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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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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빨래널기
2019년 11월 22일 12시 59분  조회:901  추천:0  작성자: 류재순
수필
빨래 널기
 
미국에 가서 반년 넘게 있는 동안 나는 켈리포니아주 토렌스에 있는 딸집에서 생활하였다. 태평양을 옆에 끼고 파란 하늘을 이고 사는 이 고장은 찬란한 태양과 청신한 공기가 조화를 이루며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났다. 전쟁의 세례를 겪지 않아서인지 수백 년 수령의 아름드리 거목들도 어렵지 않게 볼수 있었으며 지은지 수십년 된다는 별장 같은 주택들도 새 주택들 못지않게 풍채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집집마다 앞뒤 정원에 펼쳐진 넓은 잔디밭들, 무성한 과일나무와 싱그러운 꽃밭들...나는 가끔 눈을 지그시 감고 두 팔을 뒤로 한 것 젖히며 심호흡을 한다. 그 청신하고 향기로운 공기가 폐속으로 스며드는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우리 생활에서 아직은 '현대화'에 속하는 많은 설비와 가전제품들이 그쪽에서는 이미 200년 이라는 '이력'으로 미국인들의 생활 패턴 속에 완고히 엉켜있었다. 빨래 건조기가 바로 그랬다. 세탁기에서 빨래를 하고 무조건 빨래 건조기에서 오래오래 건조시켜 꺼내는 것이였다. 밖에서는 태양이 눈부시고 상쾌한 바다바람이 주택 뒤 넓은 정원에 선들선들 불어오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을 외면하고 빨래가 건조기에서 덜커덩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몇 안 되는 그릇도 전용 식기 세척기에 넣고 긴 시간을 돌리는 것도 못마땅했지만 그나마 그건 뜨거운 세척기에서 그릇이 충분히 소독 될 거라는 생각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빨래 건조기를 쓰는 일에 대해서만은 끝내 나와 딸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딸애도 내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뒤뜨락 잔디밭 파라솔 아래에 있는 탁상에 커피 잔을 갖다놓고 설명을 했다. 빨래줄에 널어놓으면 도시의 이미지에 영향주기에 미국에서는 정원에 빨래 너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다는 것이다. 큰길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제 집 뒤울안에서도? 참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 이런 생각도 세대 차인가?



하긴 딸애의 구구한 설명은 나에게 수십 년 전의 일을 상기케 했다. 지난세기 70년대, 내가 처음으로 중국에서 제일 큰 국제도시인 상해에 갔을 때였다. 많은 고층건물과 화려한 상가들은 동북 태생인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어느 결에 주거와 상업시설이 혼합된 주상복합단지에 들어섰다. 거기에서는 이상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집집마다 창문을 열고 긴 장대들을 밖으로 내놓았는데 그 장대들엔 크고 작은 빨래들이 줄줄이 널려져 있었다. 여인들의 속옷들까지 넌지시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체적인 아파트 형체는 빨래 널기 장터 같았다. 참으로 볼품이 없었다. 앳된 마음에도 충격 이였다. 오랜 세월 내 마음속에서 '상해'하면 항상 이 찜찜한 풍경과 동반되여 상기되곤 하였다.

그러고 보니 미국의 법을 이해 할 만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거리에서 아예 보이지도 않는, 해볕 좋고 바람 잘 부는 넓은 뒤뜰에 빨래대 하나 못 놓게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빨래에 대해 집착을 하게 된데 는 아마 소시 적 부터 몸에 익혀진 습관 때문이리라.

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를 따라 빨래터에 따라다니는 것이 큰 재미였다. 맑은 물이 콸콸 흐르는 꽤 큰 냇가에서 넓적한 돌 하나를 차지하고 할머니를 흉내 내여 타닥타닥 빨래를 두드리기란 여간 신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 작은 손아귀에서도 빨래는 방치로 두드릴수록 검은 때물을 줄줄 흘러내렸다. 그 다음 할머니처럼 빨래를 흐르는 물에 활활 헹궈내면 뽀얗게 변해버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 났다. 할머니보다 더 잘 해낸 것 같았다. 그러나 더욱 큰 재미는 큰 빨래함지를 머리에 인 할머니 뒤를 부지런히 따라 타박타박 걸어와서는 햇빛 가득한 집 울안의 빨래 줄에 빨래를 너는 일이였다. 할머니는 내가 성가시다며 옆에서 얼씬거리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지만 나는 무조건 걸상을 가져다놓고 뒤뚱거리며 올라서서 내가 씻은 작은 빨래들-양말이며 수건 등을 기어이 내 손으로 널었다. 할머니가 탁탁 빨래를 털면 나도 그 작은 양말도 손으로 탁탁 치고 쫙 펴서 널었다. 그리고는 동네를 몇 바퀴 돌며 실컷 놀다 집으로 돌아오면 누르스럼 하던 광목 이불 호청들이 할머니 손을 거쳐 쨍쨍한 햇빛 아래서 옥양목처럼 눈부신 빛을 뿌리며 바람에 펄렁이고 있었다. 물론 할머니가 큰 솥에 재물을 풀고 빨래를 푹푹 삶은 것도 한몫을 한 것이다.

나는 영화 구경을 하듯이 울안에 꽉 찬 빨래들을 구경하다 비로소 바람에 날려 떨어진 작은 내 빨래들을 발견하고 왔다갔다 뛰어다니며 줍느라 바쁘다…할머니 슬하에서 자란 나의 동년시절의 생활 모방과 체험들은 나의 인생에 많은 소중한 것들을 자리매김 해놓았다. 그러나 내가 성인이 된 어느 날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서부터 내 생활에 오랜 세월 몸 배어온 빨래 널기 습관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물론 양지바른 베란다에 빨래를 널기는 하지만 울안에 빨래를 널던 그 대자연의 싱그러운 향은 다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아, 밝은 햇빛, 청신한 바람, 대자연이 주는 그 세례 속에서 빨래는 얼마나 깨끗이 소독되고 깔끔하니 화이트 되며 보송보송하니 상큼한 향기를 안겨주었던가.

그러니 정원의 그 좋은 천연 빨래 건조 터를 못 쓰는 게 큰 유감이 아닐 수 없었다. 하긴 미국의 법이 그렇다고 하니 서운한 생각은 금할 수 없지만 역시 에누리 없이 지켜야 하겠지. 그러나 아쉬운 마음은 미국을 떠난 뒤에도 내 머리 속에서 좀처럼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 온지 1년이 되던 어느 날, 미국에 있는 딸이 위챗으로 뜻밖의 소식을 보내왔다.
“엄마, 이제는 정원에 빨래를 널 수 있게 됐어요. 정원에 빨래를 널 수 있다는 새 법이 나왔거던요, 엄마,  빨리 놀러 오세요.  잔디밭 파라솔에서 커피 마시며  빨래 향기 맡을 수 있게 됐어요…”

오 마이갓!  이건 또 무슨 소리람? 내가 어리둥절해 있을 때 딸애의 설명이 따라왔다.

“정부의 주장: 태양에너지를 이용하기에 전기 절약, 자외선으로 빨래 소독…”

허, 난 또 무슨 큰 발명이라고?! 우리 조상들은 원래부터 잘 해왔어!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폰을 닫았다. 아무튼, 마음은 너무 후련하였다.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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