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여났던 신농장 마을은 전쟁과 홍수로 말미암아 폐허로 되여버렸고 우리 집은 쌍하진에 들어와 곁방살이로 전전하다가 1947년 쌍하진이 해방되면서 비로소 내 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1948년 봄에 실시된 토지개혁과정에서 우리 집은 적빈호로 평가되여 논밭과 함께 쌍하진에서 제일 큰 부자가 살던 집을 분여받게 되였다. 원래 집주인은 국민당군 장교인 아들을 따라 남방으로 도망간 대지주였다. 남향으로 된 3칸짜리 집과 동서 두 줄의 행랑방이 높은 토담에 둘려있어 우리는 어릴 때 ⟪담장마을⟫이라고 불렀다. 우리와 함께 여덟 집이 담장마을에 이사들었다. 식구가 기중 적은 우리가 넓은 남향집을 차지했는데 지금의 표준으로 말하면 우리 집의 인구당 주거면적이 가장 큰 셈이였다.
그래서인지 겨울날 저녁이 되면 동네 할머니들이 저녁밥상을 물리고 우리 집에 모여들었다. 소학교에 다니던 나는 저녁밥술을 놓기 바쁘게 콩기름 등잔아래서 숙제를 하기 시작한다. 할머니가 주방에 나가 설거지하는 동안 숙제를 끝마치고 나면 동네 할머니들이 한둘씩 들어선다. 할머니들은 화롯불을 중간에 놓고 둘러앉아서 긴 담뱃대로 담배를 피우면서 마을뉴스들을 교환한다. 그러다가 내가 ⟪할매요, 옛말 들려주세요.⟫라고 요청을 하면 ⟪응, 그래 이바구 해주마.⟫하고 이야기 주머니를 끌러놓기 시작한다. 나는 할머님들의 옛말을 듣기 위해 담뱃불을 붙여드리고 화로에 감자를 묻어 잘 구워서 대접하기도 했으며 시원한 찬물을 펌프에서 잣아다 드리기도 했다. 도깨비야기나 귀신이야기를 금방 듣고 찬물주문을 받게 되면 나는 어두컴컴한 주방으로 들어설 때 무서움 때문에 머리칼이 쭈뼛해지지만 그 다음 이야기를 듣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물을 떠다 바친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거의 모두 ⟪옛날옛적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로 시작된다.
그래서 어릴 때 나는 태고적 호랑이는 할머님들처럼 담배를 무척 좋아하는 줄로 알고있었다. 고중을 다니면서 조선력사를 공부하다가 임진왜란(1592년~1599년)때 담배가 조선에 전래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고, 대학시절 미술사 공부를 하다가 ⟪범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토끼⟫라는 조선조말기의 민화를 보면서 할머님들이 옛말 서두에 쓰고 있던 말의 유래를 파악하게 되었다.
여하간 어릴 때 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 주머니는 밑도 끝도 없다고 믿고 있었다. 듣고 들어도 끝이 없는 할머니들의 옛말은 한결같이 화롯불에 둘러앉아 나누어먹던 군 감자와 같이 구수하였다. 부모의 병구완을 위해 벼랑중턱에 자라는 산삼을 캐오는 효자, 효녀의 이야기, 가난하거나 벼랑 끝에 몰린 약자를 도와주는 정의로운 사나이의 이야기, 사랑에 충실한 남과 녀의 이야기, 힘은 약하지만 지혜로 강자를 이겨내는 해학적 이야기, 나쁜 일만 골라하다가 벌 받는 교훈적 이야기⋯⋯ 할머니들의 이야기동산에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즐거움과 함께 꿋꿋한 힘, 반짝이는 지혜, 따스한 우정, 달콤한 사랑, 소박한 꿈, 훈훈한 인정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러한 우리 민족전통문화의 풍속, 습관, 생활, 사상, 신앙, 가치관, 꿈과 소망, 웃음과 지혜, 사랑과 인정이 가득 차있는 ⟪담장마을⟫집에서 다섯살에서 열다섯살까지 10년을 살아왔다.
그 집에서 구수한 군 감자를 먹고,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흥미있게 들으면서 우리 전통문화의 감각을 체험할수 있었고, 올바른 삶의 자세를 터득할수 있었으며 심미감, 정의감, 의지력, 책임감, 동정심, 상상력을 키울수 있었다.
현재의 시점에서 돌이켜보아도 나는 그때가 너무나 행복했다고 생각된다. 물질적으로는 누구보다 가난했지만 정신적으로 민족문화의 모유(母乳)를 마음껏 흡수하면서 자랄수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래서 나는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갖고 대학에서 한족(漢族)의 주류문화를 더욱 진취적으로 배울수 있었으며, 미국이나 카나다와 같이 완전히 다른 문화권 나라들의 대학 연단에 섰을 때도 민족문화에 대한 긍지감 때문에 태연하게 강의를 림할수 있었다.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여 질수록 우리는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 그래야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을수 있고 세계화에 대응할수 있는 용기를 갖출수 있게 된다.
나는 가끔 저녁이나 주말에 부모들과 함께 텔레비전 앞에 앉아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거나, 혼자서 치고 박고하는 전자게임을 하고 있는 애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너무나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른들을 위한 드라마를 보면서 그들의 동심은 구겨지고, 폭력을 내용으로 하는 전자게임을 탐하면서 어린 나이에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북경에서 가정을 이루었다. 아들애가 태여난 후, 어릴 때부터 나는 애에게 할머니들의 옛말을 더듬어 자기 전에 들려주었다. 그것이 버릇처럼 되여 우리 애는 항상 나와 같이 자야 했다. 그런데 한어로 들려주는 우리의 옛말, 그리고 온돌도 없고 화로도 없고 군 감자도 없는 아파트 방 침대에서 들려주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자란 내 아들은 정녕 어느 정도 우리 전통문화의 정서를 리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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