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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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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을 걷다
2013년 09월 05일 15시 54분  조회:721  추천:0  작성자: 김경희

안개속을 걷는다. 그 아름다움에 취한다.

안개에 휩싸여 세상과 나 사이가 차단된다. 하여 나를 고독의 산정으로 몰아간다. 순간 외계와 격리되는 파음이 가슴벽을 친다. 그 파음이 몰고오는 진동보다는 그 신비가 안고오는 전률이 크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아름다운 삶의 진실처럼, 일출 그 순간보다는 일출의 도래를 기다려 천태만상을 연출하는 환상적인 안개바다에 나는 더 취한다. 시야를 덮으며 다가오는 안개바다는 출렁이며 가슴의 깊은 곳을 흘러 나를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그 환상의 줄기는 때로는 잔잔히, 때로는 굽이치며 나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촉촉히 적시며 진정시키고 내 가슴의 평화를 불러온다.

환상의 안개바다는 나를 신비속에 잠근다. 이제 그는 령혼마저 기울여 혼신으로 떠오를 희망인 태양을 받쳐올릴테지.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 그 빛에 그는 서서히 녹아 형체조차 없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테지. 그때면 그는 우리의 기억속에서도 서서히 안개 걷히듯 사라지겠지. 안개바다가 펼치는 아름다움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환상적인 모습보다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진실속에 깃들어있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취하듯 환상적인 저 안개바다의 신비에 취한다.

안개속을 걷는다. 그 미지의 세계에 취한다.

흐르는 안개속에 흐르는 강이 잠긴다. 강물이 있어 가능한 시야를 덮는 안개의 강앞에 감격의 소용돌이가 인다. 새벽은 이처럼 무엇인가 새로운것을 펼쳐주는 깊이가 있다. 새벽이면 나는 생각이 맑아진다. 흐르는 안개의 강을 만나려면 이처럼 새벽이 아니고선 꿈도 못 꾼다.

눈앞에 사품치듯 흐르는 안개의 강을 마주하고 나는 파도를 이루는 그밑의 산마루들의 표정을 생각하고 산밑으로 흐를 강물의 가슴을 생각한다. 그리고 흐르는 안개에 가리워 보이지 않는 나의 마음을 생각한다. 안개의 강을 이루는 폭포의 몸짓에서, 파도를 이루는 천태만상의 모습에서, 나는 안개층을 뚫고 그밑에 잠자코있는 산과 강물과 나무와 꽃을 본다. 그리고 그사이로 난 산길과 그 길을 지나갔을 산짐승과 사람들의 발자취도 본다. 또 그속에서 나의 흔적을 찾는다. 그러면 나의 마음은 어느덧 숲과 강물의 순수로 차오르고 흐릿하던 안개의 강을 거슬러 내 기억은 도란거리는 시내물소리를 떠올린다. 내 령혼의 깊이에 고여있던 물소리를 들으며 이제 앞에 펼쳐질 길을 생각한다.

안개속을 걷는다. 그속을 거니는 녀자를 본다.

녀자는 머리를 쳐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은 안개에 가리워 끝이 보이지 않는다. 녀자는 사위를 둘러본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산은 안개의 신비에 가려있고 새들이 우짖는 소리만이 안개의 두터움을 찢는다. 새소리에 가슴이 부풀고 안개가 옷자락을 적시는 소리를 마음으로 느끼며 녀자는 눈을 감는다.

어린 시절의 자기를 본다. 잔디속을 맨발로 오가는 소녀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본다. 그리고 잊혀지던 꿈을 떠올린다. 잔디처럼 파랗던 꿈의 그 싱그러움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젖은 눈빛을 띤 소년이 안개속에 말없이 서있다. 소년에게 다가가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눈을 뜨니 녀자의 시야에 들어오는건 자기뿐이다. 세월이 스친 자리에서 기억과 꿈의 파란 싹이 빠금히 고개를 쳐든다.

눈을 감고 마음의 안개속을 더듬으면 바다속의 산호처럼 신기한 기억과 느낌과 환상과 꿈들이 밤하늘의 뭇별처럼 널려있다. 녀자는 자기가 지금 이렇게 살아서 숨쉬고 기억하고 꿈을 꿀수 있는것에 환희를 느끼고 고마와한다.

안개속을 걷는다. 너와의 거리를 좁힌다. 너는 늘 나와 떨어져있다. 그래서 나는 네가 더 그리운지 모르겠다. 안개속에서 난 외로움을 탄다. 나를 제외한 모든것, 안개속에 휩싸여 산정에 혼자 있을 때의 고독은 공포를 동반한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것은 나를 감싸는 안개의 부드러움과 바람과 공기의 따뜻함이 살아숨쉬는 물고기의 싱싱함으로 내 촉감을 치는 그것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것, 그것들을 나는 너라고 부른다. 그리고 내가 아직도 모르는 내속의 나, 꾸미지 않은 본연의 나, 그런 나를 안개를 헤쳐가듯이 알아가고싶고 그런 나와의 거리를 좁히고싶다. 꾸미지 않은 원래의 나, 그런 나를 너라고 부른다. 하나인듯하면서도 둘인 너와 나, 그사이를 두터운 안개가 막고있다. 그 안개층을 한층한층 벗기는데는 절벽을 톺는 용기와 자기를 던지는 지혜가 필요한것 같다.

이제 와서 나는 누군지를 알아가는 일이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가는 일보다도 훨씬 더 시급한 일임을 안개속에 휩싸여 안개가 주는 힌트속에서 깨쳐간다. 나를 알아가는 길은 안개를 한올한올 걷히는 일이였다. 그 길이 아득할지라도, 끝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안개의 신비와 미지의 래일에 취해서 나는 순간순간을 채워나갈것 같다.

삶에 안개의 신비가 없다면, 래일에 미지의 신비가 없다면, 나에게 이 세상에 더 내놓을것이 없다면 나는 생명이란 이름앞에 나를 지우리라.

세상을 살아간다는것은 미지를 열어가는 일이다.

오늘도 눈을 뜨니 안개가 자욱하고 나는 그속을 아름답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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