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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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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모든 일들은 때가 있지않을가?
2025년 02월 25일 13시 41분  조회:5  추천:0  작성자: 리광학
수필
모든 일들은 때가 있지 않을가?
리광학
지난 세기 70년대 중기에 흑룡강성 목단강해림에 다녀 온적이있다. 그곳은 특별히 벼농사가 유명한 곳이라 갔던 걸음에 그 지대 기후에 알맞고 제일 산량이 높다는 벼종자 한 근을 들고 와 이듬해 고향 연길근교생산대의 모상판에 파종했다. 벼종자가 싹트고 잎사귀가 나와 다시 실험전에 옮기기까지 해림의 벼종자와 본 지방의 벼종자는 별다르게 보이질 않았다. 그후 초복이 오고 중복이 지나며 해림의 벼모와 본 지방의 벼모는 현저하게 변해갔다. 필경 해림의 벼종자는 조숙종인지라 성숙이 빠르게 진행되여 8월이 되자 거이 본지방의 벼보다 20일 앞당겨 꽃피고 알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일이 이쯤되여 재미있게 하회를 지켜 볼 판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한낮이 되여 벼포기들이 해를 보기 시작하면 웬 참새떼들이 실험전에 날아와 방금 알이 생겨 물이퇴는 벼이삭을 마구잡이로 쪼아 먹기 시작하였다. 이를 보고 논물관리원이 큰 소리를 지르면 참새들은 깜짝 놀라 하늘에 날아올라 어디론가 잠간 피해있다 묘하게 사람이 없는 틈이면 다시 논판으로 확 달려들군 했다. 이를 지켜보던 누군가 허수아비를 만들어 논밭에 세워 놓으면 어떨가하고 제의하자 논물관리원은 즉시 헌초모자를 삐딱하게 씌운 허수아비 두개를 만들어 논변두리와 복판에 세워놓았다. 헌데 며칠은 그 방법이 효과를 보는둣 하더니 얼마 지나지않아 얄미운 참새떼들이 그냥 허수아비를 무시하고 또 다시 무리를 지어 논판에 달려들었다. 결국 참새들로 하여 그해 해림의 올벼종자실험전은 아쉽게 망치고 말았다.
지난해 8월이였다. 한국에 가 있는 막내 처남이 불시에 전화를 걸어왔다. 룡정시개산툰에 있는 터밭의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으니 봐 달란다. 윗채로 기상예보를 찾아 보니 마침 래일은 비가 없고 해가 있단다.
이튿날 안해는 부랴부랴 동생집으로 달려갔다. 집앞에 이르러 고추밭을 살펴보니 허리를 넘칠듯한 고추나무숲이 밭이랑을 메우고 있었고 빨같게 무르익은 고추들이 가지마다 휘여지게 대롱대롱 매달려 사람의 손을 기다고 있었다.
농사군이였던 막내처남부부는 10년간 한국에서 막로동을 하며 힘들게 돈을 벌다 지난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기간 이웃들에게 터밭을 맡겨 다루게 하다 올해는 자신들이 터밭을 다루기로 하고 이른 봄이 오자 남먼저 밭을 갈고 이랑을 치고 하며 알뜰하게 농사준비를 다그쳤다. 그리고 산량이 높은 조숙종 고추종자를 선택하고 남먼저 모를 내고 포기마다 콩깍지가 썩인 좋은 비료를 듬쁙듬쁙 주었다. 지극정성으로 밭에 열정을 퍼부으니 땅과 농작물은 거짓이 없는지라 8월중순이 되자 고추밭은 빨갛게 물들며 고추풍년을 맞아왔다.
그날 안해는 동네 지인들과 함께 무더운 더위와 쨍쨍내리 쬐는 해볕을 가릴사이가 없이 하루품을 들여 다섯주머니의 빨간고추를 수확했다. 그리고 아들의 차로 연길에 있는 집까지 실어왔다.
헌데 연길은 이튿날부터 구질구질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다섯자루의 고추를 집안의 객실과 방바닥에 널고 비가 끊기를 가다릴 수밖에 없었다. 몇해만인가 온 집안에 고추냄새가 가득차 사람을 질리도록 괴롭혔다.
고추말리기 작업이란 워낙 까다롭고 힘들기에 우리 집에서는 10여전부터 가을 고추가루는 시장에서 장만하곤했다. 막내 처남네부부가 일이 생겨 6월초에 한국으로 다시 나가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던 “복”이 우리 집에 터진셈이다. 울며겨자 먹기로 고추와의 전쟁을 치르지않으면 안될 판이 벌어졌다.
온 하루 밉쌀스러운 비는 뭠출려고 하지않는다. 이튿날 집안 바닥에 널어놓은 고추는 습기가 많고 무더운 8월이라 물쿠기 시작했다. 이걸 어쩌나, 하고 애만 태우고 있는 판에 사흩날 아침, 하늘의 구름이 밀려가고 해가 얼굴을 빠금히 내 밀었다. 절호의 기회였다. 우리 부부는 다급히 고추를 썰고 널고 하며 채바퀴 돌듯이 일손을 다그쳐 오전내 겨우 일을 마무리를 지었다.
이튿날 오후 또 하늘은 갑작스레 검은 구름이 밀려오며 비가 당장 내릴 것만 같았다. 우리는 부랴부랴 집앞 풀밭에 널어 놓은 고추들을 거두어 들여 온 집안에 다시 펴놓았다.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집안의 고추들은 습기가 가셔 지기는 커녕 더해만 같다. 이걸 어쩌나, 이대로 밤을 새면 고추는 문들어져 버릴 판이다. 이대로 일년 고추농사를 망칠수는 없었다.
우리는 즉시 버스를 타고 서시장에 있는 일잡으로 달려가 150원을 주고 선풍기 한대를 사들고 달려왔다. 그리고는 24시간 선풍기를 돌려 고추의 수분을 제거하려고 모지름을 썼다. 그리고 관찮다 싶으면 전기담요에 고추를 널고 며칠간 건조를 시켰다. 하도 지극정성으로 일에 몰입했기에 고추는 썩이지 않고 그런대로 마른 고추라는 명색을 띨 수 있었다.
헌데 십여일간의 고추 말리기로 곤욕을 치르다보니 안해는 혈압이 오르며 지병이 도졌다. 약국을 찾아 이백원을 주고 안궁환 두알을 사서 챙겨 먹어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어찌 그뿐이랴! 월말이 되여 전기회사에서 통지가 왔는데 월평균 백원좌우가 되던 전기료금이 3백원을 훨씬 넘겼다. 며칠간 쉬우지않고 선풍기와 세개의 전기담요를 동원하여 동시에 사용했으니 그럴만도했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얄미운 8월 장마철은 지나고 9월에 접어들자 해는 높은 하늘 언덕을 따라 더 기여 오르기 시작하고 낮과 밤온도의 차는 현저하게 변해갔다. 계절의 변화는 사람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루어 지는가 보다.
지난 8월 처남네 터밭의 고추가 빨같게 무르익으며 자태를 뽐내고 있을 쯤 처남네 집과 한집 건너 이웃집 고추밭의 고추들은 파란색을 감추지 못하고 그렇다하게 돋보이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9월에 들어서자 제법 본색을 드러내며 온 밭이 빨같게 물들어 갔다. 8월에 빨같게 익은 고추와는 달리 9월에 익은 빨간 고추는 가을 해빛을 제대로 받아 살이 얇고 진홍색에 윤택이나고 매끄러웠다. 주인은 얼씨구나, 이때라 싶어 고추를 따고 말리기에 열을 올렸다. 결과 별로 힘들이지 않고 질 좋은 마른 고추를 얻어낼 수 있었다.
60대후반,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외손주가 태여나며 안해와 나에게는 황혼육아라는 복이 차려졌다. 그것도 제집이 아닌 타지에서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외손주를 돌보며 키웠다.
황혼육아의 나날들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힘들었다. 긴긴 여름날, 점심을 치르고 나면 졸음이 몰려온다. 그런데 손주놈은 잠들려고 하지않는다. 그러면 아이의 안전을 고려해 천근같은 눈꺼풀을 억지로 치뜨며 지켜보아야 했다. 코로나 비상시기라 혹 아이에게 해가 갈가 백배로 명심하고 속을 썩여야 했다. 간혹 띠염띠염 애가 이런저런 탈이 생기면 웬지 우리의 탓인 것처럼 자책감에 빠져 눈치를 볼 때가 너무 어려웠다. 황혼육아로 만3년이 되여 외손주가 유치원에 입학하자 우리는 힘겹운 황혼육아를 접고 연길로 돌아왔다.
요즘 항간에서는 륙십이 청춘이요, 백세시대라고 떠들지만 황혼육아로 힘든 나날들을 겪어보니 웬지 너무 힘에 부치고 몸이 그전 같지가 않음을 절감하게 된다. 자식들이 좀 때를 맟추어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우리가 기력이 괜찮은 50대 쯤에 육아를 맡아 도와 주면 덜 힘들고 쉽지 않았을가. 나이가 고래희에 이른 지금, 다시 애를 돌보는 일이 차려지면 자신이 없다.
세상을 살아보니 농사일이나 손군들을 돌보는 일은 그에 알맞는 시기가 있는 것같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때가 있지 않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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