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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조커’… 악은 어떻게 탄생했나 현실지옥의 ‘사회학 개론’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9월27일 05시27분    조회: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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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트맨’ 시리즈의 배경인 ‘고담(Gotham)시’ 안으로 들어간다면 과연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테러, 강도, 살인 청부가 일상이고 마피아와 좀도둑이 우글거리는 곳. 부패한 검찰과 경찰, 테러당하는 판사. 환경미화원의 파업으로 곳곳에 쓰레기가 넘쳐흐르며 쥐들이 우글거리는 곳. 정의는 늘 좌절되는 곳. 무엇보다 약자는 언제나 무관심과 무례함의 대상이 되는 곳.


다음 달 2일 개봉하는 영화 ‘조커’는 미국 DC코믹스 만화에서 혼돈과 악 그 자체로 등장하는 캐릭터 ‘조커’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자 조커를 잉태한 고담시에 관한 이야기다.


노쇠한 어머니를 모시고 고담시에 사는 광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니로)처럼 유명한 코미디언이 되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본인은 늘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신세다. 기괴한 웃음을 조절하지 못하는 장애와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지만 사회복지라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상담은 지극히 형식적이고 그마저도 지원금 부족으로 끊긴다. 가진 자들과 못 가진 자들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증오가 넘쳐흐른다. “엄마는 제게 늘 웃으라고 말씀하셨어요”라고 하는 플렉의 말은 공허하고 짙은 분장 속 그의 웃음이 늘 울음과 겹쳐 보이는 이유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다크 나이트’(2008년)가 배트맨과 조커를 통해 풀어내는 선과 악의 철학 개론에 가깝다면 ‘조커’는 플렉의 삶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사회학 개론으로 다가간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잠수정을 타고 암흑의 심연으로 조금씩 내려가듯 ‘조커’라는 캐릭터를 통해 사회가 후천적으로 만들어내는 악의 기원을 탐험한다.

영화의 말미 마침내 아서 플렉은 사라지고 도심의 소요 한가운데 ‘조커’만 남는 그 순간, 고담시는 곳곳이 파괴되며 무정부 상태에 이른다. 플렉과 고담시를 서서히 망가뜨린 건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다. 분노에 찬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광대’라고 부르는 공감의 결여,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등을 돌리는 무례함이다.



필립스 감독은 셰익스피어에서 햄릿을 꺼내 변주하듯 새로운 형태의 코믹스 영화를 만들어냈다. 코믹스 캐릭터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으며 ‘조커’는 올해 열린 제76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슈퍼히어로를 다루는 코믹스 영화가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26일 열린 라이브 콘퍼런스에서 필립스 감독은 “영화가 언제나 당대의 다양한 일들을 반영한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이 영화에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사회경제적인 지위, 취약계층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등이 담겼다.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다양한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속 조커를 온전히 완성하는 건 플렉과 조커를 넘나드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다. 피닉스는 냉혹한 사회에서 탄생한 괴물을 그리기 위해 하루에 사과 하나만 먹으며 23kg을 감량해 한 사내가 파괴돼 가는 과정을 완벽하게 연기해 낸다. 피닉스는 라이브 콘퍼런스에서 “이 배역에 많은 걸 쏟아부을수록 소진되거나 고갈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크 나이트’에서 열연한 히스 레저의 ‘조커’와 영원히 비교될 운명을 타고났지만 피닉스는 플렉의 얼굴에 담긴 천진함과 분노, 광기, 좌절만으로도 거대한 아이맥스 스크린을 빈틈없이 채운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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