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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어와 한국어의 차이
내가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일이다. 그러니까 2004년 3월초 연변대학 근처의 한 식당에서 겪은 일이다. 연변대학은 중국 동북부 연변자치구 길림성 연길(延吉, yanji)에 있는 중국 국립대학이다. 식당에서 생수를 달라고 했더니 종업원이 일반 수돗물을 갖다 준 것이다. 당시 난 그것이 수돗물인 줄 모르고 그냥 마셨고 몇 일 동안 배가 아파서 혼난 적이 있다. 한국의 '생수'는 여기선 '광천수'라고 해야 되는걸 몰랐던 까닭이다. 이 곳은 아직 석탄 등 유연탄을 때기 때문에 겨울에는 특히 공기가 나빠 잠깐 외출했다가도 코를 풀면 시커멓고, 수질이 나빠서 석회질인데다 게다가 수도관 시설 정비가 제대로 안되어 있어서 수도꼭지를 틀면 시뻘건 녹물이 확 쏟아져 나온다. 수돗물을 그냥 마시면 어찌될지는 뻔한 일이다.
한국어와 이 곳 언어(이하 ‘연변어’ 라고 칭하기로 한다)는 같은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생수 사건은 내가 한 말을 그 종업원이 잘 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사건이다. 그 외에도 이곳에선 TV뉴스를 '신문(新闻)'이라 하고, 00대학교를 '00대학', 각 단과대학을 '00학원'이라고 부른다. 또한 대학원생을 '연구생', 아저씨를 '아바이', 일을 '공작(工作)한다'고 하고 월급을 '공작금(工作金)'이라고 한다. 남편이나 부인을 '애인(爱人)', 세관을 '해관(海关)', 버스를 '기차(汽车)', 회사 사장을 '경리(经理)', 성형수술을 '정형수술'이라고 하는 등 한국어와는 그 뜻이 서로 혼란 내지 오해를 일으킬만한 언어들이 상당히 많다.
한국에서 '신문'이란 종이로 된 것(报纸)만을 의미하고, 4년제 대학은 00대학교로, 2년제 전문대학은 00대학이라고 표시하며, 연구원은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을 뜻한다. 한편 '공작한다'는 것은 대체로 좀 나쁜 일을 꾸민다는 의미로서 '공작금'은 간첩들에게 주는 활동 자금을 뜻한다. 결혼한 사람에게 있어서 '애인'은 불륜관계를 의미하며, '해관'은 언뜻 해군사관학교로 연상된다. 또 일반적으로 '경리'라고 하면 회사에서 금전출납을 맡아보는 여자 직원을 의미하고, '성형수술'은 눈 코 입 등 얼굴을 뜯어고치는 수술인데 비해 '정형수술'은 뼈가 부러졌을 때 하는 수술을 말한다.
뜻글자와 소리글자
생각건대 '생수'보다는 '광천수'가 의미상으로는 더 옳은 것 같다. 생수는 말 그대로 생(生) 물이므로 식당에서 생수를 달라고 했을 때 수돗물을 준 것이 이해가 간다. 광천수(鑛泉水, mineral water)는 미네랄 혹은 탄산가스가 많이 함유된 물을 뜻한다. 다만 현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물들 중 정말 A급 수질의 광천수가 얼마나 될런지는 모를 일이다.
TV뉴스를 신문(新聞)이라 하는 것 역시 일리가 있다. 뉴스란 '새로운 소식을 전하고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뉴스는 본래 영어로서 이를 한국에서는 소리나는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중국어는 뜻을 가진 표의문자(表意文字)이고 한국어는 소리글자인 표음문자(表音文字)이기 때문에 양자는 그 표현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중국어와 한국어가 혼합되어 발달한 연변어는 한국어의 사투리 중 하나로 보는 견해가 통설이나 이를 또 하나의 특유한 언어영역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연변어는 중국어(한자)를 그대로 한국식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아 한국인이 들을 땐 좀 이상하지만 한국어와 비교할 때 그 의미가 오히려 더 정확한 경우가 많다. 표현은 한글로 하지만 그 내용은 뜻글자인 한자(漢字)이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어(漢語, 중국어)와 한글의 장단점 및 이를 혼합할 수 있는 방법을 좀 더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한어는 물체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象形文字)로서 글자마다 뜻을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고, 한글은 적은 글자 수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
언어란 자신의 생각을 외부로 표출하거나 서로간에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이다. 전세계 국가의 언어가 모두 제각기 다른 것이 매우 신기하다. 언어는 그 나라 국민의 생활방식과 습관, 사고방식, 기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나라 국민 또는 오랫동안 그 나라에서 생활한 사람이 아니면 그 언어를 완전히 소화하기 힘들다. 설사 그 언어를 구사한다 하더라도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깊은 감정이나 느낌까지 표현하기는 아주 어렵다.
우리는 어떤 국가와 교류하려거나 비즈니스 또는 유학을 하고자 할 때 그 나라의 언어부터 습득해야 한다. 그러나 언어는 하루아침에 배워지는 것이 아니므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언어 속에는 그 나라의 관습과 문화, 사회성이 배여 있으므로 완전한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활방식과 생각, 습성까지 배워야 한다. 설사 그 나라 사람의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일단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오랜 시간 그 나라 그 지방에서 나름대로 형성된 체계와 질서, 예의가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방인이 처음 접하는 언어가 이상하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거나 나쁘다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한국 옛말에 "그 고을에 가면 그 고을 법도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국은 한국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더 나아가 연변은 연변대로의 생활과 언어 체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서로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 연길을 왔을 때 난 이 곳의 말을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다. 그 때문에 오해를 받은 일도 있고 불리한 경우도 많았다. 연변어는 한국어와 비슷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한 차이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한국인이 이 곳 사람들과 거래나 교류를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이 곳 언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이 곳 사람들이 유학이나 업무상의 일로 한국에 가고자 할 경우에는 연변어투가 아닌 정식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언어는 곧 그 나라 그 지방 사람의 생활방식이자 문화이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그대로 배우는 것이 여러모로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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