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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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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를 즐기며
2014년 03월 24일 15시 10분  조회:1163  추천:0  작성자: 도라지

▣ 수필/ 주향숙

소나기를 즐기며


소나기가 내렸다. 나는 길우에 있었다. 그냥 평범한 하루였고 평온한 심정이였다. 그런 나에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상하게도 그 소나기속으로 빨려들고있었다.
나는 왜 소나기를 피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걸가? 내 가슴속으로부터 일렁이기 시작하는 이 알수 없는 쾌감은 어디로부터 오는것일가? 나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기로 했다. 꼭 대답이 있으라는 법도 없는것이고 그리고 내가 생각한다고 그 대답이 주어지는것도 아니며 겨우 대답을 얻어보았자 그것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내겐 없다. 더우기 지금 내게 그 대답이 꼭 필요한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커다란 비방울은 땅이며 지붕이며 차를 요란스레 두들겨댄다. 그것이 지금 그토록 신명나는 리듬으로 경쾌하게 들려온다. 길은 어느새 강물이 되여 흐른다. 나는 그 물속을 철벙거리며 걷는다. 더는 바지가랭이에 물이 튕길가봐 걱정할것도 없으니까 너무 자유롭다. 인간들의 온갖 냄새와 여기저기 넘치는 쓰레기들의 혼탁한 냄새가 사라진다. 오로지 청신한 비줄기의 비릿한 냄새만이 차오른다. 땅이며 하늘이며 세상 모든것들이 소나기속에서 비줄기의 흰빛으로 한결 그윽하다. 그토록 현란해서 현기증이 일것 같던 세상이 푸근하게 안겨온다.  
나는 그냥 소나기에 자신을 맡겨버리기로 했다. 이렇게 좋을수가 없다. 내가 좋으면 다 되는것이다. 허락받고서 태여난 생이 아니고 허락받고서 가는 생이 아닌데 이 시간만큼 내멋대로 한들 어떠리. 그냥 생겨먹은대로 그렇게 사는거지뭐.
소나기를 피해 황망히 뛰여가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때문이다. 그사이에도 옷은 얼마든지 젖을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일 역시나 마찬가지다. 내가 피한다고 피해지는것이 몇개나 있는가? 항상 올것은 왔고 우리는 고스란히 감내할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도망가지 말고 의연한 마음으로 맞고보면 더 편해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소나기속으로 걸어간다. 소나기가 마음대로 내 살갗을 때려온다. 비방울들은 내 세포마다를 상쾌하게 쿡쿡 터쳐온다. 비줄기는 내 얼굴이며 목덜미며를 적시다가 이내 온몸을 흠뻑 적셔왔다. 한결 시원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늘 아무것도 아니면서 또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할줄 번연히 알면서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뛰였다. 그렇게 갈증으로 타들고 땀나는 인생에 소나기만큼 큰 위안이 또 있을가?
소나기속에서는 혼자라서 좋다. 바글거리던 사람들이 어느새 그렇게도 재빨리 자취를 감추어버렸는지 사방을 둘러보아도 텅하니 비였다. 사람이면서 굳이 사람들을 싫어하는 나는 또 어느만큼 고약한것일가? 심각한척 따지지 말자. 이 세상에 원래 우리는 고독한 혼자가 아니였던가? 가끔 만나 웃고 떠들고 껴안는 행위너머에 구경 무엇이 더 있었던가? 결코 아무것도 없었다. 항상 내가 누군가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누군가는 곁에 없는 법이다. 새삼스레 찾을 필요가 없다. 그렇게 자신의 그림자를 거느리고 휘영휘영 가는것이다.   
소나기속은 자유롭다. 내가 어느만큼 구차하게 질질 눈물을 흘려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 소나기가 어느새 내 눈물을 다 가리우니까. 소나기는 아마도 울고싶을 때 울라고 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나기속에서는 아무나 소리쳐 욕해도 괜찮다. 비소리는 언녕 나의 목소리를 거두어버렸으니까. 그렇게 소나기는 아무나 소리쳐 욕하고싶을 때 욕하라고 오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원래부터 내가 웃고 울고 소리를 지르고 했어도 세상은 나를 향해 무관심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소나기속에서는 어디로 갈지 생각을 말자. 그냥 내앞에도 소나기가 있으면 되니까. 이 세상 누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안단 말인가? 모두가 다 그냥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맡겨진채 하루하루를 죽여왔을뿐일텐데. 게다가 몰라도 여태까지 쭉 잘 살아왔는데 오늘이라고 굳이 알아야할 필요가 더 있는가? 그냥 흔쾌히 소나기를 따라가는것이다.
가는 길이 진창이라고 불평부리지 말라. 여태 우리는 그런 진창속에서 바둥거리고 딩굴어왔을것이다. 화려한 날개를 펼치고 아스라히 비상하려는것은 꿈일뿐이다. 꿈은 언제나 깨기 마련이다. 원래 우리의 목숨은 흙에서 왔으며 다시 흙으로 돌아갈것이다. 진창이라고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소나기속에서는 한결 홀가분해진다. 덕지덕지 붙어있던 욕심이 깨끗이 씻겨가버리는 까닭일것이다. 이 세상 모든 괴로움도 기실은 마음의 욕심으로부터 생겨난다. 그 욕심때문에 우리는 매일 불안하고 매일 아프고 매일 실망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다시 달래고 달래서는 또 하루를 살아가려고 이악스럽게 싸운다. 또다시 후줄근히 지쳐 쓰러지기는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소나기속으로 떠오르는 사람도 있겠지. 피할수 없는 운명으로 만나 사랑이라는걸 알게 되였지. 그렇다면 그냥 그 사람때문에 소나기처럼 그리움에 젖으면 되는거다. 그렇게 이름을 껴안고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살아가는거다. 더이상 그 무엇을 바라랴. 그리움이면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더우기 처절한 그리움이라면 차라리 완벽하기조차 하지 않은가.
소나기속에서 무거운 사색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또 한톨의 먼지 같은 내가 어떤 사고를 할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어려운 철학 같은것들도 기실은 살아가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여왔는가? 다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냥 아무런 생각도 없이 소나기가 내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 된다. 그리고 그 순수한 자연의 소리가 내 령혼을 적시는 황홀경에 빠지면 그만이다.
누군가 보기에는 미친짓일지도 모른다. 감기도 들것이고 고열로 앓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 몇알이면 고열은 내릴것이다. 결국 그렇게 약으로 달래서 되는 지금까지는 아직은 건강한 몸인줄 알게 될것이다. 그때문에 기뻐해도 좋으리라. 그리고 내 발에 걸친 구두도 망가질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내 힘으로 다시 하나의 새 구두를 살것이다. 그때문에 나는 또 며칠은 기분이 더 행복할지도 모르리라. 어쩌면 소나기속에서 나랑 닮은 모습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결국 부질없는 기다림이 될지라도 나는 마침내 사람에 대한 은밀한 애정을 느낄것이다. 그때문에 저도모르게 가슴이 따스해지리라.
참 좋다. 소나기속은 너무나 좋다. 마음이 한껏 여유를 갖고 촉촉하고 생생하게 살아오른다. 소나기가 내 가슴에 일으키는 신비의 파문에 따라 설레인다는것은 그럴듯한 감동이다. 날마다 똑같은 먼지가 쌓이는 일상에서 소나기를 괜히 승화시키며 환상적인 분위기에 젖는것 또한 얼마나 찬란한 아름다움인가? 아직도 내릴 소나기는 얼마든지 있고 소나기를 누릴 시간도 얼마든지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즐기지 않으려는가? 소나기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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