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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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살이의 맛 (김관웅60)
2007년 08월 01일 16시 09분  조회:6721  추천:154  작성자: 김관웅

☆독서필기☆

벼슬살이의 맛

김관웅

  
  나는 벼슬 복이 없다. 벼슬은 나와는 전혀 인연이 없다. 그러나 나는 관청의 내막과 벼슬살이의 맛이 구경 어떠한지 무척 알고 싶다. 마치도 무지렁이 노총각이 길가에서 미모의 처녀를 향해 자꾸 곁눈질을 하듯이 자기와 인연이 없을수록 호기심이 동하게 되는 것도 아마 인간의 상정이리라. 그래서 요즘에는 여름방학을 리용해 오경재(吳敬梓, 1701~1754)의 《유림외사(儒林外史)》의 번역을 시작했다.

인생에는 남북으로 갈림길 많고

장상(將相)이나 신선(神仙)들도

원래는 범인(凡人)들이라네.

백대(百代)의 흥망은 조석(朝夕)이 바뀌는 것 같고

세찬 강바람 전조(前朝)의 고목 넘어뜨리네.

 

부귀공명은 뜬 구름 같아

모든 심혈 다 기울여도

애오라지 세월을 허송할 뿐

탁주 석 잔에 거나히 취할 제

낙화유수는 어디로 흘러 흐르려나

 

 이 사(詞) 역시 나이 든 서생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평범한 것이기는 하지만 인생의 부귀공명이란 본디 사람의 몸 밖의 것임을 설파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부귀공명이 눈앞에 보이면 모두 목숨을 내걸고 그것을 잡으려고 아득바득한다. 일단 그것이 손에 잡히고 보면 그 맛은 초를 씹듯 하다.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누가 이를 꿰뚫어 보았던가!

   《유림외사》는 이렇듯 허두를 뗀다. 번역하면서 읽어 내려가노라니 주로는 벼슬살이를 하기 위한 후보관원-유생들이 관청에 들어가기 위한 평생의 비참함 몸부림, 그리고 벼슬길에 오른 후의 벼슬아치들의 정계에서의 암투와 그 검은 내막을 주로 묘사했음을 알게 되였다. 바로 우에서 인용한 《부귀공명은 부질없는 것 / 모든 심혈 다 기울여도 / 애오라지 세월을 허송할 뿐》임을 그 주제로 내세운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벼슬살이의 그 맛을 알고 싶었다. 그것도 옛날이 아니라 오늘날의 현실에서 우리네 부모관(父母官)들이 벼슬살이를 하는 그 맛을 간접적이라도 알고 싶었다. 물론 남이 씹어주는 떡은 제 맛이 나지 않는다고는 하지는 말이다.

 그러던 중에 장춘 서점에서 왕몽의 자서전 《半生多事》(제1부), 《大塊文章》(제2부)를 사서 읽으면서 비록 남이 씹어주는 떡이기는 하지만 왕몽의 자술을 통해 벼슬살이를 하는 그 맛을 간접적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왕몽은 1953년부터 문학창작을 시작하여 1956년에는 《조직부에서 온 젊은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것이 문제로 되어 우파감투를 쓰고 신강에서 17년 동안이나 정배살이를 하다가 1979년에야 북경에 다시 돌아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소설가이다. 이런 글쟁이가 1982년 제12차 당대회에서 중공중앙후보위원으로 당선되었다가 1986년에는 마치도 잉어가 용문을 뛰어넘어 용으로 변한 것처럼 일약 문화부장으로 승진되었다. 1987년에는 그 관운(官運)을 타고 중공중앙 중앙위원으로 되었으며 1992년까지 옹근 10년 동안이나 중국의 문인으로서는 가장 큰 벼슬자리에서 벼슬맛을 톡톡히 보았다. 왕몽은 《大塊文章》(제2부) 중의 <관장일별(官場一瞥)>에서 벼슬살이 맛이 신 맛(酸), 단 맛(甛), 쓴 맛(苦), 매운 맛(辣)에 대해 리얼하게 서술하였다.

 벼슬살이의 단 맛:

 왕몽은 벼슬살이를 하였기에 세계가 좁다하게 다 돌아다니면서 세상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것도 고급비행기에 고급호텔에 들면서 만판호강을 하면서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문화부 부장을 하면서 다닌 나라만 해도 50여 개 국이나 된다. 월급단자에도 00001로 첫 번째로 되어있고, 운전기사도 차를 운전해주고, 어디 가서 말을 하면 그것이 지시로 되어 관철되어야 했으니 사람으로 난 보람을 만끽했을 것이 아닌가.

 벼슬살이의 신 맛:

 왕몽은 《관직이 오를수록 자기의 관직이 작은 것을 느끼게 된 것이 벼슬을 하게 되면서 느끼게 된 첫 감수》라고 술회했다. 맞는 말 같다. 문화부장 우에도 숱한 거물들이 도사리고 앉아 있으니 말이다. 이런 거물 앞에서 처신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살얼음이 언 강을 건너가는 기분이 아닐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벼슬살이의 신맛은 자기보다 못한 자한테 억눌리거나 수모를 당할 때 일어나는 시샘이나 질투심과 더 많은 함수관계를 가질것이다.  《유림외사》제2회에서 주진이라는 늙은 수재는 학식이 있고 글재주가 있었지만 수무번이나 거인을 뽑는 시험에 참가했지만 모두 락방을 하여 자기 아들벌도 채안되는 같은 해에 수재로 된 젊은 서생 매구란 건방진 녀석한테 갖은 수모를 다 당한다. 벼슬살이를 하자면 이런 신 맛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벼슬살이의 쓴 맛: 

 며칠 씩 연속 하는 마라톤식 회의를 소화해 내야하고, 많은 사태에 대해 태도 표시를 해야 하고도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늘 무함을 당하거나 밀고를 당할 위험을 안고 살아야만 한단다. 그리고 언제나 자기를 죽이면서 살아가면서 나사못이나 부분품으로서의 요소를 나날이 강화해야만 한다고 한다. 대부분 경우에는 참가하기 싫은 회의에 참가해야 하고, 내키지 않는 말을 해야 하고, 언제나 상급 앞에서 근신한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고 한다. 자기의 개성을 모조리 죽이고 살아야 하는 게 벼슬살이의 생리라고 한다. 마치도 살얼음우로 걸어가듯이 조심조심 살아야 하는 게 벼슬살이라고 한다.

 벼슬살이의 매운 맛:

 중국에는 《하늘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풍운이 있고, 사람에게는 조석으로 변하는 길흉화복이 있다(天有不測風雲, 人有旦夕禍福)》는 말이 있다. 벼슬길은 그 어느 인생의 길을 선택하는 것보다 앞길을 예측키 어렵다. 그래서 왕몽은 벼슬살이에는 《길흉화복이 예측키 어려운 법칙》이 적용된다고 설파한바 있다. 한창 잘 나가던 자동차가 어디에서 사고를 칠지 모르듯이 벼슬길을 걸어 나가는 사람들의 앞에는 언제 어디서 천길 수렁에 빠져죽고 언제 어디서 나가는 단두대가 기다리는지 모른다. 양귀비라는 여자가 황제의 은총을 한 몸에 입고 분수를 모르고 정치권력이란 방망이를 휘두르다가 모반을 한 군사들에게 목 졸료 죽지 않던가? 강청의 말로도 양귀비와 다른게 뭐가 있는가? 한마디로 벼슬사이의 맛은 고추, 당추보다 더 맵다

 《유림외사》의 제1회에는 왕면(王冕)이란 농부출신의 재사가 등장하는데, 그 어머니가 임종에 아들에게 남긴 유언은 의미심장하다.

   “보아하니 내 명은 이제 다 한 것 같구나. 이 몇 해 동안 사람들은 나의 귓전에 대고 아들이 학문이 깊으니까 벼슬길에 오르게 하라고 권하더구나. 벼슬하는 게 가문을 빛내는 일이라고는 한다만 내가 보건대 벼슬아치들은 모두 끝장이 안 좋더라. 게다가 너는 성미가 도고해 만일 화를 불러오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지 모르는거다. 너는 부디 이 어미의 유언대로 나 죽은 뒤 장가를 들어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나의 산소를 지켜다오. 절대 벼슬길에 나가지를 말거라. 그렇게만 한다면 이 어미는 죽어도 눈을 감겠다. ”

 왕면은 울면서 그러겠다고 대답해서야 어머니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더니 영영 세상을 하직했다고 한다. 효자인 왕면은 어머니의 유언대로 한 평생 벼슬을 호랑이 피하기라도 하듯이 벼슬길을 피하면서 조용히 숨어서 살았다고 한다.

   벼슬살이의 맛이 얼마나 매운가를 증언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왕몽은 왕면처럼 운둔거사로 된 것이 아니라 벼슬길에 나섰지만 한 10년간 벼슬길에서 벼슬 맛을 보다가는 역시 본의 아니게 다시 작가라는 제자리로 되돌아 왔다. 왕몽이 이 모든 것을 인생의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 멋지다.

 그러니 10년 동안의 벼슬살이는 작가 왕몽에게 있어서는 남들을 해볼래야 해볼 수 없는 생활체험으로 되었던 것이다. 낮은 곳에서의 생활체험도 중요한 생활체험이지만 높은 곳에서의 생활체험도 중요한 생활체험인 것만 분명하다. 중국 청나라 후기의 조설근이 《홍루몽》같은 명작을 쓸 수 있은 것은 그가 열여섯 살까지는 대부호, 대관료의 가문에서 태여나 만판 호강을 하면서 호의의식을 해본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고, 조선조의 김만중이《구운몽》 같은 작품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조정 관원으로 높은 곳에서 벼슬살이를 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다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와서도 여전히 자기 할 일을 찾아하면서 여유 있는 심태를 가지고 자아를 잃지 않고 계속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도 역시 인생의 복이고 삶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왕몽은 10년 동안의 벼슬살이를 무난하게 마치고 다시 소설가라는 자기의 자리에로 복귀를 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10년 동안의 벼슬살이의 경력을 문학창작의 양질의 소재로 충분히 리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왕몽은 전임 문화부장이라는 때 지난 관직을 늙은이가 지팡이에 의지하듯이 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소설가로서의 이름과 창작실적으로 만년의 아름다운 명절을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왕몽의 자서전 제2부 <大塊文章> 2007년 제1판만 해도 6만 5천부를 찍었으니 원고료수입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원고료가 천자당 1000원이라고 하니 이 책 한권의 원고료만도  45만원이라는 엄청난 돈이다. 

  너무너무 운수 좋고 너무너무 총명한 왕몽이다.

  참으로 부러운 인생이다. 

 


                                      2007년 7월 14일 장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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