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권위 시전문지 <시와 사상>(2021. 12호)은 전문코너 <손을 잡자 세계의 시인들이여>에 <윤동주의 고향 “연변”에서 활약하고 있는 시인들>이라는 테마로 중국조선족 한영남시인의 특별기고 <동주가 못다 센 별을 이어서 세며>라는 글을 실었다. 이는 일본의 시전문지라는 플랫폼을 통해 중국조선족시인들이 세상에 명함장을 내미는 또 하나의 계기로 된다. 이에 본지는 한영남시인의 원문을 그대로 전재해 세계의 시인들과 호흡을 같이하고자 한다. <동북아신문 편집자 주>
계절(季節)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하략)
무려 80년 전에 이렇게 읊었던 시인이 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시인 윤동주(尹东柱)님이시다.
내가 윤동주라는 이름을 맨 처음 접한 것은 지난 세기 80년대 말이였다. 나의 시 계몽스승이신 림금산(林锦山 전 중국조선족소년보사 문예부 주임) 시인께서 내가 교편을 잡고 있던 안도현제6중학교에 찾아오셨을 때였다. 나는 오랜만에 스승을 만난 기쁨에 내가 그동안 써두었던 엉성한 시노트를 꺼내놓고 선생님께 검사해주십사 청을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한벌 훑어보고 부족점들을 일일이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그때 선생님께서는 나의 시노트에 윤동주시인의 <서시>를 직접 외워서 베껴주시는 것이였다. 나는 윤동주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동안 시공부를 하면서 처음 접한 시인이였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연변이 낳은 위대한 시인 윤동주에 대해 자상히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그때 처음 일본의 오무라 마스오교수님의 존함을 들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우리는 우리 땅에서 태여난 위대한 시인을 그때까지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오무라 마스오교수님은 1933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하셨고 1957년 와세다대학교 제1정치경제학부를 졸업, 도쿄도립대학 인문과학연구과 석사 박사 학위를 따낸 지성적인 학자이시다. 1964년 와세다대학 전임강사로 임용, 1966년부터 1978년까지 동대학 법학부에서 중국어 담당, 1967년 조교수, 1972년 교수로 승진하셨다. 그리고 1972년 어학교육연구소로 근무지를 옮겨 2004년까지 조선어 담당, 1985년 와세다대학 재외연구원으로 1년간 중국 연변대학에서 류학하며 조선족문학을 연구하셨고 1992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 고려대학교 교환연구원으로 한국에 체류하셨다.
지금까지 『사랑하는 대륙이여-시인 김용제 연구』, 『시로 배우는 조선의 마음』,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윤동주와 한국문학』, 『중국조선족문학의역사와 전개』 등 저서를 펴내셨고 『한일문학의 관련 양상』, 『조선단편소설선』(상·하), 『한국단편소설선』, 『시카코 복만이-중국조선족단편소설선』, 『인간문제』 등 수많은 번역서도 펴내신 량심적인 학자이시다.
1984년 당시 한국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이며 동시작가인 윤일주(윤동주시인의 동생)선생께서 학술회의차 도쿄에 갔을 때 오무라교수는 윤일주선생을 만나 윤동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윤동주를 더 깊이 연구하고 력사의 뒤안길에 묻혀있는 윤동주의 진실된 모습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오무라교수는 중국행을 결심한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낸 윤동주묘소와 윤동주가 생전에 다녔던 룡정중학교의 자료실을 뒤져 찾아낸 윤동주 관련 소중한 자료들, 그것들은 실로 력사속에 잠들고 있던 윤동주의 본 모습을 환원해내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되였다.
드디어 중국조선족들은 자기 땅에서 살아숨쉬며 불멸의 명시편들을 쏟아냈던 윤동주시인을 알게 되였고 그런 시인을 동족으로 둔 커다란 자긍심을 갖게 되였다.
오무라교수는 그때 도움을 주셨던 정판룡교수(郑判龙 전 연변대학 부총장), 권철교수(权哲 전 연변대학 교수), 리해산교수(李海山 전 연변대학 교수), 김학철작가(金学铁 조선족 저명한 작가) 등 많은 분들이 그때 오무라교수의 연변에서의 활동을 응원했다고 한다.
또한 김호웅교수(金虎雄 연변대학 교수), 정세봉작가(郑世峰), 남영전시인(南永前 전 장백산 잡지사 주필), 장정일평론가(张正一), 최삼룡평론가(崔三龙) 등 조선족 지성인들과 오무라교수는 지금도 끈끈한 우정과 문화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조선족시인을 말할 때 윤동주와 같이 거론되는 시인이 또 한분 계신다. 바로 심련수(沈连洙)시인이다. 심련수시인 역시 1945년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세상뜬 조선족시인이다. 오무라교수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심련수시인의 다른 사료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심호수(심련수의 동생)선생을 수차 찾아 설득해 장장 반세기 넘게 보관되여온 심련수(1918년 출생. 룡정에서 고중까지 마치고 1941년 일본대학 창작과에 입학해 고학생활. 1943년 강제징병을 피해 지바현에 있다가 라진항을 거쳐 귀국한 다음 흑룡강성에서 교사로 근무. 1945년 집으로 돌아오던 중 왕청현 춘양진에서 피살)의 친필노트, 그의 일기장 등 귀중한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심련수의 본 모습을 세상에 알리는데 오무라교수는 마멸할 수 없는 큰 기여를 하셨다.
여기서 잠간 심련수시인이 쓴 시 <人類의 노래>를 보기로 하자.
쉴새없이 밀려치는 사나운 물결
陸地의 테두리를 깨물어뜯듯
마지막 發惡을 그대여 보는가
北極의 冰原에서 白熊이 울고
極光이 輝煌하는 雪原에서
北으로 北으로 避難가는 에스키모를
누구의 힘으로 挽留할소냐
얼 부푸는 地軸에서 용가름 트는 소리
地魂이 빠질듯 震動하고
식어드는 兩極에서 찬바람이 일어
微溫이 殘存을 삼키려 함을
그대여 참으로 알고 있는가
그대여 最後의 勝利가 勝利라면
勝利를 못 가질 것 그 무엇이냐
地熱이 식으면 달굴 수 있고
地軸과 軌道가 破盃되면 발굴 수 있으리니
地球星이 宇宙間에 있을 때까지는
우리의 心熱을 輪熱할 수 있고
人類의 歷史를 살릴 수 있을게다
(1941년 12월 3일 <만선일보> 게재)
이처럼 오무라교수는 세상에서 많이 소외되고 있는 중국조선족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평생의 심혈을 몰부으신 이 시대의 참된 지성이요 진정한 량심이시다.
윤동주, 심련수와 동시대를 살다갔던 이 땅의 시인들은 서정의 바다에서 삶의 진리를 찾아 힘찬 날개짓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김택영(金泽荣 1850-1927), 신채호(申采浩 1880-1936), 리욱(李旭 1907-1984), 류치환(柳致环 1908-1967), 김조규(金朝奎 1914-1990), 함형수(咸亨洙 1914-1946) 등은 <만선일보>에 자주 얼굴을 내밀던 쟁쟁한 시인들이다.
또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후 문단에서 활약했던 김철(金哲 1932년 일본 시모노세끼 출생. 장편서사시 <동틀무렵>, <새별전> 등 60여부의 시집 출간), 김성휘(金成辉 1933-1990. 장편서사시 <장백산아 이야기하라>, <사랑이여 너는 무엇이길래>, 시집 <나리꽃 피였네>, <들국화>, <금잔디>, <김성휘시선집 등 다수), 리삼월(李三月 1933-2009. 시집 <황금가을>, <두 사람의 풍경>, <봄날의 증명> 등 다수), 리상각(李相珏 1936-2018. 장편서사시 <만무과원 설레인다>, 시집 <샘물이 흐른다>, <리상각시선집> 등 다수), 김응준(金应俊 1934-2020. 시집 <별찌>, <남자와 녀자와 사랑과 시>, <김응준시선집> 등 다수), 조룡남(赵龙男 1935-2016. 시집 <그 언덕에 묻고온 이름>, <그리며 사는 마음>, <사람아 사람아> 등 다수), 한춘(韩春 1943-2013. 시집 <무지개는 뿌리내릴 곳을 찾는다>, <높은 가지끝에 달린 까치둥지>, 평론집 <현대시의 곤혹과 선택> 등 다수), 남영전(南永前1948년. 시집 <백학>, <원융>, <남영전시선집> 등 다수), 최룡관(崔龙官 1944년. 시집 <최룡관시선집>, <최룡관문선(전4권) 등 다수) 등이 있다.
그리고 현재 문단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는 중견시인들로는 김학천(金学泉 1953년생. 시집 <꿈 많은 봇나무숲>, <어느 날과 어떤 때의 어떤 느낌> 등 다수), 전경업(全京业) 1959년생. 시집 <2017>, <경업의 시> 등 다수), 석화(石华 1958년생. <세월의 귀>, <나의 고백>, <연변> 등 다수), 리임원(李任远 1958년생. 시집 <사랑 그리고 바보들의 이야기>, <작은 시 한수로 사랑한다는 것은> 등 다수), 김영건(金荣健 1963년생. 국가1급 PD. 중국조선족시가절 총기획. 시집 <빈자리로 남은 리유>, <아침산이 내게 와서 안부를 전하다>, <류신동산새는 겨울산에서 운다> 등 다수), 김창희(金昌熙 1964년생. 시집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리유> 등 다수), 김춘산(金春山 1962년생. 국가1급 PD), 한영남(韩永男 1967년생. 시집 <굳이 네가 불러주지 않아도 수선화는 꽃으로 아름답다>, 소설집 <섬둘레 가는 길> 등 다수), 김창영(金昌永 1967년생. 시집 <서탑>, <산처럼 물처럼> 등 다수), 조광명(赵光明 1967년생. 시집 <좌선 어느 30대의 아침> 등 다수) 등이 있다.
오무라교수께서 연변에 윤동주연구붐을 일으켜줌에 따라 연변의 시인들도 점차 연변밖의 시세계에 눈길을 돌리게 되였고 전통 사실주의(写实主义)시만 고집하던 과거를 청산하고 모더니즘(现代主义), 포스트모더니즘(后现代主义), 립체시 등 다양한 시가혁명을 일으키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6년에 발족된 연변작가협회는 중국작가협회 소속으로 현재 15개 창작위원회를 두고 있다. 그중 시분과 회원은 200명을 웃돌고 중국작가협회 회원만 해도 수십명에 달한다. 연변작가협회는 기관지 <연변문학>(조선문), <천지소소설>(중문)을 두고 있으며 연변민족문학원을 두고 정기적으로 문학지망생들을 양성해내고 있다.
연변작가협회 회원으로 미국, 일본, 한국 등 여러 나라들에 이민했거나 체류하고 있는 문인들도 적지 않다. 례하면 남철심(南铁心 1968년생), 김화숙(金花淑 1963년생, 시집 <아름다운 착각>,<빛이 오는 방식> 등), 류춘옥(柳春玉 1978년생. 일본시인클럽 회원. 일명 도쿄시 전문시인) 등 시인들이 시창작에 전념하면서 훌륭한 시편들을 쏟아내고 있어 무척 고무적이다.
예로부터 동양3국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동방에 나란히 이웃하고 있는 이 3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이며 형제의 나라이다. 또한 3국 모두가 한자권이고 동방례의지국으로 일컬어오면서 서로 닮고 서로 경쟁하며 살아왔다. 그런만큼 지구가 촌으로 불리우리만치 글로벌한 21세기에 이 동양3국의 문학교류를 활성화해 문화교류를 증진하고 나아가 3국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것은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오늘 날 코로나사태로 세계경제가 휘청이고 있지만 동양3국에는 2개의 발달국이 있고 2개의 최강경제대국이 있기에 상호협력한다면 얼마든지 세계의 선두를 내달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3국의 문학교류는 자못 의의가 있다고 본다.
80년전에 우리의 시인 윤동주는 자신의 시 <별 헤는 밤>에서 나라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그 정다운 사람들의 정다운 이름들을 불러보았다. 이제 우리는 윤동주가 못다 센 그 별들을 이어서 계속 세면서 세상에 평화와 자유가 깃들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윤동주가 그리던 아름다운 세상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시가 살아있는 한!
시인이 살아있는 한!!
별 헤는 밤
윤동주
(상략)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였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여나듯
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2021년 7월 중국 할빈 저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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