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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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외래어의 표기 댓글:  조회:4396  추천:4  2009-12-29
1. 외래어는 외국어가 아니다 일단 한 가지 전제부터 짚고 넘어가자. 외래어는 외국어인가? 외국어가 우리말에 들어올 때는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니다. 외래어란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말이 우리말처럼 쓰이는 말이다. 외래어는 외국어의 어휘를 부분적이나마 음이나 문법에 있어서 그 단어를 모국어 발음 양식에 적합하도록 차용하거나 변형하여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外來語는 外國語가 아니다. 외래어는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며 音韻이나 語形을 자국어의 법칙에 맞도록 하여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외래어표기법 각 나라마다 아마 외래어표기법이 있을 것이다. 언어 교류가 밀접해진 현대사회에서 외래어표기법을 규정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소모가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어의 외래어표기법을 살펴보자. 한국어 외래어는 종래로 표음주의를 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933년 조선어학회가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는 ‘1. 새 글자나 부호를 쓰지 않는다. 2. 표음주의를 취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 원칙이 구체화하여 1941년 1월에 「외래어표기법통일안」(어학회)이 발표되었고, 1957년 10월 「들온말 적은 법」(문교부)이 제정 발표되었으며, 1959년 10월에 「로마자의 한글화 표기법」(문교부)이 제정되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앞선 작업의 기초 상에서 1986년 문교부에서 제정한 「외래어 표기법」을 실행한다. 그 총칙을 살펴보면 제1항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 자모만으로 적는다.제2항 외래어의 1음운은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제3항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쓴다.제4항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제5항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 이 원칙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총칙의 제2항과 제3항은 표음주의를 취한다는 원칙의 재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제5항의 ‘이미 굳어진 외래어’에는 한자어가 포함이 된다. 즉 한자어는 이미 한국어로 거의 굳어진 귀화어의 성격을 띠고 있어 이들이 외래어라는 사실을 언중들은 직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관용을 존중한다’는 말은 ‘조조(曹操)’, ‘장판파(長坂坡)’와 같은 외래어는 ‘차오차오’, ‘창반보’처럼 지금의 외래어 표기법으로 적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원칙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그 이전은 한국어 한자음으로 표기하고, 그 이후는 중국어 발음대로 적는다. 그러나 이 같은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아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서구의 외래어를 표기할 때는 별 탈이 없지만, 현대 중국의 인명이나 지명을 적을 때 불편해 하는 사람이 많다. 언어에 규칙이 있음으로 하여 불필요한 분기를 일으키는 것을 막을 수는 있지만 불편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규칙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3. 외래어의 번역 이것은 얼핏 보면 표기법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구별을 해야 한다고 보인다. 표기는 문자화 하는 것을 가리킨다면 번역이란 외국어를 어떤 방법으로 받아 들이냐는 문제이다. 외래어의 번역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音譯과 意譯이 그것이다. 음역은 발음이 비슷한 자국어로 외국어 어휘를 번역하는 것이고, 의역은 원문의 단어나 구절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리는 번역을 말한다. 즉 ‘television’을 ‘텔레비전’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음역이고, ‘電視’라고 번역하는 것은 의역이다. 통계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말은 외래어를 번역함에 있어서 음역을 많이 하는 것 같고, 중국어는 의역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두 언어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은 문자적 특성 때문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말은 表音文字이다. 즉 소리를 적는 문자라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글은 영어문자와 다를 게 없다. 단지 우리는 모아쓰기를 한다는 것이다. 한자는 表意文字이다. 중국어는 문자 하나하나가 모두 뜻을 가지고 있고 현재는 그 수가 수만 개에 달한다. 새로운 뜻을 가진 문자를 만들기는 쉽지만 그들에게 서로 다른 음을 준다는 것은 너무 방대한 일이다. 그래서 중국어는 글자가 많지만 같은 음을 가진 글자가 많다. 중국어는 성조를 제외한다면 약 400개의 음절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말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말은 자음 19개, 모음 21개, 받침 29개이니 이론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음절은 11172개이다. 가능하지만 실제로 안 쓰이는 ‘갹, 귣, 뷁’ 같은 음절은 뺀다고 해도 그 수는 중국어 음절에 비해서 훨씬 많다. 각자 어떤 외래어 표기방법을 더 많이 쓰는가는 그 문자적인 특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 지명이나 인명을 번역하는 데에 있었다. 현행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소리 나는 대로 번역하는 원칙을 고수하지만 이전에 굳어진 한자어 지명이나 인명은 그대로 쓰기 때문에 같은 지명이나 인명에 대한 번역이 두 가지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음역은 어찌됐든 우리말이다. 소리 나는 대로 적었다 해서 그것이 외국어인 것이 아니다. ‘모택동’이나 ‘마오쩌둥’이나, ‘등소평’이나 ‘덩샤오핑’이나, ‘연변’이나 ‘옌볜’이나, ‘연길’이나 ‘옌지’나 다 한 사람 혹은 한 지방을 말하는 우리말이다. 단지 번역하는 방법이 다름에 따라서 표기상의 차이로 나타날 뿐이다. 4. 외래어표기법은 자국민을 위한 것이다. 각자 외래어표기법을 규정하는 것은 자국민의 언어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함이다. 한국교육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전에는 학교마다 한문을 필수로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의 지명이나 인명을 한자음으로 표기해도 별 무리가 없었지만 요즘은 한자를 필수로 가르치는 학교가 줄어듦에 따라 젊은 층들에게는 더 이상 한자음으로 표기하는 것이 무의미해졌다고 할 수 있다. 기성세대는 한자음으로 적는 것이 편하지만 젊은 세대는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해도 무방하다. 여기에서 마찰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지만, 한자음으로 적는 것이 맞는 건지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 맞는 건지는 논의할 것이 못된다. 두 가지 방법 중의 하나를 택한 것일 뿐이지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 논할 것이 아니다. 조선족들에게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라고 물으면 모르긴 몰라도 거의 전부가 펄쩍 뛰면서 분개(?)해 할 것이다. 그리고 당당히 ‘아닙니다. 저는 중국조선족입니다.’라고 밝힐 것이다. 이건 정체성 논란이라서 언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한국의 외래어표기법을 어떤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는지를 망각하지 말자는 뜻에서 적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외국인이다. 소제목에서 말했지만 외래어표기법은 자국민을 위한 것이지 결코 외국인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이 한국인들을 위해서 만든 법인데 우리가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글로에 한국어 외래어표기법에 관한 글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입장은 ‘延邊’을 ‘옌볜’으로, ‘龍井’을 ‘룽징’이라고 표기해서 기분 나쁘다고 한다. 그러나 왜 기분이 나쁜지, 왜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안 되는지를 표명한 글은 못 봤던 것 같다. 감정상 수용이 안 되는 것과 언어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즉 감성과 과학을 혼돈한 것이다. 그러니 무턱대고 나쁘다 혹은 틀렸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무에도 쓸데없다. 문장에 결론이 있어야 하는데 결론은 못 내리겠다. 잠시 보류한다.
1    외래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댓글:  조회:4435  추천:8  2009-12-29
외래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1. 한자와 한문 우리의 조상은 문자가 없었다. 가장 일찍 접촉한 문자는 한자였다. 한자가 언제부터 한반도에 유입되었는지는 정확히 고증할 바가 없으나 썩 오래전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다가 정착된 것은 삼국시대였을 것이다. 고구려 장수왕 2년에 건립된 광개토대왕 비문에 새겨진 1800여 자의 한자, 백제 근구수왕 1년 고흥이 처음으로 한자를 사용하여 「서기」를 지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 신라 진평왕 때 지어진 「서동요」, 「혜성가」 등 향가에서 우리는 한자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 한자가 유입되면서 한문(漢文)도 삼국의 문자생활을 지배하였고, 그 영향이 19세기말까지 지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의 계속은 우리 조상들의 언문불일치(言文不一致)를 가져왔다. 즉 말하는 언어(口語)와 쓰는 언어(文語)가 서로 다른 기형적인 상태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문인들은 입으로는 우리말을 했고 글은 한문을 썼다는 매우 특수한 의미에서의 2가지 언어 사용자였다. 그러나 아쉬웠던 것은 이러한 기형적인 상태 속에서 언어와 문자가 각자 따로 발전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침투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영향이 엄청났다. 즉 文語인 한문이 口語인 우리말에 대폭적인 간섭이 일어났고, 한문 요소가 대량으로 우리말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우리말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의 하나였다. 오늘날 우리말을 들여다보면 한자어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957년 한글학회에서 편찬한 「우리말 큰사전」에는 한자어가 53.02%를 차지하고, 1961년 이희승 先生 편찬한 「국어대사전」의 표제어는 한자어가 69.32%에 달한다. 실제로 배구시합 중계방송에 쓰인 어휘를 통계한 자료에 의하면 한자어대 비한자어의 어휘수 비율은 대략 64%:36%이다. 사용빈도 비율에서는 아마 한자어가 더욱 강세를 보일 것이다.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한자의 특성과 연관되는 문제이지만 여기에서는 략하겠다. 2. 한자어 한자어는 ‘우리말에서 한자로 적을 수 있는 모든 낱말’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한자어는 외래어인가? 해답 먼저 아래 얘기를 보자.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무슨 뜻인지 안다는 얘기가 있다. 그것은 우리말의 통사구조가 ‘주어-목적어-동사’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동사는 문장의 핵(核)이다. 가령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하자. ‘나는 너를’까지만 말하면 문장의 뜻이 완벽하게 전달될 수가 없다. 이러한 통사구조가 고유어 단어의 형성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고유어 어휘를 보면 ‘해돋이, 달맞이, 집들이’는 ‘주어-술어’, ‘목적어-술어’ 혹은 ‘부사어-술어’ 등 통사구조에 접미사가 결합한 형태이다. 그렇다면 ‘독서, 건국, 입학, 등산’ 등과 같은 ‘술어-목적어’, ‘술어-부사어’의 통사구조를 가진 한자어 어휘는 우리말에 있을 수 없다. 이런 어휘가 이제 우리말에 정착되어 우리말이 되었다는 것은 한자어 어휘가 우리말에 침투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이 한자를 접하고 고유어와 다른 통사구조를 가진 한자어 어휘를 처음 접했을 때로 돌아간다면 한자어는 외래어가 아닐까? 답은 한자어가 처음으로 우리말에 유입되는 시기에는 분명 외래어였다. 외래어가 우리말에 들어오면서 고유어와 경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유어는 취약했다. ‘뫼’라는 고유어는 ‘산(山)’에, ‘지게’라는 고유어는 ‘문(門)’에 밀려서 이제는 사어(死語)가 되어버린 상태이다. ‘물’, ‘하늘’, ‘땅’, ‘바다’와 같이 한자어 어휘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어휘도 있지만 그렇게 죽은 어휘도 수두룩하다. 위의 '산'이나 '문'과는 달리 책(冊), 상(床), 창(窓) 등 어휘를 보자. 우리말 고유어에 이들에 해당되는 단어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자어 어휘가 우리말에 들어올 때는 그야말로 무혈입성(無血入城)이었을 것이다. 어찌됐든 한자어 어휘는 유입되는 당시에는 분명 외래어였고 우리말의 특수한 역사에 의해서 지금은 우리말에 정착하고 없애려야 없앨 수 없는 당당한 우리말이다. 한자어가 우리말에서의 지위를 인정해주자는 말이다. 3. 외래어 현대에서 일반적으로 외래어라면 서구에서 유입된 어휘를 말한다. 우에서 말하다시피 어휘의 유입이 이렇게 자유롭다. 자신의 고유한 요소만 갖고 발전하는 언어는 없다. 언어와 언어가 교류를 하면서 필연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이나 한국에서 쓰는 많은 과학용어들은 거개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로서 대략 100여 년 전에 유입된 것들이다. 또 영어 단어 ‘typhoon’은 중국어의 ‘颱風’을 음역한 것이다. 언어 간의 영향은 어휘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문장에도 영향을 준다. 원래 영어에는 ‘long time no see’라는 표현이 없었다. 해방 전 중국인들이 ‘好久不見’을 영어식으로 표현하다 보니까 이런 문장이 생겼고, 그게 영어권 나라에 역수출 되어 지금은 버젓이 영어권 나라의 교재에도 오를 정도이다. 그럼 과거에만 이런 언어유입이 이루어졌는가? 아닌 것 같다. 가까운 예로 ‘인기(人氣)’라는 단어를 보자. 내 추측엔 이 단어가 일본에서 만들어져서 한국에 유입된 것으로 알고 있고 ‘어떤 대상에 쏠리는 대중의 높은 관심이나 좋아하는 기운’의 의미로 쓰인다. 요즘 哈日족, 哈韓족들이 많아지면서 중국어에서도 ‘人氣組合’, ‘人氣歌手’등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이건 현재도 어휘의 간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어휘뿐만 아니라 문장도 영향을 받고 있다. 외국인을 대상하는 중국어 교재에 자주 등장하는 ‘初次见面, 请多关照’는 일본어의 ‘はじめまして, どうぞよろしく おねがいします’에서 온 게 아니었던가. 이것은 80년대 ‘血疑’, ‘排球女將’을 선봉으로 하는 일본드라마의 영향임에 틀림없다. 어휘의 유입이 이렇게 자유로운데 우리가 과연 그걸 어떻게 막을 것인가? 솔직히 제목은 그럴싸하게 달았지만 나도 해결방법이 없다. 한국에서 생활했거나 한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은 한국어 속의 외래어 사용에 대해 불만을 가져보지 않은 적이 없다. 정당한 지적이다. 나도 영어의 영향을 적게 받은 세대라서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지간히 어지럼증이 나는 게 아니다. 조글로에 올랐던 문장에서 나왔던 례를 다시 꺼내본다. 우리말 고유어에 ‘통구이’라는 어휘가 있는데 요즘은 그것보다 ‘바비큐’가 더 많이 쓰인다고 한다. ‘통구이’가 ‘바비큐’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것이다. 이것은 ‘뫼’가 ‘산’에 밀린 것과 과연 무엇이 다를 바가 있는가? 외국에서 아주 신기한 상자를 만들었다. 상자 안에는 사람도 있고 동물도 있다. 사람들은 이 물건을 ‘television’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것이 우리 생활에 들어왔고 이 물건을 우리는 ‘텔레비전’이라고 불렀다. 우린 왜 스스럼없이 이 물건을 ‘텔레비전’이라고 불렀을까? 우리말 어휘에 ‘텔레비전’에 해당되는 어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것은 또 ‘책(冊)’, ‘상(床)’, ‘창(窓)’이 우리말에 들어올 때와 무엇이 다른가? 정녕 우리말은 외래어에 취약했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조상 탓을 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한자어가 우리말에 유입될 때 잘 막았어야지.’하면서 말이다. 그때 경험을 쌓아서 우리들에게 전수해 주었더라면 우리는 외래어의 유입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4. 연변어 우리가 한국인들이 외래어를 많이 쓴다고 투정부릴 때 연변어를 다시 한 번 뒤돌아보자. 연변어는 한국어와 단지 방언 사이의 차이이지 그 본은 같다. 비록 중국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를 놓고 말하면 중국어 어휘는 외래어이다. 조글로 문장 중에 ‘독자’라는 아이디를 가진 네티즌이 쓴 댓글이 눈에 띤다. 연변어에 너무도 많은 중국어 어휘가 들어왔다. ‘쌍발’, ‘쌰발’, ‘땐쓰’, ‘파이즈(牌子)’, ‘지즈(集資)’, ‘쌍핀fang’...... 무방비상태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처리하고 막아야 하는 것인가? 이뿐만 아니라 마치 우리말 한자어처럼 보이는 어휘도 있다. ‘강화(講話)’가 아주 좋은 예이다. 우리말 한자어에 이미 ‘연설(演說)’이라는 어휘가 있었지만 요즘은 ‘강화’에 밀려서 잘 안 쓰이는 것 같다. 같은 한자어이긴 하지만 기존에 있는 어휘를 쓰자는 입장에서 보면 ‘강화’의 침투를 막아야만 논리가 성립된다. 우연히 Daum에서 ‘쾌속발전’을 검색해봤더니 전부 중국의 뉴스뿐이다. ‘쾌속발전’은 중국뉴스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로서 분명 ‘快速發展’에서 직역한 것이다. 조글로 뉴스의 용어들을 보면 이렇게 번역되어 쓰이는 단어가 아주 많다. 이런 것을 두고 나는 연변어 속의 중국어의 범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것도 한국어 속의 외래어 범람과 같은 맥락에서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대로 두다간 한국어 먼저 연변어가 사라진다. 5. 언어 과연 우리말이 사라질까? 과연 100년 내지 200년 후에는 박물관에서나마 한글을 찾아볼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언어가 접촉할 때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부분은 어휘이다. 음운이나, 문법은 영향을 극히 적게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말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 답이 보일 듯하다. 한자와 한문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시기를 서한(西漢)이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한 때라고 치자. 한사군부터 19세기 말까지 줄곧 한문을 사용하여 왔다. 그 기간이 거의 2000년이 된다. 「훈민정음」이 창제 전까지라 해도 1500년이나 된다. 이 2000년 동안 우리말이 어떻게 변했을까? 어휘 면에서 많이 영향을 받은 것은 앞의 통계에서도 보아낼 수 있는 것이지만, 음운이나 문법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음운이 영향을 받았다면 한국어 음운과 중국어 음운이 비슷해야만 정상이다. 그러나 현재의 언어를 놓고 보면 음운비교를 굳이 하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음운적으로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 문법을 보자. 문법이 영향을 받았다면 우리말의 통사적 특징이 바뀌어야 될 것이다. 중국어는 ‘주어-동사-목적어’의 어순이지만, 우리말은 ‘주어-목적어-동사’의 어순이다. 즉 영향을 받았다면 우리말로 사랑을 고백할 때는 ‘나 사랑 너’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영어도 크게 보면 중국어와 같은 ‘주어-동사-목적어’의 어순을 가진다. 그러나 영국의 구성원인 웨일즈의 언어는 ‘동사-주어-목적어’의 어순이다. 이것은 언어 간의 교류에서 문법도 음운과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외래어가 홍수처럼 밀려온다고 우리말이 과연 사라질까? 200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더욱이 1500년은 문자가 없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말은 사라지지 않고 꿋꿋이 남아있다. 변화를 가져온 건 어휘뿐이다. 우리의 문자도 그대로, 우리의 음운도 그대로, 우리의 문법도 그대로이다. 단지 안타까운 것(?)이라면 우리의 고유어 어휘가 외래어와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달리 생각해보면 까짓것 2000년 동안 한자어도 수용했을 라니 고작 영어 어휘를 못 수용할까봐? 조글로에서 인도네시아 부톤섬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자기 언어를 적는 공식 문자로 정했다는 것과, 한글을 세계통용문자로 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는 글을 봤다. 이것은 우리말과 글이 충분히 생명력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외래어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이 글을 쓰는 바이지 절대 외래어 사용을 제창하는 것은 아님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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