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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수교육발전 향상을 위한 ‘15.5’ 행동계획 가동!
  • 9월 ‘밤하늘 극장’: 올해의 보름달은 ‘17일에 둥글어’
    9월, 다채로운 천문현상이 련이어 펼쳐진다. 그중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보름달은 비교적 드믈게 ‘15일’도, ‘16일’도 아닌 ‘17일’에 둥글어진다. 행성과 달의 조우 9월 7일부터 17일까지 달은 화성, 목성, 금성, 안타레스(心宿二)와 차례로 가까워진다. 그중 대중이 감상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은 9월 14일에 펼쳐지는 금성과 달의 근접 현상이다. 이번 현상은 우리 나라 남방의 관측조건이 더 좋다. 달이 금성을 가려 우리 나라 운남, 귀주, 광서 등 일부 지역의 대중들은 지평선 우에서 달이 금성을 가리는 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 중국천문학회 회원 천진시천문학회 리사 양정은 비록 관측난도가 비교적 크지만 충분히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때 금성의 위성은 나비눈썹달과 비슷해져 망원경으로 보면 ‘큰달’과 ‘작은 달’이 서로 빛을 겨루는 듯한 흥미로운 광경을 볼 수 있다. ‘장경성’, 올해 가장 밝게 빛나 9월 19일, 금성은 ‘장경성(长庚星)’으로서 한해 중 가장 밝은 모습을 보이며 밝기가 -4.8등급에 이르러 서남쪽 하늘에서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 양정은 날씨가 맑은 경우 관심있는 대중은 서남쪽의 높은 건물이 가리지 않는 탁 트인 장소를 선택하면 낮은 하늘에서 금성을 볼 수 있으며 관측 가능한 시간은 해가 진 후부터 어두워지기 전까지 1시간 동안이라고 소개했다. 공교롭게도 올해 가장 작은 상현달 역시 9월 19일 하늘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날씨가 허락한다면 우리 나라 대중들은 당일 저녁 서남쪽 하늘에서 ‘D’자형 달을 관측할 수 있다. ‘15일의 달, 17일에 둥글어’ 9월 25일 추석을 맞이하게 된다. 올해 추석은 ‘15일의 달이 17일에 둥글어지는데’ 가장 둥근 시각은 9월 27일 0시 49분에 나타난다. 양정은 달을 감상할 때 가장 둥글게 보이는 순간에만 집착할 필요가 없다면서 25일, 26일, 27일 사흘 밤의 달은 육안으로 봤을 때 큰 차이가 없어 모두 감상하기에 적합하다고 밝혔다. 해왕성 충일 9월 26일, 해왕성이 충일(冲日)을 맞이하게 된다. 이른바 해왕성 충일이란 해왕성과 태양이 마침 지구의 량쪽에 나란히 위치해 세 천체가 거의 일직선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이날 해왕성이 태양빛을 받는 면이 완전히 지구를 향하게 된다. 양정은 “충일기간 해왕성과 지구의 거리가 가장 가깝고 시직경도 최대에 이르러 관측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하지만 해왕성 자체의 밝기가 약한 데다 이번 충일이 마침 보름달과 겹쳐 달빛의 간섭이 커서 망원경을 리용하더라도 찾기 어려우므로 관심있는 대중들은 보름달이 뜨는 며칠을 피해 관측하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임영화)
  • 대학 최년소 신입생 겨우 13세? 관련 대학 응답
    최근 사천 락산사범대학의 ‘2026년 최년소 신입생이 13세’라는 소식이 온라인상에서 퍼져 관심을 모았다. 보도에 따르면 락산사범대학이 8월 28일 발표한 2026년 신입생 데터에 따르면 올해 최년소 신입생은 2013년생으로 13세이며 최년장자는 1996년생으로 30세이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17세에 달했다. 기자가 락산사범대학 관계 부서로부터 확인한 결과 ‘2026년 최년소 신입생이 13세’라는 정보는 사실이였다. 해당 부서 직원은 해당 학생은 장애인 단독모집 위탁교육을 받는 전문대학생이며 다른 학교에서 3년간 교육을 받은 후 락산사범대학에 왔다고 밝혔다. “학생의 신분증을 통해 확인한 나이로 만 13세가 조금 넘어 14세에 가까운 나이이다.” 이 직원은 올해 신입생 중 30세 신입생도 관심을 받고 있다며 “제대군인 대상의 전문대학-본과 전형으로 우리 학교에 입학한 이 학생은 여러해 군복무를 하는 동안 원 학교의 학적이 계속 유지되였으며 제대후 관련 정책에 따라 본과과정으로 편입되였다.”라고 설명했다. 이 일은 네티즌들 사이에 다양한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네티즌들은 13세의 나이에 대학생활과 학업에 적응할 준비가 되였는지 의문을 제기했고 학교에 영재반이나 특별양성 관련 계획이 없다면 어린 신입생을 부각시키는 것은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네티즌들은 학업교육 외에도 학교가 조기 입학한 학생들에게 적합한 성장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김홍화)
  • 여러 지역, 학생들의 교내 휴대전화반입 금지 관련 법률 제정!
    AI 생성사진 주의! 우리 나라 여러 지역에서 학생들의 교내 핸드전화반입 금지에 나섰다. 학생들의 교내 휴대전화반입 금지는 학교규칙이 아니라 법규로 되였다. 2026년 9월 1일부터 <중경시 미성년자 범죄예방 조례>가 정식으로 시행되는데 그중 학교는 학생들의 휴대전화 등 스마트단말기제품의 학교 반입이나 교내 사용을 금지할 수 있고 학생들의 교내 인터넷사용행위를 엄격히 통제한다는 내용이 명확히 규정되여있다. 중경뿐만 아니라 복건 등지에서도 학생들의 교내 휴대전화반입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2022년 복건은 이미 학생들이 휴대전화(전화시계 포함)를 가지고 교실에 진입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2024년 광주는 조례를 출범해 중소학교 학생들의 교내 휴대전화 반입을 금지할 수도록 했고 2024년 하남 정주도 중소학교 학생들이 휴대전화 등 스마트단말기를 학교에 반입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다. 또한 국가차원에서 교육부는 2021년에 이미 통지를 발부해 중소학교 학생들이 원칙적으로 개인휴대전화를 학교에 반입할 수 없으며 학교는 휴대전화를 리용해 숙제를 내거나 학생들에게 휴대전화를 리용해 숙제를 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2025년 교육부는 재차 조치를 출범했는데 그중에는 “휴대전화 등 전자제품을 교실에 반입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여있고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화면끄기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장했다. 반드시 법을 제정해야 하는지는 각 지역이 상황에 맞게 신중히 고려해야 하지만 휴대전화를 교실에서 멀리하게 하려는 노력은 각측의 광범위한 공동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장민영)
  • 길림성 지질재해 황색조기경보! 훈춘시 주의!
    길림성자연자원청과 길림성기상국은 2026년 8월 31일 9시 9에 지질재해기상위험 황색조기경보를 공동발령했다. 오늘 낮부터 밤까지 연변주지역(훈춘시)에서 지질재해 발생위험이 비교적 높으므로(황색조기경보) 각 단위에서는 재해방지작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대응조치제안: 남색조기경보구역은 24시간 비상근무를 실시하고 통신련락을 유지하며 강우 및 수위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관련 부서는 지질재해 방어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황색조기경보구역에서는 남색조기경보 대응조치의 기초 우에서 현지 재해방지책임자가 재해위험이 높은 장소, 도로구간, 주민구역, 공사장 등에 대한 순찰 및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재해 직전 비상대비, 비상 련락·확인 점검 등을 잘하며 강우 및 수위 정황 모니터링을 강화하여 응급구조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김홍화)
  • 9월부터 이런 새 규정들 우리들의 생활에 영향 미쳐!
    《<주택공적금관리조례>를 수정할 관한 국무원의 결정》이 9월 20일부터 시행된다. 주택공적금을 인출해 임대료를 지급하는 경우 임대료가 가구 임금소득의 규정비률을 초과해야 한다는 문턱제한을 더이상 두지 않는다. 또한 자가거주주택 인테리어비용, 자가거주주택 관리비 지급, 국무원이 승인한 기타 주택 소비상황 등 주택공적금을 인출할 수 있는 사유를 새롭게 추가했다. 대출심사기간은 15일에서 10일로 단축된다. 중국인민은행, 시장감독관리총국은 련합하여 공고를 발표해 어떠한 단위와 개인도 인민페를 매매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명확히 했으며 다음의 경우는 제외한다. (1) 중국인민은행의 공고에 따라 류통이 중지된 인민페는 류통 중지일부터 매매할 수 있다. (2) 기념주화는 매매할 수 있다. (3) 중국인민은행이 규정한 기타 경우. 이 공고는 9월 1일부터 시행된다. <출경·입경에 관한 국무원의 규정>이 9월 15이부터 시행된다. 해외 전신사기, 불법취업 등 위험한 함정에 대해 <규정>은 출경인원이 출경을 신청하는 사유는 진실하고 합법적이여야 하고 이민관리기구의 신분, 신청사유 확인에 협조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며 허위자료 제공, 허위진술을 한 경우 이민관리기구는 출경·입경증명 발급을 거부하거나 출경을 금지할 권한이 있다고 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인공지능과 지능형 고객상담원 협동기제에 초점을 맞춘 국가표준 <고객련락서비스 인공지능 및 지능형 고객상담원 협동요구>가 9월 1일부터 실시된다. 경영자는 “인공지능의 답변은 회사의 립장을 대변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으로 생성된 콘텐츠는 법적효력이 없다” 등 리유만으로 약속리행을 거부할 수 없으며 기업은 지능형 고객상담원의 답변내용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금융상품 온라인 마케팅 관리방법>이 9월 30일부터 정식으로 실시된다. <방법>은 대출상품에 ‘낮은 문턱’, ‘즉시 입금’, ‘낮은 금리’ 등 마케팅문구를 사용해서는 안되며 결제기구의 계산대페지에 표시되는 결제수단은 대출 등 금융상품과 구분되여 보여져야 하며 리용자가 결제수단과 대출상품을 혼동하도록 오도해서는 안된다고 요구했다. <숏드라마발전 관리방법>이 9월 1일부터 시행된다. <방법>은 숏드라마는 투자규모와 주제 등에 따라 1류 숏드라마, 2류 숏드라마, 3류 숏드라마로 나누고 분류에 따라 등록공시와 발행허가제도를 시행하도록 규정했다. 숏드라마는 국가안전을 위협하거나 민족력사를 왜곡하거나 중화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훼손하거나 미성년자 합법적 권익을 침해하는 등 11가지 내용이 있어서는 안된다. 또한 인공지능기술로 생성 및 제작한 숏드라마는 각 회차의 눈에 띄는 위치에 안내표시를 추가해야 한다. <인터넷정보내용 다채널 배포서비스 관리규정>이 9월 1일부터 시행된다. <규정>은 인터넷정보내용 다채널 배포서비스기구는 만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 인터넷 생중계 게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명확히 했다. 만 16세 이상의 미성년자에게 인터넷 생중계 게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신분정보를 확인하고 그 부모 또는 기타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편집: 임영화)
  • 식후 백보를 걸으면 아흔아홉까지 장수한다?
    이는 지나치게 과장된 설이다. “식후에 백보를 걸으면 아흔아홉까지 산다”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어온 속설이며 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하고 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식후 ‘백보 걷기’가 문제 없지만 식후 산책에 대한 건의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심뇌혈관질환, 위하수, 체질이 비교적 약한 사람은 식사 후 즉시 운동을 해서는 안된다. 례를 들어 심혈관 및 뇌혈관 질환이 있는 많은 중장년층의 경우, 식사 후 즉시 운동을 하면 뇌의 상대적 허혈을 유발하여 어지럼증과 현기증, 혈압변동, 심지어 실신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 이 부류의 사람들의 ‘백보 걷기’는 식사 후 30분이 지나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또 산책과 같은 이완운동을 선택할 것을 권장한다. 로인들은 산책할 때 자신의 건강상태에 따라 시간과 강도를 합리적으로 계획해야 한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김홍화)
  • 한손으로 휴대폰을 오래 보는 습관? 빨리 고쳐야!
    최근 몇년 동안 초대형 스크린, 폴더블, 대용량 배터리, 고성능 카메라가 점점 더 많은 휴대폰의 판매 포인트가 되고 있다. 이러한 기능을 충족하기 위해 휴대폰의 무게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휴대폰을 쥐고 있으면 벽돌을 든 것 같아 잠간만 봐도 팔이 저리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장시간 잘못된 자세로 반근 가까이에 달하는 휴대폰을 쥐고 있으면 손가락, 손목, 어깨가 정말로 견디기 어려울 수 있다. 《BMC 공중보건》잡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 무게와 오른손 불편감 발생률 사이에는 통계적으로 현저한 련관성이 있는바 무게가 185.95g 이상인 휴대폰은 오른손 통증위험을 뚜렷하게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깨와 목 또한 묵묵히 압력을 받고 있다. 중화예방의학회 체육운동건강분회과위원장 곽건군은 무거운 휴대폰을 들 때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삼각근, 승모근, 회전근개 근육군이 지속적으로 수축하게 되며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목과 어깨의 통증, 어깨 경직, 회전근개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휴대폰이 무거울수록 사람들이 휴대폰을 더 낮게 내리는 경향이 있어 목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킨다. 서안교통대학 제2부속병원 정형외과 부주임의사 당일륜은 장시간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면 경견증후군, 근막통증, 만성경추통증, 심지어 두통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심각한 경우 경추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전한 사용방법 1. 적합한 기기 선택 자주, 장시간 사용하는 경우 무게가 200g 내외이고 손에 쥐기 적당한 너비의 모델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좋다. 2. 사용습관 개선 휴대폰화면을 시선 높이에 가깝게 유지해야 하며 목을 휴대폰에 맞추기보다 휴대폰이 눈을 따라가도록 해야 한다. 드라마시청, 독서, 영상회의 시에는 휴대폰 거치대를 사용하여 손과 목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한손으로만 휴대폰을 들지 말고 좌우 손을 번갈아 가며 사용해야 한다. 또한 장시간 타이핑보다는 음성입력을 적절히 활용하여 특정부위에 반복적인 부담이 가해지지 않도록 하고 만성피로를 예방해야 한다. 3. ‘30-30 원칙’ 준수 30분 알람을 설정하여 알람이 울리면 휴대폰을 내려놓고 30초에서 1분 동안 어깨를 돌리거나 손목을 풀고 주먹을 쥐였다 펴거나 목을 가볍게 움직여 긴장된 신체를 이완시키는 것이 좋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김홍화)
  • 개인 주택 대출 기한, 30년에서 40년으로 연장
  • 길림대학, 전공 특색반 2개 신설
  • 5월 10일, 북경 여름에 진입! 평년보다 10일 빨라
  • 식용유 개봉후 언제까지 두고 먹어도 될가?
    식용유의 류통기한은 얼마나 될가? 보통 18~24개월이다. 단, 이 날자는 ‘미개봉’상태의 보관기간을 말한다. 이는 개봉한 가공유를 이 기간 만큼 오래 보관한다고 해서 변질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개봉하면 식용유 속의 지방산이 산소와 화학적으로 반응하여 기름이 변질되고 과산화물, 알데히드, 케톤 및 기타 부산물이 생성된다. 2025년 《중국유지》는 일반가정의 일상 식용유사용습관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한 관련 연구를 발표했다. 항산화제가 첨가되지 않은 4가지 일반적인 식용유(아마씨유, 해바라기씨유, 콩기름, 락화생유)의 사용을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 5리터 포장 식용유는 42~63일 사용 후 과산화수치가 기준치를 초과했다. ▶ 1리터 포장 식용유는28~56일 사용했을 때 과산화수치가 기준을 초과했다. 따라서 이 연구는 5리터 포장 식용유는 42일 이내에, 1리터 포장 식용유는 28일 이내에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제안했다. 국가식량물자비축국 선전교육센터에서도 여름에는 개봉후 식용유, 특히 고도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식용유를 1~2개월내에 반드시 섭취할 것을 권장했다. ✅ 중점 긋기: 개봉후 식용유는 보통 2개월 이내에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만약 식용유를 따로 덜어내여 기름용기에 담아두었다면 가급적 1주일 이내에 모두 사용하는 것이 좋다. 식용유를 개봉한 후 병에 라벨을 붙이고 개봉시간을 표시할 수 있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김홍화)
  • 올해 휴가 5일 추가!
    AI 생성사진 국무원 판공청에서 앞서 발부한 <2026년 일부 공휴일 배치에 관한 통지>에 따르면 올해 법정휴일의 휴가조정 날자수는 지난해에 비해 5일이 더 많다. 양력설: 1월 1일부터 3일까지 총 3일 휴식하고 1월 4일 출근한다. 음력설: 2월 15일부터 23일까지 총 9일 휴식하고 2월 14일, 2월 28일에 출근한다. 청명절: 4월 4일부터 6일까지 총 3일 휴식한다. 로동절: 5월 1일부터 5일까지 총 5일 휴식하고 5월 9일 출근한다. 단오절: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총 3일간 휴식한다. 추석: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총 3일간 휴식한다. 국경절: 10월 1일부터 7일까지 총 7일 휴식하고 9월 20일, 10월 10일에 출근한다. 2026년 양력설, 음력설, 청명절, 로동절, 단오절, 추석과 국경절 휴가일수는 총 33일로 2025년 28일에 비해 5날 추가되였다. 휴가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최고조에 달했는데 단오절련휴까지 32일 남았다. 래원: 인민넷-조문판(편집: 장민영)
  • [무형문화유산]방일권, 조선족 상모춤에 새 생명을 불어넣다
    상모춤의 전승과 혁신,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가푸르스름 단색이던 야광 상모가 오색 령롱한 야광빛으로 빛나고 현란한 불꽃이 상모줄끝에서 화려하게 사방으로 부서진다. 흥겨운 줄뛰기의 리듬에 맞추어 상모춤군들이 어우러져 넘나들고 양걸춤 나무다리우에서 묘기를 부리듯 상모가 돌아간다...워낙 흥겹고 성수나는 상모춤인데 빛과 색채, 묘기까지 가미되니 구경군들의 아낌없는 환호성과 박수가 저절로 터져나온다... 이 모든 혁신의 중심에는 훈춘시문화관의 상모춤 안무가 방일권(39세)이 있다. 그는 전통 상모춤을 현대적 감각과 창의적인 기술, 그리고 끊임없는 혁신으로 재탄생시키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예술인이다.방일권의 이야기는 단순한 예술가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한 청년의 끈질긴 도전, 그리고 전통예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미래로 련결시키는 진정한 전승자의 기록이다.역경을 딛고 일어서다1987년, 화룡시 복동진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여난 방일권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열여섯 살, 누구에게나 불안정하고 연약하기 쉬운 나이에 그는 갑작스럽게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병원에 갈 형편이 되지 않아 부모님 모두 정확한 병진단조차 받지 못한 채, 불과 1년 사이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다. 어린 나이에 홀로 남겨진 방일권은 가장 먼저 부모님의 빚을 갚기로 결심한다. 집을 팔고 땅을 양도하여 부모님 생전에 진 빚을 모두 청산한 후, 그는 몇 백 원밖에 안되는 전 재산을 안고 연길로 향했다. 목적도 없이, 확실한 직업도 없이, 그는 낯선 도시에 몸을 던졌다.“밤에는 PC방에서 눈을 붙이고, 낮에는 온 시내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그의 추억속 연길에서의 나날은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연길시의 한 음식점에서 서빙으로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술집, 노래방 등 여러 곳을 전전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방일권은 당시의 어려움을 회상할 가난 자체보다는 ‘무기력함’을 가장 큰 고통으로 꼽았다. “일용직으로 있는 일은 힘들지만 몸이 힘든 게 아니라 마음이 힘들었어요.” 힘든 하루일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누워도 잠들지 못했다. 자신이 어떤 꿈도, 계획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가고있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였다. 방일권의 이 고백은 중요한 진정한 역경은 외부의 어려운 조건이 아니라 내부의 공허함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방일권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닌, 삶의 목표와 의미라는 것을 깨닫게 되였다고 말한다.운명을 바꾼 인연, 상모춤을 만나다2009년 10월, 방일권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온다. 평소 노래를 좋아했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웨딩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결혼식 축하 공연에서 축가를 부르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상모춤 전승인인 한상일 스승을 만나게 된다.한상일은 젊은 방일권의 처지를 알게 된 후 그에게 상모춤을 권유했다. 하지만 처음 방일권의 반응은 랭담했다. ‘온종일 고개만 흔드는 춤’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모춤에 대한 별다른 미련 없이 거절하려 했던 그였지만, 근 한 달 동안 이어진 스승의 권유 끝에 결국 도전을 결심한다.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방일권은 상모춤을 배운 첫날부터 상모를 회전시키는 기초 동작을 성공시킨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처음 상모를 돌리면 댕기가 잘 돌아가지 않기 마련이다. 그러나 방일권은 자신에게 숨겨져 있던 재능을 단번에 드러냈다.이 타고난 자질은 아마도 그가 겪은 시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도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었던 힘, 몸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그로부터 두 달 후인 2009년 12월, 그는 광주시에서 상모춤 공연 무대에 설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늘었다. 설명절 기간의 풍경구 공연이였는데 하루에도 반시간 간격으로 8차례나 공연해야 하는 힘든 첫 무대였다. 40일간의 힘들었던 공연 후 받은 3,000원은 그가 22년 인생에서 번 가장 큰 돈이였다. 이 돈을 쥔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자신도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였다.피와 땀으로 쌓은 기술2010년 3월, 방일권은 장백산풍경구로 자리를 옮겨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상모춤을 추었다. 이 시기는 그의 상모춤 기술이 가장 빠르게 성장한 시기였다. 그는 매일 밤 숙소 로비에서 인터넷에서 검색한 상모춤 동영상을 보면서 고난도 기술을 자체로 도전하고 익혔다.그에게는 무용 경험이 전무했다. 기본적인 스트레칭 하나에도 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옆에서 거들어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연습하다 머리를 땅에 부딪혀 상처를 입기도 여러번이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연습을 계속했다. 그 결과, 그의 이마에는 굳은살이 생겼고 탈모 현상까지 겪었다.이러한 고통은 상모춤이 단순한 ‘놀이’나 ‘기술’이 아니라 온몸과 정신을 갈아넣는 진지한 예술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리고 방일권은 그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갔다.중국 달인쇼, 그리고 스타덤꾸준한 노력은 결국 빛을 보았다. 2011년부터 전국 각지에서 방일권의 상모춤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그는 상모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되였다.같은 해, 《중국달인쇼》 제3시즌 연변지역 예선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 방일권은 본선에 진출해 전국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그의 독창적인 퍼포먼스였던 35m에 달하는 장상모 댕기를 객석까지 날려보내는 기술은 큰 화제를 모았다. 이 기술은 단순히 상모 댕기의 길이만 긴 것이 아니라 객석 관객의 머리우를 스쳐 지나가며 회전하는 고난도 동작으로 그의 대표적인 퍼포먼스가 되였다.그 후 그는  CCTV <행복을 향해 출발>, <비상 6+1>, <환락영웅>, <나 음력설야회에 오를테야>, <황금100초> 등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조선족 상모춤의 매력을 널리 알렸다. 상해동방위성, 복건동남위성, 호북위성, 하북위성, 북경위성 등 전국 각지의 텔레비죤방송 무대들도 그의 상모춤으로 물들었다. 2016년에는 CCTV 음악채널 <민가중국> 및 <두만강·중로정> 등 대형 문예공연에도 참가했다.흥미로운 점은 방일권의 예술적 재능이 상모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08년부터 2009년 사이 그는 중국음악학원 성악 9급과 10급을 취득했다. 또한 2009년 길림성 예술시리즈대회 성악 부문에서 동상을, 2013년 같은 대회 무용부문에서 1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이러한 다양한 예술적 력량은 그가 단순한 ‘기능인’이 아닌 예술의 본질을 리해하고 표현하는 진정한 예술가임을 증명한다. 소리와 움직임,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예술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문화예술인으로서의 길2013년, 방일권은 상모춤으로 명성을 얻게 되면서 룡정시문화관 입시시험에 통과하여 전문 예술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5년 11월에는 훈춘시문화관의 요청으로 자리를 옮겨 녀성상모팀을 직접 조직하고 매일 수 시간의 집단 훈련을 이끌었다.훈춘시문화관에서 그는 상모팀을 체계적으로 육성했고 단원들의 기술 향상뿐만 아니라 팀워크와 예술적 표현력 강화에 힘썼다. 그가 안무를 맡은 <명절의 기쁨>은 야광상모, 화염상모, 줄뛰기상모 등 혁신적인 상모춤들이 어우러져 2020년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음력설야회 무대를 빛냈다.방일권의 진정성은 그의 고백에서도 드러난다. “저에게 있어서 상모춤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제 인생을 바꾸었고 삶의 태도까지 바꾸었죠. 이 춤을 제대로 배우고 전승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상모춤은 저에게 목표와 자부심을 주었고 이제는 그것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 제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됩니다.”전통을 깨우는 혁신 10년 연구의 결실- 특허 상모방일권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기능 전수에 있지 않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상모 자체의 혁신에 있다. 전통 상모가 가진 구조적 문제점들인 불편한 착용감, 잦은 부품 손상, 공연 중 발생하는 소음, 비효률적인 교체 방식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무려 10년에 걸친 오랜 연구와 실험을 진행했다.2020년 4월, 마침내 국가지식재산권국으로부터 조선족 상모 실용신형특허를 획득했다. 이는 중국조선족 상모의 첫 특허이다. 이 특허에는 여러 면의 혁신적인 개량이 담겨있다.첫째, 모자 겉면의 일체화이다. 전통 상모는 여러 조각의 천을 이어 붙여 만들었지만 개량 상모는 한 장의 천으로 제작하여 미감을 크게 향상시켰다. 그리고 본체를 EVA재질로 금형에 찍어내여 가볍고 제작 공정도 간소화되였다.둘째, 챙끈의 혁신이다. 기존 단색 천 끈을 홍·황·람 삼색으로 땋은 끈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이는 단순히 미적 감각을 높인 것뿐만 아니라 음양오행의 조화원리를 바탕으로 한 색채 상징성과 공동체의 화합, 풍요와 축원의 의미를 담고있다.셋째, 머리띠 부분의 분리형 구조이다. 기존에는 머리띠가 모자와 일체형이여서 세척이나 교체가 어려웠지만 개량 상모는 분리형으로 제작되여 위생적이고 실용적이다.넷째, 회전축의 구조 개선이다. 기존 철사 고정 방식에서 발생하던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가죽과 나일론을 결합한 소재를 사용했다. 이는 마찰음을 대폭 줄였을 뿐만 아니라 회전의 부드러움도 향상시켰다.다섯째, 304 불수강 재질의 도입이다. 일반 철제 재질은 녹이 쓸거나 마모가 빨랐지만 불수강 재질은 내구성이 뛰여나고 녹이 쓸지 않아 사용수명을 더한다 .여섯째, 물채부분의 쇠줄이 꽜꽜하고 무겁고 쉽게 휘는 것을 탄소섬유로 대체해서 가볍고 탄성있으며 보기좋게 개선했다.방일권은 특허 연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이 전승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이 더 편하게, 더 아름답게 춤출 수 있도록 도구 자체를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한 전승의 방식입니다. 제가 만든 상모로 후배들이 더 수월하게 기술을 익히고 더 멋진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다면 그보다 큰 보람은 없을 것입니다.”현재 이 개량 상모는 훈춘시무형문화유산 조선족상모제작기예로 명명됐다. 그의 목표는 명확하다. “상모와 상모춤이 더 잘 보존되고 전승되여야 더 멀리 전국과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조선족 상모가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으로 남길 원합니다.”상모춤의 미래를 열다... 한계가 없는 도전 정신방일권의 혁신은 멈추지 않는다. 최근 5.1절 휴가 기간에 장춘에 공연차 나갔던 그는 전동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전동휠을 타고 무대에 등장하면서 상모를 돌리는 새로운 퍼포먼스를 또 생각해냈다. “조금이라도 새롭고 눈길을 끌 수 있다면 저는 과감히 상모춤을 혁신해 봅니다.” 그는 서커스단에서 선보이고 있는 고난도 외발자전거를 타면서 상모춤을 추는 퍼포먼스도 연습 중이라고 말했다.“많은 사람들이 전통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전통은 시대에 맞게 발전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정신과 미학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있었다.방일권의 혁신은 또한 포용성을 향해 나아간다. 그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도 상모춤을 출 수 있는 휠체어 상모를 고심히 연구하고 그 노하우를 전수했다. 연변주장애자련합회에서 전국장애자문예회연에서 선보인 휠체어 상모춤은 1등상을 받았다.2020년에는 연길시인평소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줄뛰기를 하면서 상모춤을 추게 하여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소년아동음력설문예회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2025년에 방일권이 돈화시제2소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친 상모춤표현은 제13회 ‘소하풍채(小荷风采)’ 전국소년아동무용전시공연에서 최고상인 소하지성(小荷之星) 영예를 따내기도 했다.현재 방일권은 훈춘시 여러 소학교와 중학교에 내려가 정기적으로 상모춤 전승교육을 진행하며 상모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있다.전승과 혁신의 아름다운 선률상모의 색동줄이 힘차게 휘날리듯 방일권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난과 상처를 딛고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젊은 예술가의 행보는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고있다.그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기술의 전수가 아니다. 전통을 지키되 전통에 갇히지 않고 과거를 존중하되 현재의 기술로 새롭게 태여나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방일권이 상모춤을 통해 보여주는 진정한 전승의 의미이며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혁신과 발전의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방일권은 입으로만 말하지 않고 자신의 몸과 상모와 기술로 증명하고 있다. 전통은 박제되여야 할 유물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진화하는 살아있는 예술이라는 사실과 그 진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그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이자 하나의 증거이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한 사람은 결국 그 길에서 성공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법이다. 방일권의 상모춤이 앞으로도 어떤 새로운 혁신과 감동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그의 계속되는 도전이 기다려진다./안상근 김파 기자 编辑:김가혜
  • 백성이야기(171) 죽 한그릇에 담긴 13년의 정성
    대형기획계렬보도-백성이야기(171)  죽 한그릇에 담긴 13년의 정성—훈춘 본죽&비빔밥 리광일·구명화 부부의 가게 지킴 이야기훈춘 본죽&비빔밥 가맹점 주인장  리광일·구명화 부부훈춘 시내 중심가,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직 거리는 조용하기만 한데 ‘본죽&비빔밥’ 가게 안은 벌써 분주하다. 젊은 사장 구명화(35세)가 오늘 쓸 재료를 손수 골라내고 남편 리광일(37세)이 칼질을 시작한다. 두 사람이 이 가게를 오픈한지는 벌써 13년째다. 연변의 많은 료식업체의 신로교체가 빈번히 진행되는 요즘, 이 젊은 부부는 이 자리에서 죽 한그릇에 정성을 쏟고 있다.최근, 기자는 훈춘 본죽&비빔밥 가게를 찾아 리광일·구명화 부부의 가게 지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고향의 부름, 꿈을 안고 돌아오다안도현 명월진 농촌에서 농사 짓는 부모님 슬하 두 자매중 막내로 자란 구명화의 어린 시절은 넉넉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가 재가해 갈 곳 없는 사촌오빠까지 함께 살다보니 가정형편은 풍요롭지 못했다. 공부 뒤바라지를 위해 자식들이 소학교 때에 한국에 로무를 간 부모님 덕분에 언니는 훌륭한 소아과 의사가 되였고 구명화는 안도현에서 초중을 졸업한 뒤 연변1중을 거쳐 동북림업대학교(할빈) 일본어전업을 졸업했다.이른 아침부터 주방일군과 함께 바삐 돌아치고 있는 리광일, 구명화 부부. 구명화는 졸업후 심양의 한국기업 SK C&C에 취직해 IT 개발자로 일하면서 남편 리광일을 만났다. 대련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리광일 역시 안도현 출신으로, 두사람은 입사 동기로 인연을 맺고 함께 미래를 그렸다. 신입사원의 얼마 안되는 수입으로는 동북에서도 내노라 하는 대도시인 심양의 높은 집값과 교육비용을 감당하기엔 빠듯했다. “심양에서 장기간 세집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서자 두 사람은 긴 대화 끝에 결혼후에 태여날 아이에게 안정된 환경을 마련해주고 아이의 성장과정을 함께 해주기 위해 귀향창업하자고 합의했다. 량가 부모님 모두 해외에 진출한 경험이 있기에 그들은 돈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다. 하여 두 사람은 심양 생활을 과감히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훈춘서 귀향 창업의 꿈을 펼치다안도 출신인 그들이 왜 훈춘을 꿈의 터전으로 선택했을가? 구명화는 대학 입시 후 친구와 함께 훈춘에 놀러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거리는 로씨야인들로 북적여 외국에 온 것 같았어요. 연변에서 연길 다음으로 류동인구가 많고 발전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남편 리광일의 부모님 또한 일찍부터 로씨아 무역을 해오셨기에 국제도시 훈춘의 잠재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귀향창업을 하려면 료식업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의 외삼촌 내외가 연길에서 ‘본죽&비빔밥’ 가게를 운영하며 안정된 수입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병원 근처에 위치한 그 가게를 방문할 때마다 몸이 편찮은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고 “죽을 드시고 병도 나았다.”는 오가는 말들을 듣는 순간 두 사람은 이 아이템에 확신을 가졌다.각기 자기의 역할을 분담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리광일·구명화 부부의 일상이다.“죽은 몸이 아픈 사람이나 먹는게 아니냐?”라는 통념을 깨고 본죽은 건강과 정성을 내세운 프리미엄 죽 전문점으로 자리매김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죽의 대명사’로 불리우며 전국에 2,000여개 매장을 보유한 대형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그 비결은 무엇보다 ‘정성’에 있었다. 구명화 부부는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리해하고 있었다.2013년 11월, 두 사람은 본죽&비빔밥 가게를 차렸다. 로씨야 무역을 접고 귀국한 시부모님이 신혼집과 차를 마련해주시는 대신 창업자금 수십만원을 흔쾌히 내주셨다. “집과 차는 스스로 벌어서 마련하라”는 부모님의 뜻은 오히려 젊은 부부에게 더 큰 동기 부여가 되였다. 그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하여 1년 남짓 만에 본금을 전부 회수했다. 연변에서 연길외에는 훈춘밖에 없다보니 본죽 가맹점은 현지에서 꽤 유명한 가게로 자리잡았다.정성으로 13년을 지켜온 부부의 꿈개업 초기 반응은 예상을 훨씬 뛰여넘었다. 상업거리와 가깝고 외국인이 많이 머무는 호텔 근처를 립지로 선택한 덕분에 가게는 로씨야 외국 손님들이 반이나 차지할 정도로 북적였다. 시부모님의 류창한 로씨야어 실력 덕분에 로씨야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한국에서 지명도 높은 브랜드답게 한국에 다녀온 고객들도 많이 찾아주었다.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과 장사하는 남방 상인들도 단골이 되였다.개업 초기부터 이들 부부의 철학은 분명했다. “인기 맛집보다 맛과 정성을 기본으로 우리 아이들이 먹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정성을 다하자.” 요즘처럼 반조리 식품을 사용하는 가게들이 늘어나는 시대에 구명화 부부는 매일 아침 6시에 가게에 도착해 하루치 재료를 구입하고 준비한다. 저녁 9시가 되어서야 가게 문을 닫는 그들의 하루 일과는 고단하지만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간다. 그들에게 가게는 단순한 직장이 아니다. 매일 온가족이 함께 출근해 식재료를 준비하고 아이에게 아침을 먹여 등교시키며 아이는 가게에서 숙제도 한다. 거의 집과 마찬가지이다.현재 죽 종류는 개업 초기보다 더 늘여30가지, 비빔밥은 8가지를 보유하고 있다. 비빔밥 종류는 오히려 줄였는데 주력 메뉴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였다. 소고기야채죽은 남녀로소 불문하고 가장 많이 찾는 메뉴이며 팥죽, 호박죽, 전복죽 역시 인기가 많다. 비빔밥은 시장가격보다 다소 비싼 대신만 종류가 많고 재료도 푸짐해 나름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로씨아 고객들을 위해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그들의 입맛에 맞춰 해물탕의 매운 정도를 조절해주고 비빔밥도 맵지 않은 순한 소스로 바꿔주었다. 이러한 정성이 입소문을 타면서 개업 초기 하루 100명에 달하던 손님들은 더욱 늘어났다.스스로 마련한 영업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는 리광일·구명화 부부와 아들 리승준.2019년 11월, 드디어 자체 영업집을 마련했다. 부모님의 도움도 있었지만 대출 없이 자신의 단독주택과 영업집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큰 자부심이였다. 그러나 이후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특수시기, 루블 가치 절하, 이웃나라 세관 페쇄 등 어려움이 련달아 덮치면서 훈춘의 거리는 조용해졌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급감하면서 초기에 하루 100여명에 달하던 손님들이 지금은 수십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배달앱이 주름잡고 소비수준이 급락하는 시기, 젊은층은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는 다른 식당으로 빠져나갔다. 현재는 중년층이나 로인들 위주로 찾아오고 있으며 젊은층들은 몸이 편치 않을 때나 배달앱을 통해 주문하는 실정이다. 그래도 그들은 견지하고 있다. 포기하지 않았다.“지금은 예전 같지 않아 생활만 유지하며 가게를 지키고 있는 편입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구명화의 솔직하게 털어놓은 말이 마음 깊이 다가온다. 화려한 성공스토리만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많은 자영업자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그녀의 이야기는 오히려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 속에는 지역 사회와의 인연, 손님들과의 추억,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료식업주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다.본죽의 성공 사례에서 배울 수 있듯이 프리미엄 죽 전문점은 단순한 ‘아침 식사’가 아니라 ‘건강과 치유’의 이미지를 팔고 있다. 본죽이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을 ‘저가의 끼니’가 아닌 ‘나를 돌보는 시간’으로 포지셔닝하였기 때문이다. 구명화 부부의 가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파는 것은 단순한 죽이 아니라 정성과 건강,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다. 이렇게 그들 부부는 함께 13년동안 꿈을 지켜왔다.평범한 지킴 속에 피여나는 보람사실 이들 부부의 가게는 예전에 비해 ‘핫’하지 않다. 최근 경쟁이 치렬해져 근처에 새로 오픈한 조찬 가게가 가격도 저렴하고 메뉴가 다양하여 한족과 젊은층들의 인기를 많이 끌고 있다. 이에 대응해 소용기 포장 반반죽, 현지 입맛에 맞는 여름철 메뉴를 본사에 요청하여 출시했으나 현실적인 효과는 크지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게를 지키고 있다. 그 리유는 무엇일가?“매일 아침 8시면 부모님께 우리 집 죽을 포장해가는 효자 고객이 있는가 하면 50원씩 하는 전복죽만 농촌에 계신 아버지께 포장해드리는 딸도 있고 된 감기에 걸려 ‘죽을 번’ 했는데 우리 집 죽을 먹고 다시 살아났다면서 롱담하시는 로인분들도 계십니다. 이 모두 것이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견지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입니다.”구명화 사장의 말이다. 특히 아침 8시면 어머님께 죽을 포장해가는 분이 죽 량이 한끼 먹기에는 많지만 두끼 먹기에는 적다는 말에 이들 부부는 돈을 추가하지 않고 량을 추가해 두끼 분량으로 포장드린다고 한다. 여러가지 맛으로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는 그 정성에 부부는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맛도 좋고 깔끔한 환경의 가게에서 음식을 맛보고 다음을 기약하는 외지 관광객 조선생 일가“13년 가게를 견지해오다 보니 어린 고객들이 가게 음식을 먹으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외지의 대학교에 갔다가 방학하여 돌아오는 딸이 기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음식을 준비해달라는 단골의 전화, 외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면서 ‘우리 집 음식이 가장 그리웠다.’는 아이의 말… 이런 작은 순간들이 오늘까지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며 견지해오게 하는 동력입니다.”라고 말하는 남편 리광일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여있다. “우리가 평범한 일상을 견지하며 우리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십여년간 가정을 지켜오면서 아들의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13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 부부의 역할 분담은 뚜렷하다. 섬세한 남편은 가게에 있는 시간이 길어 주방과 료리사 역할, 재료 관리를 맡고 구명화는 홀 서빙 위주로 하면서 주방일을 겸한다. 아이를 키우느라 손이 많이 가고 가게를 지키지 못할 때면 남편이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모든 일을 손수 해왔다.가끔 외지에서 리더로 성장한 친구들을 보면 큰 도시 생활이 그립고 “청춘을 작은 도시에서 랑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무럭무럭 커가는 아들을 보면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는 이들 부부이다.“창업은 도전과 기회가 가득한 려정입니다. 지름길이 없고 오직 신념, 끈기, 끊임없이 학습하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함께 화이팅 합시다!”라고 예비 창업자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전했다. “다양화한 음식점으로 개인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라고 이들 부부는 밝혔다. 리광일·구명화 부부의 오늘은 훈춘의 작은 가게에서 아침 6시의 정성으로 시작된다. 평범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그들의 정성은 오늘도 훈춘시민과 관광객들의 위를 따뜻하게, 포근하게 해주고 있다./리전기자 编辑:유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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