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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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선족의 문화공동체
2012년 10월 07일 10시 26분  조회:9074  추천:6  작성자: 황유복

中國 朝鮮族의 文化共同體

황유복/ 중국 중앙민족대학교수

  

문화는 집단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된 것이다. 그런데 그 "집단구성원"을 중국의 조선족으로 설정했을 때 우리는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조선족문화의 존재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 보통 조선족문화라 할 때 그것은 조선족공동체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된 문화를 가리킨다. 때문에 조선족문화의 정체성(identity)을 담론하려면 우선 조선족의 민족정체성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난 세기 80년대부터 시작된 문화의 르네상스시대는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사회발전과 인류 진보를 위한 새로운 문화중심의 패러다임으로 형성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학계는 조선족 사회나 문화를 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에 아직 조선족의 민족정체성, 조선족문화의 정체성, 민족문화의 가치와 기능 등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논쟁에서 해어나지 못하고 있다.

 

1.“조선족”은 누구인가

 

“조선족”이란 호칭을 “조선민족”의 약칭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으나 정확히 말한다면 “조선족”이란 중국국적 을 가진 조선민족에 대한 전문호칭, 즉 국적과 민족출신을 동시에 표시한 호칭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으로서 네이션(nation)은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경계와 역사적, 문화적, 혈연적 공동체를 지칭하는 근대적 영토 국가의 출현과 더불어 등장한 개념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사용하는 "민족"이란 용어의 개념은 복합적인 개념으로서 “국민+민족”이다. “한족”은 중국 국민으로서의 “漢민족”이고 “몽골족” 은 중국 국민으로서의 “몽골민족”이며 “조선족” 역시 중국 국민으로서의 “조선민족”이다.

미국에서는 미국국적을 취득한 한국인들을 “한국계미국인”이라고 한다. 한국계미국인이라는 호칭을 코메리칸(komeric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왜 미국에서는 “한국계미국인” 혹은 “코메리칸”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조선족”으로 호칭하는가? 건국 역사가 200여년밖에 안 되는 미국은 총인구의 1%를 차지하는 인디언원주민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세계 각국에서 온 외래 이민이거나 이민의 후예들이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민족이란 계념보다는 어느 나라에서 이민 왔나 로서 국민들을 분류한다. 1929년에는 출신국적법(National Origins Act)을 제정하여 국가별로 이민 수자를 할당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아일랜드계미국인, 프랑스계미국인, 중국계미국인 등으로 호칭한다. 한국인들의 미국이민은 1965년 새 이민법이 시행되면서 대규모로 진행되기 때문에 미국국적을 취득한 후 미국의 관례대로 한국계미국인으로 호칭된다.

그러나 중국은 수 천 년 역사를 가진 나라이고 고대로부터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민족학자들의 노력으로 민족 식별작업을 거쳐 56개 민족(nation)으로 국민을 분류하게 되었다. 150여년의 이민 역사를 가진 조선민족도 1945년 이 후 중국에서 토지와 참정권을 부여받으면서 중국의 소수민족 일원으로 인정되고 한족, 만족 등 민족과 동등한 위치에서 조선족으로 호칭되게 된다.

사실, “한국계미국인”은 한국에서 이민 온 미국인이라는 뜻에서 “미국인”이라는 국적이 강조되었다면 “조선족”이라는 호칭에서는 중국국적을 가진 조선민족이라는 뜻에서 민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한국계미국인”이라는 호칭에 반발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지만 “조선족”이라는 호칭에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우리 민족공동체(ethnic group)는 영토의 분단, 민족의 분단과 함께 민족 명칭의 분단이라는 아픔도 함께 겪게 된다. 조선반도의 북과 남에서 각각 “조선” 과 “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게 되면서 하나의 민족공동체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호칭되게 되었다. 동방과 서방의 이념대립이 살벌해지면서 민족 명칭의 갈등도 심각해졌다. 오늘까지도 인터넷사이트에서 “조선족”이라는 이름을 놓고 한국네티즌들과 조선족네티즌사이에 쟁론을 하고 있는 양상을 보면 냉전시대의 유물이 쉽게 해소될 수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조선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중의 일원이다. 그러나 조선족은 조선에서 이민해 온 민족 집단이기 때문에 그들의 민족정체성에 대한 이해는 혼란을 불러올 소지가 있었다. 현재의 조선족공동체 구성원들 중에서 소수의 17세기 고대 이민의 후대 (河北省 靑龍縣과 요녕성에 산재해 있는 박씨 후대들)들을 계산하지 않더라도 조선족의 이주 역사는 150여년이 된다. 그러나 중국 소수민족의 일원으로서 조선족 공동체의 형성은 1949년 9월,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 개최로부터 1952년 9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성립까지로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조선민족을 중국 소수민족으로 인정한 최초의 문헌은 1928년 7월 9일 중국공산당 제6차 전국 대표대회에서 통과된 《민족문제에 관한 결의문》이다. 그 후에 작성된 중국공산당의 중요한 문헌자료에서 시종일관하게 중국 조선 민족을 중국소수민족으로 인정하였다. 다만 민족 명칭을 “고려인”, “한국인”, “조선인” 등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은 특이하다.

그런데 그 시기 조선민족 이민들이 집중 거주하던 동북지역은 中華民國政府에 귀속되는 東北軍閥政權의 유효 행정 지배하에 있었고 그들 행정부가 조선민족 이민을 중국 소수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인들은 사실상 외국거류민 으로 취급되었다. 1945년 항일전쟁승리 후의 몇 년 사이에 거의 절반에 가까운 조선민족 이민들이 자의에 의해 광복된 조국으로 돌아갔다. 귀국하는 사람들과 남아있을 사람들이 완전히 구분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공산당 중앙 동북국은 그 당시 동북에 거주하는 조선 민족을 ‘韓國居留民’, ‘조선인’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민현장에 남아 영주할 결심을 한 조선민족구성원 들은 토지개혁을 통해 토지를 분여 받았고 지방정권수립에 참여하여 참정권을 갖게 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조선인”에서 “조선족”으로 점차 탈바꿈 하게 되였다.

1950년 12월 6일자 《人民日報》는 <中國東北境內的朝鮮民族>이라는 논설에서 “1949년 9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가 개막되면서 동북경내의 조선인민은 중국경내 소수민족의 자격으로 각 형제 민족들과 만나게 되였다. 그때부터 중화인민 공화국 각 민족 인민가운데 이 새로운 구성부분은 각 형제민족 인민들의 관념 가운데서 교민으로 중국에 거류하는 조선인민들로부터 갈라져 나오게 되였다.”라고 지적하였다. 중국공산당의 기관지인 《人民日報》는 조선민족이 조선교민으로부터 중국 소수민족으로 탈바꿈한 시간을 1949년 9월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 회의 개최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조선인민”, “조선민족”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어 “조선족”이란 이름은 1951 년에서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되는 그 사이에 확정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1987년 9월에 미국의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에 교환교수로 초청되어 《중국과 미국의 조선민족 사회와 문화의 비교연구(The Korean Immigrants Society and culture in P.R.C and U.S.A)》라는 연구를 담당한 적이 있다. 1년 남짓한 기간의 조사와 연구를 거쳐 1988년 10월말에 연구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한 후 옌칭연구소에 제출할 수 있었다. 그 연구보고서 에서 나는 중국 조선족의 민족정체성(Ethnic Identity)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중국 조선민족의 민족의식은 아주 뚜렷하다. 그들의 민족 정체성은 1945년 광복을 전후하여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광복이전의 ‘조선민족정체성’은 범조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항일투쟁, 조국광복, 민족교육, 민족문화 4가지 내용을 포함한다. 광복이후 조선반도의 정세는 ‘조선민족정체성’의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고 따라서 1950년대 초반기에 형성된 ‘중국 조선족정체성’은 철저한 탈조선(국가)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중국에서 영주할 생각과 조선민족적인 것을 현지에서 키워가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 ‘중국 조선족정체성’은 여러 가지 요소들로 구성되어있다.

우선 그들은 광복이전 자신들이 중국에 이민하면서 겪어온 민족차별과 일제의 강제동화정책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중국 소수민족 중에서 역사는 가장 짧지만 다른 민족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음을 긍정적으로 인식한다. 물론 그들은 일제의 통치를 반대해 싸웠고 현지개발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자기들이 이 땅의 주인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의 근면과 교육열로 이룩한 경제생활의 상대적 윤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농촌 농민들은 벼농사에 종사하기 때문에 타민족 농민들에 비해 단위당수확고가 높고 수익도 높으며 도시거주자 중에는 전문직업인(대학교수, 연구기관 연구원, 의사, 문화예술인, 기타 전문분야의 기술인 등)과 국가 기관간부로 진출한 사람들의 비례가 크다.

그들은 동포들의 적극적인 중국정치참여에 대해서도 만족 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중앙정부 부부장(차관)급 관직에 진출했던 사람(현 재직자 포함)이 10여명, 전국인민대표대회대표 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진출했던 사람(현직 포함)은 수 십 명이 된다. 1988년 10월에 중국인민해방군의 정상급 계급에 승진된 17명의 상장 중에도 한명의 조선족 출신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민족의 동질성과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자각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조선민족출신이란 사실에 대해 전혀 열등감 을 느끼지 않으며 도리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들이할 때에도 한복을 입음으로써 자신이 조선민족 출신임을 나타내려고 하는 경향이다 ⋯

중요한 것은 그들 1세와 2세들 간의 심리적 일체감이다. 그들 은 미국 조선민족이 겪고 있는 심각한 세대 간의 갈등을 경험하지 않고 있다. 1세들은 현지사회에 정착하기 위하여 자아 희생적으로 열심히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 대한 민족교육(민족 자부심, 민족 언어, 민족문화 등)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2세들은 1세들에게서 전수받은 민족교육의 바탕 위에 시대적 의식과 새로운 지식을 가미하면서 현지사회의 지출에 나섰다. 1957년의 ‘반 우파 투쟁’과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혁명’기간에 민족주의자로 비판받았던 사람 중 다수가 2세였다는 사실은 그들의 강한 민족의식에 대한 반증으로 될 수 있다.”

 

지난 세기 80년대 현재의 조선족사회의 민족정체성을 분석한 것이다. 90년대를 경유하면서 조선족사회는 엄청난 구조적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고 적지 않은 민족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치관의 혼돈으로 민족정체성도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본다면 조선족의 민족정체성에 질적인 변화 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지난 90년대에 동, 서방 대립의 냉전구조가 종식되면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장막은 걷히고 경제활동의 글로벌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중국 조선족 역시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변화와 새로운 움직임들을 재빨리 파악 하고 그와 같이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21세기에 살아남는 생존 전략으로서 우리는 조선족이면서 중국적인 안목과 세계적인 안목을 함께 갖춘 새로운 조선족 공동체의 민족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2. 100% 조선족

 

같은 한자 어휘가 중국어와 한국어에서 완전히 다른 뜻을 나타낼 때가 가끔 있다. “조국(祖國)”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한어에서는 “자기의 나라(《現代漢語辭典》)”, 즉 자기에게 시민권을 준 나라라는 뜻으로 해석하는데 한국에서는 “(1)조상 때부터 살아온 나라, (2)민족의 일부 또는 국토의 일부가 떨어져 딴 나라에 합쳤을 때 그 본디의 나라(《국어사전》)”라고 정의 했다. 쉽게 말해 중국은 내가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살고 있는 나라를 조국이라 하고 한국은 조상이 살던 나라를 조국이라 한다. 중국의 정의에 따르면 조선족의 조국은 중국이고 한국의 사전적 해석에 준하면 조선족의 조국은 한국이나 조선이어야 한다. 두 나라의 “조국”이라는 명사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에 감정상의 껄끄러움을 불러오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조선족은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진출한 한민족동포(ethnic)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눈에 비친 조선족은 과거 어려운 시절 조선반도에서 살길을 찾아 중국으로 이민해 왔고 중국의 혁명과 개발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중국국민의 자격을 취득한 일개의 소수민족(nation)이다.

한국인들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조선족은 분명히 세계로 흩어진 “디아스포라(Diaspora)”의 한 갈래이지만 중국인들의 눈에 비친 조선족은 100여년이 넘는 정착과정을 거쳐 성공적으로 중국에 뿌리를 내렸고 중국에서 주류사회에 (국가의 령도 층 에도, 군의 장성에도, 학계의 최고 위치에도)진입한 모국의 국적을 초탈했다는 뜻의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이다.

앞에서 지적한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의 시각에는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 다만 조선족들이 자기정체성을 확보할 때 어느 시각에 초점을 맞추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을 뿐이다.

중한수교이후 한국 사람들과 접촉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한중축구경기가 있을 때 당신은 어느 팀을 응원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아보았을 것이다. 그러한 질문은 “당신이 중국이나 한국 축구가운데 어느 팀의 스포츠풍격을 좋아하느냐?” 라는 문제가 아니고 “한국과 중국 중에서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라는 의문이 깔려있다. 사실상 조선족은 60여 년 전에 이미 중국을 선택했다. 그러한 선택을 나는 하버드대학연구보고서(1988)에서 “1950년대 초반기에 형성된 ‘중국 조선족정체성’은 철저한 탈조선(국가)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중국에서 영주할 생각과 조선민족적인 것을 현지에서 키워가겠다는 결심이기도 하다.” 라고 지적했다.

조국과 고국의 시각 사이에 끼어 정체성의 혼돈을 경험하면서 적지 않은 조선족학자들이 “조선족은 이중성을 갖고 있는 민족”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조선족은 중국공민이면서 조선민족이란 이중성을 갖고 있기에 국가와 민족이란 이 두 가지 복잡하고도 민감한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정확한 정치적인 안목과 명철한 현실감각, 미래지향적인 원견이 있어야 한다.”

“조선족은 중국공민이면서 조선민족이란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학술적으로 토론의 대상으로 조차 상정될 수 없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학술관점의 문제가 아닌 개념정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이중성이란 말의 개념을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어나 중국어에서 “이중성”이란 “하나의 사물에 겹쳐있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성질”(《국어사전》), “사물이 가지고 있는 상호 모순되는 두 가지 속성, 즉 하나의 사물에 구비된 상호 대립되는 두 가지 성질”(《現代漢語辭典》)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갑돌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어느 중학교의 교사이고 그에게는 을남이라는 아들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을남이의 아버지이고 동시에 중학교사이기 때문에 갑돌이에게 이중성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사”와 “아버지”는 서로 다른 개념이지 “서로 다른 두 가지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갑돌이가 혼외정사로 사생아를 두었다면 이중혼인이 불법으로 인정되는 중국에서 갑돌이는 합법과 불법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성질”의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의 이중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공민”은 국적과 관련된 개념이고 “조선민족”이란 민족과 관련된 개념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서로 다른 개념을 함께 싸잡아서 이중성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사람이 두 개 나라의 국적을 소유했다면 그는 이중국적자이다. 만약 조선족의 절대다수가 중국과 한국(조선)의 국적을 동시에 취득했다면 조선족은 이중국적민족으로 이중성을 갖는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중국적을 승인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 가설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만약 조선족 민족구성원의 절대다수가 조선족과 다른 민족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라면 민족의 혈연적(ethnic) 이중성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적어도 현제의 조선족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국적과 민족이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을 하나로 묶어 “서로 다른 두 가지 성질”이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조선족은 세계 한(조선)민족공동체(ethnic group)에 속하면서 중국의 소수민족일원이기 때문에 이중성민족이 아니냐?”라고 물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세계 한(조선)민족공동체가 존재하느냐라는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만약 그런 공동체가 존재한다면 “세계 한(조선)민족공동체” 와 “중국 조선족”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성질”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민족공동체(ethnic group)” 속의 전체와 일부분 사이의 관계일 뿐이다.

허구의 “이중성 민족론”은 중국에서 조선족에 대한 불신의 풍조를 키워가고 있다. “장족과 위구르족은 서장독립, 신강독립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해외세력의 활동일 뿐이고 국내의 장족과 위구르족은 자신들이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중국과 한마음 한뜻이 아닌 (민족은) 도리어 선족(鮮族), 즉 조선족이다. 그들은 김씨부자에게 충성하거나 혹은 가난을 혐오하고 부(富)를 추구하면서 자기들이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중국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이렇게 믿지 못할 민족이라는 비난이 중국의 지성인들 사이에 만연되고 있다. 우리민족 선대들이 귀중한 목숨과 피땀으로 쌓아온 조선족의 이미지가 계속 무너져내려가고 있다. 56개 민족 중에서 인구비례로 혁명열사가 가장 많은 민족, 교육수준이 가장 높은 민족, 문화수준이 가장 높은 민족… 등등 화려했던 월계관은 점점 퇴색되어가고 있고 중국 다민족의 대 가정에서 조선족은 이제 “진짜 중국과 한마음 한뜻이 아닌” 믿지 못할 민족으로 전락되고 있다.

조선족에 대한 불신의 풍조가 만연되고 있는 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중국의 주류사회에 진입해야할 조선족 젊은이들이다. 총명, 근면, 지식 등 주류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자질이 구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족에 대한 사회적 불신 때문에 그들의 길이 막혀진다면 그것은 우리세대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주류민족이나 기타 형제민족들이 조선족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면 우리는 그러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선대들이 귀중한 생명까지 바쳐 우리세대가 중국에서 뿌리내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듯이 우리는 우리 후대들의 주류사회진출을 위해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국제법 학자로서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한국계미국인으로서는 최고의 직위인 국무부 차관보를 지냈던 예일대학 법과대학원 학장 헤럴드 고는 “한국계미국인으로서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를 느낀 적은 없습니까?” 라는 한국 《중앙일보》기자의 질문에 “성인이 된다는 건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시점에 나는 100%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몇 % 한국인이고 몇 % 미국인인가 고민하다가 ‘100% 한국계미국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더니 쉬워지더군요.”라고 대답했다.

1987~88년 내가 하버드대학에서 한국계미국인사회에 대한 보고서를 준비하기위해 사회조사를 할 때 대부분 코메리칸지식인들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들도 미국국적을 딴 후 한국 사람들로부터 “축구경기응원”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자기 자신들과 후대들의 미국주류사회 진입을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은 코메리칸 아이덴티티를 “한국적인 것이 얼마나 미국적인 것과 다른가에 대한 시시비비”에서 발상된, “한국적인 것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섭섭하지 않은 상태의” 탈 한국적인 것으로 설명했다. 그들은 한국문화와 차별되는 미국 코메리칸문화의 창출해야 한다고 인식을 같이 했다.

미국의 코메리칸사회의 미국이민역사는 1903년 7천226명이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 이민한 사건을 제외하면 불과 4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300년 이전에 이민해온 “박가촌”사람들을 제외하더라도 중국조선족사회의 이민역사는 150년이나 된다. 오랜 역사과정에서 성공적으로 중국에 뿌리를 내렸고 조선족문화도 창출해냈다. 우리는 조선족의 정체성 때문에 고민해야할 이유가 없다.

“조선족”이라는 3글자 속에는 우리 선대들이 조선(한국)에서 이민해 왔고, 우리는 조선(한)민족공동체(ethnic group)에 소속되며, 우리는 중국국적을 가진 중국 소수민족의 일원이라는 내용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헤럴드 고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100% 조선족이다”라고 떳떳하게 말하면 된다.

우리자신과 후대들이 중국 주류사회진입을 위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중국에서 계속 타민족의 칭찬을 받는 민족으로 거듭날 때 조선족은 축구경기 때 한국 팀을 응원하는 정도가 아닌, 조국과 고국의 정치, 군사, 경제, 문화를 포함한 전 방위적인 교류를 위해 더 많고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3. 발전과 해체의 딜레마에 빠진 조선족사회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중국 조선족사회는 미증유의 충격을 받으면서 80년대에 이루어진 농민들의 도시진출을 경험하게 된다. 중국 조선족 농민들은 전통적으로 기술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수전 농사에 종사해왔기 때문에 수원이 충족한 양질의 땅을 적당한 규모로 경작해왔다. 개혁개방을 맞이하면서 그들은 상품경제 시대에서는 제한된 땅에서 얻는 수확으로 도저히 더 잘살 수 있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수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진출하게 되었다.

도시진출 농민들이 초기에 제일 많이 선택한 생업이 김치장사인데 적은 자본금으로 시작할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지만 그 대신 그들을 상대적으로 집중시키지 못하고 보다 넓은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김치장사로 번 돈은 대부 분 식당업으로 재투자되지만 그 외에 단순 서비스업이나 제조업에 투자되는 경우도 있었다.

1992년 중한수교가 이루어짐에 따라 조선족 사회는 새로운 기회를 접하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던 마을들을 떠나 부(富)를 찾아 나섰고 한국 경제인들의 중국진출 붐에 따라 조선족들은 북경, 천진, 심양, 대련, 청도, 상해, 광주 등 연해개발지역으로 진출하게 된다. 그들은 주로 한국관련 회사나 공장의 노동자, 회사직원으로 취직되거나 한국인을 상대하는 유흥업소, 여행사 등 서비스업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90년대의 또 다른 추세는 한국 노무의 붐이었다. 수많은 농민들이 "코리안 드림"의 유혹에 끌러 한국으로 몰려가게 되었다. 그러나 불법체류 외국인 노무자가 사회문제로 비화되자 조선족들의 한국입국은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고 그들 노무 희망자들은 미화 6천 달러에서 1만 달러 정도의 수수료를 노무 중개업자들에게 지불하면서 "기회의 나라"에 입국하기 위해 온 가족의 생계와 심지어 그들의 사활을 내 건 "도박"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악덕 브로커들의 사기가 빈발하면서 90년대 후반기에 한국과 조선족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노무사기 사건들이 속출했다.

"코리안 드림"으로 시작된 조선족 사회의 한국노무 봄이 여성들의 한국으로 시집가기 붐으로 이어지면서 2000년 말 현재, 약 6만 명의 조선족 여자들이 한국으로 시집갔는데 그것은 중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아들딸 낳아 조선족 공동체를 유지해 가야 하는 조선족 여성 3명 중 1명이 한국으로 가 버렸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중국조선족 출산인구는 급 하강선을 타게 되어 1999년 말 현재,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 신생아 출산 수는 1989년의 1/4밖에 안 되는 3,800명이였다.

조선족 사회가 전통적인 농업경제를 탈피하고 도시경제에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우선 일인당 평균 경제수입의 증가를 실현할 수 있었다. 조선족 전체의 경제수입 실태를 추출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러나 개별지역 통계에서 우리는 그 전반을 감지할 수 있다. 례를 들면 2006년, 연변자치주에서 외국에 노무나간 사람들이 연변에 부쳐온 돈은 10억 달러에 육박했고 휴대해 들여온 돈까지 합치면 20억으로 추산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수입의 증가를 실현하기 위해 조선족사회는 많은 귀중한 것들을 상실하게 되었다. "조선족의 문화영토"로 인정되던 조선족 마을의 空洞化와 해체, 그리고 그에 따르는 조선민족학교의 폐쇄, 민족 정체성의 혼돈, 그리고 민족공동체의 존망과 직결되어 있는 전통적 가치관을 잃어가고 있다. 급변하는 중국조선족 사회는 지금 민족교육체계의 붕괴, 민족문화영토의 상실, 출산인구의 기하급수적 감소 등 여러 가지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사회는 발전과 해체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개혁개방이래 중국 조선족은 전통적인 거주지역인 동북 3성을 떠나 중국의 연해지역 대도시로 대거 진출하게 된다. 현재 중국 조선족의 거주판도는 동북 3성 대도시에 40여만 명, 현, 시 이하 농촌에 45여만 명 그리고 중국 동남연해지역에 60만 여명으로 이루어져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중국 도시경쟁력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중심지역은 1) 심천, 홍콩, 마카오를 포함한 화남지역, 2) 상해 등도시를 아우르는 양자강하류지역, 3) 북경, 천진을 중심으로 하는 화북지역, 4) 심양, 대련, 장춘, 길림, 하얼빈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지역, 5) 청도, 제남을 중심으로 하는 황하중하류지역이다. 조선족들은 이러한 중국의 경제발전을 주도해 가는 지역이자 또한 5만개 이상의 한국회사와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에 진출해있다.

그리고 조선족의 해외진출도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법무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5년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조선족인구수가 23만 여명이었는데 2007년 초부터 방문취업제를 실시함에 따라 지금은 한국진출 조선족인구가 30만을 헤아린다. 그 외에도 일본에 8만 여명, 러시아에 5만 여명이 진출해 있으며 미국과 유럽, 동남아시아, 중동, 호주, 남미 등 지역에 진출한 조선족까지 합치면 50만 명을 넘어섰다.

때문에 현제의 중국 조선족출산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해외진출의 증가로 7~8년 후에는 중국거주 조선족 인구가 100만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그 대신 중국정부가 2005년 말부터 중국체류 외국인들에게 영주권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현제 80여만 명의 한국인들이 중국에 장기 체류하고 있으며 조선족인구가 100만으로 줄어들 때 중국체류 한국인은 100만으로 증가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그 때가 되면 재중 조선족과 재중 한국인 사회는 새로운 형태의 재중 코리안 사회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2006년부터 시작된 중국 제11차 5개년 계획의 청사진에 따르면 도시화는 “전면적 소강사회의 실현”과 현대화 발전을 실현하는 중대한 전략으로 채택되어 지금은 중국대륙의 현대화 발전의 거대한 흐름으로 되어 있다. 다행히 우리 민족은 다른 어느 소수민족보다 재빨리 도시화 과정에 참여했고 중국의 평균 수준보다 높은 도시화 수준을 이룩하였다. 조선족은 개혁개방이후 도시진출 민족 중 가장 돈을 많이 번 민족으로 집계된다. 중국에 30개 소수민족 자치주가 있는데 이 가운데 연변조선족자치주는 봉급수준이 가장 낮지만 개인 저축은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족의 도시화 과정에는 해결되어야 할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중국에서 조선족이 가장 먼저 도시화를 실현한 민족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렇게 밝은 현실은 아니다.

급격히 변모하는 조선족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과제 역시 부단히 변하고 있으며 또 외적, 내적 변화 속에서 새로운 모색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바라고 있다. 돈은 좀 벌었지만 조선족 사회는 무너져 버린다는 미래상은 그 어느 하나도 바람직한 것 이 아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 가운데서 우선 사회와 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핵심적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 나가야 한다.

중국 조선족기업의 기본 특징은 아직도 대부분 기업들이 요식업, 유흥업, 여행사 등 단순서비스산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중에는 연간 4000만 달러의 이익을 창출하는 슈퍼 요식체인업체 (예를 들면 북경한라산 요식체인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윤마진이 빈약한 상태이다. 이들 기업들은 제한된 지역에서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로 시장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동족 기업 간의 소모적 경쟁이 빈발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기업의 또 다른 특징은 중국진출 한국기업과 밀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본, 기술, 상품, 경영노하우, 비즈니스 모델 등, 많은 조선족 기업들이 자체의 생존공간을 한국인이나 한국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시각을 바꾸어 보면 스스로 자체의 발전공간을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조선족은 다른 민족 못지않게 일찍 시장경제체제에 뛰어들었고 또한 이중, 삼중 언어의 우세도 있지만 중국 500대기업 서열에 든 조선족 기업도 없고 상장기업도 없다. 기타 소수민족은 있는데 조선족은 없다. 그들은 언어의 우세도 없고 해외관계도 없는 상황에서 중국 돈버는데 전념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온 세계적인 경제 불황속에서 이제 조선족 기업인들은 자기들의 생존공간을 한국관련 기업으로 제한시킨 현실을 극복하고 자체적 발전공간과 미래의 진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최근 미국의 권위경제지포브스(FOBES)가 선정한 재부서열에서 중국의 억대부자들 수가 미국다음으로 세계 제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돈이 가장 많은 10대부자들 중에 6명이 부동산업자들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땅장사를 하는대지주(大地主)들이었다. 중국 부자서열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는 杨惠妍은 26세의 여성이지만 중국정부 다음가는 땅의 소유자이다. 2007년 10월 1일 신화통신사가 보도한데 따르면 그녀가 소유한 땅은 4500만 평방미트에 달하는데 20여년 개발할 수 있는 땅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녀의 재산은 1 215억 원이다.

미국의 갑부 빌 게이츠나, 일본의 갑부 손정희는 IT산업, 즉 첨단기술을 필요로 하는 하이테크산업으로 돈을 벌었다. 그러나 중국의 갑부는 기술함량이 낮은 땅장사로 재부를 축적했다. 이것도 중국특색이라면 특색이다. 중국 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조선족기업인들은 우선 형제민족기업인들과 같이 중국특색⟫에 따라 ⟪중국 돈⟫을 벌어야한다. 현제 중국에서 비교적 성공한 조선족기업가들 중 대부분은 조선족사회에서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기타민족들 속에서 기업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다음 글로벌경쟁시대에 있어서 자신들만의 우세와, 다른 민족 집단이 대체할 수 없는 특수한 역사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자각해야 한다. 조선족 기업들은 한국계기업들과 차별화된 중국특색⟫의 기업발전공간을 개척하는 동시에 한국계기업들과 생존을 함께하는 전략적 제휴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면서 자체적 발전공간과 미래의 진로를 개척해 나가야한다.

 

조선족이 살아남으려면 민족문화를 공유할 수 있어야

 

21세기에 조선족사회가 살아남는 길은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가는 길밖에 없다.

그동안 조선족은 경제적 수입의 증가를 위해 집중거주 지역에서 중국의 대도시들과 해외로 진출하게 되었다. 192만 조선족인구 중 70%이상을 차지하는 150여만 명이 화남지역, 양자강하류지역, 화북지역, 동북지역, 황하중하류지역 대도시들과 한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 외국으로 흩어져나갔다. 이제 조선족은 명실 공히 글로벌민족으로 되었다.

흩어져버린 조선족사회가 하나의 민족사회로 생존하려고 한다면 부동한 자연환경과 문화 환경에 노출되어있는 민족구성원들이 계속 조선족문화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조선족의 민족 정체성과 전통적 가치관을 유지해가야 한다. 분산된 조선족사회를 유지하는 대안으로 일부학자들이 离散 유대인⟫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디아스포라(Diaspora)민족론을 제시하고 있다. 혈통과 언어가 바뀌어도 디아스포라가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된 데는 끈질기게 작용해온 유대교가 디아스포라들의 민족정체성과 전통적 가치관의 기반으로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강한 결집력을 가진 민족종교가 없는 조선족사회에 디아스포라는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그 어떤 이론보다는 좀 더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에서 민족교육체계의 붕괴, 민족문화영토의 상실, 출산인구의 기하급수적 감소 등 여러 가지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출생된 조선족 아기수는 도합 136,585명인데 10년 전(1981-1990)의 329,207명에 비해 60%가 줄어든 실정이다. 민족을 나무에 비한다면 10년 동안 뿌리가 60% 나 잘린 샘이다. 민족공동체를 이어가야 할 후계인구가 없어지고 있다. 출산인구가 감소되고 있는 원인은 농촌출신 조선족 총각들이 장가를 못가기 때문이다. 국외로 시집가는 여성들과 도시로 진출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총각들이 장가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이 어려워졌다. 교육위기, 문화위기도 출생인구의 급격한 감소 때문에 발생된다. 태어나는 애기가 없어 학생이 없어지고 따라서 조선족학교가 무너지고, 우리말 배우는 학생이 없어지니 조선어가 위축되고, 우리글 신문, 잡지 보는 사람도 점점 적어져 신문, 잡지도 문을 닫게 된다. 여기에서 근본 원인이 출산인구의 감소인 것이다.

연변조선족인구의 기하급수적 감소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는 2000년과 2002년에 《연변조선족인구 마이너스 성장문제 대책회의》를 2차례 걸쳐 개최하였다. 회의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 조선족인구 마이너스 성장문제》 해법을 위한 특별과제를 설립함으로서 조선족인구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였다. 중앙정부와 성, 자치주 관계부문 영도들과 행정인원 그리고 전문가들로 조직된 프로젝트 담당 기구가 설립되었고 2003년 11월까지 정부차원의 정책건의가 마련되었다. 조선족인구의 감소문제는 국가차원의 특별정책제정도 중요하지만 조선족공동체가 직면한 사회경제, 교육, 가치관 등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풀어나가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연변 조선족자치주정부의 정책적인 배려로 2006년부터 조선족의 1가족 2자녀의 비례가 증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산재지역에서도 이와 같은 대책이 있어야 된다. 총각들에게 기술 교육을 시켜 농촌이든 도시든 관계없이 돈을 벌수 있게끔 도와야 한다. 돈이 있으면 결혼 할 수 있고 출산도 늘 수 있다. 조선족 출산인구의 회생을 위해 우리는 조선족공동체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된다.

민족문화의 문제는 민족교육, 민족문화예술, 언어 등을 포함해서 생각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교육문제이다. 1996년에 존재했던 1200여개의 조선족학교가 2005년에 와서 400개로 줄어들었다. 조선족학교가 줄어드는 속도는 조선족 출산인구의 감소속도와 거의 맞먹는다. 조선족들이 도시에 모이고 있는 상황에서 도시에서 민족교육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도시공립학교의 인적자원과 공간을 이용하여 민족교육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1999년에 우리는 북경의 중앙민족대학 부속소학교에 120명의 조선족 학생들을 입학시켜 정규교육과 민족교육을 접목시키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오전에는 정규교육을, 그리고 오후에는 민족어교육을 받게 하여 훌륭한 교육의 효과를 거뒀다. 그리고 우리는 도시화에 대비하여 1989년부터 북경 등 15개 대도시에서 주말 조선어교육을 지금까지 실시해오고 있다. 각 지역에서 이런 형태의 학교를 만드는 것도 민족교육을 해결하는 한 가지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선족의 신문, 문학지나 문예지는 살려나가야 한다. 그러기위해서 기업인들의 도움이 상당히 필요하다. 조선족 문학인, 예술인들도 전통만 고집하지 말고 현대에 맞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조선족의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은 문화인들의 몫이다. 문화의 세기를 살아가면서 우리도 문화산업, 콘텐츠산업, 창의 산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기업인들과 문화인들이 서로 협력하는 산학협동의 길을 모색해야한다.

한국어를 배운 한족이나 기타 민족의 학생들이 조선족 학생들보다도 더 표준적으로 한국어를 구사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동아시아 시대에서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우세임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조선어를 홀시하고 중국어만 중시한다. 유명대학에 입학하는 것만 중시하고 이후의 취직은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대학을 졸업하든 두 가지 언어를 확실히 장악하면 취직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현재 2만 여명의 한족학생들이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고 중국 내에도 130여 대학에 한국어학과가 개설되어 있어 한국어를 배우는 한족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와 반대로 우리말을 모르는 조선족젊은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연변의 경우 정책상 원인으로 조선족 중소학교의 조선어강의시간을 많이 줄인다. 때문에 대학 조선어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조선어 수준이 매우 낮다. 이런 문제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현제 조선족들이 흩어져 사는 중국의 대도시들에는 여러 가지 명칭으로 된 조선족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동북지역 도시들에는 심양시조선족련의회⟫와 같이 현지정부의 民政局에 등록된 법인단체도 있지만 관내지역의 절대다수 단체들은 무허가상태에서 어렵게 조선족문화관련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지역운동회, 설맞이 모임, 노래자랑모임, 장학회 모임, 동호인 모임, 경로행사 등 활동내용도 다양하다. 이러한 기성세대가 주도하는 문화 활동들은, 조선족들이 바다에 뿌려진 모래알같이 흩어져 있지만, 조선족사회는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행사는 지역사회의 친목활동이라는 의의를 훨씬 뛰어 넘는다.

이제 각 지역 조선족단체들은 현지 정부의 민족 사업을 협조하는 위치에서 NGO의 합법적 지위확보에 힘을 기울려야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더 효과적으로 민족문화의 계승과 창출을 통한 민족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높은 차원에서 청소년들에게 민족 언어교육과 민족문화교육을 실시해야한다. 전통과 현대화,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민족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옛 전통만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사물을 접수하려 노력해야하고 젊은 사람들은 현대에만 집착하지 말고 민족문화전통을 이어가야 한다. 문화전통과 세계화 이 두 가지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이러한 대도시 조선족단체들을 위한 문화의 항공모함이 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조선족문화 활동에 필요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어야하고 그들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어야 한다. 연변의 연출단체들은 그들을 위한 순회공연을 당연한 책임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로 흩어진 조선족의 사회와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글로벌조선족네트워크》의 구축과 상응한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게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엘리트 경제인들과 학자들이 주축을 이루는 세계적인 글로벌조선족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전체적인 경제사회발전을 고민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러한 네트워크가 조선족사회의 민족문화와 경제발전에 촉매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글로벌네트워크만이 우리가 지금까지 연구하고 도전해온 조선족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취지로 우리는 북경(2006년)과 부산(2007년)에서 제11회와 제12회 조선족발전을 위한 학술심포지엄을 열어 글로벌조선족네트워크의 구축과 활용에 관한 사안들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토론하였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150년 이상의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중국의 일개 소수민족으로 자기정체성을 확보했다. 이제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조선족사회가 살아남는 길은 세계화에 걸맞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가는 동시에 새로운 민족문화를 창출해가는 길밖에 없다.

어렵지만 도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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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0 ]

20   작성자 : 쾌도난마
날자:2013-08-28 15:56:27
문제는 한국에 계시는 많은 조선족분들이 특히 젊은분들이 자기가 조선족이라고 떳떳하게 얘기하지 못한다는거예요 . 너무 이미지가 않좋으니깐 창피한거죠 . 저는 자기신분을 떳떳하게 얘기못하는게 심리적으로 제일 절망스럽고 힘들어요 .
19   작성자 : 문화와 인생
날자:2012-10-12 07:19:18
어느민족이던 어느나라국적에 들던 백분의백의 충성심을 표현하느라 구태여 고국과 명확히 계선을 그을 필요 없지않소?
지금 어느나라던 어느민족이던 중국어를 다 잘배우려하는것처럼 어느나라 어느민족이던 한국어를더 잘배워야 인생의 즐거움과 도움이 되듯히 문화는 배우면 자신에 바로 도움이되는 것이요.
18   작성자 : 사고방식부터 고쳐야
날자:2012-10-12 07:08:03
(1)황유복선생이 이댓글들은 보신다면 다시 심사사고해야 하오.
이문장은 시대에 매우 떨어진 이론이요.
(2)주은래는 그 지나간 시대에 살았지만 앞을 내다보고 늘 국제화감감이 있는 인문학 영도자요. 중국조선족언어는 그당시 가장 국제화 표준화 선진화로 된 평양언어를 기준으로 하라 지시했소.지금 살아 계신다면 어떠할가요?
국적으로 보면 중국조선족이란 정체가 있을수있지만 충성심을 표현하라 구태여 자신으 오른팔을 들어 왼팔을 베내라 누구도 강요하지 않으니 자신이 스스로 벨 필요 없지않소?
(3)지금은 한국어와 문화가 세계화 표준화 선진화로 되어있소.
이걸 외면하고 구태여 백분의백의 중국조선족언어 문화를 새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어리석소.미국한족어와 러시아한족어 일본한족어를 새로 만들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고 불가능하오.
고국한국문화의 모든 혜택을 받으면서 이렇게 나설 필요도 없을것 같소.오직 중한두나라우호교류와 합작에 힘과 노력을 다하면 된다고 보오.
(4)대다수 사람들은 이론으로 살수없고 살지도 않소.
결론을 먼저 말하면 한국어와 문화를 제대로 올바르게 배운 한족 조선족이있고 비틀어진 중국조선어와 문화를 배운 조선족이 있다면 우선 한국어를 배운사람을 채용하게되오.중국내서나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일것이요.
17   작성자 : 잘한다
날자:2012-10-11 20:52:18
중국조선족사회에 민족학자는 없다.혹여 민족학자로 자처하는 사람은 정치적 논리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그러하오니 중국조선족이 자기의 정체성에 미궁에 빠질 일이 아니겠는가
한족을 보라 어느 나라에 정착했는 화교라 한다.그런데 조선족은 중국에 정착해서 시민권을 얻었다 해도 조교 혹은 한교라 하는가 일제시대의 아부가 지금 조선족 이른바 학자들에게 확산되고 있으니 이 어찌 개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인간들이 조선족 군체를 짓밟아놓으면서 그 어떤 가당치도 않는 이론을 펼쳐대니 과연 하기는 잘한다.
16   작성자 : 조선족
날자:2012-10-11 18:29:19
황유복선생님이 제기한 '조선족'에 대한 개념이 왜 중국현대한어규범사전, 신판 현대한어사전, 조선말 대사전의 해석과 다릅니까?
15   작성자 : 이문장의 병집
날자:2012-10-08 15:47:37
황선생의 한민족 네트워크형성주장은 정확하다.
하지만 이문장의 가장 큰 병집은 전세계의 한민족 조선민족이란 "공동분모"와 "공동언어"를 무시하거나 부정한데 있다.
이 기본 근본 기초 핵심을 잃어버리거나 버리게되면 한민족(조선민족)들에겐 아무것도 통할게 없고 할말도 없어진다.
미국국적을 가진 한인 일본국적을 가지고 일본이름을 단 조선족이 미국이나 일본이란 공동분모 공동언어를 들고 나와 한민족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 그나라의 보조에 발맞추자고 하면 전세계의 한민족도 통하는 마음과 공동언어가 나올리없다.
공동언어가 없다면 마음이 안통하고 피도 맥박도 안흐른다.무엇 하나도 성사할수없다.
14   작성자 : 화교들의 "중국심"
날자:2012-10-08 11:37:07
대륙사람들은 대체로 2분법(모가 계급투쟁을 주장하기 위한 하나가 둘로 나뉜다는 이론)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고 황유복이도 다를바없다.
좋은 사람아니면 나쁜사람이다 식이다.흰색 아니면 검은 색이라는 말이다.색갈이 어찌 두가지뿐이랴?
정치를 위하여 애국을 위하여 정권에 대한 충성을 위하여 조선족은 반드시 백분의 백의 중국인 조선족이여야한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개방개혁이 시작되면서 "생물 다양화"란 과학적 론단과 이념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수용되고 있다.인간성이 현대와 미래의 최고 기준이여서 지금은 당중앙 국무원에서도 "인간을 근본으로 하는""과학적인 발전관"을 전당전군전국인민들의 지도사상과 정치이론으로 정하고있다.
인간성이 없는 그어떤 논리는 자연히 전세계인민들과 공정언론의 비판과 버림을 받게된다.쓰탈린이나 캄보디아볼보트 모가 일으킨 잔혹하기 그지없는 대숙청 문화대혁명 계급투쟁이 그러한 대상으로 굴리고 있다.
등소평 호요방 강택민 호금도동지는 개방개혁 선진적인 생산력 선진문화 인민들의 근본이익 인간성 과학적인 발전을 당의 지도 방침으로 정했다.
화교들은 미국 유럽 일본 어느국적이던 자신들의 고국과 민족을 그리워하며 사랑한다.바로 "중국의 마음"이다.애국 애족 애향은 모순되지 않는다.중화민족의 일원이라면 화교들을 잘 따라배워야 한다.
13   작성자 : 김삿갓
날자:2012-10-08 11:25:07
황유복동지는 “조선족”이란 중국국적 을 가진 조선민족에 대한 전문호칭, 즉 국적과 민족출신을 동시에 표시한 호칭이다.라 하였는데, 국적과 민족출신을 동시에 표시한 호칭이라고?! 이문장으로써 황우복 동지의 견해는 조선반도의 북,남 인민들과 련계보단 중국에서 새롭게 새민족으로 태여나잔소릴 웨치고있는것이다. 중국인들도 조선족과 북,남의인민들을 모두조선족으로 생각하여 말하지않던가. 호칭이어쨋거나 조선족과 북,남의인민을 진작부터 같은민족으로 보구있는것이다. 산둥빵즈들도 조선족은 북과남의 인민과 같은이라고 승인하는데, 같은민족이란 황유복같은 동지는 중국에서 새로태여나 새로운민족을 만들잔 뚱딴지같은 견해를 기름칠해서 글써대니...량심있는 조선족학자가 이리도없단말인가.
근데 누구맘대로...두만강 압록강넘어 조선민족 대부분이 살아가고있는데/황유복동지 자기절로 붓을들어 횡설수설한다고 피줄이어디가는것이 아니짐.
어데살던 피줄로 모두조선사람이라 어데가든 조선사람이라 맞소
12   작성자 : 김삿갓
날자:2012-10-08 10:49:56
이 황유복동지 견해는 참으로 맹탕이고 한심하다.

만약 황유복동지가 외국사람들에게 "나는 중국사람이다."고 말하였을때 그외국사람들은 황유복동지를 중국인으로 볼것이다. 그것은 응당한 도리다.
그런데 여기서 황유복동지와 같은민족인 조선반도의 북,남의 인민들이 황유복동지의 "나는 중국사람이다."란 말을 듣게된다면 낯이벌개진 인민한테 쌍욕을들을것이다.
그것은 조선반도의 북,남의 인민들에게 황유복동지가 "나는 중국사람이다"고 말하였으면, 조선반도 북,남의 인민들과 민족적으로 련계돼지 않는동지로 셍긱하게되여지는것이다.

황유복동지는 조선족과 북,남의 인민들은 같은민족인데 같은민족한테 "나는 중국사람이다"고 말한다면 세살먹은 코흘리개가 우슬것이다.같은민족한테는 "나는 중국적자로 조선족사람이다."고 말하면 될일이다.

같은민족한텐 "나는 중국사람"이다고 말할필요가없다. 조선족이나 북,남 인민들끼리는 당연히 같은민족이고 리씨조선피줄들이니 그냥 조선사람이다 하면되는것이다.
결국 황유복동지가 아무리 붓을들고 번지르하게 기름칠하여 문장을발라도 조선족은 중국적자인 중국이란국가와 민족적으론 조선사람으로써 조선족은 이중성을자기고 태여난것이다. 이것을 도리머리할수는 없는거것이다. 조선반도는 하나의 민족(비록 정치적으로 둘로나위여 있지만)이 국가고 그 민족이 국가지만 조선족은 여러민족이 사는 중국에사는 도리를 모르면 말이되지 않지않은가? 학자란 황유복동지가 이것도 모른다면 세살베기 코흘리개가 우슬것이다.
11   작성자 : 호들깝
날자:2012-10-07 17:08:04
아래 정치로 하는 사람들 님에게:

나의 글들이 계급투쟁식 이분법논리라구요? 난 그저 조선족들의 지나온 과정에 대해 있는 그대로 나열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현재의 조선족의 민족적 자부심은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체와 정체속에서 그 가치가 있는 것도 사실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앞으로 중국이 민주화되여 공산당이 집정지위를 상실하고 지금의 국체와 정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조선족의 자부심도 상당부분 소실될것다.....

물론 조선족들이 한국이 던져주는 뼈다구에 의해 경제적인 부를 이룬것은 사실이다. 이걸 누가 부정하는가? 우리는 왜 한국의 노가다로 돈을 벌어 경제적인 부를 창조할수 있었을까?
또한 이러한 경제적인 부는 중국에 와야 그 가치가 완성될수 있었는가?
우리는 한국의 노무수입정책에 감사한 동시에 중국이 한국보다 낙후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할것이다. 아이러니 하지만 .... 중국이 한국과의 일인당국민소득격차가 몇배의 차이가 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한국노무는 아무런 경제적가치가 없었을것이고 중국에 와서 부를 창조할수 없었을것이다.
10   작성자 : 호들깝
날자:2012-10-07 16:46:00
아래 조선족 대개조론 님:

그러한 김문학이 중국에서 "누추한 한국인"이란 책을 출판했다는 사실... 한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일반 중국인들한테 한국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알렸다는 사실... 그것도 한국에 대해서는 잠자리 수면 핥기식으로 몇번 출장갔다 온 경험밖에 없으면서....온통 일본내 우익이나 혐한분자들의 글들을 짜깁기해서 발표했다는 사실..

하기사 김문학이는 몇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고 하더만 ...일본인 앞에서 내놓은 얼굴, 중국인 앞에서 내놓은 얼굴, 조선족 앞에서 내놓은 얼굴...
9   작성자 : 정치로 사는 사람들
날자:2012-10-07 16:38:32
호들깝의 논리는 계급투쟁과 2분법(하나를 둘로 나누는 계급투쟁과 무산계급독재 이론기초)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대부분 중국조선족은 농촌에 거주하고있는 농민들이다.중국에서 일년에 많이 벌어 몇만원 하지만 한국에 노무로 한달에 몇만원 벌수있다.물론 전업기술과 자격이 없어 막노동이 전부이다.그렇지만 한국가야 돈을 벌수있다.중국내 도시엔 줄시없어 못가고 가도 뜻대로 되는게 별로 없다.가난한 조선엔 누구도 가려하지않는다.
이 낡은 정치사상과 이데올로기를 고집하는 나그네들과 언론 때문에 농민들은 기분이 더 상해진다.우는 아이를 보살펴주는것 같지만 상처에 소금을 치는격이다.
그대신 기술 자격 보다 높은 노동가치 한국사회적응하기 마음바로잡기 도우미 문명예의 갖추기를 권장하고 습득하는데 도움을 주는것이다.
몇사람이나 떠들어대는 쓸모없는 정치적 주장대로 아니라 보다 선진적이고 국제표준화로되어 실용적인 한국어 한국문화를 가르쳐야 한다.
8   작성자 : 호들깝
날자:2012-10-07 16:36:28
아래 한치보기 님에게:

나의 댓글 어디에 조선족만 항일 했다고 했소? 중국에서 항일의 주력군이 국민당군대란것을 누가 모르고 부정하오? 그리고 국민당군대와의 전쟁은 내전이요. 사람을 많이 죽였다고 자부심을 느끼는게 아니라 신중국 건국에 큰 공헌을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요.
7   작성자 : 조선족 대개조론
날자:2012-10-07 16:33:39
김문학의 조선족 대개조론 "한국이 있다는 것" :

88 서울 올림픽 이전까지만 해도 한족앞에서 조선민족이라고 주눅이 들던 조선족들이 한국이 알려지자부터는 그 흑싸리 깝데기같이 깡마른 주눅은 사라지고 당당히 조선족이라고 긍지를 느끼며 떵떵하게 내노라 소리치게 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이란 고국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없다.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리동포들은 한국의 혜택과 지원을 떠나서 오늘날의 경제적 부유가 있을 수있을까? 냉철히 객관적으로 한국의 공헌을 인정하고 아낄 줄 알아야한다.

한국이란 이 훌륭한 핏줄은 우리에게는 생명의 핏줄의 한 줄기찬 부분이다. 연변에는 많은 전통예술과 풍속습관이 소실돼가는 위기 속에서 한국과의 교류가 이 위기를 막아주었다. 옛날에는 우리가 못산다고 소수민족이라고 꼬리방즈라고 욕을 잘 했어요...

김치는 맛있다고 잘들 사먹으면서도 깔보려고 했는데 한국이 있은부터는 오히려 날 부러워해요... 더 이상 조선족의 이야기들을 라열할 것없이 민간들 속에서는 아주 허심탄회하게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기여와 한국이 준 긍지와 자랑에 대한) 내심의 말을 고백하고있다.이런 질박한 고백들은 적어도 우리 조선족의 ... ... ... 보다는 수백배 진솔하고 양심적이다.
6   작성자 : 호들깝
날자:2012-10-07 16:26:36
중국에서 형성된 조선족의 크나큰 민족적 자부심은 중한수교이후 고국방문이 이루어 지면서 조선족들의 자부심이 한국인들의 눈에는 오히려 경멸과 조소의 대상이였다. 조선족으로서는 곤혹스럽고 충격적인 것이였다. 이 자부심으로 당당하게 중국에서 살아 왔는데 고국에서는 이것이 경멸과 조소의 대상으로 되였으니...

한민족이 특히 소수인 민족이 다수민족속에서 자기의 민족성을 지키며 살아 가려면 민족적 자부심은 필수적인 것이다. 근데 한국인들은 조선족의 민족적 자부심에 대해 경멸하면서 기어코 이 자부심을 지워버리고 짓뭉개버리려고 악착같이 덤벼든다. 그러면서 한국의 "한강의 기적"에 의한 자부심을 가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한다. 조선족은 한강의 기적에 참여 하지 않았다. 그저 같은 민족으로서 바라보면서 기뻐할 뿐이다. 한국인들처럼 폐부로 우러러나온 뼈속까지 스며드는 자부심을 느낄수 없다. 또 한국인들은 한강의 기적을 조선족과 공유하려는 것도 아니다. 물론 노가다노무라는 뼈다구를 던져주고 기막한 동포사랑 은혜론을 펼치기도 하지만 그것이 진정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물론 미국등 기타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은 대부분 대한민국 건국후 이민들이라서 조선족들과는 달리 발전한 한국에 근거한 자부심이 심어졌겠지만...
5   작성자 : 한치보기
날자:2012-10-07 16:25:24
호들깝의 말은 아주 옛날 이야기요.
로일대 간부들은 인정이나 해주지만 지금 젊은 작가들과 언론은 동북의 혁명과 항일을 죄다 조선족이 했다는 결론에 매우 반감이요.새로나온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말하오.그기에는 거의다 지방 지주 토호가 항일의 주력이요.조선족은 한명도 보이지 않구말구.
국민당군고 ㅏ용감히 싸웠다는것도 새로 인식해야하오.국민당의 누구요.같은 민족이란 말이요.국민당군을 많이 죽였다구 감사해하구 좋아할사람 점점 적어지구 오히려 원한이 깊어지오.
앞으로두 한국말을 정규적으루 배운 한족을 등용 채용하지 사투리 섞인 조선어를 배운 조선족 중국실정에 어두운 조선족은 채용도 꺼릴것이우.
참 캄캄이구만.
4   작성자 : 호들깝
날자:2012-10-07 15:51:50
많은 한국인들의 조선족에 대한 오해중의 하나가 조선족의 민족적 자부심이 한국의 "한강의 기적"에서 온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발전과 성공이 같은 민족으로써 조선족한테 어느정도 민족적자부심을 느끼게 한것은 맞지만 조선족의 자부심은 특히 중국이란 나라속에서의 조선족 자부심은 어쩌면 "한강의 기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중국속에서의 조선족의 자부심은 중한수교 이전 몇십년전부터 이미 형성된 것이며 오히려 그 당시의 "계급투쟁" 환경속에서 인식된 비록 틀린 인식이긴 하지만 미제의 식민지통치하에서 억압받고 착취받아 도탄속에서 굶주리고 헐벗은 "남조선"이 절대로 조선족의 자부심으로 될수 없었고 "해방의 대상"이였을뿐이다.

조선족이 비록 이주 민족이지만 기타 토착 중국민족에 전혀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부심을 가질수 있었던건 이주 초기부터 그 토지를 직접 개척하였고 빛나는 항일투쟁사와 더불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 마멸할수 없는 공헌과 희생을 함으로써 즉 건국공신 민족으로서 기타 토착민족보다 비길수 없이 크나큰 공헌과 희생을 했다는 자부심를 지니게 되였다.
그다음 건국이후 문화교육방면에서 줄곧 전국의 선두를 달리면서 이러한 민족적 자부심은 더 한층 고조되고 굳게 자리매김한 것이다.
3   작성자 : 인간성은 인류의 보편적 도리
날자:2012-10-07 13:14:19
수많은 민족영재들은 한어와 중국주류사회를 선택했고 나라와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해왔지만 나이가 들면서 마음속엔 적막하고 고국이 더 그려워진다.그러니 이론상으로 조국과 고국을 완벽하게 가를수없는 일이다.
국적은 고쳐도 민족과 부모고향은 바꿀수없듯이.
미국에 살던 러시아에 살던 일본 중국에 살던 부유하고 강성한 한국이 없으면 기가 죽고 맥이 빠져 자신의 정체마저 흐려진다.
오히려 기어코 어느 한편인가 묻고 캐는 편이 의심이 많아 옹졸하고 도덕성 포용성 인간성이 결핍한 무식한 존재로 된다.
바꾸어 생각해보라.한족이 미국에 살면서 대만이나 중국대륙이 그립지 않겠느냐?그립다면 한민족이 한국을 사랑하고 그리워지는 마음을 이해할것이다.
기어코 캐여 묻지않을것이며 물을때 그대로 올가미에 들면서 대답하는 편이 오히려 바보로 된다.
2   작성자 : 하버드- 옌칭연구소에 교환교수는 없음
날자:2012-10-07 12:03:56
"필자는 1987년 9월에 미국의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에 교환교수로 초청되어 《중국과 미국의 조선민족 사회와 문화의 비교연구(The Korean Immigrants Society and culture in P.R.C and U.S.A)》라는 연구를 담당한 적이 있다."

황유복씨가 위에서 주장하고 있는 자신의 타이틀 "엔칭연구소 교환교수"은 정정하셔야 됨니다. 엔칭연구소는 교환교수라는 타이틀로 외국학자들을 초청하지 않읍니다.

1.방문학자(Visiting Scholar)
2.방문연구원(Visiting Fellow)

위의 두가지 타이틀로만 외국학자들이 하버드-엔칭 연구소에 찾아 옵니다. 방문학자나 방문연구원으로 온 분이 교환교수라는 타이틀을 사용하는 것은 학력위조입니다.

한국에서는 하버드-옌칭 방문학자 및 방문연구원 프로그램을 이수한 한국 학자들이 결성한 한국 하버드-옌칭 학회가 정기적인 학술행사를 진행해오고 있읍니다.
1   작성자 : 글과 현실
날자:2012-10-07 11:43:42
글로서만 현실문제는 해결안된다.
농민들은 문화인 지식인 간부들보다 아는게 적어도 발과 몸으로 가장 현실적이고 실리적이며 합리한 자신만의 선택을 취한다.
그들에 비교하면 지식인 간부는 언제나 무언가 고집하며 항상 그들뒤에 떨어져있다.
그들에게 더 많은 실리 기회와 가능성이 있다면 왜 그들은 모두가 한국행을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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