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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
2006년 01월 09일 00시 00분  조회:6380  추천:70  작성자: 황유복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

황유복

나는 열다섯 살 나던 해 시골고향을 떠나 도시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줄곧 도시생활을 해왔다. 도시생활은 모든 것이 편이하다는 리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시골생활을 해본 사람에게는 아쉬운 점도 많기 마련이다. 우선 맑은 공기와 만휘군상의 고요함이 아쉽고 인간의 번뇌를 가시여주고 사람들의 가슴에 꿈을 심어주는 대자연-고기들이 헤엄치는 맑은 냇물, 꽃들이 피여 있는 파란들, 새들이 지저귀는 무성한 숲과 그 숲에 덮여 있는 산들이 그립다.

그중에서도 40년이 넘는 도시생활에서 내가 가장 아쉽다고 생각해온 것은 저녁노을이다. 시골에서 볼수 있었던 아름다운 붉은 노을을 도시에서는 볼수 없다. 도시먼지와 대기 오염물질들이 태양광선을 산란시키고있어 도시에서 볼수 있는 저녁노을은 그저 희뿌옇다. 그렇다 해서 빨간색과 희뿌연 색의 색상의 차이를 탓하는 것도 아니다. 붉게 물드는 저녁노을은 어릴 때부터 나의 꿈이였기때문이다.

나는 길림성 영길현 쌍하진 북쪽에 위치한 신농장이란 마을에서 유복자로 태어났고 두살 때는 어머님까지 여의게 되여 할머님슬하에서 자라났다. 나의 두뇌세포에서 짜낼수 있는 인생의 최초 기억이 바로 서너살 때부터 저녁노을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다.

농사철이 되면 할머니는 날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셔서 밥을 지으시고 내보다 8살 이상인 삼촌과 4살 위인 형님을 깨워서 함께 들로 나가신다. 나는 혼자 집에 남아 자신을 돌봐야 했고 집을 지켜야 했다. 나는 거의 창가에 붙어 앉아 창밖의 세계를 관찰하면서 기나긴 하루를 보내군 했다. 하루시간중 가장 견디기 어려운 때가 바로 저녁무렵이 가까워 올 때다. 배고픔을 참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할머니의 귀가를 기다리는 초조함과 가나긴 고독이 불러오는 불안한 심정이 뒤범벅되여 울음을 자아내게 되는것도 바로 저녁무렵이다. 우리 집에서 서쪽으로 백보쯤 나가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버드나무숲이 있고 숲 뒤에는 송화강의 지류인 오룡하가 남북으로 흐르고 있었다. 강 너머에는 할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논밭이 펼쳐져 있고 더 서쪽에는 우리가 어릴 때 서산이라고 부르던 산들이 이어져 있다. 혼자서 울면서도 눈길은 자연히 집 앞에 난 오솔길을 따라 강가의 버드나무숲에 멈추게 되는데 그것은 할머니가 돌아오실 때 당신의 익숙한 모습이 항상 숲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이였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울음을 뚝 그치게 된다. 강과 논밭은 숲에 가리여 보이지 않고 숲의 꼭대기에는 서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늘을 날아 지나가던 해가 서산 꼭대기로 내려와서 서서히 산뒤로 숨어버리는 과정에 둥근 해와 그 주변은 아름다운 빨간색으로 물들고 서쪽하늘도 형언하기 어려울만큼 예쁜 오렌지 빛으로 변해버린다. 그 황홀경에 빠져 나는 배고픔도, 기다림의 초조함도, 고독과 불안도 깡그리 잊어버리게 된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살고있는 가난한 어린이를 동무해 주기 위해 저녁노을은 거의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찾아주었다.
《내가 좀 더 크면 저기 서산에 올라가 아름다운 노을과 만나볼테야.》
그때부터 노을은 어린 내 가슴속에 간직된 행복이였고 다정한 친구였다.

네댓살 나던 어느 하루, 나는 새로 사귄 옥년이라는 이웃집 누나에게 억지를 부려 그의 손에 이끌려 저녁노을이 질 무렵 서산에 등산할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밖에 서산 정상에서 나는 노을과 만날수 없었다. 서산너머에는 첩첩청산이 이어져 있었고 저녁노을은 수줍은 처녀애처럼 저 멀리 하늘가에 있는 산 뒤에 숨어있었다. 왜 노을이 나를 피했는지를 옥년 누나도 설명해 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크면 노을을 찾아 저 하늘 끝까지 갈거야.》라는 결심을 했다.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남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어려움을 이겨낼수 있는 강한 의지를 키우면서 《저 하늘 끝까지》찾아갈수 있는 능력과 의지력을 준비해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리치를 터득하게 되였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 그 다음날 날씨가 맑아진다. 쉽게 말하면 저녁노을은 세상 사람들에게 다음날의 맑은 날씨를 기약하며 혼신을 불태우는것이였다. 그렇다면 《저 하늘 끝까지》찾아가기 위한 능력과 의지력의 양성도 중요하겠지만 우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인생, 저녁노을과 같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드디여 저녁노을은 찾고 싶은 《친구》나 《행복》의 차원을 넘어서 인생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스승》으로 승화되였다.

어린 시절에서 젊은 시절에까지, 곱게 물드는 저녁노을은 내 전부의 꿈이였다.
사람은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누구나 꿈을 갖기 마련이다. 그 꿈은 어릴 때 찾아올 수도 있고 좀 더 커서나 젊어서 생길수도 있다. 우리는 꿈이 없는 사람을 상상조차 할수 없다. 왜냐하면 꿈이 없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은 있을수 없기때문이다. 지금은 가난하더라도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살면서도 꿈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고 생각할수 있다. 마음속 구석구석에 꿈이 희망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 놓이거나 벼랑 끝에 몰리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재기할수 있다.

소년시절의 꿈은 가난과 고독에 쪼들리던 나의 어린 가슴에 행복을 가득 채워주었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나갈수 있는 능력과 의지력을 키워주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때의 꿈이 나의 인생항로 설정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부모 없이 가난에 쪼들리며 자라난 시골 소년이 대학교수로 클수 있었던 것도 어릴 때의 그 꿈과 련관되지 않을수 없다.

미국의 최고 명문 대학인 하버드 대학에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1987~1988)도, 나는 때가 되면 버릇처럼 숙소였던 데이나스트리트 10번지(DANA st, No.10) 아파트 창문가에 서서 노을을 감상하면서 숙연해지군 했었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아름다운 삶, 쾌적한 삶, 보람 있는 삶에 대한 가치 판단기준은 돈과 권력지위와 사회적 지명도에 따라 판가름되는것이 아니다. 가장 핵심적인 가치기준은 물질적인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다시 말해서 마음의 풍요로움에 있다. 사회와 민족 그리고 나라에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저녁노을과 같이 아름다운 삶에는 풍요로운 마음이 안주할 수 있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 다음날 날씨가 맑아진다. 저녁노을은 세상 사람들에게 다음날의 맑은 날씨를 기약하여 저 멀리 하늘가에서 혼신을 불태우고 있다.

200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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