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숙은 마음대로 정하였는데 나는 이모네 집에 들기도 하고
연변대학 기숙사에 들기도 했다. 기숙사에 들면 거리가 가까운
건 좋은데 너무 추운것이 탈이였다. 아침 6시경에 일어나면 나
는 지팽이소리에 다른 학생들이 깨여날가봐 숨을 죽이고 살금살
금 걸어나왔다. 세면실에 가서 대충 고양이세수를 하고 치솔질
을 하지만 물이 너무 차서 이발이 떨어져나가는것만 같았다.
다른 학생들은 보이라실에 가서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떠다
가 따뜻하게 씻을수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할수 없었다. 그들한
테 부탁하면 물론 도와나서겠지만 나는 이런것까지 그들한테 부
담을 주고싶지 않았다. 세수하느라고 얼어든 손은 아침에 친구
들이 떠다주는 죽사발에 대고 녹이였다.
아침에는 학교로 올라가는 길이 가파로와 별수없이 그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저녁에 내려올 때는 나절로 내려왔다. 친구들
이 길이 가파로와 위험하다며 함께 내려가자고 해도 나는 번마
다 거절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수업후였다. 남들의 눈을 피하느라고 제일 마지막에
교실에서 나온 나는 인차 휠체어에 올랐다. 나는 브레이크가 고
장난줄도 모르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가파로운 언덕을 천천히
내려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휠체어가 쏜살같이 미끄러져내려가는 것이였
다. 아무리 급정거하려 해도 도무지 정차할수가 없었다. 학교문
을 나서면 곧 큰길이였다. 급해맞은 나는 방향을 확 돌리며 길녘
의 가로수 한그루를 꽉 잡았다. 순간 나는 가로수밑에 떨어지고
휠체어는 저만치 뿌리워나갔다. 책이며 지팽이며 모두 뿌리워나
가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너무 놀라 혀를
끌끌 찼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일어나 휠체어에 오른 나는
스스로도 섬찍해났다. 큰 사고가 생기지 않은것만 해도 실로 천
만다행이였다.
이모네 집에 있을 때의 일이다. 수업은 멀리 북대구역에 있
는 연길시교원연수학교에서 진행하였다. 오전수업을 마치고 돌
아오는 길에 웬 일인지 휠체어가 무겁기 그지없었다. 안깐힘을
다 써서 휠체어를 움직여갔건만 바퀴가 잘 굴러가지 않았다. 영
문을 몰라 돌아보는데 뒤에서 오던 두 군인이 바퀴에 바람이 없
다고 알려주는것이였다.
그제야 고무바퀴를 손으로 눌러보니 물렁물렁했다.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휘둘러보아도 수리부간판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이때 그 두 군인은 자전거수리부를 찾아주겠다며 선뜻이 휠
체어를 밀어주는것이였다. 때는 한겨울이라 날씨가 아주 매서웠다. 원
래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움직이지 않으니 온몸이 얼어들어 덜덜
떨리였다.
두 군인은 나를 밀고 한 골목길에 자리잡은 자전거수리부앞
까지 갔다. 수리부아저씨는 내 휠체어를 보더니 단순히 바람을
넣어 풀릴 문제가 아니라며 고무바퀴를 아예 벗겨보는것이였다.
아니나다를가 구멍이 두개나 나있었다.
수리부아저씨가 바퀴를 땜질하는 사이에 두 군인은 나를 난
로옆에 앉혀 몸을 녹이게 하였다. 그리고는 난로우에 놓인 물주
전자의 뜨거운 물까지 따라주는것이였다. 순간 나는 가슴이 후
끈후끈해났다.
휠체어를 다 손질하자 두 군인은 내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을
새도 없이 수리비를 대신 지불해주었다. 나는 그들의 소행이 너
무도 고마와 이름과 주소를 물었다. 나의 극성에 그들은 이름과
주소는 알려주면서도 절대 부대에 알리지 말라고 거듭 부탁하
는것이였다. 그후 나는 그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보냈다. 그들
과 같은 착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다는것이 나와 같은 장애인
에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나는 무슨
복을 타고난 사람인지 어디에 가나 늘 이렇게 고마운분들을 만
나 어려운 고비를 넘기군 하였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나의 머리
속에서는 늘 살고싶은 마음이 죽고싶은 마음을 눌러버리군 하
였다.
학교에서도 나의 사정을 알고 될수록 편리를 도모해주려고
애썼다. 나한테는 층계를 오르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 학교에서
는 나를 고려해 우리 반 교실을 늘 아래층에 배치해주었다. 한번
은 학교에서 배치해준 교실이 대문 가까이에 있어 너무 춥다고
우리 반 학생들이 학교측에 제기하였다. 학교에서는 인차 우리
반을 다른 교실로 옮겨가게 하였다. 휴식시간이거나 다른 시간
을 타 옮겨가면 좋으련만 수업을 시작하려다가 불시로 옮겨가는
바람에 나는 다른 사람들한테 영향을 끼치기 싫어 그 자리에 있
다가 다음 시간에 옮겨가려 하였다.
그런데 한 학생이 달려와 선생님이 강의를 하지 않고 나를
기다린다고 알렸다. 나는 급해났지만 내가 자리를 옮기려면 한
참 시간이 걸리기에 나를 기다리지 말고 빨리 수업을 시작하라
고 선생님한테 전달하게 하였다. 새로 배치받은 교실에 이른 내
가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몇십쌍의 눈길이 일제히 나한테
로 쏠리였다.
나는 지팽이를 짚고 겨우 걷는 나의 모습을 그 많은 학생들
에게 보이게 된것이 더없이 원통스러웠다.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목에 둘렀던 목수건으로 얼굴을 가
리우고 한시간 동안 내내 울었다. 물론 선생님의 강의도 제대로
듣지 못하였다.
휴식시간이 되자 나의 옆자리에 앉은 학생이 위로의 말을 건
넸다. 전 반 학생들이 다 당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있는
데 당신의 모습을 보고 웃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그는 평소에 나와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누면서 나의 심정을
얼마간 리해하고있는 친구였다. 하긴 그랬다. 신체장애가 무슨
수치라고 내가 이렇게 남들앞에 내 모습을 드러내기 꺼려해야
하는가. 내가 아무리 남들한테 걷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
써도 그들은 벌써 나의 상황을 다 알고있는데… 단지 그들은 나
의 자존심을 건드릴가봐 내색을 하지 않고있다는것을 내가 모르
고있을뿐이였다.
대학교 2학년 첫 학기의 어느 습작시간에 있은 일이다. 선생
님은 초상묘사를 한 작문을 짓게 하였는데 서로 익숙히 지내는 한
반 친구를 생동하게 묘사하라는것이였다.
한 학생은 작문을 재빨리 써서 선생님한테 바치였다. 선생님
은 직접 검사하지 않고 그 학생더러 자기 작문을 전 반 학생들앞
에서 읽게 하였다. 일어서는것을 보니 화룡에서 온 학생이였다.
평소에 나는 그와 한번도 말을 건네본적이 없었다. 그는 작문을
읽기전에 당사자의 허락없이 이 글을 써서 미안하다고 량해부터
구하였다.
나는 누구를 썼길래 저렇게 신비하게 서두를 떼는것일가고
궁금해했다. 그런데 그가 읽는 내용을 들으니 나를 상
대로 묘사한것이였다.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는 나의 옷단장이며 머리모양이며 걷는 모습 지어는 내가
층계를 오를 때의 자세까지 세심하게 관찰하였던것이다. 비록
장애인이면서도 계속 학습을 견지하는 나한테서 감동을 받았다
는 내용의 글이였지만 어쩌면 내가 그토록 나의 모습을 감추려
고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너무나 상세하게 알만큼 다 알
고있었던것이다. 그가 작문을 다 읽자 모두들 교실이 떠나갈듯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그때까지 습작선생님은 내가 장애인인줄을 모르고있었다.
그번 작문을 통해 알게 되였다며 너무 장하다고 나를 연신 칭찬
하는것이였다. 일주일씩 수업을 하면서도 내가 장애인인줄을 모
르는 선생님은 습작선생님뿐이 아니였다.
그날 점심, 연길에 있는 한 학생이 나를 보고 기어이 자기 집
으로 가자고 이끌었다. 나는 거동이 불편해서 가지 않겠다고 고
집을 부렸다. 그런데 그녀는 벌써 부모님한테 말해놓았기에 음
식을 해놓고 기다린다는것이였다.
나는 별수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추운 겨울이라 바깥에는 북
풍이 윙윙 휘몰아쳤다. 간신히 휠체어를 타고 그녀의 집에 들어
서니 따뜻한 화기가 온몸을 휩쌌다. 그의 부모님은 명태국을 뜨
끈뜨끈하게 끓여놓고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나를
맞이하며 온돌에 앉히고는 밥상을 차려주었다. 나는 그날 난생
처음으로 그렇게 맛있는 명태국을 먹는것 같았다. 얼었던 몸도
대번에 녹아내리는것 같았다.
이튿날 오전수업을 마치고 교실에 혼자 앉아있는데 점심식
사하러 갔던 조선어문선생님이 황급히 들어오시더니 나한테로
다가와 이것저것 관심조로 물었다.
“어떻게 되여 다리를 못쓰게 됐어요?”
“소아마비에 걸려 두다리를 다 못씁니다. 허리도 잘 쓰지 못
하기에 오래 앉아있기도 힘듭니다.”
“아 참, 아까운 사람인데… 쯧쯧. 그런데 난 왜 이때까지 못
알아봤을가?”
“내색을 하지 않으니 모를수 밖에요. 무슨 큰 자랑거리도 아
닌데 드러내놓고 다니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아셨는데요?”
“내가 오늘 출판사에 있는 친구네 집에 갔다가 들었어요. 어
제 학생도 그 집에 갔댔다면서?”
“녜?”
그제야 나는 그 동창생의 아버지가 출판사에서 일을 본다는
걸 알았다.
선생님은 장애인이라고 위축받지 말고 꼭 공부를 잘해서 사
회에 유용한 사람이 되라고 고무격려해주었다. 나는 공부를 하
면서도 내가 공부하는 일로 집에 불화도 많고 나 자신도 퍽 고생
스러우니 마음이 흔들릴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하지만 이 순
간 배움의 결의를 더 굳건히 다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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