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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요구했던 유럽 여성 영화인들…성공 비결은?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3월12일 06시33분    조회: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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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절반'을 요구해 온 유럽 영화계 여성들의 성평등 바람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5050x2020 운동'은 성폭력에 집중한 '미투운동'과는 달리, 2020년까지 영화계 내 여성 영화인들의 펀딩, 영화제 선정, 배급, 업계 내 관련 기관 고위직 진출 비율을 절반으로 끌어올리자는 목표를 담고 있다. 이 운동의 최전선에는 스웨덴 영진위 (SFI: Swedish Film Institute), 독일의 프로쿼오테 필름 (ProQuote Film), 프랑스의 '컬렉티브 5050' (Collectif 5050) 등의 단체들이 있다.

이들은 지난주 폐막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기간에 모여 그간의 성과와 향후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과제 등 관련 주제에 관해 토론 행사 및 네트워킹 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들이 열렸던 베를린국제영화제 또한 사상 처음으로 여성 집행위원장을 영입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베를린영화제는 마리엣트 리슨베익(Mariette Rissenbeek) 집행위원장과 카를로 챠트리안(Carlo Chatrian) 아트 디렉터가 공동으로 영화제를 총괄하는 운영체계를 도입했다.

이렇듯 남녀가 공동으로 대표 직책을 공유하는 시스템은 독일 내 영화계 뿐만 아니라, 정당 및 문화계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추세다. 마리엣트 리슨베익 집행위원장은 네덜란드 출신으로 그간 광고업계, 영화 제작및 영화 배급업에 종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그는 독일의 영진위인 저먼필름(German Films)의 위원장&부위원장직을 역임했고, 유러피언필름프로모션을 관장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베를린영화제는 46페이지에 달하는 '2020 젠더 평가 보고서 (Gender Evaluation 2020)'를 언론과 영화계에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작년 영화제 스태프 성비율 뿐만 아니라, 영화제 각 부문 및 부대 행사에 초청된 모든 영화와 게스트들의 성비도 자세히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작년 영화제에 초청된 여성 감독은 총 138명으로 전체 프로그램의 45%에 해당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제에 참여했던 스태프의 성비가 정확히 50:50이었다. 또한 영화제에 출품된 총 6825편의 작품들 중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33.5%에 해당했는데, 실제로는 36.7%에 해당하는 작품이 초대되었다.

작품을 만든 영화인들이 공식 출품과정을 통해 영화제에 지원하기도 하지만, 프로그래머들이 직접 다양한 방식으로 스카우팅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 여성 감독의 영화 비율이 높아진 건 주최측이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평등을 위한 이런 변화의 바람은 유럽 내 다른 국가에서도 일고 있다. 베를린영화제와 동시에 열리는 유러피언필름마켓(EFM: European Film Market)은 'EFM Horizon' 특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여성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지난 2월 23일 '우리는 2020년까지 절반의 평등을 포기하지 않는다(Won't Back Down: 5050x2020)'를 모토로 열린 이 행사는 스웨덴 영진위가 공동주최했다.


'5050x2020 운동'의 로드맵을 제시하고자 기획된 이 패널토론 행사는 '영화업계 내 성평등 운동의 록스타'로 통하는 스웨덴 영진위의 안나 세르너(Anna Serner) 위원장의 기조연설로 시작되었다. 안나 세르너 위원장은 먼저 이 '5050x2020' 캠페인이 시작되었던 2016년 당시 칸영화제 분위기를 전하며, "현재는 보수성향의 가톨릭국가 아일랜드, 발칸반도, 남유럽의 스페인 영화계를 포함, 다양한 국가에서도 이 주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2011년 세르너 위원장이 스웨덴 영진위 위원장으로 선정될 당시만 해도, 자국 영진위 재정지원의 26%정도만 여성 감독들의 작품에 지원되었다고 한다. 정부 지원의 절반이 여성 영화인들에게 할당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그는 "2016년까지 남여펀딩 비율 50:50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여성할당제라는 쿼터시스템을 도입하겠다"며 정부기관의 적극적인 개입계획을 천명하고 나서 국내외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현재 스웨덴은 펀딩 여성할당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의 캠페인에 대해 소개하며 "자국의 성공 요인은 정면으로 문제에 도전하는 가운데 구체적인 타임라인과 실행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스웨덴 영진위는 세르너 위원장의 강력한 리더십과 아울러, 구체적인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및 공유, 교육프로그램 진행, 다른 관련 단체들과의 연대, 꾸준히 확고한 목소리를 내는 적극적인 태도로 이 운동을 글로벌한 규모로 확대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기관은 2017년말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성평등 보고서를 제작하고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보급해오고 있다. '머니 이슈 The Money Issue' 및 'Looking Back and Moving Forward'라는 타이틀의 이 보고서는 2000년부터 영화계내 성평등 실현이라는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한 스웨덴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이뤄졌다. 

프랑스에서 이 운동을 주도해온 관련 단체, 'Collectif 5050 x 2020'의 델핀 베쓰 (Delphyne Besse) 공동대표도 패널로 참석하여 현재 칸, 베를린 등 120여개가 넘는 영화제들이 '성평등 약속 (Gender Parity Pledge)'이라는 성명서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 성명서는 영화제들이 초청하는 작품의 감독 및 선정위원회 회원들의 성별, 선정과정 등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세일즈 에이전트가 본업인 그는 "출장 기회를 이용해 틈틈히 영화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하고 있다"고 전하며 "아시아 지역에서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타임즈업 영국지부(TimesUp UK)의 헤더 라바트 대표(Heather Rabbatts)도 참가해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를 호소했다. 타임즈업(Time's Up)은 미투운동에 이은 또 하나의 단체이자 운동으로 성희롱, 성폭행 등 성범죄와 성차별에 대항해 미국 영화계를 중심으로 2018년 1월 시작되었으며, 온라인을 통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피해자들을 법률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기금을 조성하는 운동도 하고 있고, 현재 수백명의 변호사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5050x2020' 운동이 영화계 내에서 표현의 자유를 감소시킨다는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호응하는 이유는 운동 주체의 관용과 포용성 때문이다.

스웨덴 영진위 세르너 위원장은 "지난 십년 사이 스웨덴은 10~15%가량의 이민률 증가로, 더 이상 백인들만의 나라가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오늘 다양한 배경의 영화인들이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소수 인종, 경제 발전이 상대적으로 더딘 지역, 성소수자 출신 영화인들에게도 공정한 펀딩기회가 제공되어야 하고, 업계 내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스웨덴 영진위는 자체 직원 채용에 있어서도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이들을 고용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라바트 대표도 "영화계 내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지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 운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력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프로듀서 케티웨(Kethiwe Ngcobo)씨가 "<기생충>의 오스카 쾌거로 인해 더 이상 오스카가 백인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수상은 우리 아프리카 영화인들에게도 잠재적 성공의 가능성을 열어주어 무척 고무적이다. 앞으로 세계 영화계가 아프리카 영화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자, 이에 힘을 실어주며, <기생충>에 대해 최근 트럼프가 한 발언을 비판하기도 했다. 

세르너 위원장은 "실패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단기적인 변화는 효과가 적고 진정한 변화는 몇 세대에 걸쳐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경제력이 힘의 근원"이라며 "여성 영화인들이 자신이 쓴 대본과 작품 등 저작권 관리에 신경 쓸 것"과 아울러, "펀딩을 결정하는 기관및 기업의 주체들이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선정하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독일에서의 여성할당제 운동 이끄는 '프로 크보테 필름'

독일 영화계에서 여성 할당제를 요구하는 운동은 '프로 크보테 필름'(ProQuote Film)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도 지난달 23일 베를린예술아카데미에서 여성쿼터제와 관련한 행사를 개최했다. 현재 약 50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이 비영리단체는 2014년 베를린에서 창립되었다.

영화 및 TV부문 여성 감독들의 단체, '프로 크보테 감독 ('ProQuote Regie')에서 출발했으나, 다른 직업군을 포함시키기 위해 명칭을 바꿨다. 이들은 '프로 크보테 필름'의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독일정부의 재정지원에서의 공정성과 함께 독일 영화와 TV부문에서 여성 감독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창립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프로 크보테 필름'은 연출 이외에도, 제작, 대본, 카메라, 사운드 등 모든 프로덕션 관련 분야에 절반의 여성 쿼터를 요구해왔고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다. 독일 및 유럽에서는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영화들이 공공기금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여서 공적 영화기금의 향방에 집중하고 있다.

2017년 독일연방필름펀드 (DFFF: Deutschen Filmforderfonds)가 제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이 기관은 2007년에서 2016년 사이 극장 개봉 영화에 총 6억 6200만 유로(한화로는 8900억 원)을 지원했다. 2007년에서 2010년 사이 10.8%~11.8%의 펀딩이 여성 감독의 작품에 지원된 것에 비해, 2014년부터는 14.2%로 늘어났다. 이후 2015년과 2016년엔 각각 15.1%, 17.7%를 기록했다.

또한 독일연방필름위원회(FFA: Filmforderungsanstalt)가 2017년 총 1100편의 영화를 대상으로 연구한 '젠더와 필름' 조사에 의하면, 독일 내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전체 21%에 국한된다. 이 연구는 또한 영화 전문 교육기관에서 연출을 전공한 44%의 여성 중 절반에 해당하는 23%만 현장에서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보여준다. 새로운 젠더 모니터링 결과를 담은 보고서는 올해 상반기에 발표될 것으로 전해진다.

'프로 크보테 필름'의 관계자들은 영화계의 성평등 및 다양성 증진을 위해 지난 몇 년간 독일의 정치인 및 주요 기관의 총책임자들을 만나 현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해오고 있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10가지 사항에는 영화지원금의 50% 할당 이외에도, 공영방송및 펀드기관, 영화교육기관, 영화제등의 임원 50% 여성 할당이 포함된다.

아울러 공영방송과 펀딩기관이 육아지원을 위한 노동조건을 확보하도록 책임질 것, 여성 감독들이 남긴 작품 보전과 교육에도 힘쓸 것, 공영방송및 펀딩기관, 대학교가 매년 '젠더 모니터링 보고서'를 발표할 것,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 등을 추진해오고 있다.

'프로 크보테 필름'은 자신들의 노력의 결과로 이뤄낸 성과를 웹사이트 및 관련 행사를 통해 알리고 있다. 영화펀드기구 선정위원회의 여성 위원 50% 포함하는 것을 비롯, 독일 공영방송 ARD와 스튜디오 함부르크 프로덕션그룹은 향후 제작할 TV시리즈및 영화의 여성 감독비율을 각각 40% 및 50%로 할당하는 시스템을 새롭게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영화와 연극, TV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성희롱 및 성폭력 피해를 지원하는 '테미스 상담센터(Themis)'를 신설하기도 했다.

'프로 크보테 필름'은 구조적인 성차별 산업구조 이외에도, 정형화된 여성의 이미지 및 역할과 인종차별적인 롤모델이 미디어에 지배적으로 존재하는 문화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외에도 언론계 내 여성 할당을 요구하는 '프로 크보테' 단체도 2012년 결성되어 독일내 7개 지부와 300이상의 저널리스트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독일내 약 360개 일간지와 주간지의 편집자 중 3%, 지방지의 5%만이 여성이며, 공영방송국 12명의 대표중 2명만이 여성이라는 극단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한편, 유럽내 여성 영화인들의 네트워킹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유럽 영화계 여성 네트워크'(EWA Network)는 유럽내 주요 영화제에서 네트워킹 행사를 주관해오고 있고, 여성 영화인들을 상대로 다양한 세미나, 워크숍및 멘토링 행사도 제공하며 업계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2017년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운동은 유럽에서도 영화 및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권리 확대를 위해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로 커지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유럽의 주요 영화제에서는 여성주의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지속적으로 열리는 가운데, 앞으로도 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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