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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성국》을 군사적으로 담보한 발해군대
2021년 09월 10일 11시 49분  조회:1419  추천:0  작성자: 고구려
《해동성국》을 군사적으로 담보한 발해군대

고구려멸망후 대중상과 대조영휘하의 고구려군사들을 골간으로 하여 진국의 성립과 발해건국과정을 거쳐 발전강화된 발해군대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해동성국》의 토대를 닦아놓았으며 국력의 발전을 군사적으로 담보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어떠한 국가를 물론하고 자주독립국가는 반드시 자기의 군대를 가지고있는것입니다.》

발해는 건국초기부터 봉건지배계급의 리익을 옹호하고 봉건제도를 유지강화하며 나라의 안전을 지키는 자기의 군대를 가지고있었다.

고구려재건투쟁을 벌리던 고구려유민들의 항전부대들을 모체로 하여 편성된 발해의 군대는 건국초기부터 봉건지배계급의 계급적리익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복무하였으며 발해의 높은 대외적지위와 강한 국력에 어울리게 방대한 규모에서 유지강화되였다.

 

 발해군대의 병력수

발해 건국직전 대조영휘하의 군사는 40만이였다.

실학자 홍석주는 《발해세가》에서 우리 나라에서 전해오던 사료들뿐아니라 《오대회요》를 비롯한 중국측 기록들도 널리 참고하여 발해 초기 군사가 40만이라고 하였다.

발해가 건국과정에 료동지역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방의 적지 않은 지역과 우리 나라 북부의 넓은 령토를 차지할수 있었던것은 바로 40만의 대병력으로 위세를 떨쳤기때문이였다. 발해건국을 전후하여 대조영의 휘하에 모여든 40만의 대군은 모두 정규군인이 아니라 고구려회복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지향하여나섰던 고구려유민들과 일부 말갈인들이였다.

건국이후 발해봉건정부는 고구려이래의 군대편성원칙과 조성된 정세에 맞게 군사제도를 새롭게 편성하고 군대를 질, 량적으로 강화하여나갔다.

 

 

 

《책부원귀》나 《구당서》 등 력사기록들에서는 발해의 병력수에 대하여 승병 수만이라고 밝히고있다. 그러나 이 수자는 발해의 병력수전체를 가리킨것이 아니라 금군의 수로 보이며 상비군전체를 가리킨 수자라고는 볼수 없다. 그것은 당나라에서 《안사의 란》이 일어났을 때 평로류후사 서귀도가 발해에 요청한 기병만 하여도 4만이나 되였으며 당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와 패배감에 물젖어 흑수말갈을 징벌할데 대한 무왕의 명령을 거부한 대문예가 발해의 군사력을 심히 과소평가하면서도 군대수를 10만이라고 하였기때문이다. 그러나 대문예의 말대로 군대수를 단순히 10만으로 볼수도 없다.

 

 

 

《료사》 병위지 상에는 발해의 군대수가 수십만이라고 기록되여있는데 이것이 발해의 총병력수를 가리킨 비교적 정확한 수자라고 볼수 있다.

 

 발해군대의 군종

발해의 군대는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이루어져있었다.

발해의 중앙군은 8위와 금군이였다.

발해의 중앙군에는 좌맹분위, 우맹분위, 좌웅위, 우웅위, 좌비위, 우비위, 남좌우위, 북좌우위의 8개 위가 있었다.

8위에는 각각 대장군과 장군이 한명씩 배치되여있었으며 그 밑에 도장, 소장 등 여러 무관직이 있었다.

8위에는 부병의 한개 단위를 이루던 절충부가 소속되여있었다.

중앙군에 소속된 부병은 수도와 그 부근의 수비를 맡아보았으며 동시에 전국에 배치되여있던 8위소속의 절충부들에 가서 복역하면서 지방군과 결합된 중견력량으로 되여있었다.

발해의 중앙군에는 또한 금군이 있었다.

금군은 궁성수비를 위주로 하면서 직접 군주를 호위하는 시위군이였다.

발해의 지방군은 건국초기부터 중앙군과 함께 발해군사력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있었다.

고구려멸망후 각지에서 반침략투쟁을 벌리던 여러 항전세력들은 발해건국을 위한 투쟁에 합세하여나섰으며 그후에는 지방군으로 편성되였다.

발해봉건정부는 초기부터 지방군을 거느린 지방장관들에게 중앙의 관직을 겸임시킴으로써 그들의 지위를 높여주고 봉건정부에 더 잘 복무하도록 하면서 지방군강화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였다.

지방군은 지방행정단위인 부, 주, 현을 단위로 하여 편성, 배치되여있었다.

지방행정단위의 장관인 도독(절도사), 자사, 현승은 민사행정뿐아니라 군사지휘권도 틀어쥐고 지방군을 통솔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중요한 부들에는 도독이 아니라 절도사들이 파견되여 그 지역의 군사를 거느리고있었으며 후국과 속령들에 배치된 군대는 지방군의 구성부분으로 후국왕이나 번장들의 통솔하에 있었다.

지방군의 편성은 중앙군과 달리 병농칠치의 원칙에서 조직된 고구려인평민들이 기본을 이루고있었으며 말갈족출신의 군사들도 들어있었다.

이처럼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구성된 발해의 군대는 봉건왕권을 보호하고 지배계급의 계급적지배와 리익을 군사적으로 옹호하고 담보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220여년간 나라의 안전을 지켜냈다.

 

 발해군대의 병종

발해군대의 병종구성을 놓고보면 강력한 지상군과 수군으로 이루어져있었다.

발해의 지상군은 기본전투력량으로서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치는 싸움들에서 용맹을 떨쳤다.

발해에서는 기병을 위주로 한 지상군의 위력이 대단히 강하였다.

755년 당나라에서 안사의 란이 일어났을 때 평로류후사 서귀도는 발해에 기병 4만을 보내여 도와줄것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서귀도가 발해에 요청한 기병 4만은 결코 적은 수자가 아니였다. 서귀도가 그렇게 많은 수의 기병을 요청할수 있은것은 발해의 기병력이 량적으로 또 질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다고 보았기때문이며 설사 이만한 수의 기병을 동원시킨다고 하여도 국가방위를 위한 전반적무력균형에서는 큰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였다. 다시말하면 그들은 군사력 특히 기병이 강한 발해로서는 이만한 수의 기병을 얼마든지 동원시킬수 있다고 보았던것이다.

 

 

 

 

이것은 당시 고구려후국관내였던 오늘의 평안남도 녕원군에 발해성과 말을 사육하던 양마성이 있는것을 놓고서도 잘 알수 있다.

양마성에서는 말굴레와 말안장, 금속제활촉들이 많이 발굴되였는데 이것은 발해에서 말사육이 그 어떤 개별적인 지역에 국한된 사업이 아니라 나라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일로서 전국의 여러 곳에서 활발히 진행되였으며 사육된 말들은 발해의 강력한 기병력을 끊임없이 보충하고 강화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발해는 강력한 수군도 가지고있었다.

발해가 수군을 가지게 된것은 나라의 지리적위치와 관련된다. 발해는 령역의 적지 않은 부분이 해안을 끼고있었는데 동쪽에는 조선동해, 서남쪽에는 조선서해가 있었다. 발해는 건국초기부터 당나라와 군사적으로 견제하는 립장에 있었기때문에 당나라와의 대립이 격화되고 그것이 언제 전쟁으로 번져질지 모르는 조건에서 수군력량을 강화하였다.

발해에서는 수군의 중요한 전투력인 함선을 건조할수 있는 배무이기술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었다.

 

 

 

발해에서는 각이한 크기의 배를 건조하였는데 큰 배는 물동량을 고려하지 않고 한척에 100여명이 탈수 있었고 중형배는 40~70여명, 작은 배는 10여명가량 탈수 있었다. 발해사신들이 모진 풍랑을 무릅쓰고 일본에 자주 왕래할수 있었던것은 두려움을 모르는 발해사람들의 진취성과 함께 견고한 배가 마련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일본측문헌기록들에 의하여 발해사신들이 타고 갔던 배를 상상해볼수 있는데 그중에는 키, 돛대, 노, 닻, 끌어당기는 바 등 여러가지 설비를 갖춘 조종인원이 28명이나 되는 큰 배도 있었다. 수군은 바로 이러한 배에 여러가지 무기를 설치하고 바다를 믿음직하게 지켰다. 대형배와 중형배는 기본전투함선의 역할을 하였고 소형배는 해안을 감시하고 해적행위를 하는 배들을 추적, 단속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처럼 발해군대는 기병위주의 강력한 지상군과 발전된 전투함선으로 장비된 수군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이와 같이 발해는 건국이후 수십만의 군사를 상비군으로 가지고있었기때문에 령토확장도 성과적으로 진행할수 있었고 이웃 나라와의 군사적대결과 외교분쟁에서도 우세를 차지할수 있었던 동방의 강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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