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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마이
나는 어려서 부터 외삼촌댁을 아즈마이라 불렀다
아즈마이는 73세,나는 47세인 지금도 그리 부르고 있다.
아즈마이와 나는 줄곧
서로 “이랬소. 저랬소.” 시골 존칭을 써 오고 있다.
내가 코흘리개이던 때에도 아즈마이는 나더러 “이래라,저래라” 낮게 부른적 없고
언녕 할머니를 넘기신 아즈마이지만 나는 “이랬습니다,저랬습니다” 일부러 높이 부른적 없다.
나는 우리 엄마처럼 아즈마이를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며 따랐고
아즈마이는 나를 친자식처럼 사랑하고 챙겨 주셨다.
나는 엄마 생전에 엄마 계시는 큰형님 집에 스스럼 없이 드나들듯이
외삼촌과 아즈마이집에 스스럼 없이 드나 들었다.
엄마와 같이 점심 먹고 곁에서 잠 자다 출근했듯이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는
아즈마이이 한테 가서 외사촌 누이와 동생들과 함께
점심 먹고 자다 출근하군 했다.
종래로 "아즈마이 나 오늘 점심 먹으러 가니 밥 많이 해 놓소."하고
미리 말한적 없고 일 땜에 못 가도 못간다고 미리 말하는 법이 없었다.
비단 나 뿐이 아니라 나의 형님,누나들도 불쑥불쑥
아즈마이 점심상을 습격해도 언제 한번
밥이 부족하는 때가 없었다.
나는 아즈마이께서 거짓 일은 물론,거짓 말 한번 하는 걸 본적이 없다.
아즈마이께서는 언제나 남편과 자식과 남을 먼저 생각하셨다.
항상 베풀고 다른사람과 주위를 위하여 일하시면서도
표정은 늘 경건하셨다.
자신이 주는 것을 받으면 행복해 하셨고
자신이 받는 것을,아무리 응당한 것일지라도 몸둘바를 몰라하시며 미안해 하셨다.
다른 사람이 해도 될 일을 자신이 먼저 하시고는 행복해 하셨고
남이 자기를 도와 일하면 말리고 또 말리셨다.
아즈마이께서는 누구를 욕하시는 일이 없었고
자신의 집에 오는 사람은 누구든 한결 같이 따뜻이 맞아 들이시고
성심성의로 식사와 잠자리를 챙겨 주셨다.
그러시던 아즈마이께서 유난히 춥던 지난 12월30일 오전
5층 집부터 1층까지 평소와 같이 홀로
계단을 물청소하시고 쓰러지셨다.
2011년 1월1일 73세 생일을 이틀 앞두고 쓰러지시어 경각을 다투고 계시다.
나에게는
엄마와 같고
부처님 같으신 아즈마이께서 아직도 의식을 잃으시고 병원에 누워 계시다.
부디 글 읽는 모든 이들이 우리 아즈마이의 쾌유를 기도해 주시기를….
2011년1월1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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