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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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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내일이 온다.
2019년 11월 22일 12시 42분  조회:862  추천:0  작성자: 류재순
단편소설 래일이 온다

류 재순
 
한껏 너부러져 게으름을 피우던 여름날의 하우는 유령처럼 깔려드는 어둠속에서 맥 빠진 햇살의 잔여를 소리 없이 갉아 먹는다.
여자는 영혼이 떠나간 시체마냥 미동 없이 누워서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본다. 언제부터 켜져 있는 텔레비전은 완전 소음이 된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빛과 화면을 바꾸며 죽음 같은 정적 속에서 그 존재의 가치를 확인시키느라 나름대로 분주하다.
또다시 마음 한 구석이 쿡쿡 찔리는 듯 아프기 시작한다. 그 깊은 곳엔 아픔을 유발하는 핵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땅땅한 응어리로 뭉쳐진 그 핵은 완고하게 자리를 잡고 시간이 갈수록 그 괴로움의 바이러스를 전신에 퍼뜨리며 궁극엔 머리까지 올라와 여자의 머릿속을 쑥대밭으로 뭉개어 놓는다. 아, 아프다~ 이 아픔의 핵은 언제부터 만들어 졌었나? 아득히 멀어도 눈앞처럼 생생히 안겨오는 기억들, 20년, 그래 인생에서의 그 긴 20여년이란 시간을 그 남자와 같이 왔다…
 
깊은 동굴 같은 끝없는 터널 속으로 가냘픈 사유의 흐름이 주체를 못하고 미끄러져 흘러들어 간다. 그래 그때였지, 풍년든 늦가을의 논벌, 줄지어 쌓여진 벼 낟가리엔 탱글탱글한 벼 이삭들이 무거운 머리를 주체 못하며 주인들이 빨리 탈곡장으로 실어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확 트인 논벌과 커다란 탈곡장을 사이 두고 있는 앞 뒤 두 마을은 평화로운 고요 속에 침묵하고 있었다. 그 시절- 앞마을은 볏 농사에 능숙한 입쌀밥과 김치를 먹는 동네였고 뒷마을은 그때만 해도 수전 농사에 아예 손도 대보지 못했던 죠즈 (饺子ㅡ고기물만두)와 옥수수 따차즈(大馇子ㅡ강냉이 죽)를 먹는 왕씨네 동네였다. 앞 뒤 동네는 김치와 죠즈를 주고받고 얻어먹으며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땅거미가 깃드는 평화로운 논벌엔 무서운 판도라의 뚜껑이 꿈틀거리며 열리기 시작했다.
어둠이 슬슬 사위의 빛을 몽땅 삼켜 버리고 있을 때 뒷마을 몇몇 검은 그림자가 논벌의 벼단 무지로 슬슬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능숙하게 재빨리 볏단들을 가져온 달구지에 싣기 시작했다. 뒷마을 "밤 고양이 별동대" 입쌀밥 해결 작전 대였다. 일 년 내내 농사일엔 손 까딱 안 하고 본 동내에서도 도적질에 이골이 난 서너명의 놈팡이 깡패 들이다. 앞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볏단을 몇 무지씩 잃어버리고도 그저 "에그 저것들이 얼마나 입쌀밥이 먹고 싶었으면 저런 짓을 다 하랴" 하면서 눈감아 오던 터라 금년가을에 들어서서도 벌서 몇 번째 이 짓을 하고 있었다. 이제 보니 참아서 해결 될 일이 아니었다.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분통은 목구멍까지 차고 올라와 토해 내지 않으면 머리 뚜껑을 날릴 판이다. 그래 밤 도적고양이에게는 그에 맞는 밤 작전이 필요하다.
 
"에라, 이 도적놈들, 오늘 잘 붙들었다 .때려라 때려! 몽땅 잡아라!“
어둠속 어딘가에서 갑자기 다른 한 무리들이 달려들었다. 앞마을 사람들이였다. 사실 이제는 참고 참으니 이놈들이 완전 상투꼭대기에 똥을 갈긴다고 온 앞 동네가 술렁이던 터였다. 오랫동안 분을 삭이며 입을 다물고 있던 앞마을 젊은 패들이 어둠속에서 볏단을 사수하려 계획을 짜고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맞붙은 두 패는 마구 뒤엉켜 패고치고 덮치고…달빛 하나 없는 캄캄칠야 속에서 싸움판에서 오고가는 연장들이 번득번득 살기를 내 뿜었다.
갑자기 “타딱”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덜 마른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 크지는 않았지만 이 심상치 않은 소리에 이어 다급히 아야-하는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순식간에 비상 명령마냥 찰나의 휴전을 가져왔다. 멍해진 사람들의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뒷마을 한 놈팡이의 괴성이 터졌다.
아야마야, 워더 로빠야 사스호 라이더? 니 자디라?! (아이구 아버지? 언제 왔어요? 왜 이러세요?)
뒷마을 중국 동네에서도 상습적인 나쁜 손버릇으로 “밤 고양이”로 이름난 아들을 저지하러 나왔던 무고한 로인의 참변이었다. 허리에 타박상을 받은 모양이다.
세상에, 큰일 났다 튀어!!~
드디어 낌새를 알아차린 이쪽 앞마을 사람들은 줄행랑을 놓고 달아났다.
매일 난봉을 피우며 속을 썩이는 아들 때문에 이미 몇 년째 몸을 제대로 운신 못하고 있던 그 로인은 허리에 타박상을 입으며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가 입원하고 치료를 받았지만 합병증으로 끝네 병원에서 숨지고 말았다. 아들을 말리려 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무분별하게 벌어진 난투 속에서 억울하게 참상을 당한 것이다…
 
이 늦가을의 어둠속에서 벌어진 두 마을 사이에 예기치 못했던 끔찍한 사건은 삽시간에 특대 센세이션이 되어온 현성을 뒤흔들어 놓았다. 수사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바로 “타닥”소리를 낸 그 치명의“한방”을 승인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썼던 연장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 숨 막히는 나날은 사람들을 질식시키고 있었다. 공안국의 차와 경찰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마을에 들어 닥쳤다.
 
한 달이 지났다. 한 사람이 나섰다. 자기의 소행이었다고 자백하였다. 앞마을 생산대의 대장―웅걸, 그 남자였다. 허리를 내려친 그 한방이 웅걸이가 한 짓이라고?
사실 한 녀자-명숙은 알고 있었다. 그날 “벼 도적”을 잡으러 논에 숨어 있다는 남편을 찾아 그녀가 나왔었다. 녀자가 논두렁에서 이미 무리 싸움이 붙은걸 보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바로 그 젊은 촌장ㅡ웅길이 드디어 도착했었다. 그때는 벌써 허리를 치는 소리가 난 뒤였다. 그런데 그 남자가 장본인이라니?
여자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자기의 남편이 부들부들 떨면서 밤새도록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못 이루고 있었던 일을…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하고 수사에 지칠 데로 지친 법정에서는 일단 이 “자수 범”을 감옥에 가두었다.
"왜 그랬어요? "
어딘지 짐작이 가는 녀자는 면회를 가서 촌장ㅡ융걸에게 물었다.
"뭘?… 내가 친 거 맞아, 명숙이는 빨리 집에나 돌아가라니까. 사고는 내 몫이니까 두 마을 사람들 이젠 싸움들 그만하고 그전처럼 화목하게 지내라고 가서 일러요! 촌장이라는 내가 이런 큰 일 하나 누르지 못 했으니…"
어려서부터 홀어머니 모시고 찌든 가난 속에서 동생들 키우며 왕복 20 리 통학 길로 근근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마을의 농사일에 정착을 한 나 젊은 촌장이었다. 째지게 가난한 고향 한번 변신시켜 보겠다고 년소한 가슴에 넓은 흉금을 가지고 남 다른 리더 심과 포옹력으로 무슨 일에서나 마을 사람들을 위해 앞장서 뛰었고 앞장서 책임을 맡아가는 촌민들의 믿음직한 희망이었다.
웅걸씨, 아무래도 이건 아닌데, 미안해요!…
녀자는 속으로 울었다. 장본인인 남편을 발가놓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 할 수가 없었다.
 
90년대, 난데없는 한국 친척 찾는 바람이 이 시골에도 불어왔다.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이 남자―웅걸은 년노하신 어머니를 통해 한국 친척과 소식이 닿았고 드디어 연락이 되었다. 정말 그대로 말하면 하늘의 혜성을 붙든 기분이었다. 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면직 당한 이 늦깎이 총각 촌장은 금방 장가를 들었다. 그때는 이미 남방으로 도망가 은둔 생활을 하던 명숙의 남편이 당지 경찰에 붙들려 도망을 치다 목숨을 잃어 버리는 교통사고가 나고 웅걸의 혐의도 벗겨진 뒤였다. 웅걸은 감옥에서 나오자 모심기에 뒷마을 사람들을 불러 같이 일손을 돕고 삯돈을 주며 수전 농사법을 손에 익게 가르쳐 주었다. 볏 농사에 재미를 본 뒷마을 사람들은 한국 간 사람들의 논을 맡아 부치며 입쌀밥을 실컷 먹는 건 물론 나라에 바치고 시장에 팔고…다시는 볏단 훔치는 일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친척방문으로 한번 한국에 갔다 온 웅걸은 친인척 초청장을 두 장이나 띠여 왔다. 한 장은 친척 중에서 제일 못사는 고모네 집에 주고 다른 한 장은 명숙에게 주었다.
웅걸이보다 세살 많은 명숙이는 웅걸이 선배로 같이 먼 통학 길로 고등학업을 마치고 마을에서 시집을 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남편이 사고를 치고 도망을 다니다 사망까지 하였지만 홀로 남은 늙은 시부모를 차마 버리고 떠날 수가 없어 끝가지 모시고 있는 터였다.
웅걸의 뜻하지 않은 처사에 웅걸의 아내와 처갓집 식구들은 펄펄 뛰었다. 지금 한국 초청장 한 장에 돈이 얼만데 무료로 그저 주다니! 그때 벌써 한국 돈으로 천 만 원이 오고 가는 때가 아닌가? 참 촌장 직에서 해직 된지도 언젠데 아직도 뭐 자신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 구세주 노릇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나?
ㅡ영원히 이 은혜를 잊지 않을게요. 웅걸 씨를 위해선 뭐나 다 할 거예요.ㅡ 온 마을이 이 불가사의한 일을 두고 뒤숭숭해 있을 때 살기 위해서라도 염치불문하고 한국으로 떠나는 녀자-명숙은 가슴이 아프도록 감격하였다.
 
밖에서 저녁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그저 후덕 지근한 바람일 뿐이다. 마음과 머리를 식혀 줄 바람은 없다. 산 너머로 지는 빨간 노을이 꼴깍 금방 자취를 감출 태세다. 집안의 정적은 시간을 모르는 듯하다. 누워 있는 녀자는 이 세상의 종말은 어떤 것일까 눈을 감고 상상 해본다.
그때ㅡ
서울의 하늘은 낯설기만 하였다. 글자는 알아도 뜻을 알 수 없는 서울의 영어식 간판들, 일터에서의 한국말 아닌 한국식 전문 용어들, 어디서 갑자기 조상의 뿌리를 찾는다고 이역만리에서 “거지떼”처럼 몰려 온 이 시골 떼기 동포들을 바라보는 일부 원주민들의 싸늘한 눈길은 항상 그들의 이마에 치욕과 고충의 낙인을 찍어 놓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한국인들이 외면하는 고된 노동과 궂은 노동을 골라가며 한 푼이라도 더 차곡차곡 모아 고향의 집으로 보내는 것보다 더 큰 쾌락이 없었다. 하루 둬 번 쉬는 날이면 턱 밑까지 쌓여진 마음의 무게를 풀려고 가끔은 포장마차에 마주앉아 둘이서 같이 찬술을 기울였다.
 
그들은 한 마을에서 유일하게 작은 시가지의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는 학생이었다. 어두운 골방에서도 쭈크리고 앉아 늘 책을 읽으며 시간가는 줄 몰랐던 수수하면서도 감성 풍부한, 조용하고 깊이가 있는 명숙이었다. 그런 그가 고등학업을 마치고 대학입학 통지서를 손에 받아들고도 가난 때문에 눈이 퉁퉁 붓도록 밤새워 울던 구월의 밤, 뒤 울바자 밖, 키다리 백양나무 아래서 창호지에 비친 들먹이는 그 가냘픈 어깨를 끝없이 슬프게 바라보던 웅걸이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그 구월에 홀어머니와 살고 있던 웅걸도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였다. 입학 통지서를 손에 쥐고도 대학에 갈 수 없었던 상황은 똑 같았다. 그해 시월에 명숙은 한 부락의 회계와 결혼을 하였고 또다시 2년 후 웅걸은 부락의 촌장으로 당선 되었지만 성깔 하나로 유명했던 웅걸 어머니로 하여 그 집에 며느리로 들어오려 하는 처녀는 하나도 없었다.
 
운명은 또다시 그들을 한국이라는 이 멀고도 가까웠던, 익숙하고도 생소한 서울바닥의 포장마차에 마주앉게 하였다.
둘은 술잔을 들고 숙박비 때문에 볼을 도려내는 것 같은 중국 동북 대평원의 맵짠 눈보라 속에서의 머나먼 통학 길을 얘기 했으며 온 중국 대륙을 휩쓸었던 대 재앙시기의 대식품(代食品)으로 기아에 허덕이던 가난을 얘기 했다.
그리고 명숙이 그 회계와 결혼하던 날 온 동네가 잔치 집에 모여들어 술잔을 기울일 때, 웅걸이 머나먼 현성바닥을 막연히 걷던 일을 털어 놓았다. 자신이 회계와 비교 할 수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성깔 유명한 홀어머니는 나름대로 둬 살이라도 많은 명숙을 며느리로 점지하지 않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명숙이를 데려다 가난의 구렁텅이에 묻혀 놓고 싶지도 않았다는 것도 얘기 하였다. 그래서 당연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해 가을 논벌의 참사를 얘기했다.
"그때 왜 그랬어? 왜 그 무서운 덤을 뒤집어쓰고 감옥까지요? “
언제부터 묻고 싶던 얘기다. 웅걸은 술 한 잔을 쭉 들이켜고 명숙을 새삼스레 조용히 쳐다본다. 무엇이라 해석을 해야 할까? 웅걸은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알 수 없는 미소만 남기고 또 한잔 쭉ㅡ이다.
 
웅걸 씨처럼 책임감 있고 좋은 사람 세상에 드문 것 같아요.ㅡ
명숙은 눈앞의 이 남자를 바라보며 진심을 말했다. 눈에 크게 띠우지 않는 작은 키, 작은 얼굴, 크지 않은 눈, 어느 하나 눈에 번듯하게 안겨 오는 것이 없는 이 남자, 그 큰 체통과 넓은 흉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언제나 얼굴에 가득 담긴 사람 좋은 웃음은 얼마나 옆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가. 오직 저 남자가 원한다면 여자는 무엇이던 기꺼이 주리라 혼자 생각 하고 또 하였다.
 
그날도 그들 둘은 오랜만에 또다시 포장마차에 마주 앉았다. 술이 좀 거나해진 명숙은 그날따라 마음이 한껏 울적해 졌다. 늘 잔꾀가 넘쳐 어떤 땐 좀 민망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을 무척 사랑해 주던 죽은 남편의 일이 생각났고 방법 없이 자기의 뒷다리를 붙잡고 있는 불쌍한 시 부모님들이 생각났으며 이국땅의 하루 열두시간의 고된 노동으로 매일 무거운 다리를 겨우 끌고 집으로 돌아와도 옆에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잠자리에 쓰러져야 하는 이 끝이 보이지 않는 고독한 인생이 슬펐다.
한참 얘기를 주고받다 웅걸이 갑자기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전화카드를 꺼내들고 집으로 전화를 한다. 웅걸의 눈썹 관골 깊숙이 묻혀 있는 눈을 명숙은 괜히 슬프게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웅걸아 이제 네 여편네 한데 그만 돈 부쳐라. 다 가지고 떠났다. 배가 터지도록 바람이 꽉 찼다.그 왜 처녀 때 좋아 했다던…”
한국바람에 그래도 손쉽게 며느리를 보게 되어 다시 기고만장했던 웅걸의 늙은 홀어머니의 띄엄띄엄 들려오는 풀이 다 빠져버린 목소리였다…
 
그때 일을 생각하며 지금 녀자는 물끄러미 천장에 동공을 고정 시켰다. 어느 창문 틈사이로 끼어 들어온 잔광이 천장의 한 귀퉁이에 희미한 빛의 그림자를 만들어 놓는다.
 
그때 그 전화를 받은 후 웅걸은 너무나 뜻밖의 소식에 금방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앉아 있던 포장마차의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급히 수속을 밟고 경황없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둬달 후 돌아온 웅걸의 얼굴, 그때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푹 꺾어져 있는 머리의 작은 얼굴은 더 조막만 해졌고 맥없이 받혀진 두 다리는 밀면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벼단 도적잡기 사고로 촌장 직을 해직 당하고 감옥에 수감 되었다 나왔을 때도 얼굴이 이렇게 까지 죽어있진 않았었다.
명숙은 집에 술상을 차려놓고 웅걸을 불렀다. 두 잔도 못 마셨는데 웅걸은 쓰러졌다. 그리고 어린애 마냥 울었다. 체구는 작아도 언제나 마을사람들에게 든든한 기둥같이 보였던 남자가 마누라의 배신이란 큰 산을 넘기지 못해 절망하고 있었다. 명숙은 베개를 내려다 웅걸의 머리와 몸을 당겨 검은 색인지 붉은 색인지 알 수 없는 참담한 얼굴을 자기 무릎에 눕혔다. 웅걸은 어미 품에 안긴 순한 어린양 마냥 그의 무릎위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눈가로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명숙은 가슴이 뜨거워 나고 목구멍이 뜨거워 났다. 여자는 뭉글뭉글한 따뜻한 가슴으로 남자의 얼굴을 끌어당기며 뜨거운 입술을 그에 볼에 대였다. 그리고 같이 울었다.
당신이 말하지 못하는 어떤 부분의 아픔도 내가 다 안아 줄게요!ㅡ
명숙은 웅걸의 엄마도 되어주고 싶었고 누님도 되어 주고 싶었으며 그리고 또…
질척질척 늦은 봄비가 정원을 적시는데 울안에 갇혀 있던 오월의 빨간 장미가 담장 너머로 덩굴을 타고 넘으며 방긋방긋 선을 보인다. 깊어가는 봄밤 속에서 예쁜 장미의 숨겨진 정열이 밤이슬을 머금고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모처럼 쉬는 날이 닥쳐오면 그들은 서울 대림동 옆구리를 휘감고 흘러가는 도림 천 물가의 아를다운 노란꽃창포며 수련을 같이 보았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가을날의 춤을 추는 물 억새와 꿋꿋한 부들에 정신을 팔기도 했으며 한강 서래 섬의 하얀 메밀꽃 밭 속에 묻혀보기도 했다.
어느 교회에서 나온 말인지 그때 소문에는 2012년이 이 지구의 마지막 날이라는, 소행선과 지구가 충돌한다는 공포의 소식이 무성하게 돌며 사람들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었다. 성경‘요한계시록’, 이집터의 ‘마야’ 달력이야기, ‘검은 사슴’의 예언, 중국의 주역 역술에서도 이 무시무시한 종말을 제시했단다. 행복은 이제 시작됐는데 세상의 종말이라니?
“당신 혹 안 무서워?”
“같이 죽을 사람이 있는데요. 뭘, ㅎㅎ”
웅걸의 눈을 바라보며 명숙은 추호의 주저도 없이 대답 하였다.세상이 뒤집혀 진데도 같이 손을 잡고 죽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냥 행복하였다.
년말의 어느 날, 두 집은 조촐한 살림을 한데 모았다. 남달리 부지런하고 억척스레 돈을 모았던 그들은 두 사람의 돈을 합쳐 일억이라는 전셋집까지 얻을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농사일에서 잔뼈를 굳혀 온 그들은 하나는 현장에서 최고의 보수로, 하나는 식당일에서 최고의 보수를 받으며 차츰차츰 정들어 가는 서울 생활을 반짝반짝 윤택이 돌게 하였다. 웅걸과 명숙은 어렵지 않게 영주권을 가지게 되었다. 늦었어도 알뜰살뜰 다시 한 번 잘 살아보려는 정열과 웅심은 옆 사람들을 무색케 하였다.

행복이여,
그대를 위하여 칼날 위를 걷는 자
그 얼마인가
 
어느 책에서 봤던가? 왜 갑자기 그 옛적 시 구절 하나가 생각이 나지?
천장에 비췄던 잔광이 점점 몸체를 줄인다. 텔레비전의 뉴스에선 아까부터 무엇인가 대단한 소식을 전하고 있는 듯싶은데 소음을 만들어 놓은 상태라 소리도 없거니와 형광 막에 나오는 자막의 글들에 눈길을 주기도 싫다.
 
그때, 그때 왜 그랬을까? 왜왜?
비가 구질구질 내리던 어느 날 이었다. 여름 우기를 맞으며 며칠째 일을 못나가고 있던 웅걸이가 명숙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서울 선릉에 좋은 행사 하나가 있다니 같이 가보자는 것이었다. 마침 주말이라 명숙은 웅걸을 따라 나섰다.
강단에 열기 띤 사람의 강연, 강연실안을 꽉 채운 호기심에 들 떤 사람들, 세상엔 그렇게 땀 흘리며 고달픈 로동을 안 해도 잘 살수 있다는 확신성 있는 열망들, 이상한 패러다임에 회의장은 들끓고 있었다. 명숙은 어쩐지 현기증이 나려 하였다. 그녀는 웅걸의 팔을 잡아 당겼다. 어쩐지 집으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웅걸의 발은 뿌리 내린 듯 움직일 염을 안했다.
그 친구는 벌써 통장에 엄청 돈이 들어 왔다던데.ㅡ
말을 하고 있는 웅걸의 눈빛은 반짝반짝하고 있었다. 추호의 흔들림도 없는 웅걸의 확신성 있는 표정은 되려 명숙의 머리를 혼돈시켰다. 그런가? 명숙은 역시 웅걸을 믿고 싶었다. 그 후, 웅걸은 현장 일을 그만 두고 그 동창의 도움으로 어느 어마어마한 사무 청사로 ‘출근’하였다.
어느 날 명숙은 웅걸이가 몸담고 있다는 사무 청사에 들렸다. 수많은 운동 의료기기가 있었고 매장 운영에 들어가려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위탁 마케팅에 계약을 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돈이 이 한곳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다고 믿고 있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명숙은 방금 지하철에서 만난 고향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 그 웅걸이 촌장 한국 와서 하던 현장일 그만두고 무슨 사업 한다며? 전번에 선릉역에서 봤는데 양복에 넥타이, 가죽 손가방, 그런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딱 그런 부류 사람들 같았어. 설마 아니겠지? 우리 그 촌장이야 얼마나 식견 있고 똑똑한 사람인데.ㅡ
그런 부류- 그 친구가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의 의미가 띵_하고 온 머리를 내려쳤다. 설마 설마하며 지금까지 방관하고 있었는데 이게 정말 말로만 듣던?
 
“그만둬요. 빨리 집에 가요! 이건 정말 다단계에요 다 속임수예요!”
명숙 이는 저도 몰래 소리쳤다.
“다단계라니? 국가에 세금도 딱딱 바치고 있는 아주 규모가 대단한 회사라고, 국가가 인정 한다는 거지. 얼마나 많은 장관급 인사들, 연예인들도 다 합류되고 있는데, 이 몇 달 동안 내 통장에 연 수입 30~40%씩 꼭꼭 들어오는 거 봤잖아. 나도 이제 저 기기들을 사서 가계 하나 꾸려야겠어. 건축 현장일, 이젠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 사람이 인생에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평등하게 3번의 기회가 찾아온다잖아 어떤 사람은 아쉽게도 옆에 지나가는 기회를 모르고 잡지 않는 거라오! 명숙인 아무 걱정 말라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웅걸의 열변이었다. 자기가 그처럼 믿는 남자였건만 명숙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녀는 또다시 웅걸이가 현장 일을 그만두기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현장 안전선반 대에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웅걸은 오십여 매트 아래로 떨어졌다. 다행히 아주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허리를 다쳐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고 별 영향 없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상태로 회복이 되었는데도 퇴원 전에 산재 보험으로 보상금 근 천만 원이 나왔다. 산재보험료가 통장으로 들어오던 날, 명숙이가 웅걸을 보려 병원에 갔을 때 웅걸은 병원 외곽 복도에 쭈크리고 앉아 누군가와 신나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날, 그 돈은 곧바로 그의 “사업” 투자 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당시에 명숙은 화가 났지만 당신이 “생명 위험”과 바꿔 온 돈인데 자기가 간섭 할 일이 아닌 것 같아 입을 다물고 말았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선엔 지금까지 찜찜한 그 무엇이 계속 막연한 딜레마 속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창살로 끼어들어 천장 한 조박을 밝히고 있던 희미한 빛은 완전 사라지고 컴컴한 방안엔 텔레비전이 아직도 번득번득 빛을 뿌리며 소리를 입에 문 벙어리 손시늉 마냥 화면을 언뜻언뜻 바꾸고 있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이 플레이어 되고 있는 것일까? 억지로라도 일어나 등을 켜고 텔레비전을 꺼야겠다고 생각 했지만 가라앉는 기운은 손 까딱 할 힘조차 주지 않았다.
바로 몇 달 전이였다. 고향에 일이 생겨 명숙이 중국에 갔다 오던 날이었다. 공항에 마중 나왔던 웅걸은 공항버스에서 같이 내려 어쩐지 엉뚱한 방향으로 집을 안내 하였다. 어리둥절해 자신을 쳐다보는 명숙 이를 마주하고 남자는 시물시물 웃기만 했다. 그리곤 천연스레 해석이란 걸 하였다.
"여보 , 이번에 내가 아주 아담한 집 한 채 다시 구했어. 임시 좀 좁을 테지만 조금만 당신이 기다려 주면 우리도 월세 집, 전셋집이 아니라 번듯한 아파트도 살 수 있게 될 거야"
얼마나 신바람 났는지 웅걸의 얼굴은 흥분으로 벌겋게 열을 내고 있었다.
“네? 전셋집을 뺏어요? 전세금을요?”
청천벽력 이었다. 끝내 전세 값 일억 원을 빼내어 늘 외우던 그 ‘사업“의 운동의료기기 가계를 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제야 명숙은 전셋집 계약을 할 때 명숙이가 근무중이여서 웅걸이 혼자 명의로 계약을 해도 된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남자는 혼자서도 계약금을 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그만 한 월세 집에 들었던 것이다.
갑자기 낯설어진 웅걸을 앞에 놓고 여자는 무릎이 폴싹 내려앉는 감을 느끼며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어떻게 번 돈인데!
어쩌면 한마디 상의도 없이, 어쩌면 이럴 수가! 당신 그때 그 사리 밝고 마음 후덥던 촌장 웅걸이 맞아요?! 그리고 내 존재를 의식이라도 하고 있는 거예요?
.
눈에 비친 그대는 /깜박이는 불꽃
발밑에 눌리어 /깨여지는 얼음이어라
 
여자는 무의식적으로 또 한마디 시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하늘같이 믿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용납하리라 다짐했던 마음속에는 억누를 길 없는 반란이 꿈틀거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여자는 짐을 싸서 떠나야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러면 지금까지 피담 흘려 모아 투자한 돈은? 그리고 또, 그 옛날 웅걸이 명숙의 남편대신 죄명을 쓰고 감옥에 가고 천 만원 어치의 초청장도 무료로 해 줬던 일이 머리를 치며 그의 발목을 잡았다. 여자는 머리 뚜껑을 열고 밖으로 치솟는 불길을 이를 악물며 억누르고 있었다.
웅걸이 말처럼 그 찬란한 내일의 태양을 정말 믿고 기다려야 할까?? 세상의 모든 것이 갑자기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이불을 들고 혼자 주방바닥에 들어가 누워 머리를 흔들며 생각하고 또 하였다.
 
웅길은 치킨과 맥주를 사왔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있는 ‘사업’의 성공 성 여부를 하나하나 꼼꼼히 피력 하였다 이 어두운 월세 집에 예상치 못했던 내일의 찬란한 태양이 그들의 운명을 로또복권 당첨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내일의 확신성을 얘기 하였다. 명숙은 마주앉아 꼴깍꼴깍 붓는 술을 마시며 묵묵히 열변을 듣고 있었다. 래일, 래일? 그래 화려한 래일은 온다. 혼신의 기운을 담은 아름다운 채색 풍선이 하늘 높이 떠오르는 장면이 아물아물 안겨 왔다.
그래 이 남자는 학교 때 공부도 잘 하였고 다른 사람 대신 폭행죄까지 떠안던 사람이며 어머니와 마누라,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의 비난에도 서슴없이 자기를 위해 천만 원 가치의 한국 초청장도 불사한 남자다. 절대 누구를 배반할 사람도 아니고 속히 울 사람도 아니다.
여자의 머릿속엔 여전히 그 옛 흉금 넓고 뜨거운 가슴을 품은 촌장 웅걸이 살아 있었다. 아니, 저 남자가 그렇게 까지나 완전 변하지는 않았겠지…
여자는 설마 설마하며 자신을 달래고 치솟는 불길을 꾹꾹 누르며 믿음을 안고 남자와 함께 열심히 피라미드식 사람 운영을 위한 가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다행이 투자한 돈이 꼬박꼬박 고금리로 나왔다. 리득의 재미는 끝없는 욕심의 풍선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통장의 모든 돈을 위탁하였다. 의료운동기기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발길을 이어주고 있었다. 그래, 래일은 올 것이다. 래일의 태양은 꼭 찬란할 것이다. 어둠은 가고 여명은 온다! 풍선을 날려라 기대와 열기로 들뜬 나날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지 또다시 몇 달이 지났다. 만물의 생령이 부활하는 4월의 어느 날, 그 모든 환상과 희열을 삽시에 말살해 버린, 죽음과도 같은 청천벽력의 소식을 들었다…
응? 뭐라고? 빨리 말해 봐, 대형 사기였다고?! 어찌된 영문이야? 웅걸은 어디에 갔나? 왜 보이지 않아?! 같이 피라미드를 쌓아오며 재미가 나서 명숙과 함께 돈을 받는 족족 다시 다 투자하고 있는 동료의 한통의 전화로 명숙의 피 말리는 함성은 목구멍을 넘지 못하고 가슴에서 터지고 있었다.
 
캄캄한 방안엔 저녁 9시 뉴스가 한창이다. 음 제거를 한 소리 없는 텔레비전의 화면에는 얼마 전부터 이미 익숙해진 몇 글자들이 초점 잃은 그의 시야로 파고든다.
해피글로벌, 8조원 피해액, 24만4000여건의 피해사건…
이어서 천기예보ㅡ래일은 하루 종일 비…
 
…아아, 날아가는 고무풍선
그 때문에 울부짖는 어린이의 마음을
아무도 달래지 못 하네…
 
그날 머릿속에 떠 올렸던 시 구절의 마지막 부분이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핏방울이 되어 그의 가슴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강산은 변하고 있었다. 사람도 인정도 사랑도… 가난했던 고향, 늙은 부모님들의 송장 같은 얼굴이 자꾸 텔레비전의 화면을 덮치고 있었다.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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