다.
클래식하고 우아한 명작
▲ 정녕, 찾기 힘든 클래식하고 우아한 SF 명작이다. 영화 <엑스 마키나>의 한 장면.
ⓒ UPI코리아
그동안 우리는 로봇 SF 콘텐츠를 참 많이도 접해 왔다.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 이야기 <바이센테니얼 맨>, 감정을 가진 최초의 로봇 데이빗의 이야기 <에이 아이> 정도면 충분히 얘기가 통할 듯하다. 고도의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주인공인 이야기.
<엑스 마키나>는 앞서 언급한 두 걸작과 사뭇 다른 분위기와 어조의 영화이지만 나름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시선은 로봇 외부와 경계이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로봇이다. 그렇기에 로봇(에이바)과 인간(칼렙)과 신(네이든)의 입장 그리고 모습과 내외부를 아우른다. 그러면서도 너무 멀리 가지도 않고 지루하지 않게 이런 요소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데 있어서 완벽함을 보여주었다.
앞의 두 작품이 다분히 감정을 가진 로봇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며 한편으로 논란을 던지는 술수를 펼쳐 영화적으로 가치 있는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면, 이 작품 <엑스 마키나>는 조금 다르다. 이 영화는 장대한 자연과 치밀한 인공지능의 외형적 대응과 군더더기 없는 대화와 깔끔한 철학적 명제의 내면적 조응만을 앞세우며 클래식하고 우아한 명작, 아니 명품의 반열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도 우리는 로봇 SF 콘텐츠를 보다 더 많이도 접할 것이다. 극 중에서 네이든이 말했듯 '로봇은 진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진화한 로봇이 인류를 대신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현 인류의 다음 세대로 편입, 또는 진입하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인류는 인류의 편의를 위해서, 욕망에 취해서, 차근차근 또는 빨리빨리 자신들을 몰아낼 다음 세대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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