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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국의 종말과 국가회복을 위한 발해유민들의 투쟁
2021년 09월 10일 11시 54분  조회:1460  추천:0  작성자: 고구려
발해국의 종말과 국가회복을 위한 발해유민들의 투쟁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인민은 예로부터 싸우다가 죽을지언정 원쑤앞에 굴할줄 모르는 용감하고 슬기로운 인민이다.》

조선인민의 강의한 애국심은 거란침략자들을 반대하는 발해인민들의 투쟁과정에서도 높이 발현되였다.

 

 거란의 침입을 반대한 발해인민들의 투쟁

발해는 근 200년간 강대한 나라로 존속하여왔으나 9세기 말~1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급속히 약화되였다.

이 시기 발해의 중앙 및 지방의 봉건세력들은 인민들의 토지를 대대적으로 략탈하고 착취와 억압을 전례없이 강화하였다.

한편 통치배들속에서는 상무의 기풍이 점차 없어지고 나약한 풍조가 휩쓸었으며 더 많은 재부와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한 싸움만 계속 벌리였다.

발해귀족들 내부에 극히 나약한 풍조가 휩쓸었는데 당나라의 과거시험에 합격되는것을 《영예》로까지 생각하는 형편이였다.

그리하여 나라의 국력은 걷잡을수 없이 약화되게 되였다.

 

 

 

거란은 원래 서료하상류일대에 살고있던 유목종족이였다. 10세기 초에 급격히 강대한 세력으로 자라난 거란은 916년에 거란국가를 선포하였다. 이때 황제 야률아보기가 발해에 대한 침략의 마수를 뻗치였다. 발해는 거란의 침입에 대처하여 924년 5월에 거란이 차지하였던 료주(심양 서쪽)를 쳐서 큰 타격을 주었으나 그 성과를 공고히 하지 못하였다.

 

 

 

ㅡ 925~926년전쟁

이미 10세기 초부터 발해에 대한 침략을 꿈꾸어오던 거란침략자들은 925년 12월 말부터 거란왕 야률아보기가 직접 수만명의 침략군을 거느리고 대규모적인 무력침공을 감행하였다. 야률아보기가 거느린 거란침략군은 발해 서쪽의 주요성이였던 부여성을 포위하였다.

부여성의 군인들은 력량상 대비가 안되는 적과 용감히 싸웠으나 926년 1월 초에 성을 강점당하고말았다. 부여성을 강점한 적들은 동쪽으로 계속 밀려들었다. 적장 안단이 거느린 거란군의 선봉 1만명(기병)은 발해수도 서쪽가까이까지 침공하여왔다.

이때 발해의 대신 로상이 수도방위군을 이끌고나가 싸웠으나 우세한 적들을 물리치지 못하였다.

 

 

 

발해의 수도 상경룡천부의 홀한성은 거란침략자들의 포위에 들었다. 성안에 있던 전체 군민들은 거란침략군의 공격을 여러차례 물리치고 무리죽음을 주었다. 그러나 국왕 대인선을 비롯한 봉건통치배들은 싸우는 발해군민들을 배반하고 인민들의 전투행동을 중지시키는 반역행위를 저질렀다.

인민들의 투쟁은 비록 성공하지 못하였으나 발해군민들의 불굴의 투지와 용감성, 애국심을 다시금 시위하였다.

 

 

 

ㅡ 각지 인민들의 항전

거란침략자들은 인민들의 반항심을 무마시키려고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적들은 동단국을 조작하고 거란왕의 아들 야률배를 왕으로 임명하였으며 실권없는 벼슬자리에 투항한 일부 발해귀족들을 끼워넣었다.

이것은 인민들의 큰 분격을 자아냈다.

 

 

 

인민들은 도처에서 들고일어나 거란침략자들과 반역자들을 반대하여 투쟁하였다. 926년 3월 장령부, 안변부, 막힐부, 정리부의 군민들이 결사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은 통일적지휘밑에 전개되지 못하였기때문에 각개격파당하였다.

 

 

 

결국 발해는 926년에 자기의 존재를 마치였다.

925~926년전쟁과정은 봉건통치배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침략자들을 물리치지 못하였으나 광범한 인민들의 높은 애국심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발해말기의 력사는 아무리 강대한 나라라도 자만도취하고 안일해져 국력을 강화하는 사업을 게을리하면 망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국토회복을 위한 발해유민들의 투쟁

발해는 비록 존재를 마쳤으나 그 유민들은 거란에 의하여 나라가 무너진 다음에도 굴함없이 국토회복을 위해 줄기차게 싸웠다.

이 투쟁은 여러 지역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오래동안 줄기차게 벌어졌다.

발해유민들은 발해의 옛 땅에 정안국과 오사성발해국을 비롯한 소독립국들을 세우고 강점자들을 반대하여 투쟁하였다.

정안국(定安國)은 오씨가 부여부의 동쪽 혼돈강(송화강), 압록강의 중상류일대에 세운 발해유민들의 소국이였으며 독자적인 년호까지 사용하였다.

 

 

 

정안국은 안으로 국력을 강화하는 한편 거란의 침략에 반거란동맹으로 대처하기 위한 대외활동을 적극 벌리였다. 970년에 제2대왕 오렬만화, 981년에 제3대왕 오현명은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여 반거란동맹을 무을것을 제기하였으나 송나라의 나약한 태도로 하여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정안국은 부단히 침입하는 거란침략군을 물리쳤고 때로는 적강점지역을 공격하여 타격을 주기도 하였다.

 

 

 

정안국은 동족의 나라 고려와도 련합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정안국이 언제까지 존재하였는지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기록에 의하더라도 할빈지방에서 80~90년간은 거란에 항거하면서 국권을 지켜왔다.

오사성발해국은 부여부를 중심으로 오씨가 세운 소국이였다.

수십만의 발해사람들이 동족의 나라인 고려로 이주하여 고려사람들과 함께 거란침략자들을 반대하여 투쟁하였다. 발해유민들의 투쟁은 특히 료동지방에서 치렬하게 벌어졌다.

 

 

 

오사성발해국도 송나라와 반거란동맹을 맺기 위한 대외활동을 벌리였다. 그러나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송나라의 태도로 하여 오사성발해국은 단독으로 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995년 오사성발해국의 군민들은 오소경(오소도)의 지휘밑에 거란의 침략대군을 격퇴하였다. 그후에도 오사성발해국의 인민들은 끊임없이 달려드는 거란침략자들과 용감히 싸워 물리쳤다.

 

 

 

《료사》의 기록에 의하면 1114년경에 녀진족이 거란을 공격할 때 오사성발해국이 참가한것으로 되여있다. 이것은 12세기 초경까지도 오사성발해국이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해왔다는것을 보여준다.

 

국토회복을 위한 발해유민들의 투쟁은 끊임없이 계속되였다.

1029년 8월 초 동경도(거란관할하의 도, 직할현 9개, 소속 주, 부, 군, 성 87개)의 전체 발해유민들은 대연림의 지휘밑에 거란강점자들의 통치를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키였다. 대연림은 당시 발해군상은(동경도관하 발해군의 사령관격)이였다.

폭동군은 거란의 동경류수 부마도위 소효선과 그의 처 남양공주 최팔을 동경성(료양성)안에 잡아가두고 거란관리들을 처단하였으며 새로 발해유민들의 국가인 《흥료국》을 세웠다. 당시 대연림이 흥료국왕으로 되고 년호를 《천경》으로 정하였다.

흥료국은 료동지방의 전체 인민들을 반거란투쟁에로 일떠세우는 동시에 한인, 녀진인들이 이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해나가도록 하였다. 또한 보주성의 장군 하행미로 하여금 투쟁에 합세하도록 련락을 보냈으나 배신당하였다.

흥료국의 군민들은 한결같이 거란침략군과 싸웠지만 대오안에 나타난 투항분자들에 의하여 실패하게 되였다.

 

발해유민들은 1116년 1월 동경료양부를 중심으로 거란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렸다.

1116년 고영창은 《대발해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되였으며 년호를 《륭기》라고 제정하였다.

대발해국은 산하 각 주들에 부대들을 파견하여 광범한 발해유민들을 집결하는 한편 거란인관리들을 처단하였다.

대발해국의 급속한 장성에 위협을 느낀 거란통치배들은 남부재상 장림에게 대병력을 주어 공격하도록 하였다.

대발해국의 군민들은 장림의 거란군과 30여차례의 격전을 벌려 큰 타격을 주었으며 항전 4~5개월동안 중첩되는 애로와 난관을 극복하면서 투쟁성과를 확대해나갔다. 그러나 대발해국의 국토회복을 위한 투쟁은 금(녀진)나라의 배신행위로 하여 5월에 실패하고말았다.

발해유민들은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을 끊임없이 벌리였으나 통일성을 보장하지 못하였으며 간교한 적들의 책동으로 최후승리를 이룩하지 못하였다. 그후에도 발해유민들의 국권회복을 위한 투쟁은 근 200년간 계속되였다.

발해유민들의 완강한 투쟁은 비록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으나 조선인민의 높은 애국심과 강한 투지를 다시한번 뚜렷이 시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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