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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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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겨울개구리
2019년 07월 09일 21시 19분  조회:224  추천:0  작성자: jinhua

겨울개구리

김경화

 

1.

가마를 열자 김이 확 몰려온다. 눈앞이 하얗다. 그는 바가지로 물을 푼다. 법랑칠이 벗겨진 소래에 담는다. 소래에 그려진 그림은 사과다. 가운데가 칠이 벗겨지는 바람에 대야에 그려진 사과는 뭉텅 벌레가 파먹은 사과가 되여버렸다. 한때 그것은 빨갛게 탐스러웠을 상처 없는 사과였을 것이다. 물에서 김이 솟아오른다. 그는 이번에는 물독에서 찬물을 퍼내 뜨거운 물에 섞는다. 적당하다고 느껴질 때 쯤 그는 식지를 집어넣어본다. 이 정도면 된다. 손가락을 집어넣어 뜨거운 기운이 느껴질 정도, 사람의 피부가 데지 않을 만큼의 온도가 되면 끝이다.

그것은 기름개구리를 죽이기에 적당한 온도이다. 그가 사는 이곳은 해란강 발원지라 기름개구리(林蛙)라 부르는 북방 산개구리가 서식한다. 몸길이가 4~7센치로 산개구리 중 가장 큰 이 놈들은 몸색갈이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등면은 황갈색 혹은 적갈색이고 작은 흑색 반점들이 산재해있다. 등 량쪽으로 갈색의 륭기선이 두줄나있다. 배면은 회백색 또는 황색이며 주둥이는 원형이지만 뾰족한 편이다. 눈 뒤에서 목덜미까지 흑갈색의 줄무늬가 있다. 눈 뒤에 둥근 고막이 뚜렷하다. 수컷은 턱  아래에 울음주머니 한쌍이 있다. 이 종은 복부와 턱밑의 바탕색이 우유빛 흰색이다. 암컷은 번식시기에 턱밑과 복부에 붉은색 얼룩무늬들이 나타난다. 2월에서 4월까지 번식기에 해당되는데 물흐름이 적은 논웅뎅이나 습지에 산란을 한다. 수컷은 암컷을 움켜쥐고 포접한다. 10월경부터 류속이 느리고 수심이 깊은 곳에 있는 돌이나 바위 밑에서 동면을 시작한다. 때로는 흙 밑으로 파고 들어가 동면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륙상의 곤충류와 지렁이 등을 먹고 산다. 수명은 7~8년이고 수컷은 3~5년생 그리고 암컷은 4~6년생이 주로 짝짓기를 한다. 기름개구리는 귀중한 중약재로 불린다. 함유된 활성물질과 일부 인자는 인체에 뚜렷한 의료, 미용, 보건 작용이 있다. 이놈들은 식탁 우의 일품료리이기도 하다. 암놈 개구리의 탱탱한 알과 쫀득한 곱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쫄깃한 다리살까지 개구리는 그 맛이 일품이라 개구리의 외형이 징그럽다고 하면서도 한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이런 기름개구리를 양식이 아닌 야생으로 먹어볼 수 있는 건 산에서 사는 사람의 혜택이다. 그는 벽에 걸어놓은 그물망을 집어든다. 펄떡펄떡 간헐적으로 숨을 쉬며 그물 안에 갇혀있던 개구리들은 그가 그물망을 집어들자 움직임에 반응하듯 마구 요동친다. 그물망 안은 개구리와 개구리가 뿜어낸 거품이 섞여 뒤죽박죽이 돼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물망을 이미 물온도를 맞춰놓은 대야에 담근다. 와장창 그물망 안에서 순간적으로 복새통이 일어난다. 개구리들이 뜨거운 기운을 느끼고 한꺼번에 우로 기여오르려고 모지름을 쓴다. 최후의 발악인 셈이다. 빠르게 움직이던 개구리들의 동작이 점점 느려지다가 드디여 다리를 뻗으며 고요해진다. 그는 그물망을 가볍게 흔들어본다. 움직임이 없다. 다시 자루를 열고 생을 마감한 개구리를 대야에 쏟는다. 완벽하다. 반들거리는 껍질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개구리는 껍질이 홀라당 벗겨지고 미적지근하면 개구리는 한번에 죽지 않는다. 반드시 적당한 온도여야 한다. 그는 오랜 시간 개구리를 죽여본 사람답게 감으로 그 온도를 안다. 그는 개구리를 손으로 대충 주물주물해서 두어번 물을 갈아내며 씻는다. 감자와 고추장을 풀고 미리 끓이고 있던 남비에 씻은 개구리를 집어넣는다. 가을과 겨울의 사이인 시기라 개구리는 깨끗하다. 따로 배를 가르고 손질할 필요가 없다.

하얀 김이 남비에서 피여오르고 비릿한 냄새, 얼큰한 고추장냄새가 코안을 자극한다. 맛있는 개구리탕이 완성되여가는 것이다. 이제 그것은 생명을 가진 것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먹는 욕망을 채우기 위한 맛있는 반찬일 뿐이다. 그것은 곧 한껏 벌려진 동굴 같은 입으로 들어가고 위를 통과할 것이고 스며들고 부패하고 배설되여 종당엔 흔적조차 없이 증발해버릴 것이다.

눈이 오겠구나.

그는 새벽녘에 돌아누우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허리가 욱신거렸기 때문이다. 그의 몸은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다. 비가 오면 온몸의 뼈들이 쑤셔난다. 그럴 때면 그는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뼈들이 오랜 시간 쇠가마솥에서 끓어오르는 물에 이리저리 부대끼며 삶아져 구멍이 숭숭 난 소뼈다귀처럼 되여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새벽 다섯시, 어김없이 눈이 떠지는 시간이다. 그는 몸을 일으킨다. 몸이 무겁다. 카텐을 쳐본 적 없는 창문 너머로 푸르스름한 새벽이 다가와있다. 그 청량한 푸른 새벽의 시간 속에 희끗한 눈발이 보인다. 그는 저벅저벅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본다. 창밖은 바로 산이다. 어둠과 밝음의 경계 같은 푸른 새벽의 시간 속에 나무들이 몇잎 남지 않은 잎을 거멓게 드리운 채 처연히 서서 온몸으로 눈발을 맞고 있다. 그 아래 지난 여름 무성히도 웃자랐던 쑥과 익모초와 갈대들이 언제 푸르렀고 언제 소리치며 웃자랐냐 싶게 푹 고개를 꺾은 채 시누렇게 말라 서로를 껴안으며 떨고 있다. 눈발이 떨어질 때마다 그것들은 진저리를 치는듯 물러서지만 끝내 비껴가지 못한다. 그는 그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있는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저려나서야 그는 창가에서 물러난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새로울 것도 없는 그 풍경들을 그는 언제나 넋을 잃고 바라본다. 나무는 뼈 같은 존재라고 그는 생각한다.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게 뼈라면 산을 지탱하고 있는 건 나무라고 생각한다. 저 나무들은 끝끝내 겨우내 내리는 눈발의 무게를 견디고 차거운 바람을 이겨내고 다시 봄을 맞이하겠지만 숭숭 구멍난 소뼈다귀처럼 구멍나고 있는 자신의 몸의 뼈와 그보다 먼저 구멍나버릴 가슴은 언제까지 지탱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두렵다. 그는 두려움에 뒤로 물러선다. 벼랑 끝에서 마침내 물러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람처럼 그는 한발 물러서서야 드디여 안도한다. 건조한 눈을 껌뻑거린다.

그는 뱀이 허물 벗듯 어제 밤에 아무렇게나 벗어서 바닥에 던져버린 검은색의 츄리닝바지를 집어 발을 들이민다. 회색의 면티를 입고 검은색의 경량패딩을 입는다. 그의 방에는 색채가 없다. 허연 벽과 검은 옷장, 종래로 개여본 적 없는 곤색의 이불, 벽에 못을 쳐 옷걸이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에 걸린 옷들도 전부 검은색이거나 곤색이거나 회색이다. 위성이 들어오지 않아 오래된 CD를 돌려볼 때만 켜는 시커먼 텔레비죤까지, 그의 방은 온전한 무채색의 세계이다. 이 집과 산의 주인 격인 동국이가 위성을 설치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철저히 바깥세상과 격리되여가고 있다고 느끼지만 구태여 그 세상으로 나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드르륵, 그는 미닫이문을 연다. 문소리에 말을 잃어버린 그의 로모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로모는 잠이 없다. 그가 새벽같이 깨여 미닫이문을 열면 항시 로모가 잠기라고는 묻어있지 않는 건조한 눈으로 그를 돌아본다. 로모는 자기는 하는 걸가. 언제 잠이 들어 언제 깨는 걸가. 그가 밖에서 일을 마치고 들어설 때도 로모는 자고 있는 법이 없다.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있지만 그는 로모가 가수면상태인 걸 안다.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고는 하지만 저렇게 쪼글쪼글 늙지 않았을 때에도 그는 단잠에 빠진 엄마를 본 기억이 없다. 언제부터 엄마는 잠을 자지 않았던 걸가. 그러니까 로모가 되기 전, 엄마였을 때부터였을가. 아니면 그 이전부터, 아니면 그 이전부터일가.

로모는, 그러니까 엄마는 아직 서른살이 되기 전 그야말로 새파란 나이에 남편을 잃었다. 그의 아버지는 목재부업을 가서 벌목을 하다가 사고로 죽었다. 그러니까 톱으로 나무밑둥을 켜고 나무가 자빠질 방향 반대 쪽에 서있어야 하는데 그만 방향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해 나무가 쓰러지는 방향에 서있었던 것이다. 정면으로 쓰러지는 나무에 젊은 아버지는 그대로 깔렸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죽은 아버지의 얼굴은 땅에 박혀있었고 아버지를 들어올렸을 때 흙들이 살을 파고들어 얼굴이 까만 주근깨가 덮인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나무가 쓰러질 방향을 몰랐던 게지. 어느 만큼 밑둥을 켜야 하고 어느 쪽으로 쓰러지고 어느 방향으로 피해있어야 하는 건지 그걸 몰랐던 게야. 그런 건 말이다. 그건 말이야. 누가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란다. 감이라는 게 있어야지. 느낌이란 거 있잖냐. 니들 느낌이 뭔지 아냐? 그래. 그런 거지. 그냥 몸으로 느끼고 감으로 알고 그렇게 하는 건데 니네 아버지는 그걸 모르는 사람이였던 게지. 본인이야 가고 나니 끝이지만 결국 애매한 마누라만 고생시키는 거잖냐. 생과부로 만들어놓은 것도 모자라 아들 둘까지. 어린 녀자를 날지도 뛰지도 못하게 만들어놨으니 니네 아버지야말로 죄인이지. 그러니까 말이야, 사람이란 느낌이 있어야 한단다. 알겠냐? 니네 두놈, 잘 들어둬라. 느낌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하단다.”

외삼촌이 술 한잔 들어가면 그와 동생을 앉혀놓고 읊어대던 레퍼토리였다. 외삼촌은 그의 아버지의 말을 할 때마다 일찍 죽은 네 아버지가 아까운 게 아니라 미련한 인간이라 한심스럽다고, 그렇게 그만한 것도 감을 잡지 못해 죽어버린 네 아버지한테 시집간 당신 누나가 안타까워 죽겠다는 표정이였다.

그는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이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외삼촌의 말을 빌자면 머리가 더럽게 나쁘고 소위 말하는 감이라는 것을 몰라 사고를 당해 허망하게 가버린 아버지는 그야말로 죽어서도 용서를 구하기조차 힘든 죽일 놈이였다. 외삼촌의 넉두리는 매형을 향한 멸시 같기도 하고 그런 매형한테 시집가 아들을 둘씩이나 낳은 누나에 대한 분노 같기도 했다. 그는 꿉꿉한 마음으로 외삼촌의 넉두리가 끝나길 기다렸다. 그런 날이면 항시 오줌이 마려웠지만 왠지 그 자리를 뜰 수 없어 그는 부푸는 오줌보를 참느라 주먹을 폈다 쥐였다 하며 외삼촌의 넉두리를 끝까지 들었다. 그 레퍼토리는 그가 아버지 없는 집안에 기둥 같은 존재였던 외삼촌을 결코 진심으로 좋아할 수 없었던 리유이기도 했다.

남편을 보내고 새파랗게 젊은 엄마는 곧 애들을 시엄마한테 떠넘기고 재가를 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아들 두형제를 키우며 혼자 버텨냈다.

“독하기도 허지. 어린 것이.”

생전에 몸이 뒤로 젖혀져 팔자걸음을 걸었던 할머니는 엄마를 바라보며 그렇게 혀를 끌끌 차군 했다. 남편 없이 혼자 사는 누나에게 외삼촌은 동생으로서의 의무를 온전하게 다했다. 이른바 감이 있는 사람인 외삼촌은 자기 집 밭농사를 하면서 그의 집 밭농사까지 거들었다. 밭갈이를 해주고 후치질을 해주고 땔나무를 해주고 말이 없는 엄마 대신 그들 형제를 훈계하고 가끔 으름장을 놓았다. 대신에 엄마는 외삼촌네 집 온갖 허드레일을 다 도맡아 해주었다. 외삼촌네 아이들, 그러니까 그의 사촌들이 겨울에 입는 털실옷은 전부 솜씨 좋은 엄마가 밤을 새가며 뜬 것이였고 사촌들이 들고 다니며 먹는 과줄이나 골무떡은 그의 엄마가 뜨거운 가마목에 발바닥이 빨갛게 데여가면서 만든 것이였다. 어린 시절의 그는 뽀얗게 분을 바르고 여유롭게 마실 다닐 줄 아는 외숙모와 집채 같은 삶의 무게를 혼자 떠메고 묵묵히 일만 하는 엄마를 대조해보군 했다. 어떤 엄마가 더 좋은 엄마라는 판단은 할 수 없었지만 엄마를 바라보면 늘 가슴이 아릿했다. 어린 그는 엄마가 어쩐지 벼랑 끝에 서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버티나, 언제까지 버티나, 버티다가 버티다가 종당에 버텨내지 못하는 건 아닌가, 만약에 버텨내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나와 동생은 어떻게 되나 걱정했다. 그는 그렇게 아릿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하지만 버텨내면 끝내는 버텨지는 건가. 엄마는 끝내 버텨냈다. 그 버티는 시간 동안 힘이 들었을 법도 한데 엄마는 한번도 눈물을 보이지도 않고 소리내여 웃지도 않으면서 온전하게 버텼다. 마치 소리라도 크게 내면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모든 것이 와르르 깨져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할가봐 조심스러웠던 걸가. 엄마는 그저 조용하게 시간의 흐름을 견뎌냈다. 고요하게 죽은듯이 모든 것을 버텨냈다.

“일 잘하고 튼튼한 남자를 만나 재가하오. 아이고, 사람도 미련하지. 하나도 아니고 아들 둘을 데리고 어떻게 혼자 버티려고 그러오? 애들 데리고 갈 만한 자리를 알아봐줄가? 사람이 적당히 버티다가 못이기는 척 기댈 줄도 알고 그렇게 살아야지. 어떻게 이다지도 미련스럽소? ”

외숙모는 그렇게 끌끌 혀를 차며 엄마한테 재가를 권했지만 엄마는 그 때마다 그냥 고개를 숙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눈을 돌려 로모를 바라본다. 로모의 눈은 아무 것도 담겨져있지 않다. 모든 것을 비워낸듯 담담하고 깨끗하다.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가 깨여난 뒤 로모의 눈은 텅 비여있다. 아무 것도 담아보지 못한 눈 같기도 하고 모든 것을 담았다가 깨끗이 비워낸 사람의 눈 같기도 하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저렇게 그 어떤 욕망도 찾아볼 수 없는, 아무 것도 담아본 적 없는 눈빛이 될 수 있을가. 버텨내기만 했던 그 시간들이 엄마는 지금 억울하지도 않은 건가. 뜨끈한 물에서 헤염치다 마침내 다리를 뻗는 개구리처럼 이제 삶에 아무런 희망도 남아있지 않은 엄마는 온힘을 다해 소리라도 한번 질러보고 싶지도 않은 걸가. 그는 로모와 눈이 마주치지만 어떤 말도 건네지 않는다. 그는 다정하지 못하다. 로모한테 더러 웃어보일 때도 있지만 그것 역시도 웃음이라고 하기도 힘들 정도로 희미한 것이다.

그는 종래로 늙고 병든 엄마한테 잘 주무셨습니까 하는 인사 같은 걸 건네본 적이 없다. 타고난 성정인가. 아니면 성장과정의 영향인가. 그는 어른임에도 소위 인간관계라는 것에 서툴러서 사춘기 소년처럼 아무한테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도 못한다. 지금도 그렇고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건 로모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이야 말을 잃었다지만 말을 잃기 전에도 로모는 표현에 서투른 사람이였다. 누가 뭐라 하면 조용히 웃으며 낮고 불확실한 목소리로 확신 없는 자기 의사를 표달하군 했다. 그는 가끔 엄마가 자신의 삶에 어떠한 확신도 없는 사람이여서 저다지 목소리도 자신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였다. 자기가 낳은 자식한테도 늘 서름서름한 사람이였다. 남들은 착하다고 하지만 그는 엄마의 옆얼굴이 단호해서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는 늘 엄마한테 다가가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었다. 끝없이 엄마 하고 달려가 안기고 싶고 어깨에 손을 얹어보고 목을 그러안고 매달려보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다. 끝없이 시달리며 그저 망설이기만 했었다. 그 끝없이 망설였던 아이, 그는 그 아이를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그러나 같은 엄마였지만 그런 엄마를 대하는 동생의 태도는 달랐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그와 동생은 전혀 다른 스타일이였다. 동생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는 그를 대할 때보다는 많이 따뜻했고 부드러웠지만 그렇다고 아주 화끈하고 뜨거운 적은 그가 보기에도 없었다. 그러나 동생은 종래로 그것을 서운해하거나 연연하는 아이가 아니였다. 내가 아닌 어떤 타인으로부터도 상처받지 않는 아이, 항상 랭정하고 현실적이여서 아이 같지 않았던 아이, 동생이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아이, 삶과 자신 사이에 그물 하나 쳐놓고 사는 아이, 동생은 그런 아이였다. 그도 가끔은 온전하게 사랑받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동생처럼 저렇게 온전히 차거울 수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못나게도 치런치런한 마음을 쉽게 잘라내지 못하는 성격이였다. 늘 엄마한테 서운한 마음과 사랑받고 싶은 욕망과 엄마가 가엾다는 아픈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 이룰 수 없는 욕망과 아픔을 간직한 채 그는 텅 빈 마음으로 커갔다. 그는 자주 가슴이 시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감정이였다. 어른이 되고 많은 일을 겪으면서 모든 것은 희미해져갔고 지금은 어떤 것도 서운하지도 속상하지도 않다.

지금 그는 모든 것에 무덤덤하다. 삶의 자잘한 감정들에 일일이 반응할 만큼 그의 정신은 올올이 깨여있지 않다. 그는 그것이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텅 빈 눈으로 서로를 응시하다가 로모와 그는 고개를 돌려 서로를 외면한다.

 

2.

그가 ㄷ자형으로 파인 장판널에 손을 넣어 걷어낸다. 장판널 세장을 거두자 동굴 같은 부엌이 드러난다. 그는 그 동굴 같은 부엌바닥에 놓인 뒤축을 꺾어버린 낡은 운동화에 발을 겨낭하고 성큼 뛰여든다. 그는 다리만 부엌에 잠긴 상태로 솥가마뚜껑을 열어본다. 물이 반쯤 차있다. 그는 동굴 같은 부엌에 쭈그리고 앉는다. 포대에서 마른 잣껍데기를 두손 가득 집어내여 아궁이에 넣고 그 우에 마른 장작을 어긋나게 놓는다. 오른손 켠에는 마른 장작이 가득차있고 왼켠에는 젖은 참나무 장작이 쌓여있다. 장작 앞에는 반으로 접어 펼쳐놓은, 잣껍데기와 봇나무껍질이 들어있는 포대 두개가 있다. 그는 봇나무껍질을 집어내여 손바닥 만큼 찢는다. 득~ 성냥을 그어댄다. 기름을 머금은 봇나무껍질에 확 불이 당기자 그는 그것을 잣껍데기에 갖다댄다. 잣껍데기가 빨갛게 불을 머금고 마침내 다 타버릴 때 쯤 장작에 불이 붙는다. 모든 것은 수순이 있다. 모든 것은 적당해야 한다. 불이 붙고 가마에 물이 끓어오르고 옴푹한 평가마가 달궈질 때 쯤이면 그는 젖은 장작으로 불길을 눌러놓고 부엌에서 튀여나온다. 뜨끈한 물과 찬물을 섞어 적당한 온도로 대야에 반쯤 물을 채운다. 거기에 수건을 적셔 로모한테 갖다놓는다. 로모는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고 마비된 왼쪽팔을 끄당기며 혼신의 힘을 다해 일어나 앉는다. 덜덜 떠는 손으로 간신히 수건을 집어들어 얼굴을 닦는다. 그동안 그는 아침을 준비한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뚝배기에 된장을 풀어 평가마에 얹어놓는다. 뚝배기가 끓어오르는 사이 그 안에 들어갈 감자를 깎는다. 가스가 있지만 구태여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평가마에 놓을 남비를 물로 헹궈놓고 그는 랭장고를 연다. 며칠에 한번씩 이 산을 도급맡은 동국이가 부리워놓는 보따리 덕에 랭장고 안은 허전하지 않다. 그는 랭장고에서 닭알을 꺼낸다. 로모가 후들거리며 일어나 벽을 짚고 선다. 부들부들 떨며 한걸음씩 옮겨 딛는다. 로모는 불편한 재래식 화장실을 안깐힘을 쓰면서라도 꼭 당신 스스로 간다. 처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부축해서 화장실까지 가자 로모는 부들부들 떨며 화장실에 들어가 그한테 문을 닫으라고 시늉했다. 문이라고 해봤자 널판자로 막은 거지만 로모는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듯했다. 자식한테 마지막 한겹만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것은 어쩌면 죽어가는 개구리가 우로 솟아오르듯 마지막 발악 같은 것이 아니였을가.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는 일부러 로모가 저렇게 화장실로 갈 때면 외면한다. 딱히 리유를 말할 순 없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그가 밥을 다 차려놓고도 한참을 기다려서야 로모는 덜덜 떨며 한쪽으로 자꾸만 기우는 몸을 위태롭게 옮기며 들어왔다. 로모한테 숟가락을 쥐여주자 로모가 부들부들 떨며 찌개국물을 뜬다. 로모가 입가에 숟가락을 가져가고 마침내 로모의 오래되여 허물어지기 직전의 동굴 같은 입 속으로 숟가락이 삼켜질 때 쯤 찌개는 반 이상 쏟아져있다. 그는 묵묵히 밥을 먹는다. 개구리를 집어들고 손가락으로 불그스름하고 가득찬 알 때문에 축 처진 개구리배를 가른다. 수많은 개구리가 세상에 나올 수도 있었을 암놈이다. 그는 단단한 검은색의 개구리알을 집어내 혀로 핥고 북~ 다리를 뜯어 로모의 밥공기에 얹어주고 자신의 입안에도 집어넣는다. 그는 맛있다고 생각한다. 묵묵히 입안에 이것저것 쓸어넣으며 오늘 할 일을 생각한다. 오늘처럼 산에 가지 않는 날도 쉴 틈은 없다. 잣을 보관하는 창고도 새로 지어야 하고 잣탈곡하고 남은 껍데기도 한곳에 모아 말려서 불을 때든지 해야 한다. 세탁기도 돌려야 하고 집도 대충 치워야 하고 할 일은 쌓여있다.

그는 불을 지피는 순간처럼 일의 순서를 정한다. 로모는 그가 집어준 개구리는 외면하고 계란볶음을 숟가락으로 간신히 떠서 우물거리며 넘긴다. 찌개에서 피여오르는 허연 김, 읍읍~ 하고 들리는 벙어리의 모지름처럼 들리는 로모의 입안에서 음식이 으깨여지는 소리, 그의 단단한 이가 허연 녀자의 속살 같은 배추김치대를 마침내 아작 하고 부서뜨리는 소리, 그것이 전부이다.

 

3.

하늘이 유리잔처럼 투명하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시간, 얼굴을 스치는 공기가 제법 선뜩선뜩하다. 은밀하게 숨겨진 계곡에는 투명한 물소리 처량하게 울리고 가을을 보내는 숲에서는 새들이 기지개를 켠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갈대들이 흐느적거린다. 멀리서 바라보면 한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짤랑 하고 거울처럼 깨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풍경은 멀리서 바라봐야 한다.

그가 산에 오른다.

주머니로 만든 배낭을 메고 키의 세배 쯤 되는 장대를 손에 거머쥔 그의 뒤모습은 칼날의 단면처럼 단단하다. 그 단단한 뒤모습을 보이며 그는 거뭇거뭇한 나무들이 뼈처럼 서있는 속으로 들어간다. 피부를 찢고 마침내 살을 헤집고 들어가 뼈를 느끼며 꽂히는 단단한 칼날처럼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걸어들어간다. 청량한 숲의 공기가 페로 들어오고 아릿한 송진냄새가 코를 통해 마침내 가슴까지 통과할 때면 그는 비로소 활기를 띤다. 고기가 물을 만난듯, 사랑에 어섯눈을 뜬 소년이 볼이 발갛게 피여오르는 소녀를 만난듯 그는 온몸의 굳었던 근육이 비로소 풀리는듯하여 눈을 슴벅거린다.

그는 나무를 헤집으며 자주 올려다본다. 본격적인 잣따기철이 끝나고 허술한 잣따기군들이 모두 물러난 때, 가을과 겨울의 사이 같은 이 시기를 그는 좋아한다. 산이 남정네한테 허연 아래도리를 감각 없이 내놓은 채 감흥 없는 정사를 끝낸 중년녀인네가 되여 마침내 몸을 일으키고 주위를 둘러보는 것 같은 시기이다.

적당히 잣이 달려있는 나무에 이르면 그는 각반으로 끈을 묶어 등뒤에 배낭처럼 메고 있던 자루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빨간 코팅이 되여있는 면장갑을 꺼낸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꾹꾹 눌러 꼼꼼히 장갑을 끼는 그의 입술은 단단하게 닫혀있다. 나무께로 다가가 팔을 뻗어 그는 나무를 껴안아본다. 맨발로 오를 만한 나무인지 보조기구가 필요한 나무인지를 가늠한다. 마침내 그는 장대를 나무아지에 걸터놓고 나무에 오른다. 잣따기철에 일군들이 오르기 힘들거나 잣이 시원치 않게 달려 내버려둔 나무들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그에게는 주저할 만한 리유 따위가 되지 않는다. 그에게 오르기 힘든 나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산발을 타면서 단련된 그의 몸은 기민하다. 적당히 근육이 붙어있고 누가 봐도 어설프지 않은 구리빛으로 피부가 해빛에 그을려있다. 쭉~ 쭉쭉~ 아지를 잡고 상체를 밀어올리면서 그는 민첩하게 발을 옮겨딛는다. 서너메터 쯤 오르면 다시 장대를 집어 우로 옮기면서 거침없이 나무에 오른다. 나무를 타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나무아지를 딛고 나무 우에서 어떻게 몸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를 망설여야 하겠지만 그는 결코 그런 망설임 따위를 모른다. 동작 하나하나가 긴밀하게 이어져있고 아주 민첩하다. 어둠에 익숙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들고양이처럼 그는 한치의 주저도 없이 나무에 오른다. 마침내 장대로 잣을 칠 만한 거리에 오르면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숨을 한번 고른 다음 단단히 몸을 고정하고 자세를 바로잡은 뒤 장대로 정확하게 잣송이를 품고 있는 아지를 내리친다. 한번, 두번 그의 장대가 허공을 가른다. 나무가 비틀거리고 반동에 의해 그의 몸도 흔들린다. 마침내 찍~ 소리를 내며 잣이 무더기로 떨어져나간다. 그는 다시 또 숨을 고른다. 천천히 장대를 아래로 한단계씩 내려놓으며 나무를 타고 내려간다. 가끔 그는 잡고 있는 아지를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푸르른 하늘을 향해 훌쩍 몸을 날리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부르르 몸을 떨며 뒤로 상체를 제끼고 어깨를 편다. 그런 자신이 두렵다.

 

4.

“형님, 난 형님 땜에 먹구 사오.”

“형님, 형님은 일당백이요. 형님이 있어서 난 든든하오.”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법을 동국이는 어디서 배운 걸가. 이 산을 도급맡은 동국이는 늘 그렇게 그를 치켜세운다. 그리고 사람 마음을 어찌나 잘 읽어내는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게 뭔지를 알아내고 적당한 때에 내밀어준다. 가끔 술을 사들고 와서 밤 늦도록 그와 잔을 기울이며 그한테만 털어놓는 비밀인듯 착각하게 하는 말투와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도 적당한 거리감을 두어 동생 벌 되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게 한다. 그는 가끔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건 어떻게 배우는 걸가. 원래부터 그렇게 타고나야 되는 걸가. 아니면 스스로 배워지는 걸가.

무상으로 모든 걸 내주는 줄로만 알았던 산이 어느 순간, 개인에게 도급주는 때가 왔었다. 시장통 정육매대에서 돼지고기 자르듯 잣산을 구역 별로 토막내서 도급준다고 했다.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지만 얼마 안 지나 그건 말이 되는 소리라는 게 증명됐다. 돈 있는 외지사람 누가 어느 잣산을 사고 누가 어느 잣산을 샀다고 했다. 이 동네에서 자손 삼대가 밤낮없이 벌어도 가당치 않을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그들은 그렇게 쉽게 지불하고 동네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슥 끌어당겨갔다. 따뜻한 물속에서 헤염치다가 서서히 다리를 쭉 뻗고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동네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당하고 멍해있기만 했다. 잣에 이어 개구리도 강을 구역 별로 도급주면서 개인소유가 되여버렸다. 이제 산과 강의 모든 것이 무상으로 가져올 수 없게 되여버렸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지만 곧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좋은 차에 고급진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나타나 산을 누비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것을 그는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창턱을 손톱밑에 때가 시커멓게 낀 손으로 짚고 바라보았다. 저것은 허망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그는 체념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였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욕심내본 적이 없는 사람, 늘 삶의 한켠에 비켜서서 살았던 사람이였다. 그렇게 되는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집이나 학교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산을 잃는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아릿했다.

사람들은 이제 시골에서 살 재미가 없어졌다고 떠나야 한다고 했다. 이곳을 떠나야 하나, 떠나서 어데로 가야 하나, 그는 그 나이까지 살면서 처음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럴 즈음 동국이가 술이며 안주를 한구럭 들고 찾아왔다. 동생의 친구라고 하지만 어릴 때부터 주먹을 쓰면서 동네 애들을 손에 넣고 뒤골목을 누비던 동국이와 드물게 동네에서 수재인 그의 동생은 서름서름한 사이였다. 그러니 그런 동생의 친구하고 그가 가까운 사이일 리가 없었다.

“형님, 이곳에서 우리 살아보기요.”

방바닥에 오징어와 땅콩 따위를 벌려놓고 술 한잔씩 들어가자 동국이가 지저분한 방안을 둘러보며 말을 꺼냈다.

“잣산을 산 형님이 나보고 관리를 해달라오. 뭐 산이 외지사람한테 넘어간 건 나도 안타깝지만 어찌겠소. 그게 세상이 아이요? 힘 센 사람이 뭐든 가지는 거. 우리야 가진 게 없으니 어찌겠소.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형님, 동네에서 잣이든 개구리든 형님이 전문가 아니요, 그야말로 산전문가. 형님, 나랑 같이 손잡고 해보기요. 콩고물이라도 주어먹기요.”

소나기가 쏟아지던 밤이였다. 동국이는 눈을 들어 창밖의 비줄기를 쳐다보며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플라스틱맥주컵에 가득 차있는 배갈을 들이켜자 가슴이 뜨뜻해졌다. 그는 동국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였다. 동국의 말마따나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할 줄 아는 거라곤 산에 가서 잣 따고 개구리 잡는 것 뿐인 그가 갑자기 어데 가서 뭘 하겠는가.

“형님, 나가봤자 별 볼일 없소. 어디 가나 다 마찬가지요. 우린 여기서 승부하기요. 산에서 태여난 놈은 산에서 놀아야지. 지금 동네사람들은 여길 버리고 간다지만 돈 있는 사람들은 산을 사려고 들어오는 게 안 보이요? 우리보다 몇배 더 똑똑한 사람들이 그럴 때는 그게 다 리유가 있지므. 형님, 산에 돈이 널렸는데 이걸 버리고 어딜 가겠소?”

그는 동국이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어떤 확신으로 가득차있었다. 그처럼 한번도 중심에 서보지 못하고 변두리로 비켜나 살았던 사람은 가져볼 수 없는 어떤 꽉 찬 자신감이였다. 그는 그게 부러웠다. 하지만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않고 다만 생각해보겠다고만 했다.

가끔은 이 산골을 떠나 다른 세상에 던져보고 싶은 욕망이 희미하게나마 있었던 건 사실이였다. 하지만 그 욕망 또한 희미한 환영 같은 것일 뿐 륜곽도 실체도 없었고 그 희미한 욕망의 실체를 알 수 없어 자주 마음이 허전했다. 그런 허전함을 그는 친구들과 앉아 허술한 안주에 비닐봉지에 든 배갈을 끝없이 마시는 걸로 달래군 했었다.

그가 떠나면 엄마는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가면 어데로 가야 할가. 시내에서 고중을 다니고 있는 동생이 대학을 간다면 그 뒤바라지는 내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는 막연한 것들을 밤새 궁리하다가 새벽녘이 되여서야 잠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해 봄이 오기 전에 마을을 떠났다. 동생이 대학교에 들어갔고 많은 돈을 벌어야만 했다.

“힘들더라도 네가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지. 나야 그저 니네 둘만 잘살면 되는 거지. 내 걱정은 하지 말아라.”

엄마는 그렇게 조용히 그의 등을 떠밀었다. 잘난 둘째아들의 출세길을 위해 엄마는 기꺼이 멍석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라는듯 낮은 목소리 끝에 간절함도 묻어있었다.

그는 외삼촌과 사촌형의 도움을 받아 한국수속에 필요한 돈을 마련했다. 아버지 없는 집안의 맏형답게 그는 가장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 끝에 기꺼이 쭈그리고 앉기로 했다. 개구리처럼 옴츠리고 자신의 어깨 우에 동생을 올려놓기로 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였다. 처음 비행기를 탔고 처음 외국에 나가본 것이였다. 먼저 간 친구 집에 머물러있으면서 그는 한국에서 취업을 위한 교육을 받았고 여러 곳의 일자리를 전전했다. 돈을 벌어 동생한테 보내고 전화를 했다.

“형님, 고맙소. 내 공부해서 꼭 출세할게. 엄마도 형님도 행복하게 할게. 형님 은혜 잊지 않을게.”

동생은 감격에 촉촉이 젖은 목소리로 전화 저편에서 맹세했다.

그는 비정기적으로 외삼촌네 집 전화를 통해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오, 그래. 잘 있지 나야. 니가 고생한다.”

헛헛한 목소리로 로모는 수화기 저편에서 짜내듯이 말했다.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함이 섞여있는 말투였다.

“엄마는 잘 지냅니까?”

“응. 잘 지내지. 잘 지내구 말구.”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웃는 흉내라도 내야 한다는듯 설익은 웃음소리를 실어보냈다. 잘 지내지 못해도 잘 지낸다고 할 로모였고 아파도 아프다는 내색조차 안할 엄마였다.

전화기를 내려놓았고 긴 한숨을 내쉬였다. 어째됐건 그가 없어도 가족은 잘살고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다만 중요한 것도 부족한 것도 돈이였다. 많이 배운다는 건 많은 돈이 필요한 일이고 아프지 않냐고 묻는 백마디 안부보다 약 한통이 휠씬 더 강력한 사랑을 표달하는 것임을 그는 느꼈다.

동생은 항상 돈이 부족하다고 했다.

돈,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가. 그는 가슴이 타들어갔다.

“형, 잣 따러 안 갈라우?”

그 때 쯤이였다. 한동네서 살던 동생 친구 벌 되는 용식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여기도? 한국에도 잣이 있다는 소리야?”

그는 어리둥절해졌다.

“형님, 무슨 소리 하는 거요. 사람 사는 데야 어디든 똑같지. 여기 사람들은 무서워서 잣나무에 안 올라가오. 내 가평에 잣산 도급맡아서 하는데 가기요. 잣나무 올라가는 데야 형님이 전문가재요. 샘골에서 형님 별명이 살아있는 손오공이였재요. 내 형님 전화번호 알아보느라고 여기저기 숱한 사람한테 전화했댔소. 좀 련락이랑 하메 살기요.”

그는 솔깃해졌다. 나무를 타는 것이라면 무엇보다 자신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돈을 번다는 것에도 마음이 동했지만 그는 숲의 공기, 아릿한 송진냄새를 맡고 싶어져서 부리나케 짐을 쌌다.

한국의 잣나무는 거의 고목이였다. 맨발로 올라갈 수 있는 나무는 별로 없고 거의가 신발에 사갈을 끼고 올라가야 하는 나무였다. 돈을 보고 몰려들었다가 잣나무를 돌아보고는 그냥 돌아가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도착한 첫날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찾은듯 페로부터 나오는 깊은 숨을 내쉬였다. 오랜만에 쉬는 깊은 숨이였다.

나무에 올라 잣을 따고 밑에서 잣을 주어 큰길까지 내가고 차에 실어 산 아래로 잣을 내려다가 탈곡하는 것까지 모든 게 잘 배분되여있었다. 장대를 들고 나무에 올라가 오랜만에 휘청이는 나무가지에 몸을 지탱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그의 마음은 물이 차오르듯 싱싱해났다. 나무를 오르는 사람한테 가장 많은 돈이 차례졌고 그는 누구보다 많이 나무에 올라 잣을 땄으므로 그 해 잣철이 지났을 때 꽤 많은 돈을 벌었다. 동생한테 돈을 보내주고 엄마한테도 보내주고 외삼촌한테도 용돈이나 하라고 돈을 보내주었다. 동생도 엄마도 외삼촌도 전화기 저편에서 좋아했고 그도 비로소 뿌듯해나서 웃을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잣철이 끝나고 사람들이 산을 내려갈 무렵 산을 도급맡은 용식이는 잣철이 지났다지만 아직 군데군데 미처 손을 대지 못한 잣을 따고 이미 따놓은 잣을 탈곡도 해야 하고 일손이 필요하다며 그가 산에 남아주기를 제안했다. 딱히 갈 데도 없었으므로 그는 남기로 했다.

이삭주이 잣따기를 하고 잣탈곡을 하고 개울에서 개구리가 뛰여가는 걸 바라보며 그는 여기가 샘골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가 성장한 샘골과 이곳은 생활습관도 다르고 생각과 관념도 다르지만 산과 강은 같았고 자라는 잣과 개구리는 같았다. 여기에서 그는 개구리를 잡지 않는다. 야생개구리는 여기에서 포획금지대상이라지만 그런 리유가 아니라 해도 굳이 이곳에서 개구리를 잡고 싶지도 개구리료리를 먹고 싶은 욕망도 일지 않았다. 그것은 그냥 몸의 느낌이다. 그에게 느낌은 항상 생각보다 먼저다.

산과 강을 누비며 물속에 들어간 개구리처럼 활기차게 숨을 쉬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전념했다. 용식이는 그런 그가 고맙다고 늘 넉넉하게 일당을 쳐주었다.

그는 생각을 굴려보았다. 잣은 래년에도 달릴 것이고 이렇게 돈을 번다면 동생과 엄마한테 용돈을 보내는 외에 어느 정도 돈도 모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내에 아빠트를 한채 사야겠다. 엄마도 모셔오고 녀자도 만나고. 녀자,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아래도리가 뜨근해났다. 처음으로 가정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았고 자신도 가정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 비슷한 것에 그렇게도 가슴이 뭉클하고 눈확이 슴벅거려지는 것이였다.

 

5.

사랑에 대해 그는 모른다. 다만 그가 그 녀자를 만났을 때 가슴이 아팠다는 것 뿐이다.

조그만 녀자였다. 손도 조그맣고 발도 조그맣고 목소리도 작아 그 녀자와 마주하면 괜히 유리잔 대하듯 조심스러워지던 그런 녀자였다.

그가 녀자를 만난 것은 용식이가 형님, 남의 고기 먹어보기요 하면서 데리고 갔던 산 아래 고기집에서였다.

“가위 바꾸오. 안되겠소.”

잘 잘라지지 않는 고기를 들고 쩔쩔 매는 녀자한테 용식이가 그렇게 롱담을 던졌고 다들 와르르 웃었다. 녀자는 얼굴까지 새빨개지며 안깐힘을 다해 고기를 자르고 있었다. 녀자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바라보며 그는 난데없는 통증을 느꼈다.

다른 사람이 내 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그렇게 순식간이라는 것을 그는 처음 알았다. 그 날, 그 고기집에서 시끌시끌한 소리, 고기 타는 냄새, 시끄럽게 술잔이 부딪치는 속에서 그는 시종일관 그 녀자의 행동을 주시했다.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정신없이 뛰여가는 녀자를, 황급히 랭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쟁반에 담아들고 달려가는 녀자를 보았다. 어서 오세요, 거기 앉으세요, 아니, 거기 말고 저기요, 네네, 금방 치워드릴게요, 네네, 금방 갖다 드릴게요. 그는 녀자의 다급한 걸음걸이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녀자의 작은 가슴이 은밀하게 오르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그 작은 가슴을 움켜잡고 싶은 욕망에 얼굴을 붉혔다. 그는 손을 내밀어 술잔을 부여잡고 녀자를 바라보며 그 어떤 아픔을 느꼈다. 욕망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그 날, 그 밤, 그 고기집에서 그 조그마한 녀자를 바라보며 알았다.

기어이 용식이가 데려간 술집에서 그 날 저녁, 그는 망설였지만 끝내는 끓어번지는 남자의 본능적인 욕망을 누르지 못하고 두껍게 화장한 녀자의 가슴에 잣따기로 거칠어진 손을 밀어넣었다. 녀자가 그의 등을 그러안았고 그는 마침내 출처가 불분명한 부푼 욕망을 서걱서걱 풀었다. 이상한 것은 그가 그 과정에도 그 조그마한 녀자를 생각했다는 것이였다. 일을 끝내고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며 그는 그답지 않게 눈물이 솟구쳐 눈을 슴벅이기도 했다.

그 날 새벽, 대리운전을 부른 용식이는 시내에 있는 집으로 내려가고 그는 일군들 몇명과 함께 숙소로 묵고 있는 펜션에 돌아왔다. 자려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아 그는 쓰러져 코를 골고 있는 사람들을 헤집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꼼꼼히 샤워를 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분노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세수비누에 거품을 내 면도를 했다. 이상하게도 괜히 얼굴이 붉어졌고 괜히 미안했고 괜히 자신의 욕망이 치욕스러워지는 이상한 밤이였다.

일군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는 그 고기집이 단골이였다. 그는 그 곳에 갈 때마다 이상하게 거울을 보고 옷차림을 체크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무리 거울을 보아도 거멓게 그을린 얼굴에 뚜렷하지 못한 이목구비는 녀자들의 호감을 끌 만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초조해나기도 했다. 초조하면서도 괜히 흥분되여 그런 날이면 허둥대며  휴대폰도 떨어뜨리고 묘하게 기분이 업되였고 싱숭생숭했다.

어디선가 새가 울고 꽃이 피고 맑은 물이 돌돌돌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으며 한국에 와서 단 한번도 불어본 적 없는 휘파람을 파란 하늘에 날리기도 했다. 고기집에 몇번 드나들면서 그는 녀자의 이름이 민주라는 것, 다른 시이긴 하지만 고향이 연변이라는 것 정도를 알게 되였다. 사람을 쉽게 접근하는 용식이가 고기쟁반을 들고 들어온 녀자에게 이름을 물었고 고기를 잘라주는 사이에 또 고향을 물었던 것이였다. 그를 달아나게 한 것은 방금 채득한 녀자의 신상에 대해 그만이 아니라 모든 술자리에 있던 일군들이 다 아는 것이라는 사실이였다. 그는 녀자에 대해 좀더 알고 싶었다. 모든 술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공개적이고 시시한 것이 아닌 그만이 알고 있는 무엇인가를 욕망했다. 녀자와 그 사이에 둘만의 비밀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몸을 달구었다.

“술 사주시면 안돼요?”

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오다가 그가 떠듬거리는 말투로 얼굴까지 붉혀가며 녀자에게 식사 한번 할 수 있겠냐고 조심스레 물었을 때 뜻밖에 조그만 녀자는 그를 빤히 쳐다보며 응낙했다. 저것이리라. 저 작고 가냘픈 몸으로 저 작은 목소리로 이 세상을 버티는 힘은 저 당돌함이리라.

녀자가 쉬는 날을 맞춰 그는 용식의 오토바이를 빌려 식당으로 찾아갔다.

녀자가 근처에서는 마시기 싫다고 거절해왔기에 그들은 택시를 불러 멀리 시내로 나갔다. 택시가 채색의 불빛이 쏟아지는 시내 번화가 쪽으로 들어갔을 때 멍하니 밖을 바라보던 녀자는 엉뎅이를 틀어 자세를 고쳐앉았다.

그 날 저녁, 그는 끝없이 녀자의 잔에 술을 채워줘야 했다. 녀자는 식당에서 고기를 자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쩔쩔 매며 어쩔 바를 모르던 녀자가 아니라 단호한 어조로 여기요, 하면서 서빙하는 아줌마를 불렀고 뭘 저리 꾸물대냐고 투덜대기도 했으며 메뉴를 불만스러워하며 안주를 시켰다.

“난요. 남보다 못난 것 하나 없다구요. 그런데 왜 이렇게 살아야 되죠?”

취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툭툭 의미 모를 말만 짧게 던지며 연거퍼 술잔을 비워내던 녀자가 볼이 발그스름해지자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녀는 이제 말문을 열기로 한 걸가.

그는 녀자가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하려 무등 애를 썼으나 처음으로 자신이 배운게 없다는 것이 못내 불만스러웠다. 근사한 말로 녀자를 달래주고 무엇인지 모를 녀자의 불안을 잠재워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워 그도 빠르게 술잔을 비워갔다.

“난요. 이렇게는 못살아요. 오빠? 나이가 얼마라 했죠? 나보다 세살 많으니 오빠라고 부를게요. 오빠는 이게 좋아요? 자고 깨나면 일하고 일 마치면 또 자고. 미치겠어. 내 시간이라는 건 아예 없고.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 같지 않아요? 손님들 잔소리는 또 얼마나 많은지. 정말 이렇게는 못살겠어. 오빠는 억울하지도 않아요? 아 근데 오빠는 왜 아직도 연변말투만 써요? 사람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 있잖아요. 난 촌스러워서 연변말 안하는데.”

녀자의 한국말은 흉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지만 지치지 않고 열심히 흉내냈다. 주절주절 이어지는 녀자의 말은 횡설수설 두서가 없었다.

그는 떠듬거리며 다 잘될 거라는 따위의, 그로서도 알 수 없는 말을 했지만 녀자는 숫제 그의 말은 듣는 체도 하지 않고 술만 먹어댔다.

“싫어, 싫어, 싫다고. 다 싫단 말이야.”

꾸역꾸역 쌓여있는 것들을 다 끄집어내고야 말겠다는듯 푸념하듯, 호소하듯 말하고 중간중간 침묵하는 순간이 오면 녀자는 빠르게 잔을 비웠다. 녀자는 드디여 눈이 풀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중얼하며 손을 내젓다가 푹 앞으로 고개를 꺾었다.

그 날 밤, 그는 술을 먹고 기절한 녀자를 업고 모텔을 찾았다. 누워서 웩웩 토해대는 녀자의 토사물을 치워주고 모텔 침대에 눕힌 다음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조금 사이를 두고 팔을 베고 누웠다. 손만 내밀면 바로 녀자의 하얗고 말랑말랑한 살을 만질 수 있었지만 왠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새벽 쯤 녀자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술에서 깬 녀자는 어제밤에 했던 행동들이 생각난듯 그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가야 하는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섰으나 이내 비틀했다.

녀자는 아아, 도저히 걸을 수 없어요. 하고 탄식하며 다시 침대에 벌렁 누웠다. 그 날 밤, 그와 녀자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와 그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의 숨소리를 느끼며 누워있어보는 건 처음이였다. 누군가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처음이였다. 종래로 그렇게 오래 진지하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도 없었고 그가 그렇게 자신의 것을 다 내놓고 싶을 만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사람도 없었다.

녀자도 그와 같은 시골에서 태여났으며 맏이가 아니라 막내라고 했다.

“내가 철이 들자 부모는 늙어버렸어요. 언니들은 시집을 가고 어떤 느낌인지 알아요? 아직 화장실에 미처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벌써 바지에 일을 저질러버려 어쩔 바를 모르겠는 그런 거 있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표현이 되나. 아무튼 그런 거예요.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쩔쩔 매야 하는 거. 그것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혼자서 헤매야 하는 거.”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 없는 시골 집안의 맏아들인 그 역시 철이 들어서부터 삶의 무게라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이 그가 맏아들이여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맏이라는 이름의 무게,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현실의 무게, 당연히 짊어져야 하는 무게, 그게 바로 맏이라는 생각, 동생 만큼 잘나지 못했기에 당연히 잘난 동생이 더 빛나고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 은근히 그걸 강요하는듯한 엄마의 말없는 표정이 때론 서운하고 때론 서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막내도 힘들 수 있구나.”

그는 중얼거리듯 그런 말을 뱉었다. 맏이나 막내라서가 아니라 잘못 던져진 삶들의 고달픔이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료양병원에 있어요. 그리구 어제는 남자친구가 결혼했어요.”

녀자가 쿡쿡 웃으며 말한다. 그 웃음은 숫제 눈물이라도 쏟아질듯 서글프게 안겨왔다.

“사랑이라는 게 뭘가요. 잘 모르지만 그냥 너무 좋고 안 보면 보고 싶고 그 사람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시간도 많았지만 많이 싸웠어요. 좋은 집안에서 근심이 뭐고 걱정이 뭔지 모르고 곱게 자란 사람하고 집채처럼 삶의 무게를 떠안고 있는 나는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늘 우리 두 사람의 일만 생각했고 나는 그게 아니였으니, 아닐 수 밖에 없었으니…”

녀자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무거운 부담을 가냘픈 어깨에 떠메고 있는 녀자를 보며 엄마가 떠올랐다. 그는 가슴이 아팠다. 동시에 그는 자신과 녀자 사이에 어떤 통로 같은 게 생겨나는 느낌을 받았다. 아프고 가슴이 저릿저릿하고 뭔가 뜨거운 것이 몸을 달구는듯한 그런 느낌이였다.

아침을 먹고 점심때 쯤 출근을 해야 하는 녀자를 데려다주고 그는 펜션으로 돌아왔다.

잠간의 만남이였고 뜨거운 청춘남녀 사이에 당연히 일어날 법한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는 갑자기 세상 모든 것이 달라보였다. 하늘은 더 푸르고 맑은듯했고 개울물도 갑자기 정다워졌으며 숲의 공기는 한결 청신해진 것 같았다. 오래된 창틀을 수세미로 밀고 기름칠을 하면 새것처럼 환해지던 것과 같은 일이 자신한테도 일어나고 있는듯이 느껴졌다. 그리고 용식이랑 술집에 가지 말아야겠다고, 화장이 두꺼운 녀자를 안고 부푼 욕망을 서걱서걱 푸는 따위의 일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그것은 자기 자신한테도, 민주한테도 미안한 일인 것 같았다.

쉬는 날이 맞지 않아 민주와 한번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였다. 모처럼 시간을 맞춰 만난 날, 민주가 물었다.

“뭐하시려구요?”

그 말에 그는 얼굴을 붉혔다.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놓고 그는 잣을 따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민주와 만나서 할 일들에 대해 생각했으나 민주를 마주하는 순간까지 확실한 계획을 세우지 못했던 것이였다.

민주의 제의에 의해 그들은 시내로 나가 영화를 보았다. 처음으로 영화관이란 곳에 와본 그는 모든 게 너무 낯설었다. 영화도 망설임 끝에 민주가 고른 것이였다. 영화는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민주를 곁눈질해보니 민주는 골똘히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숫제 영화에 몰입해있었다. 그는 혹시 자신이 재미를 찾을 줄 몰라 그런 게 아닌가 의심되여 재미를 찾으려고 애썼으나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영화에서 어떤 녀자가 울면서 떠나가는 남자를 잡고 있었다. 그가 돌아봤을 때, 어둑시그레한 영화관 조명 아래 민주의 얼굴에 물기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그 물기를 닦아줄 념을 못하고 다만 몸을 옹송그렸다.

민주는 고기집 서빙 일을 힘들어했다. 작고 여린 그녀의 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로동임을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좀더 능력이 있고 가진 것이 있어 민주가 그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 무렵 마침 동생이 졸업학년이라 돈 쓸 일이 많았고 잣철도 지나서 그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산의 풀을 베고 버섯을 따는 따위 별로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이였다. 동생한테 돈을 보내고 엄마한테 용돈을 보낼 정도의 벌이는 되지만 여유는 많지 않았다.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민주와 그는 서로 침묵하게 되는 시점이 있었다. 료양병원에서 암투병으로 많은 돈이 필요한 민주의 엄마와 아직 갈길이 먼 그의 동생과 그의 엄마의 이야기에 대화가 미치면 그와 민주는 약속한듯 서로 침묵하다가 말없이 술잔을 비우고는 쓱 저가락을 내밀어 안주를 집어 잘게 씹었다. 그들은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없는 사람들이였다. 삶의 무게라는 것이 켜켜이 쌓여 이끌고 안아야 하는 게 너무 많아 미처 자신은 돌볼 여유를 가질 생각조차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였다. 어쩌면 그것은 운명 같은 것이여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마다 그는 가슴이 저려왔다.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민주가 떠나기 전날, 노래방에서 부르던 노래였다. 민주는 노래를 잘하는 편은 아니였다. 그렇다고 아주 못하지도 않았다. 잠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민주의 옆얼굴은 어릴 때 그가 보았던 엄마의 망설임이 담긴 얼굴처럼 차겁게 느껴졌다. 그 날 밤 모텔에서 그는 민주의 말랑한 육체를 안았다. 그도 민주도 최대한 말을 아낀 밤이였다. 사랑한다는 말도 못해본 채, 그래서 굳이 헤여진다는 말도 없이 그들은 그렇게 헤여졌다. 좀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야간근무를 하는 전자회사로 가야겠다는 민주를 그는 잡을 수 없었다.

고속뻐스 차창으로 손 한번 조그맣게 흔들어보이고 그렇게 민주는 떠났다. 오래도록 그 자리에 굳어져있다가 다리가 저려나서야 그는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회색으로 다가오던 날이였다. 그의 삶을 빛나게 해주던 것들은 찰나의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민주로 인해 빛나던 모든 것들은 민주가 떠나감으로 그 빛을 잃고 윤기를 잃어버린 것이였다.

터덜터덜 끝없이 걸었던 날이였다. 왠지 뻐스도 택시도 싫어서 그는 한시간여를 걸어 펜션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쓰러져 시체처럼 자고 또 잤다.

 

6.

동생이 드디여 졸업했다. 대학을 다니던 곳보다 고향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직장을 잡았다. 마치 냄새 나는 음식을 피하듯 동생은 최대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겠다고 했다.

“형, 대학만 나오면 내가 엄마를 모시고 집안의 부담 다 안을게. 형님 고생한 것도 보답하고.”

“형님, 내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기다리오. 그 때가 되면, 그 때면 형님은 고생 끝일게요.”

호언장담처럼 그가 돈을 보내줄 때마다 동생이 하던 말이였다. 그는 담배를 물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 오래된 말을 떠올려보았다.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던 건 아니였다. 하지만 왠지 모를 서걱거림이 그의 마음을 치런치런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지, 한마디 변명조차 없는 동생한테 어쩐지 서운함이 느껴졌다. 그는 담배를 깊게 한모금 빨았다. 치런치런한 마음이 조금씩 다독여지고 있었다. 담배연기가 하얗게 피여올라간다. 그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원래부터 그럴 걸 알았으면서 뭘 하며 속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동생은 그 곳에서 중국녀자를 만났다고 했다.

“형, 한족이면 어떻소. 나한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녀자요.”

이제 동생도 술을 배운 건가, 알콜냄새가 느껴졌다.

“아무 힘도 빽도 없이 살 만한 세상이 아니라는 거 형님도 알지 않소. 난 힘이 필요하고 빽이 필요하오. 대학을 졸업했다지만 누가 뒤 받쳐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악을 쓰고 우로 올라오려고 난 버텼소. 담배도 안 피고 술도 안 먹고 대학 다니는 동안 바보라는 소리, 별종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련애도 안했소. 죽어라 공부만 했소. 그게 우로 올라가는 사다리라고 생각했소. 하지만 이제 조금 올라와보니 형, 여긴 피비린내가 진동하오. 아래서 올려다볼 때는 꽃향기가 날 것 같았는데 가까이 다가와보니 살륙전이요. 우로 올라올수록 더욱 물고 뜯는 세상이란 걸 알았소. 형, 그래도 난 높이 올라가야겠소. 거기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올라가봐야겠소. 우리가 샘골에서는 죽을 때까지 벌어도 이 도시의 화장실 한칸도 살 수 없다는 것이 난 화나오. 참을 수 없이 화가 나오. 샘골에서 태여난 나도, 아버지 없이 자란 나도 이 도시의 화장실 뿐만 아니라 아빠트도 내 이름으로 마련하고 차도 사고 미친 척 하루밤에 샘골사람들 일년 수입 되는 돈을 술값으로 써버리며 그렇게 살고 싶소. 형, 형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소? 아니라구? 그렇지 형과 난 다르니까. 난 형과 다르잖소. 난 다르오. 다르고 달라야 하고 달라지고 싶소. 다르다는 걸 만천하에 보여주고 싶소. 보여주고 미친 척 웃으며 이를 갈며 그렇게 살 거요. 그렇게 살아서 뭐 하냐구? 글쎄 뭐를 하겠는지는 나도 모르겠소. 꼭 뭐를 해야 하오? 형님은? 그럼 형님은 어떻게 살고 싶소? 그렇게 살아 뭐 하려구? 그렇지만 형, 난 이렇게 미친 척 살고 싶소. 살아보고 싶소. 난 그렇게 살아야겠소!”

형, 형님.

동생은 울분을 토하듯 토해내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 모은 돈을 긁어 동생한테 결혼비용으로 보냈다. 그래, 네가 소원이라면 멀리 올라가거라. 이건 니가 올라가는 길에 디딤돌 하나 쯤도 못되겠지만 내가 줄 수 있는 전부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밤하늘에서 별 하나가 아득한 지구 저편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먼곳에서 치러진 동생의 결혼식에 그는 가지 않았다. 어쩐지 가고 싶지 않아 일이 많아 몸을 뺄 수가 없어서 못 갈 것 같다고 핑게를 대고 가지 않았다. 동생도 기어이 오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는 술기운에 열기 비슷하게 달아오른 몸을 벽에 기대고 동생이 위챗으로 보내온 사진을 받아보았다. 사진 속에서 동생은 검은색 외제 차에 몸을 기댄 채 과장된 웃음을 활짝 보이고 있었다. 이름이 쑤메이라고 동생이 말한 턱이 뾰족한 중국녀자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동생한테 살짝 기대고 깨끗하게 웃고 있었다. 쑤메이의 고르고 하얗게 빛나는 치렬은 그로 하여금 치아가 새까매서 항시 웃고 나선 뒤늦게 손으로 입을 가리던 민주를 떠올리게 했다. 그렇잖아도 무척 말라서 초라해보이는 엄마는 초록색 한복을 입어 더욱 왜소해보였다. 엄마는 마치 백조무리에 낀 닭처럼 잔뜩 긴장되여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민주는 떠나간 뒤로 소식이 없었다. 그는 몇번이나 민주한테 전화를 해보려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가 종당엔 포기하고 말았다. 잠 안 오는 밤, 위챗에서 민주의 이름을 찾아 클릭해놓고 무수히 많은 말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또 무수히 많은 말을 썼다. 허나 끝내 보내기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그는 하지 못한 말들을 가슴에 꾹꾹 삼켜버리고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민주는 그에게 삶과 같았다. 그에게 다가와 잠간 희망도 주었지만 끝없는 고통을 남기고 떠나갔다. 그러면 민주에게 자신은 무엇이였을가. 민주에게도 나는 고통만 남긴 존재는 아니였을가. 그는 머리를 저었다. 더 이상 복잡한 것은 싫다. 생각하기도 싫고 그저 단순하게 살고 싶다. 그 즈음 그가 늘 하는 생각이였다.

그럭저럭 삶은 지속되였다. 버텨졌고 살아졌다. 한때 그는 민주가 자신의 전부인듯 느껴진 적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옅어졌다.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걸 잃고도 여전히 그렇게 태연하게 살아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는 놀라웠다.

 

7.

“엄마가?”

“그래, 니네 엄마 터밭에서 꼬꾸라졌다. 지금 병원에 있다. “

잣나무에 잣이 애기주먹 만큼 자랐을 때 그는 외삼촌의 전화를 받았다.

“혈압이 높으셨습니까? 그럼 평소 식습관은 어떠셨습니까?”

하얀 가운에 싸여 어딘가 근엄해보이는 중년의 남자의사가 그와 동생을 번갈아 훑으며 채근하듯 물었다. 그도 동생도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어 침묵만 지켰다. 회사를 단 하루도 비우기 힘들다는 동생은 이튿날로 돌아가고 그가 엄마의 곁을 지켰다. 엄마는 깨여났지만 반신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였다. 몰라보게 수척해진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마음이 짠했다. 엄마는 언제 이렇게 늙어버린 걸가, 저 주름들은 언제 저렇게 패인 걸가. 링게르가 꽂힌 엄마의 손은 파랗게 피기라곤 없었다. 그럼에도 심장은 뛰고 숨은 쉬여지고 하루하루 조금씩 회복되여갔다.

 

“엄마를 료양병원에 모시자구?”

그는 동생을 바라봤다. 엄마가 퇴원하는 날을 맞춰 먼 도시로부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동생은 검은색 서류가방을 단정하게 들고 슬프지도 흥분하지도 않은 얼굴로 병실에 들어섰다. 동생은 병실에 들어서서 엄마를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그를 끌고 복도 한켠으로 나왔다.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 해가 지고 있었다. 하루의 사명을 다 마친 해가 너울너울 지구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넘어가면 오늘의 해는 다시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침을 삼켰다.

“그래도 어떻게.”

그는 처음으로 동생한테 분노를 느꼈다. 바쁘다는 핑게로 아픈 엄마한테 미음 한숟가락 떠넣지 않은 동생이, 요강 한번 비워본 적 없는 동생이 마치 자신이 엄마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라도 있는듯 단호하게 말한다. 엄마도, 형도 이제는 동생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여버린 게 아닌가. 높이 올라가려고 꼭대기만 바라보느라 옆도 앞도 다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그는 동생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고 싶은 충동에 몸을 떨었다. 동생의 꼭 다문 얇은 입술이 벌어지고 마침내 찢기고 거기에서 터져나온 뜨끈한 피가 흘러내려 동생의 얼굴을 적시고 옷을 적시고 바닥을 적시게 하고 싶었다. 동생의 피도 뜨겁기는 한지 한번 쯤 느껴보고 싶었다. 그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끝내 날리지 못한 주먹을 틀어쥐고 가슴 속에서 솟구치는 모든 걸 꾹꾹 눌러담고 우뚝 서있었다. 동생의 반듯한 양복과 깨끗한 흰 셔츠의 깃을 바라보며 거기에 번지는 피자국을 환영처럼 보고 있었다. 슬픔 같기도 하고 아픔 같기도 한 이름 못할 감정이 꾸역꾸역 가슴 속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글쎄 어쩔 수 없지 않소. 형님, 형님은 다시 한국으로 나가야는 게 아니요? 형님한테는 아무래도 한국이 낫지 않소? 그리고 운신도 잘 못하는 엄마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소? 지금 이전하고 달라서 녀자들이 시엄마를 모시는 건 신화 같은 말이요. 더구나 쑤메이 걔는 공주처럼 자라서 세상의 중심이 자기인 줄 아는 애요. 그깟 돈 좀 있는 것 땜에 나도 더러운 대로 그저 걔가 하자는 대로 하면서 살고 있는 처지요. 집청소 해주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신던 양말도 세탁기에 집어넣을 줄 모르는 애요. 내가 가진 게 없다 보니 장인 장모한테도 허리 굽혀야 하고 회사에서도 허리 굽혀야 하고. 그러면서 나도 버티고 있소. 올라가려고 살아보려고 버티고 있소.”

동생이 눈을 감았다가 뜬다.

“나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러지. 료양병원도 시설이 좋아서 로인들 지내기는 좋답데. 거기 가면 친구도 있을 테고. 좋은 쪽으로 생각해보오. 비용은 형님하고 내가 반씩 부담하고. 그게 좋지 않겠소?”

동생이 채근하듯 묻는다.

어디론가 자신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빨리 엄마를 류배라도 보내고픈 심정이라는듯 동생은 엄마를 료양병원에 보내야만 하는 갖은 리유를 갖다 붙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산에서 돌들이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는 흡- 하고 숨을 내쉬였다. 료양병원에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와 소독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빛이 들지 않는 복도 량쪽으로 칸칸이 나뉘여져있었다.

“여기는 자립할 수 있는 분들 칸이구요.”

작은 방에 머리를 짧게 자른 할머니들이 멍하니 앉아 텔레비죤을 보다가

“누가 또 오나 보오.”

“어쩌겠소. 이제 여기를 거쳐야 죽는 거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반신을 못 쓴다고 하셨습니까? 그럼 여긴 안되고.”

원장이 수군대는 로인들이 있는 칸을 지나 앞쪽으로 안내했다.

“아야. 정말 이 아바이는 너무 잡순다니까. 맨날 누워만 있으면서도 저리 식성이 좋으니 렴치가 없는 거지. 아 구려 정말.”

살이 덕지덕지 붙은 아낙네가 커다란 종이뭉치를 들고 나가며 투덜거린다. 저게 말로만 듣던 어른들이 차는 기저귀인가.

“이 방이 어떻습니까?”

침대 두개가 량쪽 벽에 바싹 붙여놓은 방에 들어서서 원장이 그와 동생을 쳐다봤다. 검버섯이 얼굴의 반 이상을 덮은 안로인이 후들거리는 손으로 이불깃을 만지며 놀란 눈으로 불청객들을 쳐다봤다.

“여기 이 방에 로인분이 금방 돌아가셔서 자리가 비였습니다. 이 방 아님 자리가 없어요.”

원장이 그들을 쳐다본다.

“흑흑…”

갑자기 안로인이 울음을 터뜨린다. 원장은 밥 먹고 똥 싸는 것처럼 늘 있는 생활이라는듯 허허 웃는다.

“로인들 이렇습니다. 같이 생활하다 보면 정이 들고 돌아가시면 또 저래 울고.”

“할머니, 곧 친구 찾아드릴게요.”

원장이 울고 있는 로인네 앞으로 다가가 큰소리로 말한다.

로인은 끄덕끄덕하면서 팔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내가 샘골로 모시고 갈게.”

양로원을 나와 도로가 있는 큰길까지 내처 걷다가 그는 동생한테 그렇게 말했다.

뚝, 동생이 멈춰섰다.

“형님, 정말이요? 잘 생각해보오. 형님이 정 그러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형님한테 맡기기보다는 료양병원에 모시는 게 나는 마음이 편하오. 그리고 랭정하게 잘 생각해보오. 엄마를 끌어안고 있으면 형님 인생은 어쩌려구? 형님도 녀자를 만나고 결혼도 하고 남들처럼 살아야지 않소. 정말 잘 생각해보고 하는 말이요?”

동생이 그의 눈을 들여다본다.

그는 동생을 외면하고 고개를 들었다. 비가 오려나 하늘이 잔뜩 흐려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생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8.

“형님, 정말 잘 왔소.”

오랜만에 만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동국이는 어제 금방 만나기라도 했던 사람처럼 큰소리로 형님 하고 부르며 그의 집에 들어섰다. 안 본 몇년 사이 동국이는 몸이 나고 제법 유들유들해져 메마른 그에 비해 기름기가 보이는 사람이 돼있었다.

그는 막 자리를 깔고 엄마를 눕히고 주섬주섬 집안을 치우고 있던 참이였다.

“어머이, 이제 갠찮스꾸마. 큰아들이 와서 얼매나 좋슴둥. 혼자서 외롭게 지내시더만 이제 아들이 와서 얼매나 좋슴둥.”

동국이는 로모한테 다가가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동생은 저렇게 아픈 엄마 손을 저토록 다정하게 저토록 아무 망설임없이 덥석 잡은 적 있던가, 나는 있었던가.

“형님, 형님이 정말 진짜 효자요. 민호 그 개새끼 집안에 돈은 지가 다 끌어다 쓰고 자기 혼자 도망 가서 잘살겠다고 뒤도 안 돌아보고. 형님 동생이지만 욕 좀 할게. 어머이, 귀한 둘째아들 욕 좀 할게요. 하하. 그래도 어머이는 귀한 아들 욕하니 안 좋은가 보오. 허허 알았슴다. 어머이, 욕 안할게요. 어머이 아들이 이 동네서야 수재입지.”

동국이가 자리를 고쳐앉으며 그를 바라본다.

“형님, 어머이도 돌보고 나한테 와서 일 좀 해주오. 한국에서 벌기보다는 못해도 괜찮을게요. 가지 말고 여기서 나랑 살아보기요.”

그는 로모를 바라본다. 로모는 고개를 덜덜 떨며 이불자락을 만지고 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내 게요.”

동국이는 학교 운동장 서너배는 되게 울타리를 친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들이 떠나가면서 버린 집을 내가 다 사들였소. 여기 철길이 놓인 거 봤지? 저기 앞에 남구산 쪽으로 철길이 지나간 거 보이지?”

그는 눈을 들어 동국이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봤다. 마을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남구산을 가로지른 철길이 보인다.

“형님, 여기 이제 외지에서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오. 빈 땅에 집을 지어도 집조를 안 내주오. 여기서 집조 내자면 있는 집을 허물고 지어야 집조를 내주오. 호구 있어도 와서 살기 바쁘다는 말이 되지므. 이제 몇년 안으로 도로도 뚫린다 하고 이제 광천수공장도 선다 하오. 그럼 여기 집값이며 땅값이 엄청 뛸게요.”

동국이는 어깨를 쫙 펴고 팔을 뻗어 자신의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처럼 우쭐해있었다.

“형님, 어떻소, 나도 이만하면 괜찮지 않소? 형님 동생 만큼 잘나진 못해도 이만하면 나도 잘 구을러왔다고 생각하오. 여기 잣산도 내가 샀고 사람은 얼마 없지만 촌장도 맡았소. 형님 동생이 공부 잘해서 학교서 반장할 때 나는 싸움 잘해서 뒤골목반장 했으니 갸가 시내에서 우로 올라갈 때 나는 샘골에서 땅바닥에 곤두박질이라도 쳐야지므. 형님, 나하고 여기서 굴러보기요. 난 형님 동생처럼 은혜를 몰라라 하는 놈은 아니오. 누가 나한테 해준 것 만큼 반드시 돌려주는 놈이요. 그게 은공이든 주먹이든 나는 여태 그렇게 살았소. 형님, 나랑 같이 살기요.”

동국이의 굵고 분명한 목소리가 귀가에 들린다.

산도 그 산이고 흙도 그 흙인데 모든 것이 변해있는듯하다. 그는 오랜만에 느끼는 고향의 공기와 훌쩍 변해버린 모든 것에 막연해져 신발로 발밑의 땅을 문질렀다.

돌돌돌, 개울물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저 소리. 변하지 않은 것은 저 개울물소리 뿐일지도 모르겠구나. 저 안에 개구리도 헤염치고 있을 테고 돌쫑개도 숨어있을 테지. 그래, 그것들은 그대로일 테지.

그는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사실에 가느다란 마음을 한줄기나마 내려놓기로 했다.

 

9.

“여길 어떻게.”

반가움과 생경함으로 약간 떨리는듯한  목소리가 목구멍을 겨우 빠져나온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건조하다고 생각한다.

“오빠가 여기 이야길 많이 했잖아요. 그래서인지 그 때 한국에서 가평을 떠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동안에 문득문득 여기 생각이 났어요. 어떤 곳일가 궁금했구… 특히 이거. 오빠가 늘 말하던 앞개울이 가장 궁금했어요.”

낮게 퍼지는 민주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한국엔 또 가는 거구?”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 그는 그렇게 묻는다.

“글쎄요. 또 가는 건지만 묻고 왜 들어온 건지는 안 물어봐요?”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는듯 민주가 그를 올려다보며 장난스럽게 던진다.

그는 민주를 흘깃 곁눈질해본다.

회색의 얇은 경량패딩에 감춰진 민주의 몸은 전보다 더 마른듯해보였다. 거칠어진 피부와 너무 많은 것을 겪어 이제 더 이상 놀라울 것도 없다는듯한 민주의 표정이 아프게 맞혀온다.

“엄마가 돌아갔어요.”

“어?”

그가 놀라 민주를 바라본다.

그러나 민주의 옆얼굴은 담담하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멀리에 시선을 보내며 민주가 말한다.

“엄마의 사망소식을 한국에서 들었죠. 난 엄마가 영원히 살 줄 알았던 걸가. 왜 그 때는 한번도 엄마가 갑자기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했던 것 같아요. 그냥 돈을 벌어서 돌아가서 엄마를 내 손으로 돌봐야지. 막연하게 그런 생각만 했어요. 그래서 미친듯이 일만 했어요. 남들이 안하는 야간고정을 하면서 정말 나를 던져 일에만 매달렸어요. 쉬는 일요일이였어요. 낮에는 잠만 자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미치겠어서 모든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텔레비죤 앞에 앉아 채널만 바꾸며 밤을 꼬박 새고 뻥뻥해진 머리로 아침에 전철역에 나가다가 길에서 전화를 받았어요. 양로원 원장님이 아침에 돌아가셨다구… 엄마가 돌아가셨다구… 그랬어요. 그 순간 내 느낌은 뭔가 아득했어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아… 했어요. 그다지 놀라지도 않고 눈물도 나오지 않고 그저 꿈을 꾸는 것 같고 그렇더라구요. 언니랑 오빠한테 전화를 하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공항에서 셋이 만나서 그렇게 엄마의 장례를 치르러 들어왔어요.”

민주는 잠간 말을 끊는다. 표정이 굳었다가 서글프게 푹 하고 웃는다.

“양로원에 후사를 부탁하고 들어오니까 정리가 다돼있더라구요. 어차피 가족 중에 그런 걸 해줄 어른도 안 계셨구 해서 그냥 양로원에 부탁을 했어요. 비용만 지불하면 지금은 다해주더라구요. 유품들은 모조리 태웠고 엄마는 화장터 사체실에 랭동되여있고. 할 일이 별로 없었어요. 오빠는 오래 련락 안하던 친구들이며 친척들에게 전화를 끊임없이 돌리더라구요. 어떻게 하나 한명이라도 더 불러 장례식에서라도 뭔가 과시하려는듯이. 될수만 있다면 돈을 내고 사람이라도 사다가 세워놓고 싶어하는 사람 같았어요. 오빠는 그런 사람이예요, 보여지는 게 중요한 사람. 언니는 그게 불만이였어요. 그저 뭐든지 간단하게 하자. 그게 언니의 주장이였어요. 제사상 차림도 간단하게 필요한 것만 사자. 우리끼리 그저 조용히 하고 말자. 그랬어요. 화장터 랭동실에 엄마를 두고 그렇게 둘이 밤새 싸우고 있었어요. 살아 생전에 양로원에도 와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웃기게도 엄마가 돌아가시니까 갑자기 열정적으로 매달리더라구요. 웃겼어요, 모든 게. 난 그냥 빨리 끝나버렸음 좋겠다, 언니랑 오빠가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요.”

겨울해가 수면 우를 비춰 개울물이 반짝반짝 빛난다.

바람이 분다. 제법 차다. 민주가 추운지 몸을 옹송그린다.

“결국 언니 말대로 조용하게 치렀어요. 조용히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끝없이 전화를 했으나 오빠가 부른 사람들은 장례식에 오지 않았던 거죠. 랭동실에서 누런 포대 같은 안에 들어있는 엄마의 시체가 들 것에 들려나오는데 마지막이라고 한번 볼 거냐고 하는데 언니도 오빠도 보지는 않겠다고 하더라구요. 나야 원래부터 보고 싶지 않았어요. 왠지 못 볼 것 같았어요. 그냥… 내가 감당이 안될 것 같았어요. 언니가 마른 목소리로 곡을 하고 나도 따라하고 눈물도 잘 나오지 않았어요. 화장터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골회도 수습하지 않기로 해서 그냥 그렇게 끝났어요. 순식간에, 너무 빨리. 그렇게 끝나더라구요. 거기서 또 한번 언니랑 오빠는 싸웠어요. 제사를 지내는데 언니가 하얀 종이를 준비하지 않아서 신문지를 폈다고, 그게 남들 보기에 창피하다고 오빠는 화를 냈어요.”

민주의 조그만 어깨가 가냘프다.

“그렇더라구요. 사람 사는 게 그렇더라구요. 허망하죠?”

대답을 기대한 물음이 아니라는듯 민주가 말을 잇는다.

“언니는 이제 자기가 제사를 챙긴다고 엄마의 영정사진을 아들 집에 갖고 갔다가 아무래도 못하겠던지 그 날 밤 아빠트단지 아래로 내려와서 태워버렸다고 했어요. 오빠는 길길이 뛰였고 둘은 그렇게 한국 가는 날까지 싸우다가 서로 다른 비행기로 가버렸어요.”

고양이 한마리가 개울가를 산책한다. 허리를 쭉 뻗고 한껏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의 털이 해빛에 눈부시다. 누구네 집 고양이일가 그는 궁금해진다.

“언니 오빠가 가고 빈 집에 혼자 남게 되니까 왜 갑자기 졸음이 그렇게도 몰려오던지요. 며칠을 내내 잤어요. 밥도 먹지 않고 자고 자고 또 자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그냥 여기 생각이 났고 그래서 와본 거예요. 오빠가 한국에서 돌아와서 여기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그냥 뭔가 숨을 쉬고 싶었어요. 그런데 왜 여기로 오고 싶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요.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렇게 리유가 확실하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 요즘 많이 해요.”

민주는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아무런 윤기도 묻어있지 않는 목소리로 그렇게 혼자말처럼 내뱉는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 말없이 서서 먼곳을 바라본다.

“여기 참 좋네요. 이런 곳에서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럴 수만 있다면…”

민주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리고 쓸쓸하게 웃는다.

 

택시가 앞에 와서 선다.

민주가 천천히 다가가 뒤좌석 문을 연다. 그는 움직이지도 입을 열지도 못한다. 입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맴돌고 있는 수많은 단어들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며 묵묵히 서있는다. 다만 뚫어질듯한 두눈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기어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영원히 두눈에 담아놓고야 말겠다고 굳게 다짐한 사람 같았다.

문을 열고 민주가 잠간 멈칫하며 고개를 돌린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민주는 어색하게 웃는다. 수초의 머뭇거림이 민주의 얼굴을 스친다. 민주가 끝내 고개를 돌린다.

민주가 탄 택시는 빠르게 그의 시야에서 멀어져간다. 그것은 하나의 점이 되여버렸다가 끝내 아득하게 하늘로 피여오르는 먼지 한줄기만 남기고 그의 시야에서 영영 사라진다.

꿈을 꾼 건 아닐가. 가슴이 구멍이라도 뚫린듯 헛헛하다.

그는 저려나는 다리를 감각 없이 옮겨 개울가 쪽으로 간다. 민주의 쓸쓸한 웃음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꾸역꾸역 올라와 그를 견딜 수 없게 달구고 있다. 크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진다.

첨벙첨벙, 그가 개울물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그가 발을 옮겨놓는 자욱마다 커다란 물보라가 하얗게 일어난다. 츄리닝바지가 젖어들어 옮기는 발에 힘이 들어간다. 순식간에 찬 기운이 온몸을 감싸오고 아래다리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쓸쓸하게 웃고 있는 민주가 떠오른다.

날이 잘 선 칼 하나를 가슴에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듯한 동생이 떠오른다.

난, 남보다 못한 게 없어요. 난 억울해요. 소리지르던 민주의 얼굴이 떠오른다. 형, 난 올라갈 거야. 미친듯이 노력할 거야. 기어이 올라가고 말 거야. 동생의 열띤 얼굴이 떠오른다. 잣을 딸 때 잣나무를 타고 올라가 마침내 꼭대기에 다달아 잣을 쳐서 떨어뜨리고 나면 마음이 헛헛하듯이 민주도, 동생도 마침내는 헛헛한 마음이 되지는 않을가. 그 헛헛한 마음을 민주도 동생도 견뎌낼 수 있을가.

엄마는 어떻게 삶에 으악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견뎌냈던 걸가. 한번이라도 소리내여 울고 싶고 온힘을 다해 크게 한번 소리라도 질러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을가. 죽어서도 자식들의 얼굴 한번 못 봤다는 민주의 엄마는 지금 저 하늘에서 헛헛하지 않을가.

무엇이 로모를 끝내 말을 버리고 입을 다물고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한 것일가. 개구리는 어떻게 스스로 입을 닫을 줄 아는 것일가.

해빛에 개울물은 하얗게 반짝인다. 그는 두손을 물에 넣고 적시다가 손바닥으로 물을 탁 친다. 탁탁탁 쳐댄다. 물을 치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의 손에서 튕겨져나간 물들이 초원을 달리는 숫말의 말갈기처럼 솟구쳐오른다. 수많은 순간들에 머뭇거리기만 했던 사람, 언제나 꾸역꾸역 모든 것을 안으로 안으로 구겨넣었던 사람, 묵묵히 모든 것을 다만 견뎌왔던 사람, 그 사람은 내가 맞는 건가. 그는 그 사람이 한없이 가여워져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폴짝, 개구리 한마리가 뛰여간다. 막 겨울잠에 빠지려고 몸을 숨길 돌멩이를 찾아가는 놈인가.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는다. 손안에 물컹한 것이 느껴진다. 그는 두손가락을 뻗어 갈색의 륭기선이 두줄 나있는 개구리 등뼈를 잡는다. 까끌까끌한 뼈의 감각이 손가락에 맞혀온다. 그가 손가락을 쳐들자 등뼈를 잡힌 개구리는 두다리를 쭉 늘어뜨린다. 배 아래쪽이 붉고 배속의 알 때문에 아래배가 축 늘어진 그것은 수많은 새끼개구리를 품고 있는 암놈이다. 그는 다른 손 엄지를 내밀어 천천히 오래 전 다물어버린 개구리의 입을 만져본다. 차거우면서 미끌미끌한 감각이 랭기로 얼얼한 몸에 전해진다.

그는 아무 것도 담겨져있지 않는듯한 개구리의 눈을 바라본다. 개구리의 툭 불거진 눈은 마치 모든 것을 비워낸듯 투명하다. 그것은 로모의 시선과 닮아있다. 그는 허리를 굽혀 물속에 손을 넣는다. 그가 손의 힘을 빼자 개구리가 그 틈을 타 슬쩍 빠져나간다. 그의 손에서 빠져나간 개구리는 몇번 헤염치다 돌멩이 틈새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터덜터덜, 뻣뻣해가는 다리를 움직여 그가 드디여 개울물에서 걸어나온다. 물에서 나오자 온몸이 덜덜 떨리며 이발이 아래우로 딱딱 부딪친다. 그는 걸음을 옮겼으나 몇발자국 걷지 못하고 비칠한다. 젖은 발이 돌멩이에 미끌어 그만 자빠진다. 일어나는 대신, 그는 사지를 활짝 펼치고 벌렁 땅에 들어눕는다.

클클.

그가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낸다.

몸에서 빠져나온 소리들이 멀리 퍼져나간다.

지구 저편으로 넘어가는 저녁노을이 붉게 빛난다. 진붉은 노을이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그의 얼굴을 감싼다. 물기에 번들거리는 그의 얼굴은 마치 물감이라도 칠한듯 울긋불긋하다. 그 얼굴에 노을빛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 겨울이 지나면 꽃이 피고 따스한 바람이 불고 새들이 노래하는 봄이 올 것 아닌가. 개구리도 그것을 알고 돌멩이 밑에서 겨울을 견디는 것이 아니겠는가. 봄은 올 것이다. 누구에게나 봄은 올 것이다. 남자의 눈빛이 새로 태여나는 아이의 눈빛처럼 깨끗하게 맑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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