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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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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오후 네시 댓글:  조회:759  추천:0  2020-02-03
단편소설 오 후 네 시 류 재 순   뚜벅뚜벅…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늦은 밤 5층 건물의 적막을 깼다 두 사람의 잦은 발자국 소리가 마치도 박자가 맞지 않는 작은 드럼북 소음 같다. 앞에서 내려가는 키가 훌쩍 큰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한 남학생 뒷등의 풍뗑이 같은 감색 책가방이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에 조금씩 흔들린다. 그 뒤에, 상중키의 오십대 남자가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그만 들어가세요.” “그래 부탁한다. 이번 시험 부디 차분하게 있는 실력 잘 발휘해라. 모르는 것 있으면 언제든지 수시로 연락하고, 좋은 소식 기다릴게.” 학생은 꾸벅 인사하고 출입문을 열었다. 오십대 남자는 학생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고 또다시 뚜벅뚜벅 계단을 올라가 자신의 3층 학원 교실로 들어섰다. 문을 닫고 발걸음을 멈추니 사위가 영안실처럼 괴괴했다. 학원 강의실의 불빛이 마침내 하나의 중심체를 발견한 듯 그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벽에 걸려있는 검 녹색 칠판, 학생들의 온기를 싹 잃어버리고 숨죽이고 있는 작은 책상과 걸상들… 어디에도 생기는 찾아볼 수 없다. 쓸쓸함과 막연함이 밀물처럼 덮쳤다.   학원 영어 선생님, 그랬다. 이제 쉰하고도 여섯 고개를 넘은 고등학부 영어 과외 강사는 오늘부로 종지부를 찍을 거다. 참 빨랐다. 이렇게 강단에서 보낸 세월이 어언 30년, 기타를 치며 이범용 한명훈의 ‘꿈의 대화’를 열창하던 대학시절의 그의 풋풋한 가슴에 아직도 인생이 무엇인지 깊은 깨달음도 얻지 못한 채 50 몇 년이란 세월은 갔다.   대학 영문학과를 나온 그의 젊은 가슴엔 채색 풍선이 붕붕 떠 있었다. 이름 있는 대기업도, 콩나물 틈새 같은 좁은 희망의 골목길을 밀고 들어가려는 공무원 시험도 그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영문학은 그의 평생 취미였고 사랑이었다. 마치도 노스텔지어란 사랑의 그물에 빨려 들어간 꿈꾸는 파랑새 같았다. 과외 학습열에 한창 열기를 뿜던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눈에 불을 켜고 애들의 학원 주소지를 검색하였고 영어 학원은 또 그 많은 과외 학원 중에서도 검색 첫 코스로 주목받았다. 어느 한 영어학원에서 그를 불렀다. 파랑새는 운이 좋았다. 3년이 지나자 그는 이백여 명 학생을 수용하고 있는 이름 있는 영어학원의 스타 강사가 되었다. 월급봉투는 대기업에 들어간 동창들보다 두둑했고 자기 아이를 들어가게 해달라는 학부형들의 전화는 항상 그를 어정쩡하게 하였다. 그때는 분명 그 인생의 르네상스 시기였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도 그 돈 봉투의 금액에 큰 관심이 없었고 담뱃값과 점심값을 내놓고는 그 수익금을 신혼 생활에 애까지 키우는 젊은 아내의 통장으로 모두 들어가게 했다. 그의 젊음은 몽땅 학원 일에 불태웠다. 강단 앞에 서서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특기와 열정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이 한가지만으로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의 학원엔 서울대를 지망하는 영훈이라는 고등학생이 있었다. 모든 과목이 다 우수하지만 영어성적은 항상 뒤꼬리에 처져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영어에 취미가 없는 아들을 앞세우고 영어 학원을 찾아왔다. 다른 성적은 다 좋은데 영어 성적이 뒤져서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하였다. 그런데 찾아온 학생 어머니의 얼굴색이 말이 아니었다. 뒤에 안 일이지만 얼마 전에 위장암 수술을 했다고 했다. 학생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학생 아빠는 한국의 미국 회사에서 일하다 미국에 있는 본사로 들아가 있은지도 몇 년 잘 되었는데 아들을 빨리 미국유학을 시키려 해도 영어가 너무 떨어져 집중 보충공부를 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간절한 눈빛을 바라보며 그는 암묵적으로 그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 드려야겠다고 다짐하였다. 밤새우며 교안을 짜고 충혈된 눈으로 학생을 붙들고 일대일 교육을 진행해 나갔다. 물론 그 한 학생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느 날 학원 수업이 끝나고 개별 학생을 위해 특별 지도를 하며 다음날 교안을 짜는데 재킷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했다. 그날 결석한 영훈 학생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궁금하고 불안하던 터라 그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니?” “선생님 죄송한데 이제부터 제가 학원에 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 “왜?” “어머니가 다시 입원하셔서 학교 끝나고 바로 병원에 한 번씩 들려야 할 것 같아서요.” 어머니 병이 재발해 위태로운 상태라 외동아들은 하루에 한 번이라도 어머니를 병문안 가려 한 것이었다. 학교와 집 그리고 학원과 병원의 거리는 학생이 소화해 낼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수능시험이 코앞인데 지금 손 놓아버리면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어머니의 애절했던 눈빛이 축축한 그의 가슴속 한구석으로 집착스레 스며들었다. “알았으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 그때부터 선생님은 학원 수강이 끝나면 바로 병원 옆 커피숍으로 달려가 영훈 학생의 영어 수강을 보충해 주었다. 밤 9시가 넘어 시작한 학습은 한 시간만 해도 10시가 넘었고 집까지 차로 태워다 주고 집에 돌아오면 12시가 넘었다. 눈에 핏발이 서고 싸느런 김밥 도시락이 항상 그의 허기진 배를 채워 주었다. 그래도 지칠 줄 몰랐다. 드디어 대학수능시험이 시작되었고 초조한 기다림의 끝에 시험 결과가 나왔다.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헐레벌떡 학원까지 달려와 흥분으로 끝말을 잇지 못하는 제자 앞에서 이 파랑새 같은 강사의 날개는 힘차게 푸득이는 것을 느꼈다. 날개에 반짝이는 구슬처럼 아롱아롱 매달린 희열은 장시간의 모든 고뇌와 피로와 중압감을 순식간에 날려 버렸다. 이런 순간순간의 유혹 때문에 세상만사를 제쳐놓고 자기 한 몸을 이 학원에 다 바쳐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다행이 집안일은 아내가 다 알아서 처리했다. 파랑새는 아무 잡념없이 한 방향을 향해 날아만 가면 됐다. 밤을 새우며 교안을 짜고 고등시험 자료들을 연구하고 학생들의 수능성적 결과를 초조히 기다리는 날들의 연속으로 세월은 흘러갔다. 아내는 원망스럽게 그를 전형적인 워커홀릭이라 불렀다.   스타 강사가 된 지 몇 년 만이었던가? “당신 실력에 충분히 학원 하나 잘 꾸릴 수 있잖아요? 왜 다른 사람 밑에서 온 진을 다 빼요?” 아내의 성화다. 친인척들도 부추긴다. ‘경영’이라는 것보다는 아무 부담 없이 그저 애들을 가르치는 데만 온 정력을 쏟아 붓고 싶었던 그였건만 모든 집안일을 아내 혼자에게 맡겨놓고 있는 자신이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들어 아내의 제안이라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그마한 학원 하나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학원 창밖에 갑자기 휘휘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얼마 가지 않아 투덕투덕 난데없는 빗방울이 창문 유리를 두들겼다. 고요가 깨지고 사색의 줄을 끊어놓는다. 그러나 이 시각 그의 머리엔 집요하게 지나간 일들이 줄을 잇는 밤 거미마냥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그 선을 이어놓는다.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며 그는 계속 그때 일을 떠올렸다. 그래, 학원을 꾸리기 시작한 지 한 2년쯤 지난 뒤였을까? 어느 날 학원을 마치고 늦게 집에 돌아오니 어린 아들은 눈물방울이 마르지 않은 채 방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성빈아, 웬일이니, 엄마는?” “아빠 나 배고파” 몇 시인데 아직 저녁도 못 먹었다니. 그는 다급히 마누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하는 녹음된 기계 소리만 반복되었다. 음성 메시지를 남겨도 응답이 없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아니, 온 세상이 하얘졌다. 종잡을 수 없는 공포가 덮쳐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무슨 정신으로 아들애에게 밥 한술을 먹여줬던지 기억이 없다. 밤을 꼬박 새웠던 그에게 새벽녘에야 냉철한 무엇인가가 머리를 쳤다. 집안일에 너무 무관심했고 아내의 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어린 아들과 학원 사이에서 그는 어릿광대처럼 뛰기 시작했다. 헝클어진 머리에 초점 잃은 눈빛, 학생들의 질문에도 멍하니 인지도 떨어지는 어수선한 몸짓, 학원은 생기를 잃고 수강생 엄마들은 벌써 이상해진 학원 모습에 민감해져 있었다. 어느 날, 인천 댁- 큰 형님네 집에 사는 어머니가 올라왔다. 몰라보게 초췌해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그는 놀랬다. “어머니, 웬일이세요? “웬일? 네 꼴을 봐라!‘ “나 다 알고 왔다. 성빈 어미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냐?” 어머니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가져왔다.   한국사회의 어느 모퉁이에서는‘애견 백화점’ 건설 마케팅이라는 사람들의 상상 속의 금자탑이 돌개바람처럼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었다. 그 바람은 거센 마력으로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수십억 모아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애견들의 천국 같은 백화점을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살이에 아직은 서투른 젊고 순진한 그의 마누라도 그 환상적인 행렬에 끼어들었다. 투자한 만큼 몇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니 남편만 돈을 잘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그 돈을 몇 배로 불릴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열정이 불타올랐다. 남편이 벌어들여 오는 돈들을 다 투자 하였고 시숙, 여동생 친정 부모님 것 까지 그 현대식 피라미드식 금자탑 건설에 쏟아 넣었다. 아내는, 피보나치수열처럼 1이 3되고 3이 5되는 마법 같은 자람의 규칙이 바로 그곳에 절대 존재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거대한 설계와 꿈은 저 우주 공간 어디에선가 바람에 몰려온, 유혹을 가득담은 황홀한 구름 황궁이었다. 모든 것은 흩어지고 붕괴하기 시작했고 그 많은 사람이 투자하여 지은 몇 십억의 건물은 폐물로 되었다. 그와 함께 그들의 십여 억도 다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아내와 소식이 단절된 사이에 죄어오는 공포 속에서 그는 정말 많은 추측과 상상을 했었다. 외도? 납치? 어쩐지 이상한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경찰 문밖에서 머뭇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다 머리를 떨어뜨리고 황망히 돌아 선적도 몇 번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이런 날벼락이 집안에 떨어졌다. 어머니는 친인척들에게서 이모든 사실을 자초지종 다 알게 되었던 것이다. 누누이 사실을 다 밝힌 어머니가 푸념을 하며 무너지는 한숨을 쉬면서 나갈 때까지도 백지가 되어있는 그의 머리로서는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창에 맞은 짐승처럼 피를 흘리면서 날뛰고 싶었고 울부짖고 싶었지만 전기 방망이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몸과 마음은 지심 깊이 떨어진 듯 도저히 움직여주지 않았다.   어딘가에 가서 몸을 숨겼던 아내가 결국은 집에 들어왔다. 물독에 빠졌던 생쥐 모양의 아내, 그 모습은 너무나 참혹했다. 동그마니 잔뜩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아내의 꼬부라진 새우등 같은 뒷등을 바라 보늬라니 귀싸대기라도 후려치며 함성을 터뜨릴 것 같던 분노의 불길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고 저걸 어쩌나 하는 원한과 측은함이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폭풍전야를 예고하는 질식할 것 같은 침묵만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아내의 꾹 다문 입술이 열렸다. 너무나 뜻밖의 말이 뱉어졌다. “우리 이혼해요, 나는 한 푼 돈도 없고 또 돈 벌 능력도 없으니 아들 성빈은 당신이 키워요.” 얼마나 당돌한 말이었던가. 왜, 왜 그런 일을 저질렀냐고 그렇게 따지고 싶고 묻고 싶은 말이 산처럼 쌓였는데 그의 입에서 외려 이런 되알진 말이 나오다니, 더 이상의 사죄도 해석도 없었다. 남자는 바라던 일이였지만, 그리고 이미 예고된 일이었지만 집을 망쳐놓고 들어온 아내의 입에서 이런 당찬, 뻔뻔한 말이 나오는 순간 손에 쥐어져 있던 휴대폰이 ‘팡!’하고 둘러메쳐지며 유리가 깨지고 각들이 뜯어져 나갔다. 자신도 이게 어떤 분노의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전번에 어머니가 오셨을 때 어머니가 모든 것을 결정 지어 놓고 간 걸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을까? “ 당장 이혼해라. 온 집안을 이렇게 풍비박산을 만들어 놨으니 집안사람들 눈에서 성빈 어미가 없어지지 않으면 우린 더 머리를 들 수 없게 될 거다. 그리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간 후에라도 다시 합칠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 내가 용서 못 할 것이다.” 우두망석 멍청하니 앉아 있는 아들을 보고 어머니가 정신 차리라며 최후통첩 했었다. 불가사의한 일은 이렇게 터지고 말았다. 남자는 항상 정직한 삶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많은 돈도 욕심낸 적 없었으며 그저 학원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몰 붓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그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한 유일한 그의 귀숙 처인 보금자리가 그렇게 무너져 버리고 있는 줄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어머니께서 내린 그런 강경한 결정을 자신으로선 반박할 이유와 힘이 전혀 없음에 가슴이 터졌다. 하지만 아무리 분하고 미치겠지만, 당신은 한 번도 이 가정에 신경 쓰기나 했나요. 하며 무관심했던 남편을 향해 악을 쓰며 소리라도 치든지 아니면 눈물을 흘리며 그의 발목을 붙들고 성빈을 봐서라도 제발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하던지, 여리고 어리석고 솔직한 아내의 모습을 남자는 몇 번이나 상상 했는지 모른다. 아내가 진짜 이렇게 소리도 치면서 빌고 나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머니 모르게 고민에 시달리기도 했던 그였다. 그런데 모든 세상사를 다 읽었다는 듯이 아내는 강인해 있었고 굳어져 있었으며 냉각되어 있었다. 눈물도 사죄도 구걸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옆에서 울고 있는 성빈이만은 부둥켜안고 전률하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애가 깊이 잠든 새벽에 짐 몇 가지를 챙겨 그렇게 홀연히 떠나가 버렸다. 한때의 어리석음과 허망한 욕심 때문에 친인척들을 사분오열시키고 경제적으로 풍지 박산을 만들어 놓은.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는 자신에 대한 징벌이었을까, 도주였을까? 상황을 듣고 난 법원에서의 이혼 절차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줄 몰랐다. 이혼 신청을 했지만, 그 결과가 내려오는 순간 텅 빈 머리와 허망한 가슴은 도저히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부부라는 인연은 도대체 무엇일까? 파랑새의 한쪽 날개 죽지는 피흘리며 떨어져 나갔고 어두운 곳에서만 푸득이는 밤 박쥐 발톱 같은 것이 그 가슴 고통의 우주속에서 갉음질을 하고 있었다. 얼마간 방황의 날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떠나간 마누라도 그렇고 자신도 그렇고 친인척과 세인들에게 ‘사기꾼’이라는 낙인이 찍혀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무엇이 가슴을 채웠다. 형제 가족들의 빚을 온 힘을 다하여 자신이 최대한으로 꼭 갚아 나가리라 결심했다. 밤과 낮이 따로 없는 학원 강사의 생활은 기어코 이 빚들을 갚아야 한다는 그의 악착스러운 집념 속에서 무겁게 힘겹게 지탱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아파트를 팔고 아들과 함께 옥탑방 셋집으로 이사했다. 조금이라도 빚을 빨리 갚기 위해서였다. 집안일로 학원 경영에 많은 차질을 가져왔고 떠나간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는 다시 수습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온 정력을 학원에 올인했다. 열 몇 살 된 아들도 벌써 철이 드는지 해거름녘이나 밤늦게 돌아오는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않고 저녁 찬밥도 군소리 없이 혼자 먹고 먼저 자리에 누워 잠들 곤 했다. 그러나 그는 가끔 어린 아들이 꿈속에서 엄마를 부르며 가느다랗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었다. 엄마들이 참석하는 학교 모임에도 빈자리를 내어줘야만 하는 슬픈 일들을 어린 아들이 한마디도 내뱉지 않는 것이 더욱 참을 수 없이 가슴 아팠다.   하루는 그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의 고향 불알친구였다 어려서부터 물장구를 치면서 같이 커 왔고 같이 상경하여 대학 공부했다. 아니, 두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었다. 친구의 마누라와 아들 성빈 엄마다. 남자들 두 친구가 어려서부터 똑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탁구 짝꿍이며 기타반주 애호가였다면. 그 두 여자애도 항상 손을 마주잡고 다니며 두 남학생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으며 두근두근 뛰고 있는 작은 가슴을 두 팔로 막으며 비밀스런 사춘기 얘기를 밤을 새우며 했었다. 익살스런 얘기 속엔 늘 자신들의 눈동자에 박힌 그 두 남학생의 하루하루의 신비한‘시추에이션’이 들어 있곤 했다. 같이 상경하여 대학을 졸업할 때도 휴일이면 그들 넷은 학교 캠퍼스를 멀리 떠나 저녁노을이 잔잔한 푸른 언덕과 한강 둔치에 앉아 ‘꿈의 대화’를 부르곤 했다. … … 땅거미 내려앉아 어두운 거리에 가만히 너에게 나의 꿈 들려주네 너의 마음 나를 주고 나의 그것 너를 주니 우리의 세상을 둘이서 만들자 … … 졸업을 앞둔, 쫑파티가 끝난 어느 날, 친구가 그에게 말했다. “유진이가 널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 “응? 유진이?” “그래 너 영어 수준이 장난이 아니라며 영어로 대화할 때 너무 멋지대” 조용하고 말이 적으며 늘 새물새물 웃는 눈매를 가지고 있는 작고 가냘픈 몸매를 가지고 있는 유진이다. 그러나 의외로 남의 말에 솔깃하기 좋아했고 사람을 바라보는 크고 맑은 눈은 착한 양처럼 티 없이 순진해 보였다. 사실 오래전부터 깊이를 숨겨 놓은듯 한 조용한 모습과 청순한 눈빛은 그의 마음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고 있었다. 사실 두 남자애의 성격은 완연 달랐다. 영어를 잘 하는 이 친구는 조금은 우직스러울 정도로 하나에 묻히면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릴 줄 모르는 단순하고 정직한 반면 저쪽 종원이란 친구는 일찍이 수학 천재란 말까지 들을 정도로 머리 회전이 빠르고 순발력도 강하며 변하는 환경에 적응력도 강했다. “어제 나도 혜나 불러내어 데이트 좀 했어. 향후 우리들의 취업 얘기랑…” 친구가 불쑥 내뱉는 말이다. 항상 큰소리로 웃기 좋아하고 익살스러우며 주견을 숨길 줄 모르는 혜라의 모습은 나름의 또 하나의 매력이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종원친구가 혜라의 의사 분명하고 활달한 성격을 좋아하며 썸을 타고 있는 줄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유진은 성빈의 엄마로 되었고 혜라는 친구 종원의 마누라로 되었다. 만사를 제치고 하나의 취미와 신념에 올인하며 영어 학원에 영어강사로 들어갈 때 그 수학머리는 용케도 그 콩나물 틈 속 같은 경쟁력을 뚫고 이름있는 S 회사에 들어갔다. 영어 학습열이 붐을 이루고 학원학습을 하나의 필수 코스로 알고 있던 그 나날에 영어강사의 수입은 유명회사에 들어간 수학머리를 훨씬 초과 했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동안 서로에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두 친구는 서울 공덕에 있는 ‘신라스테이’에서 맥주잔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당신은 영어 학원에서 엄청 큰 수입을 올렸었다며? “그거? 우리 집 일...자네도 소문 다 알고 있잖아…” 수학머리는 무슨 말을 더 물으려 입술을 움찔거리다 맥주 한잔만 쭉 들이켰다. 그리곤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나도 회사에서 오래 못 갈 것 같아, 워낙 잘 나가는 젊은 층이 밀고 올라오니, 나 과장으로 승급하던 해 아들놈 미국 유학 보낸 거 알지? 아직도 전셋집 신세 지고 있다네. 다시 방법을 생각 해 봐야겠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종원에게는 이름 있는 큰 회사의 금베지 광택이 어디에선가 빛나고 있음을 강사는 마주 앉은 공기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어떤가, 그랬다. 어느 날 부터인가 학생 수가 부쩍 줄기 시작한 그의 학원도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설렁해지는 냉기를 막을 수 없었고 그래서 안간힘을 쓰며 고민 중이던 터였다. 대한민국 엄마들의 자녀 학원 열의는 다 어디로 갔나? 이제 겨우 절반 빚밖에 갚지 못했다. 저성장, 저출산- 매스컴에서 자주 뜨는 문구들이다. “누가 소개를 하는데 저쪽 서울시 서남권 쪽에는 이쪽 서울 중구보다 월세가 훨씬 싸다는데 나 어떻게 그쪽으로 자그마한 학원자리 하나 알아볼까하는 중이야” 낯선 곳이다. “그쪽의 학습 열기는 어떻데?” “뭐가 어떻겠어, 다 그렇지. 그나마 집세가 많이 싸다니 웬만하면 살아남을 거 아닌가?”   그는 원해서라기보다 쫓기다시피 신도림 부근의 어느 아파트 단지 앞에 학원자리를 마련했다. 학군이 좀 되는 곳이어서 희망을 걸었다. 수중에 가진 게 없는 그에게는 이것이 자신의 몸체를 줄이고 소비를 줄이는 최적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알심 들여 학원을 꾸려놓고 학비 수준을 줄여 놨건만 학원을 찾아온 학생은 고작 십여 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   “나도 벌써 흰 머리 새치가 생기는 것 같아. 강단에 나서기가 어떤 땐…” 그랬다. 근방의 학원들을 보면 모두 이삼십 대 혈기 왕성한 젊은 강사들이었다. 자신에게 저런 모습은 이미 기억 저편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쎔 숙제 만땅이네요.” “우리 꼭 스카이(SKY) 안가도 돼요” 가끔은 낯설기만 했다. 교사의 존엄으로 리액션 같은 것을 날리고 싶기도 했지만 어쩐지 자신이 스마트하지 못하고 빈티지같은 자괴감 같은 것 때문에 학원의 이 오십 대 후반의 선생님은 포장하려 애썼고 뒤떨어지지 않으려 분발했다. 투 잡스라도 해야하나? 줄어드는 학생 수 때문에 이런 생각도 불쑥 들 때가 있었다.   그는 또다시 잠깐 사색을 멈추고 그칠 줄 모르는 빗줄기를 막아 버티고 있는 창문 유리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유리창들이 마치 아픔을 견디고 있는 자기 같았다. 머릿속 밤 거미는 계속 사색의 망줄을 이어간다.   “쎔, 저 미국 유학가게 됐어요!” 어느 주말이었다. 미국 유학가기 위해 특수 강습을 받았던 영훈학생이 찾아왔다. 그때 마침 종원 친구도 여유가 생겼다며 치맥 한잔 하자며 로비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야 잘됐다. 근데 어머니 병은 어떻게 됐냐?” “미국 둬 번 들어가서 치료 받으시고 지금은 많이 나았어요. 이번에 같이 들어가려구요. 아버지 퇴직할 때까지는 아무래도 거기서 계속 치료받으며 계시게 될 것 같아요.” 유학가게 된 일도 경사였고 어머님 병이 호전되었다는 소식 또한 너무 반가운 소식이었다. “따봉! 봉주르!”   셋은 잔을 부딪치며 축배를 들었다. ‘그런데 영훈 학생, 미국가면 부디 우리에게 가끔씩 소식 전하는 거 잊지 말라고, 아참, 내 아들도 미국 있는데 서로 연락도 하고.” 종원은 재빠르게 영훈 학생 아빠의 연락처까지 주고받기에 분주했다. 학생은 간단히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그의 영어 선생님이 문밖으로 같이 나왔다. “선생님 집 얘기 다 들었어요. 우리 어머니도 두 분이 갈라지셨다는 소식에 많이 마음 아파하시며 그 아주머니와 연락 하는 것 같았어요.” 사실 그 영훈 어머니가 병원 입원 중이였을 때 학생의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시는 걸 알고 아내를 설복시켜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며 병수발을 들게 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영훈 학생의 어머니께서 떠나간 자기 마누라와 연락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랬다. 그리고 많은 궁금함이 치솟아 올랐다. 그러나 학생에게 더 무엇을 묻고 싶지 않았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두 친구는 학생이 떠난 후 치킨과 맥주를 앞에 놓고 대학 문을 나설 때의 꿈을 이야기했고 학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겪었던 희열과 번민을 주고받았으며 털어놓고 싶지 않은 가정사를 얘기했다. 가정사, 그 아픈 얘기를 왜 꺼냈을까? 아들 성빈이는 이 홀아비 아빠 손에서 13년을 컸다. 엄마의 따뜻하고 애절한 사랑의 햇볕이 결핍한 아들애의 성장을 지켜보는 그의 가슴엔 항상 녹지 않는 음지의 그늘이 깊숙이 뿌리를 박고 있었다. 가끔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그늘진 얼굴을 보며 이혼은 정말 옳은 일이였을까 하고 판단할 수 없는 사색에 잠기곤 한다. 얼마 전 그는 중구의 충무로 지하철 8번 출구를 나오며 걷노라니 왼쪽 길옆에 줄지어 늘어선 ‘애견백화점’건물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펫하우스’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 집 막내둥이들’ ‘동물들의 왈츠’ 참 간판 이름들도 다양하였다. 정말 뜻밖에 이런 매점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세상은 첨단을 향해 달리는데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은 커가기만 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또 다른 향수를 찾는다. 십몇 년 전에 누군가는 이런 미래를 확신하고 투자를 했지만 지금 같은 붐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선 사람들은 인생을 말아버렸다. 성빈이 엄마가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세상 흐름의 타이밍을 잘 못 맞춘 사람들은 널뛰듯 흥하고 망했다. 성빈이 엄마는 지금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사실 40대 초반에 돌싱이 된 영어강사, ㅡ그는 꽤 멋진 남자였다. 이마를 덮는 숱 많은 머리와 길게 쭉 뻗은 두 다리를 가진 꾀 훤칠한 키에 우뚝 솟은 코 등 위에 얹힌 안성 맞춤한 안경, 그 속에 침묵에 잠겨 있는 조용한 눈빛은 주위의 눈길 끌기에 충분하였다. 그를 보는 사람들은 적어도 십 년 정도까지 더 젊게 넘겨짚곤 했다. 그의 형편이 어려운 줄 알면서도 그의 사람 됨됨을 잘 아는 학부모들은 이 젊고 바르고 고독한 선생님에게 짝을 무어 주려 여기저기서 혼사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에게는 확실히 아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고 잠자리를 펴주는 여인이 필요했고 학원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들어설 때 따뜻한 불빛이 집안에서 흘러나오길 수도 없이 갈망해 봤었다. 그것은 그의 가장 소박한 꿈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학원 일에만 몰입했던 그는 한 번도 레스토랑이나 룸 같은 곳을 들어가 본 적 없으며 노래방 도우미들의 추파를 가슴에 새겨본 적도 없었다. 웃음 날리며 지나가는 뭇 여인들에게 한가하게 눈요기를 할 사이도 없이 총총걸음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바보였을까, 멍청이였을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버리면 이렇게 쳇바퀴 돌 듯하고 생활에 푹 파묻혀 버리게 되는 걸까?   그런데 아내가 떠난 그 이후의 생활은 좀 달랐다. 아무리 힘든 나날이어도, 아무리 생존 의식주에 정신없이 쫓기는 나날이어도 40대 중반이었던 그에게는 자신을 속일 수 없는 젊음의 욕망이 꿈틀거리며 그를 무시로 괴롭힐 때가 있었다. 더운 여름날 고등학부 여학생들이 팬티를 겨우 가릴 정도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선생님에게 다가와 팔을 붙들고 새물새물 웃으며 이것저것 끊임없는 질문과 대화를 할 때면 싱긋한 봄 향기 같은 채취와 함께 그의 온몸은 경직되곤 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체 반응에 놀랐고 화끈 달아오르는 수치심에 황급히 칠판으로 다가가 몸을 돌려세웠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중년 남자의 왕성한 성은 그의 오랜 돌싱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꿈틀거리게 하였다.   가끔은 현실에서 도망쳐 나와 어딘가에 숨죽이고 있던 그 날의 숨결들을 한 겹 한 겹 펼쳐 보게 된다. 사실 아내 유진이가 같이 살던 때의 그의 성은 지금 생각해보니 과분할 정도의 ‘혜택’을 받은 셈이다. 신혼 때도 그랬고 갈라질 무렵에도 그랬다. 강사는 밤늦게 돌아와 침대에 고꾸라지면 세상만사를 모르고 쿨쿨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새벽녘 화장실에 한번 갔다 와 잠자리에 누우면 불끈하고 금방 치켜세운 팬티를 치솟고 일어선 놈이 있었다. 그것은 아랑곳없이 그의 전신에 거미줄 같은 신경 줄을 타고 근질거리고 있었다. 그러면 그는 서슴없이 옆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는 아내를 끌어당겨 그것의 뜨거운 피를 식혀 줄 자리를 서슴없이 찾았다. 아무 준비도 없는 아내였지만 아내는 잠결에도 항상 너그럽게 그것을 받아들여 식혀 줄줄 알았다. 처음엔 자신의 그런 준비도 허락도 없는 처사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가끔 늦은 퇴근길에서도 작은 선물 하나라도 사 들고 오군 했었지만 그것이 점차 습관이 되면서 부부간에 자연히 받을 수 있는 혜택으로 묵인되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그래서 그는 한 번도 또 다른 ‘해소처’를 찾을 생각을 전혀 가져본 적 없이 온갖 정력을 학원에만 쏟아 부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아내의 얼마나 큰 아량이었으며 사랑스런 구석이었는지 휴~ 이제와 생각해보니 가슴이 아프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부부간에 그 소리 없는 교감들이 아내가 남편에 대한 또 하나의 뜨거운 사랑이었음을 왜 진즉 깨닫지 못했었을까?   간만에 세미원에 놀러갔을 때었다. 길섶에 널어진 왕바랭이속에서 우뚝서있는 부처꽃 몇 대가 보였다. “이거 꽃말 알어?” “...” “사랑의 슬픔이래. 근데 그거 알아? 혹 갈라진다고 해도 만나야 할 사람은 지구를 몇 바퀴 돌아서도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된데 운명처럼,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도 아무리 피하고 피해도 언젠가는 부딛치게 된데, 숙명처럼.” 오늘 우연히 그때 들었던 유진의 말이 유령처럼 그 눈앞의 공기속에서 부유(浮遊)한다. 누군가 그에게 은행에 다니는 혼기를 넘긴 사십 대 아가씨를 소개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작은 카페에서 그들은 만났다. 말끔한 피부와 세련된 옷맵시는 지적이면서도 냉철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긴 생머리 속에 감춰진 그의 로련한 눈길은 처음부터 남자를 당황하게 했다. 영어 학원 강사며 나이가 얼마라는 정도밖에 더 많은 정보 없이 찾아온 이 아가씨는 일단은 남자의 보기 드문 시크한 모습에 입귀를 올리며 얇은 미소를 보낸다. 그러면서도 커피를 마시며 이것저것 깐깐하게 물어왔다. 남자는 마누라와의 이혼 사유를 털어놓았고 혼자 키우고 있는 아들애를 얘기했으며 아내가 남겨놓은 빚을 갚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 이혼까지 했는데, 그 빚을 선생님이 갚아요?”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모두 친인 들이고 그 사람은 전혀 상환할 능력이 없어서.” 그는 숨김없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그 여자는 왜 그렇게 무책임하게 도망쳤어요? 짐을 언제까지 메고 가야 합니까?” 상대방은 아무 거리낌 없이 맞이할 현실을 얘기했다. 글쎄 나는 왜 이런 현실을 따져보지 않았지? 남자들의 머리는 아무래도 항상 이런 사전 ‘팸투어’ 같은 것들이 부족한 것 같다. 그저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고 그리하여 따뜻하고 안정된 작은 새 가정을 이루고 싶었던 그의 단순하고 소박한 욕망은 버벌 티의 거품처럼 사그라지고 말았다. 갈라질 때 여자는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그 당치도 않은 빚더미를 집어 던지면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어쩐 일인가? 이 난감한 현실 앞에서 몇 년 만에 만나는 여자인데도 그는 설렘도 없었고 애틋함도 없었다. 철부지인 듯 한데도 어딘가 곁에서 늘 느낄 수 있었던 유진의 에로틱함과는 너무나 다른, 여자의 흐트러짐 없는 과분한 냉철함이 싫었다. 그렇다고 그 여자를 탓하지도 않았다. 그 여자는 당연한 것을 물었을 뿐이었다. 그는 문득 당대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들이 가져야 한다는 ‘3M’-말하자면 메너, 무드, 머니 이것들 중 자기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간단히 몇 글자 전송하였다. ‘죄송합니다. 저의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행복을 빕니다.’ 침대에 누워서 탁상에 턱을 고이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하지 않던 말을 꺼냈다. “아빠, 혹 엄마 소식 알아? 우리 찾아가면 안 돼?” 그는 한참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이 복잡한 사정을 어떻게 아들에게 해답해야 할지 머릿속이 헝클어지고 말았다 동창 부친상에 적지 않은 친구들이 모였다. 그곳에 종원은 없었다. 그는 선배에게 혹시 종원의 소식을 아느냐 물었다. 생각해보니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한자리에 앉고 보니 모두 아직 50대에 걸려있고 60대를 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다사다난한 세대들이다. “그 친구 소식 아직 못 들었나? 조기 퇴직했어.” 종원의 소식을 묻자 옆 선배가 말한다. “아니, 회사에서 인정받고 잘 나갔었잖아?” “그럼 뭘 하나, 이 불경기에 감원 감축한다고 야단들인데 빵빵한 젊은 층이 밀고 들어오는데 버텨낼 수 있나?” 정말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라는 이 울타리 밖으로 도망쳐 나간 걸까? 이름 있는 조직이라는 시스 템 속에서 빛을 내던 옷을 갑자기 벗는 순간, 자신 존재의 가치와 그의 몸에 있던 틀과 위엄은 순식간에 빠져나갔고 남아있는 자존심은절친이었던 그에게도 소식을 끊고 도피와 침묵이란 숨 막히는 하우스 속으로 꽁꽁 숨게 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럼 이제 뭘 하나? 아직은 손 놓고 놀 나이가 아니잖나?” “미국 뒷바라지 하느라 모아놓은 돈은 없을 테고 퇴직연금으로 이제 뭘 시작해보려 해도 전업 내놓고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 하긴 나도 직장 그만 뒀다네. 재간이 없어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살던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그 잘난 경비직 같은 것도 50대 1의 경쟁력이라나. 더러워서 그렇다고 없는 재간에 뭘 하나 펼쳐 보기도 그렇고” “야 인마, 지금 백세시대란다 그럼 우리는 아직 중간역 밖에 안 왔다는 말인데 왜 이렇게 힘들이 빠졌어? 그러고 보니 딱 늦어진 오후 네시야. 자, 끝내기도 시작도 힘든 늦어진 오후 네시의 티타임, -허허” 누군가 불콰해진 얼굴로 술이 푹 취해 반쯤 남은 술잔을 들고 한마디 내뱉고는 남은 술잔을 쭉 비운다. 오후 네시의 게으른 햇살이 늦은 간이역의 창살을 힘없이 스치고 있다. 흐르는 하오다. 모두 할 말이 없었다. 어두워진 무드를 살릴 수 없었다. 그도 쓴 술잔을 비우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나오면서 그는 오랜만에 종원의 아내 혜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 간 거 말 안 했구나.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갔어. 그 영훈 학생 아버지가 에스코트하면서 둘 다 많이 도와주고 있는 모양이야, 일자리랑. 유진이가 하도 너에게 비밀로 해 달라 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이상해졌다. 둘 다라니? 왜 하필이면 그 둘이 같이, 그것도 비밀리에? 십 몇 년 동안 소식이 딱 끊겨 한국 어디에선가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혜라의 말을 들으니 죽음만 기다리는 것 같은 유진이를 그때 그 영훈 학생 어머니가 측은히 여겨 남편과 연락하여 그쪽에서 다시 자리 잡게 하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가정부로부터 시작하여 한인 유치원 선생으로 체면과 몸을 다 던져 버리고 억척스레 돈을 모으고 있으며 자리매김이 온정되자 한글 강사로 학원하나를 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알게 된 자기 남편도 직장에서 조기 퇴직을 당하자 아무도 모르게 유진이와 연락하여 그 근방서 작은 서비스 일거리 하나 찾아 일하고 있단다. 모두 그 학생 아빠의 덕이란다. 혜라도 아직 여기서 공부중인 딸만 아니면 당장 따라가야겠는데 왼통 불안해 못 살겠다는 것이다.   성빈 엄마… 무엇인가 울컥하고 목울대를 꽉 채웠다. 세상에 믿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두 남학생이 기타를 치고 두 여학생이 같이 소리 높여 부르던 그때의 그 열창, 그 피어나던 꿈들… 마지막까지 꿈을 저버리지 않고 무작정 달려 온 인생 50대 후반, 아, 움이 트던 봄날의 갈망과 녹음 무성했던 여름날의 열정, 지금 설익은 가을들녘엔 무엇을 남겼는가. 번잡하게 들끓던 욕망을 다 내려놓고 쉬고만 싶었다. 차갑고 혼잡한 도시 속에서 발걸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늘 마냥 주체를 못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원의 모든 것에 눈길을 쭉 돌렸다. 계단의 희미한 불빛을 등에 지고 다시 뚜벅뚜벅 아래로 내려간다. 대문을 여니 쏴 하는 비바람 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튕겨왔다.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어디론가 모두 숨 가쁘게 달음박질하고 있다. 은연중 자기도 과거와 현재라는 존재의 무게를 어깨에 메고 비안개 속에 서 있다는 것을 놀랍게 발견했고 그리고 그 속에서 또다시 뛰어야 할 자신의 환영을 보고 있는 듯 했다. 그는 가방을 머리에 이고 학원 뒤울안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허줄 한 기아 모닝 차량 앞으로 달려갔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에서 문자 들어오는 소리가 울렸다. -나 종원이다, 너무 오랜만이어 할 말이 많은데, 우선 유진이 혼자 올 수 없어서 같이 미국서 돌아왔다는 거 알려준다. 돈은 많이 벌어 돌아온 것 같은데 지금 서울대학병원에 입원 중이야. 성빈이를 데리고 와 달라고 하더라. 모든 것을 너 두 부자에게 다 주고 떠나고 싶은가 봐…   2019, 11, 15 서울에서                    
11    오후 네시 댓글:  조회:819  추천:0  2020-02-03
단편소설 오 후 네 시 류 재 순   뚜벅뚜벅…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늦은 밤 5층 건물의 적막을 깼다 두 사람의 잦은 발자국 소리가 마치도 박자가 맞지 않는 작은 드럼북 소음 같다. 앞에서 내려가는 키가 훌쩍 큰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한 남학생 뒷등의 풍뗑이 같은 감색 책가방이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에 조금씩 흔들린다. 그 뒤에, 상중키의 오십대 남자가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그만 들어가세요.” “그래 부탁한다. 이번 시험 부디 차분하게 있는 실력 잘 발휘해라. 모르는 것 있으면 언제든지 수시로 연락하고, 좋은 소식 기다릴게.” 학생은 꾸벅 인사하고 출입문을 열었다. 오십대 남자는 학생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고 또다시 뚜벅뚜벅 계단을 올라가 자신의 3층 학원 교실로 들어섰다. 문을 닫고 발걸음을 멈추니 사위가 영안실처럼 괴괴했다. 학원 강의실의 불빛이 마침내 하나의 중심체를 발견한 듯 그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벽에 걸려있는 검 녹색 칠판, 학생들의 온기를 싹 잃어버리고 숨죽이고 있는 작은 책상과 걸상들… 어디에도 생기는 찾아볼 수 없다. 쓸쓸함과 막연함이 밀물처럼 덮쳤다.   학원 영어 선생님, 그랬다. 이제 쉰하고도 여섯 고개를 넘은 고등학부 영어 과외 강사는 오늘부로 종지부를 찍을 거다. 참 빨랐다. 이렇게 강단에서 보낸 세월이 어언 30년, 기타를 치며 이범용 한명훈의 ‘꿈의 대화’를 열창하던 대학시절의 그의 풋풋한 가슴에 아직도 인생이 무엇인지 깊은 깨달음도 얻지 못한 채 50 몇 년이란 세월은 갔다.   대학 영문학과를 나온 그의 젊은 가슴엔 채색 풍선이 붕붕 떠 있었다. 이름 있는 대기업도, 콩나물 틈새 같은 좁은 희망의 골목길을 밀고 들어가려는 공무원 시험도 그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영문학은 그의 평생 취미였고 사랑이었다. 마치도 노스텔지어란 사랑의 그물에 빨려 들어간 꿈꾸는 파랑새 같았다. 과외 학습열에 한창 열기를 뿜던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눈에 불을 켜고 애들의 학원 주소지를 검색하였고 영어 학원은 또 그 많은 과외 학원 중에서도 검색 첫 코스로 주목받았다. 어느 한 영어학원에서 그를 불렀다. 파랑새는 운이 좋았다. 3년이 지나자 그는 이백여 명 학생을 수용하고 있는 이름 있는 영어학원의 스타 강사가 되었다. 월급봉투는 대기업에 들어간 동창들보다 두둑했고 자기 아이를 들어가게 해달라는 학부형들의 전화는 항상 그를 어정쩡하게 하였다. 그때는 분명 그 인생의 르네상스 시기였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도 그 돈 봉투의 금액에 큰 관심이 없었고 담뱃값과 점심값을 내놓고는 그 수익금을 신혼 생활에 애까지 키우는 젊은 아내의 통장으로 모두 들어가게 했다. 그의 젊음은 몽땅 학원 일에 불태웠다. 강단 앞에 서서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특기와 열정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이 한가지만으로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의 학원엔 서울대를 지망하는 영훈이라는 고등학생이 있었다. 모든 과목이 다 우수하지만 영어성적은 항상 뒤꼬리에 처져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영어에 취미가 없는 아들을 앞세우고 영어 학원을 찾아왔다. 다른 성적은 다 좋은데 영어 성적이 뒤져서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하였다. 그런데 찾아온 학생 어머니의 얼굴색이 말이 아니었다. 뒤에 안 일이지만 얼마 전에 위장암 수술을 했다고 했다. 학생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학생 아빠는 한국의 미국 회사에서 일하다 미국에 있는 본사로 들아가 있은지도 몇 년 잘 되었는데 아들을 빨리 미국유학을 시키려 해도 영어가 너무 떨어져 집중 보충공부를 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간절한 눈빛을 바라보며 그는 암묵적으로 그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 드려야겠다고 다짐하였다. 밤새우며 교안을 짜고 충혈된 눈으로 학생을 붙들고 일대일 교육을 진행해 나갔다. 물론 그 한 학생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느 날 학원 수업이 끝나고 개별 학생을 위해 특별 지도를 하며 다음날 교안을 짜는데 재킷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했다. 그날 결석한 영훈 학생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궁금하고 불안하던 터라 그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니?” “선생님 죄송한데 이제부터 제가 학원에 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 “왜?” “어머니가 다시 입원하셔서 학교 끝나고 바로 병원에 한 번씩 들려야 할 것 같아서요.” 어머니 병이 재발해 위태로운 상태라 외동아들은 하루에 한 번이라도 어머니를 병문안 가려 한 것이었다. 학교와 집 그리고 학원과 병원의 거리는 학생이 소화해 낼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수능시험이 코앞인데 지금 손 놓아버리면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어머니의 애절했던 눈빛이 축축한 그의 가슴속 한구석으로 집착스레 스며들었다. “알았으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 그때부터 선생님은 학원 수강이 끝나면 바로 병원 옆 커피숍으로 달려가 영훈 학생의 영어 수강을 보충해 주었다. 밤 9시가 넘어 시작한 학습은 한 시간만 해도 10시가 넘었고 집까지 차로 태워다 주고 집에 돌아오면 12시가 넘었다. 눈에 핏발이 서고 싸느런 김밥 도시락이 항상 그의 허기진 배를 채워 주었다. 그래도 지칠 줄 몰랐다. 드디어 대학수능시험이 시작되었고 초조한 기다림의 끝에 시험 결과가 나왔다.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헐레벌떡 학원까지 달려와 흥분으로 끝말을 잇지 못하는 제자 앞에서 이 파랑새 같은 강사의 날개는 힘차게 푸득이는 것을 느꼈다. 날개에 반짝이는 구슬처럼 아롱아롱 매달린 희열은 장시간의 모든 고뇌와 피로와 중압감을 순식간에 날려 버렸다. 이런 순간순간의 유혹 때문에 세상만사를 제쳐놓고 자기 한 몸을 이 학원에 다 바쳐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다행이 집안일은 아내가 다 알아서 처리했다. 파랑새는 아무 잡념없이 한 방향을 향해 날아만 가면 됐다. 밤을 새우며 교안을 짜고 고등시험 자료들을 연구하고 학생들의 수능성적 결과를 초조히 기다리는 날들의 연속으로 세월은 흘러갔다. 아내는 원망스럽게 그를 전형적인 워커홀릭이라 불렀다.   스타 강사가 된 지 몇 년 만이었던가? “당신 실력에 충분히 학원 하나 잘 꾸릴 수 있잖아요? 왜 다른 사람 밑에서 온 진을 다 빼요?” 아내의 성화다. 친인척들도 부추긴다. ‘경영’이라는 것보다는 아무 부담 없이 그저 애들을 가르치는 데만 온 정력을 쏟아 붓고 싶었던 그였건만 모든 집안일을 아내 혼자에게 맡겨놓고 있는 자신이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들어 아내의 제안이라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그마한 학원 하나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학원 창밖에 갑자기 휘휘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얼마 가지 않아 투덕투덕 난데없는 빗방울이 창문 유리를 두들겼다. 고요가 깨지고 사색의 줄을 끊어놓는다. 그러나 이 시각 그의 머리엔 집요하게 지나간 일들이 줄을 잇는 밤 거미마냥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그 선을 이어놓는다.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며 그는 계속 그때 일을 떠올렸다. 그래, 학원을 꾸리기 시작한 지 한 2년쯤 지난 뒤였을까? 어느 날 학원을 마치고 늦게 집에 돌아오니 어린 아들은 눈물방울이 마르지 않은 채 방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성빈아, 웬일이니, 엄마는?” “아빠 나 배고파” 몇 시인데 아직 저녁도 못 먹었다니. 그는 다급히 마누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하는 녹음된 기계 소리만 반복되었다. 음성 메시지를 남겨도 응답이 없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아니, 온 세상이 하얘졌다. 종잡을 수 없는 공포가 덮쳐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무슨 정신으로 아들애에게 밥 한술을 먹여줬던지 기억이 없다. 밤을 꼬박 새웠던 그에게 새벽녘에야 냉철한 무엇인가가 머리를 쳤다. 집안일에 너무 무관심했고 아내의 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어린 아들과 학원 사이에서 그는 어릿광대처럼 뛰기 시작했다. 헝클어진 머리에 초점 잃은 눈빛, 학생들의 질문에도 멍하니 인지도 떨어지는 어수선한 몸짓, 학원은 생기를 잃고 수강생 엄마들은 벌써 이상해진 학원 모습에 민감해져 있었다. 어느 날, 인천 댁- 큰 형님네 집에 사는 어머니가 올라왔다. 몰라보게 초췌해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그는 놀랬다. “어머니, 웬일이세요? “웬일? 네 꼴을 봐라!‘ “나 다 알고 왔다. 성빈 어미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냐?” 어머니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가져왔다.   한국사회의 어느 모퉁이에서는‘애견 백화점’ 건설 마케팅이라는 사람들의 상상 속의 금자탑이 돌개바람처럼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었다. 그 바람은 거센 마력으로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수십억 모아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애견들의 천국 같은 백화점을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살이에 아직은 서투른 젊고 순진한 그의 마누라도 그 환상적인 행렬에 끼어들었다. 투자한 만큼 몇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니 남편만 돈을 잘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그 돈을 몇 배로 불릴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열정이 불타올랐다. 남편이 벌어들여 오는 돈들을 다 투자 하였고 시숙, 여동생 친정 부모님 것 까지 그 현대식 피라미드식 금자탑 건설에 쏟아 넣었다. 아내는, 피보나치수열처럼 1이 3되고 3이 5되는 마법 같은 자람의 규칙이 바로 그곳에 절대 존재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거대한 설계와 꿈은 저 우주 공간 어디에선가 바람에 몰려온, 유혹을 가득담은 황홀한 구름 황궁이었다. 모든 것은 흩어지고 붕괴하기 시작했고 그 많은 사람이 투자하여 지은 몇 십억의 건물은 폐물로 되었다. 그와 함께 그들의 십여 억도 다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아내와 소식이 단절된 사이에 죄어오는 공포 속에서 그는 정말 많은 추측과 상상을 했었다. 외도? 납치? 어쩐지 이상한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경찰 문밖에서 머뭇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다 머리를 떨어뜨리고 황망히 돌아 선적도 몇 번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이런 날벼락이 집안에 떨어졌다. 어머니는 친인척들에게서 이모든 사실을 자초지종 다 알게 되었던 것이다. 누누이 사실을 다 밝힌 어머니가 푸념을 하며 무너지는 한숨을 쉬면서 나갈 때까지도 백지가 되어있는 그의 머리로서는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창에 맞은 짐승처럼 피를 흘리면서 날뛰고 싶었고 울부짖고 싶었지만 전기 방망이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몸과 마음은 지심 깊이 떨어진 듯 도저히 움직여주지 않았다.   어딘가에 가서 몸을 숨겼던 아내가 결국은 집에 들어왔다. 물독에 빠졌던 생쥐 모양의 아내, 그 모습은 너무나 참혹했다. 동그마니 잔뜩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아내의 꼬부라진 새우등 같은 뒷등을 바라 보늬라니 귀싸대기라도 후려치며 함성을 터뜨릴 것 같던 분노의 불길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고 저걸 어쩌나 하는 원한과 측은함이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폭풍전야를 예고하는 질식할 것 같은 침묵만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아내의 꾹 다문 입술이 열렸다. 너무나 뜻밖의 말이 뱉어졌다. “우리 이혼해요, 나는 한 푼 돈도 없고 또 돈 벌 능력도 없으니 아들 성빈은 당신이 키워요.” 얼마나 당돌한 말이었던가. 왜, 왜 그런 일을 저질렀냐고 그렇게 따지고 싶고 묻고 싶은 말이 산처럼 쌓였는데 그의 입에서 외려 이런 되알진 말이 나오다니, 더 이상의 사죄도 해석도 없었다. 남자는 바라던 일이였지만, 그리고 이미 예고된 일이었지만 집을 망쳐놓고 들어온 아내의 입에서 이런 당찬, 뻔뻔한 말이 나오는 순간 손에 쥐어져 있던 휴대폰이 ‘팡!’하고 둘러메쳐지며 유리가 깨지고 각들이 뜯어져 나갔다. 자신도 이게 어떤 분노의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전번에 어머니가 오셨을 때 어머니가 모든 것을 결정 지어 놓고 간 걸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을까? “ 당장 이혼해라. 온 집안을 이렇게 풍비박산을 만들어 놨으니 집안사람들 눈에서 성빈 어미가 없어지지 않으면 우린 더 머리를 들 수 없게 될 거다. 그리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간 후에라도 다시 합칠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 내가 용서 못 할 것이다.” 우두망석 멍청하니 앉아 있는 아들을 보고 어머니가 정신 차리라며 최후통첩 했었다. 불가사의한 일은 이렇게 터지고 말았다. 남자는 항상 정직한 삶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많은 돈도 욕심낸 적 없었으며 그저 학원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몰 붓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그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한 유일한 그의 귀숙 처인 보금자리가 그렇게 무너져 버리고 있는 줄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어머니께서 내린 그런 강경한 결정을 자신으로선 반박할 이유와 힘이 전혀 없음에 가슴이 터졌다. 하지만 아무리 분하고 미치겠지만, 당신은 한 번도 이 가정에 신경 쓰기나 했나요. 하며 무관심했던 남편을 향해 악을 쓰며 소리라도 치든지 아니면 눈물을 흘리며 그의 발목을 붙들고 성빈을 봐서라도 제발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하던지, 여리고 어리석고 솔직한 아내의 모습을 남자는 몇 번이나 상상 했는지 모른다. 아내가 진짜 이렇게 소리도 치면서 빌고 나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머니 모르게 고민에 시달리기도 했던 그였다. 그런데 모든 세상사를 다 읽었다는 듯이 아내는 강인해 있었고 굳어져 있었으며 냉각되어 있었다. 눈물도 사죄도 구걸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옆에서 울고 있는 성빈이만은 부둥켜안고 전률하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애가 깊이 잠든 새벽에 짐 몇 가지를 챙겨 그렇게 홀연히 떠나가 버렸다. 한때의 어리석음과 허망한 욕심 때문에 친인척들을 사분오열시키고 경제적으로 풍지 박산을 만들어 놓은.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는 자신에 대한 징벌이었을까, 도주였을까? 상황을 듣고 난 법원에서의 이혼 절차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줄 몰랐다. 이혼 신청을 했지만, 그 결과가 내려오는 순간 텅 빈 머리와 허망한 가슴은 도저히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부부라는 인연은 도대체 무엇일까? 파랑새의 한쪽 날개 죽지는 피흘리며 떨어져 나갔고 어두운 곳에서만 푸득이는 밤 박쥐 발톱 같은 것이 그 가슴 고통의 우주속에서 갉음질을 하고 있었다. 얼마간 방황의 날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떠나간 마누라도 그렇고 자신도 그렇고 친인척과 세인들에게 ‘사기꾼’이라는 낙인이 찍혀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무엇이 가슴을 채웠다. 형제 가족들의 빚을 온 힘을 다하여 자신이 최대한으로 꼭 갚아 나가리라 결심했다. 밤과 낮이 따로 없는 학원 강사의 생활은 기어코 이 빚들을 갚아야 한다는 그의 악착스러운 집념 속에서 무겁게 힘겹게 지탱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아파트를 팔고 아들과 함께 옥탑방 셋집으로 이사했다. 조금이라도 빚을 빨리 갚기 위해서였다. 집안일로 학원 경영에 많은 차질을 가져왔고 떠나간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는 다시 수습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온 정력을 학원에 올인했다. 열 몇 살 된 아들도 벌써 철이 드는지 해거름녘이나 밤늦게 돌아오는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않고 저녁 찬밥도 군소리 없이 혼자 먹고 먼저 자리에 누워 잠들 곤 했다. 그러나 그는 가끔 어린 아들이 꿈속에서 엄마를 부르며 가느다랗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었다. 엄마들이 참석하는 학교 모임에도 빈자리를 내어줘야만 하는 슬픈 일들을 어린 아들이 한마디도 내뱉지 않는 것이 더욱 참을 수 없이 가슴 아팠다.   하루는 그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의 고향 불알친구였다 어려서부터 물장구를 치면서 같이 커 왔고 같이 상경하여 대학 공부했다. 아니, 두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었다. 친구의 마누라와 아들 성빈 엄마다. 남자들 두 친구가 어려서부터 똑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탁구 짝꿍이며 기타반주 애호가였다면. 그 두 여자애도 항상 손을 마주잡고 다니며 두 남학생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으며 두근두근 뛰고 있는 작은 가슴을 두 팔로 막으며 비밀스런 사춘기 얘기를 밤을 새우며 했었다. 익살스런 얘기 속엔 늘 자신들의 눈동자에 박힌 그 두 남학생의 하루하루의 신비한‘시추에이션’이 들어 있곤 했다. 같이 상경하여 대학을 졸업할 때도 휴일이면 그들 넷은 학교 캠퍼스를 멀리 떠나 저녁노을이 잔잔한 푸른 언덕과 한강 둔치에 앉아 ‘꿈의 대화’를 부르곤 했다. … … 땅거미 내려앉아 어두운 거리에 가만히 너에게 나의 꿈 들려주네 너의 마음 나를 주고 나의 그것 너를 주니 우리의 세상을 둘이서 만들자 … … 졸업을 앞둔, 쫑파티가 끝난 어느 날, 친구가 그에게 말했다. “유진이가 널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 “응? 유진이?” “그래 너 영어 수준이 장난이 아니라며 영어로 대화할 때 너무 멋지대” 조용하고 말이 적으며 늘 새물새물 웃는 눈매를 가지고 있는 작고 가냘픈 몸매를 가지고 있는 유진이다. 그러나 의외로 남의 말에 솔깃하기 좋아했고 사람을 바라보는 크고 맑은 눈은 착한 양처럼 티 없이 순진해 보였다. 사실 오래전부터 깊이를 숨겨 놓은듯 한 조용한 모습과 청순한 눈빛은 그의 마음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고 있었다. 사실 두 남자애의 성격은 완연 달랐다. 영어를 잘 하는 이 친구는 조금은 우직스러울 정도로 하나에 묻히면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릴 줄 모르는 단순하고 정직한 반면 저쪽 종원이란 친구는 일찍이 수학 천재란 말까지 들을 정도로 머리 회전이 빠르고 순발력도 강하며 변하는 환경에 적응력도 강했다. “어제 나도 혜나 불러내어 데이트 좀 했어. 향후 우리들의 취업 얘기랑…” 친구가 불쑥 내뱉는 말이다. 항상 큰소리로 웃기 좋아하고 익살스러우며 주견을 숨길 줄 모르는 혜라의 모습은 나름의 또 하나의 매력이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종원친구가 혜라의 의사 분명하고 활달한 성격을 좋아하며 썸을 타고 있는 줄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유진은 성빈의 엄마로 되었고 혜라는 친구 종원의 마누라로 되었다. 만사를 제치고 하나의 취미와 신념에 올인하며 영어 학원에 영어강사로 들어갈 때 그 수학머리는 용케도 그 콩나물 틈 속 같은 경쟁력을 뚫고 이름있는 S 회사에 들어갔다. 영어 학습열이 붐을 이루고 학원학습을 하나의 필수 코스로 알고 있던 그 나날에 영어강사의 수입은 유명회사에 들어간 수학머리를 훨씬 초과 했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동안 서로에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두 친구는 서울 공덕에 있는 ‘신라스테이’에서 맥주잔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당신은 영어 학원에서 엄청 큰 수입을 올렸었다며? “그거? 우리 집 일...자네도 소문 다 알고 있잖아…” 수학머리는 무슨 말을 더 물으려 입술을 움찔거리다 맥주 한잔만 쭉 들이켰다. 그리곤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나도 회사에서 오래 못 갈 것 같아, 워낙 잘 나가는 젊은 층이 밀고 올라오니, 나 과장으로 승급하던 해 아들놈 미국 유학 보낸 거 알지? 아직도 전셋집 신세 지고 있다네. 다시 방법을 생각 해 봐야겠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종원에게는 이름 있는 큰 회사의 금베지 광택이 어디에선가 빛나고 있음을 강사는 마주 앉은 공기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어떤가, 그랬다. 어느 날 부터인가 학생 수가 부쩍 줄기 시작한 그의 학원도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설렁해지는 냉기를 막을 수 없었고 그래서 안간힘을 쓰며 고민 중이던 터였다. 대한민국 엄마들의 자녀 학원 열의는 다 어디로 갔나? 이제 겨우 절반 빚밖에 갚지 못했다. 저성장, 저출산- 매스컴에서 자주 뜨는 문구들이다. “누가 소개를 하는데 저쪽 서울시 서남권 쪽에는 이쪽 서울 중구보다 월세가 훨씬 싸다는데 나 어떻게 그쪽으로 자그마한 학원자리 하나 알아볼까하는 중이야” 낯선 곳이다. “그쪽의 학습 열기는 어떻데?” “뭐가 어떻겠어, 다 그렇지. 그나마 집세가 많이 싸다니 웬만하면 살아남을 거 아닌가?”   그는 원해서라기보다 쫓기다시피 신도림 부근의 어느 아파트 단지 앞에 학원자리를 마련했다. 학군이 좀 되는 곳이어서 희망을 걸었다. 수중에 가진 게 없는 그에게는 이것이 자신의 몸체를 줄이고 소비를 줄이는 최적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알심 들여 학원을 꾸려놓고 학비 수준을 줄여 놨건만 학원을 찾아온 학생은 고작 십여 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   “나도 벌써 흰 머리 새치가 생기는 것 같아. 강단에 나서기가 어떤 땐…” 그랬다. 근방의 학원들을 보면 모두 이삼십 대 혈기 왕성한 젊은 강사들이었다. 자신에게 저런 모습은 이미 기억 저편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쎔 숙제 만땅이네요.” “우리 꼭 스카이(SKY) 안가도 돼요” 가끔은 낯설기만 했다. 교사의 존엄으로 리액션 같은 것을 날리고 싶기도 했지만 어쩐지 자신이 스마트하지 못하고 빈티지같은 자괴감 같은 것 때문에 학원의 이 오십 대 후반의 선생님은 포장하려 애썼고 뒤떨어지지 않으려 분발했다. 투 잡스라도 해야하나? 줄어드는 학생 수 때문에 이런 생각도 불쑥 들 때가 있었다.   그는 또다시 잠깐 사색을 멈추고 그칠 줄 모르는 빗줄기를 막아 버티고 있는 창문 유리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유리창들이 마치 아픔을 견디고 있는 자기 같았다. 머릿속 밤 거미는 계속 사색의 망줄을 이어간다.   “쎔, 저 미국 유학가게 됐어요!” 어느 주말이었다. 미국 유학가기 위해 특수 강습을 받았던 영훈학생이 찾아왔다. 그때 마침 종원 친구도 여유가 생겼다며 치맥 한잔 하자며 로비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야 잘됐다. 근데 어머니 병은 어떻게 됐냐?” “미국 둬 번 들어가서 치료 받으시고 지금은 많이 나았어요. 이번에 같이 들어가려구요. 아버지 퇴직할 때까지는 아무래도 거기서 계속 치료받으며 계시게 될 것 같아요.” 유학가게 된 일도 경사였고 어머님 병이 호전되었다는 소식 또한 너무 반가운 소식이었다. “따봉! 봉주르!”   셋은 잔을 부딪치며 축배를 들었다. ‘그런데 영훈 학생, 미국가면 부디 우리에게 가끔씩 소식 전하는 거 잊지 말라고, 아참, 내 아들도 미국 있는데 서로 연락도 하고.” 종원은 재빠르게 영훈 학생 아빠의 연락처까지 주고받기에 분주했다. 학생은 간단히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그의 영어 선생님이 문밖으로 같이 나왔다. “선생님 집 얘기 다 들었어요. 우리 어머니도 두 분이 갈라지셨다는 소식에 많이 마음 아파하시며 그 아주머니와 연락 하는 것 같았어요.” 사실 그 영훈 어머니가 병원 입원 중이였을 때 학생의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시는 걸 알고 아내를 설복시켜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며 병수발을 들게 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영훈 학생의 어머니께서 떠나간 자기 마누라와 연락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랬다. 그리고 많은 궁금함이 치솟아 올랐다. 그러나 학생에게 더 무엇을 묻고 싶지 않았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두 친구는 학생이 떠난 후 치킨과 맥주를 앞에 놓고 대학 문을 나설 때의 꿈을 이야기했고 학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겪었던 희열과 번민을 주고받았으며 털어놓고 싶지 않은 가정사를 얘기했다. 가정사, 그 아픈 얘기를 왜 꺼냈을까? 아들 성빈이는 이 홀아비 아빠 손에서 13년을 컸다. 엄마의 따뜻하고 애절한 사랑의 햇볕이 결핍한 아들애의 성장을 지켜보는 그의 가슴엔 항상 녹지 않는 음지의 그늘이 깊숙이 뿌리를 박고 있었다. 가끔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그늘진 얼굴을 보며 이혼은 정말 옳은 일이였을까 하고 판단할 수 없는 사색에 잠기곤 한다. 얼마 전 그는 중구의 충무로 지하철 8번 출구를 나오며 걷노라니 왼쪽 길옆에 줄지어 늘어선 ‘애견백화점’건물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펫하우스’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 집 막내둥이들’ ‘동물들의 왈츠’ 참 간판 이름들도 다양하였다. 정말 뜻밖에 이런 매점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세상은 첨단을 향해 달리는데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은 커가기만 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또 다른 향수를 찾는다. 십몇 년 전에 누군가는 이런 미래를 확신하고 투자를 했지만 지금 같은 붐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선 사람들은 인생을 말아버렸다. 성빈이 엄마가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세상 흐름의 타이밍을 잘 못 맞춘 사람들은 널뛰듯 흥하고 망했다. 성빈이 엄마는 지금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사실 40대 초반에 돌싱이 된 영어강사, ㅡ그는 꽤 멋진 남자였다. 이마를 덮는 숱 많은 머리와 길게 쭉 뻗은 두 다리를 가진 꾀 훤칠한 키에 우뚝 솟은 코 등 위에 얹힌 안성 맞춤한 안경, 그 속에 침묵에 잠겨 있는 조용한 눈빛은 주위의 눈길 끌기에 충분하였다. 그를 보는 사람들은 적어도 십 년 정도까지 더 젊게 넘겨짚곤 했다. 그의 형편이 어려운 줄 알면서도 그의 사람 됨됨을 잘 아는 학부모들은 이 젊고 바르고 고독한 선생님에게 짝을 무어 주려 여기저기서 혼사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에게는 확실히 아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고 잠자리를 펴주는 여인이 필요했고 학원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들어설 때 따뜻한 불빛이 집안에서 흘러나오길 수도 없이 갈망해 봤었다. 그것은 그의 가장 소박한 꿈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학원 일에만 몰입했던 그는 한 번도 레스토랑이나 룸 같은 곳을 들어가 본 적 없으며 노래방 도우미들의 추파를 가슴에 새겨본 적도 없었다. 웃음 날리며 지나가는 뭇 여인들에게 한가하게 눈요기를 할 사이도 없이 총총걸음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바보였을까, 멍청이였을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버리면 이렇게 쳇바퀴 돌 듯하고 생활에 푹 파묻혀 버리게 되는 걸까?   그런데 아내가 떠난 그 이후의 생활은 좀 달랐다. 아무리 힘든 나날이어도, 아무리 생존 의식주에 정신없이 쫓기는 나날이어도 40대 중반이었던 그에게는 자신을 속일 수 없는 젊음의 욕망이 꿈틀거리며 그를 무시로 괴롭힐 때가 있었다. 더운 여름날 고등학부 여학생들이 팬티를 겨우 가릴 정도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선생님에게 다가와 팔을 붙들고 새물새물 웃으며 이것저것 끊임없는 질문과 대화를 할 때면 싱긋한 봄 향기 같은 채취와 함께 그의 온몸은 경직되곤 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체 반응에 놀랐고 화끈 달아오르는 수치심에 황급히 칠판으로 다가가 몸을 돌려세웠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중년 남자의 왕성한 성은 그의 오랜 돌싱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꿈틀거리게 하였다.   가끔은 현실에서 도망쳐 나와 어딘가에 숨죽이고 있던 그 날의 숨결들을 한 겹 한 겹 펼쳐 보게 된다. 사실 아내 유진이가 같이 살던 때의 그의 성은 지금 생각해보니 과분할 정도의 ‘혜택’을 받은 셈이다. 신혼 때도 그랬고 갈라질 무렵에도 그랬다. 강사는 밤늦게 돌아와 침대에 고꾸라지면 세상만사를 모르고 쿨쿨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새벽녘 화장실에 한번 갔다 와 잠자리에 누우면 불끈하고 금방 치켜세운 팬티를 치솟고 일어선 놈이 있었다. 그것은 아랑곳없이 그의 전신에 거미줄 같은 신경 줄을 타고 근질거리고 있었다. 그러면 그는 서슴없이 옆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는 아내를 끌어당겨 그것의 뜨거운 피를 식혀 줄 자리를 서슴없이 찾았다. 아무 준비도 없는 아내였지만 아내는 잠결에도 항상 너그럽게 그것을 받아들여 식혀 줄줄 알았다. 처음엔 자신의 그런 준비도 허락도 없는 처사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가끔 늦은 퇴근길에서도 작은 선물 하나라도 사 들고 오군 했었지만 그것이 점차 습관이 되면서 부부간에 자연히 받을 수 있는 혜택으로 묵인되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그래서 그는 한 번도 또 다른 ‘해소처’를 찾을 생각을 전혀 가져본 적 없이 온갖 정력을 학원에만 쏟아 부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아내의 얼마나 큰 아량이었으며 사랑스런 구석이었는지 휴~ 이제와 생각해보니 가슴이 아프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부부간에 그 소리 없는 교감들이 아내가 남편에 대한 또 하나의 뜨거운 사랑이었음을 왜 진즉 깨닫지 못했었을까?   간만에 세미원에 놀러갔을 때었다. 길섶에 널어진 왕바랭이속에서 우뚝서있는 부처꽃 몇 대가 보였다. “이거 꽃말 알어?” “...” “사랑의 슬픔이래. 근데 그거 알아? 혹 갈라진다고 해도 만나야 할 사람은 지구를 몇 바퀴 돌아서도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된데 운명처럼,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도 아무리 피하고 피해도 언젠가는 부딛치게 된데, 숙명처럼.” 오늘 우연히 그때 들었던 유진의 말이 유령처럼 그 눈앞의 공기속에서 부유(浮遊)한다. 누군가 그에게 은행에 다니는 혼기를 넘긴 사십 대 아가씨를 소개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작은 카페에서 그들은 만났다. 말끔한 피부와 세련된 옷맵시는 지적이면서도 냉철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긴 생머리 속에 감춰진 그의 로련한 눈길은 처음부터 남자를 당황하게 했다. 영어 학원 강사며 나이가 얼마라는 정도밖에 더 많은 정보 없이 찾아온 이 아가씨는 일단은 남자의 보기 드문 시크한 모습에 입귀를 올리며 얇은 미소를 보낸다. 그러면서도 커피를 마시며 이것저것 깐깐하게 물어왔다. 남자는 마누라와의 이혼 사유를 털어놓았고 혼자 키우고 있는 아들애를 얘기했으며 아내가 남겨놓은 빚을 갚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 이혼까지 했는데, 그 빚을 선생님이 갚아요?”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모두 친인 들이고 그 사람은 전혀 상환할 능력이 없어서.” 그는 숨김없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그 여자는 왜 그렇게 무책임하게 도망쳤어요? 짐을 언제까지 메고 가야 합니까?” 상대방은 아무 거리낌 없이 맞이할 현실을 얘기했다. 글쎄 나는 왜 이런 현실을 따져보지 않았지? 남자들의 머리는 아무래도 항상 이런 사전 ‘팸투어’ 같은 것들이 부족한 것 같다. 그저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고 그리하여 따뜻하고 안정된 작은 새 가정을 이루고 싶었던 그의 단순하고 소박한 욕망은 버벌 티의 거품처럼 사그라지고 말았다. 갈라질 때 여자는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그 당치도 않은 빚더미를 집어 던지면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어쩐 일인가? 이 난감한 현실 앞에서 몇 년 만에 만나는 여자인데도 그는 설렘도 없었고 애틋함도 없었다. 철부지인 듯 한데도 어딘가 곁에서 늘 느낄 수 있었던 유진의 에로틱함과는 너무나 다른, 여자의 흐트러짐 없는 과분한 냉철함이 싫었다. 그렇다고 그 여자를 탓하지도 않았다. 그 여자는 당연한 것을 물었을 뿐이었다. 그는 문득 당대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들이 가져야 한다는 ‘3M’-말하자면 메너, 무드, 머니 이것들 중 자기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간단히 몇 글자 전송하였다. ‘죄송합니다. 저의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행복을 빕니다.’ 침대에 누워서 탁상에 턱을 고이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하지 않던 말을 꺼냈다. “아빠, 혹 엄마 소식 알아? 우리 찾아가면 안 돼?” 그는 한참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이 복잡한 사정을 어떻게 아들에게 해답해야 할지 머릿속이 헝클어지고 말았다 동창 부친상에 적지 않은 친구들이 모였다. 그곳에 종원은 없었다. 그는 선배에게 혹시 종원의 소식을 아느냐 물었다. 생각해보니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한자리에 앉고 보니 모두 아직 50대에 걸려있고 60대를 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다사다난한 세대들이다. “그 친구 소식 아직 못 들었나? 조기 퇴직했어.” 종원의 소식을 묻자 옆 선배가 말한다. “아니, 회사에서 인정받고 잘 나갔었잖아?” “그럼 뭘 하나, 이 불경기에 감원 감축한다고 야단들인데 빵빵한 젊은 층이 밀고 들어오는데 버텨낼 수 있나?” 정말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라는 이 울타리 밖으로 도망쳐 나간 걸까? 이름 있는 조직이라는 시스 템 속에서 빛을 내던 옷을 갑자기 벗는 순간, 자신 존재의 가치와 그의 몸에 있던 틀과 위엄은 순식간에 빠져나갔고 남아있는 자존심은절친이었던 그에게도 소식을 끊고 도피와 침묵이란 숨 막히는 하우스 속으로 꽁꽁 숨게 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럼 이제 뭘 하나? 아직은 손 놓고 놀 나이가 아니잖나?” “미국 뒷바라지 하느라 모아놓은 돈은 없을 테고 퇴직연금으로 이제 뭘 시작해보려 해도 전업 내놓고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 하긴 나도 직장 그만 뒀다네. 재간이 없어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살던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그 잘난 경비직 같은 것도 50대 1의 경쟁력이라나. 더러워서 그렇다고 없는 재간에 뭘 하나 펼쳐 보기도 그렇고” “야 인마, 지금 백세시대란다 그럼 우리는 아직 중간역 밖에 안 왔다는 말인데 왜 이렇게 힘들이 빠졌어? 그러고 보니 딱 늦어진 오후 네시야. 자, 끝내기도 시작도 힘든 늦어진 오후 네시의 티타임, -허허” 누군가 불콰해진 얼굴로 술이 푹 취해 반쯤 남은 술잔을 들고 한마디 내뱉고는 남은 술잔을 쭉 비운다. 오후 네시의 게으른 햇살이 늦은 간이역의 창살을 힘없이 스치고 있다. 흐르는 하오다. 모두 할 말이 없었다. 어두워진 무드를 살릴 수 없었다. 그도 쓴 술잔을 비우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나오면서 그는 오랜만에 종원의 아내 혜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 간 거 말 안 했구나.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갔어. 그 영훈 학생 아버지가 에스코트하면서 둘 다 많이 도와주고 있는 모양이야, 일자리랑. 유진이가 하도 너에게 비밀로 해 달라 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이상해졌다. 둘 다라니? 왜 하필이면 그 둘이 같이, 그것도 비밀리에? 십 몇 년 동안 소식이 딱 끊겨 한국 어디에선가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혜라의 말을 들으니 죽음만 기다리는 것 같은 유진이를 그때 그 영훈 학생 어머니가 측은히 여겨 남편과 연락하여 그쪽에서 다시 자리 잡게 하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가정부로부터 시작하여 한인 유치원 선생으로 체면과 몸을 다 던져 버리고 억척스레 돈을 모으고 있으며 자리매김이 온정되자 한글 강사로 학원하나를 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알게 된 자기 남편도 직장에서 조기 퇴직을 당하자 아무도 모르게 유진이와 연락하여 그 근방서 작은 서비스 일거리 하나 찾아 일하고 있단다. 모두 그 학생 아빠의 덕이란다. 혜라도 아직 여기서 공부중인 딸만 아니면 당장 따라가야겠는데 왼통 불안해 못 살겠다는 것이다.   성빈 엄마… 무엇인가 울컥하고 목울대를 꽉 채웠다. 세상에 믿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두 남학생이 기타를 치고 두 여학생이 같이 소리 높여 부르던 그때의 그 열창, 그 피어나던 꿈들… 마지막까지 꿈을 저버리지 않고 무작정 달려 온 인생 50대 후반, 아, 움이 트던 봄날의 갈망과 녹음 무성했던 여름날의 열정, 지금 설익은 가을들녘엔 무엇을 남겼는가. 번잡하게 들끓던 욕망을 다 내려놓고 쉬고만 싶었다. 차갑고 혼잡한 도시 속에서 발걸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늘 마냥 주체를 못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원의 모든 것에 눈길을 쭉 돌렸다. 계단의 희미한 불빛을 등에 지고 다시 뚜벅뚜벅 아래로 내려간다. 대문을 여니 쏴 하는 비바람 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튕겨왔다.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어디론가 모두 숨 가쁘게 달음박질하고 있다. 은연중 자기도 과거와 현재라는 존재의 무게를 어깨에 메고 비안개 속에 서 있다는 것을 놀랍게 발견했고 그리고 그 속에서 또다시 뛰어야 할 자신의 환영을 보고 있는 듯 했다. 그는 가방을 머리에 이고 학원 뒤울안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허줄 한 기아 모닝 차량 앞으로 달려갔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에서 문자 들어오는 소리가 울렸다. -나 종원이다, 너무 오랜만이어 할 말이 많은데, 우선 유진이 혼자 올 수 없어서 같이 미국서 돌아왔다는 거 알려준다. 돈은 많이 벌어 돌아온 것 같은데 지금 서울대학병원에 입원 중이야. 성빈이를 데리고 와 달라고 하더라. 모든 것을 너 두 부자에게 다 주고 떠나고 싶은가 봐…   2019, 11, 15 서울에서                    
10    흐르는 하오 댓글:  조회:943  추천:0  2019-12-02
단편소설 흐 르 는 하 오(下午) (개정판) 류 재 순   뚜벅뚜벅…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늦은 밤 5층 건물의 적막을 깼다. 절주가 맞지 않는 두 사람 발자국 소리가 엇박자로 엉켰다. 앞에서 내려가는 키가 훌쩍 큰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한 남학생 뒷등의 감색 책가방이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에 조금씩 흔들린다. 그 뒤에, 상중키의 오십대 남자가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그만 들어가세요.” “그래 부탁한다. 이번 시험 부디 차분하게 있는 실력 잘 발휘해라. 모르는 것 있으면 언제든지 수시로 연락하고, 좋은 소식 기다릴게.” 학생은 꾸벅 인사하고 출입문을 열었다. 오십대 남자는 학생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고 또다시 뚜벅뚜벅 계단을 올라가 자신의 3층 학원 교실로 들어섰다. 문을 닫고 발걸음을 멈추니 사위가 영안실처럼 괴괴했다. 학원 강의실의 불빛이 마침내 하나의 중심체를 발견한 듯 그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벽에 걸려있는 검 녹색 칠판, 학생들의 온기를 싹 잃어버리고 숨죽이고 있는 작은 책상과 걸상들… 어디에도 생기는 찾아볼 수 없다. 쓸쓸함과 막연함이 밀물처럼 덮쳤다.   학원 영어 선생님, 그랬다. 이제 쉰하고도 여섯 고개를 넘은 고등학부 영어 과외 강사는 오늘부로 종지부를 찍을 거다. 참 빨랐다. 이렇게 강단에서 보낸 세월이 어언 30년, 대학 문을 나서 사회에 발 들여 놓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그리 흘렀다. 기타를 치며 이범용 한명훈의 ‘꿈의 대화’를 열창하던 그의 풋풋한 가슴에 아직도 인생이 무엇인지 깊은 깨달음도 얻지 못한 채 50 몇 년이란 세월은 갔다.   대학 영문학과를 나온 그의 젊은 가슴엔 풍선 같은 꿈이 붕붕 떠 있었다. 이름 있는 대기업도, 콩나물 틈새 같은 좁은 희망의 골목길을 밀고 들어가려는 공무원 시험도 그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영문학은 그의 평생 취미였고 사랑이었다. 과외 학습열에 한창 열기를 뿜던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눈에 불을 켜고 애들의 학원 주소지를 검색하였고 영어 학원은 또 그 많은 과외 학원 중에서도 검색 첫 코스로 주목받았다. 어느 한 영어학원에서 그를 불렀다. 3년이 지나자 그는 이백여 명 학생을 수용하고 있는 이름 있는 영어학원의 스타 강사가 되었다. 월급봉투는 대기업에 들어간 동창들보다 두둑했고 자기 아이를 들어가게 해달라는 학부형들의 전화는 항상 그를 어정쩡하게 하였다. 그때는 분명 그의 인생의 르네상스 시기였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도 그 돈 봉투의 금액에 큰 관심이 없었고 담뱃값과 점심값을 내놓고는 그 수익금을 신혼 생활에 애까지 키우는 젊은 아내의 통장으로 모두 들어가게 했다. 그의 젊음은 몽땅 학원 일에 불태웠다. 강단 앞에 서서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특기와 열정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이 한가지만으로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의 학원엔 서울대를 지망하는 고등학생이 있었다. 모든 과목이 다 우수하지만 영어성적은 항상 뒤꼬리에 처져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영어에 취미가 없는 아들을 앞세우고 영어 학원을 찾아왔다. 다른 성적은 다 좋은데 영어 성적이 뒤져서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하였다. 그런데 찾아온 학생 어머니의 얼굴색이 말이 아니었다. 뒤에 안 일이지만 얼마 전에 위장암 수술을 했다고 했다. 영훈이라는 학생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학생 아빠는 한국의 미국 회사에서 일하다 미국에 있는 본사로 들아가 있은지도 몇 년 잘 되었는데 아들을 빨리 미국유학을 시키려 해도 영어가 너무 떨어져 집중 보충공부를 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간절한 눈빛을 바라보며 그는 꼭 이 학생을 잘 가르쳐 그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 드려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는 밤새우며 교안을 짜고 충혈된 눈으로 학생을 붙들고 일대일 교육을 진행해 나갔다. 물론 그 한 학생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느 날 학원 수업이 끝나고 개별 학생을 위해 특별 지도를 하며 다음날 교안을 짜는데 재킷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했다. 그날 결석한 영훈 학생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궁금하고 불안하던 터라 그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니?” “선생님 죄송한데 이제부터 제가 학원에 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 “왜?” “어머니가 다시 입원하셔서 학교 끝나고 바로 병원에 한 번씩 들려야 할 것 같아서요.” 어머니 병이 재발해 위태로운 상태라 외동아들은 하루에 한 번이라도 어머니를 병문안 가려 한 것이었다. 학교와 집 그리고 학원과 병원의 거리는 학생이 소화해 낼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수능시험이 코앞인데 지금 손 놓아버리면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그때 그 어머니의 애절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알았으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 그때부터 선생님은 학원 수강이 끝나면 바로 병원 옆 커피숍으로 달려가 영훈 학생의 영어 수강을 보충해 주었다. 밤 9시가 넘어 시작한 학습은 한 시간만 해도 10시가 넘었고 집까지 차로 태워다 주고 집에 돌아오면 12시가 넘었다. 눈에 핏발이 서고 싸느런 김밥 도시락이 항상 그의 허기진 배를 채워 주었다. 그래도 지칠 줄 몰랐다. 드디어 대학수능시험이 시작되었고 초조한 기다림의 끝에 시험 결과가 나왔다.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헐레벌떡 학원까지 달려와 흥분으로 끝말을 잇지 못하는 제자 앞에서 그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말없이 학생을 부둥켜안았다. 그때 솟구친 희열은 장시간의 모든 고뇌와 피로와 중압감을 순식간에 날려 버렸다. 이런 순간순간의 유혹 때문에 세상만사를 제쳐놓고 자기 한 몸을 이 학원에 다 바쳐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집안일은 아내가 다 알아서 처리하니 그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으랴. 밤을 새우며 교안을 짜고 고등시험 자료들을 연구하고 학생들의 수능성적 결과를 초조히 기다리는 날들의 연속으로 세월은 흘러갔다. 아내는 원망스럽게 그를 전형적인 워커홀릭이라 불렀다.   스타 강사가 된 지 몇 년 만이었던가? “당신 실력에 충분히 학원 하나 잘 꾸릴 수 있잖아요? 왜 다른 사람 밑에서 온 진을 다 빼요?” 아내의 성화다. 친인척들도 부추긴다. ‘경영’이라는 것보다는 아무 부담 없이 그저 애들을 가르치는 데만 온 정력을 쏟아 붓고 싶었던 그였건만 모든 집안일을 아내 혼자에게 맡겨놓고 있는 자신이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들어 아내의 제안이라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그마한 학원 하나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학원 창밖에 갑자기 휘휘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얼마 가지 않아 투덕투덕 난데없는 빗방울이 창문 유리를 두들겼다. 고요가 깨지고 사색의 줄을 끊어놓는다. 그러나 이 시각 그의 머리엔 집요하게 지나간 일들이 줄을 잇는 밤 거미마냥 집요하게 머릿속에서 그 선을 이어놓는다.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며 그는 계속 그때 일을 떠올렸다. 그래, 학원을 꾸리기 시작한 지 한 2년쯤 지난 뒤였을까? 어느 날 학원을 마치고 늦게 집에 돌아오니 어린 아들은 눈물방울이 마르지 않은 채 방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성빈아, 웬일이니, 엄마는?” “아빠 나 배고파” 몇 시인데 아직 저녁도 못 먹었다니. 그는 다급히 마누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하는 녹음된 기계 소리만 반복되었다. 음성 메시지를 남겨도 응답이 없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종잡을 수 없는 공포가 덮쳐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무슨 정신으로 아들애에게 밥 한술을 먹여줬던지 기억이 없다. 밤을 꼬박 새웠던 그에게 새벽녘에야 냉철한 무엇인가가 머리를 쳤다. 집안일에 너무 무관심했고 아내의 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어린 아들과 학원 사이에서 그는 어릿광대처럼 뛰기 시작했다. 헝클어진 머리에 초점 잃은 눈빛, 학생들의 질문에도 멍하니 인지도 떨어지는 어수선한 몸짓, 학원은 생기를 잃고 수강생 엄마들은 벌써 이상해진 학원 모습에 민감해져 있었다. 어느 날, 인천 큰 형님네 집에 사시는 어머니가 올라왔다. 몰라보게 초췌해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그는 놀랬다. “어머니, 웬일이세요?” “나 다 알고 왔다. 성빈 어미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냐?” 어머니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가져왔다.   한국사회의 어느 모퉁이에서는‘애견 백화점’ 건설 마케팅이라는 사람들의 상상 속의 금자탑이 돌개바람처럼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었다. 그 바람은 거센 마력으로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수십억 모아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애견들의 천국 같은 백화점을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살이에 아직은 서투른 젊고 순진한 그의 마누라도 그 환상적인 행렬에 끼어들었다. 투자한 만큼 몇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니 남편만 돈을 잘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그 돈을 몇 배로 불릴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열정이 불타올랐다. 남편이 벌어들여 오는 돈들을 다 투자 하였고 시숙, 여동생 친정 부모님 것 까지 그 현대식 피라미드식 금자탑 건설에 쏟아 넣었다. 아내는, 피보나치 수열처럼 1이 3되고 3이 5되는 마법 같은 자람의 규칙이 바로 그곳에 절대 존재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거대한 설계와 꿈은 저 우주 공간 어디에선가 바람에 몰려온, 유혹을 가득담은 황홀한 구름 황궁이었다. 모든 것은 흩어지고 붕괴하기 시작했고 그 많은 사람이 투자하여 지은 몇 십억의 건물은 폐물로 되었다. 그와 함께 그들의 십여 억도 다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아내와 소식이 단절된 사이에 죄어오는 공포 속에서 그는 정말 많은 추측과 상상을 했었다. 외도? 납치? 어쩐지 이상한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경찰 문밖에서 머뭇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다 머리를 떨어뜨리고 황망히 돌아 선적도 몇 번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이런 날벼락이 집안에 떨어졌다. 어머니는 친인척들에게서 이모든 사실을 자초지종 다 알게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장황설을 하고 푸념을 하며 무너지는 한숨을 쉬면서 나갈 때까지도 백지가 되어있는 그의 머리로서는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창에 맞은 짐승처럼 피를 흘리면서 날뛰고 싶었고 울부짖고 싶었지만 전기 방망이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몸과 마음은 지심 깊이 떨어진 듯 도저히 움직여주지 않았다.   어딘가에 가서 몸을 숨겼던 아내가 결국은 집에 들어왔다. 물독에 빠졌던 생쥐 모양의 아내, 그 모습은 너무나 참혹했다. 잔뜩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아내의 꼬부라진 새우등 같은 뒷등을 바라 보늬라니 귀싸대기라도 후려치며 함성을 터뜨릴 것 같던 분노의 불길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고 저걸 어쩌나 하는 원한과 측은함이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폭풍전야를 예고하는 질식할 것 같은 침묵만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아내의 꾹 다문 입술에서는 너무나 뜻밖의 말이 뱉어졌다. “우리 이혼해요, 나는 한 푼 돈도 없고 또 돈 벌 능력도 없으니 아들 성빈은 당신이 키워요.” 얼마나 당돌한 말이었던가. 왜, 왜 그런 일을 저질렀냐고 그렇게 따지고 싶고 묻고 싶은 말이 산처럼 쌓였는데 그의 입에서 외려 이런 되알진 말이 나오다니, 더 이상의 사죄도 해석도 없었다. 남자는 바라던 일이였지만, 그리고 이미 예고된 일이었지만 집을 망쳐놓고 들어온 아내의 입에서 이런 당찬, 뻔뻔한 말이 나오는 순간 손에 쥐어져 있던 휴대폰이 ‘팡!’하고 둘러메쳐지며 유리가 깨지고 각들이 뜯어져 나갔다. 자신도 이게 어떤 분노의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전번에 어머니가 오셨을 때 어머니가 모든 것을 결정 지어 놓고 간 걸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을까? “ 당장 이혼해라. 온 집안을 이렇게 풍비박산을 만들어 놨으니 집안사람들 눈에서 성빈 어미가 없어지지 않으면 우린 더 머리를 들 수 없게 될 거다. 그리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간 후에라도 다시 합칠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 내가 용서 못 할 것이다.” 우두망석 멍청하니 앉아 있는 아들을 보고 어머니가 정신 차리라며 최후통첩 했었다. 불가사의한 일은 이렇게 터지고 말았다. 남자는 항상 정직한 삶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많은 돈도 욕심낸 적 없었으며 그저 학원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몰 붓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그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한 유일한 그의 귀숙 처인 보금자리가 그렇게 무너져 버리고 있는 줄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어머니께서 내린 그런 강경한 결정을 자신으로선 반박할 이유와 힘이 전혀 없음에 가슴이 터졌다. 하지만 아무리 분하고 미치겠지만, 당신은 한 번도 이 가정에 신경 쓰기나 했나요. 하며 무관심했던 남편을 향해 악을 쓰며 소리라도 치든지 아니면 눈물을 흘리며 그의 발목을 붙들고 성빈을 봐서라도 제발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하던지, 여리고 어리석고 솔직한 아내의 모습을 남자는 몇 번이나 상상 했는지 모른다. 아내가 진짜 이렇게 소리도 치면서 빌고 나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머니 모르게 고민에 시달리기도 했던 그였다. 그런데 모든 세상사를 다 읽었다는 듯이 아내는 강인해 있었고 굳어져 있었으며 냉각되어 있었다. 눈물도 사죄도 구걸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옆에서 울고 있는 성빈이만은 부둥켜안고 전율하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애가 깊이 잠든 새벽에 짐 몇 가지를 챙겨 그렇게 홀연히 떠나가 버렸다. 한때의 어리석음과 허망한 욕심 때문에 친인척들을 사분오열시키고 경제적으로 풍지 박산을 만들어 놓은.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는 자신에 대한 징벌이었을까, 도주였을까? 상황을 듣고 난 법원에서의 이혼 절차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줄 몰랐다. 이혼 신청을 했지만, 그 결과가 내려오는 순간 텅 빈 머리와 허망한 가슴은 도저히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부부라는 인연은 도대체 무엇일까? 떠나간 마누라도 그렇고 자신도 그렇고 친인척과 세인들에게 ‘사기꾼’이라는 낙인이 찍혀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무엇이 가슴을 채웠다. 형제 가족들의 빚을 온 힘을 다여 자신이 최대한으로 꼭 갚아 나가리라 결심했다. 밤과 낮이 따로 없는 학원 강사의 생활은 기어코 이 빚들을 갚아야 한다는 그의 악착스러운 집념 속에서 무겁게 힘겹게 지탱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아파트를 팔고 아들과 함께 옥탑방 셋집으로 이사했다. 조금이라도 빚을 빨리 갚기 위해서였다. 집안일로 학원 경영에 많은 차질을 가져왔고 떠나간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는 다시 수습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온 정력을 학원에 올인했다. 열 몇 살 된 아들도 벌써 철이 드는지 밤늦게 돌아오는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않고 저녁 찬밥도 군소리 없이 혼자 먹고 먼저 자리에 누워 잠들 곤 했다. 그러나 그는 가끔 어린 아들이 꿈속에서 엄마를 부르며 가느다랗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었다. 엄마들이 참석하는 학교 모임에도 빈자리를 내어줘야만 하는 슬픈 일들을 어린 아들이 한마디도 내뱉지 않는 것이 더욱 참을 수 없이 가슴 아팠다.   하루는 그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의 고향 불알친구였다 어려서부터 물장구를 치면서 같이 커 왔고 같이 상경하여 대학 공부했다. 아니, 두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었다. 친구의 마누라와 아들 성빈 엄마다. 남자들 두 친구가 어려서부터 똑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탁구 짝꿍이며 기타반주 애호가였다면. 그 두 여자애도 항상 손을 마주잡고 다니며 두 남학생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으며 두근두근 뛰고 있는 작은 가슴을 두 팔로 막으며 비밀스런 사춘기 얘기를 밤을 새우며 했었다. 익살스런 얘기 속엔 늘 자신들의 눈동자에 박힌 그 두 남학생의 하루하루의 신비한‘시추에이션’이 들어 있곤 했다. 같이 상경하여 대학을 졸업할 때도 휴일이면 그들 넷은 학교 캠퍼스를 멀리 떠나 저녁노을이 잔잔한 푸른 언덕에 앉아 ‘꿈의 대화’를 부르곤 했다. … … 땅거미 내려앉아 어두운 거리에 가만히 너에게 나의 꿈 들려주네 너의 마음 나를 주고 나의 그것 너를 주니 우리의 세상을 둘이서 만들자 … …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친구가 그에게 말했다. “유진이가 널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 “응? 유진이?” “그래 너 영어 수준이 장난이 아니라며 영어로 대화할 때 너무 멋지대” 조용하고 말이 적으며 늘 새물새물 웃는 눈매를 가지고 있는 작고 가냘픈 몸매를 가지고 있는 유진이다. 그러나 의외로 남의 말에 솔깃하기 좋아했고 사람을 바라보는 크고 맑은 눈은 착한 양처럼 티 없이 순진해 보였다. 사실 오래전부터 깊이를 숨겨 놓은듯 한 조용한 모습과 청순한 눈빛은 그의 마음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고 있었다. 사실 두 남자애의 성격은 완연 달랐다. 영어를 잘 하는 이 친구는 조금은 우직스러울 정도로 하나에 묻히면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릴 줄 모르는 단순하고 정직한 반면 저쪽 종원이란 친구는 일찍이 수학 천재란 말까지 들을 정도로 머리 회전이 빠르고 순발력도 강하며 변하는 환경에 적응력도 강했다. “어제 나도 혜나 불러내어 데이트 좀 했어. 향후 우리들의 취업 얘기랑…” 친구가 불쑥 내뱉는 말이다. 항상 큰소리로 웃기 좋아하고 익살스러우며 주견을 숨길 줄 모르는 혜라의 모습은 나름의 또 하나의 매력이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친구가 혜라의 의사 분명하고 활달한 성격을 좋아하고 있는 줄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유진은 성빈의 엄마로 되었고 혜라는 친구 종원의 마누라로 되었다. 만사를 제치고 하나의 취미와 신념에 올인하며 영어 학원에 영어강사로 들어갈 때 그 수학머리는 용케도 그 콩나물 틈 속 같은 경쟁력을 뚫고 이름있는 S 회사에 들어갔다. 영어 학습열이 붐을 이루고 학원하습을 하나의 필수 코스로 알고 있던 그 나날에 영어강사의 수입은 유명회사에 들어간 수학머리를 훨씬 초과 했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동안 서로에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두 친구는 서울 공덕에 있는 ‘신라스테이’에서 맥주잔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당신은 영어 학원에서 엄청 큰 수입을 올렸었다며? “그거? 당신도 소문 다 알고 있잖아…” 수학머리는 무슨 말을 더 물으려 입술을 움찔거리다 맥주 한잔만 쭉 들이켰다. 그리곤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나도 회사에서 오래 못 갈 것 같아, 워낙 잘 나가는 젊은 층이 밀고 올라오니, 나 과장으로 승급하던 해 아들놈 미국 유학 보낸 거 알지? 아직도 전셋집 신세 지고 있다네. 다시 방법을 생각 해 봐야겠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종원에게는 이름 있는 큰 회사의 금베지 광택이 어디에선가 빛나고 있음을 강사는 마주 앉은 공기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어떤가, 그랬다. 어느 날 부터인가 학생 수가 부쩍 줄기 시작한 그의 학원도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설렁해지는 냉기를 막을 수 없었고 그래서 안간힘을 쓰며 고민 중이던 터였다. 대한민국 엄마들의 자녀 학원 열의는 다 어디로 갔나? 이제 겨우 절반 빚밖에 갚지 못했다. 저성장, 저출산- 매스컴에서 자주 뜨는 문구들이다. “누가 소개를 하는데 저쪽 서울시 서남권 쪽에는 이쪽 서울 중구보다 월세가 훨씬 싸다는데 나 어떻게 그쪽으로 자그마한 학원자리 하나 알아볼까하는 중이야” 낯선 곳이다. “그쪽의 학습 열기는 어떻데?” “뭐가 어떻겠어, 다 그렇지. 그나마 집세가 많이 싸다니 웬만하면 살아남을 거 아닌가?”   그는 원해서라기보다 쫓기다시피 신도림 부근의 어느 아파트 단지 앞에 학원자리를 마련했다. 학군이 좀 되는 곳이어서 희망을 걸었다. 수중에 가진 게 없는 그에게는 이것이 자신의 몸체를 줄이고 소비를 줄이는 최적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알심 들여 학원을 꾸려놓고 학비 수준을 줄여 놨건만 학원을 찾아온 학생은 고작 십여 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   “나도 벌써 흰 머리 새치가 생기는 것 같아. 강단에 나서기가 어떤 땐…” 그랬다. 근방의 학원들을 보면 모두 이삼십 대 혈기 왕성한 젊은 강사들이었다. 자신에게 저런 모습은 이미 기억 저편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어린 학생들의 신형 은어들도 가끔은 낯설기만 했다. 학원의 이 오십 대 후반의 선생님은 포장하려 애썼고 뒤떨어지지 않으려 분발했다.   그는 또다시 잠깐 사색을 멈추고 그칠 줄 모르는 빗줄기를 막아 버티고 있는 창문 유리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유리창들이 마치 아픔을 견디고 있는 자기 같았다. 머릿속 밤 거미는 계속 사색의 망줄을 이어간다.   “쎔, 저 미국 유학가게 됐어요!” 어느 주말이었다. 미국 유학가기 위해 특수 강습을 받았던 영훈이라는 학생이 찾아왔다. 그때 마침 종원 친구도 여유가 생겼다며 치맥 한잔 하자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야 잘됐다. 근데 어머니 병은 어떻게 됐냐?” “미국 둬 번 들어가서 치료 받으시고 지금은 많이 나았어요. 이번에 같이 들어가려구요. 아버지 퇴직할 때까지는 아무래도 거기서 계속 치료받으며 계시게 될 것 같아요.” 유학가게 된 일도 경사였고 어머님 병이 호전되었다는 소식 또한 너무 반가운 소식이었다. 셋은 잔을 부딪치며 축배를 들었다. ‘그런데 영훈 학생, 미국가면 부디 우리에게 가끔씩 소식 전하는 거 잊지 말라고, 아참, 내 아들도 미국 있는데 서로 연락도 하고.” 종원은 재빠르게 영훈 학생 아빠의 연락처까지 주고받기에 분주했다. 학생은 간단히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그의 영어 선생님이 문밖으로 같이 나왔다. “선생님 집 얘기 다 들었어요. 우리 어머니도 두 분이 갈라지셨다는 소식에 많이 마음 아파하시며 그 아주머니와 연락 하는 것 같았어요.” 사실 그 영훈 어머니가 병원 입원 중이였을 때 학생의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시는 걸 알고 아내를 설복시켜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며 병수발을 들게 했었다. 그러나 지금가지 영훈 학생의 어머니께서 떠나간 자기 마누라와 연락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랬다. 그리고 많은 궁금함이 치솟아 올랐다. 그러나 학생에게 더 무엇을 묻고 싶지 않았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두 친구는 학생이 떠난 후 치킨과 맥주를 앞에 놓고 대학 문을 나설 때의 꿈을 이야기했고 학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겪었던 희열과 번민을 주고받았으며 털어놓고 싶지 않은 가정사를 얘기했다. 가정사, 그 아픈 얘기를 왜 꺼냈을까? 아들 성빈이는 이 홀아비 아빠 손에서 13년을 컸다. 엄마의 따뜻하고 애절한 사랑의 햇볕이 결핍한 아들애의 성장을 지켜보는 그의 가슴엔 항상 녹지 않는 음지의 그늘이 깊숙이 뿌리를 박고 있었다. 가끔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그늘진 얼굴을 보며 이혼은 정말 옳은 일이였을까 하고 판단할 수 없는 사색에 잠기곤 한다. 얼마 전 그는 중구의 충무로 지하철 8번 출구를 나오며 걷노라니 왼쪽 길옆에 줄지어 늘어선 ‘애견백화점’건물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펫하우스’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 집 막내둥이들’ ‘동물들의 왈츠’ 참 간판 이름들도 다양하였다. 정말 뜻밖에 이런 매점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세상은 첨단을 향해 달리는데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은 커가기만 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또 다른 향수를 찾는다. 십몇 년 전에 누군가는 이런 미래를 확신하고 투자를 했지만 지금 같은 붐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선 사람들은 인생을 말아버렸다. 성빈이 엄마가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세상 흐름의 타이밍을 잘 못 맞춘 사람들은 널뛰듯 흥하고 망했다. 성빈이 엄마는 지금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사실 40대 초반에 돌싱이 된 영어강사, ㅡ그는 꽤 멋진 남자였다. 이마를 덮는 숱 많은 머리와 길게 쭉 뻗은 두 다리를 가진 꾀 훤칠한 키에 우뚝 솟은 코 등 위에 얹힌 안성 맞춤한 안경, 그 속에 침묵에 잠겨 있는 조용한 눈빛은 주위의 눈길 끌기에 충분하였다. 그를 보는 사람들은 적어도 십 년 정도까지 더 젊게 넘겨짚곤 했다. 그의 형편이 어려운 줄 알면서도 그의 사람 됨됨을 잘 아는 학부모들은 이 젊고 바르고 고독한 선생님에게 짝을 무어 주려 여기저기서 혼사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에게는 확실히 아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고 잠자리를 펴주는 여인이 필요했고 학원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들어설 때 따뜻한 불빛이 집안에서 흘러나오길 수도 없이 갈망해 봤었다. 그것은 그의 가장 소박한 꿈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학원 일에만 몰입했던 그는 한 번도 레스토랑이나 룸 같은 곳을 들어가 본 적 없으며 노래방 도우미들의 추파를 가슴에 새겨본 적도 없었다. 웃음 날리며 지나가는 뭇 여인들에게 한가하게 눈요기를 할 사이도 없이 총총걸음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바보였을까, 멍청이였을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버리면 이렇게 쳇바퀴 돌 듯하고 생활에 푹 파묻혀 버리게 되는 걸까?   그런데 아내가 떠난 그 이후의 생활은 좀 달랐다. 아무리 힘든 나날이어도, 아무리 생존 의식주에 정신없이 쫓기는 나날이어도 40대 중반이었던 그에게는 자신을 속일 수 없는 젊음의 욕망이 꿈틀거리며 그를 무시로 괴롭힐 때가 있었다. 더운 여름날 고등학부 여학생들이 팬티를 겨우 가릴 정도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선생님에게 다가와 팔을 붙들고 새물새물 웃으며 이것저것 끊임없는 질문과 대화를 할 때면 싱긋한 봄 향기 같은 채취와 함께 그의 온몸은 경직되곤 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체 반응에 놀랐고 화끈 달아오르는 수치심에 황급히 칠판으로 다가가 몸을 돌려세웠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중년 남자의 왕성한 성은 그의 오랜 돌싱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꿈틀거리게 하였다.   가끔은 현실에서 도망쳐 나와 어딘가에 숨죽이고 있던 그 날의 숨결들을 한 겹 한 겹 펼쳐 보게 된다. 사실 아내 유진이가 같이 살던 때의 그의 성은 지금 생각해보니 과분할 정도의 ‘혜택’을 받은 셈이다. 신혼 때도 그랬고 갈라질 무렵에도 그랬다. 강사는 밤늦게 돌아와 침대에 고꾸라지면 세상만사를 모르고 쿨쿨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새벽녘 화장실에 한번 갔다 와 잠자리에 누우면 불끈하고 금방 치켜세운 팬티를 치솟고 일어선 놈이 있었다. 그것은 아랑곳없이 그의 전신에 거미줄 같은 신경 줄을 타고 근질거리고 있었다. 그러면 그는 서슴없이 옆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는 아내를 끌어당겨 그것의 뜨거운 피를 식혀 줄 자리를 서슴없이 찾았다. 아무 준비도 없는 아내였지만 아내는 잠결에도 항상 너그럽게 그것을 받아들여 식혀 줄줄 알았다. 처음엔 자신의 그런 준비도 허락도 없는 처사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가끔 늦은 퇴근길에서도 작은 선물 하나라도 사 들고 오군 했었지만 그것이 점차 습관이 되면서 부부간에 자연히 받을 수 있는 혜택으로 묵인되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그래서 그는 한 번도 또 다른 ‘해소처’를 찾을 생각을 전혀 가져본 적 없이 온갖 정력을 학원에만 쏟아 부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아내의 얼마나 큰 아량이었으며 사랑스런 구석이었는지 휴~ 이제와 생각해보니 가슴이 아프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부부간에 그 소리 없는 교감들이 아내가 남편에 대한 또 하나의 뜨거운 사랑이었음을 왜 진즉 깨닫지 못했었을까?   언젠가 아내가 무심히 흘리듯 하던 한마디 말이 새삼스레 귀가를 스친다. “그거 알아? 혹 갈라진다고 해도 만나야 할 사람은 지구를 몇 바퀴 돌아서도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된데 운명처럼,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도 아무리 피하고 피해도 언젠가는 부딛치게 된데, 숙명처럼.” 누군가 그에게 은행에 다니는 혼기를 넘긴 사십 대 아가씨를 소개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작은 카페에서 그들은 만났다. 말끔한 피부와 세련된 옷맵시는 지적이면서도 냉철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긴 생머리 속에 감춰진 그의 노련한 눈길은 처음부터 남자를 당황하게 했다. 영어 학원 강사며 나이가 얼마라는 정도밖에 더 많은 정보 없이 찾아온 이 아가씨는 일단은 남자의 보기 드문 시크한 모습에 입귀를 올리며 얇은 미소를 보낸다. 그러면서도 커피를 마시며 이것저것 깐깐하게 물어왔다. 남자는 마누라와의 이혼 사유를 털어놓았고 혼자 키우고 있는 아들애를 얘기했으며 아내가 남겨놓은 빚을 갚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 이혼까지 했는데, 그 빚을 선생님이 갚아요?”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모두 친인 들이고 그 사람은 전혀 상환할 능력이 없어서.” 그는 숨김없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그 여자는 왜 그렇게 무책임하게 도망쳤어요? 짐을 언제까지 메고 가야 합니까?” 상대방은 아무 거리낌 없이 맞이할 현실을 얘기했다. 글쎄 나는 왜 이런 현실을 따져보지 않았지? 남자들의 머리는 아무래도 항상 이런 사전 ‘팸투어’ 같은 것들이 부족한 것 같다. 그저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고 그리하여 따뜻하고 안정된 작은 새 가정을 이루고 싶었던 그의 단순하고 소박한 욕망은 버벌 티의 거품처럼 사그라지고 말았다. 갈라질 때 여자는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그 당치도 않은 빚더미를 집어 던지면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어쩐 일인가? 이 난감한 현실 앞에서 몇 년 만에 만나는 여자인데도 그는 설렘도 없었고 애틋함도 없었다. 유진이와는 너무나 다른, 여자의 흐트러짐 없는 과분한 냉철함이 싫었다. 그렇다고 그 여자를 탓하지도 않았다. 그 여자는 당연한 것을 물었을 뿐이었다. 그는 핸드폰을 들고 간단히 몇 글자 전송하였다. ‘죄송합니다. 저의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행복을 빕니다.’ 침대에 누워서 탁상에 턱을 고이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하지 않던 말을 꺼냈다. “아빠, 혹 엄마 소식 알아? 우리 찾아가면 안 돼?” 그는 한참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이 복잡한 사정을 어떻게 아들에게 해답해야 할지 머릿속이 헝클어지고 말았다 동창 부친상에 적지 않은 친구들이 모였다. 그곳에 종원은 없었다. 그는 선배에게 혹시 종원의 소식을 아느냐 물었다. 생각해보니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한자리에 앉고 보니 모두 아직 50대에 걸려있고 60대를 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다사다난한 세대들이다. “그 친구 소식 아직 못 들었나? 조기 퇴직했어.” 종원의 소식을 묻자 옆 선배가 말한다. “아니, 회사에서 인정받고 잘 나갔었잖아?” “그럼 뭘 하나, 이 불경기에 감원 감축한다고 야단들인데 빵빵한 젊은 층이 밀고 들어오는데 버텨낼 수 있나?” 정말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라는 이 울타리 밖으로 도망쳐 나간 걸까? 이름 있는 조직이라는 시스 템 속에서 빛을 내던 옷을 갑자기 벗는 순간, 자신 존재의 가치와 그의 몸에 있던 틀과 위엄은 순식간에 빠져나갔고 남아있는 자존심은절친이었던 그에게도 소식을 끊고 도피와 침묵이란 숨 막히는 하우스 속으로 꽁꽁 숨게 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럼 이제 뭘 하나? 아직은 손 놓고 놀 나이가 아니잖나?” “미국 뒷바라지 하느라 모아놓은 돈은 없을 테고 퇴직연금으로 이제 뭘 시작해보려 해도 전업 내놓고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 하긴 나도 직장 그만 뒀다네. 재간이 없어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살던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그 잘난 경비직 같은 것도 50대 1의 경쟁력이라나. 더러워서 그렇다고 없는 재간에 뭘 하나 펼쳐 보기도 그렇고” “야 인마, 지금 백세시대란다 그러니 우리는 중간 역밖에 안 왔어. 기 좀 살려보자고. 이 늦어진 티타임을 의미하여” 누군가 술이 푹 취해 반쯤 남은 술잔을 들고 한마디 내뱉고는 남은 술잔을 쭉 비운다. 그래, 흐르는 하오의 게으른 햇살이 늦은 간이역의 창살을 스치고 있다. 모두 할 말이 없었다. 어두워진 무드를 살릴 수 없었다. 그도 쓴 술잔을 비우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나오면서 그는 종원의 아내 혜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 간 거 말 안 했구나.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갔어. 그 영훈 학생 아버지가 둘 다 많이 도와주고 있는 모양이야 ,일자리랑, 유진이가 하도 비밀로 해 달라 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이상해졌다. 둘 다라니? 왜 하필이면 같이, 그것도 비밀리에? 십 몇 년 동안 소식이 딱 끊겨 한국 어디에선가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혜라의 말을 들으니 죽음만 기다리는 것 같은 유진이를 그때 그 영훈 학생 어머니가 측은히 여겨 남편과 연락하여 그쪽에서 다시 자리 잡게 하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가정부로부터 시작하여 한인 유치원 선생으로 체면과 몸을 다 던져 버리고 억척스레 돈을 모으고 있으며 자리매김이 온정되자 한글 강사로 학원하나를 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알게 된 자기 남편도 직장에서 조기 퇴직을 당하자 아무도 모르게 유진이와 연락하여 그 근방서 작은 서비스 일거리 하나 찾아 일하고 있단다. 모두 그 학생 아빠의 덕이란다. 혜라도 아직 여기서 공부중인 딸만 아니면 당장 따라가야겠는데 왼통 불안해 못 살겠다는 것이다.   성빈 엄마… 무엇인가 울컥하고 목울대를 꽉 채웠다. 세상에 믿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두 남학생이 기타를 치고 두 여학생이 같이 소리 높여 부르던 그때의 그 열창, 그 피어나던 꿈들… 마지막까지 꿈을 저버리지 않고 무작정 달려 온 인생 50대 후반, 아, 움이 트던 봄날의 갈망과 녹음 무성했던 여름날의 열정, 지금 설익은 가을들녘엔 무엇을 남겼는가. 번잡하게 들끓던 욕망을 다 내려놓고 쉬고만 싶었다. 차갑고 혼잡한 도시 속에서 발걸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늘 마냥 주체를 못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원의 모든 것에 눈길을 쭉 돌렸다. 계단의 희미한 불빛을 등에 지고 다시 뚜벅뚜벅 아래로 내려간다. 대문을 여니 쏴 하는 비바람 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튕겨왔다.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어디론가 모두 숨 가쁘게 달음박질하고 있다. 은연중 자기도 과거와 현재라는 존재의 무게를 어깨에 메고 비안개 속에 서 있다는 것을 놀랍게 발견했고 그리고 그 속에서 또다시 뛰어야 할 자신의 환영을 보고 있는 듯 했다. 그는 가방을 머리에 이고 학원 뒤울안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허줄 한 기아 모닝 차량 앞으로 달려갔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에서 문자 들어오는 소리가 울렸다. -나 종원이다, 너무 오랜만이어 할 말이 많은데, 유진이 혼자 올 수 없어서 같이 미국서 돌아왔다는 거 알려준다. 돈은 많이 벌어 돌아온 것 같은데 지금 서울대학병원에 입원 중이야. 성빈이를 데리고 와 달라고 하더라. 모든 것을 너 두 부자에게 다 주고 떠나고 싶은가 봐…   2019, 9, 15 서울에서                    
9    e단편소설 하얀 무지개 댓글:  조회:1583  추천:0  2019-11-22
. 단편소설 하얀 무지개 류 재 순   오래된 열기에 몸체를 한껏 줄이며 맥을 풀고 흘러가던 세린하(细鳞河)강물은 한식경 잘되게 급작스레 퍼부어 댄 소낙비에 시원히 갈증을 푼 철부지 애들 마냥 크고 작은 돌 자갈들을 신나게 마구 부딪치며 쏴쏴 소리쳐 흘러간다. 나는 예금 이와 나란히 책가방을 메고 싱그런 흙냄새로 콧구멍을 가득 메우며 세린하 강가의 젖은 풀숲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바짓가랑이가 다 젖어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세린하 강둑길로 왕가툰(王家屯)을 지나서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면 예금이가 사는 영안툰(永安屯)이 보인다. 하학 후 으레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지만 토요일의 반나절 수업은 나로 하여금 친구네 집까지 따라가 놀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예금 이는 과자봉지안의 닭똥과자를 한 움큼 꺼내어 내 손에 쥐여 준다. 닭똥과자-말 그대로 닭똥 모양으로 튀겨 나온 과자 모양새를 보고 우리는 모두 그렇게 불렀다. 모양은 그래도 그 특별히 바삭하고 달콤한 이색 맛은 우리의 입안에서 행복의 천국을 만들어 주었다   물기 가득 먹은 대기 속에서 씻은 듯 말끔해진 하늘 중천에 눈부신 태양이 우리 정수리를 따갑게 내려 쪼였다. “저것 봐,무지개!” 예금이가 가리키는 저 먼 곳을 바라보니 채색 띠 같은 오색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찬란한 햇빛, 무한정 시야를 넓혀주는 청신한 공기, 무지개는 요정마냥 하늘에 동화 같은 다리를 걸어놓고 우리를 유혹하였다… “와!” 많은 무지개를 보아왔으나 그날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지평선 저 어딘가에 꽂혀 있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인 덧 싶었다. 우리는 고개를 젖히고 입을 하 벌린 채 아무 소리 없이 한참을 걸었다. 그러던 중 예금이가 문득 한마디 했다. “근데 말이야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전번 가을에 흰색 무지개를 봤데” “뭐? 무지개가 흰색?”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큰 소리로 말도 안 된다고 우기고 싶었지만 할머니 손에서 힘들게 자라고 있는 내가 친구 덕에 이런 사치한 간식을 맛볼 수 있다는 고마움에 입을 봉하였다. 예금 이는 “재봉틀 집” 외동딸이었다. 그에게는 손재봉틀 일로 동네 사람들의 옷을 지어주며 품삯을 받는 재간 있고 인물 좋은 어머니가 계셨다. 그래서인지 예금이의 주머니엔 잔돈푼이 늘 떨어지지 않았다. 예금 이는 또래 친구들 중에서 인물체격도 최고였지만 옷도 언제나 예쁘게 잘 입고 다녔고 책가방에 군거짓거리도 늘 있었다. 특히 닭똥과자는 그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그와 나는 친구들이 다 인정하는 십대 문학소녀였다. 우리는 학교에서 틈만 생기면 저 멀리 세린하를 끼고 있는 우리 학교 근처의 버들 방천으로 가서 이해 못할 돈키호테의 대사를 모방해 보고 푸시킨 시를 읊곤 했다. 머리가 좋은 그는 교과서에 있는 고리키의 “해연의 노래”를 늘 큰 소리로 줄줄 낭송도 잘 하였다. 물론 공부는 내가 더 잘하였다. 나는 숙제를 꼬박꼬박 완성하는 노력파였지만 그는 대충대충 눈가림으로 해치워도 나와 조금 차가 날 뿐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마음도 좋으셨고 아는 것도 많으셨다. 그날도 예금이가 나를 데려 온걸 보고 반겨 맞으시며 내가 좋아하는 감자볶음이며 절인 깻잎을 내 놓으시며 배불리 먹으라 하였다. 그리고 예금 이와 함께 오래 놀고 잠을 잔 후 내일 돌아가라 하셨다. 또 남은 헝겊 조박들로 만든 작은 속옷 하나도 입으라고 내 책가방에 넣어 주셨다. 나는 주말을 그의 집에서 보내기가 일수였다. 이 모든 걸 나의 할머니까지 다 알고 계실만큼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어 그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정말 하얀 무지개가 있어요?" "그래, 햇빛이 부족하거나 물방울이 부족 하거나, 벼로 말하면 결실을 못 맺은 쭉정이 같은 것이지. 살아가노라면 너희도 보게 되겠지.”   우리는 어머니가 들으실 가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문학을 얘기했고 반의 남자애들을 얘기했다. 예금 이는 반의 반장인 민 철 이가 책가방 안에 몰래 넣어줬다는 연애 쪽지도 나에게 보여 줬다. 이불 속에서의 예금의 커다란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이상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다른 재간이 없는 나는 문학가가 되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는데 예금 이는 좀 망설이고 있었다. 음악 선생님의 사랑을 받으며 학교 교경절(校庆节) 때면 번번이 무대에 올라 맑은 목소리로 독창을 하군 하는 그에겐 또 다른 꿈이 싹 트고 있는 것 같았다. 음악선생님은 그가 훌륭한 가수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가졌다고 했다.   중학교 졸업시험 준비를 한창 하던 어느 날 이었다. 전반이 발칵 뒤집어졌다. 예금 이와 반장의 연애편지가 선생님의 교탁 위에 놓여 있었다. 어떻게 발견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은 연신 조용하라고 교탁을 탕탕 두드렸지만 들쑤셔놓은 벌집 마냥 교실은 끝없이 웅성거렸다. “잘난 척 하더니 연애질이나 하고” “누가 그러는데 세린 하 다리 밑에서 둘이 뽀뽀 하는 것도 봤데 ” 점점 이상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책상에 엎드려 울던 예금 이는 끝내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같이 뒤따라 나서는 나를 보고 선생님이 꽥 소리를 지르셨다.   오랫동안 그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어수선한 학교생활 속에서 나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주말에 내가 그를 찾아 갔을 때 그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나에게 하였다 -한 마을에 사는 어느 언니 벌 되는 친구와 함께 북조선에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외지로 옷감을 사러 나가신 어머니가 집에 없는 사이에 빨리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한창 북조선에선 이쪽을 향해 인력과 인재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때인지라 예금이 같은 경우, 나이도 어리고 노래 잘하고 인물 좋으니 예술대학 같은데도 거뜬 입학시켜 줄 거란 것이다. 모두 다 그 언니의 말 이었다. 북조선에 가서 유명한 가수로 태어나겠다고 하였다. 예금이의 얼굴은 또 다시 생기가 떠올랐고 그의 입에선 계속 흥얼흥얼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말렸다. 나는 예금이가 북조선에 가는 것이 더 큰 출세의 길이 될 지 아닐 지는 아예 생각도 안했다. 단 그와 갈라지는 것이 싫었다. 나는 그를 붙들고 엉엉 울면서 말렸다. 그러나 자신감에 잔뜩 부풀어져 있는 예금 이는 머리를 마구 흔들며 나를 마주하고 소리쳤다. “두고 봐, 이담에 너까지 데려갈 수도 있지 않은가, 거기 가서 너도 유명한 소설작가가 될 수 도 있잖아! 생각해봐 너는 작가 나는 가수, 아주 우린 유명 빵빵 일걸!” 손뼉까지 치며 부산을 떨었다. 헤픈 웃음, 넘치는 열정, 안하무인식의 충만된 자신감- 예전의 그가 다시 살아났다. 그의 마음은 모든 것이 이미 굳게 결정된 상태였다. 그의 뒤에는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한 동네 선배언니가 있었다. 나는 머리를 떨어뜨리고 학교숙소를 향해 세린 하 강변 길섶을 뚜벅 뚜벅 걸었다. 세린 하는 누가 어디서 부르기라도 하는 듯 햇빛 아래서 물고기 비늘 같은 잔물결을 이루며 반짝반짝 줄기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서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강줄기의 끝은 어디일까…   세린하의 강물처럼 이미 저 멀리로 출렁출렁 흘러가버린 이 모든 옛일들이 지금 다시 고향을 찾아가는 나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돌아간다. 이번에 가면 꼭 한번 찾아가 봐야지. 이번 귀향길의 가장 큰 계획 중의 하나다. 그때 집에 돌아와 딸의 행적을 알게 된 그녀 어머니가 만사를 불사하고 압록강을 건너가 예금 이를 찾기 시작하였다. 반년도 안 되어 예금 이는 코 뀐 송아지처럼 꼼짝 없이 끌려 돌아왔다. 그 어머니는 평양의 어느 한 작은 방직공장에서 그녀를 찾아 내였다. 일하는 데는 보통 방직공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는 과외 문예 연출 단으로, 희망 있는 어린 가수로 자그마치 명성을 얻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연출하는 것을 본 평양 어느 예술단의 단장은 그를 이미 주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외동딸을 타향에 두고 떠나올 그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예금이는 징징 울면서도 그 동안 그리웠던 어머니였는지라 또다시 고향에 돌아오고 말았다. 집에 돌아온 그는 가수가 되겠다는 풍성같이 부풀었던 꿈을 가라 안칠 수 없었다. 아무 경험도 없는 그는 어떻게 하면 가수가 될 수 있을 지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수소문하였다. 그리고 집에 사람이 없을 땐 무작정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나름대로 연습을 하였다. 그때의 중국은 호적 거주지가 한 사람의 평생 일터를 붙들어 놓던 때였다. 그러나 그녀는 앞 뒤 소통이 꽉 막힌, 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는 작은 시골에서 자기를 둘러싼 담 벽을 허물고 밖으로 나가려 천방지축 부딪치고 있었다.   뜻밖의 소식이 그의 귀에 들어왔다. Y시의 가무단에서 가수를 모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소식을 접했을 때는 면접 볼 날이 단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붙들고 생전 가보지 않았던 Y시를 향해 부랴부랴 떠났다. 교통이 불편한 외진 곳에서 떠나 Y시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하루반의 시간이 다 소비 된 상태였다. 긴장하고 떨고 지치고, 끝내는 그의 편도선염이 도지고 말았다. 완벽한 준비들을 하고 온 뭇 가수들 앞에서 그는 아무런 실력도 보여줄 수 없었다. "저 원래 노래 잘해요 나의 병 나을 때 까지 좀 기다려 줄 수 있나요? “ 이 낯선 응시자의 당돌한 말에 면접관들은 그저 웃고 말았다. 이렇게 두 모녀는 김빠진 공처럼 후줄근히 집으로 돌아 왔다. 몇 년 만에 한번 있을 듯 말 듯 한 기회를 그녀는 이렇게 놓치고 말았다.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시종일관 자신이 면접 본 여느 가수 들 보다도 노래를 잘한다고 자신하고 있었고 평양에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어머니와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나는 가끔 그녀를 만났다. 내가 학교에서 우리끼리 조직한 문학서클 얘기를 하면 그녀도 같이 흥분되어 “안나 카레니나”의 비극의 운명을 얘기를 하며 그 중의 대사들을 큰 소리로 줄줄 외웠다. 그리고 북조선의 유명 시인 조기천의 시도 얼마나 많이 외우고 있는지 몰랐다. 사실 자기도 가끔 시를 쓴다고 하였다. 그가 낭송하는 자작시를 듣노라면 교실 책상머리 얘기만 알고 있던 우리 같은 단순한 문학도로서는 감히 생각도 못할 넓은 폭의 생활 감수성과 기발한 상상력을 뽐내고 있어 나를 심히 놀래 우군 하였다. 나는 우리 문학 서클에 가입하라고 하였다. 그녀는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진절머리 나는 학교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그래도 자기는 가수가 되는 것이 적성이라 하였다. 방법도 정보도 스승도 없이 꽉 막힌 구석진 자그마한 촌마을에서 그는 방향 잃은 사슴마냥 마구 날뛰었다.   그때 우리 집은 시골이 아닌 국가의 양식공급을 타먹는 작은 시민생활을 하고 있는 때여서 가끔은 배급 받는 밀가루를 가지고 중국 한족들에게 배운 대로 물만두를 만들어 먹곤 하였다. 조선족 시골 사람들이 잘 먹어보지 못하는 중국식 물만두를 예금이는 너무나 좋아했다. 나의 할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그녀가 오면 갖은 애를 써 꼭 물만두를 해 먹여 보냈다. 그러면서 예금이가 노래를 잘하니 한마디 불러 보라 한다. 그러면 그는 서슴없이 그 작은 방에서 목청을 높여 평양에 있을 때 항상 무대에서 불렀었다는 ‘박연폭포’를 부른다. 그는 우리 둘만을 상대해서도 항상 무대에 나선 것 마냥 얼굴 표정과 몸 연기를 살려가며 목청을 제대로 돋우어 부르는 턱에 옆에 사는 중국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들여다보고 킥킥 거렸다. 할머니와 나는 급기야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그런 상황은 우리 집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저 정신병 아니야? 촌사람이면 착실히 농사나 지을 거지! 농사일에 바쁜 한 부락 사람들은 입을 가만 두지 않았다.   뜻밖에도 그에게도 행운은 찾아왔다. 소란스러운 문화대혁명의 비상 속에 수많은 학생들은 ‘투쟁’하러 다니느라 바빴고, 놀러 다니느라 바빴다. 역전 대합실은 항상 고교생, 대학생들로 웅성거렸다. 예금 이는 문화대혁명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의 가수 꿈 출로를 위해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찾아보려고 고군작전하며 항상 여기저기 차를 타고 다녔다. 강성(江 城)의 저녁 대합실엔 국방색 헐렁한 홍위병 복장을 입고 붉은 완장을 차고 다니는 수많은 홍위병들로 벅적거렸다. 바로 그 속에 물 오른 봄버들 같은 날씬한 몸매, 한참 부푸는 가슴을 팽팽히 감싸고 있는 맞춤형 평복을 입고 어디론가 빠져나가려고 출구를 찾고 있는 한 청초한 앳된 여자의 커다란 맑은 눈동자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그녀의 말쑥하고 겁기어린 하얀 얼굴은 이 열기 띤 대혁명의 거센 물결 속에서 두려운 듯 방황하는 어린양 같이 귀엽고 불쌍해 보였다. 그 모습은 한 대학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문화대혁명 때문에 휴학이 된 학교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는 북경대학 졸업을 앞 둔 남학생이었다. 그는 예금을 바라보며 자기네 대학교정에선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다는 생각에 넋을 잃고 있었다.   지루한 문화혁명도 거의 끝나가는 어느 날이었다. 예금이가 우리 집엘 찾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얼굴은 희열에 들떠 있었다. 그는 그 북경대의 남자친구에 대해 끝없이 얘기하였다. 자기는 중학밖에 다니지 못했다는 것을 실토할 때 그 남자는 이렇게 예쁜 여자가 학벌이 뭐가 대수냐며 "그래도 이것이 힘을 냈어!" 하며 자기 대학 마크를 시위하더란 것이다. "아, 그 남자는 공과전공이어도 문학예술 모르는 게 없어, 정말 내가 딱 찾고 있던 사람 같아!" 뜻밖에 자신의 소울 메이드를 찾았다는 행복에 푹 젖어있는 그는 잠시 가수의 꿈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그들은 결혼을 하였다. 그때 그는 수많은 사랑 시를 밤낮 쓰고 있었다. 사랑에 빠져 행복해 하는 친구의 얼굴은 태양보다 더 찬란해 보였다. 그의 결혼으로 더 멀리 떨어져 살게 된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나도 결혼하고 애들을 키우고 직장생활을 하느라 그녀를 찾아가 보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강성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번화한 동 시장(东 市场)을 돌아보고 있었다. 옷 가게 앞에서 체구가 늘씬하게 잘 빠진 어떤 여자가 옷 장사와 가격 실랑이를 벌리고 있었다. 옆으로 다가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런, 예금이 아니니?!” 나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휙 돌리던 그녀도 야! 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너 남편 따라 남방 어느 도시에 간 거 아니었어?" 그의 남편은 남방의 어느 대도시의 큰 공장에서 기술공정사로 취업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진작 들어서 알고 있었다. 몇 해만에 만난 나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며 물었다. 항상 자신감에 충만 되어 있던 그의 얼굴엔 어쩐지 옛적의 도도하던 빛이 사라진 것 같았다. 내가 묻는 말에 한 오리 가냘픈 웃음을 얼굴에 남기며 어서 자기네 집에 가자고 하였다. 그의 집은 번화한 동시장의 뒤 모퉁이에 있는 한 아파트였다. 그가 차려준 밥을 먹고 우리는 또 다시 한 이불을 덮고 밤을 새우며 얘기를 나누었다. 결혼 후, 그는 줄줄이 딸 셋을 낳았다. 물론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아들이길 바랬다 . 남편은 그를 자기 부모님들이 계시는 강성으로 집 하나를 사서 돌려보냈다. 그리고 달마다 생활비를 보내온다고 하였다. 생활은 이럭저럭 유지가 되었지만 남편 없이 혼자 애들을 키우느라 힘겨운 생활이 역력하였다. 나는 그녀의 방을 둘러보며 옛날에 그가 추구하던 그 무슨 흔적 같은 거라도 남아 있나 찾아보았다. 보풀진 소설책과 시집 몇 권이 있었고 음악책 몇 권이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린 처녀시절에 가수가 되겠다고 여기저기 쫓아다닐 때 찍은 사진 몇 장이 크게 확대되어 액자 속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결혼사진에 담겨진 행복이 피어나는 그의 얼굴은 말 그대로 사진속의 한 송이 화려한 꽃으로 남아 있었다. 왜 이렇게 갈라 살아야만 하느냐고 나는 따지고 물었다. 남편의 그 공장엔 대학시절 같은 전공이었던 여자 동창이 같이 일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 여자는 대학 때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 남자를 벌주기 위해 평생 남자의 옆에서 시집을 가지 않으련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독한 여자도 있다니!~ "아니, 네가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알았어?" 이런 얘기 그 사람은 내 앞에서 스스럼없이 해 . 하느님 맙소사! 너의 자존심은? 나는 그의 어깨를 잡아당겨 마구 흔들었다. "에잇, 재미없다. 우리 다른 얘기하자" 분명 많은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오랜만에 찾아 온 친구에게 구구절절 털어놓고 싶지 않은 게다. 아니 아프게 가라앉은 앙금을 다시 흔들어 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또다시 문학에 대하여 가수에 대하여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요즘 자기가 Y시의 어느 유명한 시인의 시 ‘푸른 머리야’로 작곡을 했다며 한번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밤중인데 무슨 노래냐며 내가 극구 말렸지만 그는 옛적과 똑같이 옆방에서 자고 있는 애들도 상관없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뜻밖에 그 감성에 푹 젖은 노래의 정서가 너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아니 너 언제 작곡도 배웠어?" 그는 히히 웃으며 자기는 오선지도 잘 모르지만 일단 감정이 솟구치면 어디선지 알 수 없는 멜로디가 술술 나온다는 것이었다. 필기가 없어도 한번 작곡 된 곡은 순서 하나 틀림없이 그대로 기억이 된다는 것이다. "그럼 작곡해서 어디다 발표 좀하지?" "내가 뭐 오선지를 적을 줄 알아야지." 그는 자기가 작곡했다는 여러 곡을 불렀다. 모두 서정 곡들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곡들을 세상에 내어놓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아무튼 그는 천재인 것이 분명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나는 다시 반시간 남아 급행열차를 타고 강성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 이미 근 십 몇 년 만에 고향에 도착한 것이다. 한국에서 그렇게 많은 동창들과 고향친구들을 다 만날 수 있었지만 예금 이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소식도 두절되었다. 만나보고 싶은 예금 이는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는 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너무나 많은 것들이 궁금하였다. 나는 한국에 왔다간 고교동창을 먼저 찾아갔다. 혹시 예금이란 친구를 알 수 있느냐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내가 한국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은 그 친구의 전화를 통하여 순식간에 퍼졌다 뒤따라 동창모임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속에 예금이는 없었다. 나는 조급히 예금 이를 묻기 시작했다. 동창이라면 초중 고중 동창이 다 섞여 있는데 예금이가 이 고장에 생활하고 있기만 하다면야 당연히 이 좌석에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애타게 찾고 있자 한 친구가 예금 이는 확실히 아직 이곳 강성에 산다고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왜 안 불렀냐고 화를 내었다. "너 걔 하구 아직도 친해? 왜 꼭 불러야 돼? 그 완전 미치광이야!" 한 남자 동창이 퉁명스레 대답을 하였다. 이게 무슨 말이람? 나는 더 물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옆에 앉은 동창에게 조용히 예금이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보았다. 이튿날 나는 그 전화번호로 예금이를 찾아 갔다. 그녀는 여전히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진한 화장을 하고 문밖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예금 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였다. 엉거주춤 서 있는 그녀의 자세는 옛날 버들가지처럼 쭉 뻗었던 멋쟁이 몸매가 아니었다. 그리고 검은 포도 알처럼 맑고 또랑또랑하던 눈망울은 물에 풀려져 있는 새알같이 힘이 없었다. 두서없이 그려진 눈가의 아이섀도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어쩐지 슬퍼졌다. 낡은 아파트는 한 계단 한 계단 걸어서 층계를 올라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잘 오르질 못하고 있었다. "올 봄에 Y시에서 교통사고가 있었어, 아직 회복이 덜 되어서“ 나의 놀란 시선을 감지한 그녀가 힘없이 말하였다 나는 그를 부축하여 천천히 올랐다. 문 앞에 도착하니 집안에서 깽깽 거리는 강아지 소리가 들렸다. “너 강아지 키워?” 그녀는 말없이 씩 웃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새하얀 강아지 세 마리가 오구굿 달려 나와 깽깽 거리며 주인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이상한 냄새가 코 속으로 확 스며들었다. 그는 강아지들의 머리를 일일이 쓰답더니 주방으로 들어가 먹이를 장만해 놓고 강아지들을 불렀다. 집 안엔 아무도 없었다. 제일 먼저 나의 눈에 안겨 오는 것은 맞은 켠 벽에 커다랗게 걸려 있는 엄청 큰 사진액자였다. 나는 들어서자마자 그 액자 앞으로 다가갔다. 분명 예금이의 결혼사진이었다. 그런데 그의 옆에 있는 남자는? 나는 근시안경을 추켜올리며 자세히 바라보았다. 저 남자-나도 알고 있는 Y시의 유명한 문학선배? 바로 그 ‘푸른 머리야’를 쓴 시인이었다. 예금이가 그 옛날 그 시에 작곡을 하여 노래를 부를 때 우리는 맑은 하늘을 이고 서 있는 푸른 머리 벚나무ㅡ가없는 들판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듯 푸른 스카프를 날리며 서 있는 여름소녀의 상상에 심취 되어 있었다. 시인은 나의 친구와는 적어도 십년 이상은 연령차가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때는 우리 모두 그 시인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육십을 바라보는 내 친구의 얼굴도 사진사에 의하여 젊음으로 많이 손질되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너 남편은? 딸들은 다 시집가서 잘들 살고?” 나는 알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았고, 묻고 싶은 말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뭐가 그렇게 급해, 다 얘기 할게, 우리가 서로 소식을 끊고 있은 세월이 얼만데. 나한텐 엄청 많은 일들이…”   그는 내 손을 잡아당겨 같이 소파에 앉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곤 한참을 머리를 수그리고 묵묵히 있더니 흩어 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예금이의 남편은 몇 번이고 이혼을 요구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버티고 남편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았다. 남편도 끝까지 외지에서 독신생활을 고집하였다. 원래 술을 좋아하던 남편은 잦은 연회와 파티에서 늘 만취된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혼자 있을 때도 맑은 정신일 때가 별로 없었단다. 어느 날, 그 먼 곳에서 갑자기 소식이 왔다. 남편이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남편은 그때 중국 돈 몇 십 만이라는 상상 밖의 수액의 돈을 통장에 남겼다. 회사에서 몇 번이나 뛰어 난 연구 성과로 거금의 장려금을 탔었단다. 예금 이는 즉시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그는 숨어서 울고 있는 그 여자도 봤다! 저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웬일인지 예금 이는 달려가 그 여자를 붙들고 같이 울고 싶었다.   시집간 세 딸들에게도 얼마의 금액을 나눠주었다. 그리곤 마음을 달래려 Y시로 떠났다. 여관의 한 장사꾼 아줌마가 저녁이 되자 그녀를 무도장으로 끌었다. 아직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하는 예금이의 미모와 몸매, 노래와 춤, 천부적인 재능은 금방 무도장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았다. 그녀는 그곳에서 슬픈 노래도 불렀고 슬픈 춤도 추었다. 바로 그곳에서 그녀는 십여 년 전에 상처하고 혼자 살고 있는 그 남자를 만났다. 퇴직하고 할 일이 별로 없는 그 남자는 가끔 이렇게 무도장에 나와서 고독을 푼다고 했다. 그런데 춤을 추며 인사를 하고보니 그 남자가 바로 ‘푸른 머리야’를 쓴 시인이었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이 남자는 오선지도 잘 모르는 이 미모의 여자가 자신의 그 옛 시에 그처럼 감성 깊은 멜로디를 맞춰 넣은 것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에서 예금이의 숨겨진 천재 같은 반짝이는 무엇인가를 발견하였다.   “우리는 똑같이 미쳐 있었지, 역시 비슷한 사람끼리 알아보게 되어 있는 것 같아” 그녀가 그 남자를 데리고 강성으로 돌아와 딸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그것이 바로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 남자가 떠나기 바쁘게 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우르르 몰려와 돈을 몽땅 내어놓으라고 달려들었다. 왜 아빠가 남긴 그 피 같은 거액의 돈을 가지고 이렇게 급급히 다른 남자 품으로 들어가느냐고 떠들었다. 떠들고 싸우고… 그녀는 기진맥진하였다. 홧김에 그녀는 남은 돈을 몽땅 딸들에게 돌려주고 쫓아버렸다. 그리고 빈집을 뒤로 한 채 Y시로 다시 찾아갔다. 그 남자와 밤을 새우며 인생에 대하여 고독에 대하여 문학에 대하여 예술에 대하여 얘기했으며 무도장으로, 커피숍으로, 공원으로 마음을 풀었다. “그래도 그 남자가 내 인생에서 제일 내 마음을 잘 알아 줬던 것 같아. 참 좋은 사람이었지!” 액자의 사진을 보며 예금 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참 말을 끊고 있었다. 그 힘없는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는 한숨을 푹 쉬고 얘기를 계속 했다. 어느 날인가 그 남자가 속이 불편하다고 하였다. 많은 검사를 끝낸 의사는 말기췌장암이라는 무서운 선고를 하였다. 그녀는 첫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보다 훨씬 더 충격이었다고 털어 놓았다.몇 년 동안 병수발을 하면서 그는 뒤에서 한 없이 울고 또 울었다. 그래도 그는 가버리고 말았다. 그 남자의 뒷수습을 다 끝내고 강성으로 돌아오려던 날, 깊은 수심에 잠겨 있던 그는 무의식중에 붉은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속도를 미처 줄이지 못한 승용차에 부딪치고 말았다. 허리를 다치고 다리가 골절되었다. 그는 심신이 만신창이 되어 Y시를 떠나 다시 이고장의 비어있던 옛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휭 해진 집안엔 낡은 가구들 몇 점이 조는 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개털이 날려 다녔다. 봄철이어서 강아지들도 털갈이를 하는 모양이었다. 털이 묻을 것 같아 나는 내 가방 놓을 자리를 찾느라 한참 서성거렸다 내 모양새를 보고 그녀는 웃으며 말하였다. “집안이…내가 다리도 허리도 잘 못 쓰니 집안 꼴이”   침대는 두 개였다. 그의 집에만 오면 항상 한 이불을 덮고 밤을 새우며 끝없는 얘기로 밤을 새우던 일이 생각났다. 오늘 저녁엔 어떻게 하는 거지?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가 말하였다. “이 강아지들 셋 다 아직 어려서 내가 데리고 이 침대에서 잘 테니, 넌 저쪽 침대에 가서 혼자 편하게 자라” “강아지를 데리고 한 침대에서 자?” 머리를 끄덕였다. 강아지들은 그의 유일한 식구니까 한 이불 속에서 외롭고 고독한 밤을 강아지들과 보낸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 이불이라니, 그 털?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방안이 캄캄하였다. 그녀의 입에선 더는 문학과 예술, 자작곡들 아무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간혹 이것저것 물으면 동문서답 식이었고 어찌 보면, 이상하게 횡설수설 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의 이불속에서 강아지들의 깽깽거리는 소리가 가끔 들렸다. 아아, 정신적으로 얼마나 고독하면 저럴까? 나는 코등이 찡해졌다. 내가 안간힘을 써서 겨우 잠이 들려 할 무렵이다. “너 외로움이란 거 알아?" “알만해!” 잠기 어린 소리로 대답하였다. “ “알긴 무슨, 아플 때 물 떠줄 사람 하나 없는 것도 그렇고…환갑이 넘은 여자가 말이야…” 한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또다시 혼곤히 잠이 들려 하는데 말소리가 들려왔다. “ 넌 모르지…한 밤중에 두 다리가 걷잡을 수 없이 움씰거릴 때가 있는거, 웬일인지 몰라 뒤척거리다 비로소 느낌을 알게 되는데, 손을 팬티 속에 넣고 엉성해진 털(거웃) 등에 대고 투정부리는 애 얼리듯 그 외로워하는 것을 한참 문지른다는 사실 상상해봤니? 그러면 그것이 착각을 하고 드디어 …”   나는 자던 잠이 싹 달아났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들었지? 숨을 죽이고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처럼 숨김없는 “고백”에 깜짝 놀랐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에 면사포를 씌워야 하고 색깔을 뿌려야 하는가? 만약 다른 사람이 그의 이런 “시크릿”을 들으면 분명 육십 줄에 들어선 늙은 여자가 미친 소리 한다고 할 것이다. 자신들이야 어떤 경험을 했었던 지간에.   이튿날, 날이 새어 한결 환해진 방안을 보니 구석구석 손갈 데가 너무 많았다. 여기저기 청소를 하며 침대 밑을 보니 하느님 맙소사 이걸 어찐 담? 강아지들의 똥 덩어리, 털 무더기들이 수북수북 쌓여있었다. 강아지들은 그 어둑한 곳을 자기들의 변소 칸으로 정해 놓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허리를 조금도 구부릴 수 없는 예금 이는 그 침대 아래를 한 번도 내려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청소를 마친 나는 그에게 돈 오백 원을 주며 강아지들 집을 하나 사다 놓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돈으론 다른 수요 되는 물건도 사라고 하였다. 이렇게 큰돈을 주느냐며 그는 거의 허리를 굽히며 받았다. 물론 당시에 그 액수가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 눈에 익숙해 왔던 콧대 높은 친구의 보지 못했던 자아비천의 자세가 너무나 낯설게 안겨왔다. 닭똥 과자 하나도 쪼개 먹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너 왜 이러니? 나는 가슴이 저렸다.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북경의 친구 하나가 오늘 강성에 오는데 어느 공무원 국장으로 있는 동창 집으로 오니 그곳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예금이도 동창이니 같이 가자고 하였다. 그는 아주 좋아하였다. 그는 장롱의 많은 옷들을 꺼내놓고 고르기 시작했다. 그가 좋아하는 많은 옷들은 대부분 Y시에 있을 때, 그 사랑하는 시인 남편이 사준 거라고 하였다. 잠시 눈시울을 붉히는 덧 하더니 금방 기분을 되살리며 거울 앞에서 이 옷 저 옷을 견주어 보았다. 그러면서 나보고도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하나 골라 가지라 하였다. 나는 저 옷이 꾀 예쁜데 하면서도 고개를 흔들었다. 보아하니 이런 모임에 오랫동안 참석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의 아픈 다리와 허리가 엄청 불편해 보였지만 모처럼 좋아진 그의 기분이 보기 좋았다. 국장 집은 넓고 고급스러웠다. 강성에서는 꽤 손꼽히는 사람들이 모인 듯 했다. 내가 절룩거리는 예금 이를 데리고 들어서자 나를 반겨 맞던 북경의 그 친구가 금방 낯빛이 흐려졌다. 다른 동창들도 애써 불쾌감을 감추고 있었다. “너 아직도 쟤하고 친하니?” 나는 머리를 끄덕이며 어제 저녁도 예금이네 집에서 잤다고 말하였다. “쟤 강성에서 소문났어! 미쳤다고 부르는 사람 없어. 툭탁하면 분수없는 말이나 지껄이고 저 주제에 노래도 뭐 가수보다 지가 더 잘 한다나 ” 내 귀에다 귓속말을 하였다. 그런데도 눈치 없는 예금 이는 내가 그에게 돈까지 줬다는 자랑까지 하였다. 며칠 후, 나는 다니던 직장에 볼 일도 있고 하여 그녀와 함께 세린하가 흐르는 고향을 찾아갔다. 우리는 세린 하 강변을 거닐며 옛날을 얘기하였다. 그리고 세린 하 다리에 서서 다니던 모교 저 멀리 높은 굴뚝도 바라보았다. 그것은 사람의 시체를 태우는 화장장의 굴뚝이었다. 그 화장터를 학교 근처에 지을 때 우리 모두가 재수 없다고 몇 날 며칠을 불평을 부리던 일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드니 그 굴뚝을 바라보는 감회가 또 달랐다. “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어떤 한들을 풀어내고 있을까?” 예금의 이 뜻하지 않은 말을 들으니 어쩐지 마음이 울적해졌다. 글쎄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한들을 풀려고 할까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갔던 이런저런 일들이 머리에 맴돌았다. 특히 예금이의 낯설게 변화된 모습은 계속 나를 우울하게 하였다. 어쩌면 그렇게 되었을까? 나는 폰을 들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돌아온 후 잘 있느냐고, 그리고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굳세게 살아가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전화를 걸자 기다렸다는 듯이 금방 받았다. 그런데 내가 미처 인사를 다하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혹시 내 그 옷 가져갔어? 나비리본의 하늘색 블라우스 말이야?” “뭐? 무슨 말 하는 거야? 옷이라니?” “그 있잖아, 그날 놀러가던 날, 내가 너에게 보여줬더니 네가 엄청 예쁘다고 했잖아 그 옷 Y시에 있을 때, 우리 그 선생님이 사주신 건데?” 나는 예금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를 몰라 어리둥절해 있다가 가까스로 용건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는 한대 얻어맞은 것 마냥 띵했다. 설마 나를 도적으로? “너밖에 왔다간 사람이 없어서 말이야?” 심장이 쿵쿵 뛰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참 심호흡을 한 후, 나는 소리 질렀다. “너 과연 미쳤구나! 정말 무섭다!” 그리고 휴대폰을 콱! 닫아버렸다. 이런 상대에겐 구구절절 해석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정말 나를 그렇게 모르고 사귀어 왔단 말인가? 어쩌면 나를 그런 상상으로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주위 친구들이 왜 그를 피하며 미쳤다고 하는 지 비로소 깨달음이 왔다. 이렇게 그와 나의 우정은 끝을 맺었다.   약 1년쯤 지나서였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고향에 갔다 온 친구가 나를 특별히 찾아왔다. 역시 우리 강성 사람이었다. 그가 예금이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예금이가 고향에 돌아온 그녀를 찾아 왔더란다. 예금 이는 우리 둘 사이에 벌어진 사연을 이야기 하면서 반년 후에 그 옷을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찾아내었다고 했다. 생전 손님이라곤 없는 자기 집에 나밖에 왔다간 사람이 없었기에 경솔하게 판단하였다는 것이었다. 후에 알고 보니 강아지들의 수작이었단다. 그러니 부디 용서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바뀌어 진 전화번호도 보내왔다. 제발 전화 한 통만 걸어달라는 것이다. 할 말이 많다고 하였다. 그 후에도 한국에서 강성에 갔다 오는 친구들은 번번이 나를 찾아와 그의 용서를 전하였다. 그러나 한번 굳어진 나의 마음은 풀리지가 않았다. 그 후, 그녀의 소식은 다시 잠잠해졌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몇 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나는 문득 예금이를 떠올렸다. 소녀시절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갖가지 색상으로 떠올랐다. 생각지 않던 회한과 성찰이 내 가슴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용서를 “구걸”했던 예금의 마음이 보이는 듯 했다. 그녀는 지금쯤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또 다시 고향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강성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예금이부터 먼저 찾아갔다. 그녀가 살던 집에는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번화해진 강성은 낯선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나는 아는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그녀에 대해 물었다. 마지막 전화를 받은 친구가 분명한 소식을 말하였다. “내가 그 집 큰딸을 만났었는데 저네 엄마 소식을 물었더니 엉엉 울더라!” “왜?” 나는 다그쳐 물었다.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었나봐. 집안에서 목을… 무슨 한이 그렇게 쌓였는지 끝까지 눈을 뜨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딸들이 기절 통곡을 했단다.”   그 뒤에 친구가 뭐라고 세세히 상황을 얘기하는지 내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자살!’ 이란 두 글자만 내 머리를 후려치고 있었다. 오랫동안 엄마를 방치하고 무관심했던 딸들의 마음도 얼마나 큰 천벌을 받고 있으랴.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며 이름 모를 무엇인가를 원망하고 한탄하며 밤거리를 방황하였다. ‘용서!’ 란 한 마디가 그렇게 힘들었던가! 이튿날, 직장 퇴직금 때문에 다시 세린하가 흐르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일을 마치고 혼자서 세린 하 강변을 찾아왔다. 둘이서 닭똥과자를 먹으며 마냥 즐겁기만 하던 웃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가 큰 소리로 낭송하던 고리키의 “해연의 노래”가 귀에 쟁쟁히 들려온다. 그리고 그의 아름다운 노랫소리, 가슴을 파고드는 자작곡들… 저 멀리 화장터의 굴뚝에선 오늘도 연기가 피어오른다. 저승에 가는 저 사람들은 어떤 한들을 풀어 놓고 있는 것 일까? 아아, 사라져 버린 하얀 무지개…     프로필 중국작가협회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장. 한국 공무원 문인협회 회원 중단편소설집“여인들의 마음” 북경민족출판사, “홀리워 가는여인” 서울 과학과 사상사 각각 출판. 도라지, 흑룡강 신문, 길림신문 해외판 등 부분 문학상 수상. 설원 컵 소설대상, 해외 문학상 수상등    
8    중편소설-송화호의 푸른물 댓글:  조회:961  추천:0  2019-11-22
  송화호의   푸른 물        세월을 거슬러 어느 때 부터의 일이라고 그 년도를 짚기는 어렵지만 5개현이 도시 하나를 둘러싸고 무어진 이 고장 잡거지구 사람들은 산수 맑은 아름다운 송화호를 명산대천 중에서도 이름 높은 유람지로 삼고 하루에도 몇 패씩 송화호로 모여오군 하였다. 오늘도 B탄광구역에서 오는 유람버스가 흥겨운 조선민요 가락으로 녹음을 헤가르며 송화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자그마한 B탄광구역은 이 잡거지구의 주요 석탄 생산지다. 탄광 구역에는 조선족들이 남새밭의 봉선화처럼 다문다문 끼어 살고 있었는데 김씨, 박씨, 리씨, 최씨 하며 몽땅 손을 꼽아도 불과 스무나문 집밖에 되지 않았다. 둬달 전에 남편을 따라 이 탄광구역으로 이사 온 나는 이곳 사람들과 별로 낯이 익지 못했다. 하지만 나도 손목을 잡아끄는 이곳 제 민족여인들의 인정이 고마워 유람버스에 올랐던 것이다. 우리 백의민족의 습관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여기 잡거지구 조선족들은 일년에 한 번씩 즐거운 휴식의 하루를 마련하여 송화호로 유람을 오군 한다.   버스 안은 명절기분으로 들썩이었다. 나는 워낙 말하기도 좋아하지 않고 숫기도 있어 즐거운 복새판에 쉽게 끼어들지 못했다. 나의 앞에 앉은 탄광병원 김 원장 부인은 탄광구역의 조선족들이 다 동원되어 왔는데 유독 안경쟁이네 한집만 빠졌다며 사람이 너무 고지식하니 재미가 없다고 떠들었다. 안경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요즘 시대 ‘안경쟁이’ 란 별명은 지금 상국에 어울리지도 않았지만 이 탄광구역에서 10년 이상 산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이 모두 그저 안경쟁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없다는 것 같다. 문화대혁명의 고조가 방금 누그러진 어느 해인가 큰 키에 습관적인 좀 구부정한 어깨에 반창고로 왼쪽 안경다리를 붙여 건 중년 사나이가 가족을 데리고 이 탄광구역에 왔다. 그리하여 그는 당시 이곳 조선족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안경을 낀 사람으로 되었는데 그는 안경쟁이들에게 흔히 내비치는 인텔리다운 멋이라곤 전혀 없이 오자마자 탄갱 속으로 내려가 석탄을 캐는 탄부로 되었다.   그에게는 아주 나쁜 버릇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많지 않은 동포들의 오락 장소에 와서는 소리를 하고 춤을 출 대신 한쪽 구석에 앉아 술만 마시고 담배만 태웠다. “아니 이 사람,이게 뭔가? 그래 도라지 타령 같은 것도 못하나? 놀음판에서 입을 봉하고 있다니?” “난 정말 소리란 건...”  “소리를 못하면 하다못해 젊었을 때 부르던 사랑 노래라도 좋잖은가 그것도 정 못하겠으면 하다못해 어릴 때 부르던 ‘산토기 토기야 너 어디로 가니?’ 하는 것도 부르란 말이야 오락판이 다 식지 않나” 그 사람은 권하다 못해 두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토끼 뛰는 흉내까지 내며 진땀을 뺀다. 그러면 그  안경쟁이는 마지못해 천천히 일어나 한마디 부르곤 하는데 번마다 들어봐도 언제나 우크라이나민요 그 노래였다.        가없이 넓은 우크라이나 전야에      맑은 물이 흐르는 그 강변에      두 그루의 아름다운 백양이  자랏네      ... ... 점잖은 자태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부드러운 바리톤은 의외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주었다. 그는 노래를 다 하고는 술을 몇 잔 들이키곤 다시 입을 봉하고 구석에 앉아있군 하는데 눈가가 축축해 보이는가 싶다간 어느새 끝내는 눈물을 흘리고 만다. 사람들이 놀라며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그는 일언반구도 없이 그저 씁쓸하니 웃으며 눈물을 닦고 만다. 그래서 오락장소가 시시해진다고  사람들은 이 괴상한 성격을 가진 안경쟁이를 차츰 술좌석에 부르지 않았다. 전대미문의 중국의 그 문화대혁명은 끝내 결속을 짓고 권력을 남용하던 4인방은 무너졌으며 넓은 대륙은 모든 것을 바로잡기 국면으로 돌아 섰다. 그 나날에 사람들은 뜻밖에도 그가 연변대학 정사학과 졸업생 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그는 광무국 자제중학교에 들어가 요행 교편을 잡게 되었다. 학교에 들어가던 날, 그는 전례 없이 기분이 좋았다. 얼굴에 주름이 실리기 시작했건만 그는 옷매무시도 특별히 다듬고 반나마 빠져버린 머리도 반지르하게 빗어 올렸다. 그리고 안경 속에서 언제나 우울하기만 하던 눈길도 생기로 차 넘쳐 유난히도 빛이 났다. 그는 번마다 교수안을 온 성의를 다 들여 썼다. 하지만 모든 과목을 한어로 교학해야 하는 이 한족 중학교에서의 그의 한어 수준은 늘 학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그러다보니 그는 속을 태우며 배워주던 역사학과를 얼마 지나지 않아 내놓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그는 학교의 총무 일을 맡아 보는 말석 교원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근년에 그의 얼굴은 또다시 무섭게 일그러졌다. 술좌석을 마주하면 권하지도 않는 술을 또 혼자 몇 잔씩 쭉쭉 들이키고는 눈시울을 붉히고 멍해 앉아있군 하였다.   중앙방송국에는 그와 아주 친한 동창생이 있었다. 어느 날, 북경의 그 동창생이 찾아왔다. 그날 안경쟁이는 이 기쁨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처음으로 그의 집에 술상을 차려놓고 이곳 조선족들을 다 불렀다. 듣는 말에 의하면 그 동창생은 이 집에 찾아 올 때 고급술이며 남방 과일들을 한 짐 들고 왔다고 한다. 했건만  주인집에서는 동내 사람들을 다 청하면서도 이름 있는 반찬은 하나도 하지 않고 그저 집에서 키우던 중개 한 마리밖에 잡지 않았다. 놀러오는 사람들이 모두 빈손으로 오지 않았을 테니 오히려 주인집에서 얻어먹은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대학생이란 게 체념도 없이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른다고 수근 거렸다. 그래도 동창생은 대학을 나온 친구가 총무 일을 하는 것은 인재를 매몰시키는 일이라면서 교육국의 아는 사람 통해 그에게 걸맞은 조선족중학교로 전근시켜 주겠다고 찾아 왔다지 않는가. 이런 고마운 친구에게 개고기를 대접하고 싶으면 살찐거로 큼직한 것을 사서 잡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절반은 얼려서 보낼 수 도 있고. 지금이야 어느 집에서나 음식을 차린다하면 물고기요 해삼이요 해서 한족식 고급 술 안주들로 스물 몇 가지씩 차려 놓는 때가 아닌가?  “그러니까 그 사람 아직까지도 그 반창고 붙인 안경을 걸고 다니지 않소?”  “하긴 그 집에 수년간 반신불수로 누워있는 상노인이 돈을 무척 쓰고 세상을 떴지만 아무튼 사람이 너무 고정하고 융통성이 없다니까. 그러게 동창생이 찾아 올 때까지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고도 총무질을 하는 거지.” 김원장 부인이 안경쟁이에 대한 말을 꺼내자 아낙네들이 앞을 다퉈 가며 이렇게 네 한마디 내 한마디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까지 끝일 줄을 몰랐다. 그들의 말을 듣노라니 우울하고 고정하고 전혀 융통성 없이 인색한, 보지도 못한 안경쟁이의 형상이 나의 머리에 희미하게 나타났다.    “여보, 뭘 그리 생각하오? 풍만에 다 왔소. 저길 보오.”  남편이 일깨워 주어서야 나는 물소리 바람소리 요란한 곳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발전소가 눈앞에 나타났다. 아, 여기가 바로 북극의 유명한 전기 도시-풍만발전소로구나! 사품 치며 흐르는 송화강의 허리를 잘라 막아선 높이91M, 길이1,080M 된다는 거대한 언제, 세찬바람에 출렁이는 키 높은 물결, 가없이 펼쳐진 400리 송화호...,송화호는 실로 장관이였다. “자-여러분, 여길 왜 풍만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풍만풍만 (風滿 ) 바람이 가득하다는 말이랍니다. 여기에 들어서자마자 난데없는 바람이 몰켜불어 제치는 걸 보십시오!”  “에끼 이사람, 아는 소릴 작작하게. 풍만이라 하니 바람 풍자를 쓰는 줄 아는가? 풍족하고 많다는 그 풍( 豊)자를 쓴다네 그러니 물이 그득 차고 풍요롭단 뜻이지.” “핫하하!” 누군가 그 사람의 ‘박식’을 까발려 놓는 바람에 버스 안에선 웃음보가 터졌다 .나루터에 이르니 기복을 이룬 청산에 둘러싸여 아득히 뻗어간 송화호가 한눈에 안겨왔다. 장백산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이여서인지 송화호의 물은 유달리 맑고 푸르렀다.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호수를 둘러싼 녹음 짙은 청산이 물 위에 비쳐 들었는데 바람이 불때마다 호수면은 눈부신 햇빛에 반사되어 마치 은비늘을 휘뿌려 놓은 것 같다. 저 멀리 떠나가는 돛배 ,웃음을 가득 실은 유람선, 모래불의 점점의 수영수들, 구석진 곳에 까딱 않고 앉아있는 낚시꾼들, 실로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가 펼쳐진 듯 했고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는 수채화를 초월한, 송화호 특유의 아름다운 대자연의 교향악으로 가슴에 가득 울려 왔다. “아, 송화호! 내 너를 한품에 안으리라!” 누군가 나루터에 턱 버티고 서서 익살스레 소리쳤다. “흥, 한품에 안아? 두 팔을 벌리고 들어가 봐, 그림자도 못 찾을걸!” 내가 웃고 떠드는 그들의 거동을 멍해서 보고 있는데 김원장 부인이 다가서며 귀띔해 준다. “저 사람들은 여기에 올 때마다 어느 해인가 처음 여기로 유람을 왔을 때 안경쟁이가 시를 읊듯이 한마디 한 말을 올 때 마다 저렇게 흉내를 낸 다오. 이번에 안경쟁이는 퍽 섭섭할 걸 ,그 사람은 다른 모임에는 잘 끼지 않지만 송화호 유람 하나는 좋아 했으니까”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시를 읊듯이 송화호를 품에 다 안으련다는 안경쟁이와 우울하고 인색하다는 안경쟁이는 또 얼마나 다른가? 그에게도 그처럼 풍부한 감정세계가 있는가? 우리가 탄 유람선은 거북섬을 지나 계속 앞으로 달린다. 시원한 바람이 귀밑머리를 날려주고 “처절썩 철-썩” 배전에 부딪치는 물결들이 아낙네들의 치맛자락에 물방울들을 튕겨준다. 그리고 저 멀리 낙타봉 앞에서 이름 모를 물새 한 마리가 물 우에 내리 꽂이는 것 같더니 어느결에 물고기 한 마리를 입에 물고 날아오른다. “자, 우리 오호산에 내려 점심을 먹기요!” 옛날에 호랑이 다섯 마리가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구렁이와 싸워 이기고  저렇게 강변에 우뚝 발을 붙이고 섰다는 오호산에 우리 일행은 발길을 내리웠다. 모래톱을 지나 풀숲 길섶으로 들어서니 송화호의 푸른 물을 끼고 선 아늑한 “별장”이 안겨왔다. 오호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장사꾼들이 가지각색으로 튀김을 한 크고 작은 물고기들을 손에 받쳐 들고 앞 다투어 싸구려를 부른다. 물고기 음식점에 들어가면 한 가지 물고기를 가지고도 열 몇 가지 고급요리를 만들어 낸다는데 송화호에는 뛰노는 물고기가 백여 종이나 된다지 않는가. 그러기에 물고기 맛을 보려고 송화호로 유람을 떠난다는 말도 과언이 아닌 상 싶다. 나는 저도모르게 이 수천수만의 생명들을 번식시키고 키워주는 송화호의 품위는 더욱 우아해 보이고 그의 자태는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리라는 감탄에 젖어 들었다.   맥주 상자며 사이다 상자를 받쳐 든 남정들과 푸짐한 음식 그릇을 해 인 아낙네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려가 자리를 잡았다. 김원장 내외가 들고 온 쌍나발 녹음기에서는 빨갛고 파란 팥알만 한 불들이 줄을 지어 반짝거리더니 뒤이어 즐거운 노랫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니, 김원장네는 그전에 자그마한 녹음기 하나 있던 것 같은데 저렇게 멋진 녹음기는 또 언제 샀소?” 살림살이에 시샘 이 많은 아낙네 들이라 남의 집 재물이 붇고 주는 것은 용케도 잘 알았다. “원래 집에 있던 건 우리 집 주인이 받은 상금으로 막내 놈이 영어 공부 하라고 사준 거고 저거야 천 여원 짜린데 일본서 들여 온 거라오.”  실팍한 엉덩이에  예쁘장한 얼굴을 가진 김 원장 부인의 자랑 끼 넘치는 말이다. “저네도 녹음기 있소? 우리 동내에서 조선집치고 안경쟁이네를 내 놓군 그래도 집집마다 좋으나 나쁘나 다 있다오!”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물질문명이 바야흐로 발전하고 있는 80년대에 와서 그 누가 수치스럽게 “우린 못 살아요. 그런 건 아직 못 샀는데요.” 라고 선뜻이 말하고 싶으련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 야 없지 않는가. 그리하여 나는 그저 듣기 좋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살 바엔 외제 녹음기 한 대 준비하려고 돈을 모으던 참인데 뜻밖으로 이사를 오느라 돈을 많이 쓴데다가 또 오자마자 금년 국채 임무를 완성하느라 몇 십원씩 떼우다 나니 계획이 파탄 됐네요. ‘ “국채소리가 나오니 하는 말이지만 우리도 저 녹음기를 사느라 돈을 싹 긁어 썼는데 글쎄 단위에서 날보고 우리 집 월급이 높다고 남보다 국채를 더 사라 하지 않소.” 남정들 쪽에서도 술이 몇 순배 돌자 음식을 차려 놓느라 분주했던 아낙네들도 제법 올방자를 틀고 앉아서 빨간 찔광이 술을 잔들이 찰찰 넘치게 부었다. “그래서 어쨌소?” 아낙네들은 호기심이 번쩍 나는 모양이다. “오늘은 이렇게 흐늘거리고 놀아도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인데 7,8년이나 기다려야 할 국채를 그리 많이 사서 뭘 하겠소? 그리고 나라의 현대화만 현대화요? 가정 현대화 건설도 해야지, 그래서 나는 우리 친척이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돈을 싹 꿔줘 국채 같은거 못 사겠다고 딱 잘라 말했소!” “야, 원장부인도 이제 거짓말이 슬슬 나오, 하하하! 그러나 어쨌든 국채를 많이 사는 사람들도 있습데, 신문에도 그렇고 방송을 들을라니 농촌의 어떤 전업호  들은 몇 천원 몇 만원씩도 샀다지 않소?!” “그런 사람들이야 돈이 너무 많아 아무래도 저축할 돈이니 그러지. 흥 우리 같은 월급쟁이들이 그렇게 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해, 내 손에 장지진다!” “지금은 사람마다 제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아등바등한단 말이요, 못 살아 보지,    안경쟁네 처럼 남에게 업수이 보이지나 않나!” 김원장 부인의 위력 있고 열기 띤 말소리에 모두들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우리 집처럼 아직 녹음기도 사지 못했다는 안경쟁이에 대해 이상한 동정심과 의문이 갔다. 탄광에는 수입들이 높아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모두 이만저만이 아니라는데 안경쟁이 네는 어떻게 살길래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는 건가?   날 좀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보소- 누군가 소리를 하기 시작하자 돈에 대해 열변울 토하던 원장 부인은 제꺽 그 노래를 받아 부른다.   네가 잘나 내가 잘나  그 누가 잘나  구리동전 십원 짜리가 잘나-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나 팔을 흔들며 덩실덩실 춤추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곱새춤으로 분주히 돌아가는 사람. 왁새처럼 다리를 껑충거리며 너울거리는 사람... 같이 돌아가던 아낙네들이 입을 싸쥐고 요절하게 웃는다. 실로 한족들이 대부분인 탄광에 살면서 오랜만에 노래와 춤을 즐기는 제 민족의 짙은 생활미를 맛보는 절호의 기회였다. 긴장한 사업과 고된 노동의 여가에 한번 씩 이렇게 마음의 탕개를 확 풀어놓고 들끓는 환락의 기쁨을 맛본다면야 살아도 사는 멋이 있지 않는가! 문득 나는 환락과 웃음소리 속에서 방불히 그 어느 구석에 머리를 푹 떨어뜨리고 애상에 묵묵히 잠겨있는 그 안경쟁이를 보는 듯싶었다.   “자, 주의! 사진을 찍겠습니다. 이건 채색사진입니다!” 사진 기술이 있는 나의 남편이 새 고장의 동네 분들과 처음으로 모여 노는 장소에서 자그마한 기여라도 해 보려는 듯이 사진기를 지니고 왔던 것이다. “저-사진사, 작년에 여기 와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넣고 왔는데 사진 기술이 어떤가 보고 좀 평가를 해 보오.” 나도 나의 남편도 원장 부인의 손에서 제꺽 사진을 받아 쥐였다. 한창 음식상을 벌려놓고 먹으며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나의 눈앞에는 입들을 헤 벌리고 물고기를 먹으며 마음껏 웃고 있는 뭇 사람들과는 달리 한쪽 구석에 쪼크리고 앉아 입을 꾹 다문 채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안경 낀 한 중년 사나이의 모습이 첫눈에 안겨 왔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홀연 내 머릿속에는 학창 시절에 그처럼 익숙하면서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한 형상이 살아났다. 나는 도정신하여 보고 또 보았다. 비록 여위고 늙었지만 나는 끝내 그를 알아보았다. 틀림없다, 그이였다! “아주머니, 이분의 이름이 무엇이래요?” 나는 원장 부인의 팔을 마구 흔들며 다급히 소리쳤다. ‘그게 바로 오늘 하루종일 외우던 안경쟁이 아니오? 이름은 뭔지 모르겠지만 성은 최가라 합데.“ “이분이 바로 안경쟁이라구요?!” 사진속의 이 사람이 바로 오늘 하루 종일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그 안경쟁이란 말인가?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나는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이분은 저의 최 준 선생님 이예요! 선생님, 어쩌면...제가 나쁜 사람 이예요 .이 고장에 이사 온지 두 달이 다되도록...” 나는 놀 멋도 먹을 멋도 없었다. 그저 날개만 돋쳤으면 당장이라도 날아가 그리운 선생님의 품에서 마음껏 흐느끼고 싶었다. 아직 인간과 세상물정에 눈을 뜨지 못했던 나의 어린 소녀 시절에 진정으로 고상한 인간의 도덕과 따듯한 인간애를 깨우쳐준 잊을 수 없는 선생님, 그러나 뜻하지 않던 혹독한 세파에 밀리워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 버렸던 그이... 지금의 안경쟁이로만 알고 있는 이 고장 사람들이야 어찌 그 옛날 그처럼 존경스럽던 최 준 선생님을 알 수 있으랴! 쏟아지는 나의 눈물에 사람들이 모두 어안이 벙벙해 했다...     그것은 3년 재해가 전국을 휩쓸던 ,내가 초중 1학년에 다닐 때 일이다. 어느 날 오후, 우리 초중1학년 여학생들에게 종자감자 눈을 뜨는 일이 맡겨졌다. 끼니마다 말간 수수죽 물과 나무껍질 대식품 (大食品)으로 주린 배를 겨우겨우 달래던 그 기황의 나날에 감자란 말은 얼마나 우리들의 귀맛을 당겨 주었던가! 창고문을 활짝 열고 수북이 쌓인 감자 무더기를 보았을 때 우리 여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군침이 삽시에 입안에 가득 고이며 침을 꿀꺽 삼키였다. 한 자리에 모여 앉기만 하면 그 굶주림 속에서도 동심에 떠들고 까불며 웃기를 좋아하던 열 네댓 살의 소녀들 이였건만 자그마한 손칼을 들고 감자무더기를 에워싸고 앉은 그날만은 웬일인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입을 봉하고 앉아 일만하였다. 토실토실한 감자알을 손에 들고 손칼로 감자 눈을 오려낼 때마다 차분한 감분물이 돋아나는 먹음직한 젖빛 감자 속이 눈에 확 안겨왔다. 우리는 감자무더기를 마주하고 앉을 때부터 신경을 팽팽하게 조이고 올리미는 식욕을 억제하느라고 안간힘을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 하였다. 저마다 자신을 억제하지 못했던지 서로 슬금슬금 눈치를 보느라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방금 문명에 눈이 트기 시작한 우리 앳된 사춘기 여학생들에게 이것은 얼마나 끔찍한 생각 이였던가. 그런데 문득 저쪽 구석에서 서걱서걱 생감자 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학생들의 눈길은 일제히 그 구석으로 쏠리었다. 눈이 우묵하구 이마와 광대뼈가 좀 튀어나온, 남자애처럼 툭하게 생긴 한 여학생이 눈을 뜨고 남은 감자를 흙이 묻은 그대로 입에 넣고 어석어석 씹어 먹고 있지 않는가! 그의 눈은 깜짝도 않고 부릅떠져 있었다. 우리 모두의 숨 막힐 듯 한 찰나의 침묵- 조소, 질책? 아니, 그 선두성과  용기와 대담성은 구사일생을 주는듯한 고마움이었다! 뒤이어 여기저기서 서걱서걱하고 생감자 씹는 소리가 났다 .그 때 친구들 속에 끼여 앉아 사람을 못 견디게 괴롭히는 식욕의 시달림을 가까스로 참고 있던 나도 마침내 ‘썩-둑’하고 한 조각을 재빨리 베물어 입안에 넣었다. 그 달큼하고 향긋한 생감자 맛은 얼마나 사람을 미혹시키는 별미였던가! 맛을 보고나니 구미가 버쩍 더 동해 미처 껍질을 발가 낼 사이도 없이 입에 대고 깨물어 먹는 판이다. 여학생들의 깨끗하고 발그스름하던 입술은 모두 거무스름한 흙물이 도배질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걸 보고 웃으며 놀려 줄 새도 없다. “서걱서걱..”그저 생감자 씹는 소리만 요란스레 날 뿐이다. 바로 이때 “삐걱-”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등지고 앉은 나는 또 감자 한 조각을 막 입에 넣으려다가 마즌켠 애들이 입에 문 감자를 씹지도 삼키지도 못한 채 불룩한 입들을 해가지고 공포에 질려 서로 쳐다보는 것을 보고 그만 멍해졌다. 나는 감히 머리를 돌려 뒤를 돌아 볼 수가 없었다. 실내는 삽시에 물 뿌린 듯 조용해졌다. 그러나 문쪽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그럴수록 집안의 공기는 더욱 팽팽해졌다. 사람을 질식시킬 것 같은 침묵이었다. 우리들의 가슴은 그저 쿵쿵거리며 세차게 뛰기만 했다. 얼마나 지났는지 드디어 문이 “쾅”하고 닫기는 소리가 났다. 곧 터질 것 같이 팽팽하던 공기는 얼어붙은 듯 주춤하다 얼마간 누그러졌다. “얘, 방금 누가 왔었니?” 나는 문 닫기는 소리가나기 바쁘게 급히 앞에 앉은 친구에게 물었다. “최 준 선생님이” “엉?!” 최 준 선생님이란 말에 나는 더욱 놀랐다 .최 준 선생님이란 바로 정치과를 맡고 있는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었다. 웃음기라곤 별로 없고 나 젊은 선생 치고는 너무나 근엄한 얼굴을 가진 이 선생님을 학생들은 제일 두려워하였다. 무거우면서도 과단성 있고 분별 있는 행동거지 ,철리가 풍부하고 빈틈없이 짜인 그의 교학은 학생들의 마음을 꽉 틀어쥐곤 하여 상학시간에 누구하나 졸거나 잡담하는 현상이 없었다. 우리 반은 언제나 질서가 정연하고 학습 성적이 우수하였으며 무슨 활동에서나 우승을 따내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반 학생들은 모두 이런 담임선생님을 모신 우리 반 학생들을 몹시 부러워했다. 그런데 이런 엄격하고 권위 있는 선생님께 이처럼 망측한 일이 발각되다니? 강철 같은 규율과 제도를 강조하던 그 나날에 호된 처분은 둘째 치고 이 수치스러운 일이 전교에 퍼지면 우리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 이튿날, 우리는 또 뜻하지 않은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날 우리가 훔쳐 먹던 종자감자 속에는 송화강반의 어느 농촌에서 홀로 살고 계신다는 최 준 선생님의 할아버지네 종자 감자 반 가마니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종자감자를 구하지 못해 곤경에 빠져 있을 때 최 준 선생님은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기황에 시달리고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부석부석 누렇게 부어있었다. 집 공간에는 종자감자 반가마니가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 굶주린 배를 끌어안고서도  종자감자를 아끼고 있는 할아버지네 형편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또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 이였다.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봄철에 가서 그 많은 나 어린 기숙생들의 식량은 무었으로 보탠단 말인가 ... 그는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웬 일이냐? 사내대장부가 할 말이 있으면 해 봐!” “학교 애들이 너무 먹을게 없어서 ...돌아오는 해에 감자라도 심어야...” “뭐라고? 이놈아, 네 할아버지가 배가 불러 남겨 놓은 건 줄 알어?” 얼마나 부아가 났던지 할아버지는 부들부들 떨며 손자에게 달려들었다. “할아버지 알고 있어요. 한창 커야 할 학생들인데 너무 불쌍해서...” 할아버지 앞에서 그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할아버지도 눈물이 그렁하여 무거운 한숨을 쉬였다. 얼마가 지났던가, 할아버지는 끝내 머리를 끄덕였다. 손자가 종자감자를 자전거에 싣고 문 밖을 나설 때    할아버진 부디 한 푼의 돈도 받지 말라고 부탁까지 하였단다. 이일을 알게 된 우리는 수치와 자책감에 가슴을 쥐여 뜯었다. 정말 바늘을 삼켰어도 마음이 이처럼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며칠이 지난 뒤 학교에서는 한 단락의 생활을 총화하는 대회를 열었다. 회의가 시작되면서부터 우리는 커다란 손아귀에 붙잡힌 참새들 마냥 팔딱이는 가슴을 붙안고 손등만 내려다 보며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회의가 끝나 모두 다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 까지도 우리는 무사하였다. 학생들의 그릇된 행위에 대해 그처럼 에누리 없던 최 준 선생님이 어찌하여 여학생들의 도식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도 입 밖에 내지 않는가? 가슴을 지지 누르는 침묵 속에서 며칠이 지났다. 초조하게 기다려지면서도 어쩐지 불안스럽기만 한 정치과 시간이 드디어 닥쳐왔다. 교실문이 열리며 최 준 선생님이 들어섰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숭엄한 눈길은 안경알을 꿰뚫고 먼저 반급의 우수생인 나의 몸에 떨어졌다. 나는 가책과 수치감으로 하여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깨물었다. 학생들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선생님은 드디어 조용히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는 국제 국내 정세를 풀면서 3년 연속적인 재해에  처한 우리나라 인민들에게 어느 강대국의 묵은 빚을 한꺼번에 다 갚아야 하는 엄연한 현실을 알려 주었다. 나중에 그는 눈시울이 불그스름해 지며 이렇게 말씀을 맺었다. “동무들, 우리나라 인민들은 이를 악물고 재해를 이겨 낼 것이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 빚을 몽당 갚아 낼 것입니다. 우리는 생활상의 그 어떠한 곤란도 조국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으로 완강히 참고 견디며 전승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조국이 번영 부강 해 질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 동무들도 더는 생감자로 주린 창자를 채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학생들의 마음을 꽉 틀어지는 선생님의 이 격정에 그만 책상에 엎드려 훌쩍거리고 말았다. 뒤이어 그날 감자를 훔쳐 먹었던 우리반 여학생들도 모두 훌쩍 거리기 시작했다. 아, 선생님은 우리를 이토록 이해하고 계셨다! 평시의 근엄한 표정과는 달리 최 준 선생님은 가끔 나와 아기자기하게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았다. “책을 보기 좋아 한다지? 그래 요즈음 또 무슨 책을 보오?”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 엑토르 말로가 쓴 ‘집없는 소년’을 봅니다.” “음, 훌륭한 책이지. 그 중에서 누구의 형상이 제일 인상 깊지?” “불쌍하고 인정스러운 레미, 선량한 위딸리스 할아버지, 충실한 벗 마찌아...” “옳소! 나도 눈물을 흘리며 봤지. 그 불쌍한 사람들의 운명은  사람들에게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켜 주지. 그런데 그들이 왜 그런 비참한 유랑생활의 고통을 맛 보아야 했는지 생각해 보았소?” “...” “그것은 그들을 한품에 안아 줄 조국이란 것이 없기 때문 이였소‘ 혼잣말처럼 의미심장하게 이야기하시는 선생님을 바라보느라니 나는 선생님이 평시에 늘 외우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장백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송화강의 젖 줄기를 물고 살아가는 자손들이요. 그것은 다름아닌 중국의 조선족이라는 뜨거운 피줄기가 그기에 있다는 것이요.” 나는 어렴풋이나마 무엇을 깨달은 듯 싶었다. 그 후 우리가 고중 1학년이 되었을 때 대학 정사학부를 전업했다던 최 준 선생님이 뜻밖에도 우리의 로어 과임으로 되었다. “얘, 최 준 선생님은 마흔도 넘어 보이는데 왜 그냥 독신숙사에 있을까?” “마흔은 뭘, 얼굴이 겉늙어 보여서 그렇지. 이제 서른이 남짓한 모양이더라. 그런데 아직도 총각이래. 호호호...” 나이 든 여학생들은 가끔 귓속말로 젊은 총각 선생님의 사생활에 대해 관심을 가지군 하였다. “듣자니 최선생님의 외삼촌이 모스크바에서 번역관으로 있다더구나. 그리고 대학 시절에 그 나라에 갔다가 눈 맞은 처녀도 있었구.” 존경을 받는 총각선생님의 로맨스는 홀연 우리 여학생들의 흥취를 자아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최 준 선생님이 모스크바 외 삼촌네 집에서 대학시절의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을 때 그의 마즌켠 층집에서는 박씨 같은 새하얀 이발을 살짝 드러내놓으며 미소를 보내군 하는 한 어여쁜 조선족 여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푸른 커튼에 비꼈던 마지막 석양빛이 살그머니 사라지고 땅거미가 찾아 들때면 처녀는 손풍금을 안고 조용히 창문가에 앉아 우크라이나 민요를 타군 하였다. 이 노래는 최 준 선생님이 외 삼촌네 집에 도착하던 첫날 정원에 앉아 하모니카로 불러본 ,그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쏘련 노래였다.  가슴을 파고들며 깊은 사색을 불러주는 이 아름다운 선율은 두 층집 사이에서 오래오래 사라질 줄 몰랐다. 어느 날, 등산모를 눌러쓰고 아카시아 향기가 무르녹는 모스크바의 머나먼 교외로 나갔던 최 준 선생님은 뜻밖에도 나무 밑에 서서 생긋 웃음을 보내고 있는 그 귀여운 손풍금수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저물도록 들길을 걸었건만 걷는 길도 끝이 없었고 사랑 이야기도 끝이 없었다. 중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 이국 청년의 뜨거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처녀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고 말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엔 꼭 모스크바로 돌아오세요!” “모스크바로...아니, 내가 다시 와서 꼭 데려가겠소. 아버지 어머니도 없이 할아버지 슬하에서 커온 나는 나라 돈으로 지금껏 공부하고 있다오. 장백산 줄기줄기와 송화강반에 탯줄을 묻고 사는 우리 고향겨레들에겐 그나마 내가 수요 된다오...내 방법을 대여 꼭 그대를 데려 가겠소!” 청년은 뜨거운 약속을 남기고 돌아왔다.   돌아온지 얼마되지않아 전국적으로 갑자기 로어 학습을 중단시켰다. 갑자기 중국과 쏘련은 날카로운 정치 공세로 치닫았다. 모스크바로의 길은 완전 막혀 버리고 말았다. 우리 학교에서도 로어과를 취소하다보니 최 준 선생님은 또 역사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는 퍽 겉 늙어 보였다. 꾹 다문 거무스럼한 입술, 조용히 땅 우에 눈길을 꽂고 걷는 걸음걸이, 무거운 짐에 눌리운 듯한  축 늘어진 어깨... 이 모든 것은 쉰을 넘은 중늙은이를 연상케 했다.  혹독한 시기는 끝내 닥쳐오고야 말았다. 온갖‘잡귀신’을 잡아내는 “문화대혁명의 바람이 교정에 휘몰아치자 최 준 선생님은 첫 번째로 외국 특무선에 걸려들었다. “무엇 때문에 3년재해 때 학생들이 학교 종자감자를 훔쳐 먹는 일을 보고도 비판하지 않았는가? 작심하고 기숙생들을 굶겨 죽이자는 것이었지? 그리고 나라의 보조금으로 대학문까지 나온 고아가 무엇 때문에 모스크바 처녀를 사랑했는가? 그래 모두 나라의  어떤 정보들을 따돌렸는가?” 대자보들이 학교 벽과 강당에 잔뜩 나붙었다. 그처럼 존경하던 선생님이 외국 특무라니? 그럴 수 있는가? 나는 가끔 공포에 질린 눈으로 가만히 선생님을 훔쳐보았다. 홍위병 학생들은 사정없이 그의 귀쌈을 쳤다. 그 바람에 선생님의 얼굴을 떠나지 않던 안경다리를 분질러 놓았다 .그 장면을 목격한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로부터 그의 왼쪽 안경다리에는 언제나 반창고가 감겨 있었다. . 문화 대혁명으로 수라장이 되였던 전국은 싸움들을 중단하고 대 연합이 시작되었다. 혁명위원회가 성립될 때 특무 모자를 쓰고 있던 최 준 서생님은 갑자기 학교에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후로부터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역사는 다시 제 궤도에 들어섰다. 잘못된 모든 것을 다시 바로 잡으며 시정하고 검토 하였다. 조국은 지난날의 상처를 가시며 현대화의 건설에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현실은 나로 하여금 최 준 선생님의 가슴에 안겨진 상처가 얼마나 무자비하고 억울했는가를 날이 갈수록 심심히 느끼게 하였다. 그럴수록 나의 마음은 괴롭기만 했고 그 존경하는 선생님이 그립기만 했다. “선생님 어디 계셔요? 선생님이 조국에 바친 것은 충성과 사랑이었건만 역사는 얼마나 불공평하게 선생님을 대해 줬는가요!”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내가 갓 이사온 이 낯선 고장에서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는 안경쟁이가 바로 그 잊지 못할 최 준 선생님이었다니. 천사만감에 사로잡힌 나는 조용히 사람들의 곁을 떠나 저 멀리 끝없이 설레이는 송화호의 기슭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환락과 기쁨으로 들끓는 유람객들을 동반하고 있는 송화호의 푸른 물에도 천변만화의 풍운조화가 지나갔을 것이며 자연계의 천태만상이 비꼈을 것이리라...   뭉긋한 산등성이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의 빛을 받으며 귀로에 오른 버스는 쏜살같이 탄광 구역을 향해 달렸다. ‘선생님, 이제 곧 만나게 되겠군요! 저는 한 번도 선생님을 잊은 적이 없어요. 이 고장 사람들은 선생님을 너무도 모르고 있어요. 이제 곧 저는 이 고장 사람들에게 모든 걸 얘기해 줄 거예요!“ 화살마냥 튕겨가는 나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었다. 버스는 탄광구역의 네거리에서 멈춰 섰다. 사람들은 여로에 물쩍지근해진 몸을 간신히 움직이며 차에서 내렸다. 서쪽으로 환히 뻗어나간 광무국 중심병원 앞 큰길에서 열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애가 달려가다 말고 이쪽에서 차가 정거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를 듣고 머리를 홱 돌려 본다. 눈물 투성이 된 그 애는 김원장 내외를 보자 “와-”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빨리요, 원장 아저씨! 빨리 병원에 가 봐줘요. 우리 아버지가 아무래도 곧..”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래 졌다. 짐들을 손에 든 채로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해 있었다. “빨리 가보기요, 안경쟁이가 퍽 위험한 모양인데, 저 애가 바로 그 집 외동아들이라오.” 김원장 부인이 나의 팔목을 당겼다. 얼마나 놀랐던지 나는 그만 아연해 졌다. 최 준 선생님이 위험하시다니? 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나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만 하면서 발길을 옮길 줄 몰랐다 .뒤이어 눈앞이 캄캄해 났다. 한참만에야 정신을 차린 나는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병원으로 뛰였다. 그가 입원한 병실에 들어서니 사람은 벌써 응급실로 옮겨가고 빈 침대만 덩실하게 남아있었다...  최 준 선생님의 외동아들이 요 밑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더듬는 것 같더니 편지 한통과 아직도 반창고가 감겨져있는 그 눈에 익은 낡은 안경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 낡은 안경을 보노라니 나는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최 준 선생님의 그 낡은 안경은 마치 사람들에게 그의 마음의 상처를 말해주고  그 어떤 원한을 하소연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모든 것을 증오하시겠지요. 세상은 왜 지금까지도 이렇게나 선생님을 불공평하게 대해 주는가요?!” 나는 부르짖었다. 탄광 굴속에서 다년간 석탄을 캘 때 얻은  풍습성심장병으로 고생하던 그가 오늘 아침 북경에 있는 그 동창생에게 편지를 쓰다가 문득 병이 발작한 것이 끝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한다. 단 한번이라도 꼭 만나보려고 그처럼 갈망하던 최 준 선생님의 생전의 모습을 끝내 보지 못하고 말았다.  이튿날 사람들은 15평 되나마나한 최 준 선생님네 단간 집으로 모여 들었다. “아니, 광무국에서는 사업에 참가한지 20년씩 되는 대학생들에게는 모두 새 주택을 주지 않았소?” 하긴 이 고장에 조선족 치고는 대학 졸업생이라고는 김원장과 안경쟁이 둘뿐인데 김원장네야 언녕 설비가 구전한 아파트에 들었건만 이 집은 아직도 단간 살이었으니 이상할 만도 하다. 이 사람이야 탄갱에서 수년간 석탄만 캔데다가 학교에 복직 되었어도 결국 또 총무질밖에 못했으니...” “아니, 굴속에 내려 간 것도 문화대혁명 땜에 억울하게 된 거라잖소. 그리고 이 사람을 제대로 조선족 중학교 같은데 가만 내버려 뒀어 보오, 쯧쯧...” “그러게 말이요. 이리 좁은 집에서 칸막이 천을 치고 8년이나 반신불수로 누워 앓은 노인을 시중했으니...” “참, 노인에겐 끔찍도 했지!” 흉도 많고 말도 많던 안경쟁이- 우리 선생님, 눈을 감은 후에야 조금이나마 공정한 재 평판을 듣게 되었다. 왜 사람들은 신변의 사람이 빛을 발산하고 있을 때는 외면하고 무시하고 있다가 그 사람이 저승길에 들어선 다음에야 양심의 천평에 저울추를 놓는가? “참 힘겹게 살아갔소. 노인의 병 구환을 하느라 귀한 아들에게 그까짓 록음기 하나 못 사줬으니까 말이요” “노인이 세상 뜬지도 이제 2년 남짓 됐는데 외동아들에게 그까짓 학습용 녹음기 하나 못 사주겠소?” 원장 부인만큼은 끝까지 안경쟁이를 이해 못 하겠다는 뜻이다. “이 2년 동안 우리 아버지는 나라 돕는다고 해마다 국채 사는데 두달 월급을 몽땅 밀어 넣군 했어요!” 원장부인의 말에 아들이 발끈해서 이렇게 쏘아붙이고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 아버지! 난 녹음기고 뭐고 다 싫어요 아버지만 옆에 있으면. 엉엉-” 그까짓 녹음기 때문에 아버지를 속태운 일이 후회되어 아들은 소리소리 울었다. “뭘? 해마다 두달 월급을 몽땅 국채를 사는데 밀어 넣었다구?‘ 원래도 큰 원장부인의 눈이 더 화잔등만 해 졌다. 송화호에 갔을 때 어느 월급쟁이가 국채를 자원해서 더 사는 사람이 있으면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고 떠들던 그가 입을 봉하고 말았다.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은 이 거리의 조선족들 가운데서 손에 꼽히자도 못하고 놀음 좌석에 잘 불리우지도 못하던 평범하고 수수한, 학교의 총무직 밖에 못해온 대학생-안경쟁이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들 하고 있었다. 다음날 고인은 근 20년을 소리없이 살아온 이 고장을 떠났다. 그가 조용히 누워있는 자동차 우에는 의외로 화환이 많이 덮여 있었다. 그 속에는 김원장네와 이 고장 조선족들이 특별히 만든 화환이 끼여 있었다. 그것은 다른 색 하나 섞이지 않은 눈부시게 흰 화환이였다.   며칠이 지난 어느 화창한 날 이였다. 유람선들이 오르내리는 송화호에 쪽배 한 척이 무거운 침묵을 싣고 조용히 미끄러져 나가고 있었다. 쪽배 우에는 소복단장을 한 몇 사람이 골회함을 하나 안고 앉았다. 호심에 이른 그들은 정중히 함 뚜껑을 열고 송화호의 푸른 물에 묵묵히 뼈가루를 날리였다. 입을 꾹 다물고 하염없이 송화호의 푸른 물을 바라보고 있는 삼십대의 여인의 얼굴에서는 추억의 뜨거운 눈물이 소리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최 준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북경의 동창생에게 쓰다만 편지 구절을 되새겨 보고 있었다. “...전번에 당신이 모처럼 찾아 왔건만 노인님이 금방 세상 뜨신 뒤여서 형편이 따라가지 못하여 푸대접해 보낸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구만. 그때 우리는 지난날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었지 .참 때론 별난 생각이 들 때가 있다오, 나도 한때는 포부가 있고 정력이 넘치는 교원이 아니었소? 학교에서 손꼽아 주는 것으로 하여 언제나 긍지감에 벅차 있었댔지. 그러던 내가 왜 이지경이 되었는지 대학생이란게 제 할 구실을 못하고 있으니 말이요. 그래서 술만 들어가면 감상주의자가 되어 눈물을 흘렸지...참, 스피카에서 장엄한 국가가 울려 나오누만, 방송 개시곡을 국가로 고친 것은 아주 잘 한 일이요. 아침저녁으로 그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오. 나라의 운명도 ,백성들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도 다 그 속에 담겨 있는 것 같소...  지금 나는 세파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한 지식인에게 알맞는 위치를 찾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심심히 느끼오. 전번 편지에서 나를 원래 내가 있던 조선족 중학교로 전근되게 이미 연계를 다 해놓았다니 대단히 고맙소. 사실 이 몇 년간 내 중국어 실력도 꾀 괜찮아 졌다오. 음-헌데 근간에 내 몸이 어쩐지 신통치 않구만... 오늘 이 고장 사람들은 모두 송화호 유람을 떠났소, 송화호의 푸른 물이 그립소 .당신도 기회가 있으면 와서  송화호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해 보오. 정말이지 내가 앞으로 눈을 감으면 그 곳에 안식됐으면...“ 아, 가없이 넓고 풍요한 송화호의 푸른 물, 그 호심에는 사랑스런 이땅의 초목을 떠 받들고 거연히 서 있는 아름다운 청산들이 비껴 있으며 송화강반에 태를 묻고 대를 이어가는 우리 민족 자손들의 충혼이 빛나고 있다.                                   1989년 “도라지”문학상   중문으로 번역되어  중국저명산문가 俊青 의 높은 평론이 있었음
7    소설 탱고 댓글:  조회:1042  추천:0  2019-11-22
단편소설 탱 주   늦가을 비가 구질구질 내리고 있었다. 작고 허줄한 트럭 한 대가 빗속에서의 덜커덩 소리를 마치고 칙-하며 멈추어 섰다. 기사인 듯싶은 한 남정이 운전석에서 쿵하고 내려서더니 차 우에 덮였던 비닐을 확 잡아당겨 벗겼다. 조촐한 이삿짐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둘 짐을 내려놓는다. 내려지는 짐과 함께 그 속에 웅크리고 있던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앙바틈하게 생긴 키 작은 남자 하나와 멋없이 길고 가는 몸체를 가진 여자였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시교 근처의 크지 않은 동네- 그 동네에서도 또 좀 동떨어진 외딴집이다. 그 집은 벌써 오래전부터 비어있던 집이였다. 이사 간 주인이 집이 팔리지 않아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집이였는데 아마 이번에 아주 헐값에나마 팔려 나간 모양이었다. 빈 절간같이 먼지와 고요에 묻혀 있는 텅 빈 집안은 심드렁하니 낯선 주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 이것저것 쓸데없는 잡동사니들을 집어치우며 새로 온 안주인은 구석구석 돌아가며 먼지를 털어내기에 바빴다. 그녀는 벽에 눈길이 가자 먼지 가득 뒤집어 써고 시간이 멈춘 듯 벽에 조용히 걸려있는 낡은 캘린더를 보았다. 그녀는 벽으로 다가가 캘린더를 내리며 먼지를 털었다. 순간 그의 눈앞에 어느 한 날짜의 아라비아 숫자가 뚜렷이 눈으로 안겨왔다. 그 캘린더에서 어느 여름날의 숫자에 눈길이 멎어버렸다. 순간 동공이 굳어진 그녀는 갑자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종잇장을 와락 잡아당겨 뜯어 버린다. 짐짝들을 나르며 물건들을 정리하던 남편이 여인의 새된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달려와 아내의 눈길이 꽂혔던 찢어진 달력의 어느 한 숫자를 보았다. 아, 하필이면 이날의 숫자가. 모든 것을 알아차린 그는 말없이 아내를 끌어안았다…   이 외딴집의 굴뚝에선 비릿한 흙냄새를 풀풀 날리며 모락모락 연기가 피여 올랐다. 비속에서 갈래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어져 날아가는 회색 실타래 같은 연기는 한 많은 아낙네의 푸념 같이 처량하게 공중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얼마가 지나서야 동네 사람들은 그 외딴집에 새 주인이 이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두 내외는 슬하에 이상하게 자식도 없이 단솔한 두 식구의 가정 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얼마 안 되여 마을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새로 이사 온 집 말 이에요, 봤어요? 여자는 천성 콩나물같이 비쩍 마른 큰 키에 남자는 어쩌면 그렇게 나무토막마냥 몬탁하니 키가 작아?” 그리하여 그 새로 온 낯선 집은 “콩나물 집”이라고 명명되고 말았다.   그들이 이 고장에 온 것은 어느 이름 없는 자그마한 공장에 출근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사 온 이듬해 여름은 장마철 기간이 무지도 길었다. 매일 동네를 가로질러 출퇴근에 오르는 그들은 언제나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다녔다. 이상하게도 키가 껑충한 그녀는 항상 우산을 자기가 잔뜩 옆으로 벌려들고 그 남자가 외려 그녀 아래서 몸을 딱 붙이고 부지런히 같이 걷고 있었다. “웬일이여, 불편하지도 않나? 기가 차서” 사람들은 높낮이가 그렇게 차이나는 두 사람이 한사코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붙어 다니는 것이 너무나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놀란 눈빛으로 상식에서 벗어난 그들의 행보를 한참씩 서서 바라보군 하였다. 이런 부조화의 풍경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우산을 쓰는 날마다 지속 되었다. 옆을 지나는 동네 분들이 고개를 한껏 돌리면서까지 이상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아도 그 부부는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이 늘 그 한 모양새로 걸어갔다. 그런데 참 더 이상한 것은 그렇게 우산 하나를 꼭 같이 쓸 만큼 사이좋게 늘 붙어 다니는 부부건만 그들의 얼굴엔 도무지 웃음기란걸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항상 가라앉은 낮은 톤의 조용한 대화, 얼굴 표면 전체에 덮여있는, 그 무엇을 누르는 것 같은 얇고도 무거운 한 층의 납판 같은 막, 저 가슴을 누르는 무표정한 막 속엔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건가? 혹시 어디서 사고라도 치고 여기로 도망 온 사람들은 아닐 가, 사람들은 제 나름대로의 짐작을 해 보고 있었다.   공장에서는 그들의 말소리 듣기가 참 힘들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들에게 사람들은 이것저것 알고 싶은 것들을 막무가내로 물어 볼 수도 없었다. 말수가 적은 그들은 공장에서도 옆 동료들과 사귈 줄도 모르고 얼굴엔 항상 비밀 문을 잠가 놓은 커다란 자물쇠 같은 것이 걸려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처음엔 그래도 호기심에 북받쳐 슬슬 그들 옆을 맴돌던 공장 동료들도 두 내외의 기분 언짢은 인상이 썩 탐탁치가 않아 아예 멀리 떨어져 흘깃거리며 제 나름대로 들 추측하고 숙덕거리기 시작하였다.   “아니 저 집엔 애도 없는가봐 자식 소리를 통 못 들었다니까” “그러게, 남자가 고자? 흐흐, 아님 여자가…” 차간에서 수군덕거리던 여자들은 휙 하고 뒤로 눈길을 돌리는 콩나물여자의 매서운 눈길과 부딪쳤다. “어머 저 눈길 좀 봐, 있던 애도 없어지겠다!” 왕방울 눈 여자가 아랑곳없이 머리를 흔들며 대놓고 한마디 더 보탰다. 평소의 못마땅함을 보란 듯이 터놓은 것이다. 콩나물 여자는 삽시에 사색이 되어 입술가의 근육을 푸들거렸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이때 조금 떨어져 일하고 있던 키 작은 그녀의 남편이 급급히 달려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조용히 다독여 주고 있었다. 급기야 콩나물여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흐르기 시작했다. 놀란 동료들은 급기야 모두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날은 공장에서 납부해야 할 제품을 완성하느라 늦도록 일하고 퇴근길에 올랐다. 초가을의 해도 어둑어둑 지는데 난데없는 저녁안개까지 꽉 차올라 한치 앞을 가려보기가 힘들었다. 이 편벽한 산지에 자리 잡고 있는 자그마한 공장의 일꾼들은 대부분이 근처에 집을 잡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이었다. 출퇴근길에는 국도의 큰 차도를 건너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특히 제대로 된 횡단보도를 건너려면 한참을 되돌아가야 하므로 사람들은 바쁠 때는 앞뒤 차가 없는지를 두리번거리며 확인하곤 무단 횡단을 할 때도 있었다.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다하고 제일 늦게야 퇴근길에 오른 콩나물 부부는 차도 많지 않으니 늦은 길이라 바른길로 가로질러 가기로 하였다. 그들은 터벅터벅 피곤한 발길을 앞을 향해 옮겨가고 있었다. 희미한 히드라이드 불빛을 뿜기며 트럭 한 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여보, 잠간, 차가 와요!” 여자가 급격히 남자를 잡아당겼다. 주춤하고 남자가 발길을 멈추었다. 순간, 남자의 시야에 작은 검은 물체 하나가 저 건너편에서 길을 건너오는 것이 보였다. “앗, 저!” 남자는 분명 여나 문살 되어 보이는 남자애를 보았다. 급작스런 발견에 속도를 멈출 수 없었던 트럭이 칙-하고 지나갔다.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런데 키 작은 남자가 없어졌다. 콩나물 여인은 소리치며 길 복판으로 달려갔다. 저 멀리 남자애는 뿌리쳐져 있고 그녀의 남편도 그 옆에 쓰러져 있었다. 세상에 이 다리도 짧은 키 작은 남자가 어떻게 그렇게 쏜살같이 달려가서 애를 밀어낼 수 있었는지 여인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남편과 그 남자애를 끌어안고 앙앙 소리를 질렀다.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에야 그 애의 엄마가 왔다. 바로 그 왕방울 눈 여자였다. 그 여자가 총총히 길을 에돌아 횡단보도 길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에 그의 아들은 조급증에 엄마 찾아 엇갈린 길을 나섰던 것이다. 다행이 남자애는 외상을 내놓고는 크게 다친 데 가 없었지만 그 사고로 키 작은 콩나물 남자는 절름발이 까지 되었다. 퇴원하던 날 저녁, 그 외딴집· 방안엔 촉수 낮은 희미한 불빛이 두 그림자를 비추고 있었다. “여보 이것 좀 드세요” 누워있는 남편을 잡아 일으키며 콩나물이 푹 삶은 닭 곰국을 차려 놓았다. “당신 왜 그렇게 정신 나간 짓을 했어요? 이번에 만약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여자는 말을 못 잇고 또 엉엉 울어버린다. “ 누구네 집 자식이나 소중한건 똑 같잖아 ” 자식이란 한마디 말에 둘은 한식경이 지나도록 말을 못했다.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무릎을 꿇는 그 남자아이의 엄마 앞에서도, 공장 동료들이 가져온 꽃다발 앞에서도, 그리고 몇몇 기자들의 방문에도 그들은 시종 침묵을 지키며 당시 무었을 생각했냐는 물음에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이 “괴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사실 그들의 머릿속엔 아빠 엄마를 보고 늘 싱글싱글 웃던, 자신들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얼굴이 환영같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은 또다시 닥쳐왔다. 방학을 맞이한 동네 애들은 동네에서 떨어진 이 외딴집 뒷들녘- 야트막한 언덕바지 같은 야산을 옆에 끼고 출렁출렁 흘러가는 작은 강물로 몰려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엔 뭉실뭉실 떠있는 흰 구름들이 파란 하늘호수에 몸을 담고 물놀이 하는 백조들의 날개마냥 강물 위에 한껏 예쁜 모습들을 그려놓고 있다. 야산의 각가지 이름 모를 잡목들로 무성한 숲속에서는 여름 벌레들이 앞 다투어 찌르륵-찌르륵 요란을 떨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배산임수(背山临水)의 아름다운 화폭에 평화로움을 서사하고 있었다. 모처럼 같은 휴일을 맞이한 콩나물 내외는 창문들을 열어놓고 집안 청소에 바빴다. 뒤 창문으로부터 애들의 즐거운 웃음소리 말소리들이 흘러 들어왔다. 창문으로 다가가 뒷 들녘을 바라보던 콩나물이 또 갑자기 새파란 얼굴을 하고 비명 같은 놀랜 소리를 질렀다. “여보, 저 애들이!” 그리곤 털썩-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 왜이래?” 강물에서 신나게 자맥질하는 애들의 풍경이 한 눈에 안겨왔다. 밖을 살피던 남편은 비로소 영문을 알아차렸다. “ 난 또, 가뭄이여서 저 강물은 무릎밖에 안 올라오는데” 어느 결에 콩나물 옆에 털썩 같이 주저앉아 콩나물의 머리를 부둥켜안으며 영문을 알아차린 남편이 일깨워줬다. 그렇지, 저 강물은 무릎까지 겨우 올라오는, 버들 숲을 가로질러가는 냇물 같은 작은 강물이었다. 사실 콩나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물놀이를 하는 애들을 보고 기암을 한다. 거침없는 눈물이 속옷 차림인 그녀의 마른 젖가슴으로 줄줄 흘러 내렸다. 콩나물의 두 손을 부여잡고 무어라 설득을 하는 남편의 눈에서도 막을 수 없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악몽이여…   콩나물과 키 작은 남자는 정말 쉽지 않은 결혼을 하였다. 키가 큰 여성 집에선 남자 키가 너무 작다고 반대하였고 키가 작은 남자 집에선 여자 키가 멋없이 크다고 탈 잡았다. 그런데다 콩나물에겐 아버지가 없었고 남자에겐 어머니가 없어 양가의 살림살이들이 모두 끼니를 겨우 이어가는 정도였다. 그런데 양친 친척들이 별별 소리를 다해가며 반대했지만 인연은 끝내 이어지고 말았다. 그 이듬해, 그들은 떡판 같은 아들을 낳았다. 정말 놀랍게도 아들애는 커 갈수록 키꼴은 저 엄마를, 얼굴은 번듯한 아빠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그 애 친구들은 이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는 자기네 반 반장을 모두 좋아하였다. 중학교 가족 체육 운동회 시간 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발목을 한데 묶고 절주 있게 앞으로 달리는 경색이 한창 이였는데 키가 큰 아들과 키가 작은 아버지가 펌프 절주가 잘 맞지 않아 몇 발자국 못가서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의 폭소 속에서 간신히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던 아들은 이미 정해진 꼴등이 확인 되자 천천히 두 발목에 묶은 끈을 풀더니 싱긋 웃으며 아버지를 등에 업고 뒤뚱뒤뚱 목적지 까지 달려갔다 온 운동장엔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느님께서 용케도 만들어 주셨네, 저런 복이 있을 줄이야” 주위 사람들은 혀를 차며 감탄을 하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맞지 않는 키에도 눈에 띄게 정이 좋은 두부부의 이야기를 하였고 공부 잘하고 멋지게 생긴 효심 있는 아들애의 이야기를 아끼지 않았다. 사실 콩나물 여인은 첫 애를 낳고 심한 하혈로 오랫동안 몸져눕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후로 다시는 임신이 안 되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하나 자식 열 부럽지 않게 키워 가고 있었으니. 집안엔 항상 찬란한 해살이 넘쳤고 세 식구의 얼굴엔 언제나 웃음이 찰랑거렸다.   아들애가 고등학교로 들어가는 그해 여름이었다. 아들애는 외할머니 댁으로 놀러 갔다. 나무그늘 밑에서 부채질을 해도 땀이 흐르는 찜통더위다. 그 또래 외할머니 동네 애들은 시가지에서 온 이 멋진 중학생을 모두 좋아했다. 그들은 합의가 되여 저수지에 가서 시원한 물놀이를 하기로 하였다. 친구들 중에서 수영을 제일 잘 하는 그 애는 반짝반짝 햇볕을 반사하는 수면을 바라보며 서서히 안쪽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저수지 가장 자리에서만 물놀이를 하고 있던 친구들은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손뼉도 치며 환호하고 있었다. 애들의 즐거운 웃음소리 속에서 무더운 녹음에 파묻힌 저수지의 시원한 풍경은 그처럼 평화로움 속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자맥질하며 나아가던 그 애의 머리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솟구치기를 두 번 하더니 더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였다! 멀찌감치 서서 영문을 모른 체 이 이상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동생뻘 밖에 안 되는 어린 친구들은 더는 수면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안차 그제야 자지러지게 소리들을 지르기 시작했다. “형아--빨리나와-빨리-” “큰일 났어요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저수지를 만들 때 가끔은 깊은 웅덩이가 생긴다 한다. 저수지 중앙을 향해 활기차게 헤엄쳐 가던 그 애는 바로 그 깊은 웅덩이의 마력에 빠져 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둬 번 솟구치던 그 애는 꿀꺽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콩나물 내외가 소식을 전해 듣고 허둥지둥 찾아 왔을 때는 이미 퉁퉁 부은 아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 있을 때었다. 아아, 세상이 뒤집히고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목을 맨다고 산으로 들어간 외할머니를 동네 사람들이 겨우 찾아 내였다. 사람들을 뿌리치고 식음을 전패 하며 아들의 무덤 앞에서 사흘 밤을 지새운 콩나물은 끝내 실신하여 누워 앓기 시작했다 . 집문 앞 큰길엔 학교로 등하교하는 또래 애들의 웃음소리 말소리가 끈임 없이 들려온다. 그리고 책상위의 책들과 벽 어디에나 걸려있는 번듯한 아들애의 웃는 얼굴을 담은 액자들, 모든 것은 그대로 눈앞에 생생한데 아들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없는 텅 빈방. 이 큰 성시의 그 많은 인파속 어디에도 가슴을 허비는 그 그리움의 그림자는 찾아낼 수 없었다. 만사를 제쳐놓고 밤낮 지극정성으로 옆을 떠나지 않는 남편의 병수발에도 콩나물은 일 년 넘게 누워 있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아들도 잃어버리고 직장도 잃어버렸다 몸이 간신히 회복 되었을 때 그들은 도저히 이집, 이 성시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어디에나 아들의 흔적이 눈에 밟히는 아픔을 참아낼 수 없었다. 피가 흐르는 가슴을 다독이며 멀리멀리 어딘가에 가서 망각이란 선물을 안아보고 싶었다. “당신에겐 아직 내가 있고 나에겐 당신이 있잖소. 우린 한시도 떨어지지 말고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 살아갑시다.” 그들은 아픈 마음을 서로 끌어안고 모든 것을 떨쳐버리기 위해 이 생소한 고장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낡고 허술한 공장은 인력난에 시달리던 차여서 마침 그들로 빈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그러나 상처의 피는 여전히 흐르고 깊이 내린 악몽의 뿌리는 시시각각 끝없이 가슴을 허벼 파고 있었다.   집 뒤 개천에서 애들은 끊임없이 웃고 떠들며 물놀이를 하고 있었고 집안에서 콩나물은 멈추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송이버섯은 일어서서 앞뒤 창문을 꽁꽁 닫아 버렸다. 그리곤 아내를 부둥켜안고 같이 흐느꼈다. 그는 오랫동안 참고 있던 아내의 슬픔과 눈물을 쉽게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외딴집의 달력도 벌서 몇 개를 바꾸었다. 시간은 피 흐르는 아픈 상처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소리 없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망각을 위하여 혹시 둘 중 누구라도 손을 놓으면 무너질 것 같아 그림자처럼 붙어서 버팀목의 하모니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도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부터인가 동네에서 그 부부의 그림자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다. 항상 닥 붙어서 특유의 풍경을 이루며 동네를 꿰질러 다니던 부부들이였던지라 모두들 머리를 기웃거리며 행방을 궁금해 하였다. 혹 또 이사라도 갔나?   그렇게 얼마가 지난 어느 날 이였다. 숨 막힐 듯 답답하게 펼쳐진 하늘이다. 물기 가득한 먹구름이 그 하중을 이기지 못해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떠 있더니 끝내 와당탕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를 지르며 쏴-하고 몸체의 모든 것을 쏟아버린다. 소낙비는 거침없이 닥치는 대로 퍼 붓는다. 콩나물이 동네 거리에 나타났다! 길고 가냘픈 몸매는 더 휘청거렸고 풀기 하나 없는 얼굴은 더 조막만 해 졌다. 그리고 그녀는 일색 검정 옷을 입고 있었다. 살펴보니 항상 그녀 옆에 붙어 다니던 절름발이 키 작은 남편이 없어졌다. 웬 일이야? 별로 익숙하지도 않고 종래로 웃음기도 없는 그녀에게 동네 사람들은 직접 물어보기도 그러했다. 그들이 다니는 공장에서 소문이 새여 나왔다. 송이버섯이 어느 날 밤에 심부전으로 갑자기 세상을 떴다는 것이었다. “에그 불쌍하기도, 그때 그 교통사고 땜에 병이 더 해진 거 아닌가?” 사람들은 혀를 찼다. 그리고 그 소문도 놀라웠지만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콩나물이 예전과 변함없이, 사람들의 눈에 익은 그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데 마치 키 작은 절름발이 남편이 그의 옆에서 같이 걷듯이 예전과 똑 같이 우산을 오른쪽으로 한껏 비껴들고 걷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신 자신의 한쪽 어깨와 등줄기는 비에 흠뻑 젖고 있었다. 분명 그녀는 옛 그대로 남편과 같이 걷고 있었다. 얼굴엔 예전보다 더 굳어 보이는 납덩이같은 막 한 층을 씌워놓고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있던 콩나물은 저녁 무렵이 되자 간신이 몸을 춰 세우며 일어났다. 그는 마을에서 좀 떨어진 작은 시장에 가서 돼지고기를 사왔다 김치를 섞어서 뚝딱뚝딱 도마 위에서 만두소를 만들어내 몇 안 되는 만두를 만들었다. 장맛비에 뒷산 언덕아래의 개천은 잔뜩 덩치가 커져서 강물처럼 누런 물살을 이루며 출렁출렁 거세게 흘러내린다. 장맛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저녁노을이 들녘과 강물을 비춘다. 찍 소리 없이 풀숲에 숨어 있던 벌레들이 또 곡을 터뜨린다. 창문을 열고 멍하니 그녀는 초점 없는 눈길을 흐르는 강물에 꽂는다. 노을이 걷어지고 어둠이 엇비슷이 기어든다. 그녀는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옷장에서 이 옷 저 옷을 꺼내놓고 초점 없는 눈길로 옷 한 벌을 고른다. 모처럼 간단한 화장도 하였다. 만두를 담은 그릇을 바구니에 담고 천천히 문밖을 나섰다. 한참서서 무슨 생각을 하던 그는 곧바로 집 뒤쪽으로 걸어 나갔다. 또다시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가엔 풀어헤친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우두커니 서있는 여인 같은 키 큰 수양버들이 있다. 실실이 풍성한 가지들을 늘어뜨리고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녀는 바구니를 들고 수양버들 아래로 가서 어둠에 천지간의 윤곽이 사라진 먼 곳-밑굽 없는 함정 같은 묘연한 그곳을 바라보았다. 한참 있다 바구니에서 만두를 꺼내었다. - 만두를 그렇게 좋아하던 사랑하는 내 아들, 엄마는 매일 출퇴근에 바빠 그렇게 좋아하던 만두도 몇 번 못 해 주었구나. 그리고 당신도 같이 먹어요. 그녀는 만두를 하나하나 강물에 뿌렸다. 그리고 신을 벗었다.   며칠의 폭우에 잔뜩 사나워진 강물은 그가 몇 발자국 들여 놓기 바쁘게 그의 허리를 치며 힘없이 몸을 맡기는 그녀를 넘어뜨렸다. 그녀는 추호의 미련도 없었다. 오히려 온몸이 알 수 없는 격정에 붕 떠있었다. 그는 물을 삼키며 아들을 보았고 남편을 보았다. 바로 이때였다 조그만 한 물체 하나가 물을 삼키고 있는 그의 얼굴을 할퀴었다. 눈을 번쩍 뜬 그녀의 눈앞엔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물결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헤엄치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강아지의 눈빛은 엄마를 찾는 어린 아기의 처절한 눈빛이었다. 강아지는 살겠다고 깽깽거렸다. 문득 무엇이 머리를 탁 치는 감을 느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강아지를 끌어 당겼다. 그리곤 자기도 모르게 강아지를 품에 안고 물을 토하며 강가로 간신히 걸어 나와 풀숲에 훌러덩 누워 버렸다.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린 것 같았다. 얼마가 지났을 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간신히 눈을 뜨고 눈앞에 놓인 작은 물체를 바라보았다. 물에 푹 젖어 착 달라붙은 털 때문에 역시 가느다란 알몸뚱이가 된 강아지의 얇은 배 가죽이 팔딱팔딱 할딱이고 있었다. 조금 있더니 강아지는 몸을 일으켜 그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연약한 생명체가 희미한 숨결을 고르며 그에게 다가 왔다. 그녀의 눈에서 가느다란 눈물이 흘렀다. 너 엄마는? 몇 달이나 되니? 그녀가 중얼거렸다. 어린 강아지는 그녀의 눈빛을 느끼자 혓바닥으로 그녀의 얼굴을 싹싹 핥아 주고 있었다. 먼 옛날 어린 아들이 젖을 달라고 엄마 품을 파고들던 기억이 아리송하게 떠올랐다. 강가에 버려졌던 바구니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옆에 만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긴팔을 내밀어 만두를 주웠다. 어둠속에서 파란 불이 켜진 강아지 눈이 재빨리 만두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래 먹어라, 넌 길을 잃어 이렇게 되었니, 아님 버림받아 이렇게 되었니? 강아지는 그녀의 손바닥에 있는 만두를 냉큼 삼켰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비칠거리며 강아지를 바구니에 담고 일어섰다.   얼마가 지났을 가, 동네 사람들은 콩나물이 얼룩 강아지 한 마리를 늘 품에 안고 다니는걸 보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 강아지도 콩나물의 우산아래서 꼭 같이 걷고 있었다…   서울에서 프로필: 서울거주 중국작가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장, 한국 공무원 문인협회 회원 중단편소설집 베이징과 서울에서 각각 출판 소설, 수필등50여편 발표. 설원컵 문학상 소설대상, 해외문학상등 수상 다수.      
6    단편소설 내일이 온다. 댓글:  조회:898  추천:0  2019-11-22
단편소설 래일이 온다 류 재순   한껏 너부러져 게으름을 피우던 여름날의 하우는 유령처럼 깔려드는 어둠속에서 맥 빠진 햇살의 잔여를 소리 없이 갉아 먹는다. 여자는 영혼이 떠나간 시체마냥 미동 없이 누워서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본다. 언제부터 켜져 있는 텔레비전은 완전 소음이 된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빛과 화면을 바꾸며 죽음 같은 정적 속에서 그 존재의 가치를 확인시키느라 나름대로 분주하다. 또다시 마음 한 구석이 쿡쿡 찔리는 듯 아프기 시작한다. 그 깊은 곳엔 아픔을 유발하는 핵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땅땅한 응어리로 뭉쳐진 그 핵은 완고하게 자리를 잡고 시간이 갈수록 그 괴로움의 바이러스를 전신에 퍼뜨리며 궁극엔 머리까지 올라와 여자의 머릿속을 쑥대밭으로 뭉개어 놓는다. 아, 아프다~ 이 아픔의 핵은 언제부터 만들어 졌었나? 아득히 멀어도 눈앞처럼 생생히 안겨오는 기억들, 20년, 그래 인생에서의 그 긴 20여년이란 시간을 그 남자와 같이 왔다…   깊은 동굴 같은 끝없는 터널 속으로 가냘픈 사유의 흐름이 주체를 못하고 미끄러져 흘러들어 간다. 그래 그때였지, 풍년든 늦가을의 논벌, 줄지어 쌓여진 벼 낟가리엔 탱글탱글한 벼 이삭들이 무거운 머리를 주체 못하며 주인들이 빨리 탈곡장으로 실어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확 트인 논벌과 커다란 탈곡장을 사이 두고 있는 앞 뒤 두 마을은 평화로운 고요 속에 침묵하고 있었다. 그 시절- 앞마을은 볏 농사에 능숙한 입쌀밥과 김치를 먹는 동네였고 뒷마을은 그때만 해도 수전 농사에 아예 손도 대보지 못했던 죠즈 (饺子ㅡ고기물만두)와 옥수수 따차즈(大馇子ㅡ강냉이 죽)를 먹는 왕씨네 동네였다. 앞 뒤 동네는 김치와 죠즈를 주고받고 얻어먹으며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땅거미가 깃드는 평화로운 논벌엔 무서운 판도라의 뚜껑이 꿈틀거리며 열리기 시작했다. 어둠이 슬슬 사위의 빛을 몽땅 삼켜 버리고 있을 때 뒷마을 몇몇 검은 그림자가 논벌의 벼단 무지로 슬슬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능숙하게 재빨리 볏단들을 가져온 달구지에 싣기 시작했다. 뒷마을 "밤 고양이 별동대" 입쌀밥 해결 작전 대였다. 일 년 내내 농사일엔 손 까딱 안 하고 본 동내에서도 도적질에 이골이 난 서너명의 놈팡이 깡패 들이다. 앞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볏단을 몇 무지씩 잃어버리고도 그저 "에그 저것들이 얼마나 입쌀밥이 먹고 싶었으면 저런 짓을 다 하랴" 하면서 눈감아 오던 터라 금년가을에 들어서서도 벌서 몇 번째 이 짓을 하고 있었다. 이제 보니 참아서 해결 될 일이 아니었다.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분통은 목구멍까지 차고 올라와 토해 내지 않으면 머리 뚜껑을 날릴 판이다. 그래 밤 도적고양이에게는 그에 맞는 밤 작전이 필요하다.   "에라, 이 도적놈들, 오늘 잘 붙들었다 .때려라 때려! 몽땅 잡아라!“ 어둠속 어딘가에서 갑자기 다른 한 무리들이 달려들었다. 앞마을 사람들이였다. 사실 이제는 참고 참으니 이놈들이 완전 상투꼭대기에 똥을 갈긴다고 온 앞 동네가 술렁이던 터였다. 오랫동안 분을 삭이며 입을 다물고 있던 앞마을 젊은 패들이 어둠속에서 볏단을 사수하려 계획을 짜고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맞붙은 두 패는 마구 뒤엉켜 패고치고 덮치고…달빛 하나 없는 캄캄칠야 속에서 싸움판에서 오고가는 연장들이 번득번득 살기를 내 뿜었다. 갑자기 “타딱”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덜 마른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 크지는 않았지만 이 심상치 않은 소리에 이어 다급히 아야-하는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순식간에 비상 명령마냥 찰나의 휴전을 가져왔다. 멍해진 사람들의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뒷마을 한 놈팡이의 괴성이 터졌다. 아야마야, 워더 로빠야 사스호 라이더? 니 자디라?! (아이구 아버지? 언제 왔어요? 왜 이러세요?) 뒷마을 중국 동네에서도 상습적인 나쁜 손버릇으로 “밤 고양이”로 이름난 아들을 저지하러 나왔던 무고한 로인의 참변이었다. 허리에 타박상을 받은 모양이다. 세상에, 큰일 났다 튀어!!~ 드디어 낌새를 알아차린 이쪽 앞마을 사람들은 줄행랑을 놓고 달아났다. 매일 난봉을 피우며 속을 썩이는 아들 때문에 이미 몇 년째 몸을 제대로 운신 못하고 있던 그 로인은 허리에 타박상을 입으며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가 입원하고 치료를 받았지만 합병증으로 끝네 병원에서 숨지고 말았다. 아들을 말리려 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무분별하게 벌어진 난투 속에서 억울하게 참상을 당한 것이다…   이 늦가을의 어둠속에서 벌어진 두 마을 사이에 예기치 못했던 끔찍한 사건은 삽시간에 특대 센세이션이 되어온 현성을 뒤흔들어 놓았다. 수사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바로 “타닥”소리를 낸 그 치명의“한방”을 승인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썼던 연장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 숨 막히는 나날은 사람들을 질식시키고 있었다. 공안국의 차와 경찰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마을에 들어 닥쳤다.   한 달이 지났다. 한 사람이 나섰다. 자기의 소행이었다고 자백하였다. 앞마을 생산대의 대장―웅걸, 그 남자였다. 허리를 내려친 그 한방이 웅걸이가 한 짓이라고? 사실 한 녀자-명숙은 알고 있었다. 그날 “벼 도적”을 잡으러 논에 숨어 있다는 남편을 찾아 그녀가 나왔었다. 녀자가 논두렁에서 이미 무리 싸움이 붙은걸 보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바로 그 젊은 촌장ㅡ웅길이 드디어 도착했었다. 그때는 벌써 허리를 치는 소리가 난 뒤였다. 그런데 그 남자가 장본인이라니? 여자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자기의 남편이 부들부들 떨면서 밤새도록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못 이루고 있었던 일을…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하고 수사에 지칠 데로 지친 법정에서는 일단 이 “자수 범”을 감옥에 가두었다. "왜 그랬어요? " 어딘지 짐작이 가는 녀자는 면회를 가서 촌장ㅡ융걸에게 물었다. "뭘?… 내가 친 거 맞아, 명숙이는 빨리 집에나 돌아가라니까. 사고는 내 몫이니까 두 마을 사람들 이젠 싸움들 그만하고 그전처럼 화목하게 지내라고 가서 일러요! 촌장이라는 내가 이런 큰 일 하나 누르지 못 했으니…" 어려서부터 홀어머니 모시고 찌든 가난 속에서 동생들 키우며 왕복 20 리 통학 길로 근근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마을의 농사일에 정착을 한 나 젊은 촌장이었다. 째지게 가난한 고향 한번 변신시켜 보겠다고 년소한 가슴에 넓은 흉금을 가지고 남 다른 리더 심과 포옹력으로 무슨 일에서나 마을 사람들을 위해 앞장서 뛰었고 앞장서 책임을 맡아가는 촌민들의 믿음직한 희망이었다. 웅걸씨, 아무래도 이건 아닌데, 미안해요!… 녀자는 속으로 울었다. 장본인인 남편을 발가놓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 할 수가 없었다.   90년대, 난데없는 한국 친척 찾는 바람이 이 시골에도 불어왔다.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이 남자―웅걸은 년노하신 어머니를 통해 한국 친척과 소식이 닿았고 드디어 연락이 되었다. 정말 그대로 말하면 하늘의 혜성을 붙든 기분이었다. 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면직 당한 이 늦깎이 총각 촌장은 금방 장가를 들었다. 그때는 이미 남방으로 도망가 은둔 생활을 하던 명숙의 남편이 당지 경찰에 붙들려 도망을 치다 목숨을 잃어 버리는 교통사고가 나고 웅걸의 혐의도 벗겨진 뒤였다. 웅걸은 감옥에서 나오자 모심기에 뒷마을 사람들을 불러 같이 일손을 돕고 삯돈을 주며 수전 농사법을 손에 익게 가르쳐 주었다. 볏 농사에 재미를 본 뒷마을 사람들은 한국 간 사람들의 논을 맡아 부치며 입쌀밥을 실컷 먹는 건 물론 나라에 바치고 시장에 팔고…다시는 볏단 훔치는 일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친척방문으로 한번 한국에 갔다 온 웅걸은 친인척 초청장을 두 장이나 띠여 왔다. 한 장은 친척 중에서 제일 못사는 고모네 집에 주고 다른 한 장은 명숙에게 주었다. 웅걸이보다 세살 많은 명숙이는 웅걸이 선배로 같이 먼 통학 길로 고등학업을 마치고 마을에서 시집을 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남편이 사고를 치고 도망을 다니다 사망까지 하였지만 홀로 남은 늙은 시부모를 차마 버리고 떠날 수가 없어 끝가지 모시고 있는 터였다. 웅걸의 뜻하지 않은 처사에 웅걸의 아내와 처갓집 식구들은 펄펄 뛰었다. 지금 한국 초청장 한 장에 돈이 얼만데 무료로 그저 주다니! 그때 벌써 한국 돈으로 천 만 원이 오고 가는 때가 아닌가? 참 촌장 직에서 해직 된지도 언젠데 아직도 뭐 자신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 구세주 노릇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나? ㅡ영원히 이 은혜를 잊지 않을게요. 웅걸 씨를 위해선 뭐나 다 할 거예요.ㅡ 온 마을이 이 불가사의한 일을 두고 뒤숭숭해 있을 때 살기 위해서라도 염치불문하고 한국으로 떠나는 녀자-명숙은 가슴이 아프도록 감격하였다.   밖에서 저녁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그저 후덕 지근한 바람일 뿐이다. 마음과 머리를 식혀 줄 바람은 없다. 산 너머로 지는 빨간 노을이 꼴깍 금방 자취를 감출 태세다. 집안의 정적은 시간을 모르는 듯하다. 누워 있는 녀자는 이 세상의 종말은 어떤 것일까 눈을 감고 상상 해본다. 그때ㅡ 서울의 하늘은 낯설기만 하였다. 글자는 알아도 뜻을 알 수 없는 서울의 영어식 간판들, 일터에서의 한국말 아닌 한국식 전문 용어들, 어디서 갑자기 조상의 뿌리를 찾는다고 이역만리에서 “거지떼”처럼 몰려 온 이 시골 떼기 동포들을 바라보는 일부 원주민들의 싸늘한 눈길은 항상 그들의 이마에 치욕과 고충의 낙인을 찍어 놓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한국인들이 외면하는 고된 노동과 궂은 노동을 골라가며 한 푼이라도 더 차곡차곡 모아 고향의 집으로 보내는 것보다 더 큰 쾌락이 없었다. 하루 둬 번 쉬는 날이면 턱 밑까지 쌓여진 마음의 무게를 풀려고 가끔은 포장마차에 마주앉아 둘이서 같이 찬술을 기울였다.   그들은 한 마을에서 유일하게 작은 시가지의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는 학생이었다. 어두운 골방에서도 쭈크리고 앉아 늘 책을 읽으며 시간가는 줄 몰랐던 수수하면서도 감성 풍부한, 조용하고 깊이가 있는 명숙이었다. 그런 그가 고등학업을 마치고 대학입학 통지서를 손에 받아들고도 가난 때문에 눈이 퉁퉁 붓도록 밤새워 울던 구월의 밤, 뒤 울바자 밖, 키다리 백양나무 아래서 창호지에 비친 들먹이는 그 가냘픈 어깨를 끝없이 슬프게 바라보던 웅걸이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그 구월에 홀어머니와 살고 있던 웅걸도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였다. 입학 통지서를 손에 쥐고도 대학에 갈 수 없었던 상황은 똑 같았다. 그해 시월에 명숙은 한 부락의 회계와 결혼을 하였고 또다시 2년 후 웅걸은 부락의 촌장으로 당선 되었지만 성깔 하나로 유명했던 웅걸 어머니로 하여 그 집에 며느리로 들어오려 하는 처녀는 하나도 없었다.   운명은 또다시 그들을 한국이라는 이 멀고도 가까웠던, 익숙하고도 생소한 서울바닥의 포장마차에 마주앉게 하였다. 둘은 술잔을 들고 숙박비 때문에 볼을 도려내는 것 같은 중국 동북 대평원의 맵짠 눈보라 속에서의 머나먼 통학 길을 얘기 했으며 온 중국 대륙을 휩쓸었던 대 재앙시기의 대식품(代食品)으로 기아에 허덕이던 가난을 얘기 했다. 그리고 명숙이 그 회계와 결혼하던 날 온 동네가 잔치 집에 모여들어 술잔을 기울일 때, 웅걸이 머나먼 현성바닥을 막연히 걷던 일을 털어 놓았다. 자신이 회계와 비교 할 수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성깔 유명한 홀어머니는 나름대로 둬 살이라도 많은 명숙을 며느리로 점지하지 않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명숙이를 데려다 가난의 구렁텅이에 묻혀 놓고 싶지도 않았다는 것도 얘기 하였다. 그래서 당연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해 가을 논벌의 참사를 얘기했다. "그때 왜 그랬어? 왜 그 무서운 덤을 뒤집어쓰고 감옥까지요? “ 언제부터 묻고 싶던 얘기다. 웅걸은 술 한 잔을 쭉 들이켜고 명숙을 새삼스레 조용히 쳐다본다. 무엇이라 해석을 해야 할까? 웅걸은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알 수 없는 미소만 남기고 또 한잔 쭉ㅡ이다.   웅걸 씨처럼 책임감 있고 좋은 사람 세상에 드문 것 같아요.ㅡ 명숙은 눈앞의 이 남자를 바라보며 진심을 말했다. 눈에 크게 띠우지 않는 작은 키, 작은 얼굴, 크지 않은 눈, 어느 하나 눈에 번듯하게 안겨 오는 것이 없는 이 남자, 그 큰 체통과 넓은 흉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언제나 얼굴에 가득 담긴 사람 좋은 웃음은 얼마나 옆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가. 오직 저 남자가 원한다면 여자는 무엇이던 기꺼이 주리라 혼자 생각 하고 또 하였다.   그날도 그들 둘은 오랜만에 또다시 포장마차에 마주 앉았다. 술이 좀 거나해진 명숙은 그날따라 마음이 한껏 울적해 졌다. 늘 잔꾀가 넘쳐 어떤 땐 좀 민망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을 무척 사랑해 주던 죽은 남편의 일이 생각났고 방법 없이 자기의 뒷다리를 붙잡고 있는 불쌍한 시 부모님들이 생각났으며 이국땅의 하루 열두시간의 고된 노동으로 매일 무거운 다리를 겨우 끌고 집으로 돌아와도 옆에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잠자리에 쓰러져야 하는 이 끝이 보이지 않는 고독한 인생이 슬펐다. 한참 얘기를 주고받다 웅걸이 갑자기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전화카드를 꺼내들고 집으로 전화를 한다. 웅걸의 눈썹 관골 깊숙이 묻혀 있는 눈을 명숙은 괜히 슬프게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웅걸아 이제 네 여편네 한데 그만 돈 부쳐라. 다 가지고 떠났다. 배가 터지도록 바람이 꽉 찼다.그 왜 처녀 때 좋아 했다던…” 한국바람에 그래도 손쉽게 며느리를 보게 되어 다시 기고만장했던 웅걸의 늙은 홀어머니의 띄엄띄엄 들려오는 풀이 다 빠져버린 목소리였다…   그때 일을 생각하며 지금 녀자는 물끄러미 천장에 동공을 고정 시켰다. 어느 창문 틈사이로 끼어 들어온 잔광이 천장의 한 귀퉁이에 희미한 빛의 그림자를 만들어 놓는다.   그때 그 전화를 받은 후 웅걸은 너무나 뜻밖의 소식에 금방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앉아 있던 포장마차의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급히 수속을 밟고 경황없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둬달 후 돌아온 웅걸의 얼굴, 그때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푹 꺾어져 있는 머리의 작은 얼굴은 더 조막만 해졌고 맥없이 받혀진 두 다리는 밀면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벼단 도적잡기 사고로 촌장 직을 해직 당하고 감옥에 수감 되었다 나왔을 때도 얼굴이 이렇게 까지 죽어있진 않았었다. 명숙은 집에 술상을 차려놓고 웅걸을 불렀다. 두 잔도 못 마셨는데 웅걸은 쓰러졌다. 그리고 어린애 마냥 울었다. 체구는 작아도 언제나 마을사람들에게 든든한 기둥같이 보였던 남자가 마누라의 배신이란 큰 산을 넘기지 못해 절망하고 있었다. 명숙은 베개를 내려다 웅걸의 머리와 몸을 당겨 검은 색인지 붉은 색인지 알 수 없는 참담한 얼굴을 자기 무릎에 눕혔다. 웅걸은 어미 품에 안긴 순한 어린양 마냥 그의 무릎위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눈가로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명숙은 가슴이 뜨거워 나고 목구멍이 뜨거워 났다. 여자는 뭉글뭉글한 따뜻한 가슴으로 남자의 얼굴을 끌어당기며 뜨거운 입술을 그에 볼에 대였다. 그리고 같이 울었다. 당신이 말하지 못하는 어떤 부분의 아픔도 내가 다 안아 줄게요!ㅡ 명숙은 웅걸의 엄마도 되어주고 싶었고 누님도 되어 주고 싶었으며 그리고 또… 질척질척 늦은 봄비가 정원을 적시는데 울안에 갇혀 있던 오월의 빨간 장미가 담장 너머로 덩굴을 타고 넘으며 방긋방긋 선을 보인다. 깊어가는 봄밤 속에서 예쁜 장미의 숨겨진 정열이 밤이슬을 머금고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모처럼 쉬는 날이 닥쳐오면 그들은 서울 대림동 옆구리를 휘감고 흘러가는 도림 천 물가의 아를다운 노란꽃창포며 수련을 같이 보았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가을날의 춤을 추는 물 억새와 꿋꿋한 부들에 정신을 팔기도 했으며 한강 서래 섬의 하얀 메밀꽃 밭 속에 묻혀보기도 했다. 어느 교회에서 나온 말인지 그때 소문에는 2012년이 이 지구의 마지막 날이라는, 소행선과 지구가 충돌한다는 공포의 소식이 무성하게 돌며 사람들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었다. 성경‘요한계시록’, 이집터의 ‘마야’ 달력이야기, ‘검은 사슴’의 예언, 중국의 주역 역술에서도 이 무시무시한 종말을 제시했단다. 행복은 이제 시작됐는데 세상의 종말이라니? “당신 혹 안 무서워?” “같이 죽을 사람이 있는데요. 뭘, ㅎㅎ” 웅걸의 눈을 바라보며 명숙은 추호의 주저도 없이 대답 하였다.세상이 뒤집혀 진데도 같이 손을 잡고 죽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냥 행복하였다. 년말의 어느 날, 두 집은 조촐한 살림을 한데 모았다. 남달리 부지런하고 억척스레 돈을 모았던 그들은 두 사람의 돈을 합쳐 일억이라는 전셋집까지 얻을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농사일에서 잔뼈를 굳혀 온 그들은 하나는 현장에서 최고의 보수로, 하나는 식당일에서 최고의 보수를 받으며 차츰차츰 정들어 가는 서울 생활을 반짝반짝 윤택이 돌게 하였다. 웅걸과 명숙은 어렵지 않게 영주권을 가지게 되었다. 늦었어도 알뜰살뜰 다시 한 번 잘 살아보려는 정열과 웅심은 옆 사람들을 무색케 하였다. 행복이여, 그대를 위하여 칼날 위를 걷는 자 그 얼마인가   어느 책에서 봤던가? 왜 갑자기 그 옛적 시 구절 하나가 생각이 나지? 천장에 비췄던 잔광이 점점 몸체를 줄인다. 텔레비전의 뉴스에선 아까부터 무엇인가 대단한 소식을 전하고 있는 듯싶은데 소음을 만들어 놓은 상태라 소리도 없거니와 형광 막에 나오는 자막의 글들에 눈길을 주기도 싫다.   그때, 그때 왜 그랬을까? 왜왜? 비가 구질구질 내리던 어느 날 이었다. 여름 우기를 맞으며 며칠째 일을 못나가고 있던 웅걸이가 명숙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서울 선릉에 좋은 행사 하나가 있다니 같이 가보자는 것이었다. 마침 주말이라 명숙은 웅걸을 따라 나섰다. 강단에 열기 띤 사람의 강연, 강연실안을 꽉 채운 호기심에 들 떤 사람들, 세상엔 그렇게 땀 흘리며 고달픈 로동을 안 해도 잘 살수 있다는 확신성 있는 열망들, 이상한 패러다임에 회의장은 들끓고 있었다. 명숙은 어쩐지 현기증이 나려 하였다. 그녀는 웅걸의 팔을 잡아 당겼다. 어쩐지 집으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웅걸의 발은 뿌리 내린 듯 움직일 염을 안했다. 그 친구는 벌써 통장에 엄청 돈이 들어 왔다던데.ㅡ 말을 하고 있는 웅걸의 눈빛은 반짝반짝하고 있었다. 추호의 흔들림도 없는 웅걸의 확신성 있는 표정은 되려 명숙의 머리를 혼돈시켰다. 그런가? 명숙은 역시 웅걸을 믿고 싶었다. 그 후, 웅걸은 현장 일을 그만 두고 그 동창의 도움으로 어느 어마어마한 사무 청사로 ‘출근’하였다. 어느 날 명숙은 웅걸이가 몸담고 있다는 사무 청사에 들렸다. 수많은 운동 의료기기가 있었고 매장 운영에 들어가려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위탁 마케팅에 계약을 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돈이 이 한곳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다고 믿고 있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명숙은 방금 지하철에서 만난 고향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 그 웅걸이 촌장 한국 와서 하던 현장일 그만두고 무슨 사업 한다며? 전번에 선릉역에서 봤는데 양복에 넥타이, 가죽 손가방, 그런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딱 그런 부류 사람들 같았어. 설마 아니겠지? 우리 그 촌장이야 얼마나 식견 있고 똑똑한 사람인데.ㅡ 그런 부류- 그 친구가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의 의미가 띵_하고 온 머리를 내려쳤다. 설마 설마하며 지금까지 방관하고 있었는데 이게 정말 말로만 듣던?   “그만둬요. 빨리 집에 가요! 이건 정말 다단계에요 다 속임수예요!” 명숙 이는 저도 몰래 소리쳤다. “다단계라니? 국가에 세금도 딱딱 바치고 있는 아주 규모가 대단한 회사라고, 국가가 인정 한다는 거지. 얼마나 많은 장관급 인사들, 연예인들도 다 합류되고 있는데, 이 몇 달 동안 내 통장에 연 수입 30~40%씩 꼭꼭 들어오는 거 봤잖아. 나도 이제 저 기기들을 사서 가계 하나 꾸려야겠어. 건축 현장일, 이젠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 사람이 인생에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평등하게 3번의 기회가 찾아온다잖아 어떤 사람은 아쉽게도 옆에 지나가는 기회를 모르고 잡지 않는 거라오! 명숙인 아무 걱정 말라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웅걸의 열변이었다. 자기가 그처럼 믿는 남자였건만 명숙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녀는 또다시 웅걸이가 현장 일을 그만두기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현장 안전선반 대에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웅걸은 오십여 매트 아래로 떨어졌다. 다행히 아주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허리를 다쳐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고 별 영향 없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상태로 회복이 되었는데도 퇴원 전에 산재 보험으로 보상금 근 천만 원이 나왔다. 산재보험료가 통장으로 들어오던 날, 명숙이가 웅걸을 보려 병원에 갔을 때 웅걸은 병원 외곽 복도에 쭈크리고 앉아 누군가와 신나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날, 그 돈은 곧바로 그의 “사업” 투자 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당시에 명숙은 화가 났지만 당신이 “생명 위험”과 바꿔 온 돈인데 자기가 간섭 할 일이 아닌 것 같아 입을 다물고 말았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선엔 지금까지 찜찜한 그 무엇이 계속 막연한 딜레마 속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창살로 끼어들어 천장 한 조박을 밝히고 있던 희미한 빛은 완전 사라지고 컴컴한 방안엔 텔레비전이 아직도 번득번득 빛을 뿌리며 소리를 입에 문 벙어리 손시늉 마냥 화면을 언뜻언뜻 바꾸고 있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이 플레이어 되고 있는 것일까? 억지로라도 일어나 등을 켜고 텔레비전을 꺼야겠다고 생각 했지만 가라앉는 기운은 손 까딱 할 힘조차 주지 않았다. 바로 몇 달 전이였다. 고향에 일이 생겨 명숙이 중국에 갔다 오던 날이었다. 공항에 마중 나왔던 웅걸은 공항버스에서 같이 내려 어쩐지 엉뚱한 방향으로 집을 안내 하였다. 어리둥절해 자신을 쳐다보는 명숙 이를 마주하고 남자는 시물시물 웃기만 했다. 그리곤 천연스레 해석이란 걸 하였다. "여보 , 이번에 내가 아주 아담한 집 한 채 다시 구했어. 임시 좀 좁을 테지만 조금만 당신이 기다려 주면 우리도 월세 집, 전셋집이 아니라 번듯한 아파트도 살 수 있게 될 거야" 얼마나 신바람 났는지 웅걸의 얼굴은 흥분으로 벌겋게 열을 내고 있었다. “네? 전셋집을 뺏어요? 전세금을요?” 청천벽력 이었다. 끝내 전세 값 일억 원을 빼내어 늘 외우던 그 ‘사업“의 운동의료기기 가계를 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제야 명숙은 전셋집 계약을 할 때 명숙이가 근무중이여서 웅걸이 혼자 명의로 계약을 해도 된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남자는 혼자서도 계약금을 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그만 한 월세 집에 들었던 것이다. 갑자기 낯설어진 웅걸을 앞에 놓고 여자는 무릎이 폴싹 내려앉는 감을 느끼며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어떻게 번 돈인데! 어쩌면 한마디 상의도 없이, 어쩌면 이럴 수가! 당신 그때 그 사리 밝고 마음 후덥던 촌장 웅걸이 맞아요?! 그리고 내 존재를 의식이라도 하고 있는 거예요? . 눈에 비친 그대는 /깜박이는 불꽃 발밑에 눌리어 /깨여지는 얼음이어라   여자는 무의식적으로 또 한마디 시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하늘같이 믿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용납하리라 다짐했던 마음속에는 억누를 길 없는 반란이 꿈틀거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여자는 짐을 싸서 떠나야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러면 지금까지 피담 흘려 모아 투자한 돈은? 그리고 또, 그 옛날 웅걸이 명숙의 남편대신 죄명을 쓰고 감옥에 가고 천 만원 어치의 초청장도 무료로 해 줬던 일이 머리를 치며 그의 발목을 잡았다. 여자는 머리 뚜껑을 열고 밖으로 치솟는 불길을 이를 악물며 억누르고 있었다. 웅걸이 말처럼 그 찬란한 내일의 태양을 정말 믿고 기다려야 할까?? 세상의 모든 것이 갑자기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이불을 들고 혼자 주방바닥에 들어가 누워 머리를 흔들며 생각하고 또 하였다.   웅길은 치킨과 맥주를 사왔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있는 ‘사업’의 성공 성 여부를 하나하나 꼼꼼히 피력 하였다 이 어두운 월세 집에 예상치 못했던 내일의 찬란한 태양이 그들의 운명을 로또복권 당첨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내일의 확신성을 얘기 하였다. 명숙은 마주앉아 꼴깍꼴깍 붓는 술을 마시며 묵묵히 열변을 듣고 있었다. 래일, 래일? 그래 화려한 래일은 온다. 혼신의 기운을 담은 아름다운 채색 풍선이 하늘 높이 떠오르는 장면이 아물아물 안겨 왔다. 그래 이 남자는 학교 때 공부도 잘 하였고 다른 사람 대신 폭행죄까지 떠안던 사람이며 어머니와 마누라,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의 비난에도 서슴없이 자기를 위해 천만 원 가치의 한국 초청장도 불사한 남자다. 절대 누구를 배반할 사람도 아니고 속히 울 사람도 아니다. 여자의 머릿속엔 여전히 그 옛 흉금 넓고 뜨거운 가슴을 품은 촌장 웅걸이 살아 있었다. 아니, 저 남자가 그렇게 까지나 완전 변하지는 않았겠지… 여자는 설마 설마하며 자신을 달래고 치솟는 불길을 꾹꾹 누르며 믿음을 안고 남자와 함께 열심히 피라미드식 사람 운영을 위한 가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다행이 투자한 돈이 꼬박꼬박 고금리로 나왔다. 리득의 재미는 끝없는 욕심의 풍선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통장의 모든 돈을 위탁하였다. 의료운동기기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발길을 이어주고 있었다. 그래, 래일은 올 것이다. 래일의 태양은 꼭 찬란할 것이다. 어둠은 가고 여명은 온다! 풍선을 날려라 기대와 열기로 들뜬 나날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지 또다시 몇 달이 지났다. 만물의 생령이 부활하는 4월의 어느 날, 그 모든 환상과 희열을 삽시에 말살해 버린, 죽음과도 같은 청천벽력의 소식을 들었다… 응? 뭐라고? 빨리 말해 봐, 대형 사기였다고?! 어찌된 영문이야? 웅걸은 어디에 갔나? 왜 보이지 않아?! 같이 피라미드를 쌓아오며 재미가 나서 명숙과 함께 돈을 받는 족족 다시 다 투자하고 있는 동료의 한통의 전화로 명숙의 피 말리는 함성은 목구멍을 넘지 못하고 가슴에서 터지고 있었다.   캄캄한 방안엔 저녁 9시 뉴스가 한창이다. 음 제거를 한 소리 없는 텔레비전의 화면에는 얼마 전부터 이미 익숙해진 몇 글자들이 초점 잃은 그의 시야로 파고든다. 해피글로벌, 8조원 피해액, 24만4000여건의 피해사건… 이어서 천기예보ㅡ래일은 하루 종일 비…   …아아, 날아가는 고무풍선 그 때문에 울부짖는 어린이의 마음을 아무도 달래지 못 하네…   그날 머릿속에 떠 올렸던 시 구절의 마지막 부분이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핏방울이 되어 그의 가슴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강산은 변하고 있었다. 사람도 인정도 사랑도… 가난했던 고향, 늙은 부모님들의 송장 같은 얼굴이 자꾸 텔레비전의 화면을 덮치고 있었다.     서울에서                  
5    하얀 무지개를 내 놓으며 댓글:  조회:882  추천:0  2019-11-22
“하얀 무지개”를 내 놓으며 이것은 깨여진 유리조각의 한줄기 빛의 이야기다. 늦가을의 어느 날 오후, 서쪽 하늘가에 비 온 뒤 때늦게 피어오른 햇살 끝에 무지개 한쪽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아무 색깔 도 없는 윤곽만 지탱하고 있는 하얀 무지개 이었다. 놀라움에 커다래진 나의 동공 속으로 작은 양태머리를 탈랑거리며 아름다운 무지개를 뒤쫓던 동년의 그 소녀가 서 있었다. 오랜 세월 짝꿍 같던 한 그림자가 반평생을 나의 뒤에 서 있었다. 색 바랜 세월 속에 묻혀 졌던 희미한 기억이 핏빛 보라를 일으키며 내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응어리를 만들어 내더니 끝내는 수많은 바이러스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퍼뜨리며 내 머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누군가는 문학을 하는 이유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누락된 기억을 되살려 기록을 남기는 것이며 한 존재와 다른 한 존재와의 뜨거운 만남의 기록이라고 하였다. 나는 쑥대밭이 된 머리를 갈무리하며 깨여진 유리조각의 한 줄기 빛을 찾고 싶었다. 소설집도 내고 수상도 다소 하였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필을 잡지 못하였다. 하지만 짓궂은 악마 같은 그 옛날에 인연이 되었던 글 귀신의 손아귀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또다시 글을 쓰기 시작 한다…
4    하얀무지개 창작후기 댓글:  조회:818  추천:0  2019-11-22
“하얀 무지개” 창작 후기 늦가을의 어느날 오후, 서쪽 하늘가에 비온 뒤 때 늦게 피여오른 햇살 끝에 무지개 한쪽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아무 색깔도 없는, 륜곽만 지탱하고 있는 하얀 무지개였다. 무지개? 그랬다. 분명 색을 잃어버린 하얀 무지개였다. 놀라움에 커다래진 나의 동공속으로 동년의 채색 무지개가 떠올랐다. 쬐꼬만 머리태를 탈랑거리며 아름다운 무지개를 뒤쫓던 그림자속에 그 소녀가 서 있었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소녀의 꿈을 쫓던 이야기…그러나 우리들의 “상식”을 벗어난 그녀의 꾸밈없는 생각들의 꺼리 낌 없는 표출의 일상으로 그의 인생은 좌충우돌 상처투성이 되어 버리고 조그마한 실수도 웃음거리가 되어 버리며 우리들의 삶속에서 멀리멀리 소외되어 버린다. 허덕이며 꿈을 쫓던 그녀는 그 누구의 따뜻한 손길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기진맥진 하며 쓰러지고 만다. 그녀가 세상을 등졌을까? 세상이 그녀를 등졌을까? 오랜세월 나의 눈도 앞만 보아왔다. 짝궁 같은 한 그림자가 내 반평생을 내 뒤에 서 있었건만 그가 이 세상에서 빛을 잃고 소실되어 가기까지, 세상을 향해 그의 진실된 존재의 가치를 확인시켜 주지 못했으며 단한번의 실수를 발견하자 세상과 소리를 맞춰 가차없이 내 마음에서 멀리 차버렸다.   색바랜 세월속에 묻혀졌던 희미한 기억이 핏빛 물포를 튕기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있엇다. 그 소리는 내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응어리를 만들어내더니 끝내는 수많은 바이러스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퍼뜨리며 내 머리통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내 머리 뚜껑 이 열려버렸다. 누군가 문학을 하는 이유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누락시킨 기억을 되살려 기록을 남기는 것이며 그것은 한 존재와 다른 한 존재와의 뜨거운 만남의 기록이라고 하였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성찰의 기회를 가지며 쑥대밭이 된 머리를 정리하여 마음을 정화하고 싶었다. 그리고 “깨여진 유리 쪼각의 한줄기빛”을 찾고 싶었다.   내가 살던 세린하 강반엔 동년의 꿈이 흐르고 있고 아름다운“강성”엔 얼기설기 수 많은 스토리들이 숨어 숨쉬고 있다. 문학은 픽션, 허구이고 상상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상상력은 생생한 삶으로 증명할 때 윤리가 생기며 윤리속에 묻혀진 핵을 파헤치는 날카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일평생 당신 곁에 존재했어도 그 존재의 핵을 보아내지 못하면 눈동자를 가진 허구와 상상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리고 글을 쓸때면, 나는 가끔 영화를 보는 듯이 리얼한 형상 하나를 찾기 위해 오래오래 끙끙이를 앓을때가 많다. 내 앞에 선 사람이 산 사람이 아니면 내가 어떻게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사색의 수심속에서 생생한 생명 하나가 신비의 모습을 드러내며 펄떡이고 있을 때, 나는 “연금술사”의 경건한 마음으로 내 마음의 신화를 찾아내기 위해 피를 말리며 도정신하여 낚시를 끌어 올린다. 정말 “내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 나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 주기를 기도하며… 그러나 아쉽게도 번마다 유감은 어김없이 찾아와 내 뒤통수를 친다. 휴ㅡ  
3    단편소설 2006, 그해 겨울 댓글:  조회:902  추천:0  2019-11-22
단편소설 2006, 그해 겨울 너무 추웠던 그해 겨울의 간이역… 진눈개비가 어지럽게 흩날린다. 물먹은 스펀지 마냥 축 처져 있는 내 마음에 우수를 난무한다. 한집의 가정부로 집에도 가지 못하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소진하고 있는 나는 주인집의 저녁 준비를 하려고 쌀바가지를 들고 있었다. 전화벨 소리가 급작스레 귀청을 두드린다. "여보세요" “큰일 났어요, 성남 씨가 출입국에 잡혀 갔어요!” 다급히 소식을 전하는 상대방은 우리가 ‘얼음 꽃 미인’이라고 부르는 민정이었다. 그만큼 차분한 말투와 침착성이 일관되었던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지금 그의 목소리는 누구에게 뒤쫓기는 듯 당황하였다. 아니, 성남 씨가 출입국에 잡혀 가다니? 나는 머리가 띵해 나며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 시키며 자초지종을 케어 물었다. 민정은 숨 가쁘게 널뛰기로 대충대충 상황을 설명하였다. 성남 씨는 어제 저녁, 오랜만에 처남을 만나-다시 말해 몇 년 전에 암으로 저 세상에 간 마누라의 오빠를 서울에서 만났다고 한다. 가슴에 오래 묻어 놓았던 슬픔의 보따리를 풀며 두 사람은 만취하도록 같이 술을 마셨다고 한다. 지하철까지 나와 처남을 보낸 후 성남 씨는 그만 술기운에 지하철 장의자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때 플레트홈을 순회하던 지하철 경찰이 의자에 누워 자고 있는 사람을 일어나라고 흔들었다. 성남 씨는 취중의 잠결에 눈을 감은채로 귀찮다고 팔을 들어 휙 쳤는데 재수 없게 안경 낀 경찰의 눈두덩을 쳤다. 같이 동행하던 두 경찰이 와락 성남 씨를 끌어 당겨 땅에 팽개쳤다. 그때까지도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는 성남은 무어라 중얼거리며 같이 주먹질을 했다. 발길에 무수히 걷어차인 그는 결국 외국인이란 것이 탄로가 되며 출입국에 잡혀 들어갔다. “어떻게 해요, 빨리 구해 내야 할 텐데요!“ 그래도 나이 둬 살 많은 나를 언니처럼 여기고 나에게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한 그에게 나는 그녀가 어떻게 이처럼 상세하게 먼저 알았는지 미처 물을 여지도 없이 전화기를 놓고 대책을 강구하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보니 마침 그날은 나의 남편이 집에서 쉬고 있었다. 나는 급히 남편에게 전화를 하였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말귀를 못 알아들은 사람처럼 멍해있는 남편에게 빨리 은행에 가서 현금 한 200만 원 정도 꺼 내여 출입국에 찾아가 사람을 구해보라 부탁하였다. 언젠가 누구도 잡혀 간 사람을 돈으로 해결해 나왔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았다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급히 폰을 닫았다. 늦은 밤, 나는 자그마한 "아줌마 방"에 들어와 마음을 조이고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웬일인지 남편은 계속 전화도 받지 않고 소식도 없다. 윙윙거리는 창밖의 눈보라 소리는 신음하는 짐승의 괴성 같았다. 어느 날 이였던가, 그날은 때 이른 찬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남편은 현장 일에서 다친 다리 통증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고 나와 지팡이를 짚고 사거리를 지나 쩔뚝쩔뚝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씽-하고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빗살 속으로 쏜살같이 지나며 남편이 짚고 가는 지팡이를 쳤다. 놀란 사람들이 모여드는 사이 오토바이는 이미 종적 없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만 할 뿐 아직 누구 하나 선뜻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였다. "다친대는 없습니까?" 모여든 사람들을 헤치며 오십대 남자가 부리나케 옆으로 다가왔다. 오토바이에 직접 몸을 부딪치지 않았어도 오토바이와 지팡이와의 갑작스런 충격으로 남편은 이미 저 만큼 나굴러 떨어졌다. 허리와 다리의 통증이 말이 아니었다. 상 중등 키에 사람 좋은 인상을 가진 그는 두말없이 남편을 업고 병원으로 되돌아 뛰었다. 그게 바로 성남 씨였다. 병원에서 돌아와 집에 도착하였을 때 같은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고향친구 철수 씨도 찾아왔다. 그날 저녁 내가 성남 씨를 위하여 저녁상을 준비하며 그전에 나와 한식당에서 일했던 민정이와 월매도 불렀다. 우리는 아무 허물없이 너무 잘 어울려 졌다. 우리에겐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고독과 외로움, 똑같이 풍기는 "이방인의 냄새", 똑같이 안고 사는 힘든 노동의 고달픔이 있었다. 우리는 만남 그 자체부터 한 동아리가 되어 휴식일이면 꼭 한곳에 모이군 하였다.. 중국의 어느 한 무역회사의 대표로 한국에 들어 왔다가 사업 실패로 중국 측의 귀국 통보를 받았지만 마누라 암 치료에 쏟아 넣었던 빚 때문에 그대로 물러앉았다는 김 성남 씨, 러시아 보따리 장사 때 남편을 잃어버리고 한국 돈 천 여 만원을 브로커에 넘겨주고도 한국에서 불법체류라는 신분으로 남아 억척스레 돈을 벌어야 하는 민정이, 그리고 술 만 마시면 마누라 때리기가 장기인 남편과 갈라지려 절대 중국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월매. 그리고 또 한사람 철수 씨, 그림그리기 손재간이 있어 어느 건축회사의 설계사로 있었다는 그는 건설 현장에서 철근 오야지로 일하며 수입이 그중 좋은 편이다. 다만 같이 한국에 들어 온 마누라가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장년 어느 지방에 내려가 먹고 자고 하는데서 일하다 보니 역시 항상 외로움을 타고 있는 그다. 그래서 우리와 합류가 되었을까? 그러고 보니 나와 남편은 유일하게 같이 동참한 부부였다. 한국 친척 초청으로 들어와 이젠 한국 국적까지 가지고 있는 우리는 그들보다 둬 살 더 많았는데 그들은 우리 두 내외간을 항상 친 형님 언니처럼 따르며 많은 것을 우리 두 내외와 상의하고 의뢰하군 하였다. 국적을 가졌어도 이방인이라는 아픔을 안고 사는 우리에게 그들과의 모임은 역시 즐거운 마음의 쉼 터였다. 주말 휴식일이 되면 우리는 혼자 셋집을 잡고 있는 성남 씨 집에 모여 들었다. 우리만의 메인홀이였다. 그 집 창문의 블라인드는 항상 드리워져 빛을 막고 있어 타향 생활에 불안함을 안고 사는 우리에게 어쩐지 아늑한 안주감을 주었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책읽기를 무척 좋아하는 성남 씨는. 입을 꾹 다물고 늘 내용이 담긴 따뜻한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있어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교포들 치고는 퍽 젠틀맨의 멋을 가지고 있는 그는 항상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끝까지 잘 들어 주며 자기의 의사는 겸손하게 뒤로 양보하는 풍격이 있었다. 그리고 한번 만났던 사람을 두 번째 만날 때 는 꼭 이름을 맞춰주는 책임감 있는 기억력 때문에 다들 그를 좋아하였다. 여성들에겐 동네 아저씨처럼 푸근하고 따뜻했으며 화를 내는 것을 거의 못 봤다. 화를 내는 것은 다른 사람의 과오로 자신을 징벌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격언"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끔 우스겟 소리도 곧잘 하였다. 그럴 때면 민정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성남 씨를 할끔 바라보군 하였다. 성남 씨는 우리가 모일 날이 되면 항상 냉장고에 먹 거리를 그득 준비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그와 우리 남편, 그리고 철수는 물론 우리 여성들도 잘하던 못하던 맥주나 중국산 포도주를 놓고 즐겼다. 그중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다 한국에 왔다는, 애교가 많은 월매는 늘 남자들을 잘 챙겨주었다. “오빠, 요것 좀.” 얼굴에 별빛 같은 눈웃음을 반짝이며 안주도 착착 집어서 남자들 접시에 잘 놔 주고 술잔에 술도 잘 따라 주었다. 옛날 같으면 술집의 기생 같다고 우리는 입을 막고 삐죽거렸으련만 타향의 슬픈 생활의 환난지우(患難之友)라는 아픔 때문이었는지 우리 동성들의 마음에도 그저 고맙기만 하였다. 물론 월매가 성남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살피며 매번 이미 애인이라도 된 듯이 성남 씨를 각별히 챙길 때면 성남 씨는 가끔 겸연쩍어 우리 눈치를 슬쩍 보기도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우리는 오히려 ‘풋 하하’하고 웃음보를 터트리군 하였다. 단 한 사람이 웃지 않고 있었다. 민정이었다. 월매와는 달리 다문 입을 잘 열지 않는 민정은 어딘가 조금은 쌀쌀한 기운까지 도는 찬 여자-그야말로 얼음 위에 피고 있는 얼음 꽃 같았다. 그래도 그녀는 모임에 올 때마다 먹 거리를 잘 사오고 설거지를 도맡아 하였다. 그리고 일단 노래방에 만 가면 그의 애잔한 슬픈 노래들은 우리의 가슴을 적셔 놓았다. 한번은 그녀가 우리 교포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노래, 드라마 "황금사과"에서 나오는"꿈꾸는 카사비앙카"를 불렀다.. "석양은 물드는데, 그댄 어디에 있나 … … 바다와 맞다은 그곳에 붉은빛의 부겐빌레라 그대를 기다리네" 이 노래를 얼마나 애절히 부르고 있었던지 우리는 숨도 크게 안 쉬고 듣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부겐빌레라’는 걸 알고 있어?' 하고 물었더니 "네, 미국 켈리포니아주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꽃나무 이름인데 당년에 프랑스의 제독이자 탐험가인 부겐빌리 이름에서 나온거란 걸 책에서 봤어요." 하며 야무진 대답을 하여 나를 놀라게 하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노래방에 갈 때 마다 한 번씩 부르는 노래 한곡이 또 있었다. 바로 "님과 함께"였다.' 새 곡들을 많이도 알고 있는 그가 이런 오래되고 조금은 신물이 난 이 노래를, 그리고 그의 애상과 우수에 맞지 않게 이런 경쾌한 노래를 한번 씩 부를 때 면 우리는 의아한 생각으로 바라보다가도 미래의 그 어떤 동경에 빠진 듯이 머리를 약간 수그리고 눈을 감고 엉덩이를 살록살록 흔들며 깊이 심취된 우아한 모습과 그 자태를 동반하는 애잔한 맑은 목소리에 번번이 홀딱 매혹되여 쿵짝쿵짝 다같이 춤을 추며 돌아갔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타향생활의 아글타글하는 고생살이도 우리 모두 그 하나의 꿈을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 특히 노래방에 만가면 탠버린을 흔들어 대고 있는 철수는 그 옛날 중국에서 한동안 무대에서 가수 생활을 좀 했었으며 지금 그 고된 노동 속에서도 변함없는 텔렌트 같은 몸매와 사람의 심금을 울려주는 노래를 부르는 민정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우리가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 갈 때면 철수는 민정에게 은근슬쩍 제 2차로의 약속을 받아내려 그녀의 뒤를 급히 쫓았다. 그러면 민정은 큰언니인 내 곁을 바짝 붙어 걸어간다. 왜, 철수가 싫어? 노래방에 갈 때 마다 주머닛돈을 아끼지 않는 철수가 조금은 안쓰러워 나는 슬쩍 비춰 보았다. 그냥요. 민정의 대답은 간단하였다. 그럴 때면 나는 잠깐씩 생각에 잠긴다. 혹 민정도 월매처럼 성남 씨를? 싹싹하고 얼굴 어여쁜 월매, 새침데기면서도 제 할 일은 말끔히 다 해치우며 멋진 몸매에 노래까지 잘하는 얼음 꽃 미인 민정이, 그런데 성남의 태도에선 그 .어떤 기미도 보아낼 수 없었다. 하긴 그들 모두 돌 싱 이긴 하지만 아직은 스테디 한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나에게도 몇 년 전 이혼을 하고 혼자 있는 질녀가 마땅한 사람을 찾고 있는 중이여서 성남이란 남자의 인품을 얘기해줬더니 질녀가 홀 하였다. 성남에게 나의 뜻을 비쳐 봤다. 성남은 또 그 알 수 없는 미소만 남길 뿐 확실한 대답을 적이 피하고 있었다. 이렇게 몇 년을 함께 지낸 우리 동아리는 이젠 정말 한집 식구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성남 씨가 출입국에 잡혀 가다니. 한참 마음을 조이고 있는데 뒤늦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 아 참, 뜻밖이요! 성남 씨가 불법체류 자라네, 돈을 가지고 흥정할 일이 아니었소. 면회는 되여 성남 씨를 만났는데 몸을 많이 다쳤다누만. 출입국에 요구하여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했더니 글쎄 지하철에서 경찰 발길에 차여 갈비뼈 세대나 금가고 상했다오. 병원에 입원 시켜 놓고 오느라 정신이 없었소. 개자식들!” 그러니까 그해 중국 대외 무역부측의 소환통보를 받고도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눌러 앉은 것이 결국은 불법이란 결과를 초래 한 것이다. 그런 내막 까지는 우리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에 가슴이 떨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평소엔 종래로 화를 낼 줄 모르던 그다. 가슴속 깊이 묻혀있던 저 세상 간 마누라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 얼마나 욱 하고 올리 밀었으면 그토록 인사불성이 되도록 만취 했을까? 사실 성남이 무역대표로 한국에 들어와 한창 사업을 시작했을 때 간경화 후기로 고생하던 그의 부인이 시급히 간이식 수술을 받아야 할 위기를 맞게 되었다. 성남은 추호의 주저도 없이 팔을 걷어 올리고 혈액 검사를 하였다. 하늘이 도와 줬나, 남편이 부인에게 직접 이식할 수 있는 천재난봉(千載難逢)의 기회를 얻었다. 돈도 없고 이식할 대상도 기다릴 수도 없었던 그 상황에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어디 있었으랴 그러나 간이식후 워낙 건장한 체구였던 성남은 무사히 회복이 잘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이식을 받은 부인은 거부 반응으로 상용적인 면역억제제 치료를 계속 받았지만 끝내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부인은 남편의 손을 잡고 주르르 눈물을 흘리며 한마디 말을 남기였다. "그래도 당신 참 고마웠어, 내가 하늘에서 도와 줄 테니 꼭 좋은 사람 만나요!" 그의 고향 친구에게서 들은 이 이야기는 우리 몇이 다 알고 있었다. 그가 술김에 무의식적인 실수로 경찰의 눈두덩을 쳐 안경까지 깨여 졌다고 해도 술 취한 사람에게 갈비뼈가 다 부러 지도록 발길질을 했다니. 분을 삭이지 못해 한참 가슴앓이를 하던 나는 한밤중에 철수에게 전화를 했다. 월매나 민정이 보다는 어쩐지 그에게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성남 자신은 불법 체류라는 낙인만으로도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는 상태지 않는가. 철수도 화가 나서 씩씩거렸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씨발, 때려죽일 놈들! 경찰이란 놈들이 술 취한 사람을 그 지경 만들어 놓다니, 다 교포라고 깔보고 그런거야!“ . 나는 월매에게도 민정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사실 성남이 그날 출입국에 잡혀 가던 날 때맞춰 성남에게 민정에게서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문득 걸려온 민정의 전화에 자기가 지금 어떻게 출입국에 잡혀왔다는 소식만 전하고 더 상세한 것은 말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모두 충격을 받는 상태였다. 그들은 일제히 내일 출입국에 성남 씨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였다. 철수와 월매는 몰라도 민정은 역시 불법체류자니 출입국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나는 신심 당부하였다. 이튿날, 철수와 월매가 출입국에 갔다 와서 하는 말이 성남 씨는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받고 있으니 일단은 치료 받는 동안 우리가 어떤 대책이라도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나와 남편은 벌서 며칠째 서울 출입국을 쫓아 다녔다. 발길질을 한 그 경찰에겐 아무런 법적 처벌도 없은 체 치료중인 성남은 이제 곧 강제추방이란다. 정말 뚜껑이 열리고 꼭지가 돌 일이다. 가슴은 꽉 막혀 버렸고 힘없는 우리의 목소리는 그 어느 문도 열 수 없었다. 아, 나는 머리를 들고 초점 없는 눈길로 하늘을 쳐다본다. 구름이 해를 막고 해는 숨어 버리고, 쌀쌀한 바람은 뺨을 때린다. 올 겨울 서울의 하늘은 항상 그렇게 어둠침침하고 서울의 길은 어디나 올리막 길 같다. 공원 길목에 걸려있는 누가 쓴 시 한줄이 눈에 띄운다 "바람이 분다, 괜찮아, 괜찮아." 제밀할, 괜찮기는, 모든 것은 틀어지고 엉망이다. 배부른 소리는 걷어치우라! 벌어진 사태 앞에서 이렇게 하릴없이 나날을 소모하고 있는 나는 주위에 대한 영문 모를 간헐적인 분노로 한참씩 자신을 괴롭힌다. 성남은 벌써 몇 번이나 소식을 전해 왔다. 자기는 모든 것을 다 달갑게 접수하고 있으니 제발 친구들은 조용히 있으라고. 우리의 생각은 이처럼 흐리터분하고 우리의 마음은 이처럼 침울하다. 대책도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궁지에 몰리면 담을 뛰어 넘는다고들 한다. 그것은 상식일가 초탈일가? 세상만사의 순리에 따른 순응이냐, 아니면 내 판단의 주장과 욕망을 위한 담 뛰어 넘기냐? 실타래처럼 헝컬어진 사유를 물고 침묵은 지속되고 그 둔중한 침묵 속에서 스릴한 무엇이 잉태되고 있었다.. 또 며칠이 지났다. 나의 남편과 철수는 성남 씨를 보려 병원에 갔다. 출입국의 한 젊은이가 성남 씨 옆에서 지킴이 역을 하고 있었다. 곧 떠나야하는 성남 씨를 위해서 하루 일을 전패하고 일부러 왔다고 지킴이 직원에게 해석하였다. 그들은 직원과 같이 울안에 나가 한담도 하고 담배도 같이 피우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늦은 오후가 되었다.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때운 그들은 모두 속이 출출 하였다. 같이 나가서 간단히 국밥이라도 하고 들어오죠? 아니요. 철수의 말에 지킴이 대답은 단호하였다. 침묵이 흘렀다. “저 사람 저렇게 링겔 맞으며 계속 자고 있는데 제가 한턱 쏠 테니 잠깐 식사하고 들어옵시다.” 남편이 지킴이를 잡아 당겼다 지킴이는 쿨쿨 자고 있는 환자를 한참 지켜보더니 생각 밖으로 순순히 따라나섰다. 식사를 하며 캠 맥주 세 통까지 굽을 낸 그들은 기분들이 한결 느슨해졌다. “아이고 난 오줌이 마려 화장실에 좀…” “나 두요” 두 사람이 급히 화장실로 가고 젊은 지킴이는 혼자 뚜벅뚜벅 병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병원 길 건너 왼쪽 굽인 돌이에서 월매를 태운 택시 한 대가 길 한쪽에서 민정이가 대기하고 있는 지점으로 휙 하고 다가와 멈춰 섰다. 언제 나타났는지 나의 남편과 철수가 몸을 제대로 가늠 못하는 성남을 부축하여 감쪽같이 택시에 올라탔다. 병원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완전 다른 구역의 한 2층 집에서 나는 찬을 준비하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은 산란하기 그지없었다. 나의 질녀가 구해낸 세집인데 얼마 전에 지방에 내려가 일하게 되여 집이 비어 있었다. 드디어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쿵당쿵당 다급히 계단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허리를 구부린 성남, 그리고 당황한 눈길을 나에게 던져오는 남편과 철수, 다급히 뒤 따라 올라 온 민정과 월매… 후-나는 드디어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우리는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도 상황 설명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도저히 감각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서야 민정이가 정신을 차린 듯 말하였다. ‘일단은 편히들 앉으세요. 언니가 음식을 다 준비해 놨는데.” 민정 이와 월매가 주방에 내려가 음식상을 차려 들여왔다. 나는 그동안 오래 동안 옷도 못 갈아입었을 성남 씨를 위하여 미리 준비해 온 옷가지들을 내 놓았다. 성남은 화장실로 들어가 환자복을 벗고 속옷부터 몽땅 갈아입었다. "나 빨리 집에 좀 갔다 와야겠어요." 성남이 불쑥 말했다. "이 상황에 어딜 간다고?" 우리는 거의 이구동성으로 소리 쳤다. "그분들과 찍은 사진 액자들과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다 챙겨 와야 합니다." 그때에야 우린 생각이 났다. 그해 중국 무역대표로 성남이 한국에 갓 왔을 때 국회의 모모한 분들과 찍은 사진 액자들이 그 집 벽에 걸려 있었다. "잘됐네, 그 분들께 좀 도와 달라하면 되겠네." 철수가 흥분하여 말하였다. "그분들께 그렇게 루를 끼치는게 아닙니다!" 성남의 단호한 말투였다. 얼굴빛마저 생경해 보였다. 침묵이 흘렀다. 이 상황에 누가 감히 '탈주범'의 집을 찾아간담? 성남은 두말없이 일어나 신을 찾아 신는다. "안돼요, 조용히 집에 계세요!" 말을 끝내기가 바쁘게 민정이 어느새 신을 끌고 문밖을 나섰다. "안 돼, 너도 불법인데" 나의 말은 그의 쾅하는 문소리에 묻혀 버렸다. "꼭 챙겨야 해? 별나게도!" 월매가 나가버린 민정을 향해 볼 맨 소리를 하였다. .서울의 밤은 유난히 밝고 소란스럽다 .사랑에 울고 웃는 서울의 밤거리, 희망과 절망에 우여우여 소리치는 서울의 밤거리, 달과 별이 짙은 구름 속에 깊이 묻혀 있어도 네온등들은 제가끔의 황홀한 불빛으로 어둠을 샅샅이 들춰내고 있다. 그리고 들쑹날쑹 꽃혀져 있는 서울 밤하늘의 수많은 십자가들, 그 아래로는 삼엄한 경찰차들이 거리를 누빈다. -불법체류자! 누군가 당장이라도 뒷덜미를 잡는 것 같다. 민정은 잔뜩 얼어붙은 가슴을 안고 어두운 골목을 찾아 밤 고양이 마냥 조심스레 걸어갔다. 드디어 민정은 텅 빈 성남의 집 문 앞에 이르러 우리가 공동으로 알고 있는 감춰놓은 키를 찾아 집안을 정리하였다. 국회의원님 들과 찍은 벽에 걸려있는 액자들-한때의 ‘영광’을 다 내려 챙겨 넣었다. 이것저것 깔끔히 다 정리를 한 민정은 부리나케 문밖을 나섰다. "저 집인 것 같은데" 민정이 금방 골목길로 되돌아서는데 저쪽 골목 어귀에서 경찰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언듯하였다. 민정은 잽싸게 어둠속에 묻어 들어갔다.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 같았다. 차려 놓은 음식을 월매가 제일 먼저 성남 씨 입으로 가져갔다. “너무 고생 많았어, 자기가 추방되는 줄 알고 난 정말 눈앞이 캄캄했었다구. 이젠 정말 다행이다.” 월매 눈에는 눈물이 가랑가랑하였다. 삐걱하는 문소리와 함께 민정이 사색이 되어 집안에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물건을 가득 담은 짐 가방이 들려 있었다. 백지장이 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우린 할 말을 잃었다. "민정 씨!" 갈린 목소리와 함께 성남이 울뚝 일어섰다. 우린 충혈 된 그의 두 눈에 푹 젖은 무엇이 글썽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정서와 행동에 대해 항상 소심하던 그였다! “자, 우리의 탈출기, 아무튼 오늘 끝내 성공했으니 술 한 잔 합시다… 다들 잔을 들어 건배!” 누군가 집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보려 크게 한마디 띠였다. 이 때였다. 철수의 휴대폰 소리가 우리의 귀를 찔렀다. 모두의 눈길이 소리 나고 있는 그의 폰에 꽃혔다. 숨소리도 멈췄는데 벽시계 소리만 똑-딱, 똑-딱… 모르는 번호인데? 폰을 한참 뚫어지게 응시하던 철수가 머리를 기우뚱하였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불안한 예감이 번개처럼 휙 지나갔다. “ 받지 마, 빨리 전화기 꺼! 혹시 위치 추적이라도…” 오늘 그 지킴이는 자기 전화번호 모른다고 폰을 든 철수가 당황히 설명 하였다. 아차, 처음 출입국에 성남 씨 면회하러 갔을 때 방문 서명 단에 전화번호까지 적게 했었지? 철수가 끝내 생각을 더듬어 냈다. 출입국 쪽에선 벌써 다 연계가 되고 깐깐한 추적이 시작 된 것이다! 사실 그 첫 방문 때 만해도 오늘의 계획은 전혀 없었지 않는가. 얼마가 지나자 나의 휴대폰 소리가 울렸다. 오늘 사건에 직접 노출 되지도 않았고 나만은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으니 혹 일이 커진다 해도 강제추방 같은 건 없을 것이란 생각도 있었지만 일하는 집 주인에게 잠시 말미를 얻어 나온 나였기에 주인집의 전화가 올 가봐 유독 나만 휴대폰을 켜놓고 있었던 것이다. 폰 뚜껑을 열면 통화가 되는 나의 휴대폰은 번호를 확인 하려는 순간, 벌써 저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어디십니까, 혹 남편 분과 같이 있습니까?” 아차, 나는 나의 실수를 직감하였다. “네? 남편요? 전 지금 일 하는 집에 있는 데요" 이제 위치 추적이 될 거예요 민정의 말 이였다. 우리는 차려놓은 음식을 입에 대지도 못 한 체 부랴 부랴 문밖을 나섰다. 빨리 흩어져 각자 갈 곳으로 가서 숨어 있자고 하였다. 계단을 내리며 나는 남편과 철수에게 휴대폰을 절대 더 쓰지 말고 버리라고 신심 당부하였다. 뒤를 보니 민정이가 성남을 부추겨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사거리에 나왔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나도 빨리 일하는 집에 도착해야했다. 철수와 월매도 제가끔 택시를 잡아타고 뿔뿔이 도망치고 있었다. 성남 씨에게만은 빨리 택시를 잡아타고 시골이던 어디든 멀리멀리 도망치라고 부탁하였다. 나도 차를 잡아타고 떠났다. 모두들 나 몰라라 도망가기 바쁘다. 무의식중 백미러로 뒤를 돌아보았다. 민정이가 성남 씨의 팔 하나를 제목에 얹고 걷고 있었는데 마침 택시 하나가 그 옆을 지나다 섰다. 그들 둘은 같이 급히 차에 올랐다. 나는 눈시울이 흐릿해졌고 가슴이 젖어 올랐다. 아, 얼음 미인! 납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힘겨운 나날이 지속 되었다. 사람만 탈출시키면 일거 대성공 일거라는 생각은 오산 이였다. 법무부 사람들이 갑자기 내가 일하는 집에까지 찾아 왔다. 그들의 호출을 받고 밖으로 나와 보니 남편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된 판인가? 쏘아보는 나의 눈길을 피하며 남편이 가만히 나에게 알려 주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이 우리 집에 뛰어 들었소, 집도 몽땅 뒤집어 놓고 미처 버리지 못한 내 휴대폰도 찾아내고, 그 휴대폰에서 통화명단들에, 전화번호들에 다 들통 나고 말았다니까" 끝내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다. 어제 저녁 그들은 남편을 법무부에 불러다 놓고 사실을 실토하라고 위협 공갈하였으며 내 남편의 휴대폰으로 유관 명단에 다 전화를 하였다. 내가 그렇게나 휴대폰들을 다 버리라고 당부 했건만 내 남편도 그들도 버리지 않았다. 내 남편의 전화번호가 뜨자 철수와 월매는 고스란히 다 전화를 받았다. 법무부에서는 별 큰 힘 들이지 않고 이 세 사람을 가둬 들였다. 물론 남편은 한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구치소에서 나왔다. 후에 법적 조치가 따라갈 것이니 우선 집에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단 민정과 성남은 정말 휴대폰을 버렸는지 통화도 되지 않고 출입국에서도 단서를 잡지 못했다. . 그날은 월매를 면회하는 날이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 두등이 퉁퉁 부어 눈도 바로 뜨지 못하는 월매는 나의 두 손을 꼭 잡고 하소연하였다. "언니, 나 중국으로 추방당하면 어떻게 해! 우리 집 그 알콜 중독 놈 새끼 어떤 여자와 살다 빚만 잔뜩 받아 안고 지금도 매일 술 퍼마시며 나만 기다린다 잔아. 내가 돈을 몽땅 안내놓으면 때려죽이려 할 거야! 흑흑…" 한참 울던 그는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치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한마디 더 하였다. "근데요, 성남 씨와 민정이 소식은 전혀 없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들 같이 있는 것 같아, 앙큼한 계집년!" 월매의 입에서 드디어 야멸찬 한 마디가 튕겨 나왔다. 지방에 내려갔다 돌아온 나의 질녀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아니, 집 안 꼴이 왜 이렇게 됐어요? " 두서없이 나날을 보내느라 도망친 후 뒷수습 하는 것도 깜박하고 있었다. 나는 성남에게 닥친 재앙을 얘기해주었다. "아이고, 그런 재수 없는 남자를 소개하려 했어요? 나도 불법인데 큰일 날 번 했네요." 나는 똑같은 불법이었던 얼음꽃 미인이 생각나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 났다. 외로운 타향살이에서 나를 친언니 친누나처럼 따라주며 서로를 구하다 사고를 친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건가? 내가 갇혀있는 친구들을 찾아 출입국을 얼마나 쫓아 다녔던지 출입국 직원들은 나에 대해 아주 익숙해 졌다. 그날도, 출입국 구치소에 갇혀서 고생하는 친구들을 면회하고 또 조사과에 가서 친구들에 대한 선처를 빌고 나온 나는 울분을 참지 못하여 출입국 복도 장의자에 앉아 흑흑 울고 있었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씽씽 몰아쳤다. 하나의 나무가지가 물결 사나운 소용돌이 속에서 빙빙 돌며 허덕이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 범피중류{泛彼 中流}란 것이 있는가 아무리 똑바로 가려해도 세상이란 물살은 기어이 너를 흔들어 놓고 뒤집어 놓으려 한다. 법의 천평은 누구를 위해 평형을 잡고 있나요?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갑자기 누군가 울고 있는 내 눈앞에 휴지통을 갖다 놓는 것이었다. 조금 있더니 휴지 두 장을 빼 내여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눈물을 닦으며 앞을 바라보니 30대 좀 넘어 보이는 젊은이였다. 누구세요? 나의 의아해 하는 눈길을 보더니 이곳 사무실 직원이라고 알려 주었다. 벌써 여러 날 여기 와서 매일 친구들 위해 찾아다니고 우시는 걸 봤습니다. 그 말에 나는 울음이 더 왈칵하고 쏟아졌다. 그는 계속 내 옆에서 휴지를 뽑아주며 눈물을 닦게 하였다. “그만우시고 이젠 집에 돌아가세요, 밖에 눈이 많이 내리고 있어 택시 잡기도 힘 들것 같네요. 나도 퇴근 시간 다 되였으니 제 차로 집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나는 이 낯선 한국 젊은 직원을 멍청하니 바라보았다. 모처럼 마음이 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그의 차에 탔다. 눈발이 풀풀 날리는 도로 위를 달리며 그는 나와 많은 얘기를 했다. 참, 대단 하십니다. 중국 교포들은 친구지간에 이렇게나 의리를 지키시는 군요, 한국 사회에선 이미 낯 선 풍경입니다. 지금 서울에 대단한 센세이션입니다. 잘 하셨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친구를 빼내기 위해 그런 큰 모험을 걸고 작전들 하신 것도 그렇고 또 친구가 붙들려 들어 왔다고 해결하시려고 매일 와서 하소연하고 우시는 것도, 그런데 전번에 그 젊은 지킴이 직원 말이에요, 신입 공무원 이였어요, 도망간 두 사람 찾지 못하면 해고 될지도 몰라요. 네? 해고? 나는 머릿속이 다시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해고당한 그 신입공무원의 얼굴이 깨여진 유리 조각처럼 일그러진 성남과 민정의 얼굴에 꽃혀서 다같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놀라 깨였다. 새벽의 꿈이였다. 어둠이 염치없이 야금야금 낮볕을 먹어가고 있는 저녁, 바람이 좀 누그러들었다 .다시 일을 시작한 나는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려 문고리를 쥐였다. 갑자기 가방 속에서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나는 가방 속에 손을 넣고 폰을 꺼 내였다. "여보세요?" 묵묵부답 "누구세요 말씀 하세요" "누님, 접니다." 뜸을 한참 들이고 나지막이 들려오는 성남의 목소리였다 .나는 죄여드는 철갑을 뒤집어 쓴듯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저 땜에 너무 죄송해서, 근데 지금 바깥 사정은 어떻게 되었는지요?" 지금 통화가 얼마나 위험 한가를 직감하고 있는 나는 도청이란 두 글자를 떠올리며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 어떻게 보내느냐 등을 물을 수 도 없었다. 나는 급급히 이쪽 사정을 대충대충 알려 주었다. 철수 월매가 잡혀 들어간 것, 그리고 그 신임 공무원의 해임 위기. "네? 그 신임 공무원의 해임 위기까지?" 너무 충격적인 소식 이었던가 저쪽에선 더는 말을 못하고 떨렁 전화를 놓아 버렸다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폰에서는 걸 수 없는 전화라고 알려 줬다. 공중 전화인 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또다시 밤을 새웠다. 그들이 아직 무사히 있다는 점이 한시름 놓이게 하면서도 알 수 없는 마음속의 불안감은 심히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렇게 또 얼마가 지났다. 집으로 들어 온 남편이 성급히 새 소식을 알려 주었다. “여보, 성남 씨와 민정이가 끝내 출입국에 잡혀 들어 왔다오.” 응? 난 마음이 덜컹했다. 그러나 금방 또 안도의 한숨이 푸하고 나왔다. 마치 다행이다 싶도록. 이건 또 뭔가? 정말 나로서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극도의 엇갈린 정서의 교차점 이였다. 그들까지 잡혀 들어 올 가봐 얼마나 마음을 조였던 나였던가. 사실 출입국에서는 그사이 서울과 지방에 숱한 사복 경찰들을 풀어놓고 샅샅이 뒤집고 있었다고 한다. 무슨 살인 죄수도 아닌데 이렇게 까지 강력 대처 할 줄 몰랐다. 오랜 흐린 날씨 끝에 모처럼 따사로운 겨울해가 서울의 한강을 비추고 있었다. 구름들 사이에서 태양은 오랜만의 기지개를 켜며 살얼음 아래서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의 물결에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한강변의 마른 나무와 풀잎들이 가벼운 바람결에 귀를 열고 몸을 흐느적이고 있다. 쉽지 않게 찾아온 한적하고 고즈넉한 한강변의 자태다. 두 중년 남녀가 저 멀리 다리 위에서 내려 팔짱을 끼고 천천히 강변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이 바깥공기가 정말 오랜만이란 듯이 가슴을 쫙 펴고 심호흡을 한다. 택시를 타고 같이 도망치던 그날 밤, 그들 둘은 사우나 방에서 밤을 새운 후, 교포들이 거의 거주하지 않는 한강변 어느 빌라의 낡고 축축한 싸구려 지하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민정은 가슴 깊이 묻어 놓았던 얼음 속에 포장 되어 있던 뜨거운 사랑을 드디어 마음 놓고 쏟아 붓기 시작했다. 한 번도 성남의 곁을 떠나지 않고 모험을 무릅쓰고 장을 봐오고 약을 사오며 살뜰히 보살폈다. 저 한강 나루터에서 물오리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오른다. 그러자 뒤에서 또 한 마리가 푸르릉 날아오른다. 두 사람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사색에 잠긴 듯 한참 바라본다. "아마 같이 있는 짝궁인 거봐요" "역시 운명을 같이 하는 놈들이군." 운명을 같이 한다는 말에 민정은 생각에 잠기었다. 민정은 성남이 안고 있는 아픔들을 조용히 옆에서 살펴보았다. 그의 과묵이 좋았고 그의 교양과 품위가 좋았다. 전 남편과 비교가 되였으며 매일같이 분주한 식당 홀 서빙에서 무시로 그의 손목을 잡고 그의 엉덩이를 건드려 보는 그 많은 뭇 사내들과 비교가 되였다 .성남은 말없이 그의 가슴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에게는 천번의 키스와 백번의 색스는 아니어도, 월매나 나의 질녀와는 다른 자신만의 사랑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 누가 삭풍에 끄달리는 나무숲은 고통 받는 짐승과도 같다고 하였다. 곰팡이 냄새 그득한 지하방에서 도주범이란 곽 안에서 그들은 숨소리 죽여 가며 신음하는, 삭풍에 끄달리는 숲속의 짐승 같았지만 서로를 품어 주고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며 같이 가야할 운명을 후회 없이 맞이하고 있었다. . 저 다리 밑에서 누군가 한강변에서 팔을 끼고 조용히 산책하고 있는 두 사람을 응시하고 있었다. 민정 이는 허리를 굽히며 말하고 있었다. "이거 행운의 네 잎 크로버 아닌가요? 불쌍하게 다 말라 얼어 버렸네요. 돌아오는 봄날에는 다시 살아 날가요." 그 옛날, 나폴레온이 허리를 굽혀 땅위의 네 잎 크로버를 만질 때 적군의 총알이 그의 머리위를 스쳐 날아가 그의 목숨을 건져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풀은 행운의 상징물이 되였다고 하지만 이 마르고 얼어버린 행운의 풀은 과연 행운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 "우리 걸음을 좀 다그칩시다. 저기 올라가서 지하철을 타고 간다 해도 출입국까지는 아마 시간이 꾀 걸릴 거요." "알았어요. 난 당신 너무 오랜만에 나와서 햇빛 좀 더 쬐이라고, 우리가 싸놓은 짐은 그 사람들이 출국할 때 갖다 주겠지요?" 말을 마친 두 남녀는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그들의 얼굴엔 있어 본 적 없는 평온이 깃들어 있었다 .그들은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아까 그 두 사람 갑자기 어디로 갔지?" 한강변 어느 은행에서 민정이 돈을 꺼낸 단서를 발견하고 한강변으로 찾아와 긴가 민가 확실한 파악 없이 아까부터 그 두 남녀의 행적을 뒤쫓고, 있던 두 사복 경찰은 다시 한강 대교 아래쪽으로 들어가 살피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한사람이 귀에서 이어폰을 내려놓으며 놀란 듯이 말한다. "아니, 그 두 사람 방금 출입국에 와 자진 신고 했다네!” “네?” 뒤통수를 맞은 기분으로 그들은 총총 한강변을 떠났다. 성남은 그날 나와 통화를 한 후 깊은 충격에 빠졌다. 둘은 자신들의 행로를 놓고 모진 진통을 겪었다. 그렇게 많은 희생의 대가를 속출 시키고도 궁국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그러나 울분과 절망의 하중을 감당 못해 휘청이는 곤고한 삶의 좌표를 왜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에까지 주어져야 하는가? 단연히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진신고를 결정하였다. 출입국에 와서 그들은 불법이던 불법이 아니던 이번 사건에 연루 된 외국인은 몽땅 강제 추방이란 최후 결론을 듣게 되었다. .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저 친구들 하고는 전혀 무관한 일입니다 어떠한 처분도 제가 가중으로 받겠습니다!" 소나무 껍질같이 갈라 터지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는 아픔과 회한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옆에 서있는 민정은 머리를 푹 수그리고 한마디 말도 없이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들이 떠나는 날이 닥쳐왔다. 성남도, 민정도, 월매도, 철수도 모두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우리 두 내외는 그들을 보내 주려 마지막으로 출입국에 왔다. 이제 곧 그들은 외국인"보호소" 화성을 거쳐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 언제 다시 한국에 들어 올 수 있어요?" 울음 섞인 월매의 피타는 목소리였다. 그것은 누구도 확답을 줄 수 없다. 성남의 자수로 출입국에서는 앞으로 일단 환대 정책을 쓰겠다고 했지만 이후의 일은 모두 미지수다. "면목 없습니다 .평생 이 짐을 지고 가게 될 것입니다." 말을 하는 성남은 고통스레 눈을 감아 버린다. 결국 공든 탑은 이렇게 와르르 다 무너졌다. 우린 억이 막혀 말도 안 나왔다. "아저씨 부디 건강하십시요! 아무 때 건 꼭 다시 돌아오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일제히 뒤를 돌아다보았다 .성남을 마주하고 서 있는 젊은이는 바로 그 지킴이 신입 공무원이었다.! 우리는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이 와-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무엇 때문에 참았던 눈물과 설음이 이렇게 갑자기 터져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아, 2006년, 그해 겨울은 너무 춥고 캄캄하였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을 깨달은… . 에필로그 바로 한해 뒤엔 2007년, 한국엔 재외동포들에 대한 “방문취업(H-2비자)제”라는 새로운 정책이 실행되었다. 자유왕래가 보장되고 단순노무 같은 제한적인 취업보장이 이루어져 한국에 3D업종 등 인적 자원이 많이 개선 되였고 중국 동포들의 불법체류가 크게 줄었다 지금은 F-4비자,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인권 보장, 재입국을 할 수 있는 합리화한 제도 등 부단한 개선이 실행되고 있다. 2006년에 떠나간 친구들의 소식을 나는 아직도 모른다. 나는 가끔 생각해 본다. 그때 일이 지금 발생했다면… 한 시대는 한 시대의 비극과 아픔이 있다. 그것을 기억해 두는 것이 역사다. 2016년, 2월14일 서울에서 댓글30
2    수필 나의 첫 김밥말이 댓글:  조회:761  추천:0  2019-11-21
  나의 첫 김밥 말이 류재순   나라마다 그 나라 음식문화의 대표성적 간식이 있다. 미국엔 햄버거, 일본엔 타코야끼,( 요사카 지방) 중국의 월병이나 탕후루, 프랑스엔 크레이트, 이타리아엔 아이스크림… 그리고 한국엔 한국인에 의하여 향유되고 한국인의 풍토에 맞게 재창조 변형되어 국민간식으로 자리매김한 맥심커피, 신라면 등이 있으며 건강식품으로 더욱 으뜸으로 손꼽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국 김밥일 것이다. 반듯하게 김밥용 김 한 장을 놓고 한 주걱 밥을 골고루 펴 놓은 후 단무지, 햄, 계란, 시금치, 당근, 어묵, 우엉…등 몇 가지 가능한 재료들을 밥 위에 모둠 놓기를 한 후 두루루~ 말면 김밥이 된다. 특히 지금은 가끔 냉장고 내용물들을 정리하며 쓰다 남은 식 재료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초 간단하게 김밥 말이를 하는 것도 주부들의 지혜다. 특히 야채를 잘 안 먹는 애들도 여러 야채를 듬뿍 넣고 치즈를 살짝 끼어서 만들어 주면 해맑은 얼굴에 입이 터지는 듯 즐겁게 먹고 있으니 근간의 웰빙 열풍에는 더욱 엄지 척이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한국에 와서 이런 초 간단 국민간식-김밥 작식법을 몰라 잊을 수 없는 수치와 곤혹을 치룬 적이 있다. 그 속에 파묻힌 아프고 아름다운 한 토막의 추억은 그 후 나의 인생길에서 가끔은 속이 뒤집히고 머리에 뿔이 나려는 순간이 올 때마다 가슴의 열기를 식히고 마음을 따뜻이 잡아보며 바른 처신의 길을 찾아보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1990년 대 말의 일이었다. 중국을 떠나 김포공항에 내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알려 준대로 ‘직업소개소’를 향하였다. 땀을 줄줄 흘리며 두 손에 이삿짐 같은 큰 트렁크 두 개를 밀고 들어서는 나를 본 직업소개소 소장 아저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방금 공항에서 내려 바로 오는 길이며 당분간 거처 할 자리가 없으니 숙식 제공이 되는 일자리를 가능한 빨리 구해 줬음 한다는 뜻을 밝히었다. 소장님은 중국에서 무슨 일을 했으며 한국에서 일을 해 본적이 있느냐 물었다. 그때 나는 비록 두 번째 한국행이었지만 정작 일을 하러 오기는 처음 이였다. 한번은 내 소설집을 출판한 서울의 모 출판사의 초청으로 고작 며칠 서울에 머물다 간 것이 전부였고 이번이야말로 서울에 일가친척 하나도 없이 처음으로 생계를 위해 무작정 ‘돈벌이’행차로 달려온 셈이다. 그때만 해도 서울엔 ‘불법체류’로 숨어서 일하는 친구가 둿 있긴 했지만 그들의 처지도 처지인지라 날 보고 돈도 벌기 전에 셋집은 얻을 수 없으니 무조건 짐을 가지고 숙식 제공하는 일터를 직접 찾으라는 것이었다. 한국 일에 초보이며 그것도 바로 숙식 제공하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는 나의 뜻에 소장 아저씨는 머리를 설래설래 저으며 난처해하였다. 아무튼 당분간은 그리 쉽지 않을 거라며 어딘가에 가서 며칠 쉬며 소식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제야 이 두서없고 막무가내인 자신의 경솔한 행차의 황당함을 침통히 느끼며 어찌 할 바를 몰라 손톱 끝을 물어뜯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다급히 울리며 소장님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아, 김밥집요? 지금 당장요? 사람이 있긴 한데 초보여서…” 보아하니 저쪽은 다급히 인력이 수요 되는 지라 두말없이 빨리 보내라는 소리만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소장 아저씨가 지하철 로선을 가르쳐 준대로 두 손에 짐을 들고 그 김밥 집을 찾아 갔다. 찾아 간곳은 김밥 프렌차이즈, 체인점인데 내가 문어귀에 들어서며 보니 점심시간이여선지 학생과 젊은 직장인들이 밖에서부터 길게 줄을 서 대기하고들 있었다. 내가 손님들 속을 비집고 식당에 들어서 주인을 찾았다. 어깨 너머로 긴 생머리를 가뜬히 묶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내 앞에 섰다. 중키를 좀 넘는, 살짝 통통한 아주 균형 잘 잡힌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사슴같이 순진해 보이는 눈빛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식당 사장님이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너무 앳된 모습에 나도 놀랐고 큰 짐을 들고 이 좁은 식당에 일하러 온 나를 보고 그도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내가 중국에서 방금 들어온 초보란 말에 또 한 번 놀라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엔 아직 교포일군들이 많지 않았던 시기였다. 잔뜩 실망스런 표정이었지만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인지 빨리 저쪽 김밥 싸는 아줌마 옆으로 가서 같이 일을 하라고 하였다. 자그마한 김밥 가계에 손님까지 꽉 차니 가져간 짐을 어디에다 놓고 일을 시작한담? 내가 겨우 주방 한끝에 자리를 찾아 트렁크 두 개를 놓고 나오며 보니 주방 일꾼들은 물론, 직원들 모두가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지금 생각하니 그때의 그 광경 내가 봐도 얼마나 한심했을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내가 김밥을 전혀 쌀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정을 이미 직업소개소 소장 아저씨께 말했으니 허드레 일이나 시키는 줄 알았다.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는 중국 동북쪽에 쭉 살아 온 나에게 그때까지 김밥이란 너무 생소한 음식이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후에 들은 얘기지만 서양인들은 물론 중국이나 동남아 많은 국가들에서도 김밥이란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음식 문화차이 때문에 웃지 못 할 사건도 발생한 적이 있었단다. 2차 대전 중 해안 지방에 있던 일본의 한 포로수용소에서 김을 떼서 배식 한 적이 있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전쟁 재판이 벌어졌을 때 포로학대의 근거로 ‘검은 종이’를 강제로 먹였다는 죄목으로 채택 된 적도 있었다 한다. 물론 내 세대에 와서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국과 작은 왕래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김밥이란 이름과 개념을 알게 된 것에 불과 하였으니 첫 일터가 이런 자리란 것이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김밥아줌마 옆에 다가가 ‘흉내’를 내보려 하였다. 그런데 그 아줌마 김밥 싸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도무지 시늉도 낼 수가 없었다. 김 한 장을 척 놓고 잽싼 솜씨로 밥 한줌을 쭉 깔아 펴드니 어느 결에 여섯 가지 재료를 스치듯 한 손에 모둠 놓기를 하면서 휙 하고 한 번에 말아버리니 김밥 한 줄이 되었고 칼을 손에 드는 덧 하더니 한줄 김밥이 토막토막 완성이 되었다. 그의 ‘히든카드’를 발견하려고 전신의 거미줄 같은 신경세포를 몽땅 곤두세워 눈 한번 깜짝 못하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김 한 장을 앞에 놓고 밥 고루 펴기가 그렇게 힘들었고 여섯 가지 재료를 하나하나 집어오는데도 한참, 두 손으로 공손히 그것을 김 속에 말아 넣는데도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진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속이 바질바질 타고 있는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우둔한 여자란 것을 심심히 느꼈으며 줄 서있는 손님들을 바라보는 내 이마에선 땀이 방울방울 돋아났다. “아줌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김밥도 쌀 줄 몰라요?” 같이 일하는 아줌마가 버럭 화를 냈다. 하긴 김밥하면 한국의 대표적인 식사대용으로 집집마다 싸는 가장 보편적인 초 간단 레시피니 한국 아줌마로서는 도무지 리해가 안될 것이다. 나는 중국에서 직장의 어떤 일도 다 이것보다 훌륭히 해 재꼈던 일이 떠올랐다. 사람은 이렇게 바보가 되는 구나… 옆에서 호통을 치면 칠수록 내 손은 점점 더 굳어져 있었다. 그리고 깔끔히 말고 또 말아놓은 후에도 터지지 않게 한 칼에 또박또박 잘라놓기가 쉽지 않았다. 요령이 없다보니 김이 잘리는 것이 아니라 칼에 눌리어 김밥이 썰려질 때 마다 안의 내용물이 분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김밥 옆구리가 터졌다는 말은 일이 안 될 때나, 분위기 파악 못하고 주제에 맞지 않는 말을 마구하거나 엉뚱한 소리를 할 때 쓰이는 말이란 걸 후에 알게 되었다. 비록 비유의 말이지만 그 모양새의 황당함은 충분히 표현이 된 것이다. 나는 수치심에 얼굴이 후끈거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옆 아줌마가 참지 못하고 또 소리쳤다. “사장님, 나 이 아줌마하고 같이 일 못 하겠어요. 나 혼자에게 일이 다 밀려 있자나요. 도대체 뭣 하러 여기 왔는지 모르겠네요!” 휴, 김밥 모양도 모르고 살았던 우리 사정을 그가 어떻게 알랴! 나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앳된 사장아가씨가 달려왔다. “전에 김밥 싸 본적이 없으세요?” “네, 제가 살던 고장에서는…” 죄책감에 말이 목에 막혀 나가지 못 했다. “쳇, 소개소에서는 저런 사람을 왜 보냈데. 소개비만 받으면 그만인가!” “그만 하세요.” 그 아줌마에게 조용히 한마디 던진 사장 아가씨는 잠간 멈춰 있는 덧 하더니 그 바쁜 와중에도 내 손을 잡고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터지지 않게 썰어내려면 김밥을 적절하게 잡고 김밥 바로위의 약간 뒤쪽으로부터 시작해 칼을 내리면서 몸 쪽으로 당겨 온다는 느낌으로 썰어보라 하였다. 그가 이렇게 요령을 알려주자 굳었던 내손이 풀리기 시작하며 인지도가 따라가는 듯 했다.   어느새 벌써 오후 2시가 다 되어가고 식당이 비어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 3시간이라는 황금 시간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내가 들어가 그렇게 엉망을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드디어 저녁 퇴근 시간이 되었다. 이 바쁜 매점에서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분명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황금 시간을 나 때문에 급한 손님들이 근처 식당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많은 매출이 내려갔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직원들의 냉냉한 시선 속에서 안절부절 못하엿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그 어린 사장님 앞에 다가섰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오늘 임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젊은 사장은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았다. 그 앳된 얼굴에 차분하고 약간은 슬픈 표정 같은 것이 흐르는 듯하였다. 그녀는 조용히 내손을 잡았다. 그 손에는 5만원이 쥐여져 있었다. 일당 배당이 얼마 안 되는 그때는 큰돈이었다. “괜찮아요. 금방 오셔서 고생이 많으실 텐데, 다 잘 될 거예요.” 그리고 종이쪽지를 한 장 건네주었다. 자기 고모가 운영하는 고기 집인데 그곳은 숙식도 제공되니 일단은 먼저 그 식당에 가서 설거지 하는 일을 하며 차차 다른 일들을 배우라고 하는 것이었다. 쪽지에는 전화번호와 소개하는 자기 이름까지 뚜렷이 적어 주었다. 아직은 이 세상 속세를 잘 알 것 같지 못해 보이는 어린 사장님 앞에서 뜨거운 것이 눈앞을 가려 이모뻘쯤 되는 내가 어린애처럼 엉엉 울고 싶었다.…   그 후, 나는 파란만장 했던 한국 디아스포라 삶에서 많은 것을 착실히 하나하나 배워 나가며 자신을 성숙시켜 나갔다. 물론 나도 한국사람 부럽지 않는 김밥 말이 ‘스타’가 되었다. 그 한걸음 한 걸음에는 세속에 때 묻지 않은, 그때의 그 앳된 사장의 얼굴이 항상 어른거렸다.   2019, 8, 20 서울에서        
1    [수필] 겨울 녀인-류재순 댓글:  조회:648  추천:0  2019-07-17
류재순 겨울 녀인       쌓여진 가을 락엽을 밟으며 단풍의 의미를 새김질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새파랗게 올려붙은 겨울창공에서 싸늘하게 불어오는 찬공기가 귀뿌리에 빨간 불을 지핀다. 라목이 된 가로수를 가로 지나 기다란 산책길을 걷고 있다. 아직 미련을 다 털어버리지 못한 모든 의미의 풍경에 어김없이 찾아온 계절을 실감하며 움츠러지는 내 형체를 현실 앞에 자백시키고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 산책길 옆에는 봄, 여름, 가을을 아름답게 장식했던 좀작살나무, 볼레나물, 산철죽, 개쉬땅나무 등 키 낮은 관상용 잡목들이 즐비하게 줄져있다. 이제는 그 이름을 분간하기 어렵게 똑같이 벌거벗은 모양새로 추위에 떨고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한 종류의 나무가 유별히 눈길을 끈다. 꽃도 잎도 다 떨어진 라목이긴 한데 이 추운 겨울의 언덕에서 물 오른 봄버들마냥 초록빛 매끈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황매화이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서서 바라본다. 조그마하게 씌여진 패말속 설명서를 읽는다. 황매화의 꽃말은 숭고, 고귀, 왕성을 뜻한단다. 나무 전체를 뒤덮는, 4~5월에 피여나는 노란 꽃은 개화기간이 유난히 길 뿐만 아니라 가을의 노란 단풍과 추운 겨울에도 잃지 않는 매력적인 초록색 줄기로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단다. 그리고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고 잘 자랄 뿐만 아니라 추위와 공해에 강한 것이 특징이란다… 이 신비의 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상하게도 미약하게나마 분명 따뜻한 해살 몇오리가 집요하게 내 머리결을 헤치고 입맞춤을 해준다. 가슴 한구석의 어느 세포가 봄바람에 파르르 떨리는 꽃잎마냥 환생의 입김을 상생시킨다. 나는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속엔 분명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얕고 짙은 주름을 지닌 작은 키의 로녀(老女)가 서있다. 아, 저 얼굴, 나는 누구인가? 내 나이는 얼마인가? 어느 날 손자놈이 할머니하고 달려올 때, 나는 한번 깜짝 놀랐었다. 아직도 풋풋하게 느껴지는 내 가슴에 할머니라니!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다. 텔레비죤앞에서 골몰하게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한마디 했다. “당신, 왜 그렇게 입을 헤벌리고 봐? 똑 마치 치매 걸린 사람같이.”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화를 버럭 내였다. 남편은 웃으며 롱담이라 하였지만 나는 당시의 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 장면을 나는 료양원 할머니들 속에서 본 적이 있었다. 놀란 내 가슴은 슬픔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젊음, 아름다움, 능력, 민감,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우주의 섭리 속에 그려진 부인할 수 없는 오늘의 나의 초상화다! 어느 날은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완전 가능하게 치매로인이 될 수도 있는… 환각일가? 거울속에서 겨울동화속 같이 새파랗게 물올라있는 황매화가 예쁜 윙크를 보내고 있음을 보아냈다. 나는 내 안의 또 다른 하나의 ‘나’를 발견하였다. 유치하고 감성이 넘치며 바다 저편의 신기루를 기다리는 귀여운 소녀 같은 천진한 눈길, 삭막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절절한 삶의 추구를 가진 지꿎은 생명력, 어쩌면 볼품없는 겨울나무에 청사과(青苹果)를 만들려는 착각은 아닐가? 한번은 한 문학후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어머 선생님, 발톱 메니큐도 빨갛게 하셨네요!”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웃으며 조용히 대답하였다. “응, 내 마음가짐의 표현이야.” 그렇다. 나는 꺼지지 않는 추구와 향기를 가지고 싶은 내 마음의 소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청춘은 얼굴에 크림 한번 못 바르고 예쁜 옷 한번 입어보지 못하고 지나가버렸다. 처녀로 시집온 나의‘새엄마’의 보얀 얼굴을 보고 그가 바르던 크림을 몰래 손가락으로 찍어발라봤던 소녀시절, 할머니에게 들켜 종아리가 빨갛게 회초리 세례를 받던 일은 나에게 오랜 아픔이였다. 그래서 이 나이에도 키 작은 자신을 보완하기 위하여 하이힐을 신고 다니며 문밖에 나설 때면 옷장안에서 내 기질에 맞는 옷을 고르느라 무지 기운을 뺀다. 녀인들은 모임에 나설 때면 옷장에 아무리 옷이 가득하다 해도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고르다 시간이 되여버리면 아쉬움을 삼키며 급급히 블랙으로 된 옷가지를 몸에 걸치고 떠난다. 어느 장소에서나 무난한, 소화가 되는 색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장을 하면 꼭 립스틱을 바르는 걸 잊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를 그렸을 때 마지막으로 눈을 그려넣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다. 바람이 불어 로녀의 머리를 푸시시 날리는 계절이면 녀인 식 베레모를 예쁘게 쓰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조건 류행을 따르는 건 질색이다. 댄스 추러 다니고 가끔은 친한 친구들과 마주 앉아 마작도 치고 려행도 다니지만 나에겐 또 하나의 취미가 있다. 열다섯살 소녀시절, 그때 아주 보기 드물었던 《음식 만드는 법》이라는 북조선에서 나온 책을 보게 되였다. 할머니가 해주는 밥만 먹으며 음식 작식법에 전혀 무관심했던 나였는데 내용을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그 책을 한글자도 빠짐없이 다 읽어버렸다. 그리곤 뒤장에 엉뚱한 글 한 줄을 써놓았다. 음식을 잘 만들어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 이것은 녀인의 직책, 지금 생각하면 같잖아죽겠다. 그 나이에 뭘 안다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도 가족들에게 갖가지 영양가치에 신경을 써 음식을 차려주는 것이 마냥 즐겁다. 일하러 갔다 돌아온 식구들이 내가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맛갈스레 먹는 장면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한없이 행복하다. 마음은 그러한데 탄력 없는 나의 성격으로 유모아도 없는 나의 직설적인 표현에 가끔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오해를 받을 때가 있고 또한 나의 굳은 표정은 상대방의 거부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남편과 잘 다툰다. 군인 출신의 그와의 혼인 생활은 감성이 넘쳐나고 완벽함을 주장하는 나와 현실적이고 편안함을 좋아하는 그와 쇠소리 나게 부딪칠 때가 많다. 일평생 원망하며 사는 것 같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몇년 동안 그와 갈라져있을 때, 나는 공중전화를 붙들고 그와 대화를 하다가 그칠 줄 모르는 눈물에 말이 막혔었고 남편이 맹장수술을 할 때에도 수술실 밖에서 엉엉 울어 뭇사람들을 웃겼다. 젖먹이 어린 것을 등에 업고 방에 엎드려 밤을 새우며 글을 쓰던 그 나날에 돈벌이도 안되는 글쟁이가 되는 것이 어려서부터의 소원이였다는 나의 한마디 말에 남편은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옛날 그 시절”이란 말을 문학후배들 앞에서 절대하지 않는다. 이십 몇년이라는 창작 공백이 지금의 나를 얼마나 초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또다시 글쟁이라는 주술에 빠져들고 말았다. 늦게 다시 시작한 문학창작이지만 무뎌진 솜씨에도 글 한편을 금방 탈고하고 필을 놓는 그 순간, 산출의 그 환희와 쾌락과 행복감은 글쟁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리해할 수 없는 일이다. 세계적인 작가들도 초고는 끔찍했다고 말한다던데 나는 볼품없는 그 첫 탈고의 ‘성공’에 도취되여 자신이 아직은 청춘이고 최고인 줄 안다. 매번의 이런 유혹에 빠져 이 로녀의 마음에도 겨울 황매화의 초록색 줄기가 풋풋하게 살아나는 것이 아닐가. 그렇다고 내가 여생에 무슨 대단한 성과를 이루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세상을 나만의 눈으로 바라보며 사상을 잉태하여 글을 써내는 주술에 빠진 인생을 즐기려 한다. 그것이 나라는 겨울 녀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좀비 같은 존재를 면할 수 있는 내 특유의 길일 것이다. 자신을 향기의 녀인으로 포장하며 그 속에 끊임없이 내 추구의 내용물을 리필하련다. 그래서 내 인생의 마지막 퍼즐을 잘 맞추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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