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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인간의 궁극적 사랑을 응시하는 시적화자의 시선-함소
2019년 07월 11일 14시 29분  조회:417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함소
 
인간의 궁극적 사랑을 응시하는 시적화자의 시선
-도옥시인의 근작시들에 기대여
 
인간은 태여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인간은 사랑을 위해 살고 사랑을 위해 죽는다.
 
인간은 사랑의 화신이다.
 
실로 사랑이 없었더라면 저 기화요초 화사히 웃고 뭇새들이 즐거이 지저귀는 지상락원도 사막과 다름없을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우주를 사랑하는 인간의 궁극적인 사랑은 결국 인간 스스로 대한 사랑이 될 것이다. 이것이 인간애, 자연애, 우주애인 것이다.
 
인간학으로서의 문학은 더구나 이 인간의 사랑을 외면할 수 없으며 특히 문학의 아버지로서의 시는 그러한 사랑이 항상 시줄마다 질름질름 넘쳐나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사랑을 대하는 시인의 시선은 아무래도 따스한 것일 수 밖에 없으며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는 도옥시인의 근작시들은 그 보기가 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다.
 
활발한 창작활동으로 소문난 도옥시인은 시창작에서 늘 과거도전형이고 현재진행형이며 미래탐구형이다. 그의 시는 거대한 스케일로 호방한 시적화자의 흉금을 가감없이 드러내보이며 인류의 사랑을 읊조리고 민족정신을 고양하면서 문학예술성을 업그레이드시키는데서 추호도 린색하지 않고 있다. 시의 가치가 대중들에게 소외당해도 시의 존재리유를 결코 의심하지 않는 그의 시정신은 아무리 높은 점수를 주어도 과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그의 시들을 한수씩 살펴보기로 하자.
 
〈고요한 침묵〉은 강조된 제목으로 침묵의 의미를 더욱 견고하게 해준다. 시적화자의 ‘그대’는 ‘없는듯이 구름 뒤켠에 물러서서 나를 지켜주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런 존재는 ‘엄마의 메아리’이고, ‘대지의 사랑’이며, ‘우주의 자궁’인 것이다. 장엄한 화폭이고 사유의 비약이 독자들을 전률시킨다. 일변 ‘은혜’와 ‘새파란 생명’과 ‘령혼의 천국’으로 환언되는 ‘그대’는 시인한테 ‘래일의 빛이 태여나게 하는’ ‘령혼의 천국’인 것이다. 시인이 알심들여 고른 시어들로 더욱 무게감이 부여된 시는 ‘그대’의 ‘고요한 침묵’이야말로 ‘나’를 태여나게 하고 존재하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고 차라리 ‘나’의 모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침묵의 말〉을 들어보자. 일견 비틀린 제목으로 안겨오는 ‘침묵’의 ‘말’은 침묵이야말로 가장 절제된 언어라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시작부터 ‘가볍게 나풀대지 말자’고 일갈한다. 그것은 “침묵과 언어의 경계 우에 새벽빛처럼 만나는 / 그대”가 ‘나의 별’이기 때문이다. 시적화자의 ‘그대’가 누군지는 굳이 따지지 말자. ‘함부로 입 열지 않는 그대’이기에 그대 앞에서는 ‘대지가 바람의 노래를 들려주’고 ‘강물’도 ‘추락의 리유를 장쾌하게 적는다’. ‘그대’의 높은 뜻은 ‘땅’이 알고 ‘하늘’이 아는 까닭이다. 그리고 ‘생명의 뿌리’들이 있어 ‘그대’의 존재는 ‘침묵의 말’로 환원되는 것이다. 절묘한 시적 발견이요 시적 장치이다. 마침내! ‘그대의 침묵’앞에서 ‘내 심장 말을 하’고 있다. 그것도 ‘회색빛 하늘 무풍의 시대 마지막 노을빛 절벽 우에!’‘회색빛 하늘’은 세상의 어지러움을 의미하고 ‘무풍의 시대’는 그에 대한 무반응의 안타까움을 의미하며 ‘노을빛 절벽’은 그 어두움에 홰불을 치켜드는 시적화자의 심장의 호소를 일컫는다. 하다면 ‘침묵의 말’은 과연 얼마나 큰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개울물 편지〉를 읽노라면 시인의 반성 앞에 우리 모두가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자칫 부드러운 시어들로 아기자기한 사연을 떠올리지는 말자. 그만큼 시적화자의 반성은 자못 진지한 까닭이다. ‘누군가’를 ‘힘들게’ 한 일,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바라보며 / 허허롭게 갈 수 있는 자유를 부러워” 한 일, ‘깊은 숲 골짜기를 내리는 강물에 맨발을 담그며’‘깨달음’을 얻고 ‘부끄러운 자신을 씻어보’낸 일 등 시적화자가 달관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걸핏하면 반성을 잘하지만 반성하고는 또 꼭 같은 잘못을 저지르군 한다. 그에 비해 시적화자는 ‘세월의 때 다 벗고’‘아이적 뒤강물에 푸들치는 물고기의 자유’를 누리며 스스로를 ‘개울에 풀어보’고 있다. 시제 ‘개울물 편지’와 대응되는 시구라 하겠다. 그 모든 것이 아무 연고 없이 스스로 이루어진 것일가? 그럴 리 없다. “그대의 령롱한 눈빛은 신보다 아름다운 / 말씀의 메아리로” 내게 다가와 ‘내 삶의 전부를 여울쳐 흘러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돌아와 제목을 보자. 왜 하필이면 개울물 편지일가? 그만큼 시적화자는 이제 모든 것을 벗어놓고 반성과 참회를 적고 있지만 그것조차 개울물에 실려 흘러가리라는, 초탈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짧은 시에 이와 같은 깊은 의미를 숨겨둔 시인의 재치가 엿보이는 대목이라 해야겠다.
 
〈눈물별〉이라는 아름다운 시어를 만나보자. 눈물은 이슬이요 별처럼 빛나는 이슬이라고 뭇시인들은 일찍 읊어왔지만 눈물별이라는 시어는 도옥시인의 창조물임에 틀림없다. 시에서 새로운 시어를 창출하고 그 시어가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읽혀질 때 시인은 이미 시를 완성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는 몰입 직전에 이미 눈물별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완성시키고 있다. 그만큼 시에서 새로운 시어의 창출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가를 잘 알려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단시는 굉장한 절제미 속에서 눈 지그시 감은 시인의 높은 정신적 경지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 별이 빛난다고 말하면
 
너무 슬퍼 바람에 살점 내주는
 
세월이라고 말하라
 
 
누군가 세월이 너무 힘들다면
 
풍진세상 삶의 무게 다 읽어내노라고
 
그렇게 힘들다고 말하라
 
 
누군가 들꽃에도 감사할 줄 안다면 
 
말하리라 그대 사랑하는 눈물별 있어
 
세상 모든 것 아름다운 것이라고!
 
                   ―〈눈물별〉 전문
 
 
말이 필요 없다. 해석은 오히려 군더더기이다. 그렇다. 이 시에서 독자가 받아안은 바로 그 감정, 그 정서, 그 아름다움이 바로 이 시라고 할 수 있다.
 
〈외로운 행복〉이라니? 행복도 외로울 수가 있을가? 그럴 리가? 그러나 속단은 금물이다. 특히 도옥시인의 시 앞에서는. ‘당신의 구속이’ 바로 ‘저의 사랑’이라고 하는 여기에, “별이 깊은 밤 빛나는 리유는 / 그대의 그렁한 눈빛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여기에, “달이 지구를 떠나지 않는 리유는 / … / 달맞이꽃 한송이 피여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여기에 ‘외로운 행복’의 모든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액면에 드러난 시어들만 보아도 외로움은 흥건하게 넘친다. 그러나 ‘그대’가 있는 한 그런 외로움은 오히려 ‘내’가 견뎌야 하는 행복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리고 독자들은 마침내 제목에 수긍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려행〉을 떠나볼가. 그것은 한마디로 ‘그대’를 향한 ‘그리움’의 ‘려행’에 다름 아니다. 바로 그대를 향한 그리움으로 “그대의 맥박소리 / 우렁찬 내 심장 안에 / 텅 빈 세상”이 열리는 것이고 “찬란한 메아리로 / 어둠의 터널 열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먼 곳에서도 / 빛나는 그대 눈빛”이 있기에 떠나지 않는 려행이지만 그토록 충만된 려행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기막힌 려행이다. 그리움으로의 려행은, 또는 그리움을 향한 려행은, 또는 그리움과 함께하는 려행은 언제나 즐길 만한 려행이 아니겠는가. 특히 시적화자는 그것을 통해 세상과 ‘입맞춤’하고 더욱 큰 세상을 향해 ‘생명의 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님의 25시〉에 머물러보자. 이 시에서 ‘25시’는 ‘님’을 향한 시간이 너무 모자라서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25시간 쯤 되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님’을 그리는 시간이 하루에도 25시간이 된다는 과장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님’으로 아름다운 시간은 하루에도 25시간으로 빛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아무튼 독자가 어떤 의미에서 받아들이면 그렇게 된다고 볼 수 있겠다. 시적화자의 ‘님’에 대한 절절함이 울컥이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시에서는 ‘바람처럼’이라는 낱말의 8차 반복이 유난히 호소력을 획득하고 있다. 바람처럼 ‘숨결이 날개를 달고’ ‘속삭이고’‘불려가고’‘산소가 되고’‘숨결이 되고’‘태워버리고’ ‘깊고 넓고 푸른 바다에 눕고 싶다’는 표현이 중독성을 가지고 긴 여운을 남겨주는 까닭이다. 영원한 사랑의 절창이 아침해마냥 불끈 솟아오르며 탄생하는 순간이다.
 
‘백합녀인’을 만나보자. ‘백합’이 피고지는 사이에 ‘백합’을 사랑하던 소녀는 ‘녀인’으로 되였다. 다양한 색상의 백합은 그 녀인에게 다양한 의미로 다가선다. 마침내 ‘백합이 지는 날 녀인은’ 드디여 ‘백합 속에 들어가 누워’ 백합과 하나로 되여버린다. 그리고! “양지바른 언덕 우에 하얀 봉우리 / 울 엄마 무덤가에 백합이 흐드러지게 피였네”라는 눈물겨운 시구가 독자들의 시 망막에 뛰여들어 눈물샘을 자극한다. 백합은, 그 흔하디 흔한 줄 알았던 백합은 시적화자의 어머니셨구나! 그러고 보니 백합은 “백합보다 아름다운 사람인 줄 / 자기만 모르시고 백합보다 고운 미소로” 사시던 어머니실 줄이야! 아픈 시가 이다지 아름답게 피여날 줄이야! 먹먹해지는 마음을 추스리면 백합에 대한 시인의 뜨거운 사랑이 만질듯 안겨온다. 시인의 시적 완성도가 돋보이는 걸작이라 해야겠다.
 
이상 도옥시인의 8수의 근작시들에 젖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도옥시인은 시탐구와 시창작에서 지름길, 건너뛰기 등을 추호도 허락하지 않는 근엄한 탐구정신의 소유자이다. 하기에 그의 시들은 낱말 하나 부호 하나도 례사로운 것이 아니며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칠 때 비로소 시인의 탐구정신과 마주하게 되고 그런 장인정신에 감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근작시들은 하나같이 사랑을 읊조리고 있으며 인간의 궁극적 사랑을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에 따스한 빛이 가득 서려있다. 특히 이번 근작시들은 예전의 시들에 비해 많이 갈앉고 차분하며 득도의 경지마저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시적 모지름이 얼마나 처절한가를 얼핏 상상하게 되는 리유이다.
 
오로지 시 탐구와 창작의 길에서 올곧은 선비정신과 장인정신을 앞세운 시인의 독보적 행보가 어떤 그라프를 그릴지 궁금하다.

출처:<<도라지>>2018년제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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