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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대림동에서 - 살춘각
2019년 07월 12일 09시 01분  조회:585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단편소설 / 살춘각

대림동에서 
 
6
 
 
“전 한국음식 못 먹겠어요. 아저씬 어때요?” 
 
“나도 입에 안 맞아. 같은 민족이라 음식은 맞을 줄 알았는데…” 
 
“김치는 그래도 먹을 만해요. 그 외엔…” 
 
“오면서 볼라니까 화룡 랭면집도 보이던데?” 
 
“네. 저도 봤어요. 근데 거기까지 가자면 좀 멀죠. 시간이 되겠어요? 오후 수업 전에요? 그리고 식사치곤 너무 비싼 거 아닐가요? 료리 한가지에 적어도 만원은 하겠으니.” 
 
“하긴 그렇네. 돈도 못 버는 주제에. 흐흐.” 
 
“뭐 대충 때우면 되죠. 차차 적응이 되겠죠.” 
 
“랠엔 다른 집 찾아보자. 이 놈 뼈다귀장국엔 뭔 놈의 들깨를 이리 많이 넣었어. 장국이란 게 된장맛은 안 나고 온통 들깨맛만 나잖아.” 
 
“그러니까요. 저 본래 시래기 영 잘 먹는데 들깨 때문에 못 먹겠어요.” 
 
“한국에는 왜 초두부집도 없나 몰라.” 
 
“순대라는 것도 속에 당면밖에 없어요.” 
 
“반찬이라는 건 맨 주물럭주물럭 무침들…” 
 
“찬마다 설탕을 넣는지 다 달아요.” 
 
“티비에서 하도 선지국 선지국 해서 모처럼 먹어봤더니 당최 못 먹어줄 음식이더구만.” 
 
“랭면은 더구나 못 먹어요.” 
 
“짜장면은 그나마 괜찮아. 그렇다고 맨날 짜장면만 먹을 수도 없는 일이고…” 
 
“랠엔 생선 쪽으로 찾아볼까요?” 
 
“오케이.” 
 
여기는 대한민국 서울시 대림동. 
 
영등포경찰서 맞은켠 ‘양평해장국’집에서 나는 태여나서 처음으로 음식타발을 하고 있다. 
 
한국에 온 지 어느새 한달이 넘었다. 나이 반백에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 다잡은 터였다. 려행비자를 장기체류비자로 전환시키려면 동포재단에서 지정한 학원의 수료증이나 자격증이 필요했다. 
 
내가 있는 도곡동에서 대림동에 있는 학원으로 오자면 한번 환승해야 한다. 3호선에서 2호선으로, 혹은 7호선으로 갈아탄 다음 대림역에서 내려 10번 출구로 나온다. 300메터가량 직진하여 우성아빠트를 만나 좌회전 하면 대략 담배 한대 탈 시간에 동사무소가 보인다. 그 맞은켠이 문화빌딩이고 거기 2, 3, 4층이 한국동포지원단에서 지정한 종합기술학원이다. 주요품목으로는 제과, 제빵, 료리이다. 비자 변경을 하기 위하여 나는 여기 학원에 등록했다. 
 
그곳에서 나는 한 녀자를 만났다. 
 
 
5
 
 
방문취업기술교육학원 제빵 81기 원생은 나까지 합쳐서 7명이였다. 일년에 4기, 한계도에 한번 꾸려지는데, 한번에 나오는 인원수가 5,000명이라니까 만기가 되여 돌아가는 걸 감안하더라도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81기까지 운영해온 걸 보면 이 학원이 선 지 꽤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엔 이런 학원이 도처에 널려있다. 
 
어쩌다 보니 내가 반장으로 선출되였다. 아마도 7명 중 내가 한국말을 잘한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학원 측으로서는 반장보다도 강사의 말을 옮겨주는 통역이 필요했으리라. 앵무새 같은 전달자가 필요했으리라. 7명 중 5명은 아예 한국말을 들을 줄도 몰랐으니깐. 유일하게 들을 줄 아는 녀자도 발음은 정확하지 않아서 말할 때면 늘 얼굴을 붉혔으니깐. 한마디 더 보태자면, 7명 중 4명이 한족이였다. 강사의 말을 빌면 70몇기는 20여 명 전부 한족이였다고 한다. 
 
F―4비자는 자격증이 필요하지만 H―2는 자격증이 필요 없다고 했다. 그냥 6주간 출석만 꼬박꼬박 하면 수료증을 내준다고 했다. 그러면 남는 건 출입국에 가서 외국인등록증을 신청하는 일 뿐이다. 
 
“하이―”
 
그녀가 나를 보고 인사했다. 아침 학원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나를 보고서다. 
 
“하이는 무슨 하이. 조선말로 해.” 
 
“잉! 빤장― 내가 발음이 나쁜 거 알고 놀리려고 그러죠?” 
 
“오빠야, 빤장이 아니구! 그리구 한국에 왔으면서 조선말부터 빨리 배워야지. 안 그래?” 
 
“옵빠는 칫! 아저씨인 주제에. 알았어요. 앞으로 조선말 할게요. 웃지만 마요.” 
 
“알았어. 빨리 들어가. 니가 젤 늦었어.” 
 
“네엡.” 
 
그녀는 꽉 찬 20대다. 곧 30대가 될 터. 시집을 갔는지 어쨌는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머리는 긴 생머리로 풀어놓고 다니기 좋아했다. 웃을 때 드러나는 덧이가 유표했고, 말할 때면 머리를 갸우뚱하는 것도 특징적이다. 못생긴 편이다. 1.50메터가 될가 말가. 통통 타입. 
 
수업은 들을 게 없었다. 다섯날에서 두날은 리론이고 세날은 실기였는데, 리론은 밀가루의 력사, 효모, 라드 등 쓸데없는 말과 음식에 관한 동영상들로 시간들을 채웠다. 그나마 실기는 빵을 만들고 맛보고 하는 시간인지라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생소한 것을 만지는 재미도 있었다. 
 
“야, 치치할.” 
 
그녀가 치치할에서 왔으므로 나는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그녀가 툽상스러운 허리를 나하고 180도이였던 것을 180도를 돌려 0도인지 360도인지를 만들었다. 
 
“네, 아저씨.” 
 
“너 오늘부터 나하고 같이 점심 먹자.” 
 
서로 면목을 튼 지 이틀이 되자 내가 먼저 제안했다. 
 
“왜요?” 
 
“왜라니? 같이 먹으면 안되나? 싫어?” 
 
“그런 건 아니구요…” 
 
“그럼 됐어. 오늘은 내가 살게.” 
 
“래일은 제가 사구요?” 
 
그녀가 눈을 장난스레 새그럽게 만들었다. 
 
“응. 내가 부자라면 매일이라도 사주련만 보는 바와 같이 알거지 수준이란다.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사고 래일은 네가 사고 그러는 게 좋겠지?” 
 
“오늘은 아저씨가 먹고픈 거 먹고 래일은 내가 먹고픈 거 먹고?” 
 
“조선말도 배우고.” 
 
“나쁜 식습관 같은 것도 들켜버리겠네요?” 
 
“식습관 뿐이겠나. 잘하면 정도 들 수 있지.” 
 
“켁. 생각은 딴 데에 가 있었군요.” 
 
“콩 나는 데를 소가 간다고 누가 말했던지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하긴 아저씨는 충분히 젊어보여요. 나하고 같이 다녀도 될 만큼.” 
 
“너도 너무 못나지는 않았어. 비록 만두 같게 생기긴 했지만.” 
 
“백날 봐서 고운 꽃도 없다지요.” 
 
“풀도 화분통에 옮기면 화초가 되는 법.” 
 
같이 밥을 먹어도 별 특별한 화제는 없었다. 
 
서로의 신상에 대해서는 안 묻기로 했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한국에 돈 벌러 온 몸이고 보면 이미 다 안 것이 아니겠는가. 거기 뭐 더 물어보고 할게 있겠는가. 
 
“이따 수업 끝나고 나하고 대림동 돌아볼래요? 나 한국에 온 지 며칠 안돼서 여기 지리에 대해서 하나도 몰라요.” 
 
“좋아. 모르긴 나도 마찬가지야. 난 아직 지하철 타는 것도 잘 몰라.” 
 
하긴 북경에서 한동안 살면서도 나는 뻐스만 리용했지 지하철은 한번도 안 타봤으니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이번에 한국에 오면서 비행기도 처음 타봤다. 한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평생 비행기를 못 타봤을지도 모른다. 한번은 어떤 녀자와 이 말을 했더니 하하하 하고 웃더니, 녀자만 타느라고 비행기를 놓치셨네요, 하며 배꼽 잡는 것이였다. 
 
“대구탕이 맛이 그닥잖네요?” 
 
“내가 지금 그 말을 하려던 참이야.” 
 
“강사가 한국에 오면 대구탕을 꼭 먹어봐야 한다고 난리를 하더니…” 
 
“그러게. 우리의 입맛이 별난 건가? 아니면 이 집 료리솜씨가 별론가?” 
 
“혹시 대구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요.” 
 
“활어가 아니고 랭동대구일 수도 있어. 그러면 맛이 당연히 못해질 수도.” 
 
“일리가 있어요.” 
 
“다음엔 활어집 가자.” 
 
중국인 거리(唐人街)는 연길이면 이럴가 싶게 간판이고 사람이고 통채로 연길 어느 모퉁이였다. 여기서는 통용 중국어를 사용했다. 온갖 장사군들과 팔고 사는 사람들과 음식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량옆에 녀자를 끼고 두 팔을 녀자의 어깨에 올려놓은 채 비틀대는 주정뱅이도 한둘이 아니였다. 
 
“고수풀 어떻게 팔아요?(香菜怎么卖)” 
 
치치할이 고수풀을 보자 두눈을 반짝 빛내며 물었다. 
 
“천원.(一千)”
 
“건두부는요?(干豆腐呢)” 
 
“2천원.(两千)”
 
그녀가 잠시 주춤했다. 
 
“너무 비싸요. 중국에선 고수풀 한단에 1원인데 여기선 6원이나 하잖아요.” 
 
“그래도 먹고 싶으면 사야지. 볼라니 다른데선 고수풀 같은 건 팔지 않던데? 한국사람들은 고수풀 먹을 줄 몰라.” 
 
“그러니까요.” 
 
“사실 나도 여기 와서 가장 먹고 싶은 것이 순두부(豆腐脑)인데 그건 어디에도 없다더라구.” 
 
오후 수업이 끝나자 그녀가 시장거리를 돌자고 제의했었다. 나 역시 대림동을 모르기는 그녀와 마찬가지여서 얼른 수락했다. 
 
대림시장거리를 이곳에서는 당인가, 즉 중국인 거리라 불렀는데 별칭 조선족타운이란 뜻이다. 지하철 1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시장 입구이다. 
 
거리의 난전이나 마트에는 거지반 중국물품이였다. 없는 게 없었다. 들리는 건 중국말이요, 눈에 보이는 건 익숙한 것들이였다. 값도 한국보다 훨씬 쌌다. 
 
대림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건, 첫 조선족타운인 가리봉동이 정부의 재개발계획에 들면서 조선족들이 근거지를 대림동으로 옮겼다는 것이 전부다. 그러니까 대림동은 제2조선족타운인 셈이다. 
 
서시장 찰떡이라고 쓴, 돌판 우의 찰떡가게를 지나가는데 이상한 장면이 눈결에 스쳤다. 
 
“무슨 인터뷰하는 모양인데…” 
 
자그마한 식당 앞이였다. TV조선이라고 타이틀을 단 카메라와 마이크가 언뜻 보였고, 기자인 듯한 녀성분과 슈트에 넥타이까지 매고 카메라 앞에 선 남성분이 뭔가 론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요? 잘할 것 같은데요? 신수도 좋구요.” 
 
“아니요. 저 이런 거 처음입니다. 떨려서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잘할 수 있을 겁니다. 믿어요. 자, 심호흡 하시구요―” 
 
인터뷰대상자는 가게 사장인 모양이였다. 키는 작달막했는데 40대 초반으로 보였고, 한국인인 것 같았다. 인터뷰내용은 영화《청년경찰》과 련관되여있었다. 
 
“뭘 하고 있는 거죠, 지금 저 사람들이?” 
 
치치할이 물었다. 
 
“《청년경찰》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가게에 어떤 영향은 없는가 그걸 인터뷰하는 것 같은데…?” 
 
내가 대답했다. 
 
“《청년경찰》이 뭐죠?” 
 
“김주환감독이 찍은 영화인데 요즘 대세야. 박서준, 강하늘이 주역으로 나오는, 녀자의 란자를 강제로 추출하여 팔아넘기는 범죄영화야.” 
 
“그런데는요?” 
 
“조선족이 그 범죄를 저지른단 말이지. 그래서 조선족을 범죄자로 내모는 영화를 찍지 말라고, 감독보고 조선족에 사과하라고 조선족단체들이 사처에서 떠들고 일어났기 때문이겠지.” 
 
“난 몰라요. 아저씨가 봤으면 좀 얘기해주세요.” 
 
“사실 영화는 예술이야. 물론 어떤 기정 사실로 영화를 찍을 수는 있어. 그래도 예술은 예술인 거지. 헌데 이 영화는 영화 속에 이상한 대사가 나와. 정확히 57분 25초에 택시운전사가 두 경찰학교 학생들을 대림동에 데려다주면서 하는 얘기가 있지. ‘학생들, 이 동네 조선족들만 사는데 칼부림도 많이 나요. 려권 없는 범죄자들도 많아서 경찰들도 잘 안 들어와요. 웬만하면 길거리를 다니지 마세요’ 라는.” 
 
“아…” 
 
“결국 조선족단체들에서 문제 삼는 건 영화가 아니라 김주환감독의 조선족에 대한 편견 내지는 아니꼬운 시선 때문일 거야. 전반 조선족을 통틀어 범죄집단으로 보는 건 문제가 있다, 이거지.” 
 
“그렇네요… 삐딱한 시선.” 
 
“법무부에 따르면 2016년 대림동의 등록 조선족은 약 15,000명이며, 특히 대림역이 포함된 대림2동은 절반 이상인 8,300명이 거주한다고 한대. 이들 중  10,767명이 방문취업비자를 받아서 거주중이라니 나머지는 불법체류자로 봐야겠지.” 
 
“대부분 돈 벌러 온 성근한 동포들인데요… 휴―” 
 
“그렇지. 그래서 40여개 중국동포 단체 대표들은 박옥선을 집행위원장으로 《청년경찰》에 항의하기 위해 대림2동 주민센터에 《청년경찰》상영금지 촉구 대책위원회를 발족할 예정이래. 지금도 그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고 있어. 지금이 8월 중순이니까 9월이면 결과를 알 수 있을 거야.” 
 
“그 영화를 봐야겠네요.” 
 
“요즘 영화《범죄도시》광고도 요란하잖아. 시월에 개봉한다고. 그것도 조선족범죄에 관한 얘기래. 2004년 서울 가리봉동에서 실재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강윤성감독에 마동석, 윤계상이 주연을 맡은… 아마도 같은 조선족비하가 계속될가 우려해서 저렇게 시위를 벌이는 것 같애.” 
 
중국인 거리를 볼만큼 보고 돌아오니 인터뷰는 아직도 진행 중이였다. 뭔가 자꾸 틀리는 모양이였다. 남자가 수줍게 머리를 긁는 걸 봐서 엔지가 여러번 나는 모양이였다. 
 
“가 볼까요? 무슨 말을 하는지…” 
 
“가봤자 짜맞추기야. 뻔할 뻔자 아니겠나.” 
 
“하긴요. 똥을 꼭 맛을 봐야 알겠어요? 호호호.” 
 
나는 영화 《범죄도시》가 개봉되면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4
 
 
북한산자락이 끝나는 성북동이다. 4호선을 타고 한성대에 내려, 2인 위안부소녀상을 잔등으로 바라보다, 02번 마을뻐스를 타고 가다 보면 길상사(吉祥寺)라는 역이름이 오른손 편에 나온다. 모른 척 길따라 우측으로 슬쩍 몸을 비틀면 바로 량옆에 화려한 련꽃들도 가득한 길상사 정문이 반긴다. 
 
소녀상은 본시 3인으로 설계되여있었는데, 한국소녀, 중국소녀까지 만들고 1인을 공석으로 남겨놓은 것이 유표하게 눈에 들어왔었다. 단발머리 한국소녀가 우측에, 쌍태머리 중국소녀가 중앙에 앉아있었는데, 중국소녀의 무릎에는 꽃묶음이 설계되여있었다. 남은 1석 좌측은 어느 나라 소녀가 차지할지 궁금증이 많아지게 하는 대목이다. 한성대 학생들의 아이디어일가. 
 
씩― 한번 웃고 나서 ‘삼각산길상사(三角山吉祥寺)라는 현판을 쳐다본 다음, 폰에 사진을 담느라 정신이 없는 치치할을 뒤로 남기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길상사로 들어갔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죠?” 
 
뒤따라 온 그녀가 물었고, 화장실을 모르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이 있음직한 곳으로 쭈볏거리며 찾아가보니 정랑이다. 그림을 보니 분명 화장실인데, 남자는 청신사, 녀자는 청신녀로 표시돼있었다. 청신사, 청신녀 뒤에는 해우소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해우소(解忧所). 화장실이 맞긴 맞네. 걱정거리를 푸는 곳. 
 
길상사를 어떻게 돌 것인가를 놓고 쟁론하다가 결국 가위, 바위, 보로 정했다. 그녀가 보를 내서 이겼으므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시계바늘 반대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돌탑을 지나고 극락전 법당 안을 한 바퀴 돌고 나오자 릉소화가 툭툭 통꽃을 피우는 돌담길이 나타났다. 
 
“길이 너무 예쁜데요!” 
 
“당연. 꽃이 피여있잖아.” 
 
“절이 이렇게 별장처럼 생긴 것은 처음 봤어요.” 
 
“그러니까.” 
 
“이런 절을 만든 법정스님은 어떤 분이죠?”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속명은 박재철로 1932년 해남에서 태여났대. 고승 효봉문하에 들어갔다가 해인사에서 대교과를 졸업했다나. 70년대 후반에는 송광사 뒤산에 직접 불일암이란 암자를 짓고 살았는데 후날 《무소유》, 《오두막편지》, 《물소리 바람소리》, 《인도기행》… 등 저서를 펴내면서 명성을 날렸지.” 
 
“대단한 분이시네요.” 
 
돌담 옆 송월각(松月阁)을 지나니 진영각(真影阁), 법정스님이 기거하던 곳이 나타났다. 
 
각 왼편에 ‘스님의 유골을 모신 곳’이란 패말이 보이길래 나는 봉분 곁에 쭈그리고 앉은 다음 그녀에게 사진 한장을 부탁했다. 
 
“이 길상사가 예전에 대원각이였는데, 삼청각, 청운각과 더불어 당대 제일의 료정이였대. 즉 술과 음기를 팔던 곳이였지. 그런 곳이 지금 부처님을 모시는 절로 변신했다니 꽤 아이러니한 일이지.” 
 
“기생집이였다구요?”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런 셈이지. 련꽃은 본래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피는 법. 안 그런가?” 
 
“비유를 해도…” 
 
청솔모 한마리가 길을 건너오다가 우리가 어쩌지도 않았는데 제 멋에 화뜰 놀라 수백년은 족히 될 느티나무 우로 꼬리를 세우고 달아나고 있었다. 
 
“다람쥐야, 청솔모라고 부르는.” 
 
“아― 저게 그 말로만 듣던 그 청솔모군요.” 
 
“기억력이 나쁘지, 먹이를 숨긴 곳을 찾지 못하는.” 
 
“네에― 그런데 기생집이 절이 됐다는 게 잘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럴테지. 이 대원각을 만든 사람이 김영한이란 녀자인데, 후에 법정스님한테 십년 만에 억지로 기증했대. 당시 가격으로 1000억원 상당했다니 엄청난 거지. 자신이 만지던 2억원은 백석문학상 기금으로 내놓고.” 
 
“스님 처소입니다, 용무 이외의 출입은 삼가해주세요.” 란 패말을 지나니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나니 오직 분별하는 것을 꺼릴 뿐이라.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으면 툭 트여 명백하리라.”란 표말이 나왔다. 
 
맑은 물이 흐르고 이름 모를 새들이 우짖는, 아름드리 나무들로 숲을 이룬 이곳에 들어오면 누구나 시인이 안되곤 못배길 것 같았다. 
 
오다 보니 ‘시주 길상화 공덕비’인데까지 왔다. 
 
치치할이 또박또박 내리읽었다. 
 
“공덕주 길상화(吉祥华)보살. 본명 김영한(金荣韩)1916―1999. 김영한은 1916년 민족사의 암흑기에 태여나 16세의 나이로 뜻한바 있어 금하(琴下) 하규일문하에서 진향(真香)이란 이름을 받아 기생으로 입문하였다. 1937년 천재시인 백석으로부터 자야(子夜)라는 아명으로 불리였던 그녀는 1953년 중앙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생전에 《선가 하규일선생 약전》 등의 저술을 남겼다. 1955년 바위 사이 골짜기 맑은 물이 흐르는 성북동 배밭골을 사들여 대원각이란 한식당을 운영하던 그녀는 1987년 법정스님의 《무소유》을 읽고 감명받아,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고 7천 여 평의 대원각 터와 40여 동의 건물을 절로 만들어주기를 청하였다. 1997년 12월 14일 대원각이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창건되는 아름다운 법석에서 김영한은 법정스님으로부터 념주 한벌과 길상화라는 불명을 받았다. 불상화보살이 된 그녀는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헌 뒤뜰에 뿌려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1999년 11월 14일 육신의 옷을 벗었다. 다비 후 그녀의 유골은 49재를 지내고 첫눈이 온 도량을 순백으로 장엄하던 날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으며, 무주상보시의 귀한 뜻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2001년 11월 21일, 이 자리에 공덕비를 세웠다.” 
 
아래로는 백석(본명 백기행)이 1937년에 쓴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가 최초의 원문 그대로 적혀있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날인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이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烧酒)를 마신다
 
소주(烧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힌당나귀 타고
 
산곬로 가쟈 츨츨이 우는 깊은 
 
산곬로가 마가리에 살쟈
 
 
눈은 푹푹 날이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와 이야기한다
 
산곬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덜어워 벌이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날이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제서 힌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둘이 정말로 뜨거운 사랑을 했나 봐요? 사연이 있긴 있었네요.” 
 
그녀가 기념비를 어루쓸다 나를 돌아봤다. 눈시울이 약간 붉어져있었다. 
 
“그랬다지. 15살에 팔려 시집을 갔고, 우물가에서 빨래하던 사이에 남편이 우물에 빠져죽는 비운의 녀인이였다지. 고된 시집살이 끝에 기생의 길을 걸었지만 《삼천리》문학에 수필을 발표할 정도로 시와 글, 글씨,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다니 백석이 사랑할만도 했겠지. 인물도 한 인물 했겠지? 그런데 이 백석이 후날 만주로 도망가 같이 살자고 자야에게 제안했는데 그걸 거절한 게 자야의 가장 큰 실책이였대. 다시 영영 보지 못하게 되였으니 말야. 해방이 되였지만 38선이 그어진 거지. 생전에 그녀는 백석의 생일 7.1이면 하루동안 일체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을 정도였다니까 다 알아본 거 아닌가. 후에 기자가 물었더니 자야가 하는 말이 ‘천억이 그 사람의 시 한줄만도 못해, 다시 태여나면 나도 시를 쓸 거야’ 했다는 거야.” 
 
“애틋하면서도 안스럽고 비극적이기도 한 사랑…” 
 
“부러운가?” 
 
“부러울 게 없어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부럽겠어요. 참…” 
 
“난 부러워."
 
“그래서 예 오자 했나요?” 
 
그랬을 수도 있다. 사실 길상사를 보고 싶은 쪽은 나였으니까. 중국에 있을 땐 길상사에 석산(石蒜)이 피여있다 들었다. 헌데 정작 와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일본에서는 피안화라 한다던가. 
 
올 때는 혜화문까지 보고 가자 했었다. 그런데 길상사를 나오자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구 참말로. 전화도 빨리 받네. 아우님, 지금 대림으로 올 수 있겠노?” 
 
방정맞다는 것이 이런 것일가. 
 
마형이다. 이 사람이 한국에서 가히 마다발로 불린다. 그래서 내가 붙인 별명이 마당발이다. 한국에 온 지 20년도 더 될 것이다. 서울 어딘가에 빌라도 한채 갖고 있다고 한다. 
 
“빨라도 반시간은 걸릴 것 같은데?” 
 
“그럼 그래이소. 내 자리 잡아놓고 기다릴끼니.” 
 
전화를 끊고 치치할을 바라보니 그새 비가 뿌렸는지 앞머리가 촉촉히 젖어있다. 
 
이상하다. 녀자는 젖었을 때 이쁜 것이. 남자는 젖으면 꼴불견인데. 
 
 
3
 
 
“어서 오이소. 반가운 아우님!” 
 
마형은 오늘로 두번째 만남이다. 한국에 도착한 날 처음 만났다. 
 
“오래 기다렸수? 빨리 오느라고 하긴 했는데.” 
 
“아니, 나도 보신탕집을 찾느라 한참 헤매다 보니 방금 들어와 앉았다네. 한여름에 원기 회복하는데엔 개고기만한 것도 없다지. 안 그런가? 특히 연변사람들은 개고기를 좋아하지.” 
 
안도개장집이다. 건너편에는 훈춘꼬치집도 있다. 
 
“내사 당발형한테서 전화 오는 바람에 어떤 처자와의 데이트도 팽개치고 왔다는 게 아니겠소.” 
 
“아하, 내 그럼 오늘 보상을 톡톡히 해줘야겠구만. 분위기 깨뜨린 죄로 이따 노래방 가서 아가씨나 안아봄세.” 
 
이 사람에 대해 나는 그리 잘 알지 못한다. 위챗그룹에서 대충 안 사이이다. 이 사람이 억울함을 당하는 걸 내가 도와줬었다. 그 일이 감사해서 마당발은 한국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왔었다. 한국에 오면 자기부터 찾아달라고. 있는 힘껏 도와주겠노라고. 좀 뻥인 것 같이 들렸지만 한번 만나보고 이 사람이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고 호방하며 신용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아봤다.  
 
“근데 아우님은 어디 좋은데 가셨댔노?” 
 
“꽃을 보러, 삼각산자락에.” 
 
“아하, 이제 보니 풍류객이로세. 먼 꽃을 보았노? 볼 만한 꽃은 있더뇨?” 
 
“련화, 목백일홍 여러 꽃을 보았는데 릉소가 유난히 남네그려. 아마도 길상사 돌담에서 내 가슴에 떨어져 내렸나 보우. 락화암 삼천궁녀처럼 말이요.” 
 
“그래서 아우님 얼굴이 그렇게 붉어졌구만. 릉소를 껴안고 삼천궁녀가 가슴속에 퍼덕거릴 터이니. 하하하. 자, 그런 의미에서 한잔 쭉 냄세.” 
 
“릉소를 위하여!” 
 
“삼천궁녀를 위하여!” 
 
“그리고 《내 사랑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란 책을 출간한 기생을 위하여!” 
 
“별난 위하여가 다 있구만. 하하하. 위하여!” 
 
그날 마당발형은 나를 끌고 노래방으로 갔다. 무슨 새천년노래방인가 그랬다. 마형도 처음 가 보는 곳이라고 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가보는 노래방이다. 노래방을 언녕 졸업한 나지만 한국에서 조선족들이 어떻게 노는지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리 와 봐.” 
 
마형이 아가씨들을 옆으로 불렀다. 아래우로 훑어보고 궁둥이를 툭 쳐보더니 둘을 남기고 셋을 내보냈다. 말짱 조선족들이다. 
 
그중에 어리고 살찐 애를 마당발형은 옆에 앉혔다. 그리고는 대놓고 젖을 주물렀다. 
 
“오늘 물이 좋네. 너 오늘밤 날 수청 드는 거다. 알았노?” 
 
그리곤 내 곁에 앉은 아가씨를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잘못 섬기면 내 손에 죽는다, 알았지?” 
 
마당발답게 마형은 말발도 셌고 술도 무진장이였다. 녀자도 잘 다루었다. 그에 반해 나는 묵묵히 술만 마셨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였던가. 아가씨를 끌어안고 춤을 추던 마당발이 찰싹 소리나게 아가씨의 귀뺨을 후려치고 있었다. 마는 얼굴이 벌갰고 아가씨는 잔뜩 얼어있었다. 
 
“뭐야, 이 ××년이! 너 오늘 나한테 죽어봐라.”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단 아가씨가 마당발을 거스르는 말을 한 것만은 사실일 터였다. 그래서 저렇게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일 것이다. 
 
밖으로 아가씨를 마구 끌고 나가던 마당발이 내가 따라서자 말렸다. 
 
“아우님은 예서 그냥 즐기시게. 나는 잠간 나가 이 년을 가르치고 옴세. 걱정 말게, 사고를 치진 않을 테니.” 
 
그랬던 것인데 이 마당발이 반시간이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나가 봐도 없고 전화를 해봐도 받지를 않는다. 어디를 토낀게 분명했다. 
 
결국 나는 옆의 아가씨한테 량해를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이 분이 아무래도 도망 간 것 같은데… 끝내야겠어요.” 
 
아가씨가 엄벙뗑했다. 
 
“팁을 줘야죠! 그 분이 계산을 안하셨어요. 사장님이 대신 해주셔야 해요.” 
 
재수없다! 갑자기 사장님이 됐다. 
 
이게 뭔 꼴인가. 같이 왔던 놈은 계집을 차고 어디론가 빠지고. 가겠으면 계산이나 하고 갈게지. 미친놈! 
 
나는 어이가 없었다. 돈도 못 버는 놈이 노래방이라니. 그것도 팁이라니! 하마처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마당발 이 놈은 지금 그 아가씨를 안고 딩굴고 있을가. 
 
갑자기 나는 화가 나고 있었다. 
 
나는 왜 지금 대림동에 와 있는가. 이딴 노래방 계산이나 하고 팁이나 쥐여주려고 예까지 온 게 아니지 않는가. 
 
나에게도 인생이 있고 꿈도 있으며 누구보다 례절 밝은 아들도 있다. 비록 리혼은 했다지만. 
 
한국에 오기 전 나는 리혼을 단행했었다. 내가 마누라에게 빈대 붙어산다고 소문이 무성했다. 마누라가 한국에서 돈을 버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뒤에서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다 처리해야 하는 나의 고충을 리해해주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타인의 눈엔 나는 그저 놀고 먹는 날라리에 불과했다. 나의 한 친구는 청도에서부터 나를 찾아와선 이렇게 물었다. 넌 마누라가 불쌍하지도 않냐? 왜 불쌍하지 않겠냐, 나도 심장이 있고 감정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 때 내가 대답한 말이다. 때가 되면 자연 알게 될 것이다. 기다려라. 그리고 나는 때만 기다렸다. 그리고 몇년 뒤 나는 정말 돌싱이 되였고 땡전 한푼 없는 알거지가 되여 한국에 있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향하여 뭘 보여주고 싶었을가. 나의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가. 
 
모르겠다. 나는 점점 울분이 끓어올랐다. 
 
어떻게 거기를 나왔고, 어떻게 학원 근처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그 앞에서 나는 한 사내를 만났다. 내가 좀 많이 비틀거렸던 모양이였다는 것은, 내가 그만 그 사내를 부딪혔다는 뜻이다. 사내가 뒤를 돌아보며 뇌까리고 있었다. 
 
“중국새끼가 대낮부터 술 처먹고… 하튼 이곳은 조선족놈들이 문제이라니까.” 
 
“뭐야?” 
 
갑자기 나는 비분이 강개해졌다. 키가 꺽두룩한 놈이였다. 한국인인지는 정체를 알 바 없다. 
 
“중국새끼? 조선족이 왜?? 조선족은 한국에서 술 먹으면 안되냐? 조선족이 너보고 술 사 달라던? 내가 내 돈 내고 술 먹는데 니 놈이 웬 상관이야?!” 
 
“이 새끼가 뒈질려고 환장했나?” 
 
그러잖아도 속이 뜨거운 판에 나는 기어이 참지 못하고 주먹을 뻗어버렸다. 퍽퍽. 
 
사내가 얼굴을 뒤틀더니 손으로 만졌다. 그러더니 싸늘하게 입귀를 찢었다. 취한 주먹이라 세게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 경찰서로 갈래, 아니면 그냥 맞을래?” 
 
“경찰서…?!” 
 
다시 말하건대 ‘양평해장국’, 그러니까 학원 맞은켠은 동사무소도 있지만 영등포경찰서도 있다. 학원 다니면서 매일 건너다보게 되는 곳이다. 경찰 아저씨와 아재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싫도록 보아왔다. 
 
경찰서로 끌려가면 안된다. 끌려가면 나는 적어도 벌금을 해야 될 것이고 범죄기록이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칫 강제송출 될 수도 있다. 혹 아니더라도 얼마 후 비자 변경 때 경찰서 범죄기록 때문에 한국체류가 안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한국에 온 목적을 생각 아니할 수가 없게 되였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그냥 평범한 조선족이지 영화 《청년경찰》에서 말하는 그런 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내의 주먹이 가차없이 들어왔다. 대번에 피가 터지고 눈앞이 홱 돌아가면서 입과 코에서 피가 사정없이 뿜겨져 나왔다. 
 
두대 주고 여섯대 돌려받았다. 
 
그래, 잘한다. 실컷 쳐라. 참을성이 부족했던 내 잘못이다. 한국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나는 곱다라니 맞아주었다. 
 
나는 앞으로 허망 고꾸라졌다. ×××! 그리고,
 
“으윽―!” 
 
발목 인대에 심한 통증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사내가 쓰러진 내 발목을 힘껏 짓이겨놓았던 것이다… 
 
 
2
 
 
“아니 어쩌다가…?!” 
 
나를 본 치치할은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낮에 같이 길상사를 구경할 적만 해도 펀펀했던 사람이 저녁이 되자 다 깨져서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것도 형편없이. 
 
“층계에서 굴렀어.” 
 
“층계에서요?” 
 
“응. 아마 많이 취했나 봐… 소맥을 마셨더니…” 
 
“아닌 것 같은데요?” 
 
그녀가 의심의 눈초리로 내 얼굴을 훑었다. 
 
“어디서 되게 맞은 것 같은데요? 제대로 말해봐요. 맞은 거 맞죠?” 
 
왜 치치할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접질러진 발목 때문에 택시를 탔는데 어쩌다 보니 내 입에서 그녀가 사는 구로디지털단지로 가자는 말이 나왔다.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일가. 갑자기 나는 울고 싶어졌다. 
 
“응. 맞은 게 맞아.” 
 
“설마 노래방에서 아가씨를 건드리다 그런 건 아니죠?”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아니야, 절대로!” 
 
“믿어요. 아저씬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요. 그런데 너무 심하게 맞았네요. 어떤 개새끼가 아저씨를 이 정도로 팼죠?” 
 
치치할이 내 상처를 어루만지더니 발칵 화를 내고 있었다. 
 
“근데요, 아저씨. 내가 사는 곳이 녀자들만 사는 하숙집이라 아무래도 주인아줌마하고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예서 잠간만 기다려줄래요?” 
 
그러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쳤고, 뭐라고 한참을 설명을 하더니 나를 향해 돌아섰다. 
 
“겨우 허락을 받았어요. 옆사람들한테 방해가 안되게 조용히 있다가 가래요. 이번 한번만 봐준대요. 두번은 없대요.” 
 
“감사한 일이군. 고마워.” 
 
나는 그녀의 어깨를 빌리고는 절뚝절뚝 반지하방으로 들어갔다. 가면서도 그녀는 그냥 개새끼를 련발했다. 
 
방은 작았다. 침대 하나가 방 전체를 다 차지한 것 같았다. 그래도 집이라고 침대발치에 티비도 있었다. 
 
“35만원짜리가 이만하면 크죠 뭐.” 
 
나를 침대에 앉히더니 그녀가 볼에 물을 떠왔다. 
 
“우선 피 묻은 옷부터 벗으세요. 엄청 많이 흘렸네요. 앞으론 술 마시지 마요. 근데 그 개새끼는 왜 술 마신 사람을 이렇게 쳤담. 진짜 미친 새끼가 아닌감? 왜 싸웠는지 아직도 말 안해줄 건가요? 예까지 와서도?” 
 
물은 따뜻했다. 터진 자리가 심하게 부어올라있었다. 래일이면 아마도 보기에 더 흉측해질지도 모른다. 접질러진 발목은 병원에 안 가봐도 될 런지 모르겠다. 나의 느낌으로는 보름정도 지나면 절로 나을 것도 같지만. 
 
“그 개새끼가!” 
 
그녀가 눈을 새동그랗게 떴다. 화를 낼 때면 눈이 동그래지는 모양이였다. 
 
“중국조선족이 뭘 어쨌다고 그런대요? 조선족이 지들보고 밥 달래요, 물 달래요. 두대 친 건 잘했어요! 백번이고 천번이고 잘했어요!” 
 
나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자기 일처럼 흥분했다. 
 
“세배로 돌려받은 건 안됐지만?” 
 
“이 상황에 롱담이 나와요? 차라리 반주검 만들어놓을 거지 그랬어요. 그 개새끼를.” 
 
“풉― 그러면 끌려가는 것두?” 
 
“그걸 아는 분이 그리 행동해요? 이제부턴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요. 여긴 모국 먼저 엄연한 외국이란 말이예요. 모든 자존심 버리고 머리 숙이고 살아야죠.” 
 
“누가 그런 도리를 모르나. 아는데도 그랬어. 술기운에서였던지 아니면 영화《청년경찰》의 여파 때문이였던지, 암튼 나도 모르게 울분이 솟아올랐던 거야.” 
 
“그럴 수도 있어요. 그게 조선족이라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이 아니겠어요? 잘못했다는 게 아니예요. 잘했어요.” 
 
“얻어맞은 거 빼고.” 
 
“그쵸. 근데요, 얻어터지고 왜 날 찾아왔죠?” 
 
그녀가 마른 수건으로 내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더니 내 입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내가 잠시 얼버무렸다. 
 
“몰라. 나도 모르겠어. 맞고 나서 택시를 타니까 이상하게 치치할 너가 떠오르더라구.” 
 
“위로를 받고 싶었나요?” 
 
“글쎄… 아마도.” 
 
“칫. 그런게 어딧어요.” 
 
그녀가 피 묻은 옷들을 볼에 주어담으며 입귀를 풀럭였다. 하얀 귀밑이 귀여웠다. 
 
“동병상련?” 
 
“동병상련이요?” 
 
내가 말했다. 
 
“나는 한국에 온 조선족들이 다 같은 아픔을 안고 있다고 생각해. 서로 다른 삶을 살았고, 서로 다른 사연으로, 서로 다른 길을 통해서 왔겠지만 모여든 곳은 하나, 한국이란 나라라는 거야. 와서는 또 각각 다른 삶을 살며 각각의 이야기를 꾸며가겠지만은.” 
 
“다리 부러진 노루 한곳에 모였다?” 
 
“다리야 내가 부러졌지 넌 아니잖아. 흐흐.” 
 
“아저씨도 다리 아니고 발목이잖아요. 호호.” 
 
“만남이란 것도 그렇다고 생각해.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 서로 정을 나누고 또 헤여지고… 마치 우리가 학원이 끝나면 각자 제 갈 길을 가야 하듯이. 한국이란 나라에 와서 잠간 부닥쳤을 뿐.” 
 
“스치는 바람이라는 뜻요?” 
 
“서로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개입도 안하는, 이게 한국이라는 거야. 지금 우리가 그렇잖아. 너가 과거에 뭘했고, 시집은 갔는지, 갔으면 애는 있는지, 안 갔으면 왜 안 갔는지 아는 바 전혀 없잖아.” 
 
“그래서 알고 싶어요?” 
 
“아니.” 
 
그녀의 눈가에 물기 비슷한 게 매달리는 걸 바라보며 내가 머리를 저었다. 
 
“누군들 아픔이 없겠으며 누군들 꿈이 없을가.” 
 
“그래요. 다들 그렇게 어디선가 오고, 어디선가 만났다가, 어디론가 가겠죠.” 
 
“길은 사면팔방 어디든 뚫려있지.” 
 
밤이 깊어가고 있다.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더니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아저씨 잠자리는 어떻게 하실려구요?” 
 
“괜찮다면 여기서 자고 싶은데? 너가 침대에서 자. 내가 바닥에서 잘게.” 
 
“근데 자리가 영… 바닥이 너무 비좁아서 되겠나요?” 
 
“나 잠버릇이 얌점하거든. 재워만 주기만 하면 돼.” 
 
“그래요, 그럼. 간대루사 무슨 일이 생기겠나요…” 
 
“이빨 빠진 호랑이라네. 아가씨. 흐흐.” 
 
“이빨이 빠졌는지 어쨌는지 물려봤어야 알죠.” 
 
그녀가 자신의 옷들을 둘둘 말아서 베개를 만들어주었다. 이불은 그냥 배꼽이나 가릴 수 있게 코트 하나만 가졌다. 엷은 이불은 그녀가 덮고 옹크렸다. 
 
“잘 자― 치치할.” 
 
“네에. 잘 자요― 아저씨두요.” 
 
인사까지 마쳤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연길에서 연태로, 연태에서 청도로, 청도에서 인천으로 오던 과정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술이면 얼마나 마셨던가. 
 
한숨 비슷한 탄식소리가 들렸다. 치치할도 잠 못 이루기는 나와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녀에게도 장편 한권 분량의 사연은 있으리라. 
 
“마당발 그 새끼도 개새끼네. 남 혜화문도 못 보게 하구… 아저씨, 랠 전화해서 노래방값이랑 팁준거랑 다 받아내요.” 
 
맑고 푸른 습기 찬 바람이 그녀가 누운 침대로부터 내 입술우에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묵은 덤불을 뚫고 민들레 새잎 냄새가 났다. 
 
“아저씨, 거기가 불편하면 여 올라와 자요.” 
 
“엥?” 
 
나는 사뭇 내 귀를 의심했다. 
 
“인생이 얼마라고 그렇게 불편하고 힘들게 살겠나요. 여기도 살려고 온 거 아닌가요?” 
 
나는 그녀가 나하고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하고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런 걸 가리켜 사람말이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기신기신 그녀의 곁에 누웠다. 그녀가 살짝 몸을 떨었다. 
 
“갑자기 왜 생각을 고쳐먹었지?” 
 
“동병상련이라면서요?” 
 
헉! 
 
그래.
 
동병상련이지…
 
“많이 아파요?” 
 
달빛이 푸르렀다. 
 
그녀가 봉긋이 솟아오른 가슴에 내 얻어터진 얼굴을 깊게깊게 감싸 안아주고 있었다. 
 
“개새끼, 얼마나 세게 때렸으면…” 
 
 
1
 
 
아침해가 밝았다. 
 
그녀는 아침이면 빵과 우유를 먹는 듯했다. 
 
“근데요?” 
 
“응.” 
 
“학원에 가서 우리 집에서 같이 잤다는 말을 하기 없기요.” 
 
“우리 집?” 
 
“아니, 나의 집.” 
 
“둘이 같이 잤나?” 
 
“안 잤죠.”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하나?” 
 
“그냥요. 해본 소리요.” 
 
8시 반이 되자 우리는 집을 나섰다. 9시부터 수업이니까 9시 전에 도착해서 손가락 도장을 찍어야 했던 것이다. 컴퓨터에 지문이 입력이 안되면 결석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택시 탈까요?” 
 
치치할이 내 발목을 걱정했다. 아침에 되니 어제보다 더 검푸르게 부어올라 있었던 발목이다. 
 
“괜찮아. 걸을 만해. 지하철로 가.” 
 
“역시 우리 아저씨네. 멋있어요!” 
 
그녀가 내 팔을 잡아주었다. 
 
10번 출구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서 좋았다. 12번 출구에랑은 없었다.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나는 담배 한대 피웠다. 
 
“월요일이네요.” 
 
“일주일의 시작.” 
 
“또 한주 열심히 살아야겠네요.” 
 
“그래야겠지.” 
 
출구에서 나와서 앞으로 백메터 가량은 채소과일장사군들로 걸어다니기 불편했다. 어깨와 어깨가 자주 부딪쳤다. 그곳을 지나면 그 때부터 큰길이다. 
 
“근데요.” 
 
“응.” 
 
“그 발목, 병원에 안 가봐도 되겠어요?” 
 
“될 것 같은데?” 
 
“경험이 있나 보네요.” 
 
그 때였다. 맞은켠으로부터 어떤 두사람이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게 보인 것은. 
 
“어이, 아저씨. 아저씨!” 
 
한 사람은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카메라를 안 든 사람이 나를 보고 소리쳤다. 
 
“아저씨, 이리 와 봐요.” 
 
나는 어정쩡하니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그 사람이 가로수에 붙은 패쪽을 가리켰다. 
 
“저게 안 보여요? 여기 금연거리예요.” 
 
“앗!” 
 
과연 거기엔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 10만원이란 문구가 적혀있었다. 
 
“아저씨가 딛고 선 발밑에도 있잖아요. 금연거리라고 쓴.” 
 
놀라기는 치치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제도 그제도 이 거리에서 담배를 피웠었던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정말 이 거리가 금연거리라는 걸 몰랐다. 그리고 패쪽도 보지 못했다. 알았더라면 피우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이 거리에서만큼은. 
 
“신분증 꺼내봐요.” 
 
“없는데요. 제가 려행 중이라…” 
 
“교포인가?” 
 
“그렇습니다.” 
 
“그럼 려권을 꺼내봐요.” 
 
나는 려권을 꺼내려고 가방을 뒤적였다. 그 때 치치할이 나를 뒤로 슬며시 잡아당겼다. 
 
“벌금해야겠네요. 카드를 주세요.” 
 
“카드가 어데 있어요? 우린 지금 려행 중이라구요.” 
 
치치할이 대신 나섰다. 
 
“아저씨, 우리가 처음 한국에 오다보니 몰라 그랬어요. 한번만 봐주세요. 안되겠어요? 네?” 
 
“안됩니다. 벌금해야 합니다. 카메라에 다 찍혔다구요.” 
 
“현금밖에 없는데…” 
 
내가 떨떠름하게 말했고, 단속반아저씨가 받았다. 
 
“현금은 우리가 못 받아요. 우린 그냥 벌금딱지만 뗄 수 있어요. 벌금딱지를 떼주면 아저씬 이삼일 내에 은행에 가서 물면 돼요.” 
 
그러면서 그는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려권을 달라는 뜻이다. 
 
려권을 줘도 괜찮을가? 내가 주춤주춤하는데 갑자기 치치할이 나를 확 잡아채더니 옆골목으로 빠졌다. 
 
“뛰여욧!” 
 
나도 반사적으로 따라 뛰였다. 부은 발목이 몹시 아팠지만 그런 거 따윈 이미 구중천이 날아가버렸다. 
 
“게 서요! 아저씨, 게 서요!!” 
 
뒤에서 쫓아오는 듯한 다급한 소리,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뛰였다. 
 
“아저씨, 처음이니까 봐줍니다? 앞으론 이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지 마세요. 좋은 려행 되세요―” 
 
그제사 우리는 멈춰섰다. 
 
살았다!
 
숨을 헐떡이며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서로를 가리키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호호호!” 
 
갑자기 그녀가 홱 몸을 돌리더니 또 달렸다. 
 
“야, 게 서. 야, 치치할!” 
 
그러면서 나도 그녀 뒤를 겅중겅중 뛰였다. 
 
나는 발목이 아픈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출처:<<도라지>>2018년 제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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