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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봄(외9수)-변창렬
2019년 07월 15일 10시 14분
조회:526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변창렬
봄(외9수)
풀냄새 밟고 싶지 않다
곧 태여날
야릇한 착각이
꽃봉오리로 숨어있을 것 같다
우아한 풀잎으로
여미고 있는 속살
코끝에서 끓고 있는
그런 맛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숨결
밤상
오른손에는 고추
왼손에는 가지
오른발에는 상추
왼발에는 오이
터밭의 고랑마다
차곡차곡 채우신 밥상
무드른 호미는
숟가락이요
반들한 곡괭이는
저가락이라
삼시세끼 때마다
휘여진 엄마 등허리에
차려놓은 밥상
눈물어린 국물이여
말뚝
매여진 고삐
풀도 같이 뜯고
밭도 같이 갈고
새끼도 같이 키우는
새김질도 함께 해야 정든다고
한 고삐에 묶어놓았다
옷고름과 신발끈으로
세상만사 한 매듭으로 조여진
말뚝
한생을 코꿰여도 즐거운
소
립동
첫눈은 왔어도
살얼음만은 허리가 약해
설익은 겨울이 다가온다
들에는 발가벗은 허수아비만
먼발치의 과부를 찾고 있다
이 날이 되면 팔짱 끼고
논두렁 둘러보며
속구구 해보는 재미에
허리가 펴지는 순간이다
따뜻한 온돌방에서
꼬부라진 마누라 안고
실컷 뒹굴고 싶은 꿈도
차분히 꾸고 싶겠지
아무튼
해방된 노예니까
꽁꽁 얼어도 좋을시구
비
오는 소리에
한생을 걸었다
참고 참던 설음을
터치는 순간
번개로 후려치고 싶지만
포근한 가랑비로
촉촉히 적셔주는 그 맘씨
부뚜막 구석에 숨겨 둔
누룽지 맛으로
살풋이 녹아내리는 기분
부드러운 숨결로
거친 숨결 보듬을 적에
나의 피는
소나기로 쏟아진다
비가 오면
엄마 생각 난다고 하신 어머님 말씀
차분한 가랑비로 다가온다
말복
고린내가 짜증 쓰는 순간이다
짜증이 땀나서 허덕이는 순간이다
풀들도 나른해져
멋대로 주저앉는 대낮
병아리 강아지들
눈치 무디게 낮잠 잔다만
보신탕 후후 불며
흘리는 땀에도 고린내 난다
저 멀리 산아래
나무잎들이 드문드문 누렇게
짜증스런 고린내 말리고 있다
추분
백로의 등과
한로의 가슴 사이에서
오르가즘 하는 일교차
새벽마다 헤죽 웃던 나팔꽃
한낮이면 눈 감고 한쉼 돌리는
짓뭉게 지도록 차가운
일교차를 끄당긴다
저 멀리 풀기 죽은 나무들
푸른 저고리 슬슬 벗고
누르스름한 속곳이 보여주니
빨간 몸살이 눈에 띄인다
산도 들의 허기증에 취해
스스로 말라드는 먼 길
찬서리는
오늘인가 래일인가 한다
나도 더위의 어지름증 털어버리고
설익은 열매로 꿈틀거리고 싶은 설레임
이슬방울에 어리광치고 싶다
잎
나무잎 돋을 때가
내가 젖을 빨 때일 것이다
잎은 가지에 매달려 재롱 부리고
내가 엄마 젖꼭지 빨며
고집부릴 때는 같은 시간이였다
잎들은 모여서 함께 흔들어도
나는 혼자
엄마 젖꼭지 독차지 한 놈이라
잎은 밝은 빛으로 웃어주지만
개구쟁이 난
젖맛이 쓰겁다고 때질 쓴 자식
잎은 떨어져도 뿌리 찾건만
난 혼자 달아나 구석에 숨었다
잎은 해빛을 빌어
뿌리에 갚음의 옷 입혀주지만
난 불쌍한 엄마 등어리에
잔주름만 새겨 둔 놈
때가 되여
소리 없이 사라질 때
바람은 피줄을 알고 아끼지 않는다
타고난 흔적은 빛을 돋는다
엄마 등어리에는
잎과 같은 주름살이
가냘프게 숨쉬고 있었다
출처:<<도라지>> 2017년 제2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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