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개봉작 ‘속물들’ 주인공 유다인의 연기 변신
한때 정글같은 촬영장 가기 싫어
힘겹게 버티는 주인공 보며 위로
시간 지나고나니 자신감도 생겨
“신이 났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표현할까, 욕을 섞은 대사들은 어떻게 더 실감 나게 내뱉을까. 당장 촬영장으로 달려가고 싶었어요.”
배우 유다인(35)은 영화 ‘속물들’(감독 신아가 이상철·제작 주피터필름)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한동안 주춤하던 ‘연기 세포’가 깨어나는 기분을 맛봤다고 했다. 욕망으로 점철된 약육강식의 세계로 묘사되는 극 중 미술계에서 안간힘으로 버티는 주인공 선우정의 심정에 그대로 감정 이입했기 때문이다. 그가 몸담은 영화계도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인 정글의 세계나 다름없다. 연기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삶의 유다인이 선우정의 마음에 공감한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유다인은 뭐든 맡은 역할과 작품을 ‘똑 부러지게’ 소화하는 연기자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혜화, 동’은 물론 ‘용의자’ ‘올레’ 등 영화를 통해 매번 다른 색깔의 인물을 표현하면서도 관객에 믿음을 줘왔다. 3년 만의 영화인 ‘속물들’에서는 성숙하고 깊어진 유다인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연기한 미술작가 선우정은 ‘표절도 차용미술의 한 방편’이라고 말한다. 남의 작품을 제 것 인양 베껴놓고도 예술가인 척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남들의 속물이라는 손가락질에 당당하지만 실은 가진 재능 그 이상을 바라기에 늘 불안한 상태다.
“등장인물들이 선우정을 향해 ‘재능이 없다’ ‘미술을 관두라’고 말하잖아요. 사실 저도 많이 들었던 말이에요. 그러니 연민이 갔죠. ‘버틴다’는 대사가 확 와 닿더라고요.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저를 가장 힘들게 한 말은 ‘잘 될 줄 알았는데…’라는 이야기예요.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도. 저를 힘들게 했어요.”
연기 잘하는 유망주가 전부 화려한 스타의 길을 택하는 건 아니다. 각자 가치관에 따라 배우의 길을 단단히 닦아가는 이들도 있다. 유다인도 그랬다.
“그런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될 텐데 잘 안되더라고요. ‘속물들’을 만나기 전까지 2년 정도는 촬영장에 가기도, 사람들도 무섭더라고요. 제안 받는 작품들도 있었는데 괜히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거절했어요. 참 쉽지 않네요.(웃음)”
속내를 꺼내던 유다인은 얼마 전 배우 조여정이 한 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연기를) 짝사랑 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한 수상 소감에 누구보다 공감했다고도 털어놨다. “상대는 받아주지 않는데 혼자 애걸복걸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연기를 해온 적도 있었다”며 “다행히 그런 시간을 지나 자신감을 찾고, 잘할 수 있는 연기에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그렇기에 ‘속물들’은 유다인에게 각별한 작품이다. 자신을 깨고 새로운 무대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돼 줬기 때문이다. 비록 허구의 캐릭터이지만 선우정으로 살아간 몇 개월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까지 바꿔놓았다.
“실제로 속물 같은 사람을 만나도 이제는 저 자신을 지키면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자신을 칭찬하고 다독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유다인은 최근 tvN 단막극 촬영을 마쳤다. ‘속물들’로 얻은 에너지를 또 다른 작품들에 쏟아내고 싶다는 그는 “염정아 선배님의 ‘장화, 홍련’같은 영화를 꼭 하고 싶다”며 크게 웃어 보였다.
● 유다인
▲ 1984년 2월9일
▲ 2005년 SBS 드라마 ‘건빵선생과 별사탕’ 데뷔
▲ 2010년 영화 ‘혜화, 동’ 제3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신인여우상, 제13회 프랑스 뚜르 아시안영화제 여우주연상
▲ 2013년 영화 ‘용의자’
▲ 2014년 tvN 드라마 ‘아홉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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