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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정비강화된 정치제도
2021년 09월 10일 11시 45분  조회:1136  추천:0  작성자: 고구려
새롭게 정비강화된 정치제도

발해는 건국후 국력을 계속 강화하는 정책을 실시하여 수십년동안에 벌써 그 령토가 남쪽은 대동강과 덕원(원산북쪽)에서 신라와 접하고 료하일대와 부여의 땅인 송화강류역, 흑룡강이남의 말갈족거주지역까지 포괄하게 되였다.

발해는 국력이 강화됨에 따라 대외적지위를 공고히 한 결과 《해동성국》(동방의 강성한 나라)으로 불리우며 위력을 널리 떨치였다.

발해는 강화된 나라의 국력에 어울리게 정치제도를 새롭게 정비강화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는 7세기말부터 10세기초까지 200여년간 존재하였으며 정치, 경제, 문화가 크게 발전하여 〈해동성국〉으로 이름을 떨치였습니다.》

 

 발해국의 최고권력자의 지위

봉건시대의 국가는 군주의 권력기구인것만큼 최고권력자의 지위는 국가의 지위를 규정짓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이다.

발해의 지위와 성격을 규정짓는데서 제일 처음으로 론의되는것이 바로 발해대왕의 지위에 관한 문제이다.

발해봉건국가의 국가주권은 지주, 관료 등 봉건통치계급에게 속하였고 국가우에 있는 국왕은 최고의 권력자이며 최대의 착취자였다. 

국왕은 대씨가문에서 원칙상 맏아들이 대대로 물려받았고 자식이 없을 경우에는 형제 또는 가까운 왕족에 의해 계승되였다.

 

 

 

발해에서는 왕을 《가독부》 또는 《성왕》, 《대왕》, 《황상》, 《기하》라고 불렀고 왕의 명령은 《교》 또는 《조》로, 왕의 아버지는 《로왕》, 어머니는 《태비》, 처는 《귀비》, 맏아들은 《부왕》, 그 아래의 자식들은 《왕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독자적인 년호를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왕위는 세습되였다.

 

 

 

오늘까지 전해지는 많은 발해관계사료들은 발해대왕이 천자의 지위에 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서도 독자적인 년호의 제정과 대왕, 황상, 성왕의 호칭, 3사3공제도의 존재 등은 국왕의 천자적지위와 발해가 천자국의 틀에 맞는 정치체제를 갖추고있던 대왕국이였다는것을 명백히 보여주고있다.  

ㅡ 독자적인 시호, 년호의 제정

발해에서는 군주가 즉위하거나 그 어떤 상서로운 사변 또는 재난 등이 있을 때에는 년호가 새롭게 제정실시되군 하였다.

일반적으로 봉건사회에서 년호는 황제국가들에서만 독자적으로 제정실시될수 있으며 제후국이나 속국들에서는 자체로 제정할수 없고 다만 황제국의 년호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여있었다. 그러므로 군주가 독자적인 년호를 제정하였는가 그렇게 하지 못하였는가 하는것은 최고통치자가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라고 말할수 있다.

발해에서는 대조영으로부터 마지막 군주 대인선 집권시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독자적인 년호들이 제정실시되였다.

오늘까지 전해지는 《협계태씨족보》, 《신당서》 발해전, 《정혜공주묘지병서》와 《정효공주묘지병서》와 같은 력사자료들과 금석문들에는 발해존립기간 제정실시된 각종 년호들이 기록되여있다.

 

 

력사기록들에 남아 전해지는 발해의 시호와 년호들은 발해가 존립 전기간 다른 나라의 년호를 쓴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년호를 제정하여 실시하였다는것, 그 최고통치자가 천자의 지위에 있었다는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근거로 된다.

ㅡ 발해군주에 대한 호칭 대왕, 황상, 성왕

발해에는 천자적지위에 있던 군주에 대한 여러가지 호칭이 있었다.

성왕이라는 호칭과 여러 금석문들에 남아있는 대왕, 황상이라는 호칭은 발해군주의 천자적지위를 명백히 증명하여준다.

현존하는 사료들에서 발해군주를 대왕으로 표현한것은 《정혜공주묘지병서》와 《정효공주묘지병서》, 《일본후기》의 기록이다.

《정혜공주묘지병서》와 《정효공주묘지병서》는 발해인들이 직접 남긴 금석문이며 대행대왕이라는 표현도 발해국왕의 국서에 올라있는 문구였다고 볼 때 대왕이라는 표현은 발해봉건사회에서 널리 사용되던 왕에 대한 호칭의 하나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발해때의 대왕이라는 호칭은 고구려시기의 최고군주에 대한 칭호를 그대로 이어받은것이였다. 발해군주도 고구려의 최고주권자와 마찬가지로 제후세력들의 우에 있는 한급 높은 대왕으로서 천자급의 틀을 갖추고 행세하였다.

발해의 최고통치자는 천자급의 대왕이였기때문에 대왕이라는 호칭외에 황상, 성왕이라고도 불리웠으며 군주의 딸도 공주라고 하였다.

발해에서는 국왕의 신성불가침을 절대화하기 위하여 고구려시기의 성왕이라는 칭호를 그대로 왕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771년 문왕이 일본왕에게 보내는 국서에서 발해왕실이 천손 즉 천제의 자손이라고 하였다는것은 발해지배계급이 고구려시조 동명성왕때부터 시작된 천손사상으로 왕족혈통을 신성시하고 절대화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대왕, 황상, 성왕 등으로 불리우던 발해군주는 전체 지배계급, 피지배계급우에 군림하고있던 최고통치자, 전제군주로서 발해의 통치체제는 천자국의 틀거리에 맞게 편성되여있었다.

 

 

 발해의 중앙통치기구의 기본을 이룬 3성 6부

발해국가의 중앙정부기구에는 많은 관청들이 있었으나 기본을 이룬것은 3성 6부였다.

 

 

 

3성은 정당성선조성중대성이며 그 장관들인 대내상, 좌상, 우상을 3재상이라고 하였다.

6부는 충부인부의부지부​례부신부 등이였다.

 

 

 

발해국가의 행정은 기본적으로 이 3성 6부에 의하여 집행되였으며 봉건국왕의 《권위》를 보장하고 중앙집권적봉건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실제적 집행단위였다.

발해에서 3성 6부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기구는 대체로 8세기 후반기에 와서 기본적으로 고정되였다.

6부의 각 장관은 경이라고 하였는데 이들은 정당성의 관리인 좌, 우사정의 아래에서 그의 지시를 받았다. 경의 아래에는 소경과 여러명의 랑중, 원외랑들이 있었다.

발해에는 3성6부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정치에 참가하는 《3사3공제도》도 있었다.

 

 

 

3사는 태사, 태부, 태보였는데 국왕은 이들을 신하로 대하지 않고 스승으로 대우하였다. 3공은 태위, 사도, 사공으로서 국왕을 도와 나라의 정치를 하며 어느 부서나 다 통관할수 있었다.

 

 

 

발해에는 3성 6부 아래에 많은 행정관청들이 있었다.

그러한 관청들로서는 중정대, 전중시, 종속시, 문적원, 태상시, 사빈시, 대농시, 사장시, 사선시, 주자감, 항백국, 화간원 등이 있었다.

이 기관들은 봉건관료기구의 내부조직과 관련된 임무를 수행하는것으로 되여있지만 실제적으로 인민들을 수탈하고 반항자들을 탄압하기 위한 폭압기구였다.

발해에서 이러한 기관들은 봉건귀족들 특히 왕실의 사치한 생활을 보장하는데 복무하였다.

 

 발해의 지방통치제도

발해의 지방행정기구도 다른 봉건국가와 마찬가지로 중앙정부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지방통치기구였다.

발해의 지방통치의 기본단위는 부, 주, 현이였고 그 아래에 일부 부곡과 촌 등이 있었으며 변방지역들에는 자치적성격을 띤 후국과 속령들이 있었다.

발해의 지방통치기구는 8세기 중엽에 5경 15부 62주로 정비되여있었고 각 주 밑에는 여러개의 현들이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5개부에 경(京)을 두었다. 상경룡천부는 발해의 수도(녕안현 발해진)였으며 중경현덕부는 화룡, 남경남해부는 북청, 서경압록부는 집안, 동경룡원부는 부거에 위치하고있었다.

부의 장관을 도독, 주의 장관을 자사, 현의 장관을 현승이라고 하였는데 이들은 관할지역의 민사행정뿐아니라 재판권, 군사권까지도 그러쥐고 인민들을 가혹하게 억압착취하던 왕권의 대리자들이였다.

이처럼 발해의 중앙과 지방의 각급 관료들은 주로 고구려귀족들로 임명되였는데 그들은 그 지방의 군사권까지 모두 쥐고있은 권력자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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