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복장유한회사 김명순회장을 만나
연변일보 2012-8-10 9:17:41
패션의 불모지였던 1980년대에 패션업계에 뛰여들어 우리 연변의 토종명품의 자존심 “해우”브랜드 신화를 일궈내며 연변에서 패션업계로 당당히 중견기업 행렬에 합류한 해우패션유한회사 김명순회장(55세), 패션에 대한 탁월한 판단과 파격적인 도전 그리고 일에 대한 무서운 집중력과 추진력으로 “해우”옷을 입는 고객 한명, 한명에 대해서도 최고의 정성을 다하며 차곡차곡 믿음과 신뢰를 쌓아온 김명순회장, 하기에 인젠 “해우”라는 이름뒤에는 보증수표처럼 신뢰와 믿음이 따라다닌다…
합리적이면서도 최선의 아름다움을 살린 패션, 옷보다는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패션, 이것이 바로 김명순회장이 추구하는 패션이며 수십년간 “해우”가 사랑받는 리유이다.
타고난 천성과 노력으로 명장기반 구축
한직종에서 30년 가까이 외길만을 고집한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패션업계에서 27년간 한길을 걸어온 김명순회장이 의류산업에 첫발을 내딛게 된것은 그녀의 타고난 천부적인 재질의 영향이 컸다.
"처음에는 주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왕청현림업국의 복장공장에서 근무했던 '철밥통'을 버리고 미립이 트지 않은 령역에 뛰여든다는것이 웬만한 배포와 노력이 없이는 안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지요." 하지만 어려서부터 유난히 만들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한번 본것은 머리속으로 기억하여 자신이 직접 만들어보았고 그녀의 손을 거친것은 자신이 본것보다 더 좋은 제품으로 탄생했다. 손으로 만드는것에 자신의 재능이 있다는것을 깨달은 김명순회장은 패션업의 전망이 밝다고 판단, 자신의 모든 열정을 패션업계에 바치겠다는 각오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타고난 천성과 부지런함으로 1985년부터 왕청현에서 복장강습반과 맞춤복양복점을 시작으로 창업을 한후 그녀의 사업은 빠른 성장을 보였고 1989년부터 그녀는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밑거름으로 더 큰 야망과 도전의 꿈을 실현하고저 연길로 진출했다. 연길에서 그녀는 해란강복장강습반을 꾸려 10여년간 약 5000명에 달하는 복장강습생을 양성해냈으며 1993년에 드디여 의류가공공장인 "해우"패션유한회사를 세우고 더 큰 창업의 발걸음을 내딛는데 성공했다.
자체의 브랜드를 줄곧 꿈꿔왔던 김명순회장은 당시 지인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해우"라는 브랜드에 의한 기업발전전략목표를 내걸고 1995년에 일본에서 의류설비를 새로 들여와 정식으로 "해우"라는 고부가가치의 브랜드를 창출하기 위해 새로운 발전과 도약을 꿈꾸기 시작했다.
"의류브랜드를 창출하려면 디자인은 물론 색상과 원단 등 모두 최상의 제품만을 고집해야 합니다." 김명순회장의 이러한 경영의 기본철칙은 독창성과 재능있는 패션인으로 명성을 날리는데 충분했고 연변패션업계에서 그녀의 립지를 굳히는데 손색이 없었다. 이러한 그녀의 노력은 차츰 연변뿐만아니라 성내 나아가 전국의 패션업계에서도 손꼽히는 명장으로 선정되는데 크게 일조를 했으며 연변패션업계의 시장토대를 마련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해우", 토종명품의 향기를 피워내다
김명순회장은 기업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은 정확한 사고방식을 동반한 예리한 관찰력과 판단력, 추진력이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시대의 흐름이나 류행을 창조하는 패션업에서는 판단력과 추진력에 그 회사의 운명이 달렸다고 말한다. 기업인으로서 무언가 결심했다면 망설이지 말고 행동해야지 스스로 의심하는 순간부터 실패는 곧바로 새여들어온다는것이다.
패션사업을 시작하면서 고부가가치의 브랜드를 창출하려고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김명순회장은 예리한 관찰과 판단력으로 2003년 연길시국영복장공장이 체제전환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다년간 패션에 대한 경험과 시장잠재력을 파악하는 통찰력으로 국영기업을 사들였다. 당시 1500여만원이라는 부채를 짊어졌고 그들의 로임, 보험금, 모금액 등 천여만원을 일차적으로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어찌보면 이것이 회사가 성장할수 있는 기회였다고 김명순회장은 말했다.
김명순회장의 사업출발점은 현실에 립각하는것이다. 사업이 순항할수록 판단력과 랭정함을 잃지 않는것 또한 그녀의 매력이라고 할수 있겠다. "특별히 홍보나 마케팅전략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실제에서 출발하여 소비상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고객이 최우선이라는 경영리념에 초점을 맞추는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해우는 자체 생산, 판매, 량호한 품질과 이미지 등을 입소문을 통해 브랜드를 창출하고 그것을 알리는데 전략을 두고있었습니다." 개인보다 단체에 집중했고 이 또한 복장업의 비성수기인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의 생산공백을 미봉하는데 성공했다. 이왕의 해우패션은 조선민족개량복, 남성양복, 녀성슈트를 주로 생산했기에 단체복과 직업복장, 교복, 운동복 등의 생산은 회사의 생산공백기를 훌륭하게 소화하고 생산실적도 무서운 상승선을 긋기 시작했다.
오늘날 "해우"라는 브랜드는 이미 연변의 토종명품의 자존심으로 당당히 자리잡으며 연변의 패션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나서고있다. 연길시 중심거리에 3500평방메터의 부지면적, 5층 빌딩으로 우뚝 솟은 해우패션유한회사 신사옥은 복장가공, 디자인, 생산이 일체화된 현대화기업으로 승승장구하고있다.
김명순회장의 이러한 부단한 자기개발과 철저한 경영방침으로 "해우"는 선후로 길림성 소비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제품 등 칭호를 받았으며 연변 명브랜드(1997년), 길림성 명브랜드(1999년), 길림성 저명상표(2007년), "연길시사회보험세금납부A급단위" (2010년) 등 당당한 영예를 가지고있는 명실상부의 유명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을 이루어내고야말았다.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한 제2도약
생존을 넘어 지속가능한 기업, 부단히 발전성장하는 기업을 꿈꾸는 김명순회장이 지니고있는 가장 큰 덕목과 자질중 하나가 바로 "변화추구"이다.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를 잘 알고 현재 경영인으로서의 능력, 기업의 위치, 앞으로의 발전가능성을 자각하고 끊임없는 변화로 혁신을 꿈꾸는것이야말로 기업이 한단계로 발전할수 있을지 성패의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말하는 김명순회장이다.
기업이 일류기업으로 거듭나는 성장을 하려면 제품개발과 기술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김명순회장은 올초부터 기업을 한단계 발전시키기 위해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꿈꾸고있었다. 그동안 연변에서 40~60대의 정부기관이나 기업가 등 고위층 고객을 위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면 현재 김회장은 또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맞춤복시장의 개척을 위해 자신의 모든 정력과 재력을 아낌없이 쏟아붓고있기에 여념이 없었다.
"모든 사회인들이 적극 참여하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활동성이 있는 정장류와 외출복에 중점을 두고 보다 앞서나가는 패션 브랜드로 인지도를 더욱 더 높이기에 주력할것이며 장인정신으로 맞춤복시장의 새 장을 열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만큼 김명순회장의 맞춤복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탁월한 안목은 대단해보였다. 한 작품이 탄생되고 고객이 만족하는 모습을 볼 때면 자신도 모르게 희열과 함께 자신의 일에 대한 긍지를 느끼게 된다며 30년이라는 세월을 맞춤정장과 함께 해온 그녀의 장인정신에서 묻어나오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한차원 높은 의류브랜드의 맞춤복시장을 꿈꾸고있었던 김명순회장은 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동안 김명순회장은 수차례 한국 패션업계를 방문하면서 올해초 마침내 세계적인 패션을 주도하고있는 한국 패션 1번지인 명동에서 55년 전통을 이어온 미성양복점의 손병천회장을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것이 맞춤복의 새로운 장을 펼칠 계기를 마련했던것이다.
두 거목의 만남과 더불어 윈윈전략의 기술제휴의 체결에 성공하면서 새로운 도전 그리고 그녀의 또 다른 비전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됐다. 지난 7월말, 연변에서 두 회사가 기술제휴 조인식을 성공리에 마친 장소에서 미성양복점의 손병천회장은 김명순회장과의 만남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물론 긴가민가했지요. 무엇보다 의류업계의 경쟁이 워낙 치렬하여 김회장이 연변에서 맞춤복시장의 기술제휴를 통해 윈윈하고저 하는 의향을 제안해왔을 때 사실 어안이 벙벙했지요. 솔직히 현재 연변시장에서 활성화하기도 보급하기도 어려운 맞춤복시장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신뢰와 믿음 그리고 탁월한 기업인으로서의 덕목과 재능을 보아냈기에 저로서는 그녀에게 탄복을 할수밖에 없더라구요. 명장으로서 충분히 해낼수 있을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승부수를 띄워보려합니다. " 손병천회장은 이번 기술제휴를 통해 "해우"는 또 다른 변화를 선보일것이고 전통과 글로벌기업으로 거듭날것임이 분명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제 "해우"는 이 시점에서 변화와 혁신이 없다면 뒤처지고 나중엔 도태된다. 첫번째의 성공은 때론 우연히 이뤄질수도 있지만 기업을 한단계 더 발전되고 영속시키려면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야 할뿐만아니라 혁신을 마다치 말아야 하며 항상 생각하고 준비하는 자세를 갖추어야만 실패를 막을수 있으며 업계 1위를 보장할수 있다고 김명순회장은 말한다.
현재 전체 206명의 종업원, 그들의 단합력과 결속력이 뛰여난것 역시 이 회사의 성공비결중 하나였다. 실제로 회사창립 초창기부터 함께 동고동락해온 황옥희씨(55세)는 “김회장은 때로는 푸근한 옆집 아주머니처럼, 때로는 카리스마 넘치는 채찍으로 직원 개개인을 대합니다. 직원에 대한 배려가 항상 몸에 배여있기때문에 한번 입사한 직원들은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패션업계 자체가 리직률이 높은 직종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회사는 장기 근속자가 대부분이지요. 무엇보다 사회보험 등 복리는 물론 개인적으로 어려운 사정이 있으면 서슴없이 도와주곤 해서 그저 고마울따름이지요”라고 말했다.
"해우"에서는 현재 생산능률을 높이고 랑비와 불량품을 줄이며 깨끗하고 질서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짜여진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 프로그램은 벌써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주문생산량과 사업능률이 눈에 뜨이게 성장하고있으며 회사의 면모도 일신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판매업적만 봐도 동시기에 비해 20% 성장, 납부세금이 50여만원에 이르는 기반이 튼튼한 중소기업으로 립지를 굳건히 하는데 성공했다.
“해우”보다 더 빛나는 김명순회장
김명순회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해우”하면 알아도 자신의 이름은 잘 모른다고 겸허하게 이야기한다. 패션업에 종사하는 리더답게 언제나 세련된 옷차림과 고운 외모로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며 강한 녀성의 아름다움까지 보여주었던 김명순회장한테도 침체가 왔다.
창업시기부터 묵묵히 든든하게 어깨를 빌려주며 소리없이 김명순회장의 버팀목이 되고 의지할수 있는 큰산이 되였던 남편, 회사에 들어갈 새로운 설비를 설계하고 구축하며 남성복장에서는 뛰여난 센스를 보여주었던 남편이 갑자기 병으로 김명순회장의 곁을 떠났던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으로 김명순회장은 쓰러지기 직전이였다. 그러나 이때 해외에서 류학하고 돌아온 아들이 그녀를 또다시 일어서게 했다. 아버지처럼 든든하게 어머니의 후원군으로 나섰던 아들 김원철(30세)은 어머니를 도와 해우패션의 사장으로 부임하며 해우패션의 새로운 도약을 선두지휘하고있다. 든든한 아들덕분에 김명순회장은 요즘 또다시 아들과 함께 바쁜 나날을 보내고있다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이제 우리 연변에서도 세계가 주목할수 있는 사랑을 받는 명품브랜드가 배출될 차례이자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되여서 경영일선에서 서서히 물러서기로 다짐했습니다. 아들 역시 타고난 기질의 소유자, 무엇보다 젊음의 패기와 안목을 믿기에 한번 아들한테 맡겨보려고 합니다." 젊은 세대에게 기회를 주고 항상 변화와 시도를 주어 새로운 시장개척, 대를 잇는 명품브랜드 구축에 나설것이라고 한다.
근 30년간 창업을 거쳐 오늘의 "해우"패션회사를 일궈낸 김명순회장은 목표를 세우면 반드시 이뤄내야겠다는 신념 하나로 여직껏 달려왔다. 그런데 멈출수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회사에는 200여명에 달하는 임직원 그리고 그들의 가족생계가 달려있기때문이라고 말한다. 5년, 10년 넘게 회사와 함께 달려온 직원들을 대할 때마다 김명순회장은 더욱 큰 책임감을 느끼며 리더로서의 중임을 실감한다.
패선업에 종사하는 리더답게 김명순회장은 어딜 가든지 먼저 옷으로 주목받는다. 그녀는 자신한테 어울리는 옷을 입는 센스가 탁월하기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을 아는 이들은 옷보다 그녀의 마음이 더 따뜻하고 아름답다는것을 알고있다. 일에 대한 열정, 사회를 보는 따뜻한 시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현재 우리 주에서 녀성기업가로서는 처음으로 2기 련속(12.13기) 주인대 대표, 우수인대대표로 선정된 "10대 화제의 기업인물", "주내 우수녀성기업가", 연길시복장상회 회장, 길림성복장협회 부회장, 주공상련합회 부회장으로도 활약하고있는 김명순회장은 2010년 "7.28"특대홍수피해를 받았을 때 10만원을 의연했고 해마다 불우이웃돕기, 로인절위문 등 공익성 자선사업에 조달한 금액은 무려 60여만원에 달한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김회장은 선후로 길림성 창업기준병, 주 "3.8붉은기수", "5.1로동상장" 등 많은 명예의 수식어가 뒤따를 정도로 조선족기업의 사회화합과 산업발전에 한몫 하고있다.
요즘 해우패션유한회사는 밀려드는 주문으로 비수기임에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있다. 눈물없이 피여난 꽃이였다면 지금처럼 아름답게 사람의 마음을 공명시키지 못했으리라. 50대의 나이를 잊게 할만큼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경제계의 진정한 프로 김명순회장, 그녀는 오늘도 래일도 직원들과 함께 아들과 함께 울고웃으며 앞만 보고 달릴것이다. 눈물 한방울, 땀 한방울로 시작된 그녀의 열정과 도전, 성공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그날을 향해.
장연하 최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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