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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적마(赤馬),여름 지나다
김경화
《집에 좀 다녀가거라.》
어제저녁, 여느때와 같이 엄마는 전화가 왔고 여느때와 꼭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가거라가 마치 들판에 매놓은 소가 허망 죽어서 혼자서 휘여휘여 끌고오다가 요행 누군가를 만나 도움을 청하는 농부처럼, 힘에 겨웁다는것이였다.
내가 엄마를 알아서부터 쭈욱 보아온 엄마의 모습은 언제나 애절하거나 혹은 나약하거나 그런거였다. 그러나 막바지에 다달은듯한 힘겨움은 여태 처음이였다. 그냥 여느때처럼 지나칠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나,
하얗게 밤을 새웠다.
J.
어쩌면 J때문이였을지도 모른다…
고민을 했다.
집을 나와서 3년만에 처음 하는 고민이다.
잇히히~ 오싹 소름이 돋게 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집을 떠올리면 영낙없이 떠오르는 잇히히~ 소리. 통나무를 마구 엮어 만들어진 울바자를 부여잡고 네모진 얼굴에 초점없는 눈방울을 희뜩이는 녀자가 나를 째려보며 서있다. 오래전부터, 그 녀자를 알았던 그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나는 그 녀자로부터 도망치는 작업을 열심히 해왔던것일가.
그러나 단발머리 소녀가 서른살 가까워오는 녀자로 되기까지 나는 한시도 그 녀자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꽝~ 천둥이 친다. 이어 번쩍번쩍~ 빛줄기가 작은 내 방문을 때린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내리꽂히는 비줄기…
나는 아침밥도 건너뛴채 서둘러 준비를 했다. 드디여 길을 떠나기로 한것이다. 3년전에 내가 떠났던 그 곳으로.
시계를 보니 십분전 여덟시. 점심전에는 도착할수 있을가? 룡정-화룡구간이 도로보수를 한다고 들었는데…
화장은 생략하기로 했다. 웬지 그래야만 할것 같았다.
어두운 톤의 반팔티에 흰색의 반바지를 입고 백을 들고 나는 집을 나섰다.
나의 이런 차림을 J가 본다면 어떨가? 이런 나의 외출, J는 본적이 없다. 맨 얼굴로 밖에 나간다는것 자체를 거부했던 나였으니 말이다.
선물이라도 살가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이제 나는 비속으로 간다. 그것도 3년동안 발길 한번 돌리지 않던 곳으로 간다. 풀릴듯 풀리지 않는 실마리의 미궁같은 답을 위해서라도 나는 이 길을 떠나야만 하는것이다. 처음으로 내게 남자의 어두운 공포감에서 탈출하여 조금씩 조금씩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한 J. 그런 나의 감정이나 J가 나를 향한 그 애틋함을 내가 언제까지 간직해야 할지 나는 그 답을 찾아서라도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다.
누군가 사랑은 리유도 조건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J와 나사이를 3년간 오간 그 시간과 추억과 우리의 마음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마음과 모순되는 J의 안해를 생각할적마다 아릿하게 맞혀오는 씁슬함. 그것은 마치 미궁과도 같은 시커먼 혼돈의 숲이였다. 그 숲속에서 나는 어찌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하고 길 잃은 한마리의 적마(赤馬)처럼 무작정 헤매고 방황했었다.
적마,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스스로를 길을 잃은 한마리의 붉은 말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있었다.
3년전 집을 떠나오던 그때, 기차역에서 차표 한장 들고 우두커니 서있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시대에 걸맞지 않게 턱수염을 길게 자래운 남자였다.
가방을 들고 기약없는 미래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서있는 내게 마침내 그 수염 긴 남자는 다가왔고,
《혼인에 곡절이 많을 처녀구만?》
《네?》
눈을 새똥그랗게 뜨는 나.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지?》
《78년생인데요. 왜요?》
《후―》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상대로구만. 적마라… 속에서부터 끓어번지는 이 엄청난 불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혼인을 일찍 하면 필시 깨여질 혼인을 하겠고… 후실로 들어가면 그런대로 아들 하나는 보겠다만… 해도 살이 너무 세여… 험난한 인생 앞으로 어찌 살아가노.》
《…?》
남자는 마치 산속에서 백여년 도를 닦은 신선처럼 말하고있었다.
(꽤나 싱거운 사람이네.)
전에도 나는 이런 소리를 엄마로부터 심심찮게 들었다. 내 이마에 삼태성이 떠있었고, 그것이 지나가는 어떤 할머니를 말을 시켰는데, 울면서 젖달라고 보채는 내 앞에 이런 말을 휙 꼬아던지더라는것이다. 넌 적마야. 신랑을 잡아먹을 애라구. 액을 면하자면 후실로 들어가야겠어.
후실, 당치도 않은소리!
그러나 그 이후의 삶은 나를 본의 아니게 자꾸 다른데로 끌고가고있었고 그 할머니나 수염 긴 남자의 예언을 실증이라도 할듯이 현실은 나한테 시커먼 그늘만 던져주고있었다. 따라서 나는 보이지 않는 두려움속에 망연해 했고 또한 무서움에 떨어야 했던것이다.
아, 적마여서 불행할수밖에 없는 녀자, 나. 그렇다면 나는…
커다란 혼돈속을 허우적거리며 나는 갑갑하게 헤매고있었다.
아버지.
나를 길러주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나는 집에 가기를 거부했었다. 그동안 간간히 전해오는 소식들에 마음이 아파나기도 했지만 기어코 고향행차만은 병적이지 않을가싶도록 무섭게 피해왔었다.
집에 다녀가거라 하면서도 오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와서 집에 다녀가거라 할 때마다 알았다고는 하면서도 3년동안 한번도 발길을 돌린적 없는 나. 그러나 이제 나는 그 혼돈속에서 탈출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비속을 뚫고 달려가야만 하는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는 물에 빠져본 사람의 경험담이 가장 좋은 구명줄이 되듯이 나 역시 그러하리라. 3년전 고향을 떠나올 때에도 비는 저렇게 모질게 내렸음을 나는 기억한다.
생각밖으로 도로사정은 좋았다. 갓 보수한 도로라 비속이라지만 택시는 별로 머뭇거리지 않고 달린다. 길옆에 코스모스가 무더기로 쓰러져있었다. 운전수는 자꾸만 후시경을 통해 히끗히끗 나를 돌아본다. 아무래도 이 폭우에 무려 백리넘는 길을 떠나는 내가 이상할것이다.
그러나 말거나 나는 전혀 그런 운전수의 눈길따위는 의식하지 못한듯 비물에 얼룩진 차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어디쯤일가? 검은 메돼지가 무리로 내려오고있었다. 얼핏 보아서는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잘 구분이 안될만큼 완벽한 조형물이였다.
저 메돼지는 이 비속에 춥지 않을가? 저들에게도 가야 할, 아니 갈수 있는 집이 있을가?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비속에서도 산야는 불그스름하게, 노르스름하게 물들어가고있는것이 알렸다.
이제 좀더 지나면 빨갛게 노랗게 단풍이 들겠고 그담엔 눈도 내리겠지. 그리고 또 어느날엔가는 새싹이 돋아나고. 모든것이 바뀌는듯 하지만, 어쩌면 돌고 또 돌아서 결국은 원점으로 복귀하는 자연의 순리. 세상의 모든 명과 암, 아픔과 고통, 그러한것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여오는구나.
J,
지금쯤, 당신은 무얼 하고있나요?
눈이 부시게 하얀 카텐속을 뚫고 들어오는 해살과 더불어 한껏 기재개를 켜고 일어났을 당신, 당신 눈에도 저 갈리고 바뀌는 계절은 보이나요?
당신은 당신의 안해에게 말할수 없는게 너무나 많다고 하셨죠.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제가 당신에게 말할수 없는것 역시 아주 많음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당신은 당신과 당신안해는 마치 두마리의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듯 연출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숨기고 은페하면서 살아오고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관계가 진저리나고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알고있습니다. 당신은, 그 두마리의 고슴도치같은 관계에서 영원히 해탈할수 없다는것을. 아니, 당신 스스로가 어쩌면 그것을 원하고있는지도 모른다는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당신,
저는 스스로 저 자신이 어쩌면 역마살이 겹겹이 쌓여있는 한마리의 적마가 아닌지를 의심하는, 혼돈속에서 방황하는 적마임을 아시나요?
당신, 머리가 아파옵니다.
아마 나는 조금 눈을 붙여야 할것 같습니다…
덜컹~ 갑자기 차가 급정거를 했고, 나는 화뜰 놀라 깨여났다.
그새 잠이 들었던것인가. 수면제를 한줌씩 먹어도 잠이 안들던 내가 달리는 택시속에서 안일하게 잠들수 있었다는것이 아이러니하지 않을수 없다.
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택시는 울퉁불퉁한 흙길로 접어들고있었다.
어디쯤일가? 운전수에게 물어볼수도 있었지만 나는 기어이 입을 다물고있었다. 그러자 인차 눈에 익숙한 작은 시장이 나타났고 서문경이 노닐던 기생마루같은 이층집도 보였다.
송하평― 이제 차는 이십분이내로 목적지에 도착할것이다.
힐긋, 왼손을 들어보니 시간은 열시 16분을 넘어서고있었다. 예상보다 빨리 달려온것이다.
비줄기는 아까보다 많이 수그러들어 투두둑 투두둑 힘없이 내리꽂히고있었다.
운전수가 또 한번 피뜩 나를 돌아본다. 대체 이런 비속을 뚫고 시가보다 배나 되는 택시값을 지불하며 달려와야 할 그 무엇이 저 산골마을에 있는지 도무지 알수 없다는 표정이다.
《가을비치고는 정말 큰 비네요…》
운전사가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린다.
나의 반응을 기다렸겠지만 그러나 나는 표정을 더한층 엄숙하게 가다듬고있었고 더욱 근엄해지고있었다.
무료한 정적을 깨뜨리려고 애를 쓰는 운전수와 그런 운전수를 향해 몸으로 항거하는 내가 서로 버티고있는속에서 휘익휘익 택시는 3년전, 내가 떠나던 곳으로 이제 막 다닫고있었다.
사랑했나봐 잊을수 없나봐… 느닷없이 울리는 핸드폰벨소리.
J, 나는 보지 않고도 전화를 걸어온 이가 J임을 알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J를 위해 특별히 설정한 J만의 벨소리였던것이다.
나는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며 벨소리를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추억은 나를 3년전, 그 밤으로 끌어간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였지.
《선아, 이년.》
번쩍~ 꽈당~ 번개불빛에 이는 천둥이 집을 들썩 들었다놓았다.
무서움에 잔뜩 움츠린 나의 눈앞에 나타난 섬찍한 한쌍의 눈.
《아부지…》
그때 갑자기 눈앞이 번쩍해지며 뻥뻥해오는 머리. 얼떨결에 얼굴을 싸쥐였고 그 손으로 얼굴을 만지는 순간, 기함했다.
피~ 검붉은 피가 살인마의 그것처럼 흉측스럽게 손바닥으로 흘러내리고있었다.
《선아!》
어데서 나타났는지 그때 엄마가 달려들어와 나를 마구 그러안았다.
《니들 둘다 오늘 내 손에 죽었다!》
날뛰는 야수 한마리.
《이 빌어먹을 년, 에미년 닮아서 쪼고만게 벌써부터 남자를 밝혀?!》
《아니? 남자라니요?!》
수건으로 나의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던 엄마의 손이 뚜욱! 허공에서 멈추었다.
《물건너 홍가네 막내아들하고 니가 그런 사이라며? 박대장네가 초두부를 했다고 해서 갔다가 내 그 소리 듣고 이가 갈리더라. 이년아. 니가 홍가네 막내아들하고 뻘건 대낮에 저 앞산에서 손잡고 다니는거 박대장마누라가 다 봤다더라. 망칙한 년!》
한껏 비웃듯 야멸차게 노려보며 한마디 한마디 이새로 뱉아내는 아버지.
《아니, 그게 사실이니? 동하, 동하랑 너 그러는거니?》
엄마의 눈이 공포에 떨고있었다.
《엄마, 나 스물두살이란 말이예요. 나만한 나이의 녀자애치고 남자 한번 안사귀여본 애는 나밖에 이 동네에 더 있어요? 그리구 엄마, 동하와 나 진심으로 좋아한단 말이예요.》
나는 스스로도 놀라고있었다. 나에게 공포와 무서움의 대상으로 태산같게만 마주오던 그 거물앞에 드디여 나는 대항하고있었던것이다.
《뭐야, 이년이? 입은 살았다고… 오냐 바람재녀편네 딸답다. 오냐오냐.》
막걸리냄새에 절은 곰팡이냄새가 마구 섞인것 같은 퀴퀴한 냄새가 전해오는 서슬에 나는 그만 구역질이 일었다.
아~ 아~
《나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구요!》
《뭐라, 이년이 주둥이는 살아가지고!》
이내 재떨이가 날아왔고 등긁개가 날아왔다.
끙~ 그때 비명같은 어떤 소리가 들린다. 언니가, 언니가 돌아눕는 소리인것이다.
《여보, 애 잡겠어요.》
엄마는 나를 힘껏 그러안았고, 우리 모녀의 등뒤로 투덕투덕 비자루세례가 떨어졌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겨난것일가. 나는 와락 몸을 일으켜 아버지를 있는 힘껏 떠다밀었다.
무방비상태였던지라 아버지는 힌들 나가 떨어졌고,
《아아~ 선아 쎄다. 아부질 막 때린다.》
잇히히히~
초저녁부터 누워서 배꼽을 다 드러내고 세상모르고 자던 언니가 떠들썩한 소리에 깼는 모양, 소름끼치는 웃음을 란발하고있었다.
나는 무작정 앞으로 뛰였다.
욕설과 고함소리가 등뒤에서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앞으로 달리다가 멈춰서보니 강물소리만 쏴쏴~ 소리치고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가.
《선아.》
동하였다.
《선아야, 너… 너…》
《흑, 흑…》
나는 동하의 품에 얼굴을 묻고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어떻게 알구 왔어?》
우리는 비를 피해 강옆 버드나무아래에 가지런히 앉았다.
《아까 너네 아부지가 박대장네 집으로 봉지술을 들고 가는걸 봤어. 그래서 온저녁 근심하다가 이리로 나와본거야.》
《너 어떻게 할거니?》
동하가 물어왔다.
《글쎄… 나 더는 집에 못있겠어. 어데론가 떠나고싶어.》
《선아…》
동하가 나를 껴안았다.
《바람쟁이 년! 바람쟁이 년!!》
순간을 같이 하여 뇌리에 질호처럼 박혀오는 소리. 그 가운데 머리를 부여잡고 울기만 하는 엄마가 보였다.
내가 철이 들면서 제일 먼저 귀못이 박힌 소리가 바람쟁이 년이였고 가장 익숙해진 소리 역시 그것인것 같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소리죽여 울기만 하면서 빌기만 했고 나는 그런 엄마가 한없이 싫기만 했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웬지 그 도화선의 끝초리쪽이 나를 향하고있음을 언제부터 나는 아프게 느껴야 했었다.
언니, 그리고 언니가 있었었지.
느닷없이 잇히히 하고 소름끼치는 웃음을 란발하는 언니, 언니는 항상 나를 괴롭히군 했다. 느닷없이 꼬챙이로 나를 찌르는가 하면 내 책가방에 문득문득 돌멩이나 개구리같은것을 집어넣어서 나를 당황하게 했다. 나는 그런 언니가 싫었다. 애들의 놀림감으로 되는 언니가 싫었고 누구 동생이라는 소리가 죽기보다 싫어서 부러 애들앞에서 언니를 놀렸고 무섭게 굴었다.
한번은 애들한테 놀림당하고 우는데 언니가 다가왔다.
코가 묻어 반들반들한 손수건을 내미는것이였다.
《퉤, 다 니때문이야. 모든게 니때문이야! 죽어, 죽어!》
나는 땅에 딩굴며 행악질을 했고, 그날 언니는 웬 일인지 나를 혼내지 않고 퀭한 눈으로 손수건을 거두지 못한채 어쩔바를 모르고있었다.
엄마,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것이다! 나는 왜 그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던것일가. 엄마처럼 산다는게 어떤건지는 딱히 모르지만 바람쟁이 년이란 한마디는 결코 좋은 말이 아니라는것만은 알고있었다.
나는 동하를 왈칵 떠다 밀치고 마을을 향해 뛰여갔다.
《선아! 선아!》
등뒤에서 동하의 부름소리가 비소리와 섞여 울려퍼졌다.
달음박질치듯 닫다가 숨이 차서 멈춰섰을 때 내 앞을 가로막은건 우리 집 울바자라기보다는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면서도 또 사랑할수밖에 없는 그래서 더 화가 나는 엄마였다.
《엄…마…?》
나를 기다리기 위해 거기 꽤 오랜 시간 버틴 모양이였다. 엄마는 옷이 다 젖어있었다.
《아부지도 자고 언니도 잔다. …사랑채에 가서 엄마랑 잘가?》
엄마는 나를 돼지죽 끓이는 집과 붙혀 지은 사랑채로 끌었다.
겨우 3평방이나 될가 한 온돌. 시큼한 돼지죽냄새. 우리 모녀는 젖은 옷을 벗어서 바줄에 널어놓고, 나란히 누웠다.
따스했다. 몇시쯤 됐을가? 밖이 고요한걸 보니 아마 자정이 넘고 비도 끊은듯 했다.
그제사 나는 얼어든 몸을 의식했고, 움츠렸다. 어느새 갖다놓았는지 엄마가 탄자를 구석에서 집어들어 나한테 덮어준다. 그리고 살며시 그 속으로 들어온다.
《선아, 너 래일 떠나거라. 엄마가 돈도 준비해놓고 그랬어. 연길에 가면 일자리 많다더라. 언니땜에 니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아부지한테 혼나고… 어디 가면 집보다야 못하겠니? 나야 방법없이 이대로 쭈욱 살아야지만 너는, 너는 잘 살아야 한다. 어디 간들 니밥 한술 못먹겠니. 흑~》
엄마, 엄마는 왜 이토록 바람쟁이 년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구박받으며 사는건데? 대체 무슨 일이 있는거야? 나는 속으로 웨치고있었지만 그것은 내 가슴속에서 소용돌뿐 출구를 찾아 나오지는 못하고있었다.
돼지죽냄새속에서, 까만 어둠을 타고 밤은 그렇게 깊어갔고, 어느새 나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후, 이마의 상처가 거의 아물었을 때 나는 엄마가 알뜰히 차려준 행장과 돈 오백원을 쥐고 무작정 연길로 가는 뻐스에 몸을 실었다.
엄마처럼은 살지 않으리라, 속으로 부르짖었다…
나는 J를 떠올렸다. 그리고 밤마다 나를 괴롭히던 악몽…
밤이면 밤마다 나는 거의 산처럼 뻗치고 섰는 정체모를 녀자를 만난다.
《화냥년, 바람쟁이 년.》
마구 떨어지는 구타와 함께 썩뚝~ 머리카락이 잘려나가고 급기야 옷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언제나 바람부는 들판에 찢어진 옷가지를 걸치고 그 정체모를 녀자에 의해 한없이 초라하게 던져져버리는것이였다. 그리고 다음순간, 나는 놀랍게도 그 던져진 녀자가 바로 나 자신임을 보군 했다. 그런 이튿날은 아침에 일어나면 항시 허리가 쑤시고 몸 전체가 지긋지긋 아파났다.
흙탕물에 18이라는 수자를 겨우 알아볼수 있는 도로표시판이 보였다.
화룡시가지에서 18키로 떨어진 곳. 이름하여 청산. 이제 조금 더 가면 청산마을에 들어설것이고 나는 3년만에 엄마를 만나게 되고 내가 자란 집에 들어설것이다. 운전수와의 말없는 전쟁도 곧 끝나겠지.
문득 이상한 감각이 맞혀와서 눈길을 그쪽으로 꼬아보니, 세찬 비속임에도 불구하고 국방색 비옷을 걸친 사람 하나가 있었다.
일어설 때 구부정한 뒤모습과 그다지 날렵해보이지 않는 몸동작은 보이지 않는 그의 나이를 말해주는듯싶었다. 중키에 조금 살집이 있다싶은 그런 몸매였다. 꽉 낄 정도로 팽팽한 비옷이 그렇게 말해주고있었다.
허리를 굽혔다 폈다하면서 무언가에 아주 몰입한듯 해서 자세히 보니, 돌멩이따위를 비물에 패인 웅뎅이에 처넣기도 하고 높은 곳의 흙을 삽으로 퍼서는 낮은 곳에 놓고 쭈욱 그러고있었다.
뭐야? 이 시골길도 보수하는 사람이 생겼나?
헌데 비를 맞으면서까지…
어쩌면, 어쩌면 저 남자 역시 비속에서 울부짖는 말 한마리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저 남자는 어떤 색갈의 말일가?
적, 등, 황, 록, 청…
딱히 어느 색갈의 말인지는 한순간에 알수 없었지만 그러나 웬지 나는 남자 역시 내가 모르는 어떤 색갈을 지닌 한마리의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마을은 가까워오고, 택시는 그 사람을 지나쳤다.
나는 내가 살던 집을 눈빗으로 찾았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자로 잰듯 가?S한 널판자로 된 울바자. 거기에 하얀 회칠. 울바자 량옆으로는 흐느러진 코스모스들이 간밤에 내린 비에 쓰러졌던것일가. 군데군데 흙이 달라붙어있었지만 누군가의 손에 의해 알뜰하게 일으켜세워져 바자허리에 묶여있다. 내가 잘못 왔지는 않나 했지만 그러나 너무나도 익숙한 날아갈듯한 청기와며, 마당 한쪽에 여느때처럼 놓여있는 선매돌이며가 이곳이 바로 내가 오기로 했던 곳임을 말해주었다.
나는 차를 세우라고 갈린 목소리로 웨쳤다.
운전수는 그러는 나를 사뭇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나는 약속했던 돈을 치뤄주고는 돌아섰고 이로서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갈것이다. 어쩌면 인생 자체가 바로 이렇지 않은가싶기도 하다. 타인으로 살기.
눈에 익은 파란 뼁끼칠을 한 출입문 손잡이를 잡는 내 손이 자르르 떨리고있었다.
《엄마…》
구들을 쓸던 참이였을가, 구들중간에서 서성이던 엄마의 손에서 툭~ 하고 비자루가 떨어진것은.
《선아!》
엄마는 그제는 맨발바람으로 봉당에 내려섰고,
《니가 왔구나. 드뎌 왔구나!》
어느새 맺히는 하얀 이슬.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하며 허구프게 웃었다.
《엄마, 올라가요.》
《오, 그래, 올라가야지.》
헤덤벼치며 엄마는 나의 손에서 핸드백과 비닐주머니를 빼앗듯 나꿔챘다.
모든것이 익숙하다. 때묻은 테레비도 그대로, 나의 옷장도 옛날 그대로다. 내가 없는동안 나의 물건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제자리에 고스란히 자리매김하고있었다.
《엄마, 이제 올 때 이상한 사람 봤어. 길을 손질하는 사람같던데, 이 비속에 왜 그러지?》
길을 수리하던 남자가 궁금해서가 아닐것이다. 그동안 엄마하고 쌓였던 서먹서먹한 감정때문에 지나가는 소리를 지껄였을것이다.
《그으래?》
엄마는 이상하게 눈초리끝을 어디다 갖다댔으면 좋을지 몰라한다.
《선아, 너 좋아하는 칼치졸임이랑 달걀지짐이랑 만들어놓았어. 떡도 했다. 니가 제일 좋아하는 시루떡을. 마침 점심때를 맞춰서 면바로 왔구나.》
그러고보니 가마목이 사뭇 분주하다.
J.
언젠가 제가 당신에게 엄마가 만든 시루떡에 대해 말했었죠? 찹쌀과 매입쌀을 적당하게 섞고 팥보다는 올새알열콩을 박고 한 엄마의 시루떡을요. 매끈한 쌀가루와 달콤한 열콩이 어우러지고 적당히 열콩물이 묻어있어 더욱 싱그러운 그 맛을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말했습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당신도 먹어보고싶다구요. 당신도 이전에는 당신엄마가 해주셨던 열콩을 넣은 시루떡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구요.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 살던 시골을 떠나 멀리멀리 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도시에 남기 위해 도시출신의 안해와 결혼한후부터 당신은 엄마가 한 시루떡을 먹을수 없게 되였습니다. 이제 당신, 당신은 당신 어머니가 하신 시루떡만이 아닌 어쩌면 제 어머니가 하신 시루떡도 먹을수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J. 어쩌면 우리는 도로표시판을 잘못 보고 길에 들어선 려행객은 아닐가 이 순간 생각해봅니다.
《너한테 매번 집에 다녀가라는 전화를 걸고는 그냥 버릇처럼 이렇게 니가 좋아하는것들을 만들어놓곤 했었단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니가 오지 않아서 결국 버리군 했었지만.》
희끗희끗한 머리, 좀더 깊어진 주름살. 엄마는 그새 많이 늙어있었다. 어쩔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리라. 허나 웬지 모르게 생기있어보이고 기운이 넘쳐보이는 내 마음속 저 느낌은?
엄마는 아버지의 죽음이거나 정신질환을 앓고있는 언니에 대해서는 전혀 말을 꺼내지 않고있었다. 엄마와 나사이에 어떤 규제로 남아있는 금지사항, 그것을 깨고 내가 먼저 물어볼수도 있었으련만 나는 종내 입을 열지 않았다.
가방의 쪼로로기를 열었다. 먼가 다른것에 집중하고싶었던것이다.
나의 핸드백은 대체로 깨긋했다. 언제나처럼.
나는 조심스레 핸드백속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빨간색의 가죽지갑, 내가 선호하는 색이다. 한켠에는 은행카드 두개가 나란히 꽂혀있고 다른 한켠에는 나의 사진이 조그맣게 오려진채로 꽂혀있었다.
소지품이래야 별것 없다. 핸드폰과 수시로 꺼내볼수 있는 나무로 된 손거울 하나와 분첩 그리고 립스틱, 눈섭그리개 등 간단한 화장품이 들어있는 작은 헝겊필통, 휴대용물수건과 휴지, 엄마가 수놓아서 만들어주신 낡은 손수건이 전부이다.
J는 무슨 고물같은 손수건을 갖고다닌다고 놀렸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 내게 엄마를 떠올릴만한 물건이 없음을 그가 어찌 알랴.
나는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다가 도로 가방에 집어넣었다.
핸드폰을 펼쳐보았다. 시골이라 신호가 없다는 표시가 나와있었다.
J의 이름으로 음성메모가 하나 들어와있었지만 나는 그냥 무단삭제를 하고 핸드폰을 꺼버렸다.
갑자기 아버지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스무살이 넘도록 한집에서 산 아버지, 어쩌면 나는 그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비통에 땅을 쳐야 하고 그리움에 떨어야 했을것이다. 그렇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면 그저 어둡고, 시리고, 아픈 기억들뿐인것을 어찌하랴.
어느날, 비를 후줄근히 맞고 밖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반겼을 때 랭랭하게 밀치던 그 차거운 손이라니.
《내 곁에 오지 마랏!》
그것은 어린 나에게 얼마나 혹독한 시련이였던가. 그리고 그것은 후날 아버지가 술마시면 잡아댕기던 머리끄뎅이와 화가 나면 주먹으로 상을 치며 나한테 나가라고 호통치던 기억과 더불어 내 마음에 앙금처럼 쌓여있는것이다.
3년동안 조금씩 없어지고 조금씩 사라져서 이제 나 자신도 다 잊은줄 알았던 그것들이 3년만에 다시 돌아온 이 집에서 또다시 살며시 꼬리를 들고있을줄이야.
《잇히히히~ 주서온 아다, 주서온 아.》
퀭하니 초점 잃은 눈을 한 녀자아이 하나가 나무꼬챙이로 나를 찌르며 횡설수설한다.
《에구, 이 미친것이, 제 동생을.》
엄마는 그때마다 언니를 밀치며 나를 그러안고 달래곤 했고, 나는 공포속을 오락가락 헤매야 했었다.
누군가 이 집에 들어오고있다, 고 느낀것은 그때였다.
전광화석처럼 익숙한 그림자 하나. 어데서 본듯 한 푸른 비옷의 사내.
내가 아까 길에서 본, 길을 수리하던 남자를 막 떠올리는 사이 그 남자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삽을 처마밑에 세우고 출입문을 소리없이 열고 들어서는것이였다.
찰나, 허공에서 부딪힌 여섯개의 눈…
나는 그때 어쩌면 하늘을 날으는 천마 한마리를 봤는지도 모르겠다.
《어머, 이 비에 어데 가셨댔나유?》
엄마가 황급히 그리고 당황해하며 그 남자에게 수건을 건넸다.
《아… 저 길 좀 손보러…》
남자는 어머니가 건네주는 수건을 한손으로 받으며 다른손으로는 안경을 추스린다. 그러는 한편 남자의 눈은 내내 나한테서 판박이처럼 떨구지 않고있었고.
오래전부터 알고있던 사람처럼 느껴지는 익숙함. 부우연 안경알너머임에도 불구하고 섬광처럼 예리한 저 눈빛. 누구라도 편하게 말을 걸수 있을것 같은 수더분함이 몸 전체로 흐르고있다. 누구일가? 사람에 대한 첫인상치고는 정말 처음이였다. 그것도 남자에 대한 첫인상이라면.
《선아?》
남자와 나 사이에 흐르고있던 그 답답한 장벽을 먼저 깨뜨린건 결국 남자였다.
《녜?!》
화들짝 놀란건 나였다.
《오~ 저…》
엄마는 이제 시나브로 떨고있었다.
남자가 침울해지고있었다.
《저 뒤집 사는 분이신데… 아니 뒤집에 이년전에 이사오신 분이신데, 내가 많이 도움받고있어.》
《…》
《인사해라. 편할대로 부르고.》
엄마는 말까지 더듬고있었다. 그리고 저 멈출 곳을 찾지 못하여 헤덤비는 눈빛이라니.
그 순간, 나는 더이상 침울해질수 없는 남자의 눈빛속에서 어떤 무너진 기대감같은 실의를 읽어야 했던가.
《선아야, 어서 상 놓고 밥 먹자.》
엄마는 떨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는듯, 목소리를 겨우 짜냈다.
밥상은, 그러나 풍성했다. 소고기졸임, 감자와 고추만을 넣은 된장찌개, 오이랭채, 소천엽생회, 칼치졸임 그리고 큰 양푼에 담은 시루떡, 닭알지짐.
우리 셋은 마치 한집식구마냥 상에 동그랗게 마주앉았다. 나는 시루떡을 하나 쥐고 야금야금 톱질을 하고있었고 엄마는 식장안에서 술병과 술잔을 내리워 남자에게 내밀었다. 그 옛날 아버지가 마시던 흰 바탕에 시퍼런 줄이 두줄 쭉쭉 건너간 엉성한 공기가 아니였다. 작고 앙증맞은 새하얀 사기술잔이였다.
《선아야, 니가 좋아하는것들이다. 많이 먹어.》
엄마는 여전히 죄지은듯 고개를 숙이며 낮게 말했고 남자는 묵묵히 사기잔에 술만 기울이고있었다.
집을 떠난지 3년만에 마주앉은 밥상. 나는 조심스레 토장국에 숟가락을 넣어 조금 맛보았다. 순간, 온몸에 차오르는 격동이라니! 오래만에 만난 엄마한테서도 느끼지 못했던 격동과 설레움을 그 한숟갈의 토장국에서 감지하고있었던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시루떡을 한입 베물었다. 목이 꽉 멨다. 나는 바삐바삐 일어섰다. 자칫하면 눈물이 떨어지려고 했으므로 일어나지 않을수가 없었던것이다.
《왜 더 먹지 않고?》
엄마의 파르스름한 목소리.
《아까 차에 왔더니 좀 불편해서요… 두분 많이 드세요.》
나는 애써 웃음을 만들며 웃목에 비켜앉았고 엄마는 먹는지 마는지 한본새로 땅만 보고 앉았고 남자는 남자대로 술잔만 부지런히 기울이고있었다.
이름모를 남자의 정체.
하지만 나는 이미 남자를 다 알고있는지도 모른다.
비소리를 들으며 나는 몸을 한껏 옴츠렸다.
《나 먼저 가보겠수. 오래만에 딸하고 회포도 풀구… 나 소여물도 주구 뒤집에도 들러보구 올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내 부시럭부시럭 신신는 소리, 그리고 투벅투벅하는 무거운 신발소리와 함께 들리는 문닫히는 소리.
그 신발소리가 아주 사라졌을 때쯤 나는 조금씩 조금씩 기운을 되찾고있었다.
엄마와 나만 남은 방안.
침묵이 흐른다.
이제 엄마는 나한테 말해줘야 했다. 어린시절 나를 지지누르던 그 악몽과 정체모를 남자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과 정신질환을 앓고있는 언니에 대해서.
《참, 불쌍하고 불쌍한 분이지…》
엄마는 주인없는 밥상을 마주하고 손톱여물을 썰면서 드디여 그렇게 입을 뗐다. 그러는 엄마의 파르르 떨리는 눈빛…
《너한테 있어 그분은 항상 고마운 분이란다. 알겠니?》
남자의 이름은 김세창, 군인이였다고 한다.
엄마가 남자를 처음 만난건 언니가 일곱살나던 해라고 한다.
때는 70년대말.
언니를 이끌고 봄동배추 씻으러 우물가로 나갔다가 거기로 세수하러 온 군인 한분을 만나게 되였다고 했다.
그 남자가 배추씻는 엄마곁에 다가섰을 때 엄마는 웬지 숨이 칵 막혔다는것. 그 남자의 냄새, 여지껏 맡아본적 없는 알싸한 세수비누냄새가 코를 자극했고 엄마는 그 냄새에 그대로 넋을 빼앗겼다는것. 남자는 물을 드레박으로 끌어올려, 한손으로 물을 부으며 한손으로 세수를 하고 궤춤에서 수건을 빼내 얼굴을 닦았고 엄마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배추를 애매하게 만지기만 했다는것. 다음, 허공에서 부딪친 두쌍의 눈, 그리하여 맺어지지 말아야 할 인연은 맺어지고 만것이니―
성분이 부농이라는 오점 하나로 오종종한 키라지만 단아한 얼굴이 받쳐주어 미인소리를 심심찮게 들었던 엄마는 그러나 원치 않는 결혼을 할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부농이라는 성분은 마치 온역처럼 엄마와 외가집을 따돌림당하게 했고, 눈물로 나날을 보내던속에서 엄마는 화룡시가지에서는 가장 극빈한 빈고농으로 소문났던 할아버지네하고 혼약이 맺어지게 된것이다. 바로 그 애정없는 혼인이 맺어지지 말아야할 인연의 도화선이 된건 아니였을가.
어느날, 엄마와 그 남자는 일곱살배기 언니한테 끝내는 보이지 말아야 할 장면을 보이고 말았으니, 결국 언니는 자기가 목격한 그 엄청난 장면을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에게 고자질했다고 한다.
나의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들고있었다.
그렇게 되여 결국 남자는 군복을 벗고 멀리 감숙성으로 개조를 가게 되였고 엄마는 영원히 지울수 없는 흑점 하나를 단채 시집식구들한테 물매를 맞고 김치굴에 갇히우면서 마을사람들의 손가락 비난질을 받게 되였다고 한다.
죽을래야 죽을수 없었던 나날들, 그 악몽의 나날에 엄마는 몸도 마음도 거의 탈진상태였고 외할머니와 이모는 일곱살배기 언니가 엄마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기나 한듯 윽박지르고 혼내고 했다는것이다. 더욱 기막힌건 어느날 엄마가 배속에서 꿈틀대는 새생명을 느끼고 바줄로 사랑채에 목을 매단것이다. 목을 매달고 밑에 받치고섰던 걸상을 차버리는 순간, 사랑채문을 떼고 들어선 언니. 언니의 고함소리와 울부짖음소리. 그 서슬에 모여들었던 사람들. 엄마는 그렇게 되여 목숨을 부지했다고 한다.
나의 손이, 그리고 발이 떨리고있음을 나는 알수 있었다.
J.
당신을 만난지 이제 3년이 되여오는군요.
당신과 나는 어떻게 만났던가요?
아, H식당이였습니다.
달랑 행장 하나와 빈 몸뚱아리만을 끌고 무작정 당신이 있는 도시에 다달은 나. 길잃은 미아가 되여 거리를 헤매다가 나는 H식당의 복무원모집광고를 보고 들어갔지요. 어찌어찌하여 나는 일을 하라는 말을 듣게 되였고 다음날부터 정식 일하게 되였어요. 그러다 만난게 당신. 당신은 손님을 한무리 배동하여 왔었습니다.
나중에 당신이 말했던가요? 제가 당신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료리를 들고 다가갔을 때 당신은 저의 들국화같은 향기에 넋을 잃을번 했다구요. 물론 그게 무슨 료리였던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를 몇분동안이나 뚫어지게 쳐다보던 당신의 그 해맑은 눈빛은 도무지 잊을수가 없군요.
당신은 저를 아침이슬을 머금은 한송이의 들국화같다고 했습니다. 당신이 살던 고향길에 아침이면 령롱한 이슬을 머금고 어여쁜 자태를 자랑하던 그 들국화를 말해주셨던가요?
그러나, 당신.
들국화는, 고기만 먹는 육식동물이 어느날 따분해진 입맛에 잠간 맛을 본 야채같은것이 아닐가요? 육식동물은 결국 고기를 떠날수 없을거고 고기한테로 돌아가게 될것임을 저는 알고있습니다.
산행길의 가녀린 들국화가 당신이 사는 그 도시에 무작정 뿌리내리려 했던 그 무모함은 숨막힌 외로움과 아련한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 간간히 악몽처럼 나타나는것들과 사람을 질식시키는 잇히히소리에 열병처럼 시달리고있었음을 당신은 알고있습니까?
당신의 따스함과 배려 그리고 그 절절함을 저는 뿌리칠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세상에 저항할 힘이 없었고, 아니 저항하기 싫었고, 그리고, 그리고 사람이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이 식당에서 나오라고 했을 때 저는 나왔고 당신이 작은 아파트를 구해주면서 거기에서 함께 사랑하자고 했을 때 저는 그 사랑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사람냄새가, 그리고 사람향기가요. 아무런 꿈도 비전도 저한테는 없었던것일가요?
먹고 자고 단장하고… 일주일에 한번 꼴로 오는 당신을 절절히 기다리고 울면서 떠나보내는 반복이 저의 바램이였을가요?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고 부딪히기 싫으며 모든것에서 도피하려고 싶었던 그 마음을 당신은 혹시 아시나요?
화장대에서 거울을 보다가, 어느 깊은 밤 바람소리를 듣다가 목을 놓아 꺼이꺼이 울었던 그 시간들속에 제가 있었음을 당신은 아시나요?
배속에서, 제 배속에서 당신이 꿈틀거리고있군요. 당신이고 저일수도 있는것의 꿈틀거림이 너무 싫습니다. 당신.
우리가 억지로 사랑이라고 규제하는 나와 당신사이에 가로놓인 도덕과 규제와 사회의 손가락질을 아시나요? 아무리 우리 스스로가 순결하다고 그래서 신성한 사랑이라고 억지를 써봐도 사랑 역시 정해진 범주와 규제안에서만 가능한것이라는 점은 어쩔수 없는가봅니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그것이 규제와 범주를 벗어난것이라면 세상은 불륜이라고 손가락질할수밖에 없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군요. 엄마의 그것이나 나의 그것이나 세절적으로 조금씩 틀릴뿐 전체적인 의미에서는 꼭같지 않냐고 제가 말했을 때 당신은 바보라고 하며 제 이마를 튕겨주었지요. 그리고 당신은 저를 꼬옥 껴안으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
세상의 모든 규제를 벗어난것들이 다 그렇지 않을가요? 내가 사랑이라는것이 세상이 불륜이라고 하는것임을 어쩔수 없이 시인해야 하는 그런게 아닐가요?
아버지.
아버지는 아마 오점 있는 안해일망정 버릴수는 없었던것일가.
화룡 성덕이라는 곳에서 누구도 모르게 가만히 이곳으로 야밤도주하듯 이사를 해버렸고 그렇게 되여 엄마는 거기서 애를 낳고 한해 두해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엄마는, 엄마가 목을 매달았던 그 이후 언니가 가끔 멍하니 한곳만 쳐다보고 얘야, 하고 불러도 불에 덴듯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발견해야 했으니…
아버지는 걸핏하면 술을 마시고 엄마를 팼고 언니는 그러한 가정환경속에서 점점 심한 증세를 보이더니 급기야는 히스테리적으로 웃기도 하고 그러더니 아주 돌아버렸다는것이다. 그리고 섬찍하게 던지는 한마디,
《주서온 아다. ㅎㅎㅎ.》
혼돈, 끝을 알수 없는 혼돈속을 헤매고있는듯 나는 답답하고 숨막혔다.
갓난애한테 개구리를 잡아 던지기도 하고 식구들이 안보는 틈을 타 목을 조르기도 하면서 언니는 나한테 강한 적대심리를 보였고 엄마는 그러는 언니때문에 내 걱정에 한시도 시름을 놓을수가 없었다고 한다. 모든것은 다 바뀐듯 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끈질기게 련결되고있다.
나는 어쩌면 오늘은 없는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오늘이란 덧없이 흐르는 과거와 미래사이에 끼인 흐름일뿐…
나의 입술이 경련을 일으키는듯 했다. 나는 이제 모든것을 너무나도 싱겁게 알아버린 우스운 꼴이 돼버리고 만것이였다. 나는 방구석에 놓았던 가방을 주어들고 주섬주섬 내려섰다.
《선아, 아까 그분… 한번 더 보고 가면 안되겠니? 반년전에 내 소식을 듣고 여기에 오셨고 여태 너만 기다리던 분이다. 니가 언제 오나 해서 마을앞길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보수하고 그랬어. 감숙성에서 개조를 하고 여태 홀몸으로 살다가 찾아오신 분인데…》
나는 지페 몇장 드릴가고 가방을 열었다가 그대로 닫고 신을 신었다. 어서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박절함이 몰려왔던것이다. 숨이 차고 혈압이 올라왔다. 내가 묵묵히 출입문고리를 당기고 삽작문을 열 때까지 엄마는 더이상 말리지 않았다.
비는 어느새 그쳤고 금방 머리감고난듯한 해가 노랗게 웃고있었다.
J.
이제 나는 비로소 내가 비속을 뚫고 달려와야 했던 그 엄청난 답을 찾은듯 합니다.
예고없이 나타난 국방색비옷의 남자, 그 남자가 내게 기인 나날동안 내가 찾아헤매고 방황하던 엉키고 설킨 실머리의 답이 아니였을가요. 그리고 불쌍한 내 엄마…
이제 나는, 이제 더는 당신을 이렇게 부르지 못할것 같군요.
내가 이곳을 떠나고 남자가 나의 시야에서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아마 저 남자가 내 가슴에 남긴 커다란 흔적과 파문을 지우지는 못하리라.
《언니는, 언니는 얼마전에 그분께서 정신질환치료로 북경에 데려다주고 오셨어. 많이 호전되여 전화까지 왔더구나, 널 보고싶다고. 한번만이라도 온전한 정신으로 널 제대로 봐야겠다고.》
먼 지구끝에서 울려오는듯 길고 어두운 목소리가 해빛에 산산히 부서지고있다.
J. 나는 지금 당신이 살고있는 연길로 가고있습니다. 여기 청산은 이미 비가 그쳤습니다. 연길은 어떤지요, 아직도 비가 오나요? 이제 나는 시간의 늪을 어떻게 지나야 하는지를 배운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 가야 그 늪에서 벗어날지는 알길이 없습니다. 그건 이제 남은 시간들이 증명하겠죠. J. 나는 지금 아침까지도 내가 살았던 연길로 돌아가고있습니다.
《아버지는 니가 집나가고나서 점점 더 술만 마시더니 그만 어느날엔가 피를 토하고 쓰러져 위출혈로 돌아갔고… 참 그건 알고있는거지?》
나는 어서 빨리 이 모든것으로부터 도망치고싶었다.
그때 내 앞으로 마주 덮쳐오는 노란색 택시 하나. 나는 무작정 앞을 가로막았고 서기가 바쁘게 뛰여올랐다.
《선아야…》
엄마의 애절한 목소리.
《오늘이 그분 생신인데…》
(아, …)
뒤통수가 하나 얻어맞은듯 뻥해났다.
까닭없이 화가 나고있었다. 방울방울 눈물이 올리솟고있었다.
택시는 아릿한 마음의 풍경 하나하나를 스치면서 빠르게 흘러가고있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택시를 멈춰세울만한 용기가 없었다.
나는 어쩌면 새로운 숙제 하나를 안고 여기를 떠나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평생을 다해 그 숙제를 풀어야 할지도.
길고 어두운 여름은 이제 서서히 지나간다.
그리고 내 귀에 펄럭펄럭 들렸다, 혼돈보다 더 깊고 태초보다 더 긴, 시간의 늪을 지나는 적마의 그 어둡고 답답한 말편자소리가. 투덕투덕, 투덕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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