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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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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들의 걸음걸이
2014년 03월 24일 15시 06분  조회:1240  추천:0  작성자: 도라지

▣ 단편소설/ 구호준


연어들의 걸음걸이


녀인은 역시 풍경이다. 전철에 몸을 담고도 쉬지 않는 녀인의 입은 하나의 예술이요, 그 예술이 있어 그녀만의 풍경이 연주되고있다.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었다면 녀인의 입을 만든 리유를 알것 같다.
“오빠, 정말 오늘 나 데리고 도봉산 정상까지 오르는거지?”
“그래. 약속은 지켜야지. 대신 중도에 포기하기는 없기.”
“네. 힘들다고 버리고 가면 안되요.”
“알았어.”
“근데 오빠, 이렇게 입고 정말 정상까지 가능할가?”
녀인은 완벽하게 갖춰진 내 모습에 조금은 질려버린 표정을 만들려고 한다. 허나 그 질려버린 표정뒤에서 숨쉬는 즐거움을 보며 나는 픽 웃어준다. 배낭 하나 바로 갖추지 못하고 출근할 때 메고 다니는 가방을 어깨에 걸친 모습부터가 등산이 아닌 시가지 쇼핑이다. 가방만이 아니다. 등산에서 가장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신발 하나 갖추지 못한채 운동화로 감싸버린 연약한 발이 내 가슴에 비끼려고 한다. 하지만 한번 하는 등산 약속때문에 그녀에게 수십만원을 팔아서 등산준비를 하라고 할수는 없었다.
“등산은 결코 장비가 문제가 아니야.”
“오빠, 그래도 등산하는 사람들 말하는것이 등산에는 장비가 첫째라고 하던데요.”
녀인은 그간 들은 풍월을 읊으려고 한다. 풍월만으로도 뭔가를 알고있음을 표현하는것 역시 녀인의 풍경으로 만들어주고싶다. 허나 그건 마음뿐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려면 풍경을 만들줄도 알아야 한다는것을 살아오는 동안에 나는 체험하고있었다.
“그건 등산을 모르는 사람들의 풍월이야. 등산은 가장 중요한것이 정신력이지.”
“오빠, 등산과 정신이 무슨 상관이예요?”
“산을 마주했을 때 내가 저 산을 넘을수 있을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산은 이미 나로부터 멀어지고있어. 그리고 정신적으로 산의 기에 질려버린것이지. 그럴 때에는 아무리 훌륭한 장비를 갖췄다고 해도 그냥 무거운 짐으로 되는거야. 허나 저쯤이야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이미 산을 정복한것이 되거든.”
“정말?”
“그럼. 등산에는 그래서 첫째 정신력, 둘째 경험, 세째 체력, 네째가 장비야.”
“그래?”
녀인의 변하는 목소리를 듣고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녀인의 얼굴로 그늘이 비껴가려고 한다. 녀인의 입이 풍경을 연주한다면 남자의 입은 역시 오염뿐인것 같다.
“정신력은 문제가 없지만…”
“걱정마. 등산은 내가 도사니깐. 항상 초보들은 등산귀신들과 같이 다녀야 하는거야. 그러면 힘도 별로 들이지 않고 등산을 즐길수 있거든. 중도에 힘들다면 내가 업고라도 다녀올게.”
“큭…”
다시 밝아지는 녀인의 얼굴과 함께 웃음 한쪼각이 그녀의 손가락틈으로 흘러나온다. 녀인은 밥먹을 때 이를 보이지 않듯이 웃음을 웃어도 손으로 막고있었다.
대림동에서 신도림까지는 3분 거리. 녀인의 재잘거림에 대답해주는 사이에 지겨운 전철에서 내려 1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숨쉬기도 바쁜 2호선에서 내리니 가슴이 트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2호선은 내선순환이여서 늘 그렇게 붐비는지 아니면 발에 밟힐가봐 조심해야 할만큼 교포들이 넘치는 대림동에서 앉아서 그런지 알수 없지만 단 한번도 숨을 바로 쉬여본 기억이 없다.
전철을 갈아타려니 역시 사람들로 울바자를 만들고있다. 힘들게 다리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녀인과 어깨를 부비면서 그대로 떠밀리면 걸음은 저절로 된다. 그런 시루속을 누비며 뛰여가는 사람들이 또 다른 물결을 일으키고있다. 오늘도 늦은 출근시간을 념두에 두고 저렇게 뛰여가고있으리라.
“5분만 일찍 출근해도 되는데 왜 저렇게 뛰는지 리해가 안돼.”
“오빠, 저 사람들이 출근시간이 늦어서 뛴다고 생각해?”
넘치는 인파속에서 나를 잃어버릴가봐 꼭 곁에 붙어서 걷던 녀인이 잠간 걸음을 멈춘다.
“그럼?”
나도 걸음을 멈추고 녀인과 눈길을 부딪치려고 하지만 금방 사람들에게 다시 떠밀려 앞으로 간다.
“마음의 조급함이 결국 저 사람들을 뛰게 하는것 아니겠어요? 걸어갈수 있는 여유마저도 갖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한국인들이라는 생각은 왜 못해요?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싸움인데 언제 여유작작 걸어서 다닐 마음을 갖췄겠어요?”
마음의 불안함에 결국 걸어가는 여유마저도 빼앗겨버린 한국인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아야 할가?
갑자기 썰렁함이 가슴을 뚫으려고 한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중국인이라고 해야 하나?
한국에 발을 들여놓은지 7년 넘는 세월동안 단 하루도 불안함을 떨쳐버린적이 없다. 그 불안함이 이젠 공포로 변해가고있지만 한국인들처럼 전철을 향해 뛰는것으로 감추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중국인들처럼 스스로의 여유로움을 만들어본적도 없다.
한국에서는 교포, 중국에서는 조선족으로 통하는 나는 대체 어디에 속해야 하는것일가?
한국에서는 처음에는 중국조선족을 동포라고 불렀지만 그 동포란 결국 학술적인 용어로나 통할만큼 보편화되지 못하고있다. 차라리 서민들이 나 같은 인간들을 비하하여 만들어낸 교포가 일상화되면서 나 스스로도 “교포”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면서 “동포”란 단어를 지워가고있다.
뛸수도 걸을수도, 그렇다고 멈출수도 없으면서 누군가의 불안함을 즐기려고 하는 나는 대체 어떤 인간으로 세상과 소통하고있을가?
년이 떠오른다.
잡으면 갈갈이 찢어버리겠다고 몇달을 찾아 헤매던 년의 얼굴이 떠오른다. 년은 한가하게 마음의 평온을 갖고 뛰여가는 사람들을 웃으면서 살아가고있을가?
잃은 사람은 다리를 펴고 살고 훔친 사람은 다리를 굽히고 잔다는 말 참말로 받아도 되는것일가? 년도 잠잘 때 굽힌 다리로 마음의 불안함을 느낄가?
년을 떠올리니 다시 화가 치밀려고 한다. 지금 또 어딘가에서 나만큼 어리숙한 놈을 향해 추파를 흘리고 아양을 떨고있을 년이 떠오른다. 년을 잡으면, 우연이건 필연이건 어딘가에서 년을 잡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가?
정말 마음처럼 년을 갈갈이 찢어버릴수 있을가? 년은 아비를 죽인 원쑤도 아니요 내게 갈갈이 찢겨야 할만큼의 죄를 지은것도 아니다. 한때는 이불을 함께 덮고 살아왔던 녀자를 갈갈이 찢어야 한다면 세상에 살아남을 년들도 있을가?
년을 만나면 내 돈을 돌려달라고 할가?
그건 내가 준것도 아니요 훔쳐간 돈이니 당연히 받아야 할것이다. 내 돈을 내가 돌려받는다면 아무도 토를 달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년에게 돈이 없다면 내 표정은 어떻게 변해갈가?
그리고, 정말 그리고 년을 잡는다면 내 마음은 평온해서 뛰지 않는 여유로움을 찾을수 있을가?
년이 내 돈을 훔치기전에도 내게는 마음의 여유로움은 없었다. 어쩌면 년에게 돈을 잃어버리고 차라리 마음의 여유를 찾았는지 모른다. 사십평생이 넘도록 누군가를 갈갈이 찢어버리고싶을만큼 미워한적은 없었지만 년을 증오하면서부터 세상 사는 힘겨움을 잊고 보냈다.
뚫린 가슴우로 한겨울의 한기가 스밀스밀 기여들어온다.
타인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의 위안을 느끼려고 한 나는 어떤 의미로 남아야 하는것일가?
년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자신의 무력함으로 다가오려고 한다. 내가 싫어지려고 한다. 나는 왜 꼭 이렇게만 살아야 하는것일가?
“사장님이 주간실장을 맡아달라고 청들 때 왜 거절했어요? 주간보다는 야간실장을 맡아야 할 무슨 리유라도 있었나요?”
녀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지하철이 노량진에서 걸음을 떼고있다. 노량진을 떠나면 조금씩 걸음이 빨라지다가 차츰 뛰여갈거고 용산역에 들어설 때쯤에야 다시 조금씩 여유로움을 보일것이다.
“그냥 야간에 습관되여서 그랬어. 난 몸안에서 기가 반전을 하니깐 주간보다는 야간이 편하거든.”
중의가 그랬었다.
-넌 기가 거꾸로 흐르고있어. 그래서 낮일보다는 밤일을 하면 더 정신이 나는것이지.
하지만 그것이 내가 굳이 주간실장을 거절하고 야간실장을 맡은 전부의 리유는 아니였다. 년을 잡아야 한다는, 내 뼈돈을 훔쳐간 년을 잡아 갈갈이 찢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내가 주간을 거절하고 야간실장을 맡은 전부의 리유이자 유일한 핑게가 될것이다.
가리봉이 쪼각나고 이젠 대림동이 교포들의 새로운 집거구로 형성되였다. 8번 출구와 12번 출구에서는 한국어를 모르고 중국어만 해도 살아남을만큼 교포들이 진을 치고있다. 그러니 년이 다시 돈냄새가 그리우면 교포들이 집거한 곳으로 발길을 돌릴것이고 그런 년을 잡으려면 타인들과 꼭같이 출퇴근을 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기의 반전, 그 반전을 리용해야만 년을 잡을수 있는것이였다. 그래서 주간실장을 맡으면 월급도 더 받을수 있는것을 거절하고 야간실장을 맡았었다.
저녁 5시부터 아침 5시까지 출근이니 낮에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핥기에는 시간이 넉넉했다. 그런데 몇달을 죽치고 앉아 지키고있었지만 여직 년의 꼬리도 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게 쉽게 포기할수는 없었다.
년을 잡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일단 년을 잡고나서 다시 생각해도 되는 일이다.
“그렇게 일하다가 나중에 몸이 상해요. 사람은 저녁 10시에서 새벽 2시까지의 잠이 제일 건강에 좋거든요.”
녀인은 내 몸을 걱정하려고 한다. 피씩 하고 웃음이 흘러나오려 했지만 색조를 만들지 못하고 그대로 가슴 어딘가 잠간 머물다가 그냥 사라진다. 녀인의 관심이란건 언제나 독소가 있다. 진한 향이 넘치지만 그뒤에 숨겨진 독소를 보았을 때 마음 전체가 망가지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년도 그랬다.
“아침을 그렇게 거르면 어떻게 함까? 그러문 몸 버린단 말임다.”
하루에 두끼로 살아가는 나에게 기어이 세번은 수저를 들게 만들고있었다. 그런 작은 관심과 배려가 어쩌면 년에 대한 경계를 늦추게 한것이나 아니였을가?
“술 마시구는 그래두 장국이 시원하단 말임다.”
년이 오면서부터 집에는 먼지 한점 없었다. 그래서였을가, 년과 함께 하는 그 짧은 동안은 잠간이지만 마음의 평온을 찾을수 있었다.
“돈 모아서 오빠는 뭘 할거예요?”
녀인의 물음과 함께 차창밖의 어둠이 찾아들어 가슴에 막을 쳐놓는다.
이젠 뭘 해야 하지?
나는 뭘 해야 하지?
답이 없다. 스스로 뭘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싫어지려고 한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철학대로라면 자신이 싫어지는것을 염세주의라고 할것이다. 세상이 싫어지고 그러다가 자신까지 싫어지면 자살을 시도해야 할것이다. 허나 그건 쇼펜하우어의 전매권이니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을것이다. 최소한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자살한다면 자살해야 한다는것쯤은 알고있다는 의미가 될것이다. 알면서도 모르는척을 한다면 그것도 역시 자신에게 죄를 짓는 일이 아닐가?
“오빠는 돈벌면 중국에 돌아가나요?”
“글쎄.”
막막하기로는 뭘 하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와 별로 차이가 없다.
“오빠는 다른 동포들처럼 여기서 하루 벌고 이틀을 써버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던데요. 그러니 차곡차곡 모아서 중국에 가서라도 뭘 하세요.”
나보다는 십년 가까이 년하이면서도 내 삶을 걱정해준다. 나이와는 무관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녀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년을 잊으려고 했다. 아니, 어쩌면 그건 보기 좋은 핑게고 년을 잡을수 없다는 무기력으로 하여 포기를 했다고 할수도 있다. 하지만 녀인을 만나고나서 년에 대한 원한이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하고있음은 분명하다.
“나도 교포야. 남들과 꼭 같은 교포.”
녀인은 동포라고 불러주지만 나는 굳이 교포에 악센트를 뽑는다. 그렇게라도 더 이상 녀자들에게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는 내 마음의 신조를 지켜야 할것 같다.
“동포건 한국인이건 그 국적이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사람이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거든요. 한국에서 도둑질하나 중국에서 도둑질하나 도둑질은 꼭같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것 아닌가요?”
녀인은 학자는 아니지만 한때 잘 나가던 기자였고 언젠가 차사고로 다리를 상하고 직장을 그만두고있었다. 그래서 교포라는 말보다는 동포라는 말을 즐기는것 같다. 그러나 내게는 동포도 교포처럼 들린다. 녀인도 한국인이니깐.
“미국의 인종차별보다 심한것이 한국인들의 국적이 아냐? 그러니 이젠 교포들과 한국인은 같은 언어와 문화를 소유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일뿐 더 이상 같은 민족이라는 듣기 좋은 노래는 부르지 않는게 좋을걸.”
녀인의 얼굴에 웃음기가 흐르려고 한다. 그렇게 꼬집히면 화난 얼굴은 만들지 못해도 굳어라도 진다면 보기가 좋으련만 기름기 같은 웃음이 흐르니 되려 내가 화나려고 한다.
“오빠도 역시 진한 피해의식을 갖고있네요.”
피해의식?
단순한 피해의식이 아니라 나도 어쩌면 한국에서 피해자였을것이다. 처음 한국에 나와서 용역을 뛸 때 악덕 같은 오왜지는 1시간 30분씩 연장작업을 시켰다. 2시간 연장작업을 하면 반날 월급을 지불해야 하니 꼭 1시간 30분만 일을 더 시켰다. 용역을 때려치우고 공장에 출근할 때에도 돈 몇푼 더 벌려고 하니 하루에 15시간을 넘게 일을 해야 했다. 그런 나더러 한국인들에게 좋은 감정 만들라니.
“한국에서 일한다는것이 문화적인 차이와 환경의 차이로 힘들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 모든것이 오빠 스스로가 선택한것이 아닌가요?”
오장에서 반란이 일어나려고 한다. 트럼이라도 시원히 하고싶지만 그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녀인은 답없는 질문만을 던지면서 나를 수렁으로 떨어뜨리려고 한다.
“타인에 대한 원망이나 세상에 대한 불만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선택한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즐기는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가요? 과거에 대한 집착도 죄가 될것이요, 미래에 대한 무한정한 동경도 역시 현명한 사람들이 할 일은 아닐걸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거면 차라리 현재만 정시하면서 사는것이 즐거운 일이 아닌가요?”
녀인의 말을 뭐라고 부정하고싶지만 신경마저 올올이 매여버렸다. 나는 차라리 조용히 눈을 감는다. 녀인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다.
“다음역은 용산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안내방송이 열린 귀구멍을 쑤셔준다.
용산?!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역이다. 가만히 눈을 뜨니 녀인도 귀에 이어폰을 걸고 눈을 감고있다.
지하철은 뜀박질을 서서히 멈추려고 한다.
용산.
안해와 헤여지고 더 이상 녀인을 믿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래서 몇년을 홀로 살아가면서도 남들처럼 애인 한번 구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가끔씩 술 한잔 마시고 녀자 몸뚱이가 그리운 날이면 차라리 용산에서 어슬렁거리군 했다.
24시간 19세이하 출입금지 구역이 용산에 있었다. 19세이하 출입금지지만 나이가 지긋해지는 나에게는 24시간 출입가능한 곳이다. 들어갈 때에는 활개치면서 들어갔다가도 나올 때면 늘 찝찔한 기분을 털어버리지 못했다. 
한번씩 아가씨들과 딩굴고나면 술은 금방 깨여버렸지만 대신 옷을 주어입기전부터 몸뚱이 어디선가 스물스물해난다. 그런 스물거림은 오색이 령롱한 그 거리를 다 벗어날 때까지도 털어버릴수 없었고 몇번이고 몸뚱이를 씻고 또 씻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며칠을 두고 스물거리는 몸뚱이를 보고 내가 왜 이래야지 하면서 이젠 그런데는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고 하다가도 마음이 지치면 또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그러고나서 또 며칠을 후회하기를 반복한다.
어쩌면 그런 스물거림은 아가씨들과 딩굴지 않아도 몸뚱이에서 살아 숨쉬고있었을것이다.
안해와 관계를 맺고 성병이란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였다. 안해가 한국에 나오기전까지는 애인을 사귀면서 함께 살아도 보고 가끔 친구들과 함께 금방 한국에 들어온 녀인들과 잠간씩 모텔에서 밤을 새보기도 했지만 안해가 한국으로 오자 더 이상 낯선 녀인들과의 어울림은 없었다. 함께 벌어서 살아보자는 안해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웠고 그래서 결국 오빠라고 따라다니는 녀인들과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했던것이다.
그런데 늘 청순하게만 생각했던 안해에게서 성병을 얻었다. 한국에 나온지 일년도 안된 안해에게서 받은것은 참기 힘든 스물거림이였다.
안해와 헤여졌지만 그 스물거림은 지워지지 않았다. 스물거림이 지워지기는커녕 아가씨들을 품으면 그 스물거림이 다시 재현되면서 남자가 말을 듣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스스로를 찾으려고 술 한잔 하면 술을 빙자하여 아가씨들을 찾았던것은 아닐가?
녀인이 조용해지려고 한다.
눈을 살풋이 감고있더니 한참 지나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여온다. 잠이 든것일가? 아니면 잠든척을 하는것일가?
녀인의 숨소리가 가슴을 뚫는다. 순간이였지만 그냥 꼭 안아주고싶어진다. 녀인은 가냘프다. 하지만 녀인의 인생만은 그렇게 허전하지 않을것이다.
녀인을 만나면서부터 나는 조금씩 자신을 찾는 기분이다. 나와는 전혀 무관한 그런 녀인이 내게 또 다른 삶의 자세를 가르치고있었다.
녀인을 만난것은 보름전이다.
그날도 년을 잡으려고 대림역 8번출구에 있는 휴게소에 앉아서 하루를 때려치웠다. 때론 잠간씩 졸기도 하고 때론 뒤모습이 비슷해보여 뛰여가 얼굴을 확인하면서. 8번출구에 있는 휴게소는 로숙자들이 밤을 보내는 곳이다. 나는 그런 곳에서 낮이면 년을 잡으려는 일념으로 자고 깨고 뛰고를 반복하고있었다.
녀인도 그날 내가 잠간 조는 사이에 나를 스쳤다. 잠결에 얼핏 눈을 떴을 때 녀인 하나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려 하고있었다. 아직 덜 깬 잠속에서도 뒤모습이 년과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쩌면 총총한 걸음걸이가 나를 의식하고 도망하는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여 뒤모습이 년과는 틀려도 엄청 틀린 녀인을 년으로 착각하게 한것일게다.
자리에서 일어나 년을 쫓아 인파를 헤치면서 뛰여야 했다. 7호선을 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녀인을 잡을수 있었다. 하지만 여느때처럼 앞으로 뛰여가서 얼굴을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여유가 있다고 해도 좁은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릴 때까지 기다릴수도 없었다. 그대로 어깨를 때렸을 때 녀인은 얼굴을 돌렸고 나는 실수를 느끼면서 “죄송해요”도 만들지 못했다. 그때까지도 깨지 못한 잠과 함께 또 한번의 허무함이 엄습했던것이다.
“사람 잘못 보셨나보네요.”
실수를 하고도 아직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 나를 향해 녀인은 밝게 웃어주었다. 말투나 옷차림, 표정으로 보아 교포가 아닌 한국인들이 말하는 국산이였지만 웃는 녀인을 향해 만들어낸것은 죄송합니다 표정이 아닌 어정쩡한 교포아저씨의 찡그린 얼굴이였다.
“미안합니다.”
허리를 굽석할 때쯤에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린 뒤였고 한참을 그냥 그렇게 서있다가 녀인이 사라지고나서야 나는 출근시간이 된것을 알았다.
지쳐버린 몸뚱이를 끌고 힘들게나마 내 직장인 낙지집에 들어섰을 때 녀인을 다시 한번 만나게 되였다. 사장님과는 관심도 없는 인사를 건네고 주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사모님이 녀인을 인사시켰다.
“오늘 새로 오신분이예요. 야간홀이거든요. 이분은 주방실장이고요.”
“잘 부탁드려요.”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가 펴는 녀인을 보는 순간 참 더러운 인연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지하철역에서 년으로 착각하고 어깨까지 두드렸던 녀인이였다.
“일에 서투니깐 많이 도와주세요.”
녀인도 분명히 나를 알아보았으련만 아는척을 하지 않았다. 녀인만의 마음 씀씀이가 엿보였지만 나는 따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내게는 녀자란 모두가 꼭 같은 거기에서 거기로 통하고있었다.
하지만 녀인을 다시 쳐다보아야 했던것은 녀인의 웃음때문이였다. 지하철에서 한번 보았던 웃음, 그 웃음을 여전히 얼굴에 담고있었다. 아무런 가식도 거짓도 없는 맑고 순수한, 그래서 마음의 어딘가를 울려줄것 같은 그런 웃음을 녀인은 담고있었다.
“오빠, 아직도 멀었어?”
녀인은 잠도 깨지 않고 입을 놀린다.
“응. 이제 청량리니깐 아직 11정거장이 남았어. 좀 더 자.”
“고마워.”
녀인은 다시 숨소리가 고요해지려고 한다.
내 어깨에 기대인 녀인의 머리로부터 상큼한 향이 전해온다. 녀인은 잠들었어도 그 웃음을 얼굴에 담고있을가? 고개를 돌려 녀인을 훔치고싶지만 잠든 녀인이 깰가봐 움직일수 없다.
이 녀인은 내게 어떤 의미로 남아야 할가?
내 품이 아닌 어깨에 기대여 있는 녀인을 의식하면서 어떤 의미를 만들고싶어진다. 하지만 아무런 답도 없다. 내게는 역시 질문 자체가 답이 없는것일가? 타인이 내게 묻는 질문이건 내 스스로 만들어보는 물음이건 답을 갖지 못하는것일가?
녀인에 대한 답이 없다면 년은 내게 어떤 답을 줄수 있을가?
주간실장까지 거절하면서 년을 찾는것은 꼭 잃어버린 돈을 찾기 위해서일가?
년을 처음부터 사랑하지는 않았다. 홀로 살아남기도 힘든 한국이란 곳에서 사랑이란 내게는 의미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안해만큼은 사랑한다고 했을수도 있지만 그 안해와의 헤여짐과 함께 사랑이란 두글자는 차라리 가슴에서 지워버렸다고 해야 할것이다.
년에게 호감이 있었던것은 년의 짙은 사투리때문이였다. 말끝마다 “말임다”와 “있잼다”하는 말투는 한국인들에게서는 무식하게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친근하게 느껴졌었다.
물론 고향에서도 시골 로인들에게서나 들을수 있을만큼 박제되여버린 사투리겠지만 나는 그것을 구수하다고 하고싶었다. 어쩜 단순한 친근감만이 아닌 내 나름대로의 계산이 앞서서였을수도 있었다. 한국생활에 익숙한 녀자들과 잘못 사귀면 뼈도 추리기가 힘들다는것을 이젠 경험이 알려주고있었다. 안해가 한국에 오기전에 사귀던 녀자도 임신을 빙자하여 돈을 뜯어갔으니.
한국에 금방 왔다는 설명보다는 짙은 사투리가 그녀의 입국시간을 말해주는 셈이였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처음 인사하고 함께 어울리고는 술이 얼근해지자 년과 모텔로 직진했다. 그리고 아직 잠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말에 다음날에는 바로 내 세집으로 자리를 옮기고.
실수라면 년의 시골사투리를 하는 그 기막힌 연기에 속은것이다. 나와 함께 보내는 동안에도 년은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년의 모든것이 연기라는것은 년이 연기가 되여버린 뒤에야 알았다. 그날 년의 생일이라고 했고 그래서 친구들까지 불러서 함께 어울렸다. 회집부터 시작하여 노래방, 다시 양꼬치집까지 거쳐서 나올 때쯤엔 이미 술이 나를 삼켜버린 뒤였다.
“있잼다, 오늘에는 우리 처음에 만났던것처럼 밖에서 자기쇼. 호텔엔 못가두 모텔에서라두 더 재밋게 보내자는 말임다.”
호텔에 못간다는 말에 나는 화가 났었고 그래서 기어이 년을 보고 호텔로 간다고 소리치고야말았다. 호텔은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그렇다면 현금을 갖고 가서 조금이라도 싸게 하자는 말에 알콜에 절었던 머리에서도 그럴듯하다는 답을 만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맑은 정신에는 누가 옆에 있으면 비밀번호를 누른적이 없지만 그날만큼은 년의 부축을 받으며 카드에서 현금 20만원을 뽑았었다.
호텔에서 술을 부어버리고 나를 다시 찾았을 때에는 년이 보이지 않았다. 지갑속에 넣었던 카드도 년과 함께 연기로 되여있었다.
적어도 500만원은 넘을 돈을 하루밤사이에 날려버린것이다. 그간 번 돈들은 언젠가 음식점 하나 차리려고 적금을 하고 남은 돈들을 전부 날려버린것이였다. 눈에 불들이 뛰여다녔다. 년을 잡으면 갈갈이 찢어버리겠다고 음식점을 차리려던 생각까지 접어버렸다. 그리고는 야간실장으로 다시 취직해서 년을 찾아 헤매였다.
“오빠, 힘들지? 미안해요.”
녀인은 어깨에서 머리를 떼면서 중얼거린다.
“괜찮아.”
나는 녀인의 머리를 향해 어깨를 비워준다.
“고마워.”
녀인은 다시 내 어깨에 머리를 묻는다. 깨지 못한 잠속에서도 고마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녀인, 이 녀인과의 만남으로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고있는것이나 아니였을가?
한 음식점에서 일한다고 하지만 녀인은 홀에서 뛰고 나는 주방에서 땀흘리니 서로가 다른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리유로 나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년에 대한 증오로 몸을 태우고있는 내게는 국산이건 중국산이건 녀인이란 꼭 같은 염오의 대상이였다.
그런데 녀인은 거짓없는 미소로 내게 다가오고있었다.
야간실장이니 사장님과 직원들의 밤참을 끓여야 했다. 녀인과 만난 첫날에도 별로 관심도 없는 간참을 끓였다. 입맛도 없으니 대충 김치찌개를 끓였었는데 녀인은 맛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런 녀인의 앞에서 사장님도 엄지를 흔들어주었다. 여느때와 꼭같이 끓였는데 맛있다는 타인의 칭찬에 사장님도 정말 맛있게 느껴진것이라고 피씩 쓴 웃음을 웃어버렸다.
밤참을 먹으니 새벽이 다가오고있었고 손님들이 뜸해지자 낮에 설쳐버린 잠이 쏟아지려 했다. 나는 커피를 뜨물처럼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런 내가 안쓰럽게 보였던지 녀인은 기어이 음료를 마시라고 따라다녔다. 커피가 아니면 안마신다고 퉁을 주었지만 실장님이 맛있는 간참을 해준 보답이라면서 따라다니는 녀인에게 결국 손을 들고말았다.
녀인과 하루밤을 그렇게 보내고 새벽을 밟으면서 퇴근할 때 또 한번의 동행을 하게 되였다. 녀인도 대림동에서 살고있으니 함께 지하철을 타게 되였던것이다.
70%가까이 교포들로 넘치는 대림동, 그 대림동의 30%정도가 되는 가난한 한국인중에 녀인도 한사람이였다.
“야간은 장난이 아닐건데요. 낮에는 무슨 다른 일이라도 하나요?”
퇴근시간이 새벽 5시, 첫 9호선은 5시 37분이라야 신논현역에서 떠나니 녀인과 둘이 지하철에 그냥 앉아있기도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던진 질문이 나를 굳어지게 하고있었다.
“네. 낮에는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해야 해서 야간일자리를 찾았거든요.”
겉으로 보아서는 멀쩡한 녀인이 병원에 다닌다니 순간적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몇년전에 차사고를 당하고 치료를 제때에 못해서 다리가 마비가 되고있거든요. 그래서 낮이면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있어요.”
“차사고라면 보험처리가 되는것 아닌가요?”
“쌍방이 모두 과속운전이니 보험처리가 되지 않아요.”
녀인은 마치도 남의 일을 말하는듯 얼굴에 잔잔한 미소까지 흘리면서 담담하게 말하고있었다.
“그럼 부모님들은 뭘 하나요?”
“참, 이 나이에 무슨 부모님은. 조금 힘들어도 내 힘으로 할수 있으면 해야지요. 아주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것도 아닌데요. 이만해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야간이라도 나는 아직도 일할수 있다는것만으로 행복해요.”
녀인은 그날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려 7호선을 갈아탈 때 잠간 깨고는 내내 내 어깨에 기대여 잠들어 있었다. 얼굴에 밝은 표정을 만들면서 행복하게 산다고 해도 몸은 그만큼 지쳤으니깐.
대림에서 내려 녀인과 헤여져 내 전용감시소인 8번출구로 향하다가 잠간 고개를 돌렸을 때 내옆에서 그렇듯 당당하게 걷던 녀인이 아픈 다리를 겨우 끌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풍경, 그것도 풍경이였다. 잔혹한 풍경이 아닌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그녀만의 풍경을 연주하고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년과 비슷한 녀자들을 쫓아가지 않았다. 어쩌면 년을 잡으려는 생각보다는 혹시 녀인을 만나면 함께 어디 가서 밥이라도 한끼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빠, 아직 멀었어요?”
녀인의 목소리에 정신을 수습해보니 지하철은 어둠을 털어버리고 불빛 휘황한 도봉산역으로 들어서고있었다.
“다 왔어. 얼른 내릴 준비해.”
도봉산입구는 역시 등산객들로 넘친다. 언제 찾아오건 한산할 때가 없다.
“와 신난다.”
녀인은 팔을 길게 늘여뜨렸다가 천천히 하늘을 향하면서 깊은 심호흡을 한다. 녀인의 발랄한 모습을 보면서 몸뚱이가 성해도 구멍난 가슴을 갖고 사는 사람과 몸뚱이가 찌글어도 맑은 가슴으로 사는 사람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가져야 할가를 잠간 생각해본다.
“오빠, 등산을 자주 다녀?”
입구를 벗어나 산에 몸을 맡기자 사람들이 조금씩 뜸해지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시간만 있으면 등산 잘 다녔어.”
예전은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다. 한가하게 책상만 지켜도 밥을 먹을수 있던 세월의 이야기고 그 편함에 몸살을 앓다가 한국에 나온 뒤에는 일년에 한두번꼴로 산에 갈수 있었다.
“오빠, 이젠 가끔 나 데리고 등산다니면 안되요? 오빠가 힘들기는 하겠지만.”
녀인은 그녀만의 특유의 웃음을 날린다.
“그래. 시간이 나는대로.”
녀인과 함께 좁은 길을 걸으면서 이젠 년을 묻어야 할 때가 된것이 아닌가고 생각한다. 년을 잡아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세월에 허구헌날 한낮의 로숙자로만 살수는 없으니까.
“오빠, 이젠 글은 쓰지 않아?”
“내가 언제 글을 쓴다고 했어?”
“이, 벌써 잊었어? 그저께 아침에 술 마시면서 말하고서는.”
역시 며칠전 마신 술도 이제야 깨는것일가?
그저께 아침에 함께 퇴근하면서 녀인을 끌고 12번출구앞에 있는 샤브샤브로 향했었다. 그냥 아침만 간단히 먹자고 했었지만 정작 들어가니 소주 두어병을 까버리고.
소주를 마시면서 나는 녀인이 차사고를 당하기전에는 꽤 잘 나가는 기자였고 차사고로 다리가 불편해지자 직장을 그만두었다는것과 그날 운전하다가 차사고를 낸 남친도 결국 곁을 떠나버렸다는 정보를 얻을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나도 꽤 잘 나가던 놈이였고 글도 긁적거렸다는 정보를 흘려버리고.
에스컬레이터에서 어깨를 때린 리유를 묻는 말에 나는 새삼스럽게 년에 대한 증오를 술로 태워주었었다.
“묻으세요. 쉽게 잊혀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묻으려고 노력해봐요. 그 녀인도 그만의 사정이 있었을수도 있잖아요? 몇달 월급으로 생명을 구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거예요. 함께하는 동안은 그래도 고맙고 감사했을거잖아요? 그녀가 오빠의 손에서 죽어야 할만큼의 죄를 지은것도 아닌데 묻어주세요.”
녀인은 술 대신 생수를 홀짝거리면서도 내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려고 했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에 등산 한번 하는것이 소원이란 녀인의 말에 휴식일에 함께 가준다고 약속을 했었다.
“글을 쓸 때 어떤 주제들을 많이 다뤘어요?”
“짬뽕들을 주제로 다뤘지. 시골에서 도시로 진출하여 어울리지 못하는 짬뽕들을.”
석굴암과 천축사로 가는 갈림길에서 암으로 가야 하는지 사로 향해야 하는지 잠간 망설이고있었다.
“그럼 오빠도 짬뽕이네요.”
녀인의 키득거림이 귀구멍을 파고든다.
“그래. 나도 짬뽕이지. 시골에서 발발 기여 겨우 도시로 진출해서 책상 하나 얻었댔으니깐.”
“치, 누가 그런 뜻으로 말하나요? 한국에서의 오빠가 짬뽕이란 말이지.”
“내가 왜 한국에서 짬뽕이야? 나야 중국산이고 연이는 국산으로 확연한데.”
처음 한국에 와서 직장을 찾아 헤맬 때 수입제, 중국산 하면서 인간차별을 놓던 한국인들의 모습을 나는 잊지 않고있었다.
“오빠, 돈을 벌었다고 해도 다시 중국에 돌아가서 뭘 하면서 살 자신이 있어요?”
녀인은 정곡을 찔러버린다. 솔직히 중국으로 다시 들어간다면 막막하기만 할것이다. 지난해 잠간 중국에 다녀올 때 전과는 완연히 달라진 풍경을 보면서 그것을 느끼고있었다. 고속적인 발전과 함께 뛰여버린 물가, 한국에서 이렇게 벌어서는 중국으로 돌아가도 밥도 얻어먹기 힘들다는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다시 한국으로 향하지 않았던가?
중국에서 30년 넘게 살아온것에 비해 이제 겨우 7년을 한국물 먹은 나지만 지금 한국에 더 익숙해지고있었다. 그럼에도 단 한번도 한국에 정착하여 짬뽕으로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
“오빠도 결국 다른 동포들처럼 또 다른 이민족이 될거예요.”
발걸음을 천축사로 향하는 내게 녀인은 돌처럼 답을 안겨준다.
또 다른 이민?!
그건 꿈에도 상상못하던 답이다. 중국조선족의 이민사를 한번쯤 글에 담겠다고 등산팀을 조직하여 한겨울의 눈발을 헤치면서 9시간을 넘게 오랑캐령을 넘었던적은 있지만 돈을 벌려고 찾아온 곳에 마음까지 부려놓겠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
“178만 중국동포들중에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동포가 78만명을 웃돌고있어요. 가족이 전부 한국에 온 사람들도 있고 이젠 십년을 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이 모두 돌아갈것 같아요?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다시 고향으로 가겠지만.”
녀인은 기자로 지내던 시절의 예리함을 잃지 않고있는것일가?
“하지만 이민은 마음 같이 안될걸. 결국 교포들은 어디에도 마음을 담지 못하고 살아야 할거야. 중국에 돌아간다는것도 불안하고 한국에서 평생을 이렇게 3D일을 하면서 살기도 힘들고. 교포들을 보는 한국인들의 눈길도 만만하지 않아.”
나는 배낭에 매달았던 지팽이를 꺼내 녀인에게 건네준다. 서툰 등산길에는 두 다리보다는 세다리가 그래도 많이 도움이 될것이다.
“한국인들만 원망하지 말아요. 한국에도 상류층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하층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그들은 동포들때문에 어쩌면 더 살기가 힘들어졌거든요. 그리고 3D일을 하여 몸이 망가지는것이 두려운것이 아니라 정신이 무너지는것을 더 두려워해야 해요.”
“깨진 그릇에 맑은 물을 담을수 없듯이 망가지는 육체에 온전한 령혼을 담는다면 그건 거짓말이야. 정신과 육체는 항상 공존해야 하니깐. 한국도 한때는 동포요 한민족이라고 떠들었지만 그것 역시 듣기 좋은 노래에 지나지 않고.”
녀인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보고 잠간 다리쉼을 할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평평한 자리는 먼저 온 사람들이 이미 차지했다.
녀인은 나무에 등을 기대면서 앞에 앉아 여유작작 떠들고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오빠가 만약 먼저 와서 저 자리를 차지하고있는데 저 사람들이 와서 끼여들어 떠든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당연히 기분이 잡치지.”
나는 등산용 수건을 꺼내 녀인에게 건네준다. 한번 물에 적시면 몇시간이고 물기를 잃지 않는 수건이다.
“왜 자신도 못하는 일들을 남을 보고 하라고 하나요? 우리가 저기에 끼여들면 저 사람들도 당연히 불쾌해할것인데.”
녀인은 결국 교포들과 한국인들 사이의 벽을 찾아주고있다.
“그럼 교포들이 정신이 무너지는 원인은 뭐라고 생각해?”
다시 천축사로 가는 길을 향해 걸음을 떼면서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만들어본다.
“우선은 자신들의 문제겠지요. 조금 더 긍정적인 사유로 산다면 정신은 쉽게 무너지지 않지만 스스로 피해의식을 갖고 살아가면 어떤 환경에서건 정신이 무너지게 되여있으니깐요. 그리고 한국정부도 동포들이 이민해오는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책임이 있고 중국정부에서도 따로 한국으로 진출하는 동포들에게 어떤 배려도 해주지 않으니깐 결국 이중으로 버림받은 셈이지요.”
나도 결국 그래서 술을 빙자하면서 살아왔던가?
“한국에서 성공한 동포들도 적지 않아요. 그 사람들도 꼭같이 정신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나요? 생각의 차이가 서로 다른 인생들을 만들게 하거든요. 오빠도 그럴거고.”
정상이 아득하게 보여진다. 녀인도 이젠 돌층계를 톺고있다.
“오빠, 이렇게 걷고도 정상에 오를수 있을가요?”
단 한번도 생각못했던 또 다른 내 이민에 다시 우울해지려는 나를 향해 녀인은 말머리를 돌려준다. 나보다는 어려도 역시 배려하는 녀인의 씀씀이에 참 오랜만에 신경들이 올올이 즐거워지려 한다.
“등산은 정신력이야. 내가 오를수 있을가고 생각하는 순간에 산의 기에 눌려버려. 그러니 그런 생각은 아예 버려.”
녀인에 대한 위안의 말이 아니다. 녀인은 불편한 다리라도 결코 정상을 포기하지 않을것이다. 녀인의 삶 자체가 그것을 보여주고있으니깐. 차라리 중도에 포기한다면 녀인이 아닌 나일거고 그래서 그건 나 자신에게 찾아주는 답일것이다.
“오빠, 여기서 잠간 쉬였다가 가도 될가?”
“그래.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나는 자리에 앉아 녀인에게 어깨를 빌려준다.
“어깨에 기대여 눈을 감고 숨을 고르롭게 해.”
등산하면서 중도에 앉아 쉬는것은 금물이지만 아픈 다리로 등산하는 녀인을 마냥 서있으라고 하는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오빠, 오늘 정말 정상에 오르는것이지?”
“그럼, 못오르면 이 오빠가 업고라도 오를게.”
“이, 중도에 그냥 버리지만 마.”
녀인의 입가에서 엷은 무지개가 비껴가려고 한다.
산중턱에 있는 천축사의 풍경소리가 은은히 바람을 타고 다가온다. 녀인의 짙은 향을 맡으면서 정상을 향해 눈길을 주었을 때 수맣은 연어들이 비좁은 강을 거슬러 오르고있다. 아니, 어쩌면 강이 연어를 거스르고있을지 모른다. 연어들이 가는 길목길목마다 수렁들이 놓여있어 그 수렁에서 목숨을 잃는 연어들로 넘칠수도 있지만 살아있는 놈들의 몸부림은 결코 멈추지 않을것이다.
눈을 감고있지만 잠들지 않는 녀인을 꼭 안으면서 나는 또 다른 연어가 되여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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