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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엄마가 주신 기쁨 - 유려
2019년 07월 11일 14시 00분  조회:458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유려 
 
엄마가 주신 기쁨
 
 
 
딸애가 무용수업을 하는 동안 나는 다른 엄마들과 함께 투명한 유리문을 통하여 아이가 수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군 한다. 한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시간이지만 걸음마를 막 시작한 둘째딸과 함께 그 한시간을 기다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안아줄려면 내려와 걸으려 하고 아직 힘이 오르지 않은 그 짤막하고 여린 다리는 쉽게 넘어져서 큰애가 수업하는 동안에도 몇번씩이나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터뜨리군 한다. 큰딸한테 무용수업을 아예 시키지 않을가 하는 마음도 없지 않지만 남편은 녀자아이한테 무용을 통해 연마되는 아름다운 기질이 참 중요하다며 꼭 보내기를 원하는 마음이라 그것을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좀 참고 고생하면 되지! 학원비를 아끼지 않는 아빠가 있는데 내 몸이 좀 힘든 거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엄마로서 이만큼도 힘들지 않는 게 어디 있어! 이러면서 아이의 무용수업을 계속 견지하고 있었다.
 
무용 선생님은 애들이 수업이 끝나고 나면 꼭 제일 먼저 엄마한테 가서 “저를 기다리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인사를 시키고 이렇게 수고하는 엄마들한테 항상 감사한 마음을 품으라고 가르친다. 나한테는 참으로 위로가 되는 순간으로 되군 한다.
 
오늘도 무용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은 예전처럼 아이들한테 당부를 한다.   
 
“수업이 끝나면 엄마한테 ‘수고했습니다’하고 예쁘게 인사하세요!”라고  말하는데 무용수업을 함께 하던 청이라는 아이가 높은 목소리로 불쑥 말한다.  
 
“우리 엄마는 수고를 하지 않아요!” 엄마들은 유리창너머로 그 말을 듣고 일제히 웃음기 어린 눈길로 청이의 엄마를 바라보았다.
 
무용을 배우는 애들이 네댓살 정도가 되는 아이들이라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귀엽고 놀랍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또 궁금하기도 했다.
 
청이는 우리 엄마들의 그런 호기심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집에서 밥도 안하고 청소도 안하고 아무 것도 안하거든요!” 그 말에 엄마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청이의 엄마는 금방 다듬은 듯한 이쁜 매니큐어가 유난히 반짝이는 하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부끄러운듯 웃는다.
 
“우리 집에서는 우리 외할머니께서 모든 일들을 다 해요!” 청이는 교실 밖의 엄마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힘을 얻은듯 더욱 당돌하게 말을 이었다.
 
그 말에 어떤 엄마들은 웃음을 거두어들이며 청이 엄마를 바라본다.
 
“아마 외할머니가 시킨 말일거예요!” 청이 엄마는 아이의 이런 거침없는 발언에 당황한 듯했다. 내리까는 쌍꺼풀눈에 정성들여 그린 아이라인이 보였다.
 
딸애가 수업하는 무용교실에는 사면이 거울이다. 수업이 끝나고 딸애를 데리러 교실에 들어가는 시간은 내 모습을 전체적으로 비춰볼 수 있는 제일 좋은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별로 즐거운 시간이 아니다. 둘째아이를 데리고 큰애를 유치원에서 데려와서 무용수업을 할 때 배가 고플가봐 밥이나 간식을 재촉하며 먹이고 빠듯하게 무용수업이 시작하는 시간을 맞추려면 내 외모나 옷에는 결코 신경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옷을 이쁘게 입으면 무엇할가? 둘째아이가 과자 부스레기나 코물을 쥐여바르거나 앙탈을 부리며 옷을 잡아당기기 시작하면 이쁘게 차려입은 옷들은 삽시간에 후줄근해진다. 애를 안았다 내려놨다 앉았다 섰다를 수없이 반복하려면 편한 운동화가 제일이고 운동화에 어울리는 옷을 입으려면 선택할 여지가 별로 없는 게 내 현실이다. 이런 내 모습이 비춰지는 거울을 보는 것은 썩 달가운 일이 아닌 것이다.  
 
무심결에 나는 거울로 내 옆에 서 있는 청이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참으로 멋져보였다. 환하게 화장한 얼굴과 20대초반을 방불케 하는 옷차림 그리고 하이힐… 그 옆의 회색 그림자와 같이 뿌연 내 모습이란! 난 그냥 아이들의 손을 끌고 교실을 나와버리고 말았다.
 
정말 이 세상은 팔자 좋은 사람과 팔자가 별로인 사람의 구별이 따로 있는 것일가? 나는 둘째아이가 유치원 갈 때까지 키워놓고 나면 나도 저런 날들이 올 거라고 믿으며 위안을 해보았다. 그래도 마음이 무거운 것은 왜서일가! 다시 한번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내가 정작 부러운 것은 그 아이의 엄마의 옷차림이 결코 아니였다.
 
청이의 외할머니께서 집일을 도와주신다던 그 말이 귀가에 쟁쟁 울려퍼진다. 외할머니가 집일을 도와주시지 않아도 큰 아이가 과외하는 한시간 동안에만 둘째 아이를 맡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초중때부터 병원에 들락날락하시며 항상 아프시던 나의 엄마, 나는 그 시절부터 내 유일한 소원이 엄마가 아프지 않는 것이였다. 하지만 내 소원과는 달리 엄마는 한번, 두번, 세번 중풍을 맞으시고 혈관성 치매로 모든 기억과 의식과 감정을 하나하나 잃어가셨다. 그리하여 나는 그 간절한 소원을 점점 접으며 엄마가 늙어가시며 점점 병세가 위중해지고 있고 내가 엄마를 서서히 잃어간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첫째 딸을 낳을 때 친정어머니한테서 산후조리를 바라는 것은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고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까지 제발 산후조리하는 기간 엄마의 병이 더해지지 않아서 내가 아이를 안고 병원에 달려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기도하였다. 나의 큰딸의 이름은 기억하시며 자주 불러주셨지만 둘째 딸을 금방 낳고 엄마한테 보여주러 갔을때 엄마는 담담한 표정으로 약간 배가 고프신듯 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기다리고 계셨다.  
 
‘아이를 키우는 딸의 수고를 덜어주는 건장한 엄마가 계시니 딸도 호강을 하네… 근데 내 이 꼴은 도대체 뭐지?’   
 
거울에서 청이 엄마와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 내 머리속에 차고 들어온 생각이였다.
 
“난 엄마가 나한테 뭘 해줄 걸 정말 바라지도 않아! 제발 아프지만 말아줘…” 큰딸을 낳고 나서 엄마한테 힘주어서 했던 말이다.
 
“제발 아프지 말아…”어린 시절 엄마를 향한 그 순진무구한 사랑으로 오직 엄마가 건강하길 원했던 마음에서 한 말이였다면 내가 내 아이를 낳고 사는 게 버겁다는 느낌으로 내뱉은 “제발 아프지만 말아줘…” 는 제발 나에게 부담을 주지 말라는 뜻으로 바뀌여지는 것은 내 인생의 얼마나 큰 아이러니인가?
 
나의 엄마에 대한 사랑은 다 어디로 간 것일가? 엄마가 세상과 련결된 정신줄을 점점 풀어가면서 엄마는 점점 부담으로 나한테 다가왔고 두 아이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내 책임감과 엄마를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은 드디여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나는 엄마를 돌봐드릴 여력이 없었다.
 
실내에서만 생활하셔서 유난히 희멀건 엄마의 얼굴을 보면 생각나는 것은 항상 이제 내 인생은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뿐이였다.
 
무겁고 무거웠다. 엄마가…
 
그런데 오늘 청이의 외할머니에 대해 하던 말을 들으니 그 청이 엄마가 부러워진다. 과장 하나를 보태지 않고 나는 정말로 미친듯이 그의 엄마가 부러웠다. 아직도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여유롭게 살고 있는 그 인생의 상태가 너무나 부러웠다. 엄마의 도움도 도움이지만 나는 그 엄마의 딸에 대한 사랑이 부럽고 나는 엄마의 사랑에 너무나도 목이 마르다.
 
나한테 끊임없이 매달리는 뭔가를 요구하는 애들과 아웅다웅, 남편과 크고 작은 다툼이 일상화되며 정말로 전쟁처럼 치렬한 일상을 살아내다 보면 엄마의 그 넓은 내리사랑이 사무치게 그립다. 모든 것을 품어주고 굳이 내 주장을 펴지 않아도 굳이 옴니암니 따지지 않아도 그냥 한없이 나를 바라봐주며 만족하던 그 사랑이 그립고 그리웁다.
 
엄마가 아프시기 전까지 나도 엄마의 사랑을 마음껏 받으며 소중하게 컸는데 지금 뿌연 그림자와도 같은 모습으로 사는 내 자신을 보니 한탄이 나간다. 내가 내 아이들한테 모든 것을 몰부어 사랑하듯, 그런 사랑을 한때 받은 소중한 나였는데 왜 지금 이런 존재로 거울에 비친 내 자신을 감히 마주보지 못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가?
 
‘엄마, 난 왜 이래?  엄마가 그렇게 사랑해줬는데 지금은 내 꼴이 왜 이래? 왜 이 모양이야?’
 
아이들이 아빠트단지의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나는 벤취에 앉아서 마음속으로 엉엉 울었다.
 
애들의 사랑도 좋고, 남편의 사랑도 좋지만 그래도 엄마사랑이 제일 좋았어! 엄마가 한없이 나를 사랑해주던 때가 너무 그리워.
 
아무리 내 아이들이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게 참으로 쉽지 않고, 아무리 내 가정이지만 집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한계를 느낀다고… 엄마는 어떻게 겪어왔냐고 물으면 그 엇갈리고 흐릿해진 기억속에서 나한테 결코 한마디 말씀도 나누어줄 것이 없는 엄마… 그래서 나는 엄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데, 사랑이 도대체 뭐냐고? 병들면 이렇게 사그러지는 이 사랑은 도대체 뭐냐고?
 
이 세상 모든 게 한스러워지며 나는 수많은 슬픈 의문이 가져본다. 인간은 정말 머리에 의해 모든 게 지배되는 것일가? 사랑도 대뇌의 화학반응에 불과한 것인가? 이렇게 잔인한 게 현실이란 말인가? 엄마의 그 비여져가는 머리를 생각하니 기가 막혀온다.
 
십수년이면 적응이 될 때도 되였는데 난 여전히 엄마 사랑을 받고 싶어…
 
드디여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을 주체 못하며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담아 핸드폰에서 최근에 찍은 엄마 사진을 찾아보았다.
 
흐릿한 눈빛, 일그러진 엄마의 얼굴에서 젊은 시절의 엄마 얼굴이 비껴간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했던 그 고운 엄마 얼굴들이 비껴간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얼굴들… 그림을 그리듯, 사진을 찍듯 그렇게 또렷한 얼굴이 아니지만 내 몸은 감정으로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엄마가 나한테 주셨던 수많은 기쁨들이 생각이 난다.
 
엄마품에서 느꼈던 모든 아늑함, 엄마만 뒤에 계시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뛰놀던 그 샘솟던 힘, 엄마가 계시는 집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던 그 반가움, 엄마의 살 냄새, 밥을 차려주시던 엄마의 손길, 길 건널 때 든든하게 잡고 있던 엄마 손, 이 모든 것으로 엄마는 어린 나의 마음에 기쁨을 주신 것이다.
 
그 어린 나에게 사랑은 지극히 감각적인 것이였다. 그게 사랑이라는 것조차도 알지 못한 채…
 
그 당시의 많은 엄마들이 그러했듯이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을 별로 하시지 않으셨고 그냥 나를 데리고 살으셨다. 특별히 아이를 양육한다는 의미를 두고 오늘날처럼 육아서적을 보거나 교육을 받으신 것도 아니고 그냥 엄마는 엄마가 되여 나는 그의 아이가 되여 참 자연스럽게 그렇게 자라왔다. 특별히 행복하다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지만 불행하다는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고 그냥 나는 엄마를 따랐고 이 세상에 대한 수많은 호기심과 하고 싶은 일들을 엄마한테 물어보고 재잘재잘 말을 주고받으며 자랐다. 엄마는 그냥 나를 잘 보살펴주셨던 것 같다. 아프시기 전까지… 엄마의 나에 대한 모성은 거기까지였을가!
 
엄마의 사랑은 과연 무엇일가?
 
내 안에 있는 엄마와 함께 했던 그 기쁨들이 오늘은 내 모든 슬픔들을 어루만져준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내 어린 시절 나는 엄마한테 그렇게 소중했고 엄마는 모든 사랑으로 나한테 많은 기쁨을 주셨지! 그 젊은 시절의 엄마 얼굴은 정녕 크나큰 사랑의 흔적처럼 내 안에 깊이 배여있는 게 아닌가!
 
나는 엄마가 주셨던 그 기쁨에 대한 갈망으로 내 가정을 이루며 사랑하며 살지 않는가? 비록 그런 기쁨이 사라진 지금과 같은 나날들이 힘들 때도 있지만 내 마음은 항상 그 기쁨을 갈망하지 않는가? 그게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아니던가?
 
내가 엄마의 사랑이 이렇게 그리운 것은 엄마가 나한테 주신 기쁨이 하도 컸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모성처럼 엄마의 모성도 엄마가 건강하실 때에는 나에게 그런 기쁨들을 주려고 참으로 많은 애를 쓰셨을 것이다.
 
엄마의 얼굴은 지금 일그러져있고 오금이 불편한 엄마는 나한테 그 어떤 현실적인 도움을 주시지 못하지만 엄마의 얼굴의 그 체온이 생생하게 느껴지니 내 삶의 기쁨은 또다시 살아난다. 엄마와 함께 했던 그 수많은 지난날들이 내 마음속에서 빛을 뿌리는 듯하다. 현실의 그 어떤 유익이나 보상이 가져다주는 기쁨과는 다른 차원의 기쁨이였다.
 
나는 한결 맑아진 마음으로 마음껏 뛰여노는 내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기쁨이 보인다…

출처:<<도라지>> 2018년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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