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netizin-1 블로그홈 | 로그인
netizin-1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홈 > 칼럼

전체 [ 161 ]

141    보이면 터득하는 것들 댓글:  조회:1143  추천:0  2021-03-30
  글 |궁금이 · 방송 |강설화     您的浏览器不支持 audio标签 토요일에는 버스를 두시간 넘게 타고 천단공원에 다녀왔다. 지하철을 타면 1시간 좀 넘게 걸리지만 땅밑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것 외에는 얻는 것이 없다. 그래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버스를 선택했다. 천단공원은 아마도 20년은 찾지 않았던 것 같다. 전에는 공원의 력사에 대해서도 줄줄 외우고 있었는데 이제 기년전 정도의 건축물 이름만 기억하고 있다. 아직도 해외 관광객은 풀리지 않은 상태라 기발을 든 관광팀은 찾아 볼 수 없다. 귀에 들리는 건 대부분 북경시민들의 말소리다. 력사 고적에는 관심이 없이 그냥 운동이나 산책으로 나온 사람들이다.  공원은 력사가 있는 만큼 울안에 있는 나무들의 나이가 심상치 않다. 310년이면 중년 정도 되고 620년의 고령도 한두그루가 아니다. 그중 한그루는 북경시 10대 나무왕의 하나다. 나머지 9그루는 북경의 어느 곳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제 나무도 10대를 평한다는 걸 이날 처음 알았다. 이 나무는 단순히 오래 살았다는 경력으로 10대에 입선된 게 아닌 것 같다. 나무 줄기는 십수마리의 룡이 감싸고 있는 그림을 연출해 웅장하기보다는 이쁘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내가 관찰한데 의하면 110년 정도 되는데 하늘을 찌르고 높이 솟은 나무가 있는가 하면 300년을 넘었지만 키는 그다지 크지 않고 대신 웅장함을 자랑하는 나무도 있다. 그 웅장함으로 키까지 크면 고공의 거센 바람을 이겨낼지도 미지수다. 그걸 감안했는지 높이 보다는 튼실한 하체를 다져감에 더 집중하며 산다. 공원에서는 아직 봄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찍 피는 개나리넝쿨이 있기는 하지만 해빛이 잘 들지 않는 원인인지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다. 그런대로 사철 푸른 소나무들이 많아서 너무 소슬하지는 않다. 면적이 크다보니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공간도 널찍하다. 그런 가운데 다람쥐가 아주 여유있게 무언가를 탐색한다. 여느 공원과 마찬가지로 까치와 참새들도 다 자기 먹이활동에 여념이 없다. 덩치로 봤을 때 까치가 참새들을 괴롭힐 것 같기도 한데 이들은 서로가 령역을 침범하지 않고 평화공존하며 화목하게 살아간다.  주말의 버스 안에는 로인들이 많다. 로약자석이 따로 있어서 로인들끼리 나란히 앉을 확률이 높다. 이분들은 서로가 아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반갑게 인사하며 금방 친해져서 말을 주고받는다. 중간 좌석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량주로 보일 정도로 무람없이 대화가 윤활하다. 그런데 어떤 대목에서 맞지 않았는지 할머니가 일어나시더니 썩 뒤쪽의 좌석으로 옮겨앉는다. 내리는 역이 서로 다른 걸 봐서 부부는 아니다. 그래도 오래 알고 산 사이처럼 허물없이 대화가 오갔던 장면이 화기애애해보였다. 물론 “공통 언어”가 없어 그런 그림이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바퀴가 달린 채소가방을 좌석옆에 놓은 할머니가 전화를 받고 있다. 대화 내용으로 봐서는 다른 할머니들과 모임이 있나 보다. 그런데 마스크를 쓴 채로 통화하면 상대방이 잘 알아듣지 못할가봐 걱정스러웠는지 할머니는 순간 버스 안이라는 걸 잊고 마스크를 벗은 채 통화한다. 그걸 발견한 역무원이 빨리 마스크는 쓰라고 재촉한다. 할머니는 될수록 빨리 통화를 끝내자는 어투였고 역무원도 한번 충고로 그냥 넘어간다. 그리고 내릴 때 할머니를 도와서 채소가방을 들어준다. 어떤 영상에서처럼 마스크를 쓰냐 말았냐로 언성을 높이다가 인터넷에까지 오르는 그런 그림이 아니다. 할머니 한분이 손주로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올라오신다. 바깥쪽에 앉은 젊은 녀성을 보고 우리가 안쪽에 들어가 앉으면 안되겠냐고 협상한다. 그 녀성은 자리에 앉은 채로 다리만 빼고 할머니더러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애가 먼저 들어가고 할머니가 힘겹게 비집고 들어가서는 애를 안아 무릎에 앉힌다. 젊은 사람이 안쪽으로 옮겨앉고 할머니를 바깥쪽 자리에 양보할 수도 있고 그게 싫다면 몸을 일으켜서 할머니가 들어가기 쉽게 배려할 수도 있었다. 더 좋기는 다른 빈 좌석으로 옮겨 앉고 할머니와 애에게 자리를 양보할 수 도 있었는데 그 자리가 그렇게 마음에 드는지 끝까지 고수한다. 몇개 역을 가고 나니 건너 편의 두 자리가 동시에 비는 걸 본 할머니는 다시 애를 앞세워 자리를 옮긴다. 무릎에 애를 앉히고 있는게 버거우셨나 보다. 이때에도 할머니가 움직이기 보다는 젊은 녀성이 일어나서 두발작만 옮기면 되는 일인데 기어코 할머니가 애를 데리고 그쪽으로 가게 만든다. 전에 어른들이 집에 꿀다지를 파묻고 왔냐고 하더니 그 걸상밑에 무슨 금덩어리라도 숨겨놓았는지 한번 앉으니 요지부동이다.  저녁에는 한달전에 후배들과 약속된 모임이 있다. 단골로 가는 양꼬치집이 있는데 쉬는 날이라 약속을 일찍 잡았다. 그런데 이른 시간임에도 이미 번호표를 받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미리 예약하고 오기를 잘했다. 우리 같았으면 줄을 선 걸 보면 그 자리에서 돌아서서 다른 식당으로 가련만 이 사람들은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무던하게 앉아서 자기 순서를 기다린다. 이미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끝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지도 미지수다. 언젠가는 내 순서가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다림이다. 그나마 휴대폰이라도 들여다볼 게 있어서 다행이기는 하다. 이런 인내력이 어떻게 보면 저력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쟁개비열정”으로는 속이 터져서라도 앉아있지 못한다.  우리가 다 먹고 나오는데도 줄을 선 사람들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저렇게 기다려서 돌아온 순서라면 먹는 시간도 한결 더 소중할 것이다. 어떻게 기다려서 차례진 저녁인데 오래 먹자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럼 그 뒤의 사람들은 또 오래 기다려야 한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으로 몇시간씩 버티는 사람들이다.  기다리는 수련도 좀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중국조선어방송넷 
140    ‘소띠’해에 ‘황소’를 말한다 □ 최준봉 댓글:  조회:1188  추천:0  2021-03-12
‘소띠’해에 ‘황소’를 말한다 □ 최준봉   올해는 소띠해다. 1949년 소띠로 태여난 나는 ‘황소’를 말하고 황소의 ‘정신’을  찬미하고 싶다. 매양 내가  황소를 볼 때마다 그의 둥근 눈에서는 50여년 전  내가 황소수레를 몰고 이도구  학상동 고개를 넘나들던 장면이 한장 또 한장 찍혀나온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부모한테 효도하는 자식에 ‘황소’ 한마리면 큰 재부로 여겼다. 소는 부지런하다. 당나귀처럼 떼 부릴 줄 모르고 부지런히 일한다. 그리고 또 순진하다. 그저 “하라.” 하고 한마디 하면 죽을 둥 살둥 모르고 일을 한다. 그래서 일 잘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두고 “황소처럼 일한다.”고 말한다. 소는 닭 같은 짐승들이 소구유를 쏘다니며 모이를 쪼아먹어도 불만도 없이 대범하게 그들과 ‘공존’한다. 그리하여 ‘소 닭 보듯 한다.’는 속담도 있다. 연변의 ‘황소’는 조선족의 부지런하고 단결하여 분발향상하는 품격과 정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뢰봉정신이 수많은 ‘뢰봉’을 배출시켰다면 ‘황소정신’도 연변의 벼재배 기술원 류창근과 같은 수많은 조선족 선진인물과 전국로력모범인물들을 배출시켰다. 연변은 ‘황소’의 고향이다. 연변황소는 장백산일대와 두만강류역 조선족들이 한세기 반 동안 신근한 로동과 지혜로 배육해낸 귀중한 품종자원의 재부였다. 부지런하고 건장한 특성을 소유한 연변황소는 연변조선족의 생산과 생활의 주요한 조성 부분으로서 세세손손으로 그에 의거하고 존대하면서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다. 조선족들은 비가 새는 초가집에서 석유등잔을 켜고 살지언정 황소만은 따뜻한 벽돌기와집에서 전등불을 켜고 배불리 먹였다. 그리고 농번계절에는 평소에 귀한 찰떡도 쳐서 먹였다. 황소는 항일전쟁과 해방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황소수레에 탄약을 나르고 부상병을 호송한 불굴의 ‘공천’이였다. 60년 전 농촌의 처녀들은 황소수레 앉아 시집갔고 늙은이들도 그 황소수레에 앉아 온 마을을 돌며 70 진갑잔치를 치렀다. 황소마저 힘 다하는 연변의 농촌마을은 해마다 풍년이 들어 쌍당 ‘알곡 만근’ 관을 돌파했다. 풍년이 든 가을이 오면 연변의 곳곳마다 ‘애국량’ 황소수레가 붉은 꽃을 달고 꼬리에 꼬리를 문 채 줄줄이 늘어섰다. 나는 ‘소띠’해에 출생하여 ‘소처럼 부지런하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고 ‘소처럼 둔하다.’는 핀잔도 받았다. 어찌 보면 나는 황소의 품성을 고스란히 빼닮은 것 같다. 송아지 어린시절 나는 우사칸 마당에서 공놀이를 하다가도 찰떡 치는 소리가 나면 그리로 달려가 소가 찰떡을 먹는 것을 보며 군침을 흘리다가도 어른들에게 핀잔을 듣고는 그놈의 황소 때문에 우리가 찰떡도 먹지 못한다고 투덜댔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나는 농촌에 내려온 첫해에 벌써 황소수레를 몰고 다녔다. 그때 내 나이 17살이였다. 수전 호리질과 한전 밭갈이는 물론이고 가을걷이마저 하였으니 매일 황소와 코를 맞대야 했다. 그렇게 초중을  졸업하고 생산대 부대장이란 직책을 걸머지고 락후한 농촌 면모를 개변하기 위해 노력했다. 1970년 봄, 내가 인솔하는 민병패는 전 현 ‘우수청년 돌격대’라는 칭호를 수여받았고 경험소개도 하였다. 사업에 참가하여서도 나는 ‘황소정신’을 계속 발양하여 우수한 성과를 따냈고 정년퇴직 후 오늘날에도 대련조선족문학협회 회원으로 활약하면서 협회발전에 저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소띠’로 태여나 ‘황소정신’을 발양한 풍성한 결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민족문화의 특점을 한몸에 소유한 연변황소는 일종의 ‘문화품격’이자 ‘정신력’의 상징으로, 연변인민은 황소를 에워싸고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로 생활을  엮어나가고 있다. 나는 황소를 사랑한다. 나는 황소의 ‘정신’을 더욱 높이 찬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중국 꿈’을 실현하는 위대한 로정에서 ‘황소정신’은 더더욱 제창해야지 않을가 생각된다. 연변일보 
139    ‘SNS는 손안의 시장’□ 김준환 댓글:  조회:1102  추천:1  2021-03-04
‘SNS는 손안의 시장’...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의 저력이 커져가고 있다. 요즘 스마트폰을 들고 틈만 나면 SNS활동에 열중하는 소비자들이 수두룩하다. ‘SNS는 손 안의 시장’은 인맥이 쌓일수록 판매가 늘어난다는 뜻도 된다. 이는 SNS가 동시에 많은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직거래 통로역할을 하고 있어 SNS에서 광범한 인맥을 쌓으면 홍보효과가 절대 작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생산한 농산물 90% 이상을 SNS를 통해 판매하고 있는 퇴역 귀향 군인을 취재하면서 ( 연변일보 2020년 8월 6일 5면 게재) SNS가 멋진 성공기를 써갈 수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퇴역군인 리세진씨는 SNS를 통하여 사람들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 있다. ‘리씨네 꿀집’ 사장으로 왕청현 춘양진 춘광촌에서 토종벌 농사에 뛰여들면서 토종꿀 판매를 위해 SNS에 관심을 갖게 되였다. 그는 SNS에 관련된 많은 노하우를 쌓으면서 SNS를 통해 해마다 소비자에게 40여톤의 꿀을 판매한다. SNS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가. 많은 사람들은 ‘신뢰’라고 답한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갈수록 넓어져가고 있어 지금 제품을 ‘어떻게’ 더 잘 팔 것인지 ‘누구’에게 더 팔 수 있는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마당에 신뢰를 얻지 못하면 매력과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데서 ‘신뢰’를 으뜸으로 꼽는다. 사람들은 SNS의 글을 한두번 보고 제품을 절대 구입하지 않으며 오래동안 지켜보면서 신뢰할 만하다 싶으면 주문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SNS의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 많다. 그중 ‘리씨네 꿀집’ 사장 리세진씨가 SNS에서 성공적으로 판로를 확보한 과정과 기울인 노력을 들여다보면 성공 요인이 어디에 있는지 금세 알 수 있게 된다. 매일매일 꿀벌농장 상황을 고객들에게 전달하며 끊임없이 소통한다. 사소한 이야기라도 꾸준히 올린다. 사람들의 반응에는 반드시 답글을 해주고 친구의 위챗에도 방문해 ‘좋아요’ 등 반응을 해준다. 수시로 글을 올리며 친목을 쌓는다. 매일 제품을 사라는 그런 이야기보다 도시민들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고향 풍경과 아름다운 자연, 농산물, 재배과정을 꾸준히 보여주며 소통한다. 그의 위챗을 살펴보면 농산물 판매 글은 극히 드물다. 대신 자연풍경이나 장터 같은 농촌의 소소한 일상 사진과 그와 어울리는 짧은 글이 더 많다. 자연스레 시골풍경에 빠져든 구독자들과 친밀감을 형성한다. 또 꿀을 뜨는 과정도 수시로 올림으로써 신뢰감을 쌓는다. 인터넷 댓글만 봐도 소비자들의 감동과 감사함이 가득하여 충성고객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그는 해마다 량질의 꿀을 생산하고 있는데 시장에서 품질이 좋기로 정평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하여 전국 각지로 판매되고 있다. 그리하여 온라인판매는 그가 소비자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창구로 되고 있으며 품질이 좋아서 매일 전국 각지로부터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올해에 들어 하루 주문건수는 사업 초기보다 10배 이상 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신뢰를 얻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사업들이다. 현대인들에게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생활의 필수품이다. 이제 사람들은 얼굴을 보이지 않고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관계를 맺는다. ‘사회관계서비스’라 불리는 SNS를 통해서이다. 이후 SNS를 활용하는 소비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건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며 SNS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위챗고객과 1대1로 소통하며 맞춤형 정보를 줄 수 있는 SNS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어 소비자들을 끌어들여 제품판로를 더욱 넓힐 수 있다. SNS를 통하여 매일 소비자를 만나기 때문에 신뢰감은 곧 경쟁력으로 되고 있다. SNS는 거대한 기회를 가져다주고 있다. 그러하기에 SNS가 바꾸는 소비시장에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연변일보 
138    [두만강칼럼]세배돈에 대한 단상 댓글:  조회:1140  추천:0  2021-02-22
[두만강칼럼]세배돈에 대한 단상 조려화(교원)    올해 설은 왕년에 비해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하게 지나갔다. 폭죽소리도 요란하지 않았고 거리도 한산하다. 그래도 식지 않는 한가지가 있으니 바로 ‘세배돈’이다   머리 자르러 미용원에 갔더니 미용사가 하는 말이 장모님이 애들한테 세배돈을 얼마 받았냐고 일일이 물어보더란다. 친척 한분이 200원을 주었다고 하니 그것 밖에 안주더냐고 애 앞에서 흉을 보는데 정말 보기 좋지 않더라고 했다. 평균 월급이 3, 4천원인 작은 도시에서 세배돈 200원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건만 주는 사람의 성의를 돈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하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배돈의 유래를 보면 옛날에 ‘수(祟)’라고 하는 재앙이나 탈이 생기는 불길한 물건을 쫓아버리기 위해 웃어른이 붉은 주머니에 돈을 넣어 아이들한테 주면 한해 동안 악귀와 불운을 물리치고 무탈하게 지낼 수 있다고 여기던 풍속이 지금까지 전해내려온 것이다. 우리 민족은 설에 웃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면 떡이나 과일 같은 것을 주다가 점차 돈을 주는 풍속으로 바뀌였다고 한다. 지금은 세배돈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사탕이나 과자를 사먹으라고 몇원씩 주던 데로부터 생활수준이 점차 향상되면서 몇십, 몇백원으로부터 몇천원 심지어 주식을 세배돈으로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런 리유 때문에 설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온 가족이 모여앉아 맛 있는 음식을 먹고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세배돈을 얼마 받았는지 확인부터 하는 부모들의 태도는 그대로 아이들한테 전달되여 금액이 적으면 실망하는 표정을 짓고 주는 사람도 민망하게 만든다. 세배돈 문화가 아이 가진 부모들에게는 돈을 두둑이 챙기는 기회가 되겠지만 일부 사람들한테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설명절에 함께 모이면 웃어른들께도 인사해야 하고 친척애들한테도 세배돈을 줘야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체면 때문에 할 수 없이 줘야 하는데 세배돈으로 몇천원씩은 준비해야 한다. 세배돈의 의미가 퇴색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좋은 취지로 생겨난 고유의 풍속이 누가 더 많이 주었는지, 어느 애가 더 많이 받았는지를 비기고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스트레스까지 안겨준다면 과연 바람직한가를 깊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모 포털사이트에 ‘2021년 전국세배돈지도’까지 올랐는데 각 지역마다 액수가 천차만별이였다. 많이는 만원을 넘는 곳도 있고 적게는 몇십원인 곳도 있었다. 물론 생활수준에 따라 액수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전국적으로도 경제수준이 높은 광동성이 의외로 액수가 제일 적었다. 돈의 액수보다는 세배돈의 진정한 의미에 더욱 중시를 돌리기 때문이 아닐가 싶다. 필자의 기억에는 어렸을 적에 세배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 받아볼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그래도 매년 설이 기다려졌었다. 맛 있는 것도 먹고 온 집 식구가 단란하게 모여앉아 즐겁게 설명절을 보내는 것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일전 한푼 받지 못했어도 집안 어른들이 “건강하게 자라거라”, “공부를 잘하거라” 라고 진심이 담긴 덕담들을 해주셔서 잘 자라난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세배돈 문화가 바뀌였다고 해도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축복과 행운을 가져오기를 바라는 웃세대의 마음까지 퇴색하게 해서는 안된다. 앞으로도 세배돈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건전하고 의의 있는 세배돈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세배돈을 받는 대상은 대부분 경제관념이 없는 어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너무 많은 액수의 세배돈은 삼가하는 것이 좋다. 체면 때문에 무리를 해서까지 세배돈을 줄 필요도 없고 아이들에게 진심 어린 축복이 담긴 말들을 해주는 집안 분위기를 형성해보자. 그리고 세배돈을 주는 어른들은 “맛 있는 걸 사먹어라”, “네가 사고 싶은 걸 사라”는 말보다는 “유용하게 쓰거라”, “꼭 필요한 곳에 쓰거라”, “어려운 이웃과 친구들을 돕는 데 쓰거라” 라고 말해주자. 가장 중요한 것은 세배돈을 대하는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들한테 세배돈의 의미에 대해서 말해주고 액수가 많든 적든 감사한 마음으로 받도록 해야 한다. 세배를 하면 생기는 너무 쉽게 얻어지는 돈이기에 아이들이 자칫 ‘돈벌이’로 생각할 수 있고 돈을 가볍게 생각할 수 있기에 부모는 이 기회에 잘 이끌어주어야 한다. 아이가 아직 어리고 돈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부모가 대신 관리해주고 좀 큰 아이들은 함께 은행에 가서 아이의 이름으로 저금통장을 만들어주고 경제관념을 가지도록 하며 돈이 생길 때마다 저금하도록 인도하여 어릴 때부터 아껴 쓰는 습관을 갖도록 하면 좋다. “세살 적 버릇 여든 간다”고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금전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개념을 갖도록 교육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고중학생과 대학생은 받은 세배돈을 자기절로 관리하도록 할 수 있다. 부모가 맡아준다며 무턱대고 빼앗아내는 것은 금물이다. 세배돈을 적절하고 유용하게 쓰도록 지혜를 가르쳐주는 것이 부모와 어른들의 역할이다. 이제는 세배돈 문화를 바꿔보자. 본연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도록 말이다. 길림신문
137    아름답거나 잘생기면 다 용서된다? 댓글:  조회:1137  추천:0  2021-02-22
[대림칼럼] 아름답거나 잘생기면 다 용서된다? 전은주        전은주 략력: 1986년 도문 량수 출생, 연변대학교 문학석사, 연세대학교 문학박사, 현재 연세대학교 시간 강사,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 재한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1. 시각적 이미지의 시대?   중국에서 녀성의 아름다움을 ‘전족’의 경우를 가지고 따진 시대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발을 비단 같은 천으로 꽁꽁 동여매고 가능하면 발을 작게 성장하게 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 전족은 남성의 성적 소유욕이 작용한 결과이다. 아프리카 호텐도트족들이 갖는 미녀의 조건은 유방의 길이라고 한다. 미인은 그 길이가 1미터쯤은 되여야 하는데, 아이를 업고 가다가도 등에 업은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있어야 했다. 물론 이 경우는 로동력이 그 종족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조건으로 변한 결과이다. 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난파해서 한양으로 압송되는 서양인들을 보고 사람들이 ‘도깨비’라고 했던 기록도 있다.   전족의 시대나 어떤 종족의 ‘아름다움’ 또는 ‘잘생김’은 우리의 현대적 관점으로는 ‘더러움’ 또는 ‘못생김’으로 파악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이나 잘생김 같은 미의 기준은 힘의 조건 또는 권력의 조건이라는 점을 알아차려야 한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에 나오는 흉측하게 생긴 꼽추 콰지모도는 악의 상징이고, 아름답게 묘사되는 집시 에스메랄다는 선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선입견은 그 시대 대중들이 지니고 있는 그릇된 판단일 뿐이다. 이 소설은 악과 선은 그 모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배계층의 부패와 대중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라는 것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2. “아름답거나 잘생기면 다 용서된다?”   드라마에 낯선 이와 어깨를 부딪쳐도 상대가 잘생기면 바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겸손을 떠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생김’에 약하다. 귀엽게 생긴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 호들갑을 떨지만 두꺼비나 뱀을 보고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지는 않는다. 물론 동화책에 등장하는 악마나 질이 나쁜 주술사는 뱀이나 지네를 잘생긴 존재로 보기도 한다.   물건을 고를 때도 예쁘게 포장된 것을 고른다. 못생긴 것은 잘생긴 것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구매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믿는다. 그래서 미디어는 끊임없이 잘생김을 소환하고, 이젠 개그맨조차 잘생기지 않으면 무대에 설 수가 없게 되었다.   예전에는 영화배우나 가수는 성형수술을 한 것을 숨겼는데, 이제는 대놓고 자신의 얼굴이나 몸에 ‘칼 좀 댔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외면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면의 아름다움은 잘 드러나지도 않고, 그 내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드물다. 왜 그럴까? 리유가 무엇일까? 혹시 사람들은 그 ‘내면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그것에 대해 배운 적도 없고, 실천해 본 적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닐까?   3. 잘생긴 ‘조선군’과 못생긴 ‘조선족’       한국 미디어나 영화에 등장하는 ‘조선군’과 ‘조선족’의 이미지는 ‘잘생김’과 ‘못생김’으로 량분화된다. 조선군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은 강동원(, 2010), 김수현, (, 2013), 공유(, 2013), 현빈(
136    명곡의 힘 댓글:  조회:1154  추천:0  2021-02-09
[길신론평] 붉은 해 솟았네/천리변강 비추네/장백산 아래 사과배 열리고/해란강반 벼꽃 피네/험산을 파헤쳐 보물을 캐고/강물을 가로막아 산에 올리네/에헤,연변 인민 투지높이 변강을 건설하며/공산당의 령도 아래 승리 향해 나아가네 노래 의 가사이다. 한윤호선생이 가사를 쓰고 김봉호선생이 작곡하고 1965년에 황인순녀사가 제일 처음으로 불러 전국을 들썽케 한 노래이다. 이미 전국인민들이 반세기 남짓이 불러온 명곡이다. 이 노래가 요즘 중앙민족가무단의 가수 변영화가 불러 길림신문사에서 펴낸 이벤트—‘내가 제일 즐기는 노래 20수’에 뽑혔다. 신문사에서는 시청자들의 투표를 거쳐 뽑힌 노래 20수를 한데 묶어 위챗 공식계정 《朝闻今日(길림신문)》를 통해 전 사회에 전파했고 해당 노래의 창작자들과 가수 그리고 영상프로 제작자들에게 상장을 드렸다. 오스트랄리아 시드니에서 생활하고 있는 화룡태생의 조선족 작사자 림해를 통해 김봉호선생께서 보낸 메시지를 보고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메시지는 이렇게 쓰고 있다. “ 이 곡을 창작하여 지금까지 반세기 넘었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길림조선문보사(《길림신문》)의 상을 받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1937년 출생의 김봉호선생은 국가1급 작곡가이다. 북경에서 살고 있는 김봉호선생은 요즘 련며칠 모니터에서 메시지를 쓰면서 난생처음으로 상장을 받게 된 것으로 하여 어린애처럼 기뻐하다가 격동된 나머지 눈물까지 흘렸단다. 반세기 만에 처음 받아보는 상이라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확인해보니 확실히 첫번째라는 것이였다. 필자는 인차 회답 메시지를 보냈다. “오히려 김봉호선생님께 미안합니다. 《길림신문》도 창간 35년이 지난 오늘에야 뒤늦게 상을 드리게 되였으니,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건강장수를 빕니다. 더 좋은 곡을 창작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격동이라기보다 오히려 미안함이 앞서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서글프기만 했다. 아니, 그 어떤 상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불후의 명곡이기에 장장 반세기나 영예증서와는 인연이 없었을 것이리라, 이렇게 생각을 달리 해보니 내 마음은 거쁜해났다. 바로 명곡의 힘이 여기에 있는가부다. 는 공산당의 령도 아래 조국 건설에 투신해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연변 인민들의 활기찬 모습과 분투정신을 담은 노래이다. 노래는 위대한 시대를 열어가는 돌격의 나팔소리로서 전국 인민들을 승리에서 승리를 이룩하도록 힘차게 격발시키고 있다. 부르면 부를수록 더 부르고 싶은 노래, 부르면 부를수록 더 성수나는 노래, 부르면 부를수록 더 힘이 솟는 노래이다. 공자는 음악은 인성에 없어서는 안되는 쾌락을 낳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가 바로 사람들에게 쾌락을 선사하는 명곡이다. 연변 인민들은 바로 이 노래를 부르고 들으면서 쾌락을 힘으로 바꾸어 변강을 아름답게 건설하였다. 음악에 관련한 공자학설의 참뜻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우선 이 노래는 광대한 인민군중들의 지혜와 감정을 뜻깊은 가사와 경쾌하고 건드러진 선률에 담았기에 그 인민성이 두드러졌다. 가사는 짙은 지방색채를 띠면서 로동인민들의 사상, 감정, 의지, 추구와 소망을 노래에 담았다. 이것이 바로 이 노래가 반세기 동안 인민군중들의 사랑과 절찬을 받게 되고 애창곡으로 불리워진 리유이다. 노래는 어디까지나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근본 취지로 삼는다. 노래는 대중들을 단합과 조화에로 이끌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드높은 투지와 신근한 로동정신을 발양해 조국 건설을 위해 기여하도록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이같이 이 노래는 또 내용이 건전하고 향상적이고 교양적이였기에 명곡으로 뽑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글을 마감하면서 가 이제 또 반세기 쭉 불리워지면서 불후의 명곡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이 시각 어디선가 가 선률을 타고 귀맛 좋게 들려온다. /홍길남
135    아이의 세배돈은 누구의 몫인가? 댓글:  조회:969  추천:0  2021-02-08
설이 되면 어른들은 아이에게 늘 선뜻이 세배돈을 주면서 다음 세대에 대한 아름다운 축복을 전한다. 어른들은 세배돈은 서로 주고 받는 것으로서 실지로 자기 아이가 받는 돈도 자기가 다른 아이에게 준 돈을 돌려받는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배돈을 부모의 소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소학교 5학년 남학생 소도(小涛)는 변호사를 찾아가 자기가 어머니와 론쟁이 발생했는데 외할머니가 그에게 준 세배돈 1000원을 어머니가 빼앗아갔다고 호소했다. 소도는 어머니의 소행이 그의 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하여 전문적인 법률인사의 도움을 받기 바랐다.   세배돈이 대체 누구의 소유이고 누가 지배해야 하는가 등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하고 있는 문제이다. 아래에 소도의 사례를 들어 법률분석을 하여 사람들에게 참고로 제공하려고 한다.   우선, 아이의 세배돈은 법률적으로 증여행위에 속하기에 응당 수증자에게 속해야 한다. 우리 나라 민법전 657조에서는 증여계약에 대해 규정을 내려 증여인이 자신의 재산을 무상으로 피증여자에게 줄 때 피증여자가 증여계약을 받아들인 것으로 인정한다고 했다. 민법전 658조 제1항에서는 증여인은 증여한 재산의 권리가 전이되기 전 증여를 철회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외 민법전 제19조에서는 만 8세 이상의 미성년자는 순전히 리익만 받는 민사법률행위를 독립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상술한 규정을 결합시켜 볼 때 어른의 세배돈은 순전히 리익만 받는 민사법률행위로서 미성년자가 독립적으로 받을 수 있다. 또한 어른은 세배돈을 줄지 안줄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고 돈을 주기 전에는 어른 본인의 소유에 속한다. 세배돈을 꺼내 상대방에게 주면 이 돈은 상대방에게 속하는데 이 '상대방'이 바로 피증여자이다. 소도의 외할머니가 소도에게 세배돈 1000원을 줬기에 외할머니가 바로 증여인이고 소도가 바로 피증여자이다. 증여를 받은 후 이 돈은 소도의 소유에 속하고 소도의 개인재산에 속한다. 만약 소도의 어머니가 다른 집 아이에게 세배돈을 주었다면 그녀가 바로 증여인이고 다른 집의 아이가 바로 피증여자이다.   다음, 부동한 년령대의 미성년자는 부동한 제한을 받고 상응한 민사법률행위에 종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미성년자는 사회경험이 부족하고 지혜가 성숙되지 않았기에 그의 나이대에 부합되는 행위에만 종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법적 효력을 갖고 있지 않다. 부동한 나이대의 심신발전법칙 및 성장특점과 결합해 우리 나라 법률은 금치산자(민사행위능력이 없는 자)와 한정치산자(민사행위능력이 제한받는 자)의 행위능력에 대해 규정을 내렸다. 민법전에서는 만 8세가 되지 않는 미성년자는 금치산자로서 그의 법정대리인이 민사법률행위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만 8세 이상의 미성년자는 한정치산자로서 그의 나이, 지력에 부합되는 민사법률행위를 독립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비록 세배돈은 아이의 소유이지만 아이는 함부로 소비하거나 지배할 수 없다. 만약 만 8세가 되지 않은 미성년자라면 부모가 대리로 지배해야 하고 만약 만 8세 이상의 미성년자라면 나이, 지력에 부합되는 민사법률행위만 실시할 수 있는바 대형 상품을 구매하거나 온라인셀럽에게 고액의 팁을 주는 등은 모두 부모의 동의 혹은 추인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소도는 이미 소학교 고학년 학생으로서 한정치산자에 속하기에 그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책가방, 문구 등만 구매할 수 있으나 기타 고액소비는 모두 부모의 동의 혹은 사후추인을 거쳐야만 법적 효력이 있다.   다음으로 부모는 미성년자의 재산을 타당하게 보관해야 하는바 미성년자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면 우선 세배돈에서 지불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 새로 수정한 미성년자보호법에서는 부모는 마땅히 미성년자의 재산을 타당하게 관리하고 보호해야 하며 미성년자의 재산을 불법으로 처분, 횡령하거나 미성년자를 리용해 부정당한 리익을 도모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했다. 세배돈은 미성년자 본인의 소유로서 부모에게 위탁하여 관리할 수 있지만 부모가 차지하거나 단순히 자신을 위해 소비하면 안된다.   (작자: 북경청소년법률지원연구쎈터 부주임, 북경시지성변호사사무소 파트너변호사)   래원: 인민넷-조문판
134    꼬리와 머리 댓글:  조회:1275  추천:0  2020-12-29
글 궁금이 · 방송 전금화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한해였다. 끔찍했던 지난 설을 어떻게든 보내고 이제 다른 한해의 설을 앞두고 있다. 북경은 요며칠 사상 제일 추운 겨울을 맞고 있다고 한다. 바이러스는 추운 겨울에 얼어죽을 법도 하건만 오히려 머리를 쳐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는 역학조사를 피해 휴대폰을 꺼놓고 집회를 하는 종교인들이 있다고 한다. 신앙인지 아니면 어떤 특정 군체의 리익인지 바이러스 앞에서도 사람들은 수판알을 튕기고 있다. 머리를 많이 굴리고 있는데 아무리 교활한 여우도 사냥군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꼬리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여 있다.        출근해 달력을 보니 지난 주말이 2020년의 마지막 주말이였다. 다사다난이란 말은 해마다 년말이면 여기저기서 굳어진 단어로 등장하는 고정 “출연자”다. 어느 한해에도 빠져본 적이 없다. 웬만한 연예인도 이정도 장수 고정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올해 같은 해가 올 줄을 미리 알았더면 그 전의 어떤 해에도 입 밖에 내지 못했을 표현이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쓰고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기다. 생명의 위험부담 앞에서는 모든 것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올해 마지막 주말의 등산도 매주마다 가는 공원으로 갔다. 마지막 주말이라는 걸 의식했더면 좀더 의미를 부여해 다녀왔을 걸 유감스럽게도 오늘에야 느끼게 된다. 사실 부단히 순환하는 자연계를 놓고 말하면 처음과 마지막은 그렇게 엄격한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해마다 첫눈이 오면 흥분해서 모멘트에 사진도 올리고 시도 쓰고 그런다.        그런데 자연의 계절은 년초에도 겨울이고 년말에도 겨울이다. 2020년을 례로 들면 사실상 올해 년초 겨울에 처음 내린 눈이 첫눈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2019년의 마지막 눈이라고 여긴다. 그리고는 오히려 2020년이 다 가는 겨울에 내리는 눈을 올해의 첫눈이라고 부른다. 눈은 그냥 기후 변화에 따라서 와야 되겠다 싶을 때에 왔을 뿐인데 우리는 거기에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하면서 의미를 부여한다. 요즘 류행어로 하면 “의식감”이다.       이렇게 같은 현상에 부여하는 다른 정감세계에 대해 제3자의 립장에서는 자기가 리해하기 나름이다. 같은 작품을 놓고 다른 평론가가 상반되는 리해와 주장을 펼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어떤 평론가는 항상 옳고 어떤 평론가는 늘 공격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각도와 립장과 견해와 주장이 다를 뿐이다. 평론은 작품성의 승격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한 작품의 개성을 문질러버릴 수 있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독자의 취향과 선택이 천차만별인 것도 마찬가지다. 다름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어느 개별적인 악플러에 맞춰서 글을 쓰지는 않는다. 여러번 퇴짜를 맞아 수정하다가 나중에 포기하고 제일 처음의 것을 다시 들고 갔더니 이제야 제대로 된 보고서가 나왔다고 칭찬하는 상사도 있다. 결국은 처음의 것이 마지막 걸로 돼버렸다. 이렇게 같은 내용도 다른 시간대에 다른 심정에서 만나면 상이한 결과를 낳는다.        영국이 모레면 정식으로 EU에서 탈퇴한다. 사실 8년전부터 나돌았던 얘기고 4년반전부터 본격 추진해서 드디여 현실화된다. 영원한 친구는 없나 보다. 이제 관광을 가도 EU비자와 영국 비자를 별도로 받아야 된다. 시작은 서로의 리익에서 출발했지만 결과는 나의 리익에서 마무리되였다. 영국이든 사람이든 시작이 좋다고 하여 끝도 원만한 건 아닌가 보다. 아무리 공리적인 심리가 없다고 해도 리해 관계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냥 잠시 가려졌을 뿐이다.        동물농장 프로에 보면 자기 꼬리를 물겠다고 끝없이 뱅뱅 돌아가는 강아지를 보게 된다. 천년만년 돌아도 결국에는 헛수고다. 그 꼬리가 어떻게 못나고 잘못했든 간에 결국에는 자기 몸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예 신경을 끄고 돌아보지 않기만도 못하다. 하물며 머리든 꼬리든 우리가 그렇게 명명했을 뿐이지 바꿔서 불러도 그 존재는 어디 가지 않는다. 결국 척추로 련결된 한 몸의 두 부분이다. 하물며 다른 강아지의 꼬리는 아무리 함치르르하고 탐스러워도 결국 남의 것이다.        년말 총화의 계절이다. 제일 싫은 게 이 절차다. 내가 멋있게 쓴다고 안 한 일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적게 말했다고 해놓은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굳이 본인의 입으로 여차여차한 일을 했다고 말해야 한다. 물론 많지도 적지도 않게 딱 내가 한만큼 객관적으로 개괄해놓는 게 총화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한 일을 다른 사람이 들여다봤을 때도 그런 의미일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대공무사하게 오로지 조직을 위해 묵묵히 일했지만 어떤 이들의 눈에는 공리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고 눈치만 살펴가며 표가 나는 일만 골라서 했는데도 박수를 받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립장에서는 허무하고 김이 새는 일이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일을 오래 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 어느 게 여우꼬리이고 어느 게 소꼬리인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여 있다. 필경 그걸 알아보는 머리는 꼬리보다 명석하기 때문이다.       주말에 공원에 갔더니 그 안에서 머물며 일하는 분들이 키우는 누렁이 한마리가 심하게 짖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들여다 봤더니 뒤에서 꼬리는 살살 흔들면서 입으로는 끊임없이 지저대고 있었다. 짖는 입과 흔드는 꼬리 사이에 무슨 련계가 있는 신호인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친절하게 불러주면 고개를 쳐든 채 빤히 쳐다 보며 계속 꼬리를 흔드는 걸 봐서는 적의가 있는 짖음은 아니였다.        사람들이 어떻게 리해하는가에 따라 마실을 나간 주인더러 빨리 오라는 부름일 수도 있고 오늘은 전날보다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외롭지 않다는 환영의 인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날따라 원래 기분이 울적했는데 운 나쁘게도 날아가던 새한테 변테러까지 당했다.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인데 이때 마당에서 난데없는 개까지 짖어댄다. 그러면 당시 기분에서는 개한테 돌을 던질 수도 있다. 보통 경우에 개가 짖는 건 적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짖지 않는 개가 문다는 견지에서 보면 침묵이 더 무서울 수도 있는데 말이다.       자초지종이라는 말이 있다. 조사연구가 없으면 발언권이 없다는 유명한 말도 있다. 책망조로는 꼬리대가리 없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밑도끝도 없다는 말도 있다. 공원 안의 강아지든 사회생활 속의 인간이든 다 사연을 안고 산다. 차분한 마음으로 알려고 하면 바늘 구멍도 보이고 화로 밀어붙이려 하면 눈은 떴어도 까막눈일 수가 있다.         꼬리와 머리는 다 몸체를 위해 존재하고 몸체를 통해 이어진다. 중간 상태를 떠난 량극은 존재의 기초도 없고 의미도 없다. 천재도 영재도 다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있어서 존재한다. 누가 처음이고 누가 마지막이라고 따질 필요도 없다.        머리부터 나와서 흔적 없이 사라지는 자연현상의 순간일 뿐이다. 중국조선어방송넷 
133    ‘주말주택’□ 김준환 댓글:  조회:1198  추천:0  2020-12-22
요즘 전원생활문화가 각광받고 있다. 그리하여 주중에는 도시에서, 주말에는 시골에서 보내는‘주말주택’이라는 말까지 생겨나고 있다.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청정하고 풍경이 좋은 어느 시골에서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여유롭게 사는 모습을 꿈꿔본다. 최근 도시화, 현대화에 따른 도심의 생활환경 및 주거환경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친화적 삶에 대한 욕구가 한층 더 높아지고 있다. 더우기 사회적인 여건 변화로 여가시간이 많아지고 개인들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여가와 웰빙 생활에 대한 갈증이 커지고 있다. 이런 욕구로 인해 복잡한 도심을 떠나 물 맑고 공기 좋은 곳, 그러면서도 어릴 적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며 목가적인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하는 도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평일에는 도시에서, 주말에는 전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도시 생활을 내려놓기는 어렵지만 전원생활을 맛보고 싶어 도시와 전원을 오가는 이중생활을 하는 것이다. 경제활동, 자녀교육 문제 등 여러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이를 절충한 ‘주말주택’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말주택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도 후회막급해하며 결코 만족스러워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가끔 보게 된다. 이들 대부분은 오래동안 가슴속에 품었던 자연에 대한 동경을 실천으로 옮겼으나 거기까지이다. 자연풍경만 강조한 나머지 정작 그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보니 문제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도시생활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지내보겠다는 바람만 있었을 뿐 정작 ‘시골에 내려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전원생활을 한다고 하여 평소 알지 못하던 것을 갑자기 다 알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여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며 그처럼 재미없는 전원생활은 절대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전원생활에는 도시에서 꿈꿔보지 못한, 남들이 알지 못한 아름다움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다. 조용한 농촌마을이라고 하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한눈에 포착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번거로움과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다. 그중 마을 사람들과 잘 융합하지 못하여 오는 이웃 관계로 빚어지는 투정이 많다. 마득하면 집값이 천냥이라면 이웃이 9백냥이라는 말이 있을가. 세상 모든 일이 사람들이 바라고 생각한 바처럼 예정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전원생활이란 원래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건데 어찌 하다보면 마지 못해 매여있는 옹색한 신세가 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휴양지보다 더 아름다운 농촌마을이 많다. 그만큼 ‘도시인의 로망’인 시골생활, 전원생활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시골생활은 멋진 풍경을 무시할 순 없지만 무엇보다 ‘생활’에 방점을 둬야 한다. 가을 단풍에 홀딱 반해 립지의 장단점, 이웃관계를 두루 살피지 않으면 아름다운 전원에서 살면서도 나중에 후회하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전원생활에서 펼쳐야 할 구체적인 내용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원생활도 따분하고 지루할 뿐이다. 연변일보 
132    [두만강칼럼]이환위리(以患为利) 댓글:  조회:1142  추천:0  2020-12-17
  조려화     조선족 중소학교 ‘한어’교재가 국가통일교재 ‘어문’교재로 교체되였다. 이는 〈중화인민공화국헌법〉에서 밝힌 “국가에서는 전국적으로 통용하는 보통화(普通话)를 보급해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실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체 조선족 학생들과 조선족 사회의 초미의 관심사로 된 국가통일교재의 사용에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하며 어떻게 적응해야 할가. 즉 ‘한어’교재의 사용에 학생들과 교원들, 그리고 학부모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가. 국가통일교재 ‘어문’은 기존에 배우던 교재보다 과문이 많고 장악해야 할 한자의 량도 현저히 많아졌다. 여기에 고시조(古诗)와 문언문(文言文)이 많기 때문에 조선족 학생들에게는 넘어야 할 힘든 고비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의 소학교에는 당장 한어를 가르칠 교원의 부족으로 타지방 교원들이 와서 수업을 하고 있고 한어교원들은 강습반에 다니며 ‘어문’교재의 보급에 대비를 하고 있다. 우리 조선족 학교와 학생들, 학부모, 그리고 교원들에게 있어서 이번 교육개혁은 크나큰 애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경제시대 우리 나라의 세계적 지위가 높아감에 따라 한어를 잘 배우는 것은 미래에 분명 월등한 우세로 작용할 것이다. 조선족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문제점이 취업이나 면접, 발표, 자격증 취득 등 각종 관문에서 한어를 류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조선족 대학생들의 취업률이 가장 높은 한국기업에 취직하려면 한어를 배운 한국인과 조선어를 류창하게 구사하는 한족 학생들과 경쟁해야 한다. 어쭙지 않은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고 필연코 경쟁사회에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이환위리(以患为利)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로 ‘목표를 향하는 길에 생기는 고난과 장애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다’는 뜻이다. 조선족 학생들은 반드시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자신의 장래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조금 힘들더라도 빠른 시간내에 새로운 교재에 적응을 하고 기본자질을 높여야 하며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과외독서를 통하여 한자를 많이 장악하고 글짓기능력을 제고해야 하며 정치, 력사 등 다양한 령역의 지식도 장악해야 한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없이 현실만 탓하다 보면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고 밝은 미래를 전망하기는 어렵게 된다. 세계는 곧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진입하게 된다.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미리 계획해야 하며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조선족 학교 교원대오의 수준도 높여야 한다. 새로운 시대,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안일하게 대처하다가는 우리의 교육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국제화의 길로 나아가는 시대, 우리의 교원들은 자신의 자질을 끊임없이 승화시키는 동시에 우리의 전통문화와 정체성을 지켜갈 수 있도록 학생들을 인도해주어야 하며 교육체계를 바로세워야 한다. 기초를 튼튼하게 닦아주어야 그 우에 기둥을 세울 수 있고 학생들의 멋진 꿈을 이룰 수 있게 이끌어줄 수 있다. 학부모들은 학생을 학교와 학원에 맡기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학교와 협력하고 학생들이 새로운 교재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나라의 교육정책이 어떻게 바뀌는지 수시로 알아보고 학생들의 종합적 자질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함께 책을 읽고 함께 배워가면서 학생이 불안한 심리를 갖지 않도록 해야 하며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어야 한다. 이번 교육개혁은 어찌 보면 전화위복의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킬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 민족이였다. 학생과 학부모, 교원들이 합심하여 슬기롭게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길림신문/ 조려화(교원)
131    믿음의 가치와 사회적 신뢰 댓글:  조회:1197  추천:0  2020-12-14
글/ 박영진 박영진 약력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연변대학 물리학부 졸업.1989년 대학생예술절 글짓기응모, 수필조 1등상 수상. 2018년 법무부 세계인의 날 수기공모 특등상 1등 수상. 한반도문학 신인상 수상, 동포문학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 KBS한민족방송 우수상 15회 수상, 중국동포역사교육문화탐방 후기상(2) 수상 한 남자가 시골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계산하려고 주머니를 뒤졌는데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식당 주인에게 말했다. 한 시간 안에 돈을 가져와 지불해도 될까요? 늙은 식당 주인은 펄쩍 뛰었다. 돈을 당장 지불하지 않으면 신고한다고 야단이다. 식당 웨이터가 주인에게 말했다. “지갑을 깜빡하고 외출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제가 대신 내겠습니다. 전 이 분을 믿습니다.” 얼마 후 남자가 식당에 돌아와 주인에게 말했다. “이 식당을 얼마에 팔겠소?” 주인은 욕심껏 말했다. “3만 프랑이요” 그는 그 자리에서 3만 프랑을 주고 식당을 샀다. 그는 웨이터에게 말했다. “당신이 나를 믿어준 건 3만 프랑보다 더 값진 일입니다. 이제부터 이 식당 주인은 당신입니다.” 그는 평복차림으로 나왔던 나폴레옹이었다. 그의 말처럼 믿음의 가치는 금전적으로는 따질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인연이 나폴레옹과 웨이터의 인연처럼 아름다운 인연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이 허황한 아름다운 바람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무정한 사회현실은 냉혹한 것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각박한 인심과 삭막한 세상에서는 나폴레옹 같은 위대한 위인이나 의로운 의인이 나타날 수 없고 그 웨이터와 같은 착하고 순진한 사람도 살아남을 수 없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지 않으면 다행이고 길러준 개에게 물리지 않으면 행운이라 생각하며 사람들은 다들 명철보신한다.    살다보면, 사람들은 아름다운 인연, 진정한 인연보다 바람처럼 스쳐가는 수많은 새로운 인연들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재수 없이 악한 사람을 만나 악연을 맺지 않아도 얼마나 행복하고 행운인지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나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노다지판인지 노가대판인지 하는 건설현장을 전전하면서 깡패, 양아치들을 만나기전에는 나도 몰랐다. 한국의 하늘은 항상 푸르다고만 생각했었다. 별별 인간들이 다 모여 사는 인간세상은, 풍운조화를 예측키 어려운 바다와도 같은 것이다. 이 땅의 모든 강물이 다 바다에 모이듯, 이 세상 모든 오물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이 또한 인간사회이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며 검은 돈 더러운 돈 가리지 않고,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양심도, 의리도, 믿음도 쓰레기통에 거리낌 없이 처넣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한심한 세상이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 하고 가진 것을 지키려고 사람들은 한사코 발악을 한다. 없는 자는 있으려 하고 없으면 훔치고 사기치고 뺏으려 한다. 부정부패와 비리, 반칙과 위법행위를 해서라도 돈만 벌면 장땡인줄 안다. 빈익빈, 부익부, 무전유죄, 유전무죄라고 법 앞에서 사람마다 평등하지 않다고들 생각한다. 사회적 신뢰가 형편없이 발바닥에 떨어져 신음하는 한국의 슬픈 현실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남북갈등과 동서갈등 그리고 이념갈등, 믿음과 배려가 전혀 없는 세대갈등과 첨예한 노사갈등은 세계1위, 세상도 자신도 믿을 수 없어 자살률도 세계1위, 사랑도 없어 이혼율도 세계1위, 그래서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부탄1위),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고 생명인 한국 언론 신뢰도는 OECD(국제개발협력기구) 40개국 중 4년째 연속 40위, 그래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언론이고 쓰레기언론, 기자쓰레기(기러기)라 욕을 먹는다. 사회적 신뢰가 실추된 피해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천문학적 수자라고 한다. 믿음의 가치가 금전적으로는 따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유 튜브나 페이스 북 같은 SNS 댓글 란에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제격이다’는 한국 속담이 자주 올라온다. 미친개는 제 주인도 문다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민이 선거한 임명권자의 의사에 따르지 않고, 또 국가공무원이 직속상관에게 항명을 하고 해야 할 수사는 안하고 제 식구 감싸기와 선택적 수사, 보복 수사, 조작 수사만 한다고 분노한 국민들의 목소리라고 생각된다. 사필귀정, 인과응보, 자업자득이라고 유아독존, 무소불위의 권한을 남용하면서 좋은 사람을 해치고 생사람을 잡는 이런 자들은 결코 좋은 끝장이 없을 것이다. 솔선수범하여 법을 지키는 모범이 되어야 할,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는 공권력이 지들부터 법을 지키지 않고 범법행위를 거리낌 없이 하는 철면피, 몰염치, 파렴치, 후안무치한 조직이라고, 이런 조직들은 해체가 답이라고 국민들은 웨치고 있다. 국민의 지팡이, 국민의 힘이 되어야 조직이 국민의 짐, 국민의 적이 되어버린, 국민의 혈세를 빨아먹는 진드기 같은 이런 조직들은, 지들의 기득권만을 위하면서도 말끝마다 국민을 대표한다며 지껄이는 이런 조직들은 해체가 해답이라 깨어있는 시민들은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며칠 전에 YTN ‘뉴스가 있는 저녁’(뉴있저)프로에서 26억 전세 사는 이혜훈, ‘15년 무주택’ 설음? 이라는 보도를 했고 경향신문에서는 이혜훈 전 국민의 힘 국회의원 ‘5년째 무주택, 집주인 전화에 밥 안 넘어가’ 라는 기사를 실어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국민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면 26억 황제전세로 무주택 코스프레를 할 수 있는가? 어디서 감히 이런 말장난을 하는가? 이 정도면 가히 정신병적 현상이다. 정치인들의 이런 말장난은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지 않고는 결코 있을 수 없는 망발이다. 이런 분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내년 4월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 운운하는 현실이 대한민국의 슬픈 정치수준이다. 이런 분이 국민의 힘 중진의원이었다는 것도 치욕이지만, 세계적인 도시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는 게 또한 희대의 코미디이다.  ‘저를 믿으시지요? 저를 믿어주세요!’ 믿음과 신뢰가 없고 신용을 지키지 않으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기꾼(정치사기꾼 포함)들의 상투적인 기만수법이다. 더 이상 쥐에게 나라의 곡간을 맡기고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저 나폴레옹과 웨이터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우리 땅에서 우리 민족의 이야기로 꽃피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 12 10 전북김제 동북아신문  
130    [대림칼럼] 나의 일본 오카상​ 댓글:  조회:1218  추천:0  2020-12-14
[대림칼럼] 나의 일본 오카상​ 최해선   누군가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거나 친절을 받았던 기억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삶에 힘이 되고 보탬이 된다. 그 누군가가 가족이든 친구든 아니면 그저 한번 스친 인연일지라도 오래도록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 사람을 닮고 싶어진다.   “내가 사이상(崔さん)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지만 일본에도 오카상(어머니)이 있으니 슬퍼하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요.”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 오카상이 해준 말씀이다. 십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귀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고, 떠올릴 때마다 위로가 된다.   오카상은 내가 일본류학시절, 마츠야마(松山, 에히메현의 소재지)에서 하숙했던 죠신지(常信寺)의 주인이자, 선대 주지스님의 부인이다. 일본의 불교는 스님에게도 결혼과 육식이 허용되는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죠신지는 마츠야마의 명물인 도고온천(道後温泉)에서 5분거리도 안되는 곳에 위치하며 아름다운 정원과 벚꽃으로 유명하다. 죠신지숙소는 이미 돌아간 선대 스님이 호주 류학생의 홈스테이 경험을 계기로 지어진 류학생용 숙소다. 원룸 두채가 나란히 이어진 2층짜리 건물인데 시중에서 임대되는 원룸보다 훨씬 넓고 쾌적할뿐더러 아주 저렴한 임대료로 류학생들에게 제공되였다. 중국, 미국, 인도, 호주, 스웨덴 등 여러 문화배경을 지닌 류학생들이 이 숙소를 거쳐갔고, 나도 그중의 한 명이였다.   죠신지에서 사는 동안, 오카상은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늘 챙겨주었고 좋은 추억이 되라며 곧잘 여기저기 구경시켜 주었다. 코스모스가 한없이 펼쳐진 꽃밭에도 데려가고, 반디불을 보려고 일부러 늦은 밤에 드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가끔 우아한 찻집과 음식점에 데려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일본의 전통의상인 키모노를 직접 입혀주며 체험하도록 했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호텔에서 례식장 시물레이션 행사에 모델로 발탁되였을 때도 손녀딸과 함께 응원차 행사장을 방문해서 기를 세워주기도 했다. 특히 시집간 딸과 둘째 아들이 본가로 올 때면 나도 가족 모임에 초대해서 함께 어울리게 했다. 그런 오카상 덕분에 마츠야마에 있을 땐 외롭다는 생각이 들 틈이 없이 즐겁게 잘 보냈다.   죠신지숙소는 입주조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일주일에 한번씩 진행되는 마당청소였다. 대개 이른 아침에 한시간정도 오카상과 함께 마당을 쓸거나 정원의 풀을 뽑거나 법당 마루바닥을 닦는 일이다. 한주일에 한번만 있는 일이지만, 올빼미족인 나에겐 아침약속을 지켜내기가 여간만 힘들지 않았다.   처음엔 좀 불편했지만 아름다운 정원을 구석구석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다 보니 어느덧 나는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일도 일이지만, 오카상은 이 시간을 리용해서 철따라 정원에 피는 꽃들을 구경시켜 주며 꽃들의 이름과 특징을 설명해주곤 했다. 1월이면 동백꽃, 2월이면 매화꽃, 3월이면 수선화, 4월이면 벚꽃, 5월이면 철쭉, 6월이면 수국…그야말로 죠신지의 정원은 지루할 새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세시풍속이며 력사, 좀처럼 접할 수 없는 일본 사찰의 문화 등등 내가 일본을 알고 리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단 한번도 나에게 반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정확하고 예쁘고 품위있는 일본어를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배려해준 것이다.   그러나 모든 류학생들과 조화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언젠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며느리인 리츠코씨가 어느 류학생과 마찰이 있어서 괴로웠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런 일들을 몇번 겪고 나니 죠신지숙소를 페쇄할가 망설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사실 일본 사찰의 울안에는 묘지도 있다. 죠신지에도 정원 깊숙이 들어가면 고인들을 모신 묘지가 있다. 게다가 숙소의 위치도 바로 주인집의 옆인지라 지켜야 할 례의가 많았고 사찰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즉 죠신지를 방문하는 신자들이 보이는 곳에 빨래를 널거나 소란스럽게 구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특히 저녁 9시가 지나면 사찰 전체가 고요한 적막이 흐르기 때문에 밤늦게 친구를 초대해서 홈 파티를 즐기거나 볼륨을 높여서 음악을 듣거나 하는 것은 피해야 하는 암묵적 룰이다. 행동 제약이 많으니 젊은 청춘들에게는 어쩌면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고, 서로의 문화습관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트러블도 가끔 발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카상은 몇몇 류학생들과 생긴 마찰로 성급하게 일반화하지 않고 더욱더 류학생들을 리해하는 방향으로 숙소를 운영하였기에 오늘날까지 많은 류학생들이 좋은 환경에서 일본의 문화를 접하고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류학생들끼리도 가깝게 어울리면서 다양한 경험과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때 옆집에 하숙하고 있던 인도 류학생 람과 두터운 우정을 쌓을 수 있었고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였다.   그 후, 박사과정으로 진학하면서 정든 죠신지를 떠나 코베로 이사하게 되였다. 떠나는 날, 오카상은 나의 손을 잡고 “사이상이 여기 살아줬기에 좋은 추억들을 많이 남길 수 있어서 고마워요.”라고 하셨는데 헤여짐의 슬픔보다 나도 나름 괜찮은 사람이였다는 것을 자각하게 해서 한동안 가슴이 벅차고 목이 메여서 말을 잇지 못했다.   오카상과 죠신지에서의 따뜻하고 풍요로운 기억들은 후날 살아가면서 늘 나에게 힘이 되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나가도록 힘이 되였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력이 되였다.   한편, 일본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이고 겉치레 관계가 많다는 고정관념때문에 지레 겁먹고 접촉하기도 전에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었는데 오카상 덕분에 나 또한 일본인들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사람은 처한 환경이나 몸담고 있는 문화배경에 따라 보이는 표상은 달라도 내면은 같을지도 모른다. 어느 개인의 행동을 보고 서뿔리 일반화하여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거나, 한 개인 혹은 집단의 1%를 보고 99%를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난 오늘도 오카상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뜻하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최해선 약력: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일본 에히메대학 사회학 석사.   일본 칸세이가꾸인대학 사회학 박사과정 수료.   현재 한국 모 IT회사 해외마케팅 팀장.   재한조선족작가협회 리사. 재한동포문학연구회 회원.
129    “고향에서 살아 좋겠습니다” 댓글:  조회:1247  추천:0  2020-11-24
“고향에서 살아 좋겠습니다” □ 김준환 “고향에서 살아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고향에서 살면 은근히 부러움을 받는다. 아마도 고향은 우리의 심상에 남아있는 집의 원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좌우하는 요소들을 정리해보면 재미있게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큰 비중을 차지하여 매우 충격적이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느낌을 받는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고 하여도 고향을 떠나면 어쩐지 불안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일가 요즘 우리 주변에는 50대 후반을 넘겨 고향에 다시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들을 보면 뭐 딱히 큰 애향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래동안 고향을 떠나 살면서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늘 멀리 고향을 떠나서 살면서 마음속에는 고향을 떠난 초조감이 항상 들었다고 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보면 그동안 크고 복잡한 대도시에서 오래동안 살아오면서도 여전히 도시가 낯설기만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생활에서 봉착하는 많은 것들이 괜히 어렵게 느껴지고 나와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가 일쑤였다. 돌이켜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의 삶에도 미래를 지향하며 발전을 위해 고향을 벗어나야 했던 매력적인 시기가 있었던 만큼 그들은 서슴없이 고향을 떠났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젊은 세대일수록 더구나 거부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인재를 속출하는 대도시로 보다 넓은 세상에서 기회를 찾는 분위기가  반갑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해내외로 진출하는 일은 흔해도 고향으로 되돌아 오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화, 현대화에 따른 도심의 생활환경 및 주거환경에  피로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늘어나고 자연친화적인 삶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면서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확실한 행복감과 만족감,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생활을 추구하는 행복의 가치가 중시를 받으면서 사람들은 저마다‘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 우리는 누구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동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랭정하게 고민하게 되면서 고향에 대한 추억은 더욱 간절해진다. 사람은 어디서든 살수 있지만 보다 아름다운 삶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한동안 고향을 떠나 지금껏 닦아온 생활을 접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오는 것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과 자녀의 교육여건 등 엉켜있는 문제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도시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들 마음속에는 고향에서 살았으면 참 좋겠다는 념원만은 고이 간직되여있다. 연변일보 
128    팀워크의 힘□ 리향옥 댓글:  조회:1135  추천:0  2020-11-13
팀워크의 힘 □ 리향옥 주말에 시댁에 갔다. 저녁쯤에 애들을 데리고 가까운 데 있는 공원에 놀러가보니 입장비는 무료라 그런지 인산인해였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다가온 적 없듯이 느릿한 절주와 푸근한 분위기에서 다들 즐기는중이다. 각종 오색찬란한 놀이기구는 애들을 싣고 씽씽 잘도 돌아갔다. 흥겹고 빠른 명쾌한 노래소리가 울리더니 한무리 사람들이 우르르 다가온다. 빨간 티로 통일복을 차려입고 제일 앞줄 가운데 선 사람은 커다란 기대를 들고 힘차게 걸어왔다. 한메터 거리를 두고 다섯줄을 선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큰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내딛였다. 왼쪽 앞과 중간쯤에는 각각 한명씩 스피커를 넣은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동일한 박자로 쿵쾅 거리는 흥겨운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까만색으로 된 가방은 앙증맞았고 가볍고 쉽게 메고 다닐 수 있게 만들어졌다. 무거운 스피커를 들고 다니던 것이 이젠 제법 프로 수준으로 되였나보다. 먼지가 날 정도로 바람을 쌩쌩 일구며 앞으로 향하여 씩씩하게 전진하는데 자동차가 지나간듯 하였다. 걷기 운동은 여러 팀으로 나눠졌고 팀마다 부동한 색상의 통일복을 입었다. 공원 안에는 자그마한 봉우리의 산이 있었는데 시민들이 운동하기 쉽게 아스팔트길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거의 한시간 동안 길을 따라 빙빙 돌며 힘차게 걸었다. 젊은이에 로인, 거기에 학생애들도 가세하여 아주 방대한 부대를 방불케 하였다.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조직이라는 힘으로 훌륭하게 견지해나갔다. 매번 볼 때면 조금씩 변화가 있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견지할 수 있는 힘에 대해 감탄이 갔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조직한 걷기운동 팀으로 시간, 장소, 방식 등을 상의한다. 실시 과정에서 부동한 의견이 나오면 상세하게 분석하여 다같이 함께 할 수 있는 타당한 방안을 내올 것이다. 비록 건강을 위하여 진행되는 민간 조직이지만 팀워크의 힘이 깃들어져있다고 본다. 어학사전을 검색해 보니 팀워크란 팀이 협동하여 행하는 동작, 또는 그들 상호간의 련대라고 한다. 팀의 성원이 공동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각 역할에 따라 책임을 다하고 협력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집단적인 활동에서 공동한 목표달성을 위하여 팀원이 서로 도우며 협력하는 과정에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완수할 수 있다. 목표달성을 위하여 우수한 부분은 서로 보완하고 부족한 부분은 감싸안으며 충분한 의사교환중에서 원활히 상담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한달 동안만 집중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그런 업무가 있었다. 단기간이라 새로운 직원을 모집하기에는 애매한 상황이였다. 결국 각 부문에서 여러명씩 뽑아서 림시 팀을 묶었다. 팀장은 팀원과 함께 힘을 합치지 않으면 기한내에 완수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량을 질도 보장하면서 한다는 게 결코 쉬운 것은 아니였다. 우선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인원한테서 인수인계를 확실히 하고 본인의 업무와 스케줄을 조절하여 무난하게 진행하려면 팀워크가 그 힘을 발행해야 된다. 원래는 부서별로 분산되여있던 사람들이 이렇게 본격적으로 팀을 묶자 네것 내것 따지지 않고 서로 협조하는 과정에 새 업무를 훌륭하게 완수하여 업적을 이루게 되였다. 가정, 학교, 회사 등 각종 단체에서 무엇인가 해내자면 팀워크의 힘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구두쟁이 셋이 모이면 제갈량보다 낫다’ 는 속담처럼 여럿이 힘을 합치면 큰 일을 해낼 수 있다. 손에 손잡고 지혜를 모으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가. 연변일보 
127    아빠트의 ‘무한변신’□ 김준환 댓글:  조회:1217  추천:0  2020-10-27
아빠트가 변신하고 있다. 아빠트의 가치가 단순하게 립지조건과 분양값에 좌우되던 시기에서 차별화가 상품성을 높여주는 경쟁력으로 추가되여 아빠트가 무한하게 변신하면서 개성이 넘쳐나고 있다. 오래동안 우리 주변의 아빠트단지들은 조경 공간, 주차장, 부대시설 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지금에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일이지만 한때 아빠트가 거주개념만으로 족할 것 같았던 때에 우리는 집짓기에 집중했을 뿐 상품으로서의 주택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새롭게 건설되는 아빠트라 하여도 기존의 틀과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예전에 접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아빠트단지들이 대거 쏟아져 아빠트가 드디여 집으로 보인다는 찬사까지 나온다. 아빠트도 모든 상품과 같이 아름다울수록 돋보이기 마련이다. 요즘처럼 새아빠트 수요자가 젊은층들이 주를 이루는 때에 아빠트시장에서 젊은 세대들이 중시하는 변화를 절대 무시할 수는 없다. 아빠트의 인상을 좌우하는 요소들은 각이하겠지만 특색 있는 아빠트단지들의 성공담을 들어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중에서도 분위기를 가장 잘 잡아주는 록지 공간이 기본 축으로 되고 있는데 이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새롭게 꾸며진 멋진 주거 공간에 이름도 알 수 없는 꽃나무들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어린이 놀이기구와 건신기구들이 반겨주며 아빠트단지에 담긴 내용과 다양함이 새로운 아빠트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요즘 우리 주변에서 공급되고 있는 아빠트들을 보면 좋지 못한 공통점도 있다. 아빠트의 개성을 뚜렷하게 살리려는 나머지 지나치게 인상적으로 만들려는 것에 너무나 집중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무언가를 보여주려 는 데 급급하다 보니 아빠트단지에 가 보면 입구에서부터 놀라게 된다. 그동안 아빠트단지에서 기대하기 힘들었던 분수, 폭포, 가산들은 아빠트 단지의 분위기를 강조하고 상품성을 높이는데 한몫 한 것만은 사실이지만 어마어마하게 꾸며진 대문은 그렇게만 보이지 않는다. 평범함에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개념에서 인지는 몰라도 시설이나 평면, 구조 등이 차이가 나는 것외에도  불필요하게 모든 수단으로 시각적 효과와 충격을 확대하려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눈에 띄는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요란하다싶이 ‘매력적인 공간’은 온전히 수요자들을 위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 수요자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충격적으로 구매자들의 정서를 잡으려는 현상으로 보여 이러한 기대는 빨리 접어야 한다. 진정 소비자들을 위한 노력이 더해질 때야 관심을 받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내 집 마련에서 어떻게 하면 취향에 맞는 집에서 행복해질 수 있을지를 따지면서 부동산을 대하기 시작했다. 보다 쾌적한 주거생활 환경을 원하는 주택구매자들의 요구가 끊이지 않는 한 아빠트는 계속하여 무한변신을 할 것이다. 연변일보 
126    가무극으로 찾아온 《정률성》 댓글:  조회:1257  추천:0  2020-10-26
지난 9월 3일 민족가무극 《정률성》언론발표회가 북경 붕윤국제호텔에서 개최됐다. 연변대학 예술학원은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 및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95돐을 맞으며 대형 민족가무극 《정률성》을 무대에 올린다고 수도 북경에서 선언했다 .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총기획을 맡은 연변대학 예술학원 최옥화 원장의 소개에 따르면 연변대학 예술학원은 2019년 10월부터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창작에 착수한 뒤 주도면밀한 준비 끝에 현재 극본, 음악 창작이 이미 전부 완성됐고 무용도 편성단계에 들어갔으며 올해 11월에 가무극의 전부 창작을 완성할 전망이다. 한편 이 대형 가무극은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 및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95돐 헌례작품으로 2021년 5월 북경에서 첫 공연을 가질 예정이며 2022년 8월까지 전국 순회공연을 진행할 계획이라 한다. 정률성의 딸 정소제가 “부친이 세상을 뜬 이후 여러가지 형식의 연구, 전승 활동들이 진행되고 영화, 연극, 드라마, 기록편, 음반, 전기 등 다양한 기념출판물들이 제작되였지만 가무극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고 언급한 것처럼 이번 정률성 민족가무극 탄생이 연변에서 그것도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주최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매우 주목하고 기대할 만한 대사이다. 연변예술은 이전부터 우리 나라 문화예술에 많은 공헌을 하였고 로세대 문화예술인들의 로고에 힘입어 많은 성과들을 거두었다. 특히 1986년 정률성 서거 10돐 음악회 관련 내용들은 더욱 감명깊다. 34년 전 우리 민족의 문화예술인들은 정률성 음악회를 위하여 북경의 거장들을 동원하였고 그 영향은 전 중국에 널리 알려져 우리 조선족의 위상도 크게 올렸다. 그때 정률성 음악회의 개최와 정률성 음악작품연구토론회 등의 개최로 우리 민족 음악과 우리 민족 음악인들은 중국내에서 많은 인정과 존중을 받았으며 우리 음악예술의 이후 발전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그 사이 우리는 정률성을 너무 모르고 지내왔다. 이웃나라 조선에서 영화를 촬영했고 그의 출생지인 한국 광주 남구에는 정률성로 (郑律成路)가 탄생했다. 정률성박물관도 할빈에 설립된 상황이였다. 그래서 이번 정률성 민족가무극 언론 발표회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럼 현재 우리 연변예술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우에서 언급하다싶이 로세대들이 일으켜왔던 우리 예술의 휘황한 성과가 있었는가 하면 솔직히 계획경제시기에서 개혁개방시기, 현재 4차산업까지 급변해온 중국의 현 상황으로 보면 우리는 글로벌 문화예술, 포옹력있는 예술 마인드, 과학적인 인재양성 시스템과 문화예술 시장의 개척을 진행하는 데 다른 지역보다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필자는 본다. 주최측으로부터의 전달된 내용으로 보면 이번 가무극 작품은 우리 예술대학 출신의 조선족 전문가들 위주로 창작되고 있으며 앞으로의 공연 진행도 전문가 위주의 팀 학교 선생과 학생들 위주의 팀 등 다양한 방안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번 작품의 성공적인 부분들, 례를 들면 성악, 무용 , 연극, 무대음향, 조명, 디자인 등등을 이후 학교 교육에 도입하여 교수부분에 인용하려 한다고 한다. 예술은 실천이고 실천에서 예술교육은 빛을 본다. 작품 하나로 공연용, 예술교육용으로도 활용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가무극은 음악, 무용,연극, 문학 (극본), 무대미술 등 모든 예술이 포함된 종합예술쟝르이다. 즉 춤과 노래를 기본수단으로 극적인 이야기를 엮어가는 종합무대 예술인 것이다.가무극의 근간은 음악이 우선이다 .서양의 음악극을 보면 오페라가 전통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반발로 독일의 바그너에 의해 창안된 것이 음악극이다. 19세기 바그너는 문학과 기존의 오페라의 형식에 반대하여 음악 뿐만 아니라 의상, 무대 장치까지 합쳐진 복합예술을 선보이면서 악극이라 명명하였다. 다음으로 20세기에 출연하는 뮤지컬이라는 공연형식을 보면 노래와 춤을 주제로 표현하는 영화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 즉 음악과 영화 산업의 발전을 토대로 탄생한 형식의 공연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이번 가무극은 뮤지컬과 흡사하다고도 볼 수 있으며 고전과 현대의 결합 및 민족문화의 융합으로 된 작품으로 판단할 수가 있다. 2012년도에 창작된 가무극 《국지당가(国之当歌)》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의 작곡가 섭이를 인물배경으로 한 가무극이다. 이 작품은 중국 가무극에 리정표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우리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의 작곡가 정률성을 인물배경으로 한 대형 민족가무극 《정률성》의 공연이 기대된다. 반일 항일애국구국활동을 위해 남경과 상해를 거쳐 연안으로 간 정률성은 연안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부인 정설송과의 로맨틱한 만남, 태항산전투 참가시 자기가 제일 아끼던 바이올린을 팔아 양과 바꿔 양젖으로 모유를 대신한 딸의 이름 ‘정소제(郑小提)’의 유래, 이러한 인간 정률성의 인간미와 혁명정신이 결합된 국제주의 전사의 대표적인 모티브들이 잘 구현된다면 훌륭한 불후의 명작이 기필고 탄생되리라 필자는 확신한다. 연변일보 
125    안중근과 할빈 댓글:  조회:1271  추천:0  2020-10-26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할빈역에서 3발의 총성이 울렸다. 메이지유신과 일본 근대화의 주역이자 대한제국 멸망의 주범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을 약관 31세의 청년 안중근이 쓰러뜨리는 순간이였다.   당시 안중근의사가 쏜 총은 분노의 총탄이 아니라 '평화의 총탄'이였다. 그는 나라의 위기를 걱정하는 애국지사를 넘어 동양의 평화를 걱정하고 실천한 ‘동양평화의 지도자’였다. 의거 직후부터 계속된 취조와 재판에서 그는 시종일관 자신의 거사가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였음을 당당하게 주장했다. 침략주의로 치닫는 일본제국주의의 몸통인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하는 것이 동양의 평화를 지키고 일본 국민들의 평화로운 삶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거사 리유였다. 이후 진행된 일본제국주의 침략전쟁이 불러온 참화를 보면 안의사의 통찰력과 혜안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할빈은 그런 안중근을 품은 력사 도시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더욱 친숙하고 정겨운 도시, 방문하고 싶은 도시로 자리잡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전 많은 한국인들이 할빈을 찾은 것은 할빈의 아름답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큰 리유는 안중근 의거의 력사적인 현장을 보고 평화의 정신을 되새기기 위함이였다. 한중도시우호협회가 지난 2018년부터 매년 할빈을 방문해 ‘안중근동양평화문화축제’를 여는 것도 안의사의 동양평화 정신을 기리고 할빈 시민들에게 감사와 우정의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행사가 어려워 《흑룡강신문》에 의거 정신을 기리는 광고를 내고 할빈역 안중근의사기념관에 헌화를 하는 걸로 서운한 마음을 달래려 한다. 중국정부와 할빈시가 할빈역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훌륭하게 만들어 재개관하고 잘 관리해주는 것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할빈시에 대한 우호적인 생각으로 이어져 한국에서 할빈 관광붐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되였다. 할빈은 평화도시이다. 안중근 의거의 력사적 현장과 731부대 유적지가 있는 할빈은 세계적인 평화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력사자산이 매우 풍부한 곳이다. 안중근의사의 평화정신이 깃든 할빈역과 송화강변을 다시 거닐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호국 권기식은 한국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력임했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일본 외무성 초청으로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외교부 초청으로 청화대학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 대학교 석좌교수와 남양주시 국제협력 특별고문 등을 맡고 있다. 길림신문 
124    40%가 데이트폭력 상대와 결혼한다 댓글:  조회:1160  추천:0  2020-10-21
[대림칼럼]  40%가 데이트폭력 상대와 결혼한다 정련 19금 종편 드라마임에도 시청률 28.5%를 찍은 부부의 세계를 보셨나요? 녀주인공인 지선우(김희애 역)의 조력자로 남편의 불륜을 조사해준 민현서(심은우 역)가 등장하는데, 진료차 병원을 방문했다가, 의사인 지선우가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남자친구로부터 도망치도록 도와줍니다. 놀라운 것은, 몇번이나 민현서는 남자친구와 동거하는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벗어나기 어려워 합니다. 드라마니까 가볍게 저러고 싶을까 생각하고 넘겼던 대목입니다. 놀랍게도 데이트폭력이라는 사회 현상을 살펴보면서,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현실적인 대목이라는 점, 그리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그 드라마와 같은 삶을 경험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데이트 폭력”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당일 뉴스만 3페이지가 훌쩍 넘어갑니다. 데이트폭력이 그만큼 보편적인 사회 이쓔라는 점을 실감하게 됩니다. 데이트폭력이란 무엇일까요? 위키백과에서는 데이트폭력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데이트폭력( - 暴力, 영어: dating violence, dating abuse)은 서로 교제하고 있는 과정에서 하고자 하는, 둘 중 한 명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폭력이다. 동반자 중 한쪽이 폭력을 이용해 다른 한 쪽에 대한 권력적 통제 우위를 유지할 때도 데이트 폭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데이트 폭력은 성폭행, 성희롱, 협박, 욕설, 물리적 폭력, 명예훼손 등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미국의 관계폭력 각성 센터(The Center for Relationship Abuse Awareness)는 데이트 폭력을 "현재 사귀고 있거나 예전에 사귀었던 상대를 강압하거나 조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폭력이나 억압"이라고 정의합니다. 련인사이에 발생 한 현상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보면, 그냥 폭력입니다. 연인사이이기 때문에, 신고하기도 관계를 끊기고 그리고 보복도 가능한 그런 폭력이라는 점에서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부의 세계에서, 민현서가 폭행을 일삼는 남자친구 집에 다시 들어가면서 들었던 리유가 몇가지 있습니다. 1. 사랑하니까. 2. 달리 갈 곳이 없어서 3. 무서워서 4. 때리고 나서, 사과하고 잘 해주니까 5. 바뀔 줄 알고 한국 경찰청에서는 2016년 2월부터 데이트폭력 근절 TF를 구성하고 112신고 시스템에 “데이트폭력” 코드를 신설하여, 데이트폭력 신고 건들을 통계 및 관리하고 있습니다. 데이트폭력으로 신고하고 검거 된 폭행 상해건만 2016~2019년 사이 3만 1,304건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녀성의 약 45%, 남성의 약 32.4%가 데이트폭력 애인과 결혼했다는 통계 결과가 있습니다. 물론, 보복에 대한 두려움, 사생활 로출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이 문제가 되는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한 등 신고를 하지 않은 건수를 감안하면 훨씬 더 많은 데이트폭력이 발생되고 있습니다. 데이트폭력이 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까요? 2020년 6월 17일, 부모의 반대로 헤여지게 된 32세 A씨가 녀자친구 집에 찾아가 흉기를 휘둘러, 녀자친구의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차차 폭력에 대하여 카테고리 별로 접근해 보겠지만, 이런 흉악범죄보다 더 심각한 데이트폭력의 한 면은, 바로 그 중에 40%가 상대와 결혼을 한다는 점입니다. 데이트폭력은 이렇게 가정폭력으로 이어지고, 가정폭력을 경험했던 아이들은 또다시 데이트폭력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 자라납니다. 수많은 연구기관에서 데이트폭력의 발생 원인, 예방 방법 등에 대하여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흥미로웠던 연구 두가지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가정폭력 피해 경험이 데이트폭력에 미치는 영향이었고 두번째는 성인 남성들의 과거 경험과 본인의 데이트폭력 행위와의 련관성 분석이었습니다. 첫번째 연구에서는 아래와 같은 세가지 시사점을 보여줍니다. 우선, 가정폭력은 아이들에게 폭력을 습득하고 익숙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사랑의 매”라고도 부르고 학교에서는 매를 들 수 없어 아이들을 가르치지 힘들다고 반발하기도 하지만, 심각한 가정폭력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쉽게 드는 이 “매”는, 우리 아이들에게 “매”가 지금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구나 라는 점을 가르치게 됩니다. “야!”라고 엄마가 호통친 소리에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던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면, 분명 이 아이는 어딘가에서 그 효과적인 방법을 또 쓰고 있을 것입니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 중, “주먹”에 자신이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곁에서 몇 개월 지켜보면서 느낀거지만 이런 친구들은 대화나 회피나 다른 그 상황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매”로 키운 아이들은 그만큼,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채 자라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두번째 시사점은 폭력에 대한 허용도와 피해 시의 수용도가 성장기의 소소한 폭력들로부터 만들어 진다는 점입니다. 부모 사이, 부모 자녀 사이,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화를 내거나 싸우거나 여러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가족이라는 리유로 빈번하게 화해하고 다시 지나가는 모습들이, “이정도의 폭력은 괜찮아” 또는 “가족이니까, 사랑하니까 이정도는 참고 이해해 줘야 해”라는 생각들을 키워가게 됩니다. 모든 가정들이 그들 만의 언어와 행동에 대한 “수위”가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집에 얼마 전에 7살짜리 여자아이가 와서 며칠 함께 지낸 적 있는데 세 여자아이는 세 자매처럼 너무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희 첫째는 11살, 둘째는 8살이여서 “언니들”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습니다. 셋이 손잡고 편의점에 다녀 와서는 나란히 손 씻으러 화장실에 갔고, 우리 집은 귀가 후 항상 손과 발을 닦고 들어오라고 하니, 당연히 7살 꼬마에게도 손과 발을 닦으라고 언니가 시켰습니다. 7살 꼬마는 “우리 집에서는 손만 닦아. “라고 하고 화장실에서 나왔습니다. 그 모습에 11살 언니가 한마디 합니다. “너 지금 언니 말 무시했냐? “. 7살 꼬마는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울기 시작했습니다. 11살 언니는 너무 당황하여, “언니가 너한데 야단친거 아닌데, 왜 울어. “라고 한다. 보다 못한 제가 7살 꼬마를 꼭 안고 토닥거리면서, “언니가 야단치려고 한거 아니야, 그런데 ‘무시’라는 말은 너무 심했다. “라고 했더니, 11살 언니가 “아, 그러네. “라고 합니다. 데이트폭력 상대와 결혼한 그 40%가 그런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아, 이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어. 세번째 시사점이, 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사람이 데이트폭력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되기가 쉽다는 결과입니다. 길 가다가 맞으면 사람들은 신고를 하지만, 련인에게 또는 가족에게 맞으면, 사람들은 내가 뭘 잘못했나, 저 사람이 왜 화가 났나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성장과정에서 부모와 좋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살았던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글프고 씁쓸한 이야기지요. 좋은 관계를 경험했던 아이들이 친구와, 그리고 련인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능력치가 더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데이트폭력이 왜 심각한지의 또 다른 리유가 바로 두번째 연구 결과와 같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때리거나 성폭행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이것이 폭력이라고 느끼지도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형사정책연구원에서 2017년 성인의 데이트폭력 가해요인에 대하여 연구를 하고 론문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19세 이상의 성인 남성들에 대하여 인터넷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여러가지 설정 요인과 데이트폭력 가해 행위와의 관계를 분석 했는데요, 더 중요한 것은 신체적 성적 데이트폭력 뿐만 아니라 통제행동, 심리적정서적 폭력을 포함한 가해행동에 대한 조사도 진행을 했고, 성인 남성이 스스로 했던 행동들을 체크하라고 하면서, 얼마나 폭력에 대하여 관대하고 무관심한지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렬거된 데이트폭력 행동에는 통제경험 즉 연인이 지금 누구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캐묻고 따지는 행동, 심리적정서적 폭력 즉 폭언을 하거나 물건을 깨트리거나 주먹을 벽을 치는 등 행동, 쌔게 팔을 잡거나 밀치는 행동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연구결과 모든 폭력행동과 연관성이 가장 높은 것은 “폭력정당화”라는 요소였고, 이는 성장과정에서부터 이정도는 폭력이 아니야, 또는 이정도는 사랑이고 이해해야 하는 관계야 라는 식의 가정폭력 경험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11살 딸아이가 학교에서 진행하는 학폭예방 동영상을 보고 있어서, “너는 이런 일을 겪으면 어떻게 할꺼니? “라고 물어봤더니 “녹취하고 범죄신고 할꺼야. 그리고 친구가 이런 일을 당해도 녹취하고 범죄신고 할꺼야. “라고 단호하게 이야기 합니다. 뉴스로 보게 되는 흉악범죄는 어떻게 보면 부모의 품속에서 싹트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엄마로서 늘 합니다.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데이트 폭력 – 가정폭력 – 아동학대 이 모든 고리를 한번쯤 끊어야 한다면, 사랑과 책임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부모가 먼저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동북아신문      정련 약력 :   2002년 흑룡강성 문과 수석. 북경대학 경제학원 국제경제무역학과 학부.   동북아신문 칼럼니스트.   현재 브이아이금융투자 기획담당 상무,   수필, 수기, 칼럼, 여행기 등 수십 편 발표.
123    내수확대로 경제고품질발전에 동력 주입해야□ 현진국 댓글:  조회:1169  추천:0  2020-10-19
특수한 한해, 국경절과 추석 ‘두 명절’이 겹친 황금련휴기간 우리 나라 경제는 다시 생기와 활력으로 넘쳤다. 해당 부문의 집계에 따르면 황금련휴기간 전국적으로 도합 국내 관광객을 연인수로 6.37억명 접대해 지난해 동기 대비 79.0% 회복했고 국내관광수입은 4665.6억원 실현해 지난해 동기 대비 69.9% 회복했다. 전국 소매 및 음식 중점 검측기업의 판매액은 약 1억 6000만원에 달해 일간 판매액이 지난해 국경절련휴 기간보다 4.9% 성장했다. 우리 주 소비와 관광업도 다시금 활황세를 보였다. 주상무국의 관련 집계에 따르면 ‘두 명절’기간 우리 주 각 소매기업은 저마다 소비판촉 활동을 펼쳐 황금련휴기간 판매액 1.42억원을 실현해 지난해 동기 대비 95% 회복했다. 우리 주 중점음식기업은 영업액 533만원을 실현해 지난해 동시기에 비해 74% 회복됐다. ‘두 명절’기간 우리 주에서는 루계로 관광객 242.35만명 접대하여 지난해 동기 대비 75.69% 회복됐고 관광수입 16.76억원 실현해 지난해 동기대비 68.19% 회복됐다. 이상의 생생한 수치들은 소비와 경제가 뚜렷이 회복되는 신호이며 국내 소비능력과 소비시장 전망이 여전히 밝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 지속적으로 소비시장의 거대한 잠재력을 불러일으켜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이끌어야 할 시점에 왔다. 전염병사태의 충격으로 현재 시장구조가 한창 다시 구축되고 있고 소비 선호도 다시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날로 늘어나는 인민들의 아름다운 생활수요를 만족시키는 데로부터 출발해 전염병 예방, 통제를 하는 과정에서 새로 탄생한 신형 소비와 업그레이드된 소비를 일층 육성, 발전시켜 실물소비와 봉사소비를 만회하고 산업과 소비를 함께 촉진해 경제발전에 새 에너지를 비축해야 한다. 한편 소비능력은 소비예기와 소비신심에 직접 영향준다. 때문에 반드시 곤난 업종과 중소기업에 대한 부축강도를 일층 강화하고 취업 곤난군체에 대해 최저보장을 강화하는 동시에 시장질서에 대한 감독관리를 강화하며 소비령역의 신용체계 건설을 적극 추진하며 소비자들의 권익수호 경로를 원활하게 하여 소비자들이 소비할 수 있고 소비하려 하고 또 과감히 소비할 수 있도록 조건을 창조해야 한다. 당중앙에서는 이미 국내 대순환을 주체로 하고 국내, 국제 쌍순환이 상호 촉진하는 새 발전 국면을 다그쳐 형성할 데 대해 제기했는데 그 핵심적 요점은 국내 소비시장을 다그쳐 구축해 경제의 고품질 발전에 지속적인 동력을 주입하라는 의미이다. 소비는 이미 련속 다년간 우리 나라 경제성장을 이끄는 제1동력으로 되였으며 아직도 계속 발굴해낼 잠재력을 구비했다. 현유의 경제발전 상황에 집중하고 기회를 틀어쥐고 도전에 대처하며 내수확대면에 큰 공을 들여 경제의 고품질 발전에 새 성장동력을 주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변일보 
122    또 다른 고향 댓글:  조회:1217  추천:0  2020-10-16
[대림칼럼]  또 다른 고향 최유학 교수 최유학 약력 :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조선언어문학학부 부교수. 저서 《박태원의 문학과 번역》과 역서 《내 여자의 열매(我的植物妻子)》 등 출간, 국내외학술지에 논문 다수 발표.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이사. 1. 제1고향과 제2고향 한 사람의 고향이 1234 이렇게 여러 곳일 수 있을까? 대학교 때 한 선배가 졸업하면서 나에게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 곳에 3일 머물게 되면 한 달 머무는 데 문제가 없고, 한 곳에 3개월 머물게 되면 1년간 사는 데는 문제가 없고 3년만 한 곳에 꾹 머물고 산다면 한평생 사는 데도 문제가 없게 된다.” 이런 비장한 결심을 나에게 보여주고 졸업한 그 선배는 자신의 말 대로 상해에 취직한 후 그렇게 3일, 1개월, 3개월, 1년, 3년을 살아왔고 지금까지 헤아려보면 무려 25년간 상해에서 살았으니까 한평생 상해에서 사는 데는 하등 문제가 없게 된 셈이다. 그 선배의 경우, 제1고향은 나서 자란 동북의 길림성일 테고, 제2고향은 대학교를 다닌 북경일 테고 제3고향은 상해라고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경이 상해에 밀려서 제3고향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많은 고향들 중에서 그 선배의 마음의 고향은 어디일까? 동북에서 북경에 온 대다수 대학생들은 대학졸업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국 각지의 도시들에 취직하여 생활한다. 그들도 한결같이 고향을 여러 개 갖게 되며 항상 “또 다른 고향”의 심정을 경험하게 된다.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고향을 버린 사람”이 되어 “또 다른 고향”에서 고향을 그리며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은 어떤 향수를 달래고 있다. 고향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된 곳 이렇게 총 네 가지인데 이 중 첫번째 의미 외의 다른 세가지 고향은 모두 또 다른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고향과 관련된 우리말 속담으로는 “고향을 떠나면 천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세상 사람들 중 고향을 떠나지 않은 자 어디 있으며 천하지 않은 자 어디 있으리오. 2. 아버지의 고향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와 작은아버지(큰삼촌을 우리는 이렇게 불렀다)의 고향은 현재의 한국 경상북도 의성군이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마늘을 좋아하셨고 나도 마늘을 좋아하는지를 뒤늦게 나마 곰곰히 분석해본다면 마늘의 고장 의성군과 어떤 연줄이 닿아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 의성군에서 11년 살다가 중국에 건너와서 70여년을 사신 아버지의 고향은 어디일까? 할아버지가 먼저 일제시대 때 중국에 건너와 발을 붙이고 있다가 상황을 봐서 가족 전체를 중국으로 데려간다고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여러 해 동안 소식도 끊기게 되자 할머니가 결단을 내리고 11살난 아버지와 아버지보다 어린 고모와 작은아버지를 이끌고 광복을 몇개월 앞둔 1945년 1월에 중국으로 건너와서 할아버지와 합류했다고 한다. 그것도 한군데서 쭉 살아온 것이 아니라 길림성 매하구에서도 살았었고 길림성 집안에서도 살았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고향을 말하자면 제1고향은 한국 경상북도 의성군임이 분명하다. 아버지는 마을 뒷동산의 감나무 얘기를 하셨고 할머니가 아프실 때 할머니를 위해 홍시를 구하기 위해 이집저집 다니며 홍시를 구하던 얘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명절 때 친척들 집에 여러 군데 다니면서 이것저것 얻어먹었지만 친척집들도 가난하기는 다 마찬가지인지라 배를 채우지 못한 이야기도 해주셨다. “고향이 그립다”, “가고 싶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고 싶다 말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고향이 가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한국의 천재적인 음악가 "고 김광석의 길에서" 기념비 아래(이하 사진 포함) 3. 망각의 고향 사람은 기억을 잘하는 동물이지만 망각도 잘 하는 동물이다. 세상 사람 그 누구나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처음에는 사기충천해있다가 나중에는 여건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등 이유를 내걸면서 그 중요한 일을 차일피일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부분 결단력이 부족해서이다. 일상생활의 다른 바쁜 일로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 보면 그만 그 ‘중요한 일’도 한풀 꺾여 어느 모퉁이에 맥없이 조용히 숨쉬고 있다가 급기야는 망각의 늪에 빠지고 만다. 고향을 망각에 빠뜨리다니! 망각의 대가는 경우에 따라 매우 참담할 수 있다. 특히 그것이 늙으신 부모님과의 효와 관계될 때 더구나 그렇다. 한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비교적 평온한 일상을 보낼 때는 앞으로 시간이 많을텐데 그때 가서 보자 라고 편한 생각을 하다가 그만 한국에서의 평온한 일상이 갑작스런 취직으로 깨어진 후에는 종적을 찾지 못할 정도로 감감무소식이 되고 만다. 북경에서 재취직한 후에는 장기간 한국에 가 있지 못하고 반년 미만으로 일정을 잡아 한국에 종종 가 있게 되었다. 그럴 때는 자주 오가게 되니 언젠가 덜 바쁘고 편할 때 보자며 또 미루게 되는데 그렇게 미루다 보니 그 흐른 세월이 십수년이나 되었다. 아버지 고향방문일을 자꾸만 뒤로 미루는 데는 뒤로 미루는 나쁜 습관이 들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한국에 갈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깊숙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효가 그만큼 엷어서였다고 이제 와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아버님의 고향 방문을 미루어오다가 급기야 생각이 나서 다소 무리수를 써서 부모님과 함께가 아닌 나홀로 가보게 되었다. 2년전 한국에 있을 때였는데 친구가 대구 가는 길에 나도 무작정 합류해서 따라갔다. 아버지의 고향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서인지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친절하게 보이었다. 서울역 앞에서도 오랜만의 고향 간다는 마음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기차 티켓도 사진을 찍어 남겼다. 대구에 도착해서 대구에서의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마음은 들 떠 있었다. 택시기사아저씨의 경상도 말투가 어릴 때 고향사람들의 말투와 똑 같아서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었고 남다른 용기로 상대팀을 누른 대구축구팀도 그렇게 대견하게 보일수가 없었고 먹자골목은 또 어찌나 마음에 들었던지 모른다. 대구관광이 이처럼 쭉 이어가는 유혹이 컸지만 나는 그때 용케도 오랜만에 결단력 있게 대구야 잠시 안녕!을 외친 후 하루 시간을 내어서 버스 역을 찾아 다인행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는 고향 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었고 나이 젊은 승객은 나를 포함해 두 세사람이 전부였고 차는 좌석이 1/3도 차지 못한 다소 비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좋았다. 창밖 풍경들을 보배처럼 휴대폰카메라로 무조건 다 흡입하였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마음 좋은 택시기사를 만나 버스 정류장에서 택시를 타고 아버지 마을에 계시는 어른을 찾아가서 용건을 이야기하고 그 분으로부터 마을 친척이 살았었고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는 집을 안내 받았다. 그 친척 집 앞에 가서 사진도 남겼고 주변의 감나무들을 유심히 눈으로 확인했다. 앞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찾아오겠다는 작별인사를 마을 어른과 택시기사에게 남긴 후 나는 버스에 올라 대구로 돌아왔다. 대구에 와서 다소간 허전했던 마음을 가수 김광석 거리와 김광석의 노래가 달래 주었다. 아버지의 고향을 내가 먼저 다녀보고 나중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다녀보겠다는 생각은 몇 개월 후 엄청 아름다운 서울의 봄의 꽃들 속에서 무참히 시들고야 말았다. 망각의 대가는 참혹했다. 김광석의 의 노래제목과 비슷했다.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4. 가을에는 떠나지 말아야지 2년전 아버지의 고향을 다녀갔던 그 전해, 즉 3년전의 가을에 나는 한국에 가기 전 동북에 있는 나의 고향에 갔었다. 부모님이 계신 나의 고향은 그 언제나 푸근했고 누나가 둘이나 고향에 계셔서 나의 마음과 몸은 항상 꽉 채워져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작별하고 새벽에 택시에 오를 때 정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의 울먹임도 그렇겠지만 아버지의 눈이 예전보다 희미하게 느껴져 마음이 무척 아팠다. 북경으로 가는 열차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다보며 다음과 같은 글을 휴대폰에 적어보았다. 막내가 가을에는 떠나지 말아야지 이제 더는 더군다나 가을새벽에는 이슬도 이슬이려니와 마음의 허함을 어찌하고 그 밀려오는 아림과 쓰림을 어찌 감당하리오 이별의 세파라고는 하지만 가을에는 휘둘리지 말아야지 앞으로 더는 엄마의 눈물을 차마 뿌리치고 아부지의 희미해보이는 눈길을 뒤로하고 아, 목이 꺾여 내 어찌하리오 추억의 막내사랑들이 뒤통수를 때려들와서 이내 가슴에 한이 맺히길 없기다 나의 간절한 기도는 통하지 않았으며 나를 깊숙한 망각의 늪으로 빠뜨렸다. 동북아신문 
‹처음  이전 1 2 3 4 5 6 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